Dear 기형도 -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

 

어제 기형도에게 편지를 쓰며, 이제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밤 그렇게 멍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매번 이 모양이다. , 차라리 기형도를 몰랐다면. 이 생각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죽은 당신이 원망스럽다. 당신이 해명 좀 해! 무지했던 어린 내가 기형도를 신화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선고는 잊을 만하면 날아든다. 이제 이건 내 문제다. 삶은 늘 이런 식이지.

 

 

이 글의 계기는, 흔적님 <신화화, 매혹, 시마(詩魔)....> 글 때문이다. ‘2005년 계간 시인세계의 기획 글 과대평가된 시인, 과소평가된 시인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서정주, 윤동주, 김수영, 기형도 시인이, 과소평가된 시인으로 박목월, 박인환, 전봉건, 김종삼 시인이 선정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과대 평가된 시인들 특히 기형도에 대한 내용이 主다. 동의되는 부분도,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2005년 나는 뭘 했더라. 그들이 이리 편을 가르든 저리 편을 가르든 나와 무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일용할 양식을 코로 뒤적여 찾는 숲속의 생물일 뿐이다.

 

전봉건과 김종삼은 특히 눈에 밟히는데, 이 글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형도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 신화의 발단은 요절에서부터 왔. 나는 가장 가까이 비교해 볼 대상으로 진이정 시인을 생각했다. 고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려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고려 바란다.

 

기형도 - 60년 출생, 연세대, 85년 동아신춘문예 등단, 89년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1989)

진이정 - 59년 출생, 경희대, 87년 실천문학 등단, 93년 폐결핵으로 사망. 유고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1994)

 

두 사람 다 첫 시집이 유고시집이며, 기형도는 김현 평론가, 진이정은 황현산 평론가가 해설을 맡았다. 진이정의 시집엔 지인인 유하 시인의 발문까지 있다. 기형도 시인이 스펙상(죄송...)으로 조금 더 앞서는 듯 보이지만, 지금 진이정 시인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집은 절판된 지 오래다. 세계사가 망한 관계로 재출판 될 가능성도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 기형도가 먼저 죽어서? 기이한 죽음이어서? 유명한 출판사여서? 김현 평론가의 후광 때문에? 학벌? 인맥도 넓고 유명한 지인들의 끝없는 추도 때문에? 잘 생겨서?

 

 

 

아트만의 나날들

 



 

 

약 냄새,
돈은 슬퍼라,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십원짜리 지페,
황혼, 두견, 소양강 처녀보다 더 슬픈
내 어릴 적의 십원짜리 지폐,
미국 중앙정보부가 노나주었던 십원짜리 지폐,
어느덧 나의 사회과학적 상상력은 그 사내의 선의를 믿지 못하네
코끝에선 약냄새가 났고,
미친 듯이 돈을 뿌리는 백인 병사의 곁을 지나
적산가옥 앞길을 지나
포대기에 업힌 나는 어디론다 실려가고 있었다
외삼촌의 술주정이 약냄새에 섞여 날 어지럽게 한다
박카스를 한 병 마시곤 다시 잠든 외삼촌
그는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의 아트만은 사라지고 없다 한다
그러니 거룩한 브라만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가 그리워하는 건
박카스에 취한, 구체적인, 생생한 그의 아트만이다
난 그런 현실감에 목마른 것이다
자동차 바퀴살을 호이루라고 부르던 시절,
<빵구 나오시> 집에서 나는 살았다
일용할 봉지쌀과 함께 퇴근하던 외삼촌의 구체성은
저 머나먼 브라만 속으로 사라졌다 한다
그러나 내가 브라만을 좋아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봉지쌀 아트만이 사라졌듯이, 내 유년시절의 아트만들도
이젠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기분을 슬프다고 하는 것일까
이 범아일여의 천지에서 아니 슬픈 것이 무엇이던가
오십환짜리 백동전처럼 남루한 슬픔이지만,
슬픔의 화폐개혁은 아직도 기약 없어라
슬픔의 지폐에서 길어올린 육십년대 꼬마의 쾌락들,
땡이와 연필 함대, 크라운 산도, 코롬방 아이스케키…
고 코묻은 아트만들,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다, 라는 말씀조차
내겐 더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브라만을 믿지 않듯, 지금 나는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렇다 …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삼십 갑자가 흘렀다
그리고 나는 중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난 구체성의 신, 일상성의 보살만을 믿기로 한 것이다
덧없음의 지우개 앞에, 난 흑판처럼 선뜻 맨살을 내밀 뿐이다
아트만이 무너진 마당에
인생이 꿈이란 건, 그 얼마나 뻔한 비유인가
이제부터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하지만 못내 구체적인, 빵꾸 나오시 가게의 흙바닥에 굴러 다니던
호이루와 몽키스패너들의 그 완강함이다
나, 아트만 없이 숨쉬고 있다
브라만에 구걸하지 않으리라
난 이제서야 그 옛날의 십원짜리 지폐를 꺼내든다
그 슬픈 돈을 내고 구체적인 박카스를 한 병 사먹으리라
슬픔의 드링크에 취해, 내내 위안받으리라
나라는 물건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각성이
둔한 내 뒷골을 쑤셔야만 하리라
하하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니,
그럼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단 말인가!

 

 


 

 

 

詩 진이정

 

 

내가 두 사람의 시들을 꼼꼼히 읽어본 바로, 시에 대한, 시대에 대한, 사람에 대한 고민은 죄송하지만 진이정 시인이 더 치열하다. 그런데 그는 왜 잊히는 걸까. 진이정이 쓰고 있는 시어들을 언급하면 당신은 짐작할지 모르겠다.

천지, 영겁, 백마부대 용사들, 기지촌, 이태원, 보광동, 인류애, 윤회, 보수화, 수호신, 카바레, 조국, 미국 중앙정보부, 아트만, 브라만, 보살, 강남 중산층, 사바세계, 굿, 민족반역자, 해탈……

나는 이 시어를 부정적으로 가져온 게 아니다. 두 사람의 발화방식도 매우 상이하지만, 이 시어들은 기형도 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와 가난을 겪었지만, 기형도는 광주나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시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 차이는 비겁함모던함이다. ‘그의 죽음이 완벽한 액자가 되었고, 그림은 전시되었다. 내가 정리하는 기형도 신화는 이것이다. 내가 그랬듯 지금의 독자들이 여전히 열광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비겁하고, 우리 속내를 모던하게 꾸미길 바라며, 겪지 않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흠모하는 자이기 때문에!!!

 

또 비교해 볼 시인이 있는데, 이 부분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같은 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신기섭 시인도 <분홍색 흐느낌>(2006, 문학동네, 품절)이 유고 시집으로 나왔다. 그로테스크와 죽음의 향기는 진이정, 기형도보다 더 강렬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앞서 말한 결정적 차이 때문에 그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나는 진단한다.

 

 

 

추억

 

 

  

봄날의 마당, 할머니의 화분 속 꽃을 본다
꽃은 산소호흡기 거두고 헐떡이던
할머니와 닮았다 마른 강바닥의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헐떡이는 몸의 소리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활짝
입이 벌어지더니 목숨을 터뜨린 꽃,
향기를 내지른다. 할머니의 입 속같아
하얀 꽃, 숨쉬지 않고 향기만으로 살아 있다
내 콧속으로 밀려오는 향기, 귀신처럼
몸속으로 들어온다 추억이란 이런 것,
내 몸 속을 떠도는 향기, 피가 돌고
뼈와 살이 붙는 향기, 할머니의 몸이
내 몸속에서 천천히 숨쉰다
빨랫줄 잡고 변소에 갈 때처럼
절뚝절뚝 할머니의 몸이 움직인다
내 가슴속을 밟으며 환하게 웃는다
지금은 따뜻한 봄날이므로
아프지 않다고, 다 나았다고,
힘을 쓰다 그만 할머니는 또
똥을 싼다 지금 내 가슴 속 가득
흘러넘치더니 구석구석
번지더니 몸 바깥으로 터져나오는
추억, 향기로운 나무껍질처럼
내 몸을 감싸고, 따뜻하다

 

 


  

 신기섭

 

 

 

더불어 기형도와 김수영이 대중들에게 이토록 신화화 될 수 있었던 것도 앞서 말한 비겁함모던함이 만든 시세계, ‘이른 죽음이라는 완벽한 액자, 이 구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ɑ가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호남형?

평단의 신화는 평론가들의 것이겠지만, 시장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이 시장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평론의 신화화가 더 가중되고 있는 걸 그들은 모른다. 선택에선 영향을 줄 지 몰라도 詩의 수용은 오로지 독자만의 몫이다. 그 시들은 바로 우리의 허위였다!  

 

내 짧은 변론은 여기서 마친다.

언젠가 과소평가된 다른 시인들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내가 살아있다면.

 

 

 

ㅡAgalma

 

 

 

덧)

죽은 이들을 함부로 말한 죄를 통감하며,

마지막으로 황현산 평론가가 진이정 시인의 해설로 쓴 문장을 가져온다.

순간을 그토록 옮기고자 한, 모든 죽은 시인에 대한 추도사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그의 시와 맺는 관계도 그 세계와의 관계와 다를 것이 없다. 육체가 정신의 좁은 감옥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시가 어떤 방식의 해방을 기약하더라도 그것은 육체의 삶을 통해서만 증명된다. 해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문제 자체를 없애버리는 해답은 해답이 아니다. 지우개에 지워지는 글자는 지워지고 남은 흑판으로가 아니라 지워지는 순간으로 자신의 존재를 영원에 새긴다."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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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6-07 0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이정과 기형도를 비교한 부분은 설득력이 강합니다.
이 점을 참고해야겠네요. 신기섭의 경우도 그렇고요.
감사합니다. 대중의 선호는 불확실하고 다소 치우친
부분이 분명 있지요. 시 읽기가 이미지, 느낌 등과
무관할 수 없지만 ‘이미지로만, 느낌으로만‘ 또는
’이미지와 느낌에 치우쳐‘ 대하고 수용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진이정 시인은 요절 시인이라고만 알고
있었으니 더할 부분이 있지 않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시여서 선호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형도를 중점적으로 언급한 것은 (어제 바로 올렸다가 지우신 댓글과 달리)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평론(가들)과 시인, 또는
평론(가들)과 대중(적 취향)의 차이를 밝히려는 의도로 시작한 글은
아니었지만 agalma님의 글을 통해 그런 단서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명 같은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기형도 시를 대중이
신화가 되게 한 것에 굳이 책임(신화화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여야겠지만)을 묻자면 시나 문학작품을 평소에 거의
읽지 않다가 이상한 분위기에 편승해 snob처럼 들고 다니고
입에 올린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블로그에 게시한 글들을 보면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들인 블로거들이
어떤 글을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지 참 종잡을 수 없고
상(적립금)을 주는 경우도 일정한 원칙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과 신화화는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의 경우
다른 인터넷 서점들과 달리 비교적 일관성이 있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진지한 글을 당선작으로 뽑는 것 같습니다. 머리를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AgalmA 2015-06-07 07:30   좋아요 0 | URL
제가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는 `모던함`이 기형도 ㅡ 진이정, 신기섭을 가르는 차이입니다. 그들은 시 속에서 비겁하려 하지도 않았고요. 용감함과는 다른. 솔직함도 정확하지 않죠.
김수영과 기형도는 좀 다른 양상이지만, 기형도 경우는 확실히 대중의 공감을 잡았고 죽었기에 신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신화로 인해 더욱 대중화되는 우로보로스 상태가 된 거죠.

이 글로 대체될 듯해서 댓글은 지웠습니다. 신경쓰실 일은 아닙니다~

수이 2015-06-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이정은 읽었지만 신기섭이라는 이름은 처음인걸요_ 저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AgalmA 2015-06-08 00:31   좋아요 0 | URL
우리가 모든 걸 어떻게 알겠어요^^; 신기섭 시집은 품절이고 도서관에도 잘 없는 시집이라...삶이 참 신산했을 시인...
 

 

 

 

 

 

 

 

 

 

 

 

 

 

 

 

 

 § 엄원태와 박진성 

엄원태 시인의 병과 시를 보며, 일명 病詩 불리는 박진성 시와 겹쳤습니다. 박진성 시인은 공황장애를 오래도록 앓고 있다고 하더군요. 최근 나온 박진성 식물의 밤(2014, 문학과 지성사)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제가 읽었던 시집(목숨』 『아라리)이 그 투쟁의 역사임은 분명했습니다.

 

 

 

외도

 

 

 

일행이 배[]에 오르고서야 바다를 본다 外島 바깥에는 낡은 선착장이 있

 

고 수령 몇 백 년 느티가 있고 오래 사람에 섞이지 못한 내가 있다 지금 나의

 

우울은 외도 외도 외워지지 않는 낡은 시집 구절 때문일까 어떤 싯구는 내

 

동공에 닿아 종이의 결을 버리고 격렬함으로 출렁인다, 출렁인다, 사람 밖

 

에서 사람을 쓰겠다는 나의 각오는 지나친 外道였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관

 

광안내 표지판 지나 外島에 가까운 선착장 부두에 앉는다 해금강이라든가

 

매물도 같은 지명들이 시집 사이에서 뒹굴었다 外島, 시집 한 켠을 다 읽고

 

나서야 나는 늙은 배를 손질하는 어부 지느러미 같은 장화를 본다 알약을

 

삼키는데 내 안에서 外島가 꿈틀댔다 숙취로 속은 엉망인데 ‥‥‥ 유람선 밖

 

으로 일행들이 걸어 나온다 나는 그걸 구토, 라고 쓰는 대신 귀환이라고 적

 

는다 태평양 너른 바다에 내 오랜 외도를 버리고 싶었다 뼈아픈 외도가

 

에 닿을 때까지 나는 얼마나 더 물결처럼 흔들려야 하나, 일행이 外島

 

바람이라며 두 손 가득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의 指紋들이 내가 알 수 없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격렬하게

 

 

 

 

 

 

 

 

 

 

박진성 아라리(2008)

 

 

 

 

 §§ 병과 나 

제 개인사를 잠깐 말해도 될까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늑막염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집안이 망해서 시골로 야반도주 한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죄 때문에 아이가 이리 된 것이라 많이 우셨고, 철없는 저는 다시 만난 어머니의 사랑이라 아프면서도 좋았습니다. 어머니 등에 꼬옥 업혀 병원 가는 게 그리 싫지 않았고,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지진아 반에 들어가 구구단을 외워도 그리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겐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이 눈부신 천국 같았습니다. 병이 나았을 때 평범해진 운동장을 보고 천국과 환상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20년 뒤에 또 폐결핵을 앓게 됐는데, 제 병을 걱정하기보다 주변 사람에게 옮겼을까봐 이 사람 저 사람 가까이 지낸 이들에게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하는 상황인 게 초라하고 슬펐습니다. 폐결핵은 나라에서 관리하는 병이라 돈이 그리 들지 않아 이번에도 살아남았지요. 이런 과정을 겪어온 터라 을 앓는 시인들의 를 저는 공감하며 관심 있게 보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 웅크려 흔들리지만 환한 빛의 세계를 꿈꾸는 일을 말이죠. 병 속에서는 이성적 관념이 존재할 공간이 없습니다. 그곳은 감각과 직관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며, 어떠한 것도 절실한 소망이며, 죽을힘을 다해 부여잡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그로테스크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

기형도 작품 중 「미로」라는 단편은 병든 귀를 치료하러 간 이야기지요. 누구든 아프면 삶은 즉각 '죽음을 향한 미로'가 됩니다. 작가는 병, 아픔을 통해 임사(臨死) 상태가 되며, 글로 옮길 때 샤먼이 되죠. 저는 기형도 시인의 시와 소설을 엄살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경험벼랑 끝의 체험일 수 있습니다.

'그로테스크'의 양식과 기능, 목적은 매우 다양합니다. 기형도 작품에서 보는 그로테스크의 특징으로 이 문장을 가져와 볼 수 있겠습니다.

 

그로테스크는 낯설어진 혹은 소외된 세계의 표현이다. , 새로운 관점에서 봄으로써 친숙한 세계가 갑작스럽게 낯설어진다(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낯설음은 희극적이거나 또는 으스스한 것,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로테스크는 터무니없는 것과 벌이는 게임이다. 다시 말해서 그로테스크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존재의 깊은 부조리들과 반쯤은 우스개로 반쯤은 겁에 질려 장난을 한다.

그로테스크는 세상의 악마적 요소를 통제해서 쫓아내려는 시도이다“(ㅡ카이저, p24)

 

기형도는 부정성에 깊이 천착했지만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그로테스크 요소와 사실 요소를 끊임없이 병렬했습니다. 그런데 흔적님이 말씀하시는 평론가들의 이의제기는 '김현은 어떻게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을 같이 붙여서 볼 수 있는가' 이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연상되기도 하는, 기형도의 등단작 <안개>만 살펴봐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한밤중에 입이 틀어 막히고 사라지는 여공과 안개 속에 한 사내의 반쪽이 잘리는' 그 시가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이라 지칭되는 사내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쥐새끼처럼 끽끽대는 게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그로테스크의 절정이라 생각되는 <포도밭 묘지> 연작 시에서 자신이 주인인지 종()인지 헷갈려하며 벌벌 떨고 있는 지경을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여기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은 단절보다 보족적이며 교류가 잘 되고 있습니다.  제발 시인이 세계를 극한으로 껴안고 병과 약을 제 스스로 앓고 먹고 있듯이 평론가들도 절절히 앓아보고 그런 재단을 하길 강권합니다. 귀납이니 연역이니 이론으로 갈기갈기 찢으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제대로 해 본적 없는 창작을 해보고 그런 소리를 하기를.

 

단절과 연결에 대해서,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연결해 말씀드리자면, 입과 항문은 서로 단절적인 관계가 아니고, 항문과 똥은 서로 단절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로의 지점에서 단절되지만 그 속성의 연결고리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겁니다. 입의 역할없 똥이 나올 수 있습니까. 똥 없는 항문은 항문입니까. 좀 거칠고 외람된 비유를 써서 죄송합니다만, 바슐라르와 김현 평론가의 감싸기'는 이 지점과 연결을 보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프로이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법칙과 이론 속에서 가차없이 잘라내고 신화까지 끌어들여 환원했듯이, 그렇게 재단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도 바흐찐의 그로테스크는 그게 아니었다 등등을 거론하며 어디 잘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이든 조금의 진실은 있겠으나 100% 진실은 아닌 법이죠. 부디 그들이 갇힌 곳이 빈집이 아니길 기원합니다해석이 권위나 쟁취가 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김현 평론가의 기형도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해석보다는 애도에 더 가까웠다는 점이겠죠.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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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ar 기형도 -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from 공 음 미 문 2015-06-05 21:35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입 속의 검은 잎> 中) 당신을 안 지 20년이 지났어. 누군가에겐 20살 넘은 아들이 있다면, 내겐 20년 넘은 허무가 있는 셈이야. 책갈피로 꽂아두었던 낙엽이 페이지를 누렇게 물들이는 것을 매해 지켜보았고, 년도를 확인할 수 없는 메모들 속에 올해도 몇 자 끄적였어. 이건 희망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 中) 당신의 시집 속에 ‘희
 
 
2015-06-05 0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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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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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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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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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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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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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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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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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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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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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6-0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진성은 잘 모르고요.
엄원태는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 (?)하던 시인이죠?
따뜻해서 좋아했어요~^^

AgalmA 2015-06-05 21:5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엄원태 시인은 알게 됐어요. 저도 알게모르게 독서 시장성에 좌우된 모양입니다;;
이 기회에 읽어봐야겠죠^^
 
공평한가 - 1 집회의 자유 : 법은 인간 위에 있지 않다
공평한가? -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 판결비평 1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지음 / 북콤마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노동 -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다. 법은 누구를 지키는가

 

1. 대형 마트 의무 휴업 위법 판결에 대해서

대형 마트가 임대 매장을 입점했다는 이유로 대형 마트가 아니라는 판례였다.(p36 참조) 판촉 사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대형 마트의 횡포,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의 불공정 행위들은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서, 고용과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대형 마트가 한 달에 이틀 쉬는 규제가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 판결은 누가 봐도 오류다.

 

 

 

 

 

2. , 제도, 노동조합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해고 문제 (p83~87 참조)

 

 노동삼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 행동권이다.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기사, 레미콘기사……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부른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도, 노조법상 노동자도 아니므로 부당해고를 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기업이 노동관계법을 회피하면서 파생된 것인데, 법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실질적 평등 관계도,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도 전혀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3. 뿌리 내리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조합 - 전교조의 법외노조(노조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조합) 문제 (p91~95)

노조법 24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 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 목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

.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 신청를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

 

 

 

근로자의 자주성과 독립성이라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노동조합인 전교조에서 가입자가 가입 중에 해고된 것을 걸고넘어진 이 판례는, 사용자의 이익 대표자가 노골적으로 참여해 만든 노동조합의 건재와 너무 비교된다.

 

 

 

 

4. 사법부, 위장하면 누구누구 통과 시켜 주나요?

현대차가 파견이 금지된 업무·업종임에도 파견 근로자를 쓴 건 위법이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파견 근로자에 대한 고용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 여기서 사용자인 현대차의 꼼수는 위장도급이다.

위장도급이란, 실제로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사용 종속 관계인데 이를 사용자와 하청 업체 사이의 도급계약으로 위장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는 사용자가 하청 업체 소속의 근로자를 직접 사용하지만, 외형적으로는 사용자가 하청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근로자를 하청 업체 소속으로 두어 사용자와 근로자는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다. (p425 참조)

불법파견에 대해 실형을 받을 가능성은 없고 벌금만 물면 되니, 모든 제조업 사업장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쓰는 데 아무 부담이 없다!

 

 

5.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도 범죄(업무 방해)가 된다

형법 314업무방해죄조항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법제에 들어왔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고도성장 시절 국익에 해가 된다는 취지였다. 일본에서도 사문화가 된 이 조항이 계속 집행되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p177~178 참조)

 

  

 

 

§§ 표현의 자유

 

 

1.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죄와 내란선동죄(2014), 미네르바의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사실 유포죄(2008), 이 사건들은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우선시하는 과잉 범죄화였다.

 

2. 시민방송 RTV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타리 <백년전쟁>방송심의규정’ 9(공정성), 14(객관성), 20(명예훼손 금지) 위반으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이승만 연구에 정통한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배척하고 오류가 많은 한 연구자의 글을 사실로 채택해 판결을 내렸다. 누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가.

 

3. 박경신 교수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성기 사진에 대해 하등의 사상적·학술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음란한 화상이나 영상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선고한 판결. 이 소송은 음란물과 예술에 대한 기준에 대한 논의거리를 줬다.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Niklas Luhmann은 사회 체계가 각각 분화되어 독자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법체계, 학문 체계, 예술 체계는 각각 고유한 코드에 따라 독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법체계는 합법/불법이라는 독자적인 코드에 따라 문제를 처리함으로써 사회의 기대 구조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중략) …… 만약 법이 불명확한 기준으로 예술 체계에 간섭하면 예술체계는 법체계의 무분별한 간섭이 두려워 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p212~213)

 

 

4. 위와 비슷한 판례가 하나 더 있다. 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누드 작품의 음란성에 대한 문제였다. 이 판례에서 참고해 볼 부분이 몇몇 있어  인용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3단계 음란성 판단 기준 (p580~581 참조)

1973년 밀러 대 캘리포니아주 판결에서 제시된 이 기준은 1)표현물이 지역공동체의 평균인에게 '호색적인 흥미에 호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2)표현물이 적용 가능한 법에 구체적으로 규정된 대로 성적 행위를 '명백히 공격적인 방법으로 묘사'했는가, 3) 전국적 기준에서 판단했을 때 표현물이 '중대한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과학적 가치를 결하는가'이다.

 

본문은, 보수적인 엘리트 법관보다  일반 보통인이 가장 정확하게 문제를 볼 것이며 일반인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고, 음란물 판정에 있어서는 배심재판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인간 행위와 도덕, 성, 종교에 관한 증명되지 않은 가정에 기초한 음란 규제는 헌법 21조(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이다,(p588)

 

이쯤에서 나는, MB와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에 대한 소송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림을 그릴 때는 자유지만, 그 이후는 법적 대응을 각오해야 하는 것 말이다.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그 소송 속에 예술가들이 겪어야 될 좌절감과 위축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나. 모두가 보란 듯이 그들이 노리는 것은 정확히 그것인데, 누가 더 피해인가.

 

 

 

 

§§§ 인권

 

1. 성별 정정 결정(2013)

1945년 스위스 법원의 판결문이 인상적이어서 옮겨 본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다. 법은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아들이고 법률 효과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성전환자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 이 분야에서 법률적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무엇이 성전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p164)

 종전에는 국내법상 성별이 정정되려면 성전환 수술이 요구되는데, 이 수술은 생명이 걸린 위험한 수술이고, 당뇨병 같은 질병이 있으면 수술할 수 없고, 수술비용도 비싸며,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만 봐도 과도한 규제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2013년 외부 성기를 갖추지 않은 것만 뺀 나머지 요건을 모두 갖춘 FTM(female to male) 성전환자들의 성별 정정이 허가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 판결문 중 1945년 스위스 법원처럼 인상적인 부분을 가져왔다.

관용은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삶의 방식을 함께할 공간을 내어주는 것으로서 차이를 뛰어넘는 동등과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p168)

 

 

2. 청소년의 주권

헌법상 보통선거 원칙은 개인의 능력 여하(지능, 학력)에 관계없이 선거권을 인정한다. 18세 이상 19세 미만인 자의 근로 능력, 혼인 가능(18), 유언 가능(17), 병역법과 국가공무원(18세 이상) 인정하면서, 정치적 판단 능력의 부족을 이유로 미성년자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점은 명백히 보통 선거 원칙의 위배이자 차별이다.(p112, 117 참조)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판단 능력을 키울 방향으로 본문은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p110, 115 참조)

1)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 주민투표권 연령은 민법상 성년 연령보다 최소 한 살 이상 낮춰야 한다.  

2) 선거권 연령과 피선거권 연령을 달리할 까닭이 없다.

3)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데 연령 제한을 두지 말고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한국 정치판이 성인들로 이제껏 잘해왔다면 내가 말을 안 하겠다-_-)

4) 청소년들이 선거 과정에서 선거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는 민주 시민이 갖는 교육 받을 권리이다.

5) 교육감 선거만큼은 일반선거보다 그 연령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 이해당사자인 청소년이 선거권이 없다는 제약으로 교육감 후보를 초청해 정책 토론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게 올바른 일인가.

 

 

 

3. 민간인이면 가능하고 군인이면 안 된다?

2008년 국방부는 한총련의 군 도서 보내기 운동을 포착하고, 군 반입과 복무 기간 중 열독을 금지하는 불온서적 23종을 지정했다.(p295~296)

[북한 찬양]

1. 북한의 미사일 전략(곽동기 외, 615, 2006), 2. 북한의 우리식 문화(주강현, 당대, 2000), 3.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실천문학사, 2009), 4.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허영철, 보리, 2006), 5. 8020에게 지배당하는가?(하종강 외, 철수와영희, 2007), 6.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전영호, 615, 2006), 7.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전상봉, 시대의창, 2007) 8. (백남룡, 살림터, 1992), 9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노엄 촘스키, 한울, 2013 개정), 10. 대학시절(정확히 소개되지 않았는데, 한스 슈토름의 책이 아닐까 짐작한다-Agalma), 11. 핵과 한반도(최한욱, 615, 2006)

 

 

 

 

 

 

 

 

 

 

 

 

 

 

 

 

 

 

 

 

 

 

 

 

 

 

 

 

 

 

 

 

 

 

 

 

 

 

 

 

 

 

 

 

 

 

 

 

 

 

 

 

 

 

 

 

 

 

[정부]

1. 미군 범죄와 한미 SOFA(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두리미디어, 2002), 2. 소금꽃나무(김진숙, 후마니타스, 2007), 3. 꽃 속에 피가 흐른다(김남주, 창비, 2004), 4. 정복은 계속된다(노엄 촘스키, 이후, 2007 개정), 5. 우리 역사 이야기 1~3(조성오, 돌베개, 1993), 6.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부키, 2007), 7. 김남주 평전(강대석, 한얼미디어, 2004) 8. 21세기 철학 이야기(21세기코리아연구소, 코리아미디어, 2004), 9. 대한민국-4(한홍구, 한겨레출판, 2006), 10.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녹색평론사, 2008)

 

 

 

 

 

 

 

 

 

 

 

 

 

 

 

 

 

 

 

 

 

 

 

 

 

 

 

 

 

 

 

 

 

 

 

 

 

 

 

 

 

 

 

 

 

 

 

 

 

 

 

 

 

 

 

 

 

 

 

 

 

[반자본주의]

1.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 외, 영림카디널, 2003), 2.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 프레시안북, 2008)

 

 

 

 

 

 

 

 

 

 

 

알라딘에서도 [불온서적 23]이란 이벤트로 이 서적들을 알린 바 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080731_mnd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 백과를 참조 바란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B%B6%88%EC%98%A8%EC%84%9C%EC%A0%81

 

권정생 선생의 작품이 반정부고, 노엄 촘스키의 저서가 북한찬양으로 분류된 것은 모두가 비웃을 일이다.

본문에는 없는데 2011년 약 20여 종의 불온서적이 추가되었다. 장하준의 다른 책이 또 추가되었고, 신영복/조희연 공동 저서가 있는 것도 눈에 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5354

 

불온서적 선정은 민간의 판매부수를 키우는 작용을 했는데, 정부는 민간인의 북한찬양, 반정부, 반자본주의를 더 권장하고 있는 셈이다. <공평한가> 이 책도 향후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문은, 군인의 알 권리에 대한 제한과 규율을 19세기 독일의 외형적 입헌군주제에서 생긴 특별권력관계론’(p293)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특별권력관계론이란 군인, 수형자, 공무원이 국가와 맺는 관계처럼 포괄적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관계에서는 기본권이나 법률 유보를 적용하지 않은 채 직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수형자의 기본권도 오로지 법률을 통하거나 법률에 근거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사망선고를 맞게 되었다.”(p298)

한국의 군인사법은 독일 나치 시대의 수권법(전권위임법)”과 다를 바 없다고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현재 빈발하고 있는 군부대의 수많은 사건들은 명백히 인권이 우선시되지 않는 점에 기반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떤 평화를 지킨다는 말인가.

 

 

 

§§§§ 교육

 

1. “국가가 正史를 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2008년 교육과학부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문제삼아 수정 명령을 요구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이에 모범이 되는 외국 사례가 있어 옮겨본다.

1943년 바네트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임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제한 교육위원회의 결정이 학생의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며 위헌 판정을 내렸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역사와 국가 조직 그리고 시민적 자유의 보장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애국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학생에게 어떤 신념을 천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의 양태와 의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논점은 느리기도 하고 쉽게 간과되는 충성심 함양으로의 길을 강제 경례를 통해 질러가는 것이 헌법적으로 허용되는가이다.”(p314~315)

  , 이 나라에서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전쟁 상황이 아님에도!

 

 

 

 

 

 

 

2. 반값등록금을 위하여

국공립대 기성회비 반환 소송(2012)을 보면서, 대학 개혁을 절실히 느꼈다. 2012년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10년 동안 국립대 학생들이 낸 기성회비를 합산하면 13조 가량이 된다. 더불어 OECD 회원국 중 대학이 입학금을 징수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p238) 기성회비는 회원이 규약에 근거해 내는 자율적 회비인데도, 회원이 아닌 학부모와 학생들은 강제적으로 내왔다. 기성회비는 국고회계가 아니라서 국립대의 쌈짓돈으로 전횡되었다.

우리나라 국립대는 13%에 불과한데, 전체 재정의 4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어 국립이라는 말도 무색하다.(p245) 국공립대 실정이 이런데 사립대는 어떻겠는가. 기성회비 문제 정도만 제도적으로 개선하면 반값 등록금은 모든 국공립대가 가능하다. 더불어 사학법도 개혁이 절실하다!

 

 

 

§§§§§  차별 - 어디서 어디까지 다 가져와야 돼?

1. 성은 차별을 부른다?

카드 회사 지점장의 실적 고과를 높이 사, 그가 여직원들에게 한 성희롱은 인정되지만 그를 해고한 것은 지나치다는 판결이 있었다. 직장 상사의 애정 표현격려로 생각하지 않는데도, 재판부는 피해자의 성별과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성희롱을 크게 조건적 성희롱과 환경적 성희롱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자는 성적 언행을 조건으로 불이익이나 혜택을 주는 경우를, 후자는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지점장의 경우는 환경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결국 지점장이 저지른 환경적 성희롱에 회사의 상벌 규정이 해직 요건으로 정한 현저한 의도성이 있는지가 해고의 타당성을 다투는 준거가 된다. (p412)

성희롱 법리는 차별금지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점장은 왜 남성들에게는 똑같이 껴안거나 입을 맞추지 않는가?(p413)

 

 

 

2. 유전 자유, 무전 (교도소) 수감 (p418~420 참조)

현대 정몽구 회장의 횡령, 배임 혐의에 징역 3, 집행유예 5년 판결에서, 사회봉사 명령의 내용이 황당하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준법 경영을 주제로 강연하고 언론에 기고하는 것이 형법 62조의 2에 규정된 사회봉사에 해당할까.”(p419) 내가 지금 이 리뷰를 쓰는 일 보다 더 편해 보이는데-_-?

유리한 양형 사유와 형의 집행유예는 이들 재벌들의 특권처럼 지속되어 왔다. 재판부가 경제 논리로 실형 선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불법행위를 더 조장하고 사회적 책임을 경감시키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 건도 별다르지 않다.

 

  

 

§§§§§§ 이 외에도 ...

공익신고자가 공익침해 행위 법률 180개와 그 법률에 대한 수사 결과까지 검토하고 판단한 뒤 공익신고를 하라며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를 취소한 판결은(p98 참조) 우리를 웃기려고 그런 건 아닐 거. 감당 못할 거 같으면 공익신고 하지 말라는 소리밖에 더 되나?

이 외에도 많고 많지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타의 노고를 직접 읽어보길 바라며 나는 이쯤에서 퇴장한다. 

백수 기념으로 이 글이 첫 글이라니 슬프군...

이 달이 다 가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음을 많이 비웠고,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길 바란다.

 

 

ㅡ Agalma

 

 

   

 

 

 

 

 

형사소송법에는 ‘자유심증주의’라는 원칙이 있다. (형사소송법 308조) 쉽게 말하면 어떤 증거에서 어떤 사실을 인정할지는 법관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건 근대 시민 혁명의 소산이다. 이전에는 ‘법정증거주의’에 의해 어떤 증거가 있으면 그것이 나타내는 바를 반드시 채택해야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백이다. 일단 자백이 있으면 자백에 따라 유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백을 받아내려고 잔학한 고문이 횡행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배워 법정증거주의를 버리고 자유심증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는 법관이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독립된 위치에서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진실을 찾는 데 더 합당하다는 반성적 성찰이 깔려 있다.(p136)

ㅡ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권은희 과장의 진술이 다른 경찰관의 진술과 배치돼 신빙성이 없다며 김용판 경찰청장에게 무죄 선고한 판례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사건의 실체에 대한 유무죄의 심증 형성은 법정의 심리에 의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공개 재판의 원칙, 구두 변론주의, 직접심리주의는 법원이 사실의 증명 여부를 판단할 때 증명할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원본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하고 원본 증거의 대체물은 원칙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증거재판주의는 형사재판에서 사실 인정은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p339)


미국의 배심제는 배심원들이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 정하고, 독일의 참심제는 시민과 법관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 유무죄 여부와 형량까지 정한다. 현재 한국의 국민참여재판 제도에서 배심원의 판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고 권고적 효력만 가진다.(p341)


ㅡ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전원 일치로 무죄 판결하고 1심도 무죄 선고한 경우 항소심이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며 파기환송한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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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0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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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5-3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글읽으면서 각기 다른 파트지만,모두 어느정도 밀접하게 엮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통일,발전을 꾀하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전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네요
노동자와 회사의 권익이 충돌할때, 결국 회사의 편을 들어주는것도 사측이 득할때 경제성장이 국가발전에 도움이된다는것, 그리고 표현의 자유 도,그렇게 떠들어대는 그들만의 국민통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때 교육자체도 국가에 이바지하는 인재양성에 초점이 맞추어져고 있고, 그것을 철저하게 잘 흡수한 범생들이 재판대 위에 있다는 생각이드네요.

AgalmA 2015-05-31 21:02   좋아요 0 | URL
예, 오쌩님이 정확히 보고 계십니다. 엘리트주의, 권력화가 결국 국가주의화를 만들고 있으며 그 원동력은 자본주의죠. 그것을 소수 권력층이 전횡하면서 많은 개인들의 권리도 행복도 계속 부서지는 상황이죠.

[그장소] 2015-06-01 20:30   좋아요 1 | URL
너무 어렵고 힘들게 자란 경험이 그들 어깨를 짓누른 결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가 시스템으로 나눠야할 많은걸 가정으로 내 몰았다는, 그게 계속 돌고..돌아요.
우리나라도 자원이 없기는 마찬가진데..인적자원뿐이라면..얼른 국가차원의 인식을 바꿀 필요를
느낍니다.핀란드 공교육과각종제도들..느끼는것이 많았어요.
가난한 자들이 진보에서 보수가 된다는 기초적 인 말이 아니어도..우리는 그 답습을 좀 깰 필요가 있다고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 간의 이야기
공평한가? -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 판결비평 1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지음 / 북콤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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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란 문장은 매우 의심스럽다. 만인은 법에게 권한을 줌으로써 법에 구속받는 궁지를 자처했다. 법 뿐만이 아닌 게 더 문제겠지만. 이러한 강제 속에서 평등을 꾀한다니 이치가 참 괴이하다. (law)의 사전적 뜻에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라는 이중삼중의 강제성이 포진해 있다. 이라는 한자어는 어떤가. 는 둘 다 흐르다’라는 성질이 있다. 내쫓다라는 제거의 뜻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흐르게 하고, 무엇을 제거하고 있을까. 본문을 읽을수록 거기 '우리'는 없고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던 "호모사케르(예외 상태인 자, 제거되는 국민)"를 더 보게 되니, 시대는 흐르고 사람은 제거되기만 하는 것 같다.   

 

칼 슈미트정치신학에서, 주권자란 예외 상태에 관하여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홉스시민론에서, 국가의 법과 시민의 의무를 상호 연관해 고찰할 경우, 국가와 인간의 본성이 서로 어떤 식으로 결합해야 하는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에서, 권력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악을 가할 때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평한가에 실린 판결들은, 예상대로 내내 불합리하고 불공평했다. 주권(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대신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좀처럼 공통의 주권을 반영하지 않으며 독단적이고 임의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각 판결은 5페이지 안팎으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었다. 편집이 유사 소송들끼리 배열되지 않고 시간 역순(2014년→2005)인 것은 문제의 지속성을 독자도 똑같이 느껴보란 의도로 읽혔다. 글쓴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성격을 느끼게 되는 점이다. 헌데 대중의 관심은 늘 중대 사안보다 생활지향적이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다가길 원했다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판결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이건 진보 쪽에 늘 지적되는 문제점 아닌가. 강조하고픈 주안점은 이해하지만 거론되는 소송들이 너무 반복적이다. 원래 소송의 특성이 지지부진한 거 잘 알지만 그만큼 집중하고 있는 판결들이라면 어떻게 진일보 or 후퇴하고 있는지 사안별 시간 순으로 편집하든지, 책 말미에 총괄 정리하는 꼼꼼함이 있어야 했다. 좋게 생각하면 민주적으로 각자 생각해보라는 뜻이겠지만, 독자들은 일목요연한 정리를 기대했을 것이다. 나부터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사안별로 되짚어보려니 일이 만만찮다.-_-;끙.

고심하다가 꼭 알려서 바꾸어야 할 사안에 중점해서 리뷰를 썼다.

 

 

[집회의 자유]

법의 두 날개는 질서와 안정, 자유와 정의다. 통치자는 전자를 후자보다 중시하려는 경향”(p201)이 강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집시법이다.

아래는 광우병 촛불 문화제가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명쾌히 밝힌 2008년 재판부 결정문이다.

집회의 자유란, 집회를 통하여 단순히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견 교환을 통하여 공동으로 인격을 발휘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임과 동시에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이 타인과 사회 공동체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막아드는 기본권으로서 자유 민주주의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의사 형성 과정에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특히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차츰 드러내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가 끝난 후 다음 선거 시까지 더 이상 정치적사회적 의사 표현을 할 방법이 없다는 임기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p379)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1. 집시법 10조 :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집시법 10조는 야간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23조는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집시법보다 더 상위법인 헌법 21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 10조는 집회 사전 허가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21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p377) 2009년 집시법 10조는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헌법불합치(※아래 밑줄긋기 참고)이기 때문에 2014년까지도 24시를 전후해 법 적용의 위헌 여부가 달라(p361)진.

 

2. 집시법 6 : 48시간 전의 신고제

집시법 61항은 야외에서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p140)한. 이는 긴급 집회나 우발적 집회의 규제이자, 1인 시위라도 여럿의 릴레이거나 일정한 간격이 엿보이면 집회로 간주해 처벌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악용되고 있다. “신고 의무는 원래 행정관청에 집회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질서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데”(p234), 집회에 나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뻑! 하면 해산명령을 받는다.

 

3. 집시법 51항 : 가만히 있으라

집시법 51항은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와 시위를 금지”(p550)하는 규정이다.

한미 FTA 협상 때는 폭력사태를 우려해 농민들이 아예 모이지도 못하게 사전 통제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 집회의 폭력성, 야간 집회의 폭력성 우려는 과장되었다. 2007년 한국 집회의 물리적 충돌은 독일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은 참가자에게 있기보다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이 동원되면서 촉발되기 일쑤다.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력이 만든 1967년의 사회혼란에 관한 자문위원회1968년의 폭력의 원인과 방지에 관한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p359)에서도 확인되었다.

 

4. 집시법 11 :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 설정

개별적인 경우와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집시법 11조는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가장 중요한 집회 장소를 차단한다.

집시법이 규정한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 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은 청사나 저택의 울타리에 의해 이미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데 영향을 받을 여지가 없어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을 설정할 정당성이 없다. 오히려 국민의 다양한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할 기관과 관저임을 감안하면 현재의 경계는 너무 멀어서 문제다.”(p552)

 

 

5. 집시법 12조 :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집회결사의 자유는 근대국가가 성립한 뒤 자본주의적부르주아적 지배층에 맞서는 무산대중의 항변으로서 갖는 의미가 더 크다.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이 합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또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조직을 만들고 대중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로이 밝히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형성된 것이다.”(p459)

집시법 12조의 문제점을 본문에서 정확히 짚고 있다. “군중이 모이기 때문에 교통 불편이 우려된다는 식의 사고가 아니라 그토록 많은 군중이 모여서 주장할 정도라면 정치권은 물론 모든 국민은 당연히 교통 불편을 감내하고 경청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좀 더 헌법에 합치하는 태도”(p463)이며, 민주주의를 구현할 대책일 것이다. 차벽으로 둘러싸 더 큰 도로혼잡을 유발하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을 유도하는 그 실태까지 더 말할 필요 있을까.

123항은 소음 발생을 제한하는 규정인데, 집회 참가자들은 침묵하라는 소리와 같다.

 

 

 

§§

지금까지 종합해본 [집회의 자유]에서, 우리는 국민의 기본권을 경시하는 권력 우월주의, 국가 편의주의를 살펴 볼 수 있다.

『공평한가는 할 말이 많아서 다음엔 [인권 - , 표현의 자유]와 [생활 - 경제]로 두 번 더, 아니다. 나를 두 번 죽여야 겠냐. 1번에 몰아서 써보자. 휴... 내가 이 리뷰를 공들여 쓰는 것도 다 헛짓 아닌지 참여연대 고충을 조금은...  

 

Agalma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령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할 때 취하는 방식에는 크게 단순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세 가지가 있다. 단순 위헌은 해당 법령의 위헌성을 확인해 결정한 뒤 바로 법령의 효력을 없애는 방식이다. 헌법불합치는 법령의 위헌성은 있다고 판단해도 바로 그 효력을 없애면 혼란이 생기리라고 여겨질 경우 새로운 입법을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적용하라거나, 입법자의 판단을 존중해 형식적으로 법령을 존치하되 새로운 입법이 도입될 때까지 적용하지 말라는 결정이다. 마지막으로 한정위헌은 어떤 법령이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위헌적인 해석 방식을 제거하는 방식이다.(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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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평한가 2 - 공평한 거 찾기가 더 힘들다
    from 공 음 미 문 2015-05-31 05:06 
    § 노동 -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다. 법은 누구를 지키는가 1. 대형 마트 의무 휴업 위법 판결에 대해서대형 마트가 임대 매장을 입점했다는 이유로 대형 마트가 아니라는 판례였다.(p36 참조) 판촉 사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대형 마트의 횡포,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의 불공정 행위들은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서, 고용과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대형 마트가 한 달에 이틀 쉬는 규제가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 판결은 누가 봐도 편법이다. 2
 
 
[그장소] 2015-05-2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아,,만주에 가서 뛸 수도 없구..참 깝깝!

AgalmA 2015-05-22 00:39   좋아요 0 | URL
만주벌판의 그 만주요? 중국 공안정부에 잡히면 더 답없을 텐데요ㅎ;;
아, 세상 참 이래저래 깝깝합니다. 시만 읽으며 살 수 있는 시대 늘 없긴 했습니다만...

[그장소] 2015-05-22 17:23   좋아요 0 | URL
아, 그럼 그 노래 에 나오잖아요..더 거슬러 올라가야지 뭐~
광개토까지!ㅋㅋ(얼척 없음)
중간에 디자인 컷 책에 있는 건가요?
직접한건가?했는데 아래 새장 같은 ..사람이 올려다 보는 장, 책 장이 비치는 듯
해서...책 속 디자인? 직접 한?
이런 무지렁...ㅎㅎ

AgalmA 2015-05-26 17:49   좋아요 0 | URL
책 속 일러스트입니다. 카툰의 사회적 성격을 잘 활용한 그림들이었습니다.

AgalmA 2015-05-22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국정원 레이다에라도 잡혔나. 한밤에 웬 방문자수가 이리 많아ㅡ,ㅡ;;
재미없는 국정원, 삼송 얘기는 다음회에 할까말까 하는데, 이러면 곤란해!

만화애니비평 2015-05-22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에 대해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제기한 것처럼
법이란 결국 있는 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마치 공평한 수평을 세운 것이겠죠.
이미 불공평한 상황에서 제약적 상황만 공평하다면 결국 추의 비례에 따라
흐름이 바뀌어가겠죠.

AgalmA 2015-05-22 13: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만화애니비평님. 있는 자들의 그런 것도 늘 그래왔고, 없는 자들의 소수만 늘 앞장서 싸우는 것도 변함없고...이게 늘 수평의 기준점이지 않았나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낭만인생 2015-05-2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이란 참 묘하군요. 공부해야 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5-05-23 01:18   좋아요 0 | URL
최근 한 장르 드라마에 형사가 법을 공부하며, 그러잖아요..왜 열심이냐 하니까..틈을 알아야 이용할테니까.
라나.. 공공연도 아니고 방송에서.. 대놓고! ^^

AgalmA 2015-05-26 17:46   좋아요 0 | URL
법의 언어는 그 자체로 권력지향적이라 대중의 지속적인 주의와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렵다고 외면할수록 상황을 더 어렵고 패쇄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우려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소불위의 대법원과 법관들에 대한 감시, 보완도 시급해 보였습니다.

[그장소] 2015-05-2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법치국가 ~같은 소립니다..^^ 마지막 박스는 새로 첨부한거죠?

AgalmA 2015-05-26 17:48   좋아요 0 | URL
언어가 오히려 빈틈을 만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본문 내용(헌법 불합치)의 이해를 돕고자 밑줄긋기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오쌩 2015-05-2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권을 명시하면서도 공공복리에 의하면 권리를 제한하는 해석들이 문제가 많아보이네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법철학이나 법사회학이 발달이 더딘편이라 헌법해석에 논란이 많고,명쾌하지가 않아요. 기존 법리에 순응해서 판결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그장소] 2015-05-30 01:18   좋아요 0 | URL
공공복리..발음이 참 공허합니다..배고픈 발음아닌지..ㅎㅎㅎ

AgalmA 2015-05-31 01:03   좋아요 0 | URL
법 공부 하시는 분은 문학 창작자보다 언어 공부에 더 치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석 차가 엄청난 걸 감안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에요.
거기에 판사의 자질 문제까지 겹쳐지면 거의 재난 수준이고요.

오쌩 2015-05-2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은 어쩌면 만인에게 평등하지 못할수도 그래도,법에 지배속에 있어야 그나마 동물의세계를 면할 수 있지 않나생각듭니다. 물론 법이 정의롭고 승복할수있느냐가 전제되야하겠지만 ...
벌써 읽으셨군요 ㅎ.
전 사놓고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AgalmA 2015-05-31 01:07   좋아요 0 | URL
안전을 위해 법에 기대고 있지만, 언제 뒤통수를 덥썩 물지 모르는 괴물 같아요.
법관들의 관료주의가 한국은 너무 심해서 미국식 배심제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챕터별로 천천히 읽으시면 그리 부담 없으실 듯. 볼 때마다 열이 뻗치는 부작용이 있으니 자기 전 독서는 안 좋을 듯합니다;

오쌩 2015-05-31 20:58   좋아요 0 | URL
o.j 심슨사건 같은 배심제에 단점도 있고 미국보다 엄청난 사건을 할당받고 처리해야하는 시스템에서 그런 고비용방식의 배심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될지 의심스럽지만
어느정도 숙고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현재 국민참여재판만 수배늘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AgalmA 2015-05-31 21:15   좋아요 0 | URL
차선으로 저도 배심제를 보는 건데요. 공평한가 2 리뷰 마지막 밑줄긋기에도 덧붙였듯이, 현재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이 권고적 영향력밖에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한을 더많이 부여해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서도 문제는 관료화된 사법권과 그와 결탁하고 있는 여당 국회측이 그러한 허용을 원하지 않을 거란 점이죠;
참여정부 때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생긴 건 시사하는 바가 크죠...

21세기컴맹 2015-05-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시인이 한 소리지만 이제 대한과 민국으로 나라를 나눠야될 때라고 하더군요.
제 생각도 남북 언제나 딴나라당과 딴당 돈많은 자와 아닌자 뭐 이리저리 찢어졌는데 더 못 나눌게 뭐있을까 한 생각을 했지요 정부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은 무정부주의자를 양산하는 것같고요

[그장소] 2015-05-30 01:16   좋아요 1 | URL
오!저도..무정부주의..곧잘 드는 생각..(위험한가 싶지만..점점 자주 그리 되네요..)

AgalmA 2015-05-31 01:12   좋아요 0 | URL
이 책 판례를 보니, 지방자치가 잘 정착되면 미국식 주 연방식의 운영도 가능할텐데, 중앙정부의 간섭이 너무 심하더군요. 거기 야당, 여당 표밭까지 갈려서 참...

저는 코스모폴리탄쪽 같은데, 한국에선 더 적응이 어려운 거 같기도~_~; 무슨 서양숭배주의자 취급되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죠.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이론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가 뇌과학으로 영역을 넓힌 책이죠. 물리학 기술이 뇌과학 연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영역을 확장해 사고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우주과학 연구자는 오로지 우주만, 뇌과학과 신경과학 연구자는 또 오로지 임상사례만 말하기 일쑤입니다. 독자들은 그런 전문적이기만 한 연구 글에 애초에 눈길을 주지 않는 관계 단절 또한 있습니다.

 

 

 

§ 자신에게 최적화되어 가는 뇌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수에 대략 1천억 개의 별이 존재하는 것과 인간 두뇌에도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있다는 것, 둘의 어떤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 게놈 프로젝트까지 완성되고 인간의 뇌지도가 거의 드러나면서 우리는 그 심증들을 대입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을 보고 찾는 것을 수학적 상상력, 과학적 상상력, 시적 상상력 등으로 정확히 가를 수는 없을 겁니다. 훌륭한 사고는 그 모든 상상력의 총체성에 기반한 작동이니까요. 지금껏 발견된 눈부신 이론과 법칙들이 이를 증명해주지 않았습니까.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중력을 추론해낸 유명한 사례처럼. 그런데 제가 말해 놓고도 저 훌륭한 사고가 계속 찜찜합니다. 아니 훌륭한을 떼고 그냥 사고라고 해도 찜찜합니다. 진화로 인해 파충류 뇌(생물 뇌구조의 기본) - 포유류 뇌 - 인간의 뇌 이렇게 최종적으로 합체된 우리의 뇌구조는 최적화를 계속 도출해내려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생존·안위·이익·욕구 등이 기반이 된 발화와 행동들이 그것입니다. 피곤한 일일 거 같으면 회피하고, 화가 나면 좆까!”를 내뱉기도 합니다. 우리가 "좆"이라는 상스러운 단어를 알고 있어서의 언어적 문제만이 아닙니다. 어떤 것에 흥미를 보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사고체계가 저는 흥미롭습니다. 좆까!”과연 그럴까요^^로 대체한다 해도 그 미묘하고도 근원적인 반발의 심리작동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사고로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이기심으로 확장되어가는 듯 보입니다. 요즘 새누리당은 그 대표적 표본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비논리와 억측으로 가득한, 뇌가 바라는 마음.

 

§§ 뇌가 이상하면 나도 이상한 건가? 그럼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

저는 미치오 카쿠 <평행우주>로 우주과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터에 요즘 또 제가 관심이 있는 뇌과학 분야의 책을 써주다니! 멋진 선생님 아닙니까^^? 물론 그는 뇌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분야의 권위자들의 인터뷰와 정보들을 취합해 사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각 분야의 책들을 읽고 서평 속에서 모아서 말하듯이.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지식 기반에서 사고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고는 아주 독특하고, 어떤 사고는 아주 보수적인, 다종다양한 발언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겠죠. 하지만 지식이 기반이듯이 뇌 또한 기반입니다. 뇌의 측두엽을 다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런 비교 죄송합니다;) 어머니와 박근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알아보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사고가 나올 수 없죠. 우리가 흔히 이상하게 말하는 이들을 보며 머리가 이상한 거 아냐?”하는 건ㅡ편견에 차 있거나 이해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아서가 아니라면ㅡ 비교적 정확한 지적일 겁니다. 그러데 뇌 때문에 나는, 그는 그냥 이상한 인간이 되고 말 뿐입니까?

그렇다면 '나'라는 의미는 도대체 뭘까. 제정신인 '나'만 나인 것인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나만? 이런 상황에서 '너'라는 규정은 정당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상대성을 강조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너무도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 아닌가. 

 

§§§  미치오 카쿠의 마음

아시다시피 뇌과학, 신경과학, 범죄학에서 빠지지 않고 만나게 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백과 外] 그의 머리를 관통한 쇠막대를 들고 있다;

 

1848년 미국의 철도노동자였던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고. 다이너마이트 설치 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건 말입니다. 선량했던 그는 치료 후 폭력적이고도 급격한 행동변화를 보이지요. 그의 사망 후 해부결과 좌뇌와 우뇌의 전두엽의 손실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고, 이 사건은 신경과학과 뇌과학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죠.

이런 사례를 접하면, 정말 착찹해집니다. 철학과 인문학이 인생의 최대 지침이 돼줄 거처럼 말하지만, 피니어스 사고처럼 뇌의 손상으로도 '나'라는 존재는 급변침하게 된다는 것.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매우 현실적이면서 치밀한 방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치오 카쿠의 뇌과학 탐색은 인류애가 있습니다. 정신병을 가진 막내아들 때문에 고통을 겪은 아인슈타인, 다운증후군을 앓던 아들을 죽이고 자살한 파울 에렌페스트, 치매에 걸려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미치오 카쿠. 미치오 카쿠는 신경과학이 발전해 이렇게 고통 받았던 이들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단순히 고통을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매트릭스>처럼 지식과 기쁨, 조작된 기억도 주입하는 상황이 오겠지요. 그건 과연 (내) 삶이라 할 수 있는 걸까요? 각종 오락거리에 빠져 있는 지금은 그 원시적인 단계인 것뿐일까요?

 

무력하기도 한 인간인 저는 우리 사고의 최적화들을 매일 바라 봅니다. 밤하늘이 보여주고 있는 우주 앞에서처럼.

아직 이 책의 페이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희망이 있을까, 저는 기다리며 발견하고 싶은 심정으로 읽어 나갑니다.  ​

​ㅡAgalma

 

 

 

 

 

)

북플에서는 안 보이실 텐데요. 이 글은 흔적님 서재 글에 대한 먼댓글 트랙백으로 쓴 글입니다.

어쩐지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 폴이 생각납니다. 저는 루시드 폴 역할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 루시드 폴 안 들은 지도 꽤 됐네. 오랜만에~

 

 

 

 

 

 

 

 

 

 

 

 

 

 

 

 

 

 

 

 

동영상은 '루시드폴'이 되기 전 '미선이' 시절

찬찬히 들으니 '어떤날'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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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의 미래, 목적의 미래
    from 공 음 미 문 2015-06-12 19:38 
    §『나는 내가 분석한다』(카렌 호나이, 2015) 책 제목도 있듯이 내게 독서는 그 목적이다. 삶의 많은 구렁텅이 중 어릴 때 한 번, 성인이 되어 또 한 번, 내가 직접 죽음에 아주 가까이 가보았던 게 가장 큰 엔진이 되었던 것 같다. 어제 영화 《엘리펀트 송》을 보며 또다시 짐작된 바다. 가족의 자살, 자살에 가까운 사고사, 타살에 가까운 사고사 등도 접하며 나는 삶의 경쟁에서 일찍 내려와 부유하는 삶에 밀착한 거 같다. 그래서 내 독서는 지식의 폭
 
 
에이바 2015-05-09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 제시카 비엘 머리에 못이 박혀서 과격한 성격으로 바뀌는 작품이 있는데요. 피니어스 사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은 너무 약합니다... 약간의 충격으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자신을 잃게 되다니요. 행동이 달라진 피니어스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 생각이 드네요. 과학의 발달이 인간 소외를 불러왔지만 신경과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인간적인 것을 지켜줄, 희망의 학문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네요. 그렇다면 가장 인간다운 건 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을 보면요, 이건 좀 스포일런데 인간의 진화된 형태가 나와요. 외계 종족인 줄 알았더니... 행성의 기생물과 하나 되어 이지를 잃고 덜떨어졌는데 종교로 상징되는 하나, 즉 동일화에 집착하는 무린데요. 정말 최후의 최후에는 인류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지더군요. 뇌근육도 안 쓰면 굳는다는데 부지런히 사고해서 근육 빠방하게 만들어야겠어요

AgalmA 2015-05-09 17:50   좋아요 1 | URL
아니, 이렇게 멋진 댓글을 왜 비밀글로 쓰쎴어요. 조금 더 내용을 풀어 내셔서 서재글로 올리는 거 추천합니다. 댄 시먼스 <히페리온> 상당히 공감됩니다. 인간이 로봇개발은 하지만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인간성이라는 것의 무화가 바로 실현될테니까요. 우리의 두려움은 사실 현실화되어가고 있기에 점점더 인간성에 집착하고 강화하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에이바 2015-05-09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비밀글로 올라갔나요? 북플로 보니 모르겠는데 말이죠ㅜㅜ 풀겠습니다ㅠㅠㅠㅠ;;

AgalmA 2015-05-09 17:48   좋아요 1 | URL
저도 풀었습니다^^; 우리 무슨 슬랩스틱하는 거 같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