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착각 -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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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착각’이란 책 제목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이해의 착각 속에 살면서 스스로 지식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ㅡ개인의 힘, 재능, 기술, 업적ㅡ에만 주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지능은 과대평가되었고, 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공유된다. 1960년대 인지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일종의 컴퓨터로 이해했는데, 1980년대에 인지학자 랜다우어는 컴퓨터의 메모리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인간이 지닌 기억의 크기를 추정하고자 했다. 많은 실험 결과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인간이 70년 정도 살면서 같은 속도로 학습했을 때 보유하는 정보는 1기가 바이트’로 나왔다. 인간은 컴퓨터와 같은 지식 저장소가 아니라는 결과다. 또한 인간의 “지식은 대체로 수많은 연상, 그러니까 구체적인 이야기로 분해되지 않는 대상이나 사람 사이의 고차원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의 과정과 언어와 정서는 모두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도와주는 일상적인 추론과 관계가” 있는데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필요한 정보만 능숙하게 추려내고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과 추론은 불완전하며 한정된다. 인간은 지식 공동체로서 이 한계를 보완하며 진화했다. 인간의 ‘생각’은 머릿속, 외부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끌어다 쓰는 특징이 있고, 우리가 지식의 착각 속에 사는 이유는 머릿속 지식과 외부 지식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비행기를 이용할 줄 알지만 세부와 전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식 공동체에 의지해 우리는 더욱 무지와 곤란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 공동체조차 완벽하지 않다. 캐슬 브라보 핵실험 경우 수많은 사람이 협력한 복잡한 프로젝트였는데,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1000배에 달하는 폭발을 예상하지 못해 방사능 피폭 피해가 일어났고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70년이 지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911 테러 경우는 어떤가. 1993년 이미 한 번의 폭격으로 사상자가 난 사건이 있어서 미국 경찰 당국은 세계무역센터가 유력한 표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2001년 항공기가 미사일이 되어 돌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이런 무지의 재앙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알려지지 않은 무지를 예측할 수 없다.” 복잡성으로 가득한 카오스 체계에서 보면 초기의 작은 변화로도 최종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복잡성을 무시하고 잘 안다고 믿으며 아는 체하는 것은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ought)를 통해 세상의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추론하며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려 한다. 이렇듯 우리의 인지 작용은 삶을 위해 총동원되고 있다. 우리는 분자의 위치와 방향과 움직임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미세한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계와 운동계는 이보다 높은 차원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가령 식물과 동물(특히 다른 인간)과 인공물처럼 우리가 실제로 소통하는 물리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우리의 직관과 정념은 서로 협조하며 심사숙고해 결론을 완성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행위는 단순히 뇌의 작용이 아니라 몸과 뇌의 협동으로 이뤄진다. 서양 문화에서 손가락 열 개에서 착안해 십진수 숫자 체계에 의존했듯이 “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이나 도구와 결합한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는 정서 반응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의 말대로 인간의 생각은 얄팍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력하다.

 

우리에겐 천재나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보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문지식이란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의미한다. 무지는 둘 다 없다는 뜻이다.” “지능이란 더 이상 개인이 문제를 추론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이 집단의 추론과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제는 뛰어난 기억력과 신속한 처리 능력과 같은 개인의 정보 처리 능력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보고 타인의 정서 반응을 이해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저자들은 지능을 지식 공동체 개념으로 볼 때 이 사회와 집단의 문제를 더 잘 조율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집단의 효과적 수행으로 개별 구성원들이 더 나은 혜택을 누리는 이런 전망은, 노동의 분업으로 더 나은 세계가 열릴 것이라 진단한 마르크스의 비전의 다른 해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위대한 일도 한 개인의 능력과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축적된 지식과 시스템을 이용하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건 집단 공동체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미에 개인들이 바르게 설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식은 상호 의존적이고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
“컴퓨터 과학은 항상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인지과학자들은 신경과학에서 개발된 방법을 사용한다. 물리학은 뇌 기능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기계에 기여하고 학습과 정보의 흐름에 관한 복잡한 수학 모형도 제공했다. 이 책은 인류학과 문화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개념을 인지심리학자들이 융합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책이 많은 연구의 방향을 바꿔주지 바란다. 이 책에서 논의한 개념을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읽고 융합해주기 바란다.”
 

 

나는 많은 독자들도 융합하며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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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말 -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한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칼 세이건 지음, 김명남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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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위어 『마션』에 이어 데미언 샤젤 <퍼스트 맨> 재관람을 앞두고 예비 독서 2
<퍼스트 맨> 개봉관이 점점 줄고 있다;; 우리 동네 상영관은 조조 아니면 한밤에 상영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ㅜㅜ; 이런 작품이 푸대접을 받다니!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아는 방법"이며 "우리는 모두 별 물질로 이뤄진 존재들"이란 명언을 남긴 칼 세이건. 우리 몸의 무거운 원자인 탄소와 산소 원자는 폭발하는 별의 내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기에 그 말은 단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한 23년간 인터뷰를 모았는데, 『코스모스』에서는 잘 알 수 없는 그를 볼 수 있다. 그 시대 속 경향과 문제 속에서 그의 치열하고 다양한 활동을 생생히 전달한다.

달은 정복되었고 당시 우주에서 초 관심 행성이었던 화성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소설 『콘택트』를 쓸 정도로 우주에 지구인 외 지적 생명체가 있으리라 확신하던 칼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지금은 화성 정착 프로젝트 "Mars one"까지 추진하고 있으니 지구인의 화성 관심은 여전하다. 앤디 위어 『마션』은 그 전초전의 그림을 그려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진화 생물학까지 공부한 건 외계 생명에 대한 확신을 점검하기 위한 작업이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생명」 항목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그의 그런 지대한 관심 연유에 대해 질문까지 받을 정도였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살아 있는 걸 좋아하고, 가령 몰리브데넘 원자와 공명하기보다는 뭔가 살아 있는 것과 감정적으로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왜 다른 동물에게 흥미를 느낄까요? 왜 아르마딜로의 생활사에 흥미를 느낄까요? 왜 남극까지 가서 황제펭귄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볼까요? 그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에 근본적으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ㅡ 「살아 있는 것과의 공명」(1976년 인터뷰, 1979년『화성의 생명을 찾아서 The Search for Life on Mars』(헨리 홀트 앤드 컴퍼니)에 수록)■

그의 엉뚱한 상상력과 폭넓은 식견, 유명세 때문에 학계에서는 폄하와 질투를 받았지만 칼은 사실 철저한 과학적 회의주의자였다. 신의 존재와 부재 둘 다 의혹과 불확실성이 가득하기 때문에 "둘 다 자신만만한 양극단"이라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정도였다. 종교에 대해서도 종교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문제시했다.


"회의적이고, 의문하고, 권위자의 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과학의 태도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요구하는 정신적 태도와 거의 같습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서로 공명하는 가치와 접근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 우리가 어느 한쪽 없이 다른 한쪽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ㅡ「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1996년 5월 3일 라디오 프로그램 <토크 오브 더 네이션> 녹취에서)■

그는 과학 문해력이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만 유용한 게 아니라 열린 사회에서 꼭 필요한 비판적 사고 기술을 함양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일상과 동떨어진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된다.


"과학이 늘 철저히 연역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최첨단은 늘 무모한 직감을 좇고 단서를 추적하는 방식의 활동입니다. 과학이 예술과 다른 점은 현실을 다른 형태로 직면한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학 이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별하게 해주는 시험 방법이 있죠. 그것은 곧 해당 이론이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느냐 마느냐 하는 잣대입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연구 동기가 되어주는 내면의 열정은 아주 예술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질서와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탐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ㅡ「아주 미미한 지구」(1973년 6월 7일 자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우주적으로 보는 관점이라 지구에 대한 그의 걱정도 국지적이지 않다. 『창백한 푸른 점』이 지구적 윤리와 도덕적 전망을  다뤘다면, 마지막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사이비 과학이 판치는 세계에 과학적 이성을 촉구하는 책이었다.
그는 이 세계가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 사회가 되기를 꿈꾸며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평생 노력했다. <코스모스> tv 시리즈 출연과 책 출판도 그런 노력이었다. 깊이보다 폭넓은 대중화를 선택할 때 돌아올 손해를 알면서도 그는 그러했다.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 주력했고, 호감 가는 외모와 말솜씨와 함께 이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아래와 같이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위트 있게 비꼬며 사실에 초점을 돌리는 언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좀 다른 종류의 편집증적 몽상에 대해서라면─즉, 외계인이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발견하고는 우리가 맛있기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우리를 잡아먹으러 찾아올 거라는 몽상은─실현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송 비용이 너무 비쌀 테니까요. 정말로 인간의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이 그들에게 유달리 맛이 좋게 느껴진다면, 그들은 인간 한 명만 자기네 고향으로 데려가서 그 단백질을 합성한 뒤에 인공적으로 대량생산을 하면 됩니다. 다른 행성의 미식가들은 그 방식으로 자기네 행성에서 생산한 물질을 먹으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아뇨, 전 그런 생각은 충분히 세심하게 끝까지 따져보지 않은 결과라고 봅니다. 전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위협을 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할지 모르는 위협도 별들 사이의 방대한 거리 때문에 제약된 상태라고 봅니다. 게다가 인류는 아무리 그래도 점차 나아지고 있잖아요."
ㅡ 「아주 미미한 지구」(1973년 6월 7일 자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멋질 겁니다……. 설령 그들이 땅딸막하고, 뚱하고, 부루퉁하고, 섹스에 집착하는 존재일지라도요. 설령 그럴지라도 그들이 발전된 문명의 전령으로서 이곳을 찾아왔다면 아무쪼록 꼭 그들을 발견해야겠죠. 하지만 문제는 증거가 부실하다는 겁니다. 숱한 경험담 중에서, 우주선 선장의 항해일지 한 쪽을 찢어 왔다거나 지구에 없는 동위원소 조성의 기이한 합금을 살짝 긁어서 가지고 왔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납치 이야기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상황은 외계인이 작은 감시 기기를 자기 콧구멍 속에 심었다고 말하는 경우인데요, 잘된 일이죠! 그 기기를 하나 구하면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요. 그런데 납치 애호가들이 하는 얘기란 게, 그 이식물이 톡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내던져버린다는 겁니다. 납치된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들 호기심이 없는 걸까요. 그 물건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줄 결정적인 증거란 사실도 깨닫지 못하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이 외계인의 정자로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수 천자 검사를 해보면 안 될까요? 초음파검사는? 아기가 태어나거나 유산된 경우는 어떨까요? 그런 경우는 어떻게 됐다고 생각해야 좋을까요? 산과 인턴이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외계인인 아기가 태어..."
ㅡ「과학이 세상에 착륙하다」 (<헤미스피어Hemispheres> 유나이티드항공의 기내지, 1994년 10월 호 인터뷰에서)■

우주 탐사가 현실을 외면한 예산 낭비라는 비난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논했다. 우주 탐사 예산은 국방비보다 투자가 적었다. 우주 탐사가 냉전 체제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된 건 맞지만, 인류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모색에서는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칼의 의견처럼 전 세계가 공조해 이 프로젝트를 활성화한다면 예산이 그리 문제시될까. 여전히 이 문제는 국가적 대항과 경쟁으로 남아 있다.

(인터뷰어 플래토)
"NASA의 우주 예산이 국방 예산만큼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5퍼센트밖에 안 되죠."
(세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만일 수많은 시급한 사회문제, 환경문제, 그 밖의 문제들을 처리할 돈을 어디에서 구할지가 걱정이라면 냉전이 끝난 지금도─간접비를 포함하여─연간 30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국방부야말로 꼼꼼히 살펴보기에 가장 알맞은 지점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폴로 프로그램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1961년에 그 역사적 연설을 하면서 아직 설계되지도 않은 추진 로켓,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합금, 아직 구상되지도 않은 랑데부와 도킹 기술을 써서 아직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달에 가겠다고 선언했고, 더구나 그걸 1960년대 말까지 해내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선언 시점에는 미국이 미처 지구궤도에도 못 올라간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일정은 정치적으로 도달 가능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정말 그 일정대로 해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기술적·인간적 성취였습니다."
"로봇 우주탐사를 열렬히 지지하고, 지난 35년 동안 로봇 탐사에 관여해왔습니다. 우리가 과학을 하고 싶다면 그게 최선입니다. 그편이 더 싸고, 인간의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더 위험한 곳에도 갈 수 있고, 기타 등등 장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처럼, 현실에서 유인 우주 비행을 지지하는 정당한 근거는 그보다 훨씬 더 폭넓은 정치적·역사적 의제여야만 할 겁니다. 그리고 전 그런 근거가 세 가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감정적인 것인데─많은 사람이 이 감정을 느끼지만 느끼지 않는 사람도 많이 압니다─바로 우리가 방랑자에서, 수렵 채집인에서 유래했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지구에서 거주한 기간의 99.9퍼센트 동안 고정된 주거지가 없는 상태로 살았습니다. 아주 오래 그렇게 지내다가 최근에야 마을과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구에 대한 탐험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일시적으로 정주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른 탐험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상현실이 있으니까요. 몇 명만 탐험하더라도 그 경험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아이가 굶주리는 형편이라면 이 논증이 그다지 호소력 있게 와 닿지 않겠지요."
ㅡ「콜라 전쟁이 아니다」 (1994년 12월 16일  방송된 <토크 오브 더 네이션 Talk of the Nation>을 녹취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학자들에게 아폴로 프로그램에 270억 달러나 썼다며 꾸짖습니다. ‘대체 얼마나 더 바라는 거야?’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쓴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정치적인 이유에서 쓰인 돈이었습니다.” 세이건은 이렇게 단언하고, 이어서 설명한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피그만 침공 사건 1961년 4월 16일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정권이 사회주의국가 선언을 하자 미국 CIA가 이를 교란하려고 쿠바 망명자들로 침공대를 조직, 익일 쿠바에 상륙시킨 사건과 유리 가가린의 지구궤도 비행 성공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목표는 1960년대 말까지 달의 기원을 밝히겠다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해냈죠.”
ㅡ 「외계 생명을 소망하다」(<사이언스다이제스트Science Digest> 1979년 6월 호 인터뷰에서)


"우주 유인 탐사가 중단된 이유는 용기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재정적, 정치적, 심지어 천체물리학적 현실도 후퇴를 거들었다.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은 냉전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한 오늘날에는 화성이나 다른 먼 세상으로 가는 데 1000억 달러를 쓰는 걸 정당화할 단기적인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가 없다."
ㅡ「또 다른 행성에서」(1996년 5월 30일 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골수형성 이상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그가 한 사람의 지구인으로서 지구와 우주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사랑했는지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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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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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계란 노른자를 좋아합니까, 흰자를 좋아합니까. 이런 식성 취향을 물을 때 대체로 대답은 명확하다. 노른자와 흰자를 다 좋아한다고 해도 되고 계란을 싫어한다고 해도 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싫어요 보다 그게 뭐죠?라는 무관심이 더 난감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한 번씩 받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음에 성 구분이 있었는지, 대답에도 인접한 성에 대한 선호가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 일을 하는 상황인 요즘, 사회생활로 가족을 건사하는 전통적 부권 가장 이미지와 권위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가부장제 뿌리는 사회 곳곳에 여전하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특성 때문에 고용에서 꺼려지는 존재가 되기 일쑤고 여성의 양육 재능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편견도 만연해 사회생활보다 가정으로 더 내몰린다.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신경 쓰는 게 차별로 돌아오는 악순환이다. 생명공학 발전으로 성 구분이 희미해지고 임신과 출산이 여성만의 몫이 아니게 되면 이 문제는 바뀔까. 페미니즘은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며 그들이 대개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아는 페미니즘은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거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 훅스는 요령부득한 학술용어만 가득한 기존의 페미니즘 책이 아닌 쉽고 대중적인 이 책을 썼고,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는 간결한 정의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벨 훅스의 이 책이 나오기 9년 전인 1991년 출판돼 페미니즘 고전으로 여겨지는 수전 팔루디 『백래시』도 대중에게 쉽고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사례 제시를 풍부히 했는데, 80년 대 미국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실태, 상업주의 소비자로 혹은 상품으로 공략되거나 제외되는 현상, 여성이 정신질환자나 아이 낳는 기계로 치부되는 상황 등 여성의 기본권조차 무시되는 것을 고발하는 르포였다. 이후 나온 이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문제와 남성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훅스는 페미니즘 혁명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을 ‘가부장제, 인종 차별,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 & 자본주의’라고 했다. 체감하기 쉬운 키워드를 뽑은 건 이해하지만 나는 더 깊이 들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체성 형성은 오랜 역사와 진화 속에서였다. 혼자 있는 여성이 험악한 인상에 체구가 큰 남성을 만났을 때는 경계와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피부색이 지표가 아닌데도 낯선 유색 인종일 때는 인종 차별적인 경계심,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위계에 의한 위축감 등등 편견과 상황적 판단을 한다. 우리는 생각만큼 정의롭거나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적인 영향도 많이 받는다. 이건 남성이냐 여성이냐 구분을 뛰어넘는다. 신체적으로 연약한 포유동물은 자연스레 무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인간의 공동체 생활도 그런 연장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국가, 종교, 각종 문화들이 구축했다. 중앙 집권적 이러한 체제들에서 무리에서 힘이 센 남성들이 지도자의 자리를 거의 차지했고, 지배와 착취의 수단인 폭력성을 사회 통제 수단으로 허용하는 지배 문화와 함께 가부장제는 내면과 외면에 걸쳐 단단히 뿌리를 틀었다. 체제와 공동체 결속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국가, 자본, 종교와 만나 문제는 더욱 얽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7년까지도 여성이 운전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는 전통과 문화 상대주의를 내세우며 여성에게 히잡, 차도르, 부르카 착용을 강요한다. 종교적 풍습에서 유래된 할례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여성의 낙태 문제만 해도 바로 종교계와 부딪힌다.
여성 신도를 지배하고 유린하는 사건과 사회적 차별이 건재한 ‘종교’는 여전히 위세가 막강하다. 종교 문제를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벨 훅스는 이 책에서는 어쩌면 거론하지 않은 것도 같은데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에서 과학적인 진화론이 우세한 거 같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보다 종교 신자가 더 많다. 신자가 많은 종교만 추산해도 기독교 23억, 이슬람교 18억, 힌두교 10억, 불교 5억에 달한다. 무신론자는 대략 11억으로 추산되고 있다. 종교의 힘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종교에 의지하려는 심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인간의 전면적인 의식 개혁 없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만들어진 신’이 존재하는 한 ‘만들어진 여성’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좀 더 현실적인 얘기들을 말해보자.

브래지어를 태우는 등의 여성 항의 운동을 공정한 시각으로 잘 다루지 않는 대중매체, 자본주의-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패션업계와 화장품 업계, 드라마, 상업 영화, 광고 등이 퍼트리는 여성 이미지 때문에 페미니즘은 오해와 지탄을 받기 쉽다. 초기 페미니즘이 남성중심주의에 분노해 대항한 건 사실이지만 페미니즘=反남성주의로 해석되어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적대적인 일부 여성들의 운동', '시끄럽고 나쁜 페미니스트'로 매도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혁명적 페미니즘’ 의식을 가진 여성들은 다수가 레즈비언이고 노동자 계급 출신이어서 주류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고, 학계에 포용되고 난 이후에는 대중과의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젠더 평등을 강조하는 ‘개혁적 페미니즘’은 계층 이동의 수단에 천착해 하위 계급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와 동맹을 맺었다. ‘라이프 스타일 페미니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개념으로 페미니즘의 정치성을 흐리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이 경력을 쌓는 도구로 변질되면서 기회주의로 이용되다 보니 페미니즘 정치의 의식화 과정도 선명해지지 못했다. 남성중심주의나 젠더 평등에 대한 문제 직시 없이 분노 표출에 집중하거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 않은 채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배반하곤 했다.” “모든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남성중심주의의 피해자라는 현실 인식만을 토대로 세워진 유토피아적 자매애는 계급과 인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무너져버렸다.” 혁명적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남성의 페미니즘 의식화가 여성의 의식화 만큼이나 중요하다.” 남성과 연대해 투쟁하지 않고 페미니즘 운동은 전진할 수 없다는 훅스의 말에 동의한다. ‘페미니즘 이론이 남성성에 대해 좀 더 해방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면, 페미니즘 운동이 반남성주의 성향을 띤다고 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성들의 유대는 인정과 지지”를 받았다.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은 수용 외에 유대가 불가능했다. 한국 사회의 ‘시월드’라는 갈등 구조도 이에 기인하는 게 크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유대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결정권, 효과적인 피임, 임신 선택권, 임신거부권, 강간과 성희롱 근절, 고용 차별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단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사도우미 고용을 이해관계로 보는 일례에서 착취와 억압 체계에 기초하는 계급주의와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영향을 보지 못한다면 ‘자매애’의 연대와 지속은 어렵다.

여성학이 자리를 잡은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학계 엘리트주의와 출세지상주의가 맞물려 학계 밖 여성, 남성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고, 대중 기반의 교육 운동을 일구는 데 실패했고, 페미니즘 사상이 학문으로 고착되어 탈정치화가 진행되면서 페미니즘 운동의 급진성이 약화되었다. 그러니 현실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임신 선택권과 임신 중단권 즉 여성의 자기 선택권 문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아직까지 쟁점이 되고 있다. 피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 조심스럽지 못했다거나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여성의 잘못으로 보는 시선, 생명 존중을 모르는 범죄자로 모는 사회적 지탄 등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상황에서 현실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은 절실하다.

“건강한 자존심과 자기애를 키우지 않으면 여성은 절대 해방될 수 없다.” “페미니즘의 개입으로 의복과 인체 혁명이 촉발되면서 여성은 우리 몸이란 본디 타고난 그대로 사랑받고 추앙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이 치장하지 않기로 한 이상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비쩍 마르고 금발인 여자들’이 미의 표준 인양 등장하는 성차별주의적 이미지들, 여자들의 자기 몸에 대한 혐오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 문화를 가시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누구나 젠더, 여성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그게 페미니즘 관점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너무 축소해서 보는 것일 수 있다. ‘국가, 종교, 애국심, 인권’ 등도 우리가 구축하는 허구 이야기라고 말하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주목되듯이 우리의 인식은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더 폭넓게 보려 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과 아동에 대한 여남 모두가 관여된 폭력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훅스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정치는 여전히 이론과 실천의 결과로서 상호 간 행복의 비전을 제시하는 유일한 사회운동”이라고 말했다. “유일한”이란 표현이 좀 과도하다 싶지만 불평등과 불화가 만연한 지금 이 시대에,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공동체 추구'는 유혈 없는 21세기의 훌륭한 혁명정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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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8-10-17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갈마님, 잘 지내고 있으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쁘고 고단한 일이 많아 최근 이 곳도 접속을 못하고 있네요. : )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보면 각각 우주의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두 주인공의 애틋한 교신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추석 후 보름은 지나서 명절 인사를 나누고, 다시 또 보름은 지나서 그 답을 드리는 우리의 사정도 못할 바는 없군요. 종종 갈마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읽고, 쓰시겠지 하고 들어와 보면 역시 그렇게 계시는군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린 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끄덕끄덕 하면서요. 벨 훅스의 책은 저도 탐독 했었는데, 갈마님 리뷰로 새롭게 보이네요.

2018-10-19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사람들은 오일러수를 푸는 구글의 독특한 (비밀 채용) 광고판을 보고 도전해 기회를 잡는 반면,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정재승은 10년간 진행해온 여러 뇌과학 강연 중 12편을 뽑아 구글의 그 광고판 효과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냈다. 이 책은 '의사결정, 창의성, 놀이, 결핍, 습관, 미신, 혁신, 혁명 등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통해 인간을 다각도로 이해"하고자 하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시대,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혁명' 같은 기술 문명의 변화에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렇기에 전방위로 공부하고 책을 펴냈던 움베르토 에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 제목을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으로 지은 것은 퍽 어울린다.


 

의사 결정과 선택

호모 사피엔스는 경제적 이득, 사회적 관계, 과거의 경험, 주의 집중, 편견과 선입견, 도덕과 윤리 등 많은 요소를 두루 고려하고 판단하면서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 데이터 스모그’, ‘선택의 패러독스에도 걸리며 생각은 물론 의사 결정도 어렵다. 패자부활전이 줄고 있는 사회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때문에도 그렇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핵심사상)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고 하듯이 캐럴 드웩 교수는 마인드셋’(mindset, 마음가짐)을 말한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의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반면,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해서 잘하는 일만 하려고한다. ‘햄릿 증후군’(빨리 결정을 내지리 못하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들의 증세, 1989년 에드리언 밀러와 앤드루 골드블랫 책에서 처음 등장)이 사회현상처럼 퍼져 있고, 상품 구매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curation)이 마케팅 패턴으로 등장했다. 햄릿 증후군은 선택의 폭이 늘어나서 생긴 결정장애보다는 고정 마인드셋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개념인데,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지나쳐 과순응적인 병적 상태로도 볼 수 있다. 단 무능해서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과 결정장애는 구분해야 한다.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기 보다 실행을 통해 배우기를 정재승은 강조한다. 마시멜로를 가장 높이 쌓는 대회인 마시멜로 챌린지가 있다. 마시멜로 탑 높이가 가장 높았던 건 분야 전문성을 갖춘 건축가와 엔지니어였고, 단일그룹으로는 창의적인 유치원생이었다. 이 실험에 상금이 걸릴 때 시야가 좁아져서(터널 비전 현상) 결과가 나빠지는 게 흥미롭다. 이 결과에서 우리는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 것, 계획에 너무 매몰되지 말 것”,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좋은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은 합리적 의사결정자 가설(‘호모 이코노미쿠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는 가설(‘게임이론’)을 이제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충동구매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게임이론가들의 예측과 달리 수학적으로는 기댓값이 작더라도 안정적인 현금을 더 선택한다. “인간의 뇌는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되어 왔고 이 성향은 여전히 남아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비합리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는 의사결정’(말콤 글래드웰 블링크가설)이 유용할 때도 있고 직관을 믿지 않는 심사숙고가 필요할 때도 있어서 참 어렵다, 정재승은 시간 제한 “70퍼센트 확신이 들면 실행하라”(미국 해병대 ’70퍼센트 룰‘) 그렇게 해도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는) 새로운 환경이 좋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한다.

 

 

결핍과 놀이 그리고 우리는 정말 새로운 걸 원할까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결핍을 희소성이라는 개념과 연계시켜 연구했지만, 정재승은 심리학적 관점에 더 주목한다.

결핍은 성취동기 부여’, ‘의욕’, ‘(집중력이 높아져 갑자기 효율이 늘어나고 결과가 좋아지는) 마감효과’, ‘삶의 성장 에너지같이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지나친 결핍은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 조절능력을 떨어뜨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부정적인 면도 있다. 결핍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고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 그렇다고 살인, 사기 같은 걸 생각하면 곤란하다-_-);

 

놀이는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며 심지어 뇌의 여러 영역을 발달시켜주는 창조적 행위인데 사회에서 이걸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 히피 정신을 강조한 실리콘밸리의 놀이 문화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놀이가 창의와 혁신에 도움이 된다만을 표면적으로 따라 하는 한국 기업과 사회 시스템을 정재승은 비판적으로 본다.

 

그 어렵다는 선택!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짜장면, 짬뽕, 둘 다 먹을 수 있는 짬짜면이 있어도 짬짜면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율은 15퍼센트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때 뇌의 두 영역이 특히 활발히 작동한다. ‘목표 지향 영역내가 지금 이걸 해서 월 얻을 수 있는지 그 목표를 생각한 다음에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선택한다. ‘습관 뇌 영역일상적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때 목표의 결과 값을 높이기보다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려애쓴다. 우리 뇌는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너지를 쓰면서 특별한 기쁨을 누리려고도 한다. 삶의 진폭을 넓히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뻔한 일상과 나쁜 에너지로 인생 타령하기 쉽다. “우리 뇌는 습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디자인돼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즐겁게 추구하도록 디자인돼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미신이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이성적인 믿음을 말한다. 잔인한 마녀사냥,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지 않기, 돼지꿈은 복권, 7은 행운의 숫자 등등 우리는 많은 미신에 빠져 살아간다. 여러 이유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실수(‘사실은 아닌데, 맞다고 판단하는1종 오류-긍정 오류, ‘ 맞는 걸 아니라거나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2종오류-부정 오류)


1종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그냥 바보나 웃음거리, 혹은 겁쟁이가 되면 됩니다.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 신이나 외계인이나 전생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나중에 설령 그런 것들이 없다고 판명되더라도 치명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살면서 조롱거리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고 비과학적인 삶을 살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하지만 뭐든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어요. 귀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있는 걸로 판명 나면 치명적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제2종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1종 오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p172)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지금 강연장을 나가다 복도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중략)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인 것입니다.”(p179~180)

 

 

좋은 습관으로 창의성만들기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는 방식에 있어 동양인과 서양인은 서로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주로 타인의 입을 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주로 눈을 본다. 그래서 서양인과 동양인이 이모티콘을 쓰는 것도 차이가 난다. (스마일: 서양([:)], 동양[^^])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를까?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1만 시간의 법칙’(말콤 글레드웰)이 말해 주듯이 창의적인 사람은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중요한 기술은 훈련을 통해 학습하고 체화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 에너지를 발휘한다. 뇌과학으로 보면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창의적이라 함은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을 사용해서 일반적으로 얻게 되는 결과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꾸준한 운동, 충분한 수면,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극받는 것에 능동적인데, 일단 난 운동이 싫어ㅜㅜ;(동양인이라 눈으로 표현?)

 

 

미래를 위한 균형

요즘 실리콘밸리의 최대 관심사는 스마트폰 다음에 과연 어떤 테크놀로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라고 한다. 테크놀로지는 일상몰입 기술’(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지향하고 있어, 정재승은 “‘아직까지 우리가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언제인지를 살펴본 다음에 그 시간에도 비트 세계로 접속하게 해줄 편리한 스마트기기를 만든다면, 그 기기는 모두가 하나씩 소유하는 새로운 혁명의 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4차 산업혁명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실제 시공간을 점유하는 현실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한다.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일치(‘가상 물리 시스템’)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로서는 우버나 카카오택시가 가능하게 된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젝트’, ‘포켓몬 고’, 자율 주행 자동차같이 교통 시스템에 기반해 있지만 제조업과 유통업으로 더 확산되면 본격적인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리되면 직업보다 작업이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만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디아밸)이 필요한 시대로 한층 더 다가가고 있다. “아날로그든 디지털로그든 대면접촉과 사회적 관계 맺기를 증진시키는 경험”, ‘몸과 뇌의 균형(바브밸)’도 중요시해야 한다. 창의성의 기원은 주로 몰입에서 설명돼 왔지만, “우리에겐 목적적인 사고를 하는 몰입의 순간과 목적에서 벗어난 비목적적 사고의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 노력, 능력 이 모든 것이 만나야 혁명은 이루어진다.’

 

 

요즘은 기승전창업이 대세? & 성공에 대한 틀린 통념들

책 말미에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각각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재정적인 궁핍이 직장을 계속 다니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높은 소득자가 창업에 더 전념할 가능성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창업에 전념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진 위험 감수자들이고,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준비한 사람들은 위험회피자들이었는데, 이 결정의 차이는 위험에 대한 개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의사결정 문제이지 성공과 실패 기준은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했느냐 아니냐보다, 창업자가 위험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가의 성향과 좀 더 관계가 깊다. 이 결과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위험 감수자들일 거라는 통념과 달랐다. 창업의 성패, 혁신은 창의적 발상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 위험에 어떻게 대응(모호한 상황과 위험한 상황 구분)하느냐도 중요하다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상황은 어떻게 행동하든 무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상황을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상황을 잘 알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심지어 성공 확률을 따져 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게다가 어떤 사람은 70퍼센트를 굉장히 높은 확률이라고 여기고 안전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런 결정을 담당하는 뇌 역역에서는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판단은 그 사람의 지능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순전히 그 사람의 성향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p322)

성공과 관련해 또 하나의 널리 알려진 틀린 통념이 있다. “보통 창의적인 사람은 20~30대에 걸출한 사회적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올리버 우베르티가 ‘1300년 이후 출생한 과학자, 시인, 작곡가, IT기업 창업자 등 뛰어난 인물 대상으로 그들이 언제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했는지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20~30대에 일어난 성취가 40퍼센트, 40대 이후에 일어난 성취는 60퍼센트로 나타났다. 과학사회학자들이 지난 100년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노벨상 수상 업적을 처음 생각해낸 시기를 조사해보았더니 평균적으로 약 41세였고, 화학과 생물학은 좀 더 늦었다. 정재승은 자기 합리화가 삶을 견뎌내는 유용한 기제이기도 하지만 도전을 미루는 것을 나이탓으로는 돌리지 마시라고 웃음^^;

 

순응하지 않는 독창적 혁신가들’(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확산적 사고(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때 막 쏟아내는 성향)와 수렴적 사고(아이디어 중 의미 있는 것만 추려내 현실에 맞게 바꾸는 과정) 다 할 줄 알며, 집단지성을 잘 활용하고, 비판도 합리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솔직한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이 구성원에게 아이디어만 쥐어짜려는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잘 검증해서 내보내는 프로세스를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정재승은 조언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한 의사결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리더가 되기보다 재빠른 추종자전략을 더 선호한다. 이건 참 많은 걸 시사하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추종부터 끼리끼리 어울리는 관계 맺기 등등.

우리 뇌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회피적 성향과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보상적 욕구 사고를 원시 시대부터 가지고 이어져 왔다. 합리적이고 혁신적인 의사결정이 나 자신과 미래를 바꿀 건강한 실행력이 되어 줄 텐데, 그렇기에 우리는 삶에서 모두 탐험가다. 자유의지도 없는 인간이 진정 탐험가냐 하고 물을 수도 있어서 마지막 열두 번째 발자국에 실린 정재승의 답변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정재승 : 여러분은 자유의지를 믿습니까?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결정을 했는데 결정 1초 전에 어떤 결정을 할지 뇌 활동만으로 알 수 있다면 자유의지가 있는 건가요? 만약 1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면 어떨까요. 현재는 10초 전에 예측을 했거든요. 그러면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도 가능해요. 여러분이 지나가는 길에 5만 원짜리 지폐를 놔둬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저는 여러분이 5만 원을 가져갈 거라고 예측하죠. 대개의 경우 5만 원을 가져가겠죠? 그래서 제가 굉장히 예측을 잘한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자유의지가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하는 즉흥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생물학적 뇌의 조각이 먼저 일어났고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뇌 활동을 조작하면 자유의지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행동조차도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자유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상황으로 옮겨오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윤리적 질문과 맞물려 있습니다. 살인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생물학적 결함 때문에 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따라서 이것은 과학자들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소수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p369)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ㅡ 존 홀트(John H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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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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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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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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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펼쳐지는 7~80년대 미국 여성과 남성의 노동계 대립을 보며 ‘러다이트 운동(노동자에 의한 기계 파괴 운동, 1811~1816)’이 생각났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4차 산업 혁명으로 인간 대 기계의 싸움 2차전을 맞이하고 있는데 우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점점 더 남녀노소 세대를 가리지 않는 각축전이 되어가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러다이트 운동 때는 ‘착취’의 문제였다. 공장 식 기계 도입으로 노동자들은 편해지기보다 더 착취당했다. 그때의 기계 파괴 운동은 자본가들에 대한 항의이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때 여성들은 어디 있었고 얼마나 되었나. 권리를 말할 수라도 있었나. 여성이 노동계에 본격 진출하게 되자 여성 대 남성의 권리 투쟁이 되었다. 남성들이 점유하는 일일 때 더욱 그랬다.


▒ “사회학자 바버리 레스킨의 직업 통합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의 직종에 가장 많이 진출한 10여 개의 직종(조판, 보험 청구 사정, 제약업 등)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일의 보수와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가령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식자공들은 타이피스트로 좌천되었고, 드럭스토어 소매 체인점이 등장하면서 독립적인 약사들이 저소득 점원으로 전락했다. 은행 경영에서 여성의 진보에 대한 다른 연구들은 남성 일색이던 지점 경영자직이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 건 대체로 그 일의 임금과 권력,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 그 일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임을 밝히기도 했다.”
 
백인 남성이 노동력에서 50퍼센트 미만이 된 것도, 더 이상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대학 등록자 중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도,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기혼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일자리를 가진 여성 중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있는 여성이 더 많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을 남편으로 정의하지 않게 된 해가 1980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

여성이 드물었던 도로 관리인 일을 한 다이앤 조이스는 주위 남성들의 조롱과 위협, 배척에 시달려야 했고, 위험한 안료를 다루던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그들을 내몰려는 공작인 걸 알면서도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불임 수술을 자발적으로 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들과 삶을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나 사회는 당신들이 선택한 거 아니냐고 차갑게 응수했다.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나. 여권 신장을 말하며 포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은 판매업, 청소 서비스, 음식 준비, 비서, 행정 업무, 접수 업무, 간호사, 교사, 사회복지사등에 많이 분포해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의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 역차별 소송, 강간과 성폭력, 직장 내 성차별, 남녀 급여 차별 등도 2018년 한국에서도 여전하다. “사회 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하는『백래시』를 수전 팔루디가 1991년에 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계 뿐만이 아니다.


▒ ​혁명적인 태도에 가장 적대적인 건 상업적인 태도라는 수백 년 전 토크빌의 주장대로 소비 시장이 페미니즘으로 구사한 유인 상술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929년 광고계의 한 저명한 남성은 5번가에서 여성 참정권을 예찬하는 의미에서 여성들에게 마음껏 담배를 피우라고 촉구하는 자유 행진Freedom March’을 조직했다. 아메리칸타바코사American Tabacco Company의 홍보 담당자였던 그는 선도적인 페미니스트에게 자유의 횃불을 뻑뻑 피워 대는 여성 대오의 선두에 서 달라고 설득했다. 좀 더 최근인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 이후, 광고업체들은 샴푸에서부터 나일론 스타킹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을 팔기 위해 여성의 혁명정신을 갖다 붙였다. 하네스*에서는 전미여성연맹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의 한 임원에게 해방적인팬티스타킹을 홍보해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될 즈음엔 일반적인 관습이 되어 버렸다. 얼마 가지 않아 나 역시 청바지나 하이힐, 심지어는 가슴 확대 수술 브랜드에 내 페미니스트 인장을 박아 달라는 상인들의 숱한 권유를 처리(하고 거절)하게 되었다.
이런 노골적인 광고는 오늘날 세련된 판매 전략으로 훨씬 더 발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들이 상업적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마치 세 개의 황금 사과처럼 우리 발밑을 굴러다닌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구매력이라는 황금 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카드 빚과, 터져 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를 안겨 줄 뿐이다. 허기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황금 사과로 변신했다. 이 자기 계발은 주로 외모와 자부심, 그리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헛수고에 바쳐진다. 그리고 공적 주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언론의 관심이라는 황금 사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이 세상을 얼마나 많이 바꾸는지 보다 이 세상의 틀에 얼마나 멋지게 맞춰 사는지에 좌우되는 인기를 좇고 있다.” ▒

싱글 여성들에게는 노처녀”, 직장 여성들에게는 불임 여성”, “나쁜 엄마딱지를 붙이는 풍조와 여성들에게 도망치라고 조언하는 트렌드와 다시 돌아오라고 떠다미는 트렌드가 짝을이루며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의 자리는 없고 폭력물만 난무하는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이 80년대 할리우드 영화 산업과 똑같은 건 정말 신기할 정도다


 

​▒ “1980년대 말 이런 류의 많은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더 이상 끝까지 노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똑같은 영화에서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다. 반격 성향의 1950년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여성들은 결국 스크린에서 밀려남으로써 침묵당한다. 1980년대 말에 만개한 터프가이 영화에서 남성 주인공은 남자밖에 없는 전쟁 지역과 황량한 서부로 향한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전쟁 영화와 액션 영화의 폭력 수위가 올라가면서(프레데터, 다이하드, 다이하드 2, 로보캅, 로보캅 2, 리썰 웨폰, 폭풍의 질주, 토탈리콜) 여성들은 말 없고 부차적인 캐릭터로 축소되거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980년대 말 갑자기 나타난 성인 남성과 남자아이의 몸이 뒤바뀌는 영화(18 어게인(1988), 하몬드가의 비밀Like Father, Like Son(1987), 그리고 가장 기억할 만한 영화로는 Big(1988))에서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해방된 소년기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그리고 또 다른 집합의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 아버지의 부활이라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환상에 빠져든다. 꿈의 구장Field Of Dreams(1989), 인디애나 존스 : 최후의 성전, 아버지의 황혼Dad(1989), 스타트렉 : 최후의 결전같은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죽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고 (때로는 죽었다가 부활하기도 하는) 아버지와 아들만 남아서 영적인 유대를 복원한다.
미국 배우협회Screen Actors Guild1990년 할리우드의 여성 배역을 계산해 보고서 지난 2년간 여성의 수가 급락한 사실을 알게 된 건 별로 놀랍지도 않다. 배우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이제 남성 배역이 여성 배역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아졌다.
남성들이 꿈을 꾸듯 남성성이 과장되게 흘러넘치는 환상의 나라로 떠나는 동안 아직 죽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은 훨씬 폭력적인 시련에 혹사당했다. 198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여성 중 한 명을 제외한 전부가 피해자 역을 맡았다.” ▒

의학계도 여성을 강간을 즐기는 사람, 정신 질환자, 아이 낳는 기계쯤으로 대접하는 건 예사였다.


 

▒ “1980년대 스타일 후기 빅토리아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마조히즘의 정신의학적 진단에 따르면, 마조히스트는 고통에서 성적인 쾌락을 얻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말은 여성의 정신을 입맛에 맞게 규정하는 표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많은 여성들이 학대를 당하는 건 여성들이 학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중략)....정신분석 전문의인 캐런 호니Karen Horney1920년대에 처음으로 지적했듯, 소위 자연스러운여성 마조히즘은 많은 여성들이 순종적인 태도를 채택하게 유도하는 성차별주의적인 사회의 상벌 시스템이 낳은 부자연스러운 산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정신 질환 진단 통계 편람은 표준적인 참고서라서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환자를 진단할 때 이 책에 의지했고, 연구자들은 정신 질환을 공부할 때 이 책을 사용했으며, 민간 및 공공 보험사들은 치료 보상비를 산정할 때 이 책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법원에서 정신이상 참작 탄원과 자녀 양육권 판결을 할 때 이 책을 참고해야 했다.
그해에는 테레사 베르나르데스Teresa Bernardez가 미국정신의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위원장의 역할은 여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제안 일체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진단의 기초를 마련한 패널들은 굳이 베르나르데스나 다른 여성위원회 위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미국정신의학회가 이 진단을 표결에 부치기 직전쯤 베르나르데스는 우연히 이 소식을 멀리 사는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캐 들어간 그녀는 학회 패널들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단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추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이 세 가지 모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가지 중에서 두 번째는 월경 전 불쾌 장애라는 진단이었다. 월경 전 증후군이 단순한 내분비 계통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질환이라는 주장이 그렇게 오랫동안 망신을 당했는데도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다. 세 번째 진단은 성도착적 강간 장애였다. 학회 패널들은 이 진단명을 강간이나 성희롱에 대한 환상을 꾸준히 표출하고 이런 충동을 반복적으로 실천하거나 이런 충동 때문에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모든 남성(혹은 이론적으로는 여성)에게 적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이 승인될 경우, 워낙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돈 많은 변호사만 고용하면 강간범이나 아동 추행범도 손쉽게 정신이상 참작 탄원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점이 워낙 자명해서 미국 법무부 장관실은 이미 반대 의사를 밝힌 적도 있었다.”
 
낙태 합법화 판결에 대한 한결같은 대중적 지지는 미국사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이 역사적인 판결은 그저 원상태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19세기 말 마지막 50년 전까지만 해도 (식민지 시대부터 어떤 형식으로든 시술이 이루어지던) 낙태권은 한 번도 제한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태동’(착상 후 7개월) 전에 하는 임신중절에는 도덕적 오명이 씌워지지도 않았다. 산아제한 역사가 크리스틴 루커Kristin Luker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비방의 대상이 된 1973년 대법원 낙태 판결 Roe 웨이드Wade’ 법적인 낙태 규정을 3개월 단위로 구분하지만, 이는 미국인 대부분의 생각보다는 낙태에 대한 전통적인 처우와 훨씬 더 맞닿아 있었다.
1800년 낙태는 모든 주에서 합법이었고, 낙태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중립적이었다. 낙태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건 여성운동이 등장한 19세기 중반 이후부터였다. 여성들이 (아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성관계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발적인 모성같은 간단한 가족계획 방법을 요구하고 나서자 의사, 입법가, 언론인, 성직자 들은 모든 형태의 산아제한에 반대하는 훨씬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격에 나섰다.” 
    
태아 보호 정책들은 건강을 의식하는 기업들의 진보적인 노력으로 포장되었지만, 20세기 초에 확산된 후진적인 노동 보호 정책들과 공통점이 더 많았다. 당시의 노동 보호 정책들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의 형태와 노동시간, 수당을 제한했고, 이로써 여성들을 최소한 6만 개의 일자리에서 배제했다. 이 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 역시 여성들이 앞으로 가지게 될 아이들에 대해 자애로운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이들 중 많은 수는 남성 일색의 영역을 보호하려는 남성 노조 지도자들과 입법가들이었다. 담배 제조 국제 노동조합 Cigarmakers International Union 1879년 연례 보고서에서 우린 여성을 일터에서 끌어낼 수는 없지만, 공장법을 통해 여성의 일일 노동 할당량을 제한할 수는 있다 노골적으로 밝혔다.” ▒

태아 보호 정책을 우선한 병원 당국과 법원이 카더 앤절라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제왕절개한 일화가 나온다. 태아와 앤절라는 다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NBC의 드라마 에피소드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산모는 죽고 태아는 살아서 판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결말이어서 유족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하다.
 
책 읽는 내내 이 현실의 참상에 침울했는데 수전 팔루디는 우리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여성들에게 논쟁의 힘으로 남성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행실이나 외모로 남성들을 기쁘게 해 주라는 조언이 지배적이던 반격의 시대에도 남성들이 정서적 주도권을 모두 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체로 망각했다. 여성들에게 남성이 필요한 만큼, 남성들 역시 여성이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 간의 유대는 끊어질 수 있고, 여성을 억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이로운 성장과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다.
반격이 지배하던 1980년대에 여성들이 대단히 적극적이고 당당한 전략을 구사했던 얼마 안 되는 사례에서 이들은 결국 공적인 분위기를 바꿔 놓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의제를 설정했으며 많은 개별 남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1989년 다시 활기를 찾은 낙태 선택권 옹호 운동이 낙태를 둘러싼 정치를 180도로 바꿔 놓은 사건이 여기에 부합하는 교과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198949일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옹호하는 여성 50만 명이 국회의사당에서 행진을 하며 워싱턴 D. C. 최대의 시위를 벌였고 낙태 클리닉 문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와 맞붙었다. 1960년대 반전 행진에 참여했던 여성 대학생보다 낙태 선택권 옹호 시위에 참여한 여성 대학생이 더 많았다. 이 엄청나게 많은 시위대는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여성의 출산권을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어 놓을 것 같았던 낙태 반대 운동을 수적으로 압도해 버렸다." ▒

최근에도 이러한 반격의 힘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20183월 스페인에서는 여성의 날에 여성 노동자 530만 명이 총파업으로 뭉쳤다. 실리 없던 이목 끌기가 아닌 원하지 않는 세상을 멈출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아파트 발코니마다 국기처럼 앞치마가 내걸려 있던 게 장관이었다. 언론에서는 이걸 크게 부각하지 않았지만 더 나은, 모두를 위한 세상을 위해 이런 반격,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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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9-13 13:1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풍습이 좋아야 그 의미가 살 텐데 악습 같아지는 게 많아져서 참.
명절 때 가족들이 만나 싸우고 범죄가 일어나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세상의 온갖 편견과 각박이 그림자처럼 사람들에게 제게 드리워져 있는 걸 느낄 때마다 몸서리쳐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