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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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역사에서 탐사 영역이 확장될 수 있었던 대표적 도구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꼽는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적 영역을 입자물리학이 다루면서부터 1970년대 이후에는 ‘초대형 입자가속기와 고성능 감지기, 거기서 나온 방대한 데이터(분류가 끝난 것은 ‘표준모형‘)‘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거 같다. 1970년대 이전 ‘안개상자‘, ‘거품상자‘ 등등의 중간 단계도 기억해 둘만 하다. 저자는 갈릴레오가 낙하 실험을 했던 피사의 사탑이 최초의 ˝천연 입자가속기˝라고 경의를 표했다.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은 거의 2000년 동안 물리학의 발전을 막아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예는 수학적 계산이 부족한 철학의 문제점이라고만 볼 수 없다. 자유낙하 문제뿐 아니라 모든 물리학에서 대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 상기해보라. 결국 우리 각자의 시대적 인식적 한계라 봐야 할 텐데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점은 역사를 좌우하는 큰 걸림돌이다.

탈레스(기원전 6세기)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다. 물이 기본 원소가 아니라 산소와 수소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이라는 사실은 화학자 라부아지에에 의해 18세기에서야 증명되었다.
인류 중에는 ‘씨앗 속의 씨앗‘을 궁금해하고 찾는 이들이 있다. 저자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최초의 입자물리학자는 데모크리토스였다. 저자는 ‘만물의 최소단위인 아토모스(원자)‘개념을 제안한 데모크리토스(BC 460~370)에서 출발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중심부에는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대 이후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분류는 쿼크 6개, 렙톤 6개로 구분된다. 여기에 중력을 제외한 세 종류의 힘을 매개하는 매개입자들도 같이 따라다닌다. 매개입자는 유식한 말로 ‘게이지 보손‘이라고 하는데 QED(양자전기역학)의 광자, 약력의 W+, W−, Z0(중성 흐름), 쿼크와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 강력의 글루온을 칭한다. ˝광자는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후 1923년에 아서 콤프턴이 엑스선 산란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 중성 흐름은 197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지만, W 입자와 Z 입자는 1983~1984년에 CERN의 LHC(스위스에 위치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글루온은 1979년에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다. ˝
게다가 쿼크는 세 가지 색도 있고 모든 입자는 각각에 대응하는 반입자 파트너도 갖고 있다. 우리가 꿈꿔온 우아하고 단순한 원리와는 다르게 엄청 복잡해 보인다-_-;
원자가 분해되면서 ‘반지름이 0이고 크기가 없는데 질량을 가지며 전하를 띠면서 자전하는 해괴한 성질의 입자인 전자‘가 나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재밌었지만.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체셔캣(웃는 고양이)‘를 떠올려보자. 고양이는 웃는다. 그런데 몸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새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미소만 남는다. 이제 자전하는 전하 덩어리를 떠올려보자. 덩어리의 몸집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새 덩어리는 사라지고 스핀과 전하, 질량, 그리고 미소만 남는다......" 

 

물질 입자에 매개입자를 추가한 표준모형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알아낸 ‘우주의 격렬하고 꾸준한 운동을 말해주는 비밀‘이다. 이 입자들이 발견되고 증명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장구함이 이 책 전체를 통해 펼쳐지니 자세한 건 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이 책이 어쩌다 700 페이지가 된 게 아니다ㅎ. 2주간 열심히 읽어 왔는데 마무리에 다다르니 저자는 무너지는 소리를 한다. ‘꼭대기쿼크‘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매개변수가 너무 많으며, 중력이 누락되어 표준모형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한다. 1993년 이 책 출간 후 1995년 ‘꼭대기 쿼크‘는 발견되었다. 중력에 양자이론을 적용한 양자중력 이론이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원자보다 작았을 태초의 우주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이론으로는 수학 논리로 중무장된 이론물리학 ‘대통일이론‘, ‘구성모형‘, ‘테크니컬러‘, ‘초중력‘과 ‘초대칭‘, ‘초끈‘, ‘만물의 이론‘ 등이 있다. 많은 이론들이 실험물리학으로 검증되긴 요원해 보이는데, 이론물리학에 호의적이지 않은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이 저 이론대잔치를 질타하는 건 살짝 공감이 되긴 한다.

 


불완전한 표준모형에 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하는 스타로 ˝힉스장(또는 힉스 입자)˝이 등장했다. ˝질량이란 입자의 근본적인 속성이 아니라, 입자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교환하면서 획득한 후천적 성질˝이라는 힉스의 주장에 따르면, 힉스장은 모든 입자가 질량을 갖는 것과 우주의 ‘숨은 대칭‘, ‘자발적 대칭 붕괴‘를 설명할 수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이 ‘신의 입자‘는 2013년 발견되었다. ˝맥스웰 시대의 물리학자들은 빛(전자기파)을 매개하는 매질이 우주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매질을 ˝에테르˝라고 불렀지만, 21세기 우리는 그것을 이제 ˝힉스 입자˝라고 부른다.

드디어 힉스 입자도 발견되었고, 뭔가 더 추가되고 발견되어 1000 페이지 짜리 물리학 역사 책이 또 나와도 이번 공부로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들도 뭔가 쓰고 있겠지.
이 책에서 저자는 에이허브 선장의 집념이 수백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묘사된 허만 멜빌《모비딕》의 내용과 결론이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신의 입자‘를 쫓아 수백 페이지 달려오며 사람들에게 설명할 땐 적절한 비유와 데모크리토스가 등장하는 희곡 형식을 쓴 이 스토리텔링(과학 작가인 공동저자 딕 테레시의 역량으로 짐작)도 내겐 《모비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만 멜빌이 전달하려 했던 것도 ‘신의 입자‘만큼 인간에겐 중요했던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관계를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의 연결‘이라 말했듯이 나도 문학과 과학의 관계가 인간에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라네. 하지만 합리적이면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불합리한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드러내곤 하지. 그러니 무언가를 부수고 싶다면 가면을 부숴 버려야 하네!"
ㅡ에이허브 선장


 

저자가 《모비딕》에서 인용한 저 문장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실체˝는 우주의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암흑물질˝이나 엄청난 에너지를 보유한 ˝힉스입자˝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ps)
1. 힉스입자 발견에 대한 옮긴이의 후기는 있지만 저자의 직접 보론이 없는 관계로 이 책에 별 4개를 주려다가 《모비딕》에 별 5개를 주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이 책에도 별 5개를 준다. 노벨상까지 받았음에도 ˝송로버섯을 찾자마자 주인(이론물리학자)에게 빼앗기는 돼지˝ 처지라 말하는 실험물리학자의 노고와,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숨어 있는 힘을 찾아 치열했던 노력에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인사로.

2. 대척점에서 서로 말하는 듯이 보이던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http://blog.aladin.co.kr/durepos/9203111 와 결론이 같아서 미소지었다.


 

˝이봐요, 내가 당신을 창조했어요. 당신은 내 생각의 산물입니다. 당신의 존재에 이유와 목적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한 장본인은 바로 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설명이 없었다면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무용지물로 남았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ㅡ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신의 입자》, p709

 

 

 

 

*‘먼지‘에 대한 페르미의 영감은 시적 직관에 가까워서 아름다웠다. 시가 아니라 수식으로 채워가는 장면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이 페르미도 수학게임을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유리창에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저 먼지가 제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이 쌓일 수 있을까?" 동료들은 "밥 먹다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의아해했지만, 페르미는 아주 심각했다. 그는 자연의 기본상수에서 시작하여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절연물질을 서로 들러붙게 만드는 유전체의 인력 등을 고려하여 냅킨 위에 수식을 써 내려갔다.(답이 얼마로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맨하튼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 어느 날 로스알라모스(Los Alamos)에서 한 물리학자가 차를 몰다가 코요테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페르미는 "자동차-코요테의 상호작용(접촉사고)은 일종의 충돌 사건이므로, 빈도수와 발생장소를 추적하면 사막에 거주하는 코요테의 개체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실 몇 개의 사례로부터 전체 사건발생횟수를 추적하는 것은 입자물리학자들의 일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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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1 18:28   좋아요 2 | URL
과학 분야 중에서도 물리학은 어렵다고 소문났잖아요ㅎ; 고전물리학은 그나마 나은데 양자역학 나오면 더 ㅎㄷㄷ...ㅎㅎ 마지막 장에서 여기까지 같이 온 독자는 과학교양인 소리 들을 만 하다며 칭찬ㅋ
되도록 수학 공식은 피해서 설명해 주는데도 용어며, 개념 등이 생소하니 찬찬히 이해하며 따라가자니 읽어 나가는 시간이 더디긴 했습니다만 책 속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못해도 반 이상은 이해하게 돼요^^ 양자이론 부분은 한 번 읽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지만^^;
그간 제가 여러번 이 책에 대해 페이퍼도 썼던 게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이기도 하지요ㅎ; 물리학의 중요 내용들, 발견들, 용어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리뷰 하나로는 어림 없을 거 같아 이 리뷰는 대략만 소개했어요^^ 관심 있다면 책을 직접 읽고 소화해야 할 거라 생각해서. 책을 오래 읽다보니 중간중간 인용하려고 했던 내용 상당수는 삼켰습니다ㅋㅎ;;
읽는 사람들이 어려워 할까봐 <모비딕> 같은 문학 요소나 에피소드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이 글도 그리 쉽게 읽히진 않나 보네요^^;;
책을 쓴 저자는 더 어려웠겠죠ㅎ; 그래도 대중서로는 잘 쓴 책이긴 합니다. 과학전문 칼럼니스트이자 과학 작가인 딕 테레시와 같이 쓴 효과가 있었던 듯^^

겨울호랑이 2017-03-20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 어려운 여정 마치신 것을 축하드려요. 천체 물리학도 경제학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주(universe)을 다루는 ‘거시 물리학‘ 과 전자 단위의 세계를 다루는 ‘미시물리학‘으로 나뉘어 분석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이 둘 간의 관계가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micro-cosmos 세계를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7-03-20 19: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번 완독 축하는 정말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ㅎ 서평 써야한다는 목적의식 때문에 초집중했던 터라 빨리 끝을 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ㅎ
뉴턴 때까지도 결정론적 세계관이었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확률해석을 계산에 넣지 못했죠.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들의 이론은 거시 세계의 물리를 설명하는데는 무리가 없으나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차원이 달라지죠. 질량도 거의 없는 것들이 움직이는 데다가 속도도 큰 의미가 없죠. 중력보다 전자기력과 약력과 강력 세 힘이 더 중요하고, 새로운 현상을 보게 만드는 건 고에너지 차원인데 거기서도 기존의 법칙들이 계속 무너집니다. 에너지불변 안 되고요ㅎ 대칭성불변 안 되고요ㅎ
그래서 중력과 양자역학이 서로 만나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양자중력이론이 중요해지는 것^^

겨울호랑이 2017-03-20 16:58   좋아요 1 | URL
^^: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과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의 변곡점(만일 연결되었다면) 또는 둘을 구분하는 단절점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혹 저만 모르고 있나요? ㅋ

AgalmA 2017-03-20 17:16   좋아요 1 | URL
위의 제 댓글에 이미 나와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중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거시세계를 대부분 중력의 힘으로 설명해왔지만 미시세계는 아직까지 중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안 나왔고 전자기력, 약력, 강력 세 힘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확률적 세계죠. 또한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법칙들의 예외현상이 미시세계에는 대단히 많다는 것.
더 자세한 건 이 책 읽으시면 정리하실 수 있으실 듯^^ 이 책 여기저기에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러게 서평단 신청하셨으면 좋았잖아요ㅎㅎ

겨울호랑이 2017-03-20 17:15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더 알아갑니다. 제가 출판사에서 요청하는 글은 잘 못 쓰는 편이라 참여 못했네요. 모르는 것은 「Agalma의 입자」의 저자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ㅋㅋ 감사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AgalmA 2017-03-20 17:1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리뷰 정리 솜씨를 아는데 뭘 그러세요ㅎ 읽고 리뷰 쓰셨음 본인에게도 다른 분들께도 큰 이익이 되었을텐데!
입자는 고사하고 손바닥만한 입지라도 줄어들지 않게 저도 공부 열심히 해야겠어요ㅎㅎ
당분간은 흥미를 끄는 서평모집이 또 안 나오길 바랍니다; 이젠 미뤄뒀던 제 지극히 주관적인 관심분야 책을 좀 읽어야 할 듯ㅎㅎ;

cyrus 2017-03-20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의 입자> 구판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구판과 최근에 나온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봤어요. 구판이 오래된 책이라서 외국어 표기가 어색했어요. 좋은 출판사, 좋은 번역자를 만났으면 <신의 입자>가 일찍 나왔을 겁니다.

AgalmA 2017-03-20 16:53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안 나왔을 리가 없는데 나오긴 나왔었군요^^ 이 책 보고 나니 힉스입자와 암흑물질 최신판을 이제 봐야 할 때 같습니다^^
 
강화도의 기억을 걷다 - 옛사람의 손길과 우리 발길의 만남
최보길 지음 / 살림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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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지세(地勢), 분위기, 곳곳에 퍼져 있는 유적들을 볼 때 경주와 매우 흡사하다. 강화에는 청동기시대부터 한국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와 유적도 많아 경주보다 한국 역사를 더 많이 보여주는 장소라 할 수 있다. 헌데 경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씁쓸한 점이 있었다. 너무 많기 때문일까. 방치되어 있는 유적들이 꽤 많다는 생각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인 봉은사의 것으로 알려진 ‘하점면 5층 석탑(보물 10호)‘, 신라의 미소나 백제의 미소처럼 고려 혹은 강화의 미소를 보여준다고 할 ‘하점면 석조여래입상(보물 615호)‘이 시골 산속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이 책은 강화와 연결된 한국의 여러 역사와 문화,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어 유익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밑줄긋기로 소개한다/

고려산이라는 이름은 몽골의 침략으로 도읍을 강화로 옮긴 고려 정부가 강화도를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같도록 꾸미는 과정에서, 개성에 있었던 고려산과 같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련산은 장수왕 4년 천축조사(인도에서 온 고승)가 고려산 정상에서 날려 보낸 청, 백, 황, 적, 흑색의 오색 빛깔 연꽃이 내려앉은 곳마다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현재에도 흑색 연꽃이 떨어진 흑련사를 제외하고는 청련사, 백련사, 황련사, 적력사(적석사)는 부처님을 향한 수행과 기도의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청, 백, 황, 적, 흑 다섯 색깔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색으로 오방색이라고 합니다. 황색은 오행 가운데 흙으로 중심부의 색이고 오방색 중에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겨집니다. 황제만이 황색 옷을 입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요. 청색은 나무에 해당하며 방위로는 동쪽을 의미하고, 창조, 생명, 그리고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백색은 쇠에 해당하고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고, 적색은 불에 상응하고 남쪽과 정열과 열정을 상징합니다, 끝으로 흑색은 오행 가운데 물을 나타내며 북쪽과 인간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이렇듯 고구려 장수왕 때 인도의 고승을 통해 뿌려진 오방색의 소망은 그 떨어진 자리마다 지어진 절을 통해 세상으로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다섯 색깔의 사찰 중 청련, 황련, 적련(적석), 백련사는 있지만 ‘인간의 지혜‘를 뜻하는 흑색 연꽃만이 피고 있지 않습니다.
ㅡ‘강화에 불교가 들어오다‘ 중

오늘날 우리는 무덤의 격을 능, 원, 묘, 총, 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능이라 함은 왕과 왕비, 원은 왕세자의 왕세자빈 또는 왕세손과 왕세손비, 묘는 왕위와 관계없는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을 총칭하는 명칭입니다. 또 총은 그 규모로 보아 당시 권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그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 붙여진 이름이고, 분은 발굴이 되지 않아 무덤으로만 추정되는 무덤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인 동구릉과 비교하면 강화의 고려왕릉은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 강화에 있는 고려왕릉의 초라함은 무신정권기 고려 왕의 권력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강화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모색‘이 아니라 어려움을 잠시 ‘모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강화천도‘는 고종이 아니라 최충헌에 이어 집권한 최우의 생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강화천도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대몽항전을 위한 돌파구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것은 최씨 무신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강화에 도착한 최우는 천도 이전 삶과 다를 바 없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단 한 번도 강화 밖으로 나아가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실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고려의 백성들은 강화도에 안전하게 피난 온 조정으로부터 "산과 섬으로 들어가라"라는 수동적 방어책만 들었을 뿐입니다.
ㅡ‘남한의 고려왕릉‘ 중

선원사는 최고 권력자인 최우가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지은 사찰입니다. 백성들을 육지에 남겨놓고 왕과 지배층만이 강화로 옮겨 온 사실과 당시 육지에서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면, 부처님의 힘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절을 지었다는 것이 감동적이지 않고 씁쓸한 웃음만 짓게 합니다.

선원사가 유명해진 것은 송광사와 더불어 고려 후기 2대 승보사철이었던 점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보관했던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대장경이란 경, 율, 논 삼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이란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한 규범을 말하고, 논이란 ‘경‘과 ‘율‘에 스님이 해석한 설명을 단 것입니다. 불교 경전을 인쇄본으로 처음 만든 것은 북송 때 제작한 북송관판대장경인데, 이는 여진족이 세운 금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현종(1011) 때 처음으로 대장경을 조판(초조대장경)하였고, 이후 내용을 더 보충해서 속장경을 만들었습니다. 속장경은 중국, 거란, 일본의 경전을 수집하고 조사해서 동아시아 불교의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했으나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이후 선원사에서 다시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없어진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을 다시 만들었다고 해서 재조대장경, 고려시대 완성된 대장경이기에 고려대장경, 그 판각본이 8만 1, 258매라는 데서 비롯되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교에서 인간의 수많은 번뇌를 ‘팔만사천법문‘이라고 부르듯이 ‘팔만 혹은 팔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많다‘라는 의미로 여기기도 합니다.

한편 팔만대장경의 제작 전통이 강화도에 고스란히 남아 ‘맹인들의 훈민정음‘이라 불리는 훈맹정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강화도의 부속 섬인 교동에 살았던 박두성이 만든 한글 점자체계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강화에서는 팔만대장경뿐만 아니라 <상정고금예문>도 인쇄되었다. <상정고금예문>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 편찬 기록이 전해온다. <상정고금예문>은 예부터 고려시대까지 전해오는 예절에 관한 글들을 모아 정리해놓은 책이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ㅡ‘인쇄 문화가 꽃피다: 선원사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훈맹정음‘ 중

강화도에는 진강산, 대모산, 형구산, 덕산 등에 8개의 봉수대가 있었습니다. 그중 봉천산 위의 봉천대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강화천도기에 개성이 내려다보이는 봉천대에서 행해진 국가 주도의 제사는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이자 민중을 버리고 강화로 천도한 지배층의 안녕을 꿈꾸는 제사였습니다. 강화에 단군과 연개소문 등 민족의 역사성과 자주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에 와서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통신수단인 봉수대로 그 쓰임이 바뀌었습니다.
ㅡ‘봉천산 주변의 고려 불교 유적: 강화의 얼굴 하점면 석조여래입상과 5층석탑 그리고 봉천대‘ 중

보통 조선시대의 형벌은 태, 장, 도, 유, 사의 다섯 가지로 구분합니다. 쉽게 풀어보면 태형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작은 회초리로 때리는 것이고, 장형은 태형보다 무거워 큰 회초리로 60대에서 100대까지 때리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도형이나 유형에 더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도형은 일종의 징역형으로 일정 기간(보통 1년에서 3년) 동안 관아에 구금하고 일과 시간 중에는 각종 노역에 종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유형은 거주 지역을 강제로 옮기는 것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특정한 지역에 유리시켰는데, 사형을 면한 정치범에게 죄를 감면하여 부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형은 조선 시대 형벌 중 가장 무거운 형벌로서 일반적으로 교형과 참형으로 나뉩니다. 교형은 신체를 온전한 상태로 두고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며, 참형은 신체에서 머리를 잘라 죽이는 것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역모 등 정치범에게 많이 가해졌겠지요.
조선의 다섯 가지 형벌 가운데 교동과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당연 유형입니다. 교동이 여러 인물들의 유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죠. 교동에 유배 온 인물들은 주로 왕족으로 왕위계승에 실패하거나, 반정으로 왕위를 내려놓은 왕족들이었습니다. 강화가 주로 유학의 주류에서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비주류가 된 이들의 고민이 심어져 있는 곳이라면, 교동은 왕족의 유배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비들이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귀양살이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훗날 있을지 모르는 반정에 대비하기 위해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섬을 찾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밖에도 유배지로서 교동을 찾은 인물로는 고려의 희종이 있었고, 조선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로 계유정난에 의해 강화로 유배된 후 교동에서 죽은 안평대군 그리고 임해군과 광해군이 있습니다. 임해군은 광해군의 형으로 광해군에 의해 교동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임해군을 교동으로 유배 보낸 광해군 자신도 인조반정 후 이곳 교동으로 유배를 왔습니다. 이렇게 연결시켜보면 역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광해군의 동생뻘인 능창대군도 광해군에 의해 이곳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광해군의 형제들이 죽은 공간은 교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산군은 이곳 교동에 유배된 지 2달 만에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유래는 연산군 때로 올라간다. 연산군은 전국에 채홍사, 채청사를 파견하여 각지의 기생들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기생들 중 궁중에 들어간 기생을 흥청이라 불렀다. 연산군은 흥청이들과 놀면서 원각사를 폐지하고 기생 양성소로 만들었고, 성균관은 유생들을 쫓아내고 유흥장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임금이 흥청과 놀아나면서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빗대어 생긴 말이다. 오늘날 ‘흥청망청‘은 사전적 의미로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며 노는 것, 혹은 계획 없이 돈이나 재물을 마구 쓰는 것을 뜻한다.
ㅡ‘성리학의 전래와 성리학적 통치 질서: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 중

정제두 선생 묘에서 시작해 영재 이건창 선생의 묘소까지를 걷다 보면 역사 시간에 배운 용어가 떠오릅니다. 바로 ‘양명학‘입니다. ‘해가 지는 마을길‘은 초기 양명학(조선)에서부터 후기 양명학(대한제국)까지의 역사가 담긴 길입니다.

양명학은 남송시대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의 관념성 문제에 대응하여 새로운 유학의 한 갈래입니다. 명나라 철학자인 왕수인(호 양명)이 만들었습니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조선의 사상계를 지배하던 학문으로 사물이 지닌 특성을 인정하는 성학(性學)이었습니다. 성리학에서 자연과 사회는 도덕적 본성을 갖는 것이고, 이 안에 속한 사물의 개별성과 등급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리학은 조선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작용하는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자리 잡아 인간 세계의 위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양명학은 사물이 지닌 특성보다 마음을 통한 자각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통한 자각은 세상을 움직이는 ‘지행합일‘과 ‘양지‘에 이르게 하는 마음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양명학은 ‘결과‘보다도 마음속의 ‘동기‘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미 마음속에 있는 이치가 ‘진리‘라고 생각했기에 진리의 완성은 실천과도 통한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앎‘을 주희는 불완전한 것으로, 왕양명은 완전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주희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함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왕양명은 거짓된 앎을 걷어내기 위한 성찰을 중요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민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에 관한 ‘친민‘과 ‘신민‘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희는 본래의 ‘친민‘을 ‘신민‘ 으로 달리 해석해서 민중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가르침은 유학에 익숙한 사대부의 역할로 생각했습니다. 사대부가 민중을 가르쳐야 하니 당연히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사대부의 특권을 인정했습니다. 반면 왕양명은 말 그대로 ‘친민‘에 집중했습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수양하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좋은 앎‘ 곧 ‘양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깨달은 사람, 곧 사대부가 수양을 통해 ‘양지‘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명학을 수용한 강화학파의 생각이 지금 더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성리학의 한계를 넘어선 시각 때문입니다.

입신양명을 위한 유학이 아닌 진리를 찾기 위한 마음속 동기가 강화도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각으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양명학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실학에도 영향을 주었지요. 물론 양명학파는 조선 사회의 비주류로 살았으나 이미 기득권을 가진 지배층이었습니다. 백성의 고단한 삶을 그토록 애닯게 여겨 많은 시로 풀어낸 이건창도 갑오농민운동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어놓았다는 것과 ‘신민‘이 아닌 ‘친민‘으로 보고자 했음을 들어 강화학파를 조선의 진보 세력으로 보는 곳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습니다.
ㅡ‘성리학을 넘어 양명학으로: 강화학파(정제두 묘와 이건창 생가)‘ 중

중국에서 관우를 모시는 신앙은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했던 명군(明軍)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무성인 관우의 신앙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명나라는 그들의 신앙을 조선에도 강요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동묘(동관묘)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왜 관우 신앙을 조선에 강요 했을까요? 아마도 여진의 성장 속에 명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를 위하여 명의 원병 참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정치적 이유도 있었던 겁니다. 명군이 물러가고 조선의 관우 신앙은 정치적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일상의 신앙으로 변화합니다. 조선의 관우 신앙은 잡귀를 물리치고, 사악한 기운을 극복하려는 성격을 띠게 되었죠.
강화도에는 관제묘가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강화 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에서 한옥마을을 지나는 곳에 북관제묘와 동관제묘가 있습니다. 두 관제묘는 모두 조선 고종 때 세워졌는데, 동관제묘가 1885년(고종 22년), 1892년(고종 29년)에 세워진 북관제묘보다 조금 빠릅니다. 동관제묘는 마여인이 북관제묘는 강화산성 수문장 윤의보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관제묘 사당 내부는 일반적으로 관우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들인 관평과 심복 장수였던 주창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관우를 모신 사당답게 관우를 죽인 여몽의 성과 같은 "여(呂)씨가 들어오면 아무 이유 없이 죽는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오늘날 관우를 모시는 신앙은 원조 격인 중국과 역사적 연관성을 가진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신격화된 한국과 일본에 들어오는 역사적 배경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요코하마를 비롯해 주로 화교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을 떠나 외지 생활을 하는 화교들이게는 그들의 재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필요했던 까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남관왕묘가 먼저 세워졌으며, 명나라 장수의 부상에 따른 요양지에 세웠던 사당이 시초이다. 또한 동묘(1596)는 명나라 황제의 건립 요구에 따라 세워졌는데,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현재 지히철 6호선 동묘역이 있다. 아울러 지방에도 세워졌는데 주로 명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에 있다.
ㅡ‘임진왜란이 남긴 관우 신앙:북관제묘‘ 중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왕의 강화도 입성 여부가 전쟁의 양상을 다르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병자호란의 승패는 전투력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몽골과 후금의 전투력의 한계를 청이 수병과 홍이포로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민중 봉기나 외세와의 전쟁 때 왕이 강화로 오지 않았습니다. 무기와 전술 등 전투력이 발전하여 강화는 더 이상 요새 기능을 못했지요. 운요호 가건,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에서 강화의 방어선이 뚫려서 외세의 상륙을 허용한 것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ㅡ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강화도:충렬사와 안동 김씨‘ 중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는 주전파와 주화파가 각각 자신의 대외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였지요. 결국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의 논리가 채택되어 청과의 강화가 송파(잠실)에서 체결되었지만, 주전파였던 김상헌의 동생 김상용은 강화성 남문에서 폭약을 장치하고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주전의 논리를 강조한 주전파에게는 성리학적 명분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폭사한 김상용은 이후 불벌의 상황과 맞물려 당대의 충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훗날 조선 정부에서는 김상용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했지만 자폭해서 여기저기로 흩어진 시신을 찾기란 어려웠고, 그의 신발이 발견된 곳에 충렬사를 세워 그의 정신을 기리게 했다고 합니다.
국어 시간에 서포 김만중이 유복자 곧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라고 배웠는데,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도 이때 김상용을 따라 자결했고, 현재 충렬사에 그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때문에 강화성 남문을 이야기할 때면 병자호란, 김상용, 김만중의 이야기가 부록으로 따라다니지요.

현재 강화도 면적의 3분의 1은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땅입니다. 강화의 간척사업은 고려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으니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겠지요. 당시 강화로 건너온 사람들의 숫자가 30만이었다고 합니다. 원에 대항하는 시기였으므로 육지와의 물자 교류가 쉽지 않았겠죠. 이런 이유로 강화도에서 왕실과 지배층의 안전을 보장할 자립적 경제구조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쌀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해야 했지요. 주로 강화도 북쪽에 간척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려를 시작으로 조선 숙종 때까지 강화에는 간척을 위한 대공사가 이루어집니다.
선두포 축언시말비는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 민진원의 지휘아래 이루어진 간척사업의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ㅡ‘조선의 건축과 간척:강화성과 선두포 축언시말비‘ 중

철종은 1863년 33살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죽었다. 그는 부인 철인왕후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의 예릉에 묻혔다. 조선의 왕릉은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당연히 규모와 예법에 맞게 장례를 치르고 왕릉이 조성된다. 예릉은 황제의 격에 따라 조성된 고동(홍릉), 순종(유릉)과 비교해서 조선의 왕릉 형식으로 조성된 마지막 왕릉이다. 따라서 판위, 금천교, 석계, 비각, 각종 석상 등 왕릉으로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석상들만 보아도 규모 면에서 웅장함을 보이고 있다. 재위 기간 동안 세도가문의 위세에 밀렸던 철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의외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예릉이 조성되기 전 이곳 주변에는 중종비인 장경왕후의 희릉과 인종과 인종비 인성왕후의 효릉이 있었고, 또 중종의 왕릉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종의 왕릉인 정릉은 서울로 옮기고 그때 사용하던 석상들은 한 번 사용한 석상들은 다시 쓰지 않는다는 예법에 따라 그 자리에 모두 묻어버렸다. 철종이 죽고 왕릉을 조성하던 때는 알려진 바와 같이 세도정치가 한창이었다. 몇몇 가문의 권력과 부는 크게 성장했지만 왕실의 재산인 내탕금은 비어 있어 철종 왕릉을 조성하는 게 어려웠다. 이때 중종 왕릉에 쓰던 석상들이 땅속에서 발견되자 왕실에서는 그것을 다시 쓰도록 하였다. 지금 보이는 예릉의 석상은 정릉(중종릉)이 옮겨가기 전 사용하던 석상들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 철종의 아픔이 느껴진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예릉, 희릉, 효릉을 통틀어 서삼릉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조선의 왕릉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서삼릉 주변에는 농협대학이 운영하는 젖소연구소와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경주마 목장, 경마교육원이 들어서 있다. 주변에는 골프장도 여러 곳 있다. 원래 서삼릉의 영역이었으나 어느새 말과 소에게 넘어간 것이다. 말과 소가 함께 있는 왕릉이라니 조선의 장례법을 생각하면 왠지 어색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를 억압하려 했던 총독부의 음모인가 생각했더니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의 일이라 한다
ㅡ‘세도정치와 강화도령 철종:용흥궁과 철종 외가‘ 중

운요호는 일본 규슈 섬의 나가사키에서 출항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 역사에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문화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해왔지요. 지금도 나가사키에는 데지마라는 작은 인공섬이 있는데, 일본이 쇄국정책을 취할 때 이곳을 통해 네덜란드와 중국과의 교류만은 허용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난학(네덜란드로부터 받아들인 서양 문물)이 모두 이곳을 통해 전래되었습니다. 나가사키와 인천 그리고 데지마와 강화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서양과 만나는 곳이 되었다는 점, 크리스트교의 포교지이자 순교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사의 측면에서 나가사키와 강화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은 분명 나가사키를 출발해 강화에 도착한 운요호일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이 시작한 침략사건이 끝날 무렵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생각하면, 조선 침략의 첫발과 마지막 발걸음이 나가사키에서 비롯되었지요. 강화와 나가사키는 그렇게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ㅡ‘염하를 따라 걷는 외세 침략과 저항의 역사: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연미정‘ 중

강화도에서 실제로 경험한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은 조선의 해군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근대식 군사력 확충과 특히 해군력에 대한 관심은 강화도에 해군통제영학당을 설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조선 정부는 청으로부터 1,000원의 차관을 받아 통제영학당을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근대식 해군 장교 양성의 첫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1893년 10월에 개교한 통제영학당은 이듬해인 1894년 11월 폐교되었습니다. 통제영학당 폐교의 원인은 대외적으로는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을 제치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했지요.
ㅡ‘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통제영학당지‘ 중

강화에는 다양한 종교 관련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381년에 세워진 전등사와 팔만대장경에 관련된 선원사지 등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개신교 중 감리교 초기 선교에 얽힌 사연 때문에 ‘어머니 교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교산교회, 그리고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단군성지인 참성단과 이를 중심에 두었던 대종교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병인양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순교를 통해 다시 신앙의 불씨를 살려낸 천주교의 갑곶성지, 조선의 해군력 강화 방안으로 설치된 통제영학당의 교관이었던 영국인과 관련된 성공회 이야기도 강화가 다양한 종교의 성지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성공회의 강화 포교와 확산에는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이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에 비해서 영국에 대한 강화 사람들의 반감이 적었다는 점과 앞서 말한 통제영학당에 파견된 교관들이 영국인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성공회였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ㅡ‘서양 종교가 강화에 들어오다: 1. 성공회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 중

강화의 3.1 운동은 서울에 간 유학생들의 신속한 정보 전달과 강화 감리교의 조직망이 연결되어 일어났습니다.
강화읍의 만세 시위는 각 면단위 장터를 중심으로 퍼져 한달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도시가 아닌 강화라는 시골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만세 시위가 일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강화가 서울과 가까워 3.1만세운동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고, 두 번째는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등 외세, 특히 일제에 대한 역사 경험으로 저항의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고, 네 번째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화에 강화의 운동을 진압하러 출동한 일본한 일본군은 다음 날에서야 강화에 들어왔습니다.
ㅡ‘식민지배에 저항하다: 강화 3.1운동 기념비‘ 중

강화에는 근대 서양 종교의 포교 과정을 알 수 있는 성공회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 감리교 교산교회와 서도 중앙교회, 근대 산업의 발달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조양방직 공장과 사무동(1930년대 만들어진 국내 최초 방직공장) , 1960년대 이후 종교계(가톨릭)의 사회 참여와 노동운동 역사가 담긴 심도직물 공장터와 함께 심도직물 상징탑(굴뚝)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1890년대 간장 공장으로 세워진 이후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으로 거듭나 항아리를 이용해 발효하던 전통 방식의 막걸리 제조 과정을 알려주는 강화양조장 등이 있지요. 최근에는 인천시와 강화군이 이러한 근대건축문화유산을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존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강화양조장의 경우 소유자가 화재 위협을 이유로 철거해버림으로써 전통적인 막걸리 주조 시설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공공 기관의 보존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강화의 근대 문화유산 답사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ㅡ‘강화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서:1928년 주택, 조양방직 공장과 사무동, 심도직물‘ 중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 망향단에는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흐릅니다.....<그리운 금강산>은 왜 강화에서 구슬프게 울리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곳에 노래비가 있는 까닭은 작사가 한상옥 님과 작곡가 최영섭 님의 고향이 강화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북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부르는 가사는 원래 가사가 아닙니다. 이 노래는 1961년에 작사 작곡되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가사는 1972년에 변경된 가사입니다.......‘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던 해입니다. - 물론 7.4 남북 공동성명이 남과 북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급조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통일의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같은 해에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평양에 간 남측 예술단이 공연 때 부르기로 한 노래였습니다. 원래의 가사로 부르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수정하여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ㅡ‘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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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0 11:12   좋아요 1 | URL
책만 읽다 온 기분입니다-_-; 낮에 잠깐 움직이고 밤에서 해뜰 때까지는 내내 책 보고ㅎ
그래도 타지에 가니 좋긴 좋더만요. 날 풀리면 더 움직여 봐야죠.

바쁘시더라도 님도 많이 움직이시길^^

2017-03-20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0 19:23   좋아요 1 | URL
아니요. 일 거부하고 놀러갔다가 책만 읽고 온 거ㅎㅎ
강화 나들이는 정말 쬐끔 밖에 못하고 책으로 더 많이 봄ㅋㅋ

2017-03-2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3-16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색이 아니라 모면이라는 의미가 강화의 역사인 문구가 눈에 띄네요....

AgalmA 2017-03-20 11:14   좋아요 1 | URL
한국사는 보고 있음 속상하고 화나서 좀 피한 감도 있는데, 이렇게 재밌고 유용한 책을 통하니 배우는 게 많더군요. 한국 근현대사 공부 좀 많이 해야겠다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3-16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조선 참성단 때부터 개화기 운양호 사건까지 강화도는 우리 나라 역사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섬인 것 같습니다... 역사적 의미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단된 현실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7-03-20 11:18   좋아요 1 | URL
지역주의 문제도 있지 않나 싶어요. 관광권으로 개발할 게 많은 거 같은데 강화가 그리 낙후되어 있는 걸 보면...
문제가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죠...
이번주 <그것이 알고 싶다> 아이들 실습 상황 보고 정말 화가 너무 나더군요. 노동 문제가 정말 썩을대로 썩은 한국 어찌 해야 하는지...
 

1. 뉴턴 제2법칙 F=ma(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를 들여다보다가,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인 ‘관성(inertia)‘에서 물체 자리에 인간을 대입해 보면 스피노자가 말한 ‘자기 보존 능력-코나투스(conatus)‘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력질량 M과 관성질량 m이 1퍼센트 오차 이내로 같다는 것은 나와 타인/외부가 개별성에서 같음을 시사한다.
˝M은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행사하는 중력의 세기를 좌우하는 양˝이고, ˝m은 물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힘에 저항하는 정도인 ‘관성‘을 가늠하는 양˝이다.


2.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중력인 경우는 또 어떤가? 물체의 운동은 수평방향으로는 똑같은 중력을 받기 때문에 등속운동을 한다. 그러나 수직방향으로는 힘이 달라지면서 공은 기하학적인 포물선을 그린다. 이것은 통시적인 방향성을 지닌 인간의 삶과 역사가 굴곡이 많을 수밖에 없는 논리적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량이 큰 이를테면 권력이 컸던 박근혜 씨의 추락은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성립된다.
˝공의 궤적은 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의 빠르기와 진행방향, 즉 초기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서 출발하는 중요한 초기 조건이었다. 뉴턴은 초기 조건을 모두 알고 있고 작용하는 힘도 알고 있다면, 이 운동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탄핵까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그 초기 조건과 힘들이 드러났을 때 가능했다. 박근혜 씨는 그렇고, 우리에게는 다른 초기조건이 있었다.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 진상 규명 운동,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 발견 그것은 아주 우연적 사건이었다. 다시 한 번 토마스 쿤의 이 말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은유를 갖기 전에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3. 뉴턴의 세 번째 법칙 ˝작용(action)과 반작용(reaction)은 방향이 반대면서 크기가 같다.˝는 박근혜 씨 일파 권력과 국민과의 탄핵 힘겨루기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질량을 가지고 존재하는 한 F(힘)은 작용할 것이고, 우리는 작용과 반작용 씨름을 계속할 것이다. 박근혜 씨의 ‘잘못 중력‘(작용)이 우리를 이토록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박근혜 씨도 우리의 ‘탄핵 중력‘(반작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 관계를 인력과 척력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전기력 설명에 해당하고, 여기서는 뉴턴의 중력 법칙에 따라 ‘잘못 중력‘으로 표현하는 게 더 재밌어서 저렇게 말했다.


4. 힘에는 방향이 있고, 지구의 중력은 항상 아래쪽을 향한다. 권력은 사람을 잡아당기고 누르는 중력 속성과 닮았다. 그러나 더 강한 힘이 있다. 뉴턴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힘 중 ‘전기력‘이 있다. 물체뿐 아니라 바람, 물 등 많은 것들의 밀고 당기는 힘이 모두 전자기력이라는 걸 뉴턴은 몰랐다. 전기력은 ‘위‘로 향하는 모든 힘의 원천이다. ˝원자를 단단하게 결합시키고 물체의 견고함을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것은 관성처럼 ‘나‘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부는 대부분 텅빈 물질˝이 전기력으로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나이면서 나를 모르는 ‘자아‘ 상태와 매우 흡사하다.
인간이 형성하는 앎과 관습과 시스템과 체계들이 우리를 이 땅에 끌어매는 중력인 것처럼.
즉 우리의 상부는 자아라는 전기력이 잡아당기고 우리의 하부는 인간의 생활기반이라는 중력이 잡아당기고 있는 형국.
전기력이 중력보다 10의 41배쯤 강하다고 하니 우리가 자아에 강력하게 이끌리는 것도 설명됨직하다. 그러나 지구에 사는 한 우리는 인간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일전에 겨울호랑이님이 재미난 질문을 하셨다. ‘빛의 속도가 더 빠를까, 생각의 속도가 더 빠를까‘였다. 그때 나는 처음에는 빛의 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갈릴레오의 증명에 따라 같은 조건에서는 모든 물질의 속도는 같을 것이기에 생각과 빛이 같은 조건이라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늘 또 <신의 입자>를 읽다가 전자기파의 속도를 알아낸 맥스웰의 파동방정식 설명을 읽으며 그 문제에 해답을 발견했다.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정확하게 같다는 것은 이들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이란 대목에서 우리 신경세포가 전기적인 방법으로 신호를 전달한다는 걸 생각할 때 ‘빛과 생각‘은 성질상 속도가 같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생각의 속도는 엄청나다는-ㄷ-)˝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속도를 지닌 생각을 지니고도 나는 왜 재치 발랄 유머가 안 나오는가ㅜㅜ무슨 회로가 잘못된 거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양자이론으로 넘어가면 에너지가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즉 빛과 생각이 어떤 파장을 지니는가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난 이것을 실험하거나 증명할 능력이 없다; 무한한 공부 굴레만...


* 이렇게 중간중간에 생각이 많아서야 이 책 언제 다 읽지ㅜㅜ하지만 재밌다!

** 저 웬만하면 지적 안 하는데, 이렇게 좋은 책에 오타들 너무 많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급했단 말인가...
˝나무(☞너무) 많다˝는 애교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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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14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의 리뷰를 읽으니,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증명을 통해 Natura Naturans, Natura Naturanta를 도출한 스피노자가 생각나네요.(처음에 스피노자를 언급하셔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자연관계임을 다시 생각나게 하네요. Agalma님 덕분에<신의 입자>가 정치물리학 책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ㅋ 좋은 리뷰에 제 이름을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뒤에 저도 생각을 했는데, ‘생각의 속도‘는 뉴런(neuron)간 연결 속도 뿐 아니라 생각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그냥 근거없는공상이라 생각되지만요.

AgalmA 2017-03-14 18:03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원리와 법칙을 찾는 게 괜한 일은 아닌 거겠죠. 연결해 보면 꽤 신빙성이 있으니 다들 또 주장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조율이 혜안이 되는지 독단이 되는지가 문제겠죠^^
말씀하신 ‘생각의 깊이‘ 부분이 제가 저기서 말한 파장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진다는 것과 관련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현, 지속 등등에 관련될 테니까요. 양자 이론 더 깊이 보면 생각할 거리가 또 나올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3-14 18:30   좋아요 1 | URL
저와 아인슈타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하나씩 있더군요. 공통점은 둘 다 ‘사고실험‘을 한다는 것, 차이점은(사실 이것이 결정적이겠지만) ‘사고의 깊이‘라는.. ㅋ Agalma님 견해에 동의합니다.. 가설은 세웠으니 이제부터 증거를 찾아야겠군요^^:

AgalmA 2017-03-14 18:42   좋아요 1 | URL
저도 사고실험형 인간ㅎ 그런 사람들 보면 친밀감이 빨리 생기는데 그래서 겨울호랑이 님과 빨리 친구가 됐나봄^^
그런데 제 문제는 증명하는 과정에 봉착하면 눈물이ㅜㅜ...내게 이과적 재능이 많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수학을 전혀 몰랐지만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 먼로보다 전기가 많다는 인기만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제 희망일 수는 없으니...

겨울호랑이 2017-03-14 18:43   좋아요 1 | URL
^^: 풀기 어려운 과제는 후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방법도 있지요 ㅋ 우리 모두 자신의 강점에 주목하자구요^^: 저도 Agalma님 덕분에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단발머리 2017-03-14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씨의 ‘잘못 중력‘(작용)이 우리를 이토록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박근혜씨도 우리의 ‘탄핵 중력‘(반작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에 무릎을 탁!! 칩니다. ㅎㅎㅎㅎㅎ
그러니까 대충 대충 나쁜짓도 대충했어야 걸리지 않을텐데... 이건 뭐, 전방위적으로 적극적으로 마구잡이로 국정을 농단, 아니죠. 최순실의 국정운영이 이루어 졌으니까요. 참... 뉴턴의 3법칙이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게 참... 씁쓸하네요.
그리고... 웃기기도 하구요^^

AgalmA 2017-03-14 18:06   좋아요 0 | URL
박근혜 씨는 요즘 이야기의 화수분 아닙니까ㅎ; 걸어다니는 tv랄까. tv 잘 안 보는데 보는 게 거의 뉴스나 시사라 매번 박근혜만 등장해서 짜증요!

cyrus 2017-03-14 14: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빛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라서 생각의 속도가 빠를 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게 편해서 좋아요. 하지만 저는 지식을 빨리 찾는 과정을 좋게 보지 않아요. 지식을 빨리 찾으려고 하면, 그 지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 검증할 수 있는 과정을 지나쳐버립니다.

AgalmA 2017-03-14 18:19   좋아요 2 | URL
빛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에 대해선 저는 이변이 없는 한 위의 결론으로 계속 갈 거 같습니다.
자연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게 아니듯이 인간의 많은 요소들도 꼭 자신을 위해 있지도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내용을 보여주는 진화심리학이나 생물학 등등이 재밌기도 하고요.
지식을 빨리 찾으려는 성격은 ˝직관˝처럼 인간 본능이기도 하며 때론 유레카를 낳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시간이 늘 부족하죠^^;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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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초반부에서 토마스는 ‘테레사와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를 고민한다. 12세기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다면 20세기 토마스는 같이 사느냐 혼자 사느냐 문제로 씨름 중이다. 그는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 하는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인생이란 완성작일 수 없고 무용한 초벌 그림이라고 한탄한다. 독일 속담을 떠올리며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고,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말한다.

내가 이 대목을 떠올린 것은 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서 ˝단 하나의 유일한 대상만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같다˝, ˝완전히 홀로 남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유사한 인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테레사가 대상으로 나타남으로 인해 테레사가 있는 삶, 혼자 사는 삶, 이 두 가지를 비교하는 사유라는 세 개의 의미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번 생을 처음 그리는 초심자 토마스는 소설 속에서 무수한 대상(여성), 의미장을 찾아다녔고 겪었다. 마치 한 번만 사는 허무를 그렇게라도 만회하려는 사람처럼. 우리도 공감하다시피 대개 인간이 이렇다.
(*의미장: 어떤 것, 특정한 대상이 특정한 양식으로 나타나는 영역)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마스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저 생각은 한 번 뿐인 세계, 통합할 수 없는 세계, <하나의 전체로서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방 자치, 예술사, 물리학, 거실 등의 무수한 대상영역**들이 의미장 속에 무한히 맞물려 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다루지 못하는 혼란 속에서 전전긍긍한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는 사실 너무 의미가 많아 방향을 잃은 상태와 같다. 우리는 이런 복잡함을 단순화하고 싶어 했고, 이는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도 맥이 닿는다.
(**대상영역: 특정한 종류의 대상들을 포함하는 영역. 이 안에서 대상들은 서로 이어주는 공통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자연과학(물리학 기타 등등)도 대상영역 중 하나일 뿐이라 논박했다. 마침 같이 읽고 있는 《신의 입자》도 대단히 공격하고 있다. 뜻밖에 '신의 입자' 대항마를 만나다^ㄷ^);; 궁극의 입자를 발견하더라도 지금의 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발견은 아쉽게도 협소한 결과 발표라 하겠다. 다음 표현을 보자.

˝퍼트넘이 크립키의 논증에 덧붙였듯, 나는 나의 입자와 동일한 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어야 한다. 물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주에 입자가 분산되어 있을지라도!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입자는 내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다른 구성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우리는 우리 몸과 같은 게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크립키와 퍼트넘의 논증은 다만 우리가 입자와 논리적으로 동일한 게 아니며, 바로 그래서 존재론적으로 우주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한마디로 물질적 일원론은 틀렸다. 무수히 많은 대상(예를 들어 인문로서의 우리)이 존재하며, 이 대상을 우리는 엄밀하게 지시할 수 있고, 그 논리적 동일성은 물질적인 성분과 철저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 틀린 것이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그간의 철학, 자연과학 둘 다 전체를 굽어볼 전망이 불가능하다는 걸 간과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이념(헤겔)은 그 자체 안에서 나타날 수 없다. 절대이념이나 세계가 존재하려면 그 상위의 포괄이 있어야 한다. 이는 ‘무한 퇴행‘이나 ‘프랙털‘(자기 자신의 무수한 많은 복제로 이루어지는 기하학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나타날 의미장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속성이든 모두 가지고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에 맞게 해석한 세계만 알 뿐이다. 지금까지 모든 세계관은 틀렸다. ˝모든 세계관은 있지도 않은 것의 그림˝이었다. 저 위 토마스의 세계관에도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세계관이란 본질적으로 세계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에 가둔 세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자 전체를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인간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강요하는 게 곧 세계관이다. ˝
하이데거 <세계관의 시대> 논문에서


하이데거의 저 표현도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가둔 어긋난 것이라고 말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논점은 이것이다. 그간 우리는 삶을 환상이나 물질 다발 취급하는 오류에 숱하게 빠져 왔지만 물질 대상과 똑같이 사실들-논리 법칙이나 인간의 지식-도 존재하며,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의미장 안에 나타난다는 ˝의미장 존재론˝(새로운 리얼리즘 접근법)이다.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가  하나의 대상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동일시하며 따르는 '물신숭배' 성격으로 서로 경쟁을 벌인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의견을 <그 아래에 두며> 일종의 소속감을 느낄 <주체>를 찾는다는" 크 라캉의 분석은 아주 예리하다. 물론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종교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나아간 의미탐색'이라는 긍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논증에서 비약의 느낌도 받았지만 하이데거 <숲속의 빈터> 개념처럼 우리 인식의 특성이라 생각하며, (능력 부족한 나 대신) 많은 분야들의 논리 허점, 선입견을 깨는 도전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인물이나 정치 문제 혹은 예술 작품의 이해는 생물학이나 수학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완전히 자의적이거나 단순한 취향 문제도 아니다. 과학적 세계관은 우주, 곧 자연 과학의 대상 영역이라는 특권적인 사실 구조만 중시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의미는 건너뛰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우주에는 실제로 의미 문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전혀 다르다.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성의 왜곡된 인식에 기초한다. 과학적 세계관은 이해를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거나 폐기하는 방법만 인정한다. 이런 종류의 방법은 분명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다. 우주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설과 검증이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간과 의미의 이해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정신 혹은 의미를 해석하며 접근하는 가운데, 이를테면 소통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방법을 쓰면서 의미의 이해에 다가갈 뿐이다. 정확히 이 점을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이자 유명한 해석학자인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상기시켰다.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다.> 숱하게 인용된 이 문장은 가다머의 대표작 『진리와 방법』에 수록된 것으로, 예술 작품 해석과 인간 세계의 이해는 우리의 자연 이해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진리 탐구가 가설과 검증이 없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게 자의적이라거나 완전히 제멋대로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간을 일반화라는 방법을 써서 이해하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을 이해하는가는 우리 인성의 표현이며, 우리 인성은 먹고 자고 짝짓기 하는 습관을 모두 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성은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작품이다. 바로 그래서 현대 회화와 연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의 화가이자 배우라는 암시를 담아내 왔다. 인간은 살아 있는 창의성이다. 창의성과 상상력과 독창성은 인성의 특징이다. 자연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인성을 무시하는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며 가장 독창적인 학자 중 한 명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시대정신은 자연과학의 그 어떤 사실과 마찬가지로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 이 정신은 시간과 무관하며, 이런 의미에서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계의 특징을 드러낸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 특징을 이해하도록 만들려 시도한다. 이 시도로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 양식을 빚어낸다.
창작 과정과 표현 양식의 형성 과정은 과학과 예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게 아니다. 과학과 예술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의 언어를 빚어낸다. 이 언어로 우리는 현실의 서로 멀리 떨어진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상이한 부분들을 서로 맺어주며 맥락을 만들어 내는 개념 체계는 서로 다른 예술 양식과 마찬가지로 이 언어의 다른 단어들 혹은 단어군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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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12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께서 아침에 올려주신 글에 대한 리뷰를 쓴 후 이 글을 읽으니, 논점이 더 명료해지네요. 답글을 달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제 한계군요.ㅋ Aglama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이념(헤겔)은 그 자체 안에서 나타날 수 없다. 절대이념이나 세계가 존재하려면 그 상위의 포괄이 있어야 한다. ‘는 글을 읽으니 유클리드의 <기하>의 증명과정이 생각나네요. 5가지 기본 공리에서 출발한 그의 증명과정에서 연장선을 긋으면서 닮음, 비례를 활용하는 증명과정이 나옵니다. 이러한 과정은 아마도 그 자체 내에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일종의 ‘확장‘을 통해 비유로써 표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기독교의 신(神)의 대표적 속성 ‘전지-전능(全知-全能)‘ 자체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완전성‘과 상충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안다면(전지) 굳이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미 될 것과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실체(그것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다른 어떤 사물도 필요하지 않는 상태에서 실존할 수 있는 그런 사물=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봅니다.^^:
Agalma님께서 읽으신 책과 제가 읽은 책 내용 중 함께 생각할 부분이 정말 많았군요.^^: 재밌습니다.

AgalmA 2017-03-12 09:1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이 책 재밌게 읽으실 듯^^
기하학도 이 책에서 여기저기서 다루고 있어요. 특히 칸트부터 포스트모던까지 이어지는 구성주의 까는 게 참 재밌어요ㅋ ‘희다/검다‘ 양쪽을 다 아우르는 ˝대각선언어˝ ‘희검다‘ 설명도 재밌었죠^^ 참인 명제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지만 부적절해보이는 ‘희검다‘는 어쩔래! ㅎ
데카르트는 이원론에서 벌써 실컷 까였어요ㅎ; 사유 실체와 물질인 연장실체로 나눈 근거가 뭔가? 두 개의 실체를 전제한다면, 두 개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왜 스물두 개가 아니고 두 개인가?....
이 책에서 안 까이는 사람들이 없음ㅋㅋ
그래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칭찬하는 사람들 책 찾아볼라고요ㅋ 얼마나 뛰어나면 이런 사람에게 칭찬을 듣나! ㅎㅎ

겨울호랑이 2017-03-12 08:39   좋아요 1 | URL
Agalma님 추천 도서로 담아 놓겠습니다^^:. 보아하니 이 책에서 비판받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할 것 같네요..ㅋ 깊이있는 독서를 만들어 주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Agalma님 덕분에 즐거운 생각 얻고 갑니다^^:

호빵 2017-03-13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유클리드의 기하인가요? 첫 공리인가에서 계속 뻗어가는 것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비슷하게 접목되는 건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빨책으로만 들은 저로선 읽을 책 목록에 몇개가 함께 올라가네요 ^^
 

˝방사능을 측정하는 장비로는 버펄로보다 가이거계수기가 훨씬 정확하다˝
(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신의 입자》)

《컨택트》 영화에서 헵타포드 우주선에 갈 때 방사능을 두려워해 카나리아를 가지고 간 장면은 하나의 미장센이기도 하지만(고요 속 새 울음소리!) 아날로그성, 생물성을 더 우위에 두는 인간 습성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의심과도 연결할 수 있다. 수학, 물리학 등에 사람들이 어려움 내지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도 유사할 텐데, 보통 사람들은 이해가 어려운 계산적 수치보다 기존의 양상 - 경험, 물질적 결과를 더 선호한다. 신뢰가 선호에 끌려다니는 건 늘 안타까운 일이지. 기계의 오류, 한계를 늘 지적해왔지만 알파고 능력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기 시작했다. 급속히 데이터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디지털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어도 인간은 언제나 마지노선을 가지고 싶어 하지. 마지막 마지노선이 늘 자신이라는 걸 잊고서. 안 보이는 신을 믿듯이. 신의 유무에 대한 인식은 과학자들이 끝없이 원자를 깨고 들어가듯 우리가 철저히 자신을 깰 때 가능할 것이다. 니체는 19세기 식으로 깨려 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식은 다윈?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적어도 인문학자는 아닌 거 같다. 21세기 방식은 누구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궁금하다.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 키가 198센티미터였다니... 왜 그림들은 그를 왜소하게 그렸단 생각이 들지. 워싱턴 링컨 기념관의 링컨 동상이 거대해 보여도 198센티미터면 업적이 아니어도 수긍할 만하다!

《신의 입자》 읽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딴 생각 순환선... 갈 길이 멀군.
하지만 전자기학(전자)과 상대성이론(빛의 속도), 양자역학(플랑크상수)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미세구조상수‘ 137 하나는 잊지 않게 배웠다. 저자는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137이라고 쓴 푯말을 들고 있으면 물리학자나 물리학 학생들이 이 중요한 숫자를 알아보고 도와줄 거라고 말한다.
너무 오지에 가면 소용없을 텐데. 언어도 안 통하는데 숫자 표기를 알아볼까 싶지만; 137이 666처럼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생각하는 원시 부족을 만나면 어뜩해! 헤이조그 영화 《피츠카랄도》 생각나네. 피츠카랄도의 하얀 증기선을 부족의 구원자로 예언된 하얀 신의 모습이라 생각해 부족이 배가 밀림을 통과하도록 온갖 희생을 감수했던 이야기가. 믿음, 인간의 심리 작용은 우릴 너무 쉽게 움직인다. 그러니 자유의지도 늘 의심스럽지. 배움, 앎 또한 인간의 집단 최면 작용이라면? 인간 종은 세상에 불가해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비주의자들 같다. 암튼 또 신 얘기. 무슨 얘기만 하면 신 얘기로 도돌이표...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에서 damn을 빼면 쉽게 신의 입자(God Particle)가 되지만, 신 얘기는 신나는 얘기는 아니지. 어쩌면 질소만 가득한 과자봉지 같을 수도 있다는.... 이 과자가 네 고..아니 과자냐. 산신령을 등장시키지만 산신령을 갖거나 되고자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과연 도끼를 얻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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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7-03-10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념이 자연스럽고 성찰적이시네요.,, 제 리뷰의 무미건조함을 반성하게 하는 글입니다. 다시 한번 읽고 새 리뷰를 쓰고 싶어지네요...자연스러운 연결, 참 좋습니다...^^

AgalmA 2017-03-10 01:15   좋아요 1 | URL
서로 쓰는 성향이 다른 것이지 벤투님이 반성까지 하실 정도의 글은 아닌데요;; 페이퍼식 글쓰기는 벤투님이 더 많이 잘 쓰시잖습니까~
분명 허점 많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게 습관이라...

겨울호랑이 2017-03-10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순간 신(神)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깊이 들어가도 신을 발견할 수 없고, 멀리 바라봐도 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러다가 틸틸(치르치르)와 미틸(미치르)의 ‘파랑새‘처럼 주변에서 발견하거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AgalmA 2017-03-12 19:49   좋아요 1 | URL
서양철학에서 이오니아 학파(그리스 자연철학자들)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진보적이고 혜안이 밝았는데도 묻혔죠. 그들의 직접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적이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들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지만 자기식으로 해석하는 변형이 또 있었죠. 저자는 <신의 입자> 2장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원인‘ 분석적 사유자였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목적‘적 사유에 치우쳐 신을 상정할 수 밖에 없는 철학틀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리스 철학자도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도 원인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게 3000년 넘게 지속되었고요. 중세 때는 퇴보하기도 하면서.
현재도 끝없이 쪼개고 들어가는 과정 중이죠. 과거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원소라 통칭하던 걸 ‘쿼크와 렙톤‘까지로 발견한 상태이지만 어찌 될 지 또 모르죠. 천동설과 지동설 경우처럼 오늘의 탄핵 인용처럼 새로운 관점이 나오면 우린 또 새로운 배치를 시작할테니... 아, 이러다 댓글로 리뷰쓰는 식이 될 거 같아 여기서 마무리할께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댓글 늘 감사드립니다^^/ 박 길라임 탄핵도 되고 오늘은 좋은 날~

겨울호랑이 2017-03-10 12:26   좋아요 1 | URL
과학의 발전이 과거의 ‘추상적 사유‘를 보다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과학의 발전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추월하지는 못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빛‘보다 빠를 수는 없는 것처럼요.ㅋ Agalma님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생각의 속도‘와 ‘빛의 속도‘ 중 어느 것이 더 빠를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아직 읽지 않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포인트로 저장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독서 포인트 제공에 감사합니다.^^: Agalma님 행복한 금요일 오후 되세요!

AgalmA 2017-03-10 12:42   좋아요 1 | URL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니 사유의 틀에 갇히면 오도가도 못하는 거죠ㅎ;;
기술에 대해선...지금까지는 효용적인 것으로 많이 운용되었다면 현재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그럴 테고요. 핵 경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인 격이잖아요ㅎ; 멀리 보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인간의 문제. 쯧쯧....

신의 입자 읽으면서 쿼크와 렙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면 무엇이든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걸 생각할 때 인간의 사유 속도는 당연히 더 느릴 거란 생각을 저는 하게 되네요^^ 우리의 생각이 그 물질의 모임 속에서 만들어진 2차 가공물이라는 현실적 추론 아니더라도.

아,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책 좋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봐서 다 못 읽고 반납했는데 소장하려고 벼르고 있는 책 중 하나요^^ 루크레티우스 글은 현상학을 벌써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겨울호랑이 2017-03-10 15:19   좋아요 1 | URL
^^: 저는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인간의 마음/제도가 못 따라가서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현대의 재앙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여러 면에서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저는 ‘생각(사유)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에 1표! ㅋ ‘빛의 속도‘는 일상의 속도보다 상대속도는 느려지게 되지만 결국은 실현되는 속도인 반면, ‘생각‘의 속도는 다른 차원으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면, 지금 탄핵한 박근혜 이후 세계에 대해 우리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빛‘의 속도로는 그런 미래의 여러 차원에 가기 힘들지 않을까...하는 근거없는 상상을 해봅니다.ㅋ

AgalmA 2017-03-10 13:24   좋아요 1 | URL
우리의 지금 시간 개념은 선형적이라 한계가 있죠. 시공간을 나눈 것도 역시나 한계일텐데, 어찌 되었든 다중 우주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실현된 우주도 있을 겁니다. 즉 우리의 현재 사유는 늘 뒤따르는 현상이 아닐지. 기술 재앙에 대해서 우리 맘이 못 따라갔듯이 말이죠.

속도라.... 갈릴레이에서 이미 결론났지만 같은 조건에서는 모든 물질의 속도는 같다고 하죠. 여러가지 요인들이 섞이는 이 땅에서는 무거운 것이 마찰력 때문에 더 빨리 떨어질 뿐이지만. 즉 생각과 빛이 정확히 같은 상황이라는 설정이 필요합니다. 단순 매칭 비교는 인문학적 추론이지 과학적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하지만 겨울호랑이님 추론은 매력적이죠^^

겨울호랑이 2017-03-10 15:19   좋아요 1 | URL
^^: 제 생각이 즉흥적인 생각이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네요.ㅋ Agalma님 덕분에 이 부분에 대해 더 재밌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시간‘과 ‘속도‘라는 문제가 지금은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만 들지만요.. 저의 개떡 같은 질문에 ‘찰떡‘같이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님 행복한 오후 되세요^^:( Agalma님과 댓글을 쓰다보면 책나오겠어요...ㅋ)

AgalmA 2017-03-10 13:5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사유는 이미 찰떡 같으심^^ 저도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유쾌하고 유익합니다. 이런 친구 만나는 거 어려운 일인데, 겨울호랑이님 존재가 참 고맙습니다^^/
우리 둘 다 공부가 부족하다! 매일 한탄하니 책이 언제 나올 지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