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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내 영혼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이종태 옮김 / 복있는사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교에 가서 내가 속았음을 알았다. 중고등학교 때 봤던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드라마 속의 대학생의 모습과 내 모습은 너무 달랐다. 대학생이란 책 두어 권을 옆구리에 끼고 축제를 즐기고 동아리 선후배와 산과 바다로 놀러 다니고 변화하는 계절을 즐기면서 자유롭고 여유만만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대학 생활하면 과제로 밤을 새며 침침한 독서실에서 뻐근한 목 근육을 풀어주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대학 가봐야 별거 아니라고 냉소적으로 말씀하시던 일부 선생님들의 말씀이 내가 경험한 현실이었다.
대학 뿐만이 아니다. 좋은 직장, 넓은 집과 멋진 자동차, 절대 권력, 열정적 사랑도 별 것 아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망가지고 불행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기를 원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 뭘까?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목표도 없이 살아야 하는가? 뭔가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 인생 자체가 헛된 것인가? 성경에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게 말한 성경 저자는 부와 지혜와 명예와 권력을 겸비한 솔로몬 왕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보니 인간의 그 모든 수고와 노력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탄식한다.
그렇게 인생이 공허함을 느낄 때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이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기독교 서적이다. 그러나, 저자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적 답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허전함과 갈망에 대해 저자가 알고 있는 최고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제목이 아쉽다. 제목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띄어버리니까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이 못 읽을 것 같다.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며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눈에 띄면 좋으련만 '목마른 내 영혼'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분명 그들은, 이 책은 '기독교인이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현대인은 맹목적으로 신을 믿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환경에 처해 있다. 인간은 원자를 쪼개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체세포를 통해서 생명을 복제하는 첨단 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수많은 철학 사상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은 자본주의를 통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시켰고 부를 재분배해서 모두가 같이 잘 살려는 정치적인 노력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심리학으로 해부되고 있고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려면 스스로가 알고 있는 현실과 느낌에 근본적인 모순이 되지 않는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이나 철학, 정치, 심리학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그것들이 우리의 허한 공간을 채워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최첨단의 과학 시대에 경제적 여유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공허함을 느끼기 쉬운 사람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의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무언가 진지한 주제로 생각을 돌린다."
배가 부를 때 목적을 성취했을 때 정상에 올랐을 때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더 큰 빈방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왜 인간의 내부에 이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 곳은 바로 인간을 창조한 신이 스스로가 거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다. 저자가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스스로가 그 공간을 인식했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대답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공감하겠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로 생각할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도 처음에는 헛소리라고 생각했고 다른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그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런 책들을 통해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이 진리 안에 거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다.
이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은 꿈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꿈이 되어야만 하고 또 꿈이 될 것이다 (노발리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이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혹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인/생/이/ 꿈/이/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인생은 제 1의 현실에서 제 2의 현실로 밀려난다. 마치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꿈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주 마음이 편안해진다. 꿈에서 설사 내가 죽더라도 나는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나는 꿈을 즐기기 시작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은 결코 죽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아마도 그 시작의 순간은 바로 인생이 편안하고 행복한 꿈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요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 책 안에 인용된 C.S.루이스의 은의자(The Silver Chair)의 한 부분(p.123)과 비슷함을 느꼈다. 기독교가 거짓이고 인간은 우연히 발생했거나 혹은 생존기계로서 유전자에게 반항하는 존재이거나 전생에는 개나 돼지였다가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이거나 혹은 기계가 만든 매트릭스 세계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그런 세상과 그런 인간이 진실이라고 가정하자.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세상과 인생은 '의미없는 쓰레기'같은 것이다. 기독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셔서 아주 의도적으로 그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존재이고 한 생명의 값어치는 온 우주 전체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의 죽음으로 나를 구해내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세상'과 '나'라는 존재는 그렇다. C.S.루이스의 '은의자'의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짜라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지지할 것이고 그 이야기 편이다. 기독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현실은 행복하고 따뜻한 사랑의 공간과 그 중심에 있는 나의 모습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을 행복한 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죽고 나서는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말처럼 내 안의 빈 공간을 인식하였고, 하나님을 통해 그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때때로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고 고통과 아픔이 가득찬 곳이지만 기독교는 세상 속에서의 삶을 하나님과 나와 이웃들의 러브 스토리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절망스러운 내 모습을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게 하였다. 솔직히 나는 죽고 나서 영원히 멋진 곳에서 살지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다. 마치 20년 후에 멋진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 그 전에 거지같이 살아야 하는 것과 지금부터 계속 적당한 주택에서 사는 것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20년 후에 내가 살아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 전에 거지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즉, 현재 나에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의심할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한 영생은 죽고 나서가 아니라 지금 진행형으로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내 삶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공허함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는 이 책을 읽고 허무함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혹은 기독교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부끄럽고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차갑고 너저분하고 우스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인생이 달콤하고 행복한 꿈이 되는 순간'을 맛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