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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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읽어 내리기는 했지만.....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내용에 대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들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듯 합니다. 이러한 형식의 글은 지금까지 내가 대했던 글들과는 확연히 다른 난해함 또는 복잡함,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 방식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앞설 뿐입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은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주인공 아담 폴로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을 읽고 여기저기를 조금 찾아보는 수고를 덧붙이게 됩니다.

 '조서 調 ', 사전적으로는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더 친근하게 들리는 분야는 아무래도 법률과 관계되는 분야일 것 같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고 정리한 문서를 작성할 때 쓰는 '무슨 사건에 대한 조서를 작성한다.'는 식의 문장처럼 이러한 예에서 '조서'라는 단어는 귀에 익은 말이 되니까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 조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니, 단순하게 생각하여 이 소설은 결국 이 남자, 즉 주인공인 아담 폴로에 대한 조서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 합니다. 한데 그 조서가 정상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삶을 사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퍽 난해하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작가의 의식과 독자의 의식이 만나 충돌하는 지점도 거기이고, 그 지점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자신이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기록하는 관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디서는 그러한 특징을 '형이상학적 소설'이라는 용어로 표현해 놓았는데, 그러한 용어가 난해함을 덜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인이 주인공 아담 폴로에 대한 조서를 작성한다면, 결국은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정신병원 의사의 의견과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담 폴로를 면담하며 갈피를 못잡는 학생들에게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아담에게서 찾은 병명(증)들을 열거합니다. 계통적인 편집증적 망상, 심기증 경향, 과대망상 (때로는 정반대의 극소 집착증), 피해망상, 정당화를 통한 회피 증세, 성도착증, 정신착란, 그리고 끊임없는 우울증 상태에 놓여 있으며, 착란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이나 감각을 지니지 못하고, 외떨어진 타인의 별장에서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겨우 한다는 일은 우연히 지나치는 개를 따라다니거나 여자친구 미셸을 찾아 도시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러한 과정에서의 여러 일들마저도 사실인지 허상인지 구분을 못하는 주인공의 상태는 당연히 독자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아담 폴로의 행동과 의식의 흐름을 무슨 의미있는 기록인 것처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기록합니다. 읽는 사람은 이해가 안되고, 이리저리 흐트러진 의식과 혼란스런 행동의 연속이지만, 그러한 흐트러짐과 혼란 자체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손길을 따라 가다보면, 결국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이 작가가 노린, 당신들의 삶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다는, 아담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자극의  시작점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그리고서 뒷부분에 정신병원에서 학생들과 면담하는 아담 폴로의 입을 통해서 여전히 불명확하긴 하지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그건 문학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그렇죠. 나는 압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문학을 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게 되지 않아요. 나는 정말 지쳤습니다. 치명적이죠. 너무 읽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완벽한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추상적인 것을 언제나 최근의 예에 비추어, 약간은 유행을 따라, 가능하면 상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예에 비추어 설명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빌어먹을, 그건 다 거짓이오! 가짜 시, 추억, 유년 시절, 정신분석, 청춘 시절, 그리고 기독교 역사, 모두 다 악취가 나요. 사람들은 자위 행위, 남색, 보두아, 멜라네시아의 성적 성향 따위를 가지고 서푼 짜리 소설이나 쓰지요..... ..... ..... 이 모든 것이, 예? 이게 옳은 건가요? 이게 무슨 의미라도 있어요? 이게 올바른 것인가 말이오?'

 작가는 아담 폴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형식의 완벽한 이야기를 하기 원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관점에서 탐구한 방식과 관점에서 주인공을 살피고 그의 행동과 의식을 기록한 것이고, 완벽한 형태나 논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어차피 논리와 형식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담 폴로에 대한 르 클레지오의 조서는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작가의 의도도, 완벽한 이해보다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정신병적인 주인공의 모습과 현실인식을 통해서, 우리 주변의 현실과 문명을 다시 뒤집어보고,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의 존재 및 주변 현실과 문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시작을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글의 내용이 실제 소설에 대한 이해보다 더 많이 나가 버린 듯 합니다.....^^ 시간이 되어 다시 작가의 책들과 이와 관련된 소설들을 읽게 된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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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암소들의 여름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정현규 옮김 / 쿠오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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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 그리고 아직까지도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 보지만, 도통 그 의미를 유추해 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 제목에 '웃는 암소들'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는지..... 여름이라는 단어는 이야기의 배경이 여름철이니 이해가 가지만, 웃는 암소들이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10마리의 목장에서 키우던 소가 나오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하여 고깃덩어리와 소시지 등으로 분리가 되니, 제목하고는 관련시킬 수 없을 듯하고, 아마도 정상인이 보기에는 정신없이 이야기속을 헤매는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을 말하는 듯하기는 하나, 왜 하필이면 암소란 표현을 썼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나.....

 만남과 여행 또는 방황, 재회와 파괴, 그리고 자유와 이별, 새로운 출발.... 이러한 단어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제공하는 것들입니다. 대단한 사랑 이야기도, 열정이 담긴 성공 이야기도, 세상을 구하는 영웅 이야기는 더더구나 아니지만, 단순한 듯 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서 진행되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이내 우리의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 하는 동의를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소설 또는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대단한 것들을 만끽하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허영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속성이겠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한편의 인간 현실이랄 수 있는 지극히 단조롭고 나약한 그리고 때로는 고약하거나 친근하기도 한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치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망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타베티 뤼트쾨넨과 평범한 택시 운전사 세포 소르요넨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이어 말도 안되는 목적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달리는 택시여행으로 이어집니다.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그저 그런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기 보다는, 독일군과의 세계대전에서 전차병으로 전장을 누빈 전쟁 용사요 저명한 측량위원으로서의 경력을 지녔고, 현실속에서도 가끔씩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지만 결국 냉정한 현실은 치매에 걸린 불쌍한 존재일뿐인 뤼트쾨넨에 대한 동반자이자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소르요넨의 자발적인 도움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중간이고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줄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끼어드는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뤼트쾨넨의 전쟁동료인 농부 하이키 매키탈로와의 만남과 창조에 반하는 농장의 철저한 파괴, 그러한 파괴적인 행동에 칭찬과 경애를 보내는 당국에서 나온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행동, 농장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습지로 내몰린 소들과 파괴된 농장에 대한 당국자들의 뒷처리 후에 시작되는 살아있는 소들에 대한 사냥..... 호숫가의 수송선 위에 텐트를 치고 10마리의 소들을 사냥하며 여름을 나는 주인공들과 굶주림에 채식이라는 자신들의 이상을 내팽개치고 음식을 택한 프랑스의 여자들..... 이 모든 만남과 여행 그리고 일탈 후에는 이들에게 훨씬 더 정상적인 삶을 위한 이별과 만남,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여자들을 떠났고, 매키탈로 부부는 친척집으로 가고, 뤼트쾨넨은 실버타운의 새 집에 보금자리를 틀었고, 소르요넨은 여자 친구 이르멜리 로이카넨과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밉니다.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온 이들의 일상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망각과 파괴의 쾌활한 그림자들이 너울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망각에 빠진 노인과 순진한 청년, 사회에 대한 반항과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파괴 욕구를 실현한 농부, 그리고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였던 프랑스 여자들과 호텔에서 굶주림을 달래며 비밀스럽게 측량을 하던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측량팀..... 이들의 삶을 함께 엮은 이 소설은 현실적이지도, 그럴 듯하지도,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음미하다보면,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인 듯하고, 그럴듯하고, 음울하지만 즐겁기도 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그러한 현실에 대해 상상을 덧붙이고, 이리저리 부풀리고 삐딱하게 들여다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속성으로 인한 것이겠고, 그러한 연유로 저자가 소설속에서 보인 망각과 파괴의 과정 뒤에 남는 것들은 오롯이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들의 몫이겠지요..... 웃음, 침묵, 음울, 자유, 무시, 반항, 분노, 허탈, 수용, 포용 .....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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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그릇 - 나를 찾아가는 먼 길
방현희 지음 / GenBook(젠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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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밖으로 산책을 하다 거지를 만난 왕은 그의 동냥그릇을 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채워주겠다고 거드름을 피웁니다. 하지만 그 그릇에 들어간 것은 어느 것 하나 남아나지 않고 채우는 즉시 깨끗이 사라져 버립니다. 왕은 왕궁의 모든 보물을 허비하고도 결국 채우지 못한 그 그릇의 주인인 거지에게 묻습니다. '.... 이 동냥 그릇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이오?' '....그건 사람의 마음이오. 별것 아니라니까, 그저 사람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오!' > 이 책의 제목이 된 '동냥 그릇'이란 이야기입니다. 별것 아닌 사람의 마음..... 욕망..... 하지만 그것은 또한 세상에 아무도 어찌하지 못하는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비우고자 하고, 손안의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면 아무런 사심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평화로울 수도 있겠지만, 요즈음 세상에 그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고자 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것들을 처음부터 바라고, 욕심을 부리겠습니다. 대부분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눈덩이처럼 굴리며 키워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이 책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바쁜 일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잠시만 쉬면서 짬을 내어 자신을,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것들입니다. 선문답 같기도 하고, 현자의 가르침 같기도 하고, 이솝우화 같기도 한 이야기들..... 그 안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의미있는 것들,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듯 합니다.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고, 분류해 낼 수 있겠지만, 저자는 자신이 모은 이야기들을 크게 다섯 꾸러미로 포장해서 우리들에게 내놓았습니다. 1부 '나를 찾아가는 먼길'에서는 자기 스스로는 안다는 것의 어려움과 역설,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을 저만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여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2부 '욕망의 화살을 타고 달리는 그대여'에서는 끝없는 욕망에 귀가 막히고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우리 자신들-의 적나라한 모습, 허망한 것들에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매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부 '편견'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탐욕, 자기 과시, 이기심 등이 버무려져서 솟아나는 생각과 삶의 일그러짐에 대한 내용입니다. 4부 '미망'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왜곡하곤 하는 우리의 속성과 헛된 것을 손에 가득 채우고 허세를 부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 내면의 모습으로 인해 생기는 질투와 시기와 다툼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 '세상의 모래 한 알'은 소소하고 단순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사소한 것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곤 하는  우리에게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는 부분입니다.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따는 방법을 가르치려다가 원숭이에게 목이 비틀린 교만한(?) 사람, 살기위해 앞의 두 물고기를 그대로 흉내냈다가 고양이 밥이 될 처지에 놓인 어리석은 물고기 같은 사람, 자신의 바닥을 훤히 보면서도 자신에게 걸린 명예 때문에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푸념만 늘어놓고 있는 수도승처럼 허위의식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 다시 살아난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의사의 권위를 떠받들어 그를 땅에 묻어버리는 이들과 같은 권위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이러한 이야기들은 곧 우리 자신들에 대한 너무도 적나라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 꾸러미를 통해서 잠시 쉬어가며 그런 질곡속에 있는 우리 삶을 돌아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잠시 쉬며 문득 들여다본 이야기 하나가 우리를 미망과 편견과 욕망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줄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삶의 본 모습을 잠시 잠깐이라도 진실하게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지 않겠냐고 하면서..... 요청하고 있습니다. '잠시 쉬어 가시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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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을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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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방을 도청하는 부모, 딸의 남자 친구의 신원조사를 마다하지 않고 또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리낌없이 미행하는 어머니, 가족들을 미행하여 약점을 잡고 금품을 갈취(?)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이끄는 여동생, 변호사답게 한없이 잘난척 잔소리를 해대고 협상에 자신이 있다는 듯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런 저런 협상을 남발하지만 여전히 완전한 남자의 면모를 과시하는 오빠, 그리고 미행하는 부모의 차에 거침없이 망치질을 해대고 도청에 반항하여 마약하는 장면을 꾸며대는 주인공...... 어찌보면 이 가족은 사립탐정이라는 가업만큼이나 자신들의 가족관계에도 가업정신을 훌륭히 적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하는 사립탐정세계의 이런저런 일을 거들게 되고, 커가면서 점점 더 많은 일과 역할 분담을 하게 되면서 몸에 배인 습관이 자연스럽게 가족관계에도 표출되고 있으니까요. 물론 부모들도 자신들이 일을 처리하던 방식대로 자식들과 관계되는 일에 대응하게 된 것이 이렇게 불량하고 콩가루 같은 가족의 모습으로 이야기되게 된 것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교사나 의사 또는 기타 그럴듯한 모양의 직업을 가진 이들이고, 그들이 자신의 직업적인 면모가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 가족들의 문제들을 대하고 처리해 간다면 이리 꼴사납다고 느끼지는 않았을텐데......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주인공의 부모는 이미 사립탐정의 길에 들어서 그러한 삶이 몸에 밴 베테랑들이고, 그들의 자녀들도 그러한 세계에 중독된(?) 사람들이니, 그들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할 수 밖에...... 그러한 내력이 바로 이 가족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미워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는 적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족의 삶의 모양은 각 가족 구성원의 특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과 사회, 문화와 국가의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하게 되겠지요. 이 책의 이야기만큼 별난 직업을 가진 별난 가족도 있을거고, 하루세끼 챙겨 사는 것으로 자족하는 평범한 가족들도 있을 겁니다. 각각이 다른 모양의 생각과 가치관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고, 또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돈독함에 기대어 일체감을 느끼며 마음의 평안을 구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한다면, 주인공의 가족만큼 별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더라도, 훌륭하게 한권의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이 들려주는 가족의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가족의 가족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출한 여동생 레이의 이야기와 그 과정을 통해 다시 가족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의 결국을 대하게 되면, 결국 결론은 하나 '바로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나 할까요.....

 이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네 가정사에도 이 가족의 이야기에 못지 않은 갈등과 오해와 방황, 그리고 때로는 미움까지 배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등 돌리고 외면하며 서로의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내기도 할거구요. 하지만 대부분 -물론 모두라면 좋겠지만 다는 아닐것 같습니다-은 그러한 갈등과 오해와 방황과 미움, 그리고 생채기를 한 가족이라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해결하고 한울타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의 이야기가 조금 독특하긴 하여도,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한 가족으로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또한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한 가정이 성숙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가족이 별나 보여도 결국 커다란 의미에서의 가족은 바로 그런 것이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우리의 각 가정의 모습의 한극단을 비취는 거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나와 여러분의 가족도 이 가족만큼이나 그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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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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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고 하는 작가의 말을 들으며, 아직 젊다는 사실 하나로, 내 삶에서 미련스럽게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저이는 저리 편안히 내물리친 것들이건만, 내 삶에는 그리 버리고 갈 것들보다는 내 속에 쌓아두고 어떻게든 잃지 않고싶은 것들이 대부분이니, 아직은 작가가 말하는 그러한 삶과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지혜의 키는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겠지요. 작가도 뒤돌아본 삶에 후회가 없지는 않았던 듯이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뒤돌아봄은 나같은 범부가 가지는 집착이나 회한이 아닌, 뒤에 남겨진 삶에 대한 애정이 담긴 정리의 시간이겠지요.

 <토지>로 처음 만난 작가에 대한 기억은 실제로는 박경리라는 작가에 대한 기억이라기 보다는 그의 작품 토지에 대한 기억이요, 느낌이었을 겁니다.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처음 생긴 것은 언젠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온, 시골 집의 장독대 옆에서, 그리고 밭에서 잡초를 매며 땀을 닦아 올리던 모습을 통해서였던 듯 합니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포근한 할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보였던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토지를 읽고 나서 두고두고 '박경리'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게 되었지만, 진짜 실체를 더듬어 확인하지도, 모습을 찾아 굳이 기억할려고도 하지도 않았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눈앞에 소개된 작가의 모습은 순간 충격을 주고, 아련한 울림을 남겼었다는 기억입니다. 뭔가 달라보이기를 바랐을텐데, 단아하고 흐트러짐 없는 곧음은 느껴지나 내 주위의 어른들과 많이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들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책 따로, 작가 따로 식의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 아마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한 솔직함일 텐데..... 이리 홀연히 이승을 버리고 가버린 작가의 유고시집을 받고서 보니, 이제야 같은 하늘아래 있었던 작가의 한과 삶, 과거와 미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 실린 40여편의 시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말했던 것들보다는 훨씬 직접적인 감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라는 하나의 분신을 가지고, 이야기의 이면에 앉아서 글을 진행하는 소설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쓴 작가의 시들은 훨씬 직접적이고 감성적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의 생사화복을 품고자 한 작가의 넓은 품을 멀지 않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사시사철 나는 / 할 말을 못하여 몸살이 난다 /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며 / 다만 절실한 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 그 절실한 것은 /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가졌을 절실한 비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것', 이 책에 담긴 시들은 바로 그 절실한 그 무엇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지극히 개인적이든, 사회참여적인 발언이든, 그냥 바라만 보는 관조자의 모습이든..... 작가가 자신이 삶속에서  순간순간 모아 두었던 비밀 꾸러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는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내 안에 많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범부의 모습일 뿐입니다. 세상과 삶을 알기에는 아직은 조금 젊다는 핑계를 둘러대곤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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