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우리 마음속 친구, 뮤즈, 신, 폭군에 관한 심리학 보고서
찰스 퍼니휴 지음, 박경선 옮김, 박한선 감수 / 에이도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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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감수를 맡았고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의 소개에 따르면, 조현병(*)은 불과 백여 년 전에 발명되었다. “1893년에야 처음 제안되었고, 정신분열병이라는 진단명은 1908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중략)조현병의 여러 증상은 사실 일반인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정신의학계에서도 대중도 불편해했고, 1938년 슈나이더 박사가 환청과 관련된 몇몇 증상을 조현병의 일급 증상으로 명명해 대중적 편견이 굳어졌다. “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내적 반추 경험인 환청은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신활동이지 광기가 아니라는 것을 찰스 퍼니휴는 이 책을 통해 증명하려 한다.

 

(감수자 주*)조현병schizophrenia은 이전까지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다. schizo는 분열, phrenia는 정신을 뜻한다. 일본에서 서구 정신의학을 도입하며, 원어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여 정신분열병으로 옮겼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도입되었다. 일본은 약 10여 년 전 통합실조증이라는 새 명칭을 사용했는데, 우리나라도 곧 조현병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조현調絃이란 악기의 현을 고르는 행위를 말한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미겔 데 우나무노가 말했듯이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다른 사람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덕택에 우리들 각각은 자기 자신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됐는데,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여러 개념과 인상으로 이루어진 내적 흐름을 따라 움직이며, 바로 이 흐름이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기억을 찾아내고, 경험의 주요 줄기를 만든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4분의 1 내지 5분의 1은 수많은 혼잣말로 가득 차 있는데 대부분 섬세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운동 선수 경우 스스로를 칭찬하는 등의 긍정적인 혼잣말로 경기에서 좋은 효과를 끌어낸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표상된 목소리는 작가의 주요 건축 자재다. 소설가 데이비드 미첼은 인터뷰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은 일종의 통제된 인격 장애로 이게 가능하려면 머릿속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고 심지어 그 목소리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해야만 한다라고 표현했다.

 

패트리샤 워프의 표현에 따르면, “내분비계가 아니라 몸, 마음, 환경, 언어, 시간 전체에 걸쳐 있는 경험으로서의 자아를 조립하는 일이다. 힐러니 맨틀은 이러한 자기 창조 행위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매일 아침 글을 씀으로써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종이에 적을 단어들이 충분할 때 당신은 바람 속에 서 있을 만큼 단단한 등뼈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저 오래된 깃펜 한 자루처럼 바싹 말라버린 어느 등뼈, 달각거리는 척추 한 줄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작품의 주인공마냥 베케트 자신도 내적 발화에 푹 빠져 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집필할 당시 친구 조르주 뒤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자네 말이 맞아. 뇌가 기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요, 죄악이지. 마치 늙은 사내의 사랑처럼 말이야. 뇌가 할만한 더 나은 것들이 있거든. 가령 잠시 멈춰 서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인다든가 하는 일 말야.”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런 종류의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후회를 내뱉는다. “나는 나한테 실컷 말한 적도 없고, 내 말을 충분히 듣지도 않았고, 나한테 충분히 대답하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나를 실컷 위로한 적도 없었어.

베케트의 글은 인간 경험에 관한 역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한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며, 그런 내러티브 덕분에 우리는 그 이야기의 작가이자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우리 머릿속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그 자체. 우리는 그 목소리를 내뱉을 뿐 아니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목소리들은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우리를 구축한다. 그러나 머릿속의 이 목소리를 광기나 병리학적 상태로 볼 수는 없다. 서사학자 마르코 버니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목소리들은 내적 발화라는 자연적인 소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작가(베케트)가 이 정신적 발화들이 자아와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허구적 실험으로서 이 목소리를 조율되지 않은낯선 형태로 제시한다는 얘기다.

 

고흐 자신도 우리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내면의 생각들은 늘 겉으로 드러날까? 우리 영혼 안에 거대한 불이 있을지라도 아무도 자기 자신을 그 불에 데워본 적이 없으며,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한 가닥을 본 행인들은 그저 가던 길을 갈 뿐이다.”

철학자들은 일찍이 이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 테아이테토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묻는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우리 마음속에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이 개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실내 가운을 걸치고 벽난로 옆에 앉아 자기 자신의 사고 과정을 들여다본 그는 자신이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그 사고 과정의 존재였음을 발견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정신적 상태를 반추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방법 1법칙이었다. 미국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에 쓴 글에서 의식 상태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 내면에서 의식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어렵고 오류가 있을 수 있는일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을 관찰하는 것은 분명 가능했으며, 세계를 묘사하는 여느 방법과도 원칙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충분히 신중하게만 접근한다면, 내면 관찰을 더 잘하도록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철학자의 안락의자에서 내성을 끌어내 실험실에 집어넣은 것은 바로 독일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의 연구였다. 1879년 라이프치히에 최초의 심리학 교과서 저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내적 경험에 대한 사고를 통해 그는 두 종류의 내성을 구분했다. 첫째, ‘자기관찰이라 지칭한 것으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정신 과정에 대한 인과적 고찰이다. 데카르트가 아니더라도 벽난로 옆에 앉아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학문적으로 긍정적 기여를 하느냐는 것이다. 분트가 보기에 좀 더 형식적인 범주인 내적 지각은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가능하면 과학적 방법은 관찰자가 관찰 과정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분트가 마음에 두었던 두 번째 접근방법인데, 이 방식에는 관찰자를 관찰 대상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고단한 작업이 포함된다. 내적 지각 기법에서 연구자는 실제로 본인의 생각에 대해 임상적으로 분리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분트는 내적 지각기법이 그 자체로는 괜찮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나, 실험 참가자들을 철저히 훈련시킴으로써 보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략)

분트의 노력으로 내적 경험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이 구축됐고 이는 결국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까지 퍼져갔다. 에드워드 티치너 같은 분트의 제자들에 의해 내성법은 점점 편협해지고 기계론적으로 변했으며, 약점들특히, 입증 불가능한 자기관찰에 의존하는 것은 더 뚜렷이 드러나고 말았다. 20세기 중반 영미 심리학은 존 B. 왓슨과 B. F.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에 사로잡혔다. 오직 관찰 가능한 행동들을 측정하는 것만이 엄밀한 정신과학을 보장해주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내성은 경험 자체라기보다는 늘 어느 정도는 경험에 대한 기억이고, 기억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도, 경험을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경험을 변화시킨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제임스는 자기 생각을 반추해보려 애쓰는 것은 마치 "암흑이 어떤 모습인지 보기 위해 재빨리 가스불을 켜는 곳"과도 같다는 인상적인 표현을 썼다.

많은 이들이 보기에 1950년대 시작되어 이후 20여 년간 가속도가 붙었던 인지혁명은 내성을 관에 눕히고 박아 넣은 최후의 못과도 같았다.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한 통찰을 얻기 어려운 가운데 저자는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아이들이 언어에 숙련되어 혼잣말에 능숙해지는 과정을 보며 내적 발화의 단서를 짐작한다. 발달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아이의 독백이 사실 아무런 사회적 목적이 없는 자기중심적 발화라고 보았지만, 같은 시기 모스크바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아이는 타인과의 의사소통 수단을 갖게 되고, 거기서 비롯된 대화는 아이가 이후 자기 자신과 나누는 혼자만의 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적 발화의 토대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혼잣말소리 내어 하는 내적 발화에는 자기조절(ex- 본인의 이름이나 2인칭 대명사로 지칭하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과제 수행 시 감정 제어나 행동 조절에 유리하게 작용) 이외에도 제2언어 연습, 자서전적 기억의 직조, 환상의 세계 창조 등 여러 부차적인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저자는 내적 발화의 4가지 주요 요인을 대화’, ‘압축’, ‘타인’, ‘평가로 정리했다.

 

명칭이 말해주듯, 첫 번째 요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적 발화가 서로 다른 관점 간 대화의 형태를 띤다고 느끼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내적 발화가 종종 갖는 압축 또는 축약의 특성을 포착한다. 세 번째 요인은 소수의 사람들(응답자의 4분의 1 정도)에게 나타나는 경향으로 내적 발화에 타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이 요인에 속한 한 가지 항목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였다). 마지막 요인은 사람들이 내적 발화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하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가령, 이런 사람들은 나는 내적 발화를 통해 내 행동을 평가한다. 예를 들면, ’좋았어라든가 멍청한 짓이었어라고 혼잣말을 한다같은 항목에 동의 표시를 할 것이다.

 

당신이 신에게 말을 건다면 당신은 기도 중인 것이지만, 신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당신은 조현병에 걸린 것이다”(토머스 사스 2의 죄The Second Sin란 유명한 문구도 있듯이 청각 언어적 환각과 초자연성과는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 양원제 마음의 해체와 의식의 기원(한국어판 의식의 기원)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두 텍스트 일리아스, 오디세이정신의 거대한 저장고를 상징한다. “기원전 1200년경까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적 발화 형식으로 혼잣말을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빈번하게 청각 언어적 환각을 경험했는데, 여러 문화적 이유에서 환각이 초자연적인 존재들로부터 온다고 여겨졌다. 여러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이었다.” 제인스의 양 반구 분석은 지나친 단순화여서 문제점과 논란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영적 존재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현상을 소급해 생각하는데 단초가 되어준다.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숱한 간증의 실체를!

 

영국의 이 두 신비가(마저리 켐프 & 노리치의 줄리안. 이들이 속한 계보에 있는 잔다르크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를 진단하려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조현병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문헌을 가지고 소급적인 감별진단을 하자고 들면 끝이 없다. 만일 잔다르크가 조현병이 아니라면 청각적 특성이 동반되는 특발성 부분 뇌전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를 듣는 것과 결합된 마저리의 강박적 울음과 고함 역시 측두엽 뇌전증의 징후였을지 모른다. 마저리가 보는 환영에 떠다니던(본인은 이를 천사를 목격한 것으로 해석했다) 흰 반점들은 편두통 증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마저리가 들은 긍정적이고 온정적인 목소리는 의학적 증상들로 단순 환원하기는 힘들다.

 

임재감臨在感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다룬 연구는 많지 않다. 임재감은 흔한 형태로는 아이가 갓 태어난 부모들의 경우 아기가 침대에 같이 있는 듯 느끼는 경우가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는 것 역시 사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재감은 뇌전증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장애에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면마비 경험을 동반하는 경우는 더 흔하다. 수면마비의 경우 잠들거나 깨어나는 순간에 일시적으로 마비를 경험한다. 물론 자애로운 존재의 느낌은 종교적 경험의 전형적 특징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지켜봐주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느끼는데, 이런 존재들에게 늘 목소리가 있지는 않다.(중략)오늘날 우리는 사회적 존재 표상의 바탕이 되는 인지체계 및 신경 체계에 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과정들이 엉망으로 흐트러지면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일까? 현재까지 나와 있는 신경영상 증거를 보면 그렇지 않다. 환청을 겪는 동안 사회적 인지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아무런 확실한 증거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흥미로운 단서가 있다. 마음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 영역인 측두정엽의 손상은 일부 뇌손상 사례에서 임재감과 연관이 있었던 반면, 이 영역의 인위적 자극은 임재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화적 내적 발화의 신경 서명에 관한 우리 팀의 연구에서 우측 측두정엽 근처의 한 영역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내적 대화가 마음이론 체계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우리의 연구결과는 목소리를 듣는 경험에서 사회적 처리 과정이 내적 발화 네트워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다.

 

 

종교적 신비주의, 초자연성에 대한 사례 얘긴 끝이 없을 거 같아 이쯤에서 갈무리하고 생물정신의학의 건강한 움직임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목소리를 듣는 경험자들의 오픈 모임 ‘히어링 보이스 무브먼트접근법이 소개되고 있다. 현재 23개국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고, 영국에만 180여 개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이 운동은 환청이 뇌 안에서의 언어 처리나 발화 지각 네트워크 문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성 기억과 연관성을 찾으려고 한다. “목소리를 듣는 경험과 어린 시절의 불행, 특히 아동기의 성적 학대와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이미 나와 있다. 최근 리처드 벤털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성폭행은 이후 삶에서 나타나는 환각과 아주 밀접하게 구체적으로 연관돼 있었다.” ‘히어링 보이스 무브먼트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내적 목소리를 제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좀 의외였다. 원인을 파악하되 자신을 형성한 것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치유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면 발화가 이렇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 몰랐다. 저자는 반복해서 말한다. “내면의 혼잣말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기원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종의 소통 행위다. 이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정서적으로 유대를 맺고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온라인에 숱하게 올리는 글들도 그 변형일 것이다. ‘어떤 다른 은유도 마땅치 않아.’라고 말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쓴 베케트처럼 치열하지는 않더라도 내 안의 무수한 목소리 속에서 표류하지 말고 함께 스스로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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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5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현병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나라의 ‘무병‘의 경우 신내림이라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 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galmA 2018-08-25 07:37   좋아요 1 | URL
예. 이 책 저자도 함부로 재단해서 말하지는 않고 있어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는 입장에서 의견 개진하고 있지요. 신중하면서도 많은 걸 포용하려는 자세가 올리버 색스랑 많이 닮기도^^
신화부터 종교, 뇌과학 종횡무진 내적 발화 얘기 재밌었어요^^
 
[eBook] HOW TO READ 푸코 How To Read 시리즈
요하나 옥살라 지음, 홍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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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1962~1984)는 철학자, 정치 활동가, 사회 이론가, 문화 비평가, 역사가, 프랑스 최고 명문 학술 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교수라는 여러 타이틀로 지금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뒤에는 그림자(동성애자, 마약 상용, 사도마조히즘적인 성적 행동, 정신병원 환자 이력, 재규어 자동차를 즐겨 탄 속도광, 에이즈 사망)도 있다

 
나는 직접적, 개인적 경험에 의해 영감을 얻지 못한 채로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최소한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어야만 했다.”(미셸 푸코)
 
그는 이러한 자기-파멸적 한계 경험속에서 작업한 책들을 독자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사용할 도구 상자로 여긴 만큼 나도 기꺼이 활용할 생각이다. 9월엔 푸코를 집중 탐구할 생각이라 이 책을 길라잡이로 읽었다.
 
푸코의 의도에 더 근접할 목적으로, 우리가 깨지기 쉬운 자유에 꽉 달라붙으면서 깊이 뿌리박힌 사회질서를 의심하기 위해 돌 위에 단단히 고정된 모든 진리들을 기꺼이 버린다면, 아마도 이 도구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자유(freedom)”의 문제는 푸코의 철학적 여정 전체를 관통하여 작동해온 중요한 문제였다. 사회적 실천들에 관한 문제는 그의 연구 영역의 중심 테마였던 것이다.”
그의 생산적 힘의 개념경험과 지식의 형태들을 억압하고 검열하기보다는 이들을 생산하고 고무하는 힘은 섹슈얼리티, 젠더, 범법과 정신병에 관한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들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도구를 제공하였다.”
푸코는 일반적으로 데리다, 들뢰즈, 크리스테바와 같은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과 함께 후기 구조주의자에 속하는 사상가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그는 또한 실존주의가 소진된 1960년대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프랑스 사상가들의 세대에 속하기도 한다. 실존주의와 사르트르(1905~1980), 메를로퐁티(1908~1961), 보부아르(1908~1986)와 같은 사조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 철학에서 인간존재를 탐구한 것에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한계에 관해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상을 결정하는 요소로 인간 대신에 사회적, 언어적, 무의식적 요인들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후기구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철학적 분석에서 그간 누려온 특권을 거부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에게 철학은 축적된 지식 덩어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 내재한 교조적 믿음과 참을 수 없는 관행들을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비판적 실천이었다.”
(요하나 옥살라)
 
 
 
푸코의 작업은 세 국면으로 나뉜다.
 
자신의 역사적 연구들을 고고학이라 불렀던 시기(1960년대)
ㅡ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실천의 불가피성을 의문시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실천이 거쳐온 역사를 추적하는 것’, 이 시기 푸코는 주로 과학의 담론적 실천들과 그에 내재한 규칙성들을 연구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과학적 실천들에 있는 규칙들과 제한들을 확인함으로써 생물학 및 언어학과 같은 지식 영역과 이들의 연구 대상인 생명 및 언어가 어떻게 사유의 역사에 등장하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추구한 목적은 지식이 갖는 근대적인 형태들이 사상사 속에 있었던 근본적인 단절들에 기인함을 보여주고, 지식이 단순히 이전 유형들로부터 발전하여 보다 고등한 형태들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관학적 방법은 쓸데없는 형이상학적 사색에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철학 방식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는 실천들과 형태들의 무한하고 필연적인 성질을 급진적으로 의심하기 위하여 역사화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요하나 옥살라)
 
역사 그 자체를 생각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사고력이 침묵을 지키며, 판단한 착상으로부터 생각이 해방되는 정도와 이것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가능성의 정도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뚜렷이 보이는 사물들은 위태롭고 부서지기 쉬운 역사의 과정 속에서 마주침과 우연의 만남 속에서 항상 형성되어왔다.”, “광기는 한 사회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광기를 고립시키려는 감각의 형태들로부터 벗어나서 그리고 광기를 추방하려 하거나 붙잡으려 하는 반발 작용의 형태들을 벗어나서 광기는 존재하지 못한다.”(미셸 푸코)
 

 


힘에 관한 연구에서 선호된 계보학’(1970년대)
ㅡ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힘의 실천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지식의 형태들을 연구하였다. 예컨대 어떻게 범죄심리학의 발달이 범법자를 지배하는 의사의 힘을 가능하게 하였는가를 연구했다.”, “주체는 지식의 자율적이며 투명한 근원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힘 관계들과 배제들을 섞어 짜 넣는 사회적 실천들의 연계망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요하나 옥살라)
 
칸트에서부터 실존주의, 현상학의 초점이 되고 있는 주체의 일인칭적 현실 체험’(주체의 철학)을 비판하며 푸코는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지각하고, 행동하는 데 준거가 되는 근본적이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바뀌고 있는 생각들의 실천들, 범주들, 개념들, 구조들에 더 집중했다.
 
이러한 사물들은 만들어져 온 것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것들은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감정은 불변하나, 모든 감정은, 특히 가장 고상하며 냉담한 감정은 역사를 지닌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삶이 가진 지루한 항구성을 믿으며, 과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것이 자신의 힘을 무차별적으로 계속 행사한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역사 지식은 이러한 통일성을 쉽게 해체하고, 그 흔들리는 과정을 묘사하고, 그 강약의 순간을 정하고 나서 그 진폭을 규정한다. 본능들이 스스로에 맞서면서 끊임없이 자멸을 꾀하려는 곳에서 이것은 본능들의 완만한 완성과 그러한 움직임을 쉽게 장악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몸은 독점적인 생리 법칙에 복종하지만, 역사가 주는 영향력을 피할 수 있다고 믿으나 이것 또한 거짓이다. 몸은 수많은 별개의 규칙들에 의해 주조된다.”(미셸 푸코)
 
 

 
고대의 윤리로 연구 방향을 진행한 윤리 탐구’(1980년대)
ㅡ 『성의 역사 : 쾌락의 활용』(2권), 성의 역사 : 자기에의 배려』 (3권)
 
푸코는 행태에 관한 도덕 규약들이 고대와 그리스도교 시기와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도덕은 아름다운 삶을 살려는 목적과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기억들을 남기려는 목적을 가진 인간이 행했던 보편적 선택이었다.
 
성의 역사2권과 제3권은 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성도덕(sexual morality)을 다뤘다. 연구의 중심은 섹슈얼리티가 도덕적 영역을 구성하고 도덕적 문제 해결의 대상이 되는 방식다른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로 쓰인 텍스트에서 철학자들과 의사들이 주로 제기하였던 방식에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덕은 종교나 종교적 선입견과 무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법적 혹은 제도적 체계들과 무관하였다.”, “푸코는 우리가 속한 세속적 세계에서 개인적 실천으로 이해된 윤리가 지닌 잠재력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금욕과 자기희생을 자체의 가치로 삼는 그리스도교 도덕의 전통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작용하는 법 내부에서 도덕의 기초를 찾는 세속적 전통도 함께 물려받았다. 이러한 전통들에 부딪히면서 자아의 실천은 부도덕, 이기주의 혹은 규율과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가 옹호한 자아(self)의 실천은 전혀 다른 윤리의 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윤리는 창조적 행위(creative activity), 즉 자력으로 행하는 항구적인 자기 훈련을 의미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윤리와 이에 상응하는 자아의 개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해독될 수 있고 해방될 수 있는 진정한 자아란 없으며, 자아는 창조된그리고 창조되어야 하는것이라는 그의 논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의 후기에 이루어지는 주체 연구에서는 매우 새로운 분석의 축이 등장했다. 푸코는 아마도 자신이 지배와 힘의 실천을 지나치게 많이 주장했다는 점과 자신의 이전 작업에서는 결여된 분석적 축이 있었다는 점을 술회하였다. 그의 분석은 자아의 실천들, 개인들이 자신들에 대해 실행한 행동의 유형들에 관한 연구들로 보강되어야 했다. ‘섹슈얼리티의 경험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고고학과 계보학이 그에게 제공했던 방법론적 도구들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자신들을 성적 주체로 인정할 때 따르게 되는 유형들을 연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주체들이 자신들에 관하여 창조한 이해의 역사적 형태들에 대한 연구와 그들이 도덕 주체로서 자신을 형성하는 방식들에 대한 연구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의 초기 계보학적 연구들은 힘/지식 연계망이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을 연구하였으나, 그의 후기 작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 또는 그녀 자신을 모양 짓은 주체의 역할에 있었다. 후기 작업이 그의 초기 저작들보다 주체를 더 잘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후기 사유에서 푸코는 초기 저작에서 발견되는 예술의 전복적 역할 개념으로 되돌아갔다. 푸코는 자아의 윤리적 실천들은 미학과 밀접하게 연계되었거나 혹은 심지어 융합되었다고 주장하였고 그는 그것들을 존재의 미학(aesthetics of existence)이라 불렀다. 주체들이 자신들을 윤리적 주체로 형성할 때 거치는 과정은 예술 작품의 창조와 유사하다.”(요하나 옥살라)

 

 

(…)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개인들 또는 삶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상들에만 관련된 것이 되었다. 그러한 예술이란 예술가들이나 전문가들이 전문화한 혹은 실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 모두의 삶은 예술 작품이 될 수는 없을까? 왜 집 또는 등은 예술의 대상이 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게 안 되는 걸까?(미셸 푸코)

 

 

저자는 이 세 국면들이 세 가지 각기 다른 방법이나 대상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 연구에서 새로운 분석의 축이 추가되는 것으로 보고 포괄적인 관점으로 볼 것을 당부한다.  


     

인간의 소멸로 남겨진 빈 공간생각하는 것을 한 번 더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열림을 의미한다.”(미셸 푸코)

푸코에게 있어 철학은 자유로운 공간을 활짝 여는 것’(얽매이지 않는 철학자의 역할)이고 지성인의 역할은 대안적인 사고방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참여하는 정치 활동가의 역할)이다. 이는 그가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정치적 활동주의이긴 했으나 푸코는 투쟁에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하는정치 개입은 하나 정치 판단은 철학자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중요시하는 자유를 생각할 때 판단을 제시하는 보편성을 피하려 했다고 봐야 한다.
종합해 보면 푸코의 저작들의 핵심 줄기는 이렇다. 우리(주체를 포함한 세계)는 구성적이며, 역사적 기간 동안 특별한 방식으로 담론들이 조직되면서 그것들의 기능이 발생한다. 그가 쓴 평론 <저자란 무엇인가?>에서의 논점처럼 작가의 이름은 작품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할 뿐만 아니라 제한하고, 배제하며, 선별하며, 창작물이 자유로운 유포, 조정, 구성, 해체, 재구성에 쓰이는 도구가 된다.’ 그럼에도 푸코는 인간을 창조적 형성과 변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보았다. 그것은 자아의 창조적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주체들이 어떤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저항을 형성하고 시작해야 하는가는 미해결인 채 남았지만 어차피 그것은 푸코가 결정하고 판단해 줄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인식주체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결과가 아니라 그럭저럭 그리고 가능한 한 지식의 약간 정도만을 얻는 데 그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지식을 향한 열정이 지닌 가치란 무엇인가”(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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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5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ow to read」시리즈를 읽지 못했지만, AgalmA님의 글을 읽어보니, 푸코 사상에 대한 좋은 계보도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AgalmA 2018-08-25 07:23   좋아요 1 | URL
지젝이 쓴 「How to read 라캉」보려고 싸게 나왔길래 세트로 질렀더랬죠ㅎ 큰 기대 안하고 세트로 샀는데 생각보다 괜찮네요^^ 종이책은 품절;;; 이북 사놓길 잘한 듯요;;;
 

 

お, 흔한 감탄사 "오(oh)"지만 분위기로 휘어잡는...
이런 이미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분명히 내 안에도 이 정서가 있기 때문이지.
역시 만화란...그림이란...이미지란
단 몇 초 승부라면 글보다 강력하다.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도록 진화해왔으니 그럴 수밖에.

 

 

 

 

 

 

 

 

 일 안 하고 딴짓 꾸준하다-_-);

 

 

오늘의 음악 - We Are The Night / divin' / Tim Atlas / Cornelia Murr / HAGGARD

 


 

♪ We Are The Night "드림캐처"(일렉트로닉, single)
ㅡ 이번 여름 이 곡 여러 번 듣고 있다.

♪ divin' [The Puzzle Of  Tume](2018, 알앤비/소울, ep) "cocoshine"
ㅡ 개인적으로 이번에 나온 BTS 3집보다 더 낫다ㅎ 자기 색깔 잃지 않고 꾸준하면 뜰 가능성 충분하다고도. 드라마 ost 같은 거에만 잘 들어가도.... 아아, 역시 기회와 운인가!

♪ Tim Atlas [All talk](2018, rock, pop, ep) "Figure A"
ㅡ  이런 분위기 좋아합니다. 늘

♪ Cornelia Murr  [Lake tear of the Clouds](2018, 팝/일렉트로닉, 정규) "Different This Time"
ㅡ 이 주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넘 머있쩡

 

 

 

 

 

 

 

 



♪ 한밤의 독일 고딕 메탈 - HAGGARD 「Awaking The Centuries」

정식 멤버가 16명ㅎ (이 앨범에서는 합창단 16명이 더 참여)

록밴드+소규모 체임버 앙상블+소프라노

멜로딕 데스 형식의 기타 리프+리더 Asis Nasseri 그로울링 보컬+중세 포크+바로크 시대 고전음악 양식.

중세에 관심이 많은 아시스가 16세기 프랑스의 대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의 고뇌를 담은 앨범.

메탈 음악의 몰입감, 절규들, 스피드...
그런 게 이제 하나도 심각하게 와닿지 않는다.
늙은 거야?
인간은 분야/ 현실:가상 세계를 막론하고 과도하게 연극적이다. 믿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미신과 최면에 잘 빠지듯이 예술의 기저도 감동을 요구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인간적인 거야!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유혹과 도취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서글플 뿐. 이젠 그게 지겹다. 공연장을 점점 안 가게 된 건 그 때문인 거 같다.... 굿즈 도취에서나 좀 나와.... 그... 그러게;;;

건강한 회의주의자가 되는 건 어려워.

 

 

 

 

 

 

 

 

 

 

 

@@@@@@@ 내 머릿속 @@@@@@

 

 

세계사/경제 책 한 타임 정리를 끝내고...
현재 내 머릿속 복잡한 전개도

(완독 완료)
브라이언 리틀  『성격이란 무엇인가』
찰스 퍼니휴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진행 중)
슬라보예 지젝 외 『나의 타자-정체성의 환상과 역설』
슬라보예 지젝 외 『성관계는 없다-성적 차이에 관한 라캉주의적 탐구』

(가장 읽고 싶으나 현재 그림의 떡)
밀란 쿤데라 『정체성』

정체성 공부하려다 내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하넹;;;;

이 더위에 자발적으로 머리에 불내고 있는 중?

 


 

 

 

 

참지 못하고 읽기 시작
아아... 너무 좋은데?

 

 

"이 꿈이 불러일으킨 불쾌감이 너무 커서 그녀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녀를 이토록 혼란에 빠뜨린 것은 꿈이 현재 시제를 없애 버렸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현재에 치열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래 아니면 이 세상 무엇을 준다 해도 현재와는 맞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꿈은 한 인생의 각기 다른 시절에 대한 수용하지 못할 평등성과, 인간이 겪은 모든 것을 평준화하는 동시대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꿈은 현재의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며 현재를 무시한다. 마치 지난밤 그녀의 꿈에서처럼. 그녀 삶의 모든 폭이 무화되었다."
『정체성』(밀란 쿤데라 전집 09, 민음사)

이 참을 수 없는 문장력 같으니라구! 문장력 어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그랬고 밀란 쿤데라가 쓰는 꿈 이야기는 보르헤스와도 카프카와도 다르게 언제나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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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 세계사에서 포착한 경제의 전환점 5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황선종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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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세계사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역사를 쉽고 재밌게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한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로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는 경제가 주도하는 이 시대에 향후 미래를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세계 경제 전환점’ 51개 중심으로 흐름을 살펴본다.
    
책의 목차와 서문만 봐도 책의 전체 윤곽을 잘 알 수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 요약을 잘해주고 있다.

 

“서장은 화폐의 탄생에 대해 살펴본다. 은화와 동전이라는 두 개의 화폐 체계 가운데 은화에는 4000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제1장과 제2장은 유목민과 상인이 이끌어간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와 대서양의 자본주의적 해양 경제의 부흥을 서술한다.
제3장과 제4장은 바이킹 세계에 속하는 북해의 소국 네덜란드와 영국이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를 쌓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식회사, 국채, 보험, 지폐, 중앙은행, 상품거래, 주식거래, 버블 등의 발생을 살펴본다.
보통 일반적인 세계사에서는 그다음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서술하지만 이 책은 제5장에 금융시대의 도래에 관한 내용을 배치했다. 미국독립전쟁과 나폴레옹전쟁에 엄청난 군사 비용이 소모되면서 유럽이 금융의 시대에 들어서고 로스차일드 가문 등 유대인이 대두했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다. 제6장은 산업혁명과 대규모 철도 건설 등 유럽을 중심으로 단일 경제 세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그린다.
제7장은 영국의 파운드가 패권을 잡는 모습을 기술한다. 영국이 교묘하게 사상 최대의 해양제국을 구축하고, 재정 부문을 맡은 유대인이 파운드를 조종하여 은화의 시대에서 지폐의 시대로 전환해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제8장은 신흥국 미국이 19세기 말의 20여 년 사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제9장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유럽 경제가 몰락한 뒤 달러가 세계 통화가 되고 단일 세계 체제로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모습에 대해 서술한다.
제10장은 1970년대 닉슨쇼크 이후 달러의 황혼 시대, 달러가 힘을 잃고 기세가 붙는 아시아 경제를 다룬다. 인터넷을 활용한 금융의 확대, 일본버블 붕괴, 세계 규모의 증권버블 붕괴(리먼쇼크) 등과 함께 글로벌경제가 진행되면서 미국 경제가 공동화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바뀌어가는 격동기를 살펴본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예측할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폐의 탄생과 발달
“부란 화폐가 아니라 화폐로 살 수 있는 상품이다” ㅡ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화폐는 유목민과 상인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물품 교환증이었으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4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 이라크, 파키스탄, 중국의 산서성이 지금은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지역이 된 건 흥미로운 점이다. 지역적 폐쇄성을 바탕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거 같다.
“고대에 가장 풍요로운 농업 사회였던 이집트는 동쪽과 서쪽은 사막으로 둘러싸이고, 남쪽과 북쪽은 폭포와 바다로 막힌 폐쇄된 사회였기 때문에 물물교환이 2000년이 넘도록 이어지며 금속 화폐가 늦게 출현했다.”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던 유럽이 무역과 세계 진출에 활발했던 게 향후 세계 제패로 이어진다.
두 번 째로는 자본주의 경제로 발전하지 못한 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화폐의 기능을 주로 3가지 기능으로 보는데 “① 가치의 교환 수단, ② 가치의 계측 수단, ③ 가치의 보존 수단”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폐에는 제4의 기능이 막강해졌다. “④이자로 인한 자가증식”. 이 기능이 ‘금융’으로 이어져 자본주의 경제를 탄생시켰다.
‘이자 소득’의 막강함을 잘 알았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공동체 내의 이자 소득을 금지했지만, 로마제국이 고향에서 추방해 망국민이 된 유대인의 종교는 예외적으로 타민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을 인정했다. 유대인이 지금 경제 세계의 주축이 된 배경이다.
10세기에는 수학·부기 등 이슬람 문화가 상인에 의해 유럽에 전해지며 상업이 광역화·대규모화되었고 이로 인한 화폐 부족 현상은 신용경제(이슬람의 어음·중국의 지폐)를 확대했다.
    


    
● 대항해 시대 이후 경제 중심의 이동
“생태계의 변동을 동반하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대규모 동·식물 교류를 아미레카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Crosby)는 ‘콜롬버스의 교환’이라고 불렀다.”

 

 

대서양 주변에서 15세기에 시작된 대항해시대에는 미개발지 대서양이 상업을 토대로 개발되면서 ‘토지와 노동력의 상품화를 토대로 화폐를 활용하여 최대 이윤을 올리는 자가증식 구조’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의 틀이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서양의 역사를 토대로 19세기 후반에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게 된 영국의 대경제권이 형성되었으며, 영국의 번영은 아메리카합중국으로 이어졌다.…(중략)…대항해시대 이후 세계 경제는 ‘유라시아의 대륙 및 해양 경제’의 시대에서 ‘세 개의 대양이 다섯 대륙을 연결하는 경제’의 시대로 크게 전환한다. 그전까지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던 유럽이 17세기와 18세기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서양과 신대륙 덕분이다.” “19세기가 되자 자본주의 경제가 철도·증기선·전신을 이용해 유라시아 전통 경제를 단숨에 앞질렀다. 유럽 경제의 중심은 대항해시대 이후 유라시아와 연결되던 베네치아·제노바 등 북이탈리아 도시에서 대서양과 이어지는 저지대 국가의 안트베르펜(앤트워프),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했다. 이 대규모 경제 변동을 상업혁명이라고 부른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각국은 아시아의 전통적인 농업 사회, 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의 원주민 사회를 식민지로 삼았고, 17~18세기에는 노예무역, 사탕수수 플렌테이션, 설탕 판매(대서양 삼각무역)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화를 이룬다. 이와 비견되는 건 19세기 중반 무렵 영국의 기계제 면포, 인도의 아편, 중국의 홍차를 묶은 영국의 아시아 삼각무역이다.
대항해시대에는 ‘무적함대’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막강했던 스페인이 주목된다. 그러나 ‘① 신대륙에서 들여온 방대한 은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전쟁 등의 군비를 충당하느라 국외로 유출,  ② 유대교도 추방령으로 경제 능력이 높은 유대인을 국외로 추방, ③ 신대륙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국내 산업이 쇠퇴, ④ 거래를 할 때마다 세금을 징수하는 ‘아르카바라’라는 소비세로 인해 민중의 삶이 피폐” 등으로 스페인의 세력이 기울었고, 이후 17세기 네덜란드(세계 최초의 주식회사(1602년), 튤립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버블(1637년)),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와 국민 경제라는 세계 경제 구조가 완성되어가며 스페인 함대 격파-항해법 제정-네덜란드전에서의 승리-국채 제도-산업혁명과 철도 건설-금본위제 확립과 파운드 지폐의 세계 통화 획득 등으로 대서양 상권을 장악해 19세기 세계 최대 식민지를 차지한 영국, 19세기 말 북태평양에 진출하여 해양제국으로 성장하고 20세기에 제1차 세계대전 특수를 누린 미국으로 세계 경제 중심의 힘이 이동했다.
    
※ 유럽의 패악
“1820년대 영국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각 국가에 대한 투자 붐이 일어났으며, 1828년까지 브라질을 제외한 국가들은 영국으로부터 막대한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현재 신흥국들이 직면한 채무 위기의 기원은 182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선진국은 신흥국에 투자를 해왔으며, 투자가 확대되면서 대외 채무가 누적되었다. 그 누적된 채무는 외적 요인에 의해 문제가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은 몇백 년 전부터 되풀되어왔다.ㅡ 옮긴이)”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를 주인 없는 땅으로 결정하고 선점권을 내세워 1880년대 이후 약 20년에 걸쳐 분할한다.” 지금 아프리카의 끝없는 내분과 경제 후퇴의 원흉이다.

 

 


    
● 산업혁명 이후 현대까지

“초기의 산업혁명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50년 주기로 기술이 변화했다는 주장을 전개한 사람은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Nikolai Dmitrievich Kondratiev)이다. 이에 따라 약 50년마다의 변화를 장기파동(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고 부른다.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공업의 변화를 고찰할 때에는 이렇게 크게 묶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파동은 일반적으로 ① 제1 파동(1780~1840, 산업혁명), ② 제2 파동(1840~90, 증기기관과 철도), ③ 제3 파동(1890~1940, 전력과 철망), ④ 제4 파동(1940~90, 대량생산과 자동차), ⑤ 제5 파동(1990~, 정보통신)으로 구분한다.”

 

“현재 우리 생활을 이루는 물건 중 대부분이 제2차 산업혁명으로 출현했으며,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제2차 산업혁명(1870년대~)이 ‘현대’의 기점이 된다.”
앞서 살펴본 책인 사토 마사루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에서도 그랬지만 세계사 기록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를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대불황기(1873~96)의 경제는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계 경제의 변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디지털화에 뒤처진 현재의 일본과 대불황기 영국의 처지가 흡사하다.
영국은 대불황으로 인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왔지만, 자본 수출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자·배당·보험 수입 등이 호조를 보였기에 ‘세계의 은행’, ‘세계의 금융·서비스 센터’로 변신하여 위기를 벗어났다.”
    
세계사를 보면 경제 악화와 전쟁은 맞물리는 한 쌍이다. 현재는 경제 활동의 정체·후퇴(불황)와 물가의 지속적인 상승(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험한 적 없는 유형의 대불황(스테그플레이션)의 위험 속에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미국, 유럽, 일본의 기업들은 노동력이 저렴한 구식민지의 신흥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다국적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다국적기업의 증가). 동시에 제3차 산업혁명(IT혁명)으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며 지구화의 움직임이 강해졌다. 그 결과 국가의 틀을 넘어선 지구 규모의 수평 분업이 진행되었다. 세계은행과 다국적기업이 글로벌경제의 중심 행위자가 되고, 세계 규모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미국이 구상했던 단일 세계와는 다른 글로벌경제로 움직였다. 요컨대 아시아의 신흥국에서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아시아 경제가 부상하는 시대가 되고, 미국・유럽 등 선진 공업국의 우위가 흔들렸다. 세계의 경제사를 조망하면 자금은 성장지역으로 흘러가는 것이 철칙이다.” 미국은 군사와 정치력으로 경제권을 놓치려 하지 않고 있지만 베트남전 때와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깊이 개입했다가 경제적 파탄을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 과잉 투자로 인한 버블 붕괴도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책을 통해 세세한 경제 역사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으나 앞으로의 타개책 전망은 확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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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8-15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넘 좋아하는 실제적 실용적 가성비 뛰어난 작가입니다. ^^

AgalmA 2018-08-16 02:18   좋아요 0 | URL
그...그런가요. 전 이 저자 책을 처음 읽어서^^a 이 책 정리력은 뛰어난데 독창적인 해석력은 못 느껴서 별점 짜게 줬는데^^;

아무 2018-08-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책은 서문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읽고 있는 <투게더>에서도 느끼는 점이지만, 서문의 요약도 그렇고 절과 절을 넘어가는 부분도 그렇고 깔끔하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용해주신 서문을 보면서도 그런 점들이 많이 느껴지는..
1차 대전 직전과 같은 상황이 현재와 반복되고 있음에도 타개책이 분명치 않음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그걸 해결할 전망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AgalmA 2018-08-16 02:21   좋아요 1 | URL
네. 서문 정리만 봐도 작가의 내구력이 느껴지죠. 아무님 글도 그렇던데^^*

기후문제만 해도 미국 같은 강대국이 기후 변화 협약에서 마구 이탈하는 걸 막거나 제재를 못하는 식이니... 에효

겨울호랑이 2018-08-15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누군가에겐 불행이고, 누군가에게는 행운이라는 슬픈 현실은 경제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8-08-16 02:5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전쟁 물자 팔아서 부를 축적하기도 하니... 누군가는 전쟁을 바랄테고. 미국의 총기규제 문제만 봐도....
EU처럼 싸워봐야 들 될 거 없다는 걸 알아도 성질 나면 치고 박는 게 또 사람이라-_-;; 인간이 정말 이성적인 걸까요... 탐욕을 이성이라고 가린 것 같다고 역사가 말해주는 것 같아요.
 
[eBook]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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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특히 한국 교육에서는 세계사·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방대한 사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능력으로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그런 접근은 전혀 좋지 않다. 빠르고 쉬운 답을 도출하기 위해 상관 관계를 인과 관계로 연결 짓기도 쉽다. 맥락 찾기와 이해가 역사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이 책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원저 제목 세계사의 진수世界史極意, 2015)에서 사토 마사루가 강조하는 것은 아날로지. 아날로지란 비슷한 사물을 연관해 사고하는 방식으로, “미지의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도 이 상황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때 그 상황과 흡사하다라는 판단과 함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중요하다. 저자는 아날로지적 사고력 향상이라는 실리적 목적외에도 전쟁 저지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에릭 홉스봄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진단한 것과 달리 전쟁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날로지적으로 통찰하기를 전도하고 있다. 전도라는 말을 내가 괜히 쓴 게 아닌데, 아날로지가 신학적 사고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때 역사 신학을 공부하며 후지시로 다이조 선생에게 아날로지를 배웠다.

실증주의에 입각하는 사학에서는 사료를 다루는 것, 즉 사료 수집과 선택·비판·해석은 이성만으로 충분하겠으나 정신과학으로서의 역사학 연구는 이성만으로는 지극히 불충분하며 신체·이성·의지·감정·신앙을 가진 인간 주체로서 이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딜타이가 말하는 체험·표현·추체험에 의한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사료에 표현되어 있는 체험을 연구자 주체가 추체험해 이해해야 한다. …… 사학 방법론에서 중요한, 와 전체, 특수성과 보편성, 독자성과 동일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여기에 있다. 해석학은 먼저 사료의 언어학적·역사적(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석을 철저히 한 후, 그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다.” 후지시로 다이조 기독교사

이 세상 안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제외한다면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이 말했듯 절대정신이 변증법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단순한 흐름을 취하지 않아요. 역사는 훨씬 복잡한 현상입니다. 타인의 마음이 되어 생각하는 것, 타인을 추체험하는 것을 얼마나 거듭했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역사는 아날로지를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강력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역사를 역동적으로 독해하는 수법에 매력을 느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이나 신학이 어딘가에서 구체적인 인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후지시로 다이조, 수업에서 

 

이 책은 세계사를 통사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민족과 내셔널리즘’,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세 가지 주제를 핵심 문제로 보고 진행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제국주의 시대는 187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다. 구미 열강이 군비를 확장하고 세계 각지를 식민지나 세력권으로 삼아 지배하던 때였다. 16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중상주의(절대왕정이 실행한 경제정책)자유주의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신자유주의형태로 변천해왔다. 마르크스 자본론이 고찰하는 것은 국가가 시장을 간섭하지 않는 순수한 세계이지만 레닌 제국주의론독점자본이 국가와 결합하는 지점에 제국주의의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시장을 찾아 외국에 진출하지만 대외 활동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사이의 대립을 야기한다.” 알다시피 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의 귀결을 맞았다. “자유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패권국가가 존재하며, 패권국가가 약화하면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이 패권국가였던 시절은 자유무역 시대였다. 그러나 영국이 약해지자 독일과 미국이 대두했고, 군웅할거의 구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가. “2000년대 들어 브릭스BRICs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존재감이 낮아졌다. 20019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 2008년 가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군사와 경제 양방에서 미국의 약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개인적으로 이 2008년 즈음을 경계로 국제정세의 조류가 달라지면서저자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례로 피너클 제도와 스프래틀리 제도,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방공식별구역 설정, 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EU 회원국과 미국 등이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동남아 투자로 영향력 강화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식민지를 두지 않으며 전면전을 피하는 게 신제국주의 특징이지만, 착취와 수탈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제국주의의 본질과 행동양식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화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강력해지면서 국가의 징수 기능이 약화되자(법인세율 씨름, 조세회피처 등등을 생각해보라) 국가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데 제국주의 시대와 비슷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보호주의가 대두했듯이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겉으로 자유무역체제 옹호를 외치면서도 보호주의로의 전환을 교활하게 도모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는 유럽연합·슬라브연합·아메리카대륙연합·중동연합·아시아연합 형태로 분할되어 있는데, 세력 균형 상태를 조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민족과 내셔널리즘
저자는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민족의 원형이 서유럽이 아니라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탄생했기에 지역의 역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등 서유럽은 비교적 이른 단계에 주권국가로서의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동유럽을 포함한 15세기 말의 신성로마제국(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동부·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 등)은 서유럽과 달리 혼돈 상태였다. 베스트팔렌조약에서부터 프랑스혁명 시대까지 유럽의 국제정치사를 보면, 신성로마제국의 동쪽 지역에서는 극심한 영토 변경을 동반하는 전쟁이 잇따랐다.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국가들에서는 민족의식과 국민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제국을 리더로 하는 범슬라브주의와 독일·오스트리아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범게르만주의 사이의 민족적인 대립이라는 구도를 띠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확대된 내셔널리즘이 중·동유럽에서 복잡한 민족 문제를 생성해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세계사 교과서나 참고서가 가르쳐주지 않은 내셔널리즘론의 지적 거인 삼인방 베네딕트 앤더슨·어니스트 겔너·앤서니 스미스의 이론도 가져와 자세히 비교 설명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에는 원초주의와 도구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고가 있다.
원초주의란, 일본 민족은 2,600년 동안 이어졌다든가 중국 민족의 역사는 5,000년이라든가 하는 식의, 민족에게는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원천이 있다는 실체주의적인 사고다. 이때 구체적인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언어·혈통·지역·경제생활·종교·문화적 공통성 같은 것들이다.”
도구주의는 민족이란 개념을 엘리트들이 만들었다고 보는 사고다. 다시 말해 국가 엘리트가 통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내셔널리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도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가 앤더슨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국민이란 마음속에 이미지로 그려지는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다. 즉 일본 국민이란 우리는 일본인이다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공동체라는 이야기다. 이미지일 뿐 실체적인 근거는 없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국민의식이 성립한다는 것이 앤더슨의 생각이었다.”
 
앤더슨
나폴레옹이 침략한 후,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념이 유럽 국가로 퍼진 사실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이념에 대항하고자 러시아는 정교회·전제專制·국민성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세 번째 원칙인 국민성이 이 시기에 새롭게 추가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19세기 말이 되면 알렉산드르 3Alexander 의 치세 아래, 발트 해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이처럼 지배층과 지도층이 위에서부터 국민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관주도 내셔널리즘인데, 이는 왕권의 정통성을 지탱하는 새로운 도구로 기능함과 더불어 새로운 위험을 동반했다 앤더슨은 지적했다.”
 
겔너
최초에 민족이 있은 후 내셔널리즘이 생겨난다는 원초주의적인 통념은 그릇되었으며 내셔널리즘이라는 운동에서 민족이 생겨난다는 것이 겔너의 사고다. 겔너도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감각이 근대와 함께 생겨났다고 보았다.”
산업화에 의해 유동화한 사람들 안에서 생겨나는 동질성이 내셔널리즘을 싹트는 기반이라는 것이 겔너의 내셔널리즘론이다. 앞서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은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소개했는데, 내셔널리즘 형성에도 노동력의 상품화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
민족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여긴 앤더슨과 달리, 스미스는 근대적인 네이션을 형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았다. 무언가를 나타내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어인 에스노스ethnos 또는 현대 프랑스어인 에스니ethnie. 그렇다면 에스니란 무엇인가? 스미스는 에스니란 공통의 조상·역사·문화, 어떤 특정 영역과의 결합을 지니며 내부에서의 연대감을 소유한, 이름을 가진 인간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근대적인 네이션은 반드시 에스니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에스니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위적으로 민족을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니를 가진 집단이 반드시 네이션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 지극히 일부가 네이션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며, 네이션이 온전한 자기 국가를 가지는 경우는 더욱 제한된다. 이 에스니라는 개념이 역사와 결합함으로써 정치적인 힘이 탄생한다. 이 힘에 의해 에스니는 민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앤더슨이나 겔너의 도구주의를 더 선호하지만 원초주의에 가까운 스미스의 에스니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족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문화 엘리트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탈린이 이슬람원리주의혁명이 확대되는 것에 위기를 느껴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 투르키스탄을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이렇게 다섯의 민족 공화국으로 분할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관주도 내셔널리즘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민족의식에 종교 문제까지 엮이니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앞 장에서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이 공동화空洞化한다. 이 빈 곳을 메울 가장 강력한 사상이 내셔널리즘인 것이다. 신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내셔널리즘이 다시금 소생하고 있다. 합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셔널리즘은 근현대인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를 원천으로 삼은 EU와 이슬람을 원천으로 삼은 IS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게 참 많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서양의 내정 간섭이 문제를 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지배하기 위해 알라위파를 중용했고, 현지 행정과 경찰·비밀경찰에 알라위파를 임명했다. 식민지를 지배할 때 소수파를 우대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다. 다수파 민족이나 종교집단을 우대하면 독립운동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파를 우대함으로써 종주국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994년에 제노사이드genocide 벌어진 르완다에서도 종주국인 벨기에는 소수파인 투치족을 다수파인 후투족보다 더 우대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사정을 떠안고 있었던 시리아에 아랍의 봄이 밀어닥쳤을 때,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아랍의 봄이 일어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체제세력이자 수니파인 무슬림동포단이 존재를 드러냈다.”
 
내셔널리즘의 대두로 절대자의 위치에 민족이 들어옴으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 앞에 국민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인간은 세계대전을 치렀다.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량의 살인과 파괴는 이성과 무신론으로 이루어진 계몽의 시대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냈다. 무신론의 시대, 즉 계몽의 시대는 1914년에 끝을 고했고, 그와 동시에 불가능의 가능성으로서의 신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였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어도 여전히 계몽정신이 왕성했으므로 비합리적인 정념(전근대적인 보이지 않는 세계’)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감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계몽사상이나 합리적인 사고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어두기만 했다. 그 영향은 21세기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지식인들이 격투를 벌였던 계몽의 어둠이라는 문제를 외면하고 만 것이다. 그때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청구서가 되어 날아온 현재, 격차와 빈곤, 배외주의, 영토 문제, 민족 분쟁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EU 탄생 목적은 내셔널리즘 억제에 있었다.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그들로서는 전쟁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톨릭·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결합이었다. EU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뻗어가지 않은 것은 정교회 문화권을 포섭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종교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결합에는 민족이나 내셔널리즘을 초월하는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IS도 글로벌한 이슬람주의를 통해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문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초월해 인간을 살해하는 사상이 되었다 점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한 저자는 앤서니 스미스의 에스니론이 이슬람원리주의를 무력화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계 여러 민족에 존재하는 에스니를 자극해 이슬람교에 대한 귀속의식보다도 민족의식을 강화해 이슬람원리주의의 침투를 막는다는 것인데, 이 맞불 작전이 제대로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정리]


이 책 속에서 전개된 역사 흐름은 다음 단락으로 요약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빈곤과 격차 확대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부와 권력의 편재가 초래하는 사회불안과 정신의 공동화는 사회적인 유대를 해체하고, 모래알처럼 분리된 개인을 고립시킨다. 그러면 국가는 내셔널리즘을 통해 국민들의 통합을 꾀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국 내의 소수민족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민족 자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동향을 보아도 구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는 유사하다. 위에서부터의 관주도 내셔널리즘이나 배외주의적인 내셔널리즘으로 사람들이 동원당하는 한편 합스부르크제국에서 체코 민족이 각성했듯이, 현대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오키나와가 에스니 발견에 기초해 스스로 민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현재의 국민보다 더 하위의 네이션, 즉 더 작은 민족에게 주권을 가지게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등장한다. 2장의 핵심을 이루었던 아날로지는 이상과 같다.
 
오키나와나 스코틀랜드와는 대조적으로, 국민국가의 위기를 지역과 영토를 초월한 이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바로 종교적인 이념이다. 이번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대는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나 이슬람교에서도 사회 위기에 복고주의·원리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 지역과 영토를 초월해 확산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현대의 EU도 관점에 따라서는 서로마제국, 나아가 로마제국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다

첫 번째는 다시 한 번 계몽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인권·존엄·사랑·신뢰 같은 손때 묻은 개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근대의 정신, 바꾸어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몇 번이고 서술한 대로, ‘보이는 세계를 중시하는 근대의 정신은 구제국주의 시대에 전쟁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재부상하리라고 본다.”

 

잘 될까. 매우 공감하며 읽긴 했지만 이 밤 뒤에 아침이 오리라는 건 현재에서는 늘 예측과 희망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하루 더, 일생을 노력한다.
 
 

 

정리할 내용이 많아 아주 개괄적으로 이 리뷰를 썼다. 저자의 해석 깊이가 얕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지젝을 읽었을 때를 생각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후시지로 다이조처럼 생각할 것만도 아니고, 아날로지 즉 유추적 사고의 맹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든 반박하든 당신의 아날로지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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