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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로즈의 아주 특별한 일 년 ㅣ 스콜라 모던클래식 4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이승숙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13살짜리 소녀가 부모를 잃은 후 자신의 후견인인 삼촌, 고모들과 할머니, 남자 사촌들과 하녀(?)인 피비와의 1년간의 생활을 그린 내용을 읽기전에, 앞의 작품소개와 책뒤의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맞서는 유쾌한 목소리'라는 소설에 대한 설명과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씌여진 당시에는 계몽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이었다고는 하지만, 세월의 흐름속에 그러한 앞서가던 시대정신은 -현대인의 눈에는- 옛날 전통이 서린 의상을 보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듯이 보이는 면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적인 정서와는 다른 주인공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생각과 모습들을 볼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당시 시대상황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먼저 아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겠지요.
'껌, 백열전구, 두루마리 휴지' 지금은 우리 생활속에서 너무 당연한 것이고 고전적(?)이기까지 한 이 세가지 물품은 1800년대 중반이후 미국에서 발명된 물건이라고 합니다. 껌이 젊은이의 반항과 일탈의 상징으로, 백열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밤시간의 활동의 자유라는 선물을, 두루마리 휴지를 통해서는 깨끗한 화장실 문화를 통한 근대화된 사회의 독립된 개인을 가능하게 했던 것들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라면 공부와 운동, 놀이보다는 몸에 꼭끼는 옷을 입고 우아한 척 꾸미고 사교계로 나가는 것이 정형화된 사회에서, 고아가 된 13살 소녀 로즈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자신의 후견인 알렉 삼촌을 통해 독립된 자아를 가진 개인으로 교육받고 자라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로즈는 자신의 고모들과 할머니집에서, 자신의 후견인인 알렉 삼촌이 도착하기 전까지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격식과 생활양식 속에서 시들어가는 장미처럼 나약한, 그래서 약을 몸에 끼고 사는 그러한 소녀로 길러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보다는 주변 어른들의 요구와 관심이 우선시되고, 사회가 요구하는 숙녀에게 필요한 덕목들에 대한 지루한 반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후견인으로 지목된 알렉 삼촌이 도착하자 모든 분위기는 바뀝니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약들을 치워지고 몸에 꽉끼는 복장들은 제거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복장들과 운동, 그리고 교육이 이어집니다. 여자가 하면 안되는 것들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건강하게 자라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생각하고 반응하기 위한 당연한 것들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런 과정속에서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모나 할머니들과 후견인 알렉 삼촌과의 마찰도 빚어지지만, 알렉 삼촌의 확고한 의지와 지지속에 로즈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간섭은 차단됩니다. 그리고 교육의 효과는 로즈의 삶속 -피비에 대한 관심과 희생, 사촌 맥이 눈병을 앓고 있을 때의 정성스런 간호, 사촌 아치와 찰리를 화해시키는 과정 등-에서 그대로 배어 나옵니다. 여자아이도 독립된 개인으로서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알렉 삼촌이 원하던 이상적인 교육의 결과요, 저자가 바라는 여성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며 소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고전적인 여성의 모습을 벗어나,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삶을 배우고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이 이야기 속에서처럼 전통과의 마찰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바른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러한 신념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창조는 그러한 전통적인 질서를 극복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조건이 되겠지요.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것에 대한 목소리를 이 책속의 로즈와 알렉 삼촌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밟히는, 시대상에서 오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로즈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알렉 삼촌이라는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인도와 보호막이 전적으로 필요했다는 것, 그리고 로즈는 비록 고아이기는 했지만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아이였다는 것, 그리고 피비에 대한 자비는 평등의 싹을 발견하게는 만들지만 여전히 주종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상적인 면이 있다는 것 등등.....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여전히 당시 시대상을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아이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개인으로 자라는 것,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 자신의 개성을 찾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 등에 대한 배움과 함께, 요즘의 어린이 책에서 보기 힘든 고전적인 차분함과 상냥함, 고상한 삶에 대한 태도와 상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화려하거나 눈부시지 않는 순수함이나 순전함 등의 가치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