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서른넷, 물음표 위에 서다 - 빛나는 삼십 대를 위한 현실적인 멘토링
권은아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에 일단 눈길이 간다. 서른 넷이라니? 서른 셋도, 서른 다섯도 아니고 34라니(부끄럽게도,내 나이잖아!) 책 속에서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추측컨대 서른 다섯이면 이미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것 같고, 서른 둘이나 셋은 아직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가 아닐까? 군대를 다녀온 남자가 27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면 34살은 대리 4년 차가 되어 과장 진급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시기이기도 하다(적어도 내가 다녔던 회사는 사원 4년, 대리 4년의 체계였다). 뭐가 되든 어쩌랴? “서른셋 싱글 내집마련” 이라는 책과 “서른다섯까지는 연습이다” 또는 “서른다섯의 사춘기” 사이에 낀 것이 서른 네 살인데.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의 제목에서 느낌이 온다.
 

 “인생의 진도표” / “관계의 주기율표” / “마침표가 없는 일” / “쉼표도 삶이다”
 
랩처럼 운율 Rhyme을 맞춰 읽어보면 그 의미가 더 살아난다. 각각이 문장 내에서 그리고 전체 흐름에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라고 생각된다. 저자가 짬짬히 적은 글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하지만, 제법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마치 깐깐하지만 알고 보면 자상한 언니/누나가 술 잔을 마주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최근 나는 어릴 적 나를 키우고 이뻐해 주신 외할머니를 천국으로 보내 드리게 되었다. 마지막 장례 예배를 드리고, 외할아버지 홀로 40년 간 지키신 무덤에 나란히 내려드리면서 이별의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픔을 달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은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남들 눈에는 충분히 사신 분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별이 너무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P.117)”
 
라는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아직 내가 할머니께 갚아야 할 사랑은 너무 많이 남았는데….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 구절에 마음이 꽂힌 것은, 내가 비슷한 사건을 막 겪었기 때문이리라.
 
 
 
자기계발서 혹은 자전적 에세이의 특징은 저자와 독자가 교감하는 지점이 개개인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적어도, 권은아씨와 나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 대해서 그 순간만큼은 교류하고 있었다. 이런 책은 크게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읽는 이가 어떤 상태냐,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감에 실패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을까?
 
 
일에 지쳐서 쉼표가 필요한 사람, 그러나 커리어에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를 찍고 싶은 사람, 인간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 명확한 표가 필요한 사람, 내 인생이 지금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표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세세하고 잔잔하면서도 울림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정치경제학 - 경제와 정치의 은밀한 거래에 관한 보고서
박훈탁 지음 / 더난출판사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아보라 1997.
 
돌이켜 보던데, 1997년은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해였다. ‘동렬이도 없던’ 해태 타이거즈 왕조가 마지막 우승을 한 해였으며, 풋풋한 사랑의 열병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해였으며, 동시에 수능문제집에서 헤어나지 못한 10대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은 적어도 당시를 기억하는 대한민국 모든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해였다.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물리적인 실체도 불명확한 단체가 한국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IMF의 관리를 겪게 된 이유가 소위 말하는 ‘전염이론’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동남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마치 태풍마냥 한반도에 상륙해서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한국이 그런 ‘수모’를 겪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당시 동남아를 들었다 놨다 했던 Hot Money는 오히려 한국으로 들어와서 97년 가을 대한민국은 적어도 재정적으로는 오히려 안정상태에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된 목표이자 일관된 주장은, 1997년 말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트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치와 경제가 음험한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일반 대중들이 정치인들의 보편적인 특성에 속지 않고 현명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이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 또는 ‘이 모든 게 청계천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본인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전자를 택할지 후자를 택할지는 다르겠지만, 사회가 이 모양인 것이, 내 은행잔고가 이 수준인 것은…모든 것이 다 대통령 OOO 때문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와 유사하다. “IMF가 발생한 것은 1997년 11월에 발생한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의 ‘금융개혁법안 거부’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또한 정치인들의 포풀리즘적 성향과 단기 성과집착주의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의 목숨은 미국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FRB의 의사결정은, 정치적으로 절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은 경험적/실증적 분석과 동시에 이론적 배경을 통해 금융위기가 발생한 ‘인과적 과정 Causal Process’를 설명하는 탄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Bruce G. Carruthers의 비교경제사회학 논문에서 단서를 포착하여, 4단계의 논리적 매커니즘을 통해 금융시장은 정치적 안정성과 연계되어야만 성립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어떠한 반박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저자 주장의 핵심은 ‘역사적 제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탄탄한 이론적 근거를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반적으로 다소 불편하다. 너무 단정적인 어투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또다시 글로벌증시 대폭락과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그 시기가 에셋자산운용 강방천 회장이 일본의 국가부도가 날 것으로 예측한 2017년이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P.211)”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자의 주장이 맞다는 보장도 어디에도 없다.
 
저자의 이러한 강한 – 그리고 삐딱한 - 시선은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닥칠 잠재적 위기를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문제의 원인과 본질을 (남과 다르게) 꿰뚤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소위 반골기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다수보다 똑똑한 소수’라는 의견 다양성의 관점에서 깊게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편, 이런 사고방식(이런 저서)에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그 비판의 주체가 되는 자기 자신만큼은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책의 많은 부분이 ‘역사적 제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렇게 지나치게 특정 이론에 집착하고 마치 만능열쇠와 같이 활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자그마한 반론에 의해서도 전체 주장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내외의 학술적 논거를 비롯하여 다양한 참고문헌을 자랑하고 있지만, 후반부의 글로벌 경제에 대해 진단하는 부분에 이르게 되면 마치 Economist지와 Wall Street Journal의 요약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물론 근거 없는 예측과 단정은 위험하다. 그러나 특정 소스에만 의존하는 주장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저자 박훈탁 씨는 과거를 돌이켜 살펴보고 일정한 흐름을 찾아내어 논리를 구성하는 능력은 탁월하나, 아쉽게도 미래를 내다보는 독립적인 시야는 아직까지는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
 
 
방대한 결론의 끝은,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주식투자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을 접하게 되면 힘이 쭉 빠지고 만다. 국내외의 정치경제적인 그릇된 구조에 대한 진단과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였을까? 혹은 어찌되었건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강박증 때문이었을까?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다.
     특히, 선물 투자는 절대로 하지 말되 선물 시장의 흐름을 읽은 다음에 초우량주와 ETF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토지 구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주요 지역의 땅값은 비싸니까 지방 농지를 구입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한 지리적, 시간적 여유 확보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라고 한다.
  
두 주장이 참신하면서도 실행 가능하게,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위험한 정치경제학>은 앞으로도 시리즈로 출간할 계획인 것 같다. 정치인들의 본질적인 음흉한 속성을 밝혀내고 비판하는 것은,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메이저언론부터 블로거까지 모두가 갖춰야 할 중요한 태도이다. 다만, 부디 다음번 ‘위험한 정치경제학 2.0’에서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비전까지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당장 세계경제 공부하라 지금 당장 경제 시리즈
박유연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명색이 상경계열을 졸업하였지만, 경제학은 공통필수에 해당하는 과목들만 듣고 남은 학창 시절 내내 외면했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은 내게 전혀 매력적이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사회에 나와 이런 저런 일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단지 학문으로서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동작 원리로서의 ‘경제’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왔고 마치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듯 학창 시절의 무관심이 아쉽게 느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펴기만 해도 도대체 미국의 금리 인하 소식이 한국 증시에 왜 영향을 주는지, 중국의 부동산 시장의 작은 변화가 중남미 국가의 경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직관의 수준이 아니라 ‘음…그러니까 말이지…’하면서 명상 아닌 명상에 접어들게 만드는 것은 나름 凡 ‘전공인’으로서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곤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빛비즈에서 출간된 ‘지금 당장 세계경제 공부하라’의 기획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빛비즈에서 기존에 나왔던 지.당. 시리즈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세계경제’를 다룬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은, 더 이상 신문의 경제 섹션을 읽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반가운 이야기나 나름 없었다.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인 저자 박유연 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뉴스를 보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저 피상적으로 소식을 접하고 단편적으로 판단할 뿐이다.[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국제 경제 뉴스가 우리 경제에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고, 결국 내 일과 재산이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라고. 유레카!

 

 

책의 구성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흐름을 따라 읽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내용도 분량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이 손에 들어온 그날 한번에 다 읽어버렸다.


1장에서는 세계 경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논한다. ‘세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속해 있는’ 영역임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에게도 ‘세계 경제’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세계 경제를 논하기에 앞서 2장에서는 기본 원리에 대해서 어렵지만 쉽게 이야기해준다. 3장에서는 1장과 2장에서 논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2년 현재 세계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주요 경제 블록으로 나눠서 – 미국, 유럽,아시아, 중국 등 –으로 설명하면서 요동치는 흐름 속에서의 판도 변화와 함께 리스크 요인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So what? 을 말한다. ‘세계 경제가 어떤 원리에 따라서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겠는데…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관계야?’ 라는 의문에 대해 우리의 약점과 리스크, 그리고 대응방안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구성 자체가 탄탄하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성을 따라가다보면 세계 경제가 내 은행 잔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어려운 개념이나 흥미로운 사례는 각각 별도의 박스처리를 해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종종 컬러풀한 그래프를 통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 세계의 경제화는 불가피한 변화이다.


특히나 인터넷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초연결(Hyper-connected) 시대에서는 더더욱 흐름이 빨라지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Occupy 운동처럼 경제의 비대화, 탐욕화에 반대하는 입장도 존재하고 그에 대해서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의 세계화를 금지하거나 막기에는 ‘세계 경제’는 이미 저절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되어 버렸다. 원하건 원치 않건 그 흐름에 대해 어떻게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지금 당장 세계경제 공부하라’는 가까이 두고 살펴 볼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스토리콜렉터 11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북로드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역무원 이모카와 미쓰루조차 한번도 전당포 간판을 직접 본 적이 없는데열한 살 난 아들인 야마토는 마치 실제로 본 적이라도 있는 듯한 말투로 전당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지만나는 전당포에 가본 적은 없다아주 어릴 적 동네에 전당포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지만전당포에 대한 ‘추억’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렇지만 물론 전당포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참 유치한 제목이다아이들이 전당포에 추억을 맡기는 뻔한 감상에 젖는 이야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 넘기다보니 이 “ㅊㅜㅇㅓㄱ” 전당포가 재미를 담보로 나의 시간을 빼앗아 가버렸다.

 

소설은 리카와 하루토라는 각기 다른 인물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7년에 걸쳐 이야기하면서두 사람이 추억을 맡아주는 마법사를 중심으로 교차하는 지점까지를 보여주고 있다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에 대한 싫은 기억을 모조리 전당포에 맡기는 하루토와왕따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고 호감 갖던 남자애로부터 고백 받는 리카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등 많은 이들이 어릴 적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요시노 마리코는 너무나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리카가 ‘쿨해서 멋있다고 생각한’ 유키나리와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고 결국에 씁쓸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은 10대 특유의 감성과 함께 그 당시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성적 사고를 잘 섞어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정이 식어가면서 종결 지어질 무렵에는 흔히들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라고 말한다.그 말은 ‘지금의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다음에는 좋은 사람 만나렴’이라는 마지막 배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너를 이렇게까지 위하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렴”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은 쉽게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님이 남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잊혀진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유키나리의 매정함에 질린 리카가 생전 처음으로 전당포에 가서 그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모두 지워버리겠다고 했을 때 유키나리는 사실상 애정 전쟁의 가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면서 험악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마치 짐 캐리 주연의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 헤어진 연인이 서로의 기억을 화풀이하듯 지워버리는 것처럼.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진정한 상대를 찾는 법은 추억이 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했던 마법사의 말이다그렇지만 현재의 연인이 나의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학창 시절 만나던 친구에게 “우리 오래 오래 사랑하자”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어느 날 그녀가 내게 물었다 “영원히 사랑하자”라고 말하지 않는 거야라고 ‘오래 오래 사랑하는 것과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그냥 그녀와의 하루 하루에만 충실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그리고 지금 그녀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추억은 이런 것이다사람에 대한 추억장소에 대한 추억사건에 대한 추억....모두가 

 “추억 같으 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특별히 문제될 일은 없으니까.(P.20)이라지만,

좋았던 것이든 나빴던 것이든 간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이 바로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나의 어릴 때 추억은 어느 바닷속에 잠겨 있을까혹은 매일마다 지나다니는 출퇴근 길의 어느 돌멩이인지도 모르겠다나는 절대 알아볼 수 없겠지만.

 

하루하루 각박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본인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그림자를 한번쯤 뒤돌아보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브랜든 포브스 외 지음, 김경주 옮김 / 한빛비즈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국내의 한 락 페스티벌에서 라디오헤드가 공연을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그들을 열렬히 바라는 팬들이 지구 반대편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는 라디오헤드를 대중문화 아이콘 뿐이 아닌, 철학적인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위험하면서도 담대하고 발칙한 시도의 책이다. 16명이 공동 저술했다고 해서, 일종의 ‘오타쿠’ 팬덤 현상이 아닐까 싶었으나… 이거 웬걸, 저자 하나하나가 철학, 문학, 음악적 내공을 지닌 사람들이다.

 

 

음악가는 철학자이며, 철학자는 록커이다.

지금은 트위터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러나 한 때는 대한민국을 주름 잡았던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한 중년 락커가 오래 전에 말한 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영국의 철학자)을 읽고 ‘이 사람은 로커다’ 하고 생각했어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사적 위상이 어떻고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전공의 락커가 ‘철학자는 락커다’라고 말했다면, 그와 반대로 ‘락커는 철학자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논리적으로 반드시 성립하는 문장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라디오헤드는 철학자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를 끼워 넣은 채 대중음악의 철학적 위상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기본 밑밥을 깔고 있다. 그리고 2장에선 본색을 드러내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청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서부터 영화 매트리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시뮬라르크’에 걸쳐 설명한다. 3장에선 외부로 시선을 넓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환경보호와 음악산업 혁신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4장은 마치 2장과 3장의 정--합이라도 되는 것처럼,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사상이 외부 환경인 현실 정치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고 이를 어떻게 비판하는지를 논한다. 마지막 5장은 탈 해체를 특징으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라디오헤드가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를 고찰한다.

 

 

책을 읽기 전 내가 라디오헤드에 대해서 아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지른 ‘Creep’이라는 노래. 사실 라디오헤드를 안지는 오래되었고 주변에 많은 광 팬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울하면서도 불쾌하게 만드는 라디오헤드를 듣는 이유는 ‘동정심과 두려움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싫어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음악을 들어야 하나?’ 그래서 책 전반에 걸쳐 논하는 라디오헤드 음악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유일하게 라디오헤드에 관해서 알고 있는 두 번째 사실 때문이었다. 3장에서는 음반사라는 중간 매개체가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어떻게 음악(혹은 문화)산업의 중심에 자리잡고 음악가와 소비자 양측으로부터 폭리를 취해 왔으며, 라디오헤드가 이를 어떻게 때려 부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2007년 음반 산업을 뒤흔든 ‘In Rainbow’ 앨범의 ‘니 맘대로 가격을 내렴’ (Pay-what-you-want) 판매 전략이야말로 혁신을 가져온 ‘봉기’였다는 것이다. (관련된 오래된 포스팅 하나 http://eugenepark.tistory.com/144)

 

 

라디오헤드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그들의 철학을 ‘들어도 될까?

 

라디오헤드를 몰라도 철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대중문화 코드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임마뉴엘 칸트의 ‘현상학’적 관점에 따르자면 라디오헤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서서히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급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제목의 ‘쿨’함에 끌려 책을 잡았지만, 어느 새 틈만 나면 High and Day My iron Lung,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등을 듣고 있는 나처럼 될지?

 

물론 지산 락페까지 달려간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라디오헤드의 팬이라면 읽어 봄직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를 둘러싼 이면에 담긴 의미까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지면서 부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