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좋은 어린이 책 <회색 아이>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이향(키다리출판사 편집팀장)
너는 어떤 색깔을 가진 아이니?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어떤 감각을 사용할까요?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표정에 언어가 더해진다면 우리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요.
여기 ‘회색 아이’가 있습니다. 아빠 집안의 불그스름한 새우색깔도 아니고, 엄마 집안의 진한 풀색도 닮지 않은, 머리부터 통통한 발가락까지 온통 회색인 아이이지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회색 아이, 마르틴을 살펴보았지만 얼굴빛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마르틴은 얼굴만 회색인 아이가 아니었지요. 울지도 않고, 한숨을 쉬거나, 웃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사냥꾼 아저씨의 개들 때문에 소동이 나도, 엄마 아빠와 하얀 고래를 보러 남극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도 마르틴은 마음의 동요가 없습니다. 엄마 아빠는 이런 마르틴이 영원히 회색아이로 살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마르틴에게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바로 마르틴이 ‘조금 재미있다’고 느낀 햄스터 구스타보 때문입니다. 씨를 갉아먹다 목에 걸린 구스타보가 회색으로 변해 누워버렸지요. 구스타보가 위험해지자, 마르틴은 처음으로 ‘감정’을 느낍니다. 무언가 흘러넘칠 것 같더니, 울음이 터져 나왔지요.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구스타보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이번엔 웃음을 터트렸지요. 선생님이 개구리 옷을 입고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 계속 웃다가, 학교에 처음 갔던 날이 떠올라 울기도 하고, 사냥개 소동이 있던 날을 생각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마르틴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자, 아이의 얼굴에서는 회색이 아닌 다른 색들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점차 아이의 얼굴에서 회색이 덜어지더니, 마르틴은 아빠를 닮은 새우색 아이가 되었고, 엄마를 닮은 진한 풀색의 머리카락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마르틴이 웃고 있네요!
감정이 닫혀 있던 아이가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유머 있는 그림과 글로 담은 <회색 아이>는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마르틴처럼 날 때부터 회색 아이가 되기도 하고, 경쟁이나 비교 등 부정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회색 아이로 변하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이든 아이를 회색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가 아닌 어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부모 중 한 명의 성격과 똑 닮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반반씩 섞인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누구도 닮지 않은 본인의 성향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얜, 누굴 닮아서 이래.”, “엄마, 아빠는 하나도 안 닮았네.” 하는 말은 육아가 힘들 때, 아이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부모가 무심코 던지는 말입니다. 엄마는 아이가 까다로워서 힘들다고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성향에 맞게 대해주지 않아 힘이 들지요. 이럴 경우, 관계의 약자인 아이는 엄마보다 먼저 마음을 닫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요즘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회색 아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의 마음대로 아이의 성향을 정해 주고, 길러진 회색 아이요. 아이의 얼굴이 자기 고유의 색을 갖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이에게는 수많은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진심어린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큰둥하고 감정이 메말라 버린, 어쩌면 마르틴 같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회색 아이>가 눈물 한 방울 떨구어 낼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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