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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유기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9월
평점 :
유기성에 관한 소고
현재 청년세대에게 꽤 영항력있는 목회자, 유기성의 책을 봤다. 왜 사람들이 유기성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마 10만 부는 팔렸을 것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종교지도자의 유형을 다양하게 나누는데, 그중에는 제사장(사제)형 지도자와 예언자(선지자)형 유형이 있다. 제사장적 종교인은 인간의 운명을 신에게 위탁함으로써 초월적 존재로부터 오는 지지와 위로를 제공하며, 신과의 관계를 통해 안전과 확신을 그리고 세속의 가치규범을 성화시키고, 사회의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 예언자형 종교지도자는 기존 사회의 제도화된 가치 규범의 진위를 추적해서 그 가치규범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규범을 제시한다.
언뜻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은 세속적인 자아인 '나'를 죽이고 새로운 규범인 '예수'를 제시하는 예언자적 유형의 책으로 느껴지고, 저자인 유기성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에서는 세속적 평가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유기성은 예수로 살게되면, 세속적 가치가 전복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책의 전체 내용을 보면 주장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유기성은 예수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기성이 말하는 '예수로 사는 사람'은 그가 말하는 여러 예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유기성이 말하는 예수로 살아서 성공한 삶의 전형들, 결과는 결국 세속적 성공들과 다름이 없다. 예를 들어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살기로 하는 사람은 병이 들면 병이 낫고, 돈이 없으면 사람은 돈이 생기고, 사고를 당하면 결국 극복한다. 또 예수로 살기로 하면 교회는 무조건 부흥한다. 교인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다시 코린토스를 방문하기 전 바울은 이미 코린토스에 퍼진 자신의 적대자들의 비방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향한 비방에 논박하고, 자신의 사도적 정당성을 변호하고 옹호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바울은 본인이 구태여 자랑을 해야한다면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회심한 뒤, 코린토스에 두 번째 편지를 쓰기까지 약 20년이 가까운 시간을 예수운동에 투신했던 바울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적대자를 물리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일명 '바보연설'을 시작한다(고후 11:16 이하).
그는 자신의 약함말고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한다(고후 12장). 그는 기존의 가치체계에서 자랑이 될 수 있는 '강함'이 아닌 병듦, 약점, 연약함, 곤란, 궁핍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기성의 예수로 사는 삶에는 이런 가치의 전복은 실질적으로 없다. 종교적 성공이 세속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예화가 압도적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중에 병들어 죽고, 가난하게 살다 죽고, 사고 당해 죽고, 궁핍하게 사는 삶은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유기성의 책이 얘기하는 예수로 사는 삶은 심각하게 추상적이다. 그러니까 자아를 죽이고 예수로 살자. 기도하자. 말씀 읽자. 이것이 이 230여 페이지 책의 전부이다. 이런 추상적인 원리는 결국 예수로 사는 삶의 구체적인 수준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게 된다. 본인이 믿는대로 사는 것이 곧 예수로 사는 삶으로 긍정된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종종 교회에서 두 사람이 연애를 결정할 때, 기도해보고 사귀는 걸 결정한다고 할 때가 있다. 흥미로운 건 둘이 똑같은 신에게 기도했음에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랑 사귀라는 마음을 주셨어", "나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런 웃긴 일이 종종 발생한다. 결국 자기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까 추상수준에서 자아를 죽이고 예수로 살자는 말의 실질적 의미는 그냥 너 살고 싶은대로 살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기성이 잘못된 삶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곤, 싸움, 욕심, 음란함 정도가 없는 삶인데 이는 세속적 윤리와 별다를 것이 없다.
막스 베버는 불평등한 세상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신이 정당한지 묻는 신정론이 감당한다고 지적하는데, 유기성도 이와 같다. 그는 현실이 불공평하고 어렵더라도 결국 죽으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리고 현세에서의 불평등과 고생이 천국에서 더 크게 보상 받는다고도 이야기한다. 전형적인 종교적 수사인 것이다.
그리고 유기성은 믿음으로 살게되면, 결국 열등감 없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는 사실 자기계발담론과 매우 유사하다. 긍정심리학이나, 자기계발의 원조격인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 심리학과 다름 없는 예수로 사는 삶인 것이다.
결국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에서 말하는 '예수로 사는 사람'은 신앙으로도 세속으로도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개인은 자신은 삶과 가치를 전복시키는 불편함 없이도 예수 믿는다는 안심을 얻고 지금껏 살아온대로 사는 것이다. 예수는 그 삶을 응원해준다. 그리고 종교적인 효능감도 얻게 해준다. 환원하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람이 아니라 예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