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일 수 없는 역사 -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평
고광식 외 옮김, 김육훈 해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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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유와 행복을 꿈꾼다.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같은 속성의 다른 양태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릴 권리. 역사 속에서 이것은 늘 투쟁의 핵심이었다.

가장 가까운 1968년 68 혁명 외에도 파리에서는 중요한 혁명이 여러 차례 있었다. 1792, 1830, 1848년, 그리고 다른 혁명과 구별되는 1871년 리 코뮌은 투쟁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의 새로운 혁명이었는데, 자취권 쟁취를 위한 민중 봉기였다. 파리 코뮌에 대해 역사학자 자크 루즈리는 ‘민주주의에서 절대 자유의 문제‘를 제기했다. 파리 코뮌은 권력관계를 변화시켰지만 남성 위주의 지배 구조를 바꾸지 못했고, 착취를 근절하고자 했으나 사적 소유는 예외로 두었다. 이것은 여러 혁명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딜레마이자 투쟁 논점이다. 약 1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파리 코뮌은 ‘피의 일주일‘로 불리며 19세기 유럽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력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었다. 파리 코뮌 이후 선포된 공화국은 민주적이지도 사회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 여겨지는 스파냐 내전(1936~1939)은 사망자가 50만 명이 넘는데,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개혁을 촉구하는 민중운동과 보수파들의 군사 쿠데타가 대치되는 상황이었다. 에스파냐 내전은 우익세력의 ‘백색 테러‘가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 그 수장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명분은 무시무시하다. ˝에스파냐를 구하기 위해 해야만 했다면, 나는 에스파냐 국민의 절반을 총살했을 것이다. ˝
에스파냐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보수파 쿠데타군을 지원하고 있었는데도 프랑스와 영국은 ‘불간섭‘ 정책을 내세웠다. 이 태도는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기 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 프라하를 점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를 견제하고자 독일의 ‘자력 회복‘을 허용하는 실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키우지 않았던가. 소련과 나치스가 ‘독소불가침협약‘을 했을 때도 유럽은 안일했고, 유럽 연합국과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도 눈치만 살폈다.
1943년 인도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처칠 영국 총리가 식량 비축분을 인도 주민에게 보내지 않고 식량이 풍부했던 영국군 부대에게 보내고도 뱅골 주민 300만 명의 죽음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은 것을 정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군의 동부 전선 전투가 아니라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헐리웃 영웅주의,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전승국 중심의 잘못된 착각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군 165개 사단이 동원되었으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독일군 76개 사단에 불과했다.

오늘 한국은 건국절과도 같은 3·1절.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아직도 참혹하게 겪고 있는 이들 중 팔레스타인 난민을 생각했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 이후 본격 대두된 시오니즘과 서구의 협조로 1948년 창설된 이스라엘 국가, 나라를 잃고 분쟁에 휘말린 팔레스타인. 어느 한 쪽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사라지는 쪽은 또 약자일 것이다.
세계대전 종전 후 회담을 통해 대재앙의 근원은 ‘개별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국제연맹의 무능‘이라고 연합국 사이에서 반성이 있었지만, 이 점은 파리 코뮌이 해결하지 못한 저 두 결론(지배 구조와 사적 소유)처럼 아직도 여전하다. 1945년 이후 이어진 냉전 체제와 그 산물인 세계 연맹 기구들의 설립 배경들을 보면 대재앙의 근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은 내부도 좀먹어 들어갔는데,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매카시즘과 소련의 즈다노비즘(즈다노프의 주도로 시행된 소련 문화 통제정책)은 자기 체제의 인간을 만들려고 했다. 자국의 기술을 과시하던 미-소 대결에서 어부지리는 과학 발전이라 볼 수 있을까. 모든 걸 날려버릴 핵 무장을 확산시킨 걸 생각하면 전혀 득이라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냉전의 종식까지 역사를 ‘단의 시대‘라 부른 에릭 홉스봄의 취지를 이어받아 산업화, 식민화, 대중의 정치 참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1830년대부터 현재까지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다. 이 흐름들을 따라오며 식민지를 쟁탈하는 제국주의가 가장 문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토 확장에 따른 수많은 문젯거리는 2차 세계 대전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속에 더 첨예해졌다. 서구 열강이 제 욕심에서 나눈 국경선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프리카 분쟁, 한국의 분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을 비롯한 수많은 식민지 독립 전쟁들, 서구 원조체제를 통한 또 다른 식민지화. 지금도 세계적인 긴장 요인은 영토 문제 같다. 한국에 사드 배치로 인한 긴장 구조만 봐도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1930년대 대공황이 요인이기도 했지만 에 있어 문제는 더 심층에 있다. 유럽과 트럼프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와 자국 보호주의는 자국 경제의 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 표피만 보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하며 노동조합과 개혁주의 정당을 약화시켰다. 소위 선진국들은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 거대 국제금융기구를 통제하며 자기들 이익에 기여하는 규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제적인 금융기관이 긴축정책, 금융 규제 완화, 세계 무역을 지휘하면서 예전 식민지 강국-선진국, 특권층들의 부만 늘릴 뿐이었다. 피해는 크고 광범위했다.(1980년대 초 제3세계의 부채 위기, 1990년대 말 신흥공업국의 금융 위기, 2007년부터 미국의 ‘서브 프라임‘ 위기에 의해 촉발된 심각한 경제 침체) 오늘날 다국적 기업은 국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는 의미 있었으나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로 독자적 행보에 더 탄력을 받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굴레 속에 빠진 세계에서, 빈민 청소년을 위한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의사와 석유를 서로 교환하는 시스템은 얼마나 멋진가!

경제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마저 강자 패권주의로 치닫는 현실에서 진정한 평화는 어떤 식으로 구축될 수 있을까. 19세기 말 첫 번째 세계화는 구 제국과 신흥 경쟁국들 사이의 첨예한 경쟁 및 민족 분열 속 경제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는 계화된 자본을 어떻게 현명하게 조율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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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4:02   좋아요 1 | URL
네. 어제 전시 가느라 일을 많이 못해서ㅜㅜ... 서평도 올려야 하고 너무 바빴음ㅜㅜ;;

2017-03-01 0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4:19   좋아요 1 | URL
스케치, 소장품 같은 건 복사하기 어려운데 온 거 보면 그림도 원화로 온 게 아닐까 싶은데요^^

AgalmA 2017-03-01 0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담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패러디한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진 자유시장맨˝ 카툰 너무 재밌었음ㅎ! 이런 경제 만화가 국내에 필요하다~

서니데이 2017-03-01 05:38   좋아요 1 | URL
이 만화 아깐 없었던 것 같은데요??

AgalmA 2017-03-01 05:41   좋아요 1 | URL
깜빡하고^^; 매력적인 사진, 놀라운 통계, 방대한 지도들이 이 책에 한가득이라 뭘 중점 소개해야 하나... 정리가 무척 힘들었습죠;;

2017-03-01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5:47   좋아요 1 | URL
그래서 더 바쁜지도 모르죠ㅎ; 낼모레쯤 <신의 입자> 도착하면 그 책 서평도ㅜㅜ....서평 도서 연달아 하자니 읽고 싶은 책 못 읽어서 그게 좀 안 좋네요^^;; 여러 책을 병행해 읽는 습관이 있어 한 책을 오래 읽고 오래 고민하자니 좀이 쑤셔요ㅎ;; 그럴만한 책이었지만^^...덕분에 필수 공부는 하는 셈~ 전 공부책을 서평신청하는 편이니까^^

2017-03-01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5:49   좋아요 1 | URL
스스로 만들어하는 과제물이라 의미있죠^^

겨울호랑이 2017-03-02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를 관통하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마치 스타워즈 시리즈 5편 <제국의 역습>을 생각나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역습에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하나 과제를 제시한 의미있는 책이라고 느껴지네요. 어제 밤을 새우신 듯하니, 편히 쉬는 하루 되세요.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AgalmA 2017-03-02 02:48   좋아요 1 | URL
어후, 겨울호랑이님 정리력 잘 압니다만 이리 서평 정리도 멋지게 해주시다니 어찌나 멋진지^^! 지난번엔 ˝제갈공명 출사표˝로 근사하게 장식해 주시더니 이번엔 ˝제국의 역습˝! 이 글 제목으로 바꾸고 싶어지네요ㅎㅎ;;
언제나 그렇지만 부족한 글에서 의미를 캐서 가져가 주셔서ㅎ 감사합니다^^
그리고 겨울호랑이님 건강 정말정말 잘 챙기시길~ 그래야 제게 이런 알토란 같은 빨간펜 댓글을 주시죠! ㅎㅎ*
 

제임스 글릭 《카오스》에서 중요한 단락 중 하나이고 최근 내가 쓴 글( http://blog.yes24.com/document/9263149 )과 관련 있기도 하며 더불어 인류의 꺼지지 않는 관심이자 질문거리(세계의 질서, 원인, 미래 방향성, 그것을 보는 우리의 인식 한계와 태도 등)에 대해 말하고 있어 가져왔다. 과학에서 철학으로 넘어가는 광경 혹은 상호 침투적이라고 봐야 할까.


˝우리 모두를 끌어모은 것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결정론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도인 파머가 말했다. ˝우리가 배웠던 고전적인 결정론적 계가 무작위적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6~7년간 정규 물리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초기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고전적 모델이 있다고 배웠지요. 물론 양자역학적 모델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결정론적이고 초기 정보를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감수해야만 합니다. ‘비선형‘이라는 말은 책의 맨 뒤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물리학과 학생이 배우는 수학 교과서에는 맨 마지막 장에 비선형 방정식이 나옵니다. 때문에 학생들은 대개 이를 배우지 않고 학기를 끝내거나, 배운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비선형 방정식을 선형 방정식으로 바꿔 근사적 해답을 얻는 것을 배울 뿐입니다. 그저 좌절을 훈련하는 것일 따름이죠.˝
˝우리는 어떤 모델에서 비선형성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차이점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방정식이 일견 무작위적으로 튈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무작위적 운동이 비롯될까? 방정식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마치 거져 얻는 것 혹은 무에서 유가 나온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크러치필드가 말했다. ˝현재의 틀에 맞지 않는 물리적 경험의 전체 영역이 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우리가 배웠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가까이 있는 세계ㅡ너무 일상적이어서 경이로운 그 세계ㅡ를 둘러보고 무엇인가를 이해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생각에 빠진 멤버들은 결정론, 지성의 본질, 그리고 생물학적 진화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 교수들을 당황케 했다. 패커드가 말했다. ˝우리를 함께 묶어두는 끈은 장기적 전망이었습니다. 고전물리학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보통의 물리계에서 매개변수의 영역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그처럼 거대한 분석 구조가 전혀 적용될 수 없는 무언가에 부딪힌다는 사실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카오스 현상은 아주 오래전에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규칙적인 운동의 동역학에 관한 방대한 연구가 그쪽 방향을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상황이 이렇습니다. 이는 우리가 발전시킬 수 있는 이론적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관찰에 의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해줬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동역학에 대한 탐구를 진정으로 복잡한 동역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파머가 말했다. ˝철학적 차원에서 결정론과 화해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정의하는 데 카오스가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는 결정론적이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동시에 저는 항상 이 세계에서 중요한 문제는 생명이든 지능이든 유기체의 창조와 관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했을까요? 생물학자들은 너무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연구했습니다. 물론 화학자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수학자와 물리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자기조직화의 자연발생적 출현도 물리학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양면을 가진 동전이었습니다. 무작위성이 출현하는 질서가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숨겨진 질서가 있는 무작위성이 있는 그런 동전 말입니다.˝

제임스 글릭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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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20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규 물리학을 ㅡ배우지 않아 , 더 놀라운 1인은 어쩌라공~^^;; ㅎㅎㅎㅎ
머릿속이 카오스~ 음..그렇죠. 양면을 가진 동전 !!

AgalmA 2017-02-23 20:11   좋아요 0 | URL
me 2 ㅎㅎ

박람강기 2017-02-20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포메이션도 잘 읽었는데 카오스도 언제 읽어봐야겠습니다..제임스 글릭의 내공이 장난아니네요..^^

AgalmA 2017-02-23 20:12   좋아요 0 | URL
이 책 때문에 <인포메이션>이 무척 궁금해졌죠^^ <카오스>도 읽어보실 만한 책입니다.

cyrus 2017-02-20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다른 분이 쓰신 <카오스> 리뷰를 읽었어요. agalma님의 리뷰까지 보게 되니까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개정판을 미리 사두길 잘했어요. 책을 사놓고 여태까지 안 읽었어요. ㅎㅎㅎ

AgalmA 2017-02-23 20:32   좋아요 0 | URL
<카오스> 리뷰 쓰고 다른 리뷰도 한 번 봐야 겠습니다^^ 저도 개정판 사두고 오래 묵혀 뒀죠ㅎ;;
 
불과 글 -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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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기 구축의 과정이라는 것. 종교, 특히 기독교의 속죄 메커니즘은 그걸 정확히 파악했고 죽는 순간까지 종부성사로 만족시키며 죽은 후에는 천국까지 보장해 준다. 지옥행은 계약자의 잘못으로 인한 보험 손실처럼 말한다. 종교는 자기 구원의 안정된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희망을 송두리째 내다 버리는 행위 같은 진화론에 대해 창조론자들이 분노하는 게 이해된다.

인류에겐 다른 존재 방식도 있다. 종교의 말씀을 따르는 것과 비슷하게 언어의 연금술을 통해 자기 구원을 찾는 행위가 있다. 연금술은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과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질적 부활로 확대된다(“너희들 스스로를 죽은 돌에서 살아 있는 현자의 돌로 변신시켜라.”).

푸코가 자기 배려라는 표현하며 분석한 것에 따르면 우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주체가 아니다. 고정불변의 형상으로서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자기 바깥의 활동(놀이, 창조)을 통해 스스로를 생각하고 행복과 평화를 얻는 형성 과정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을 관조할 때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의 흥미로운 사례들을 살펴보자. 서기 427년 아우구스티누스가 재론으로, 1888년 말~1889년 초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로 자신의 책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재차 분석했던 일, 후기 인상파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가 박물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계속 손봤던 행각, 존재하지 않는 책을 설명하는 조르조 망가델리 새로운 해설과 파솔리니 석유, 말라르메 의 메모지와 문장들의 재배치로 책을 낸 자크 셰레의 말라르메의 》, 1927년 프란체스코 모론치니가 자코모 레오파르디 시집 《노래》에 대한 평과 주석, 시의 수사본, 시의 수정사항과 메모와 초안까지 빠짐없이 기록하여 보여준 것  등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반영[*]이면서 획일성을 거부하는 재창조 과정 속에 주체이자 저자가 지워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매우 역설적이다.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내가 쓴 자기 반영에는 모든 사물의 본질을 스스로의 존재 속에 자신을 보존하려는 코나투스(성향)와 욕망으로 정의한 스피노자의 해석도 포함된다. 아감벤은 창조 행위의 잠재력에서 이 표현을 썼다. )

 

어떤 잠재력을 관조하는 일은 전적으로 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관조를 통해 작품은 해체되고 무위적으로 변하면서 새로운 사용을 위한 또 하나의 가능성에 의탁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적인 삶의 형태란 스스로의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관조하고 그 안에서 평화를 찾는 삶이다. 살아 있는 인간은 결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정의될 수 없으며 오로지 작품의 무위적인 상태에 의해서만, 즉 어떤 작품을 통해 하나의 순수한 잠재력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삶의 형태로(삶이나 작품이 아닌 행복이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는 삶의 형태로) 구축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삶의 형태란 한 작품을 위한 작업과 자기 연단을 위한 작업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지점에서 주어진다. 화가, 시인, 사상가는(일반적으로 예술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창조 활동과 작품의 저자라는 이유로 주권을 지닌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이름 없이 살아간다. 언어가, 시선이, 몸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매번 무위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를 관조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험을 시도하고 잠재력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삶의 형태로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이들이다.(p218~219)

 

(신비, 잠재력)과 글(서사, 창조행위)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이며 창조에 대한 뛰어난 고찰이다. 아감벤의 의견과 그가 쓰는 개념(저항, 무위, 잠재력)들을 이해하고 동참해야 접근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윤병언 번역가의 말에 동의한다.

노발리스는 철학에 대해 하나의 회상이라고, 아감벤은 문학에 대해 잃어버린 신비의 회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노년의 아감벤이 강연 속에 남긴 말들은 그리고 책이 된 이 언어들은 내게 신비와 침묵 사이에 만들어진 오솔길을 보여주고 있다. 문맹자를 위해 시를 썼다 말하는 세사르 바예호나 수용소에서 모든 지각 능력을 잃어 증언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글을 썼다고 말하는 프리모 레비를 예로 들었듯이 아감벤 또한 읽기가 불가능한 지점으로 향해 가는 철학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호모 사케르를 읽을 때는 감지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도 그의 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역사를 탐구하는 일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사실상 동일한 행위라면, 작가 역시 하나의 모순된 과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변함없는 자세로 오로지 문학, 불의 상실만을 믿을 줄 알아야 하고 그가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축하는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일이지만, 망각의 바닥에서 사라진 신비가 뿜어내는 검은빛의 조각들을 식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p18)

 

마지막으로 그가 학자연한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글로 갈음하며 이 리뷰를 닫아야 할 거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이 되지 않으려면.

 

철학의 말에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철학이 어떤 지식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일종의 무지에 대한 의식에서, 즉 모든 종류의 앎과 기술의 유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삶과 지식 분야에 느닷없이 생기를 불어넣고 스스로의 한계와 충돌하도록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강렬함이다. 철학이란 모든 지식과 학문 세계에 공표된 하나의 예외 상태를 말한다. 이 예외 상태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로 진실이란 이름이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말을 하기 위한 명분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은 우리가 하는 말의 내용이다. 우리는 진실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수 없으며 단지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p109)

 

 

※ 조르조 아감벤 <글 읽기의 어려움에 관하여>(2012년 12월 로마의 중소 출판사 도서 박람회에서)와 <책에서 화면으로, 책의 이전과 이후>(2010년 베네치아의 치니 재단에서) 강연 내용은 사사키 아타루 저작과 공통된 관점(독서의 불가능성, 문맹에 대한 고찰과 기독교로부터의 책의 탄생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사유(noesis, 생각하는 행위)는 생각의 생각이다(noeseos noesis)". ㅡ 아리스토텔레스《형이상학》
"지성은 잠재력 외에는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성이 생각하기 이전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ㅡ 아리스토텔레스《영혼에 관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들의 예들이 대부분 인간의 기술과 지식의 영역에서(문법, 음악, 건축, 의학 등등) 발견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인간이 ‘능력’의 차원에서, 즉 능력과 무능력의 차원에서, 탁월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원천적인 차원에서 무능력과 일치한다. 인간이 무언가로 존재한다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구축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결핍 상태와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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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1-27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유는 메타-씽킹이군요. ^^

AgalmA 2017-01-31 09:59   좋아요 2 | URL
조르조 아감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 대한 이중적 해석‘을 재미나게 풀어놓고 있죠. <형이상학>에서는 사유를 하나의 행위로, <영혼에 관하여>에서는 하나의 잠재력으로 말하고 있는데,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드러남으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할 텐데요. 드러난 사유 활동을 통해 아직 발전하지 않은 자유롭고 무위적인 잠재력도 같이 발견됩니다.
이건 질베르 시몽동의 표현과 맞닿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두 단계의 존재, 즉 무분별하고 무인칭적인 요소와 개인적이고 사적인 요소 사이의 변증법에서 기인하는 두 단계의 존재˝.
무인칭적인 잠재력과 개인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상태, 이 두 상태의 끝없는 순환과 공존의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와 아감벤은 말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타계(1925년 11월 19일 - 2017년 1월 9일)

 

《액체근대》를 읽고 사회학의 쓸모를 강하게 느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때도 지금 쯤이었네요ㅜㅜ. 리뷰를 2015년 1월 10일에 썼습니다. 하나하나 온통 옮겨 적었던 시간. http://blog.aladin.co.kr/durepos/7326256

제게 더 넓고 깊은 공부의 장을 열어주신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님의 명복을 깊이 빕니다.

우리에게 남기신 가르침이 이토록 많은데 어찌 다 따라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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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7-01-11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ㅜㅜ 험할 때 툭툭 사유를 털고 갈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요. 마음의 빚을 많이 안고 있어요.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ㅜㅜ

표맥(漂麥) 2017-01-11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었지요... 상당히 감명깊이 읽었는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 가셨겠지요... 음...

cyrus 2017-01-11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바우만의 진가를 처음 알게 된 책이었습니다. 군 제대 이후 독서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준 책들 중의 한 권입니다. 그의 이름이 미래의 사회 교과서에 소개되었으면 좋겠어요.

AgalmA 2017-01-13 06:00   좋아요 1 | URL
바우만을 처음 접하게 된 책에 대해서 누구나 인상적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네, 좀더 보편적으로 알려져서 사회 변화에 큰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7-01-11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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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luminum Group - Little Boy

 

 

 

첫째 밤 - 비약의 대가를 만나다

사사키 아타루는 진정한 지성들은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쁜 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비평가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려는 전문가를 거론했다. 책의 명령에 휘둘리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창조의 독립성을 강조하려 한 뜻은 알겠다. 니체와 그리스도교를 통해 임신-세계를 다시 낳는 것의 의미를 가져오며, “쓰는 이유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자라는 것의 부끄러움이 아닐까”(질 들뢰즈)라는 말을 이치에 맞는다고 했다. 저자가 아감벤에게 사전 정도 찾아보고 말하라고 맹렬히 비판했듯이 나도 저자의 논리 연결들을 보며 무리한 귀납을 하고 계시군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철학을 개념의 창조라고 말한 들뢰즈를 인용한 건 수긍하겠지만, 부끄러워하는 남성의 도피 같은 수태 과정이 창조라는 식의 연결은 내겐 비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타인이 쓴 책은 근본적으로 이해(읽고 번역) 할 수 없고, 알아버리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걸 알면서도 반복해 읽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카데믹한 의 숭상으로 보인다. 새로운 발견과 정보로 추종자가 되는지 편견을 타파하는 주체자가 되는지 저자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 읽기들이 그가 숭상하는 반복해 읽는것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저자의 어떤 에 대한 혐오와 어떤 에 대한 열광(무의식과 대면하는 읽기와 쓰기)이 모두 과했다. 그의 다독, 다상량에 대한 내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둘째 밤 - 문학이 혁명의 근원?

저자는 혁명과 폭력과의 관계를 거부하며 언어의 혁명으로서 마틴 루터를 데려왔다. 마틴 루터는 성서를 읽고 또 읽으며 세계의 질서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이단으로 내몰렸지만 루터는 언어로 이 깨달음을 알리려 했고 그의 성서는 민중에게 퍼져 나갔다. 그는 읽고 다시 쓰는 자가 된 것이다. 저자는 루터가 정초한 독일어가 독일 철학과 독일 문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루터파는 교회법 관할에 있던 사항을 세속국가 법률의 관할 하에 이행하는 법 혁명을 이뤄냈으며 이는 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중세 해석자의 혁명이 현재의 복잡성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라는 건 잘 알겠다. 이에 대한 내 판단은 일단 유보했다.

 

 

셋째 밤 - 종말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말에 동의

문맹인 무함마드는 읽을 수 없는 신의 계시를 읽음으로써 코란(‘읽는다는 것’)을 이 세계에 가져왔다코란 원본은 이슬람에서 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며 신의 아들도 아님을 강조한 무함마드는 폭력의 법을 따르지 않고 반복해 읽는 자였고, 책을 읽는 자신이 미쳤는지 아니면 세상이 미쳤는지 하는 물음 속에서 자신과 세계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일체감을 깨달았다.  여기서 일체감이란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모든 타자, 모든 세계의 죽음의 순간과 일치시키는 절대적 향락상태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나치와 사이비 종교와 많은 종말론들은 이런 사고로 현실을 변질시켰다. 아감벤과 코제브도 비판 대상이 되었다.

병든 사고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은 문학이 해왔다며 저자는 조이스와 베케트를 예로 가져왔다.

앞선 장에서처럼 '수태'를 어떻게든 연결하려는 억지가 느껴졌는데, 무함마드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논리 전개만 빼면 대체로 수긍할 만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세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더욱 죽이는지.

 

 

넷째 밤 - 종말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열광을 조소하며 저자는 그 반대의 역사로 로마법 대전의 예를 들었다. “6세기부터 11세기 말까지 600년 가까이 완전히 망각에 묻혀있던 로마법 대전이 11세기 말 피사의 도서관에서 발견되면서 유럽은 법 개념과 법률 용어를 대량 입수하게 됐다. “로마법을 주입받아 고쳐 쓰인 교회법은 범유럽 공통법으로 탄생(‘중세 해석자 혁명’) 했다. 이 새로운 법을 추축으로 교회가 성립되었고, 그것은 근대국가, 근대 관료제의 기원이 되었다. 이 법질서에 귀속된 인간은 재생산의 법적 대상이 되었다. “근대법, 근대국가, 근대주권, 회사, 신탁, 계약, 조합 등 근대 자본제의 원형체제 속에 자연히 인간도 이양되었다. 법문은 좀 더 정교히 수정되어 정보와 데이터베이스가 되었으며 정보에 의한 통치를 쉽게 만들었다.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비롯된 정보와 폭력과 주권의 삼각형으로 구성되는 세계’, 제도적인 것의 세계는 유럽의 한 버전에 지나지 않으며, ‘세속화라는 가면(유럽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전략 병기, 개종, 정복) 속에 전 세계에 수출된 것이라는 르장드르와 저자의 주장은 타당해 보였다. 다른 무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인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중세 해석자의 혁명이 세계의 법과 무의식을 더 공고히 한 혐의는 보이지 않는가? 자유롭다 말하지만 온갖 훈련을 통해서 탄생하는 예술과 문학의 아이러니는 재생산들의 종말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순수성이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할 문제 아닌가. 어떤 것도 본질로서 있을 수 없는데 우린 지금 무엇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지.

 

 

●다섯째 밤 - 다음 아침을 기다릴 뿐인 아침

20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한 뒤 농경, 목축, 자본의 축적에 의한 경제활동은 1만 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고, 예술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밖에 되지 않았고, 문학이 탄생한 이래 90퍼센트는 완전한 문맹이었다. 이런저런 제반을 살필 때 문학은 너무도 젊은 예술이며, 생물종의 평균수명은 400만 년이라는 고생물학자의 통계를 가져와 인류 멸종은 터무니없다 저자는 강조했다. 인쇄술이나 종이의 발명이 이 읽고 쓰기의 세계를 대단히 발전시켜 왔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구전성(口傳性)이 구전성(舊典性)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보기에, 인간이 유용성을 발견한 모든 것을 인류가 끝날 때까지 가져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말, 종언 타령엔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저자는 마무리에서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나 블랑쇼가 없었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느냐고. 당신이 그 책들을 읽고 미치고 이렇게 쓰게 되기까지 과연 자유로웠냐고. 이 생각의 자유로움은 비평가와 전문가를 합한 또 다른 의 모습은 아니냐고나는 그의 이 글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야전과 영원입문서일 뿐이고 향후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을 깨는 다른 글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도 기도하는 비평가와 전문가 어느 부류에 분류될 테니까. 언어와 인간의 이 체계들을 이토록 추적해봤으니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 혁명을 담으려는 언어의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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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2-15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집에 있는데.. 여태 못 읽고 있는데 이 글을 보고 나니 좀 망설여지긴 하네요. 저도 <야전과 영원>의 도입이라 생각하고 산 책인데, 흠...^^;; Agalma님 글을 보니 저자의 지적인 엘리트주의(?)가 눈에 띄어서 불편하게도 보입니다..

AgalmA 2016-12-16 02:11   좋아요 1 | URL
이 책 호불호가 있는 편이더군요. 저자 사사키 아타루처럼 열광하던가 싫어하던가 극이 확실히 나뉨^ㅁ^; 이럴 경우는 특히 직접 읽어볼 수 밖에 없죠. 저도 <야전과 영원>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이 책을 읽어본 건데, 애독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올 선생 같은 어조 때문에 읽기가 너무 괴로웠어요. 아무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역자를 비롯해 사람들이 그 웅변성에 점수를 더 줬지만 웅변성이 강한 글일수록 논리가 더 철저해야 되죠. 비약과 무리한 수사가 많으면 제가 이 리뷰에서 따진 거처럼 바로 허점이 드러납니다. 이 책이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라지만 다루는 내용이 대체로 철학인데 너무 나이브해 보였습니다. 이 책의 수많은 리뷰들에서 열광과 호기심이 대다수였고 주장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는 게 많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리뷰쓰느라 일주일 넘게 책을 고민하며 스트레스 많았습니다ㅡㅜ 제가 갸웃하는 점들을 제대로 짚으려면 아사키 타타루보다 더 치밀해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시대라 흔히 일컬어지는 중세에서 해석자를 발견하고 종말적인 바로 거기서 사실 대혁명이 있었다는 역발상 논제는 신선한 구석이 있어요^^
이 책 때문에 <야전과 영원>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졌습니다;;그 책 이전에 ‘데뷔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는 아사다 아키라 <구조와 힘>(1983), 아즈마 히로키 <존재론적, 우편적>(1998)을 더 읽고 싶어요.
<존재론적, 우편적>은 읽다가 중단된 상태인데, 이 책 소재도 문체도 제법 맘에 들더군요^^

아무튼 집에 사사키 아타루 책이 이미 있으시다니 언젠가 읽긴 하시겠군요. 건투를 빌어요^^/

북다이제스터 2016-12-15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읽고 뭔가 한참 이상하다고 느낌만 들고 글로 잘 옮기지 못했는데요.
Agalma님이 아주 시원하게 조목조목 말씀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12-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2-15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북플에서 [그장소]님이 좋다고(?) 내지는 읽었다고 하신걸 보고설라므네 혹하여 바로 구입했더랬지요., ㅋ~.
근데 내용이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라서...책장에 고이 모셔뒀습니다.
님의 이 리뷰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별 하나로 가늠할 뿐입니다.
아까비~ㅠ.ㅠ

양철나무꾼 2016-12-15 19:01   좋아요 1 | URL
근데 말입니다, Agalma님~!
1일 1그림은 개점 휴업이란 말씀이십니까?

오늘도 야근이신가요?
저녁 뜨뜻하고 맛난 걸로 챙겨드시고,
제이티비시 뉴스 보면서 트라이 투 해보는건 어떠신지~^^

AgalmA 2016-12-15 19:32   좋아요 0 | URL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읽는 스테디셀러라고 해야 할텐데...뭐랄까. 요즘 일본 사상가의 지식 총서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센티브 먹고 들어가는 것도 없잖아 있다 싶습니다.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한 철학서 문체와 다르다는 게 큰 장점으로 통한 거 같은데, 쉬운 전달력과 내용의 질과 깊이는 다른 차원이죠. 이 책이 깊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공감과 옳음을 동치해 평가하는 감상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저자의 선언에 말려 버렸다고 할 수도 있어요.
주체적으로 읽고 사유하기 그 과정의 중요함을 끌어내려 한 취지는 좋았지만 맥락을 잘 이끌어내지 않고 ‘무지는 나쁘지 않다‘ 식으로 가볍게 툭 던지는 게 책임감 없어보였어요. 에세이로 써서 그런 거 겠지만 <야전과 영원>에 대한 신뢰성을 많이 깎아먹는 경솔함이었습니다. 저자의 성격이 그런 것이도 하겠지만, 그렇게 툭 내지르는 뼈있는 선언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 보편적이면서도 문제적입니다.

AgalmA 2016-12-15 19:16   좋아요 0 | URL
그림은.... 제 게으름을 탓할 밖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이 심해지고 에너지 쓰는 게 너무 괴로워요. 나쁜 생활습관이 너무 몸에 배어서....
1일1그림 노력해 볼께요ㅡ.ㅜ

양철나무꾼 2016-12-16 09:12   좋아요 0 | URL
저랑 별개 다 찌찌뽕이십니다.

님은 아직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실듯 한데~(,.)
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걸 느낌니다, 체력이.
암튼 님의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