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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 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에게 배우고 뭔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누가 그러는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자신이 중요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여러분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늘 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복간되는 개정판을 받아 들고서 20여년전에 보고 책꽂이에 그대로 놓여있던 구판을 먼저 펼쳐보았습니다. 그때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희미하기만 하지만, 아직까지 제목만큼은 그 당시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첫번째 이야기 '나의 신조'에 나오는 저자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여러 내용의 대강과 '너구리'편에 나오는 낭만적이지 않은 너구리 부부의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어렴풋이나마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처음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니 당연하겠지만, 다른 것은 다 망각속으로잠겨 버렸는데, 왜 너구리 부부의 소란스러운 사랑 이야기만 그런 망각의 늪에서 구원받았는지는 내 자신도 모를 일입니다.
첫머리에 옮겨적은 본문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16년간이나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손질해 주던 이발사를 생각하며 저자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넓은 세상에서, 우주 만물을 둘러보다보면 한없이 하찮은 것 같지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듯이, 또한 우리 각각은 누군가가 의지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안아주고 싶어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는 이 부분이, 이번에는 내 눈길을 한없이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다시 개정판이 나온다면, 앞의 두 이야기와 더블어 기억의 수면위로 모습을 들어내 보이며 내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보게 하는 내용이 될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어린시절, 파란 하늘을 눈망울 가득히 담을 줄 알던 시절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어도 마음으로는 금방 알았을 것인데, 이제는 누군가가 이리 글로 써서 눈앞에 보여주고 나서야 '아 정말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더 많은 돈과 물질과 명예를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은 어린시절 그때만큼 만족함을 가지지 못하고 한 구석에 무언가 허전함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잊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세상의 가치와 바꾸고 잃어버린 연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은이가 말한대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아주 어린시절에 모두 배우고 익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으로서의 삶이 복잡해지기는 하였어도,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이지에 대한 지혜는 어릴 때 배웠던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지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아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등의 가르침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주변을 세심히 살핀 이야기와 통찰들은 나의 삶속에 담겨 있는, 내가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던 작고 사소한 것들, 잊어버렸지만 잊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들, 그리고 알면서도 어른이 되면서 배우게 되는 위선이나 속임수들에 의지해서 회피하던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을 사심없이 들여다보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배운대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다면 아마도 내 주변은 훨씬 밝고 활기차고 살만한 곳이 되었을텐데..... 하지만 언제부턴가 어린 시절 배웠던 단순하고 명료한 가르침이 우선하기보다는 어른이 되면서 배우게 되는 속임과 무관심, 적절할 때 쓰기위해 숨기고 있던 가면과 변장술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사는 방법 또는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금 세상에 정말 희망을 주고 삶에 깊이를 더해주는 그러한 삶의 지혜는 대학의 상아탑이 아닌 유치원의 모래성, 어릴적 코를 훌쩍이던 시절에 배웠던 아주 단순하지만 명료했던 가르침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러한 가르침을 들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해야 한다는 것도 그 시절에 배움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