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전주,라는 도시가 참 좋아졌다. 아마도 한옥마을이 예쁘게 단장되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영화 <약속>에 나와 더 유명해진 멋있는 전동성당을 둘러보았고, 성심여고 앞 베테랑 칼국수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칼국수와 쫄면을 먹었고,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때마침 앞마당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을 보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한 상 떡 벌어지게 나오는 막걸리집 골목에서 술 많이 못 먹는 나 자신을 미워하며 안주발을 세웠다. 푹 자고 일어난 뒤에는 평화동 성당에 가서 문규현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보고 왔다. 집에 와서도 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이 눈에 선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자꾸 생각나 침이 고여 왔다. 

지방 도시에 내려갔을 때 그 도시 고유의 색채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슬프게도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나 시내 한복판이나 주택 밀집 지역에 들어서면 '흠, 좀 후진 서울?' 이라고밖에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도시가 대부분인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  그런데 전주는 고도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개발제한에 걸려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옥마을 보존지구뿐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고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덕에 일부러 전주로 이주해서 조그만 가게를 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전주, 느리게 걷기>라는 책을 보면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밥집과 찻집, 문화예술인 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전주에 이렇게 멋진 곳들이 많았나, 새삼 놀랐다. 하루 나들이를 해도 좋고, 몇박씩 머물면서 맛있는 것들만 먹고 와도 몸과 마음이 풍성해질 것 같은 곳 전주.  이 책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점 찍다가 하루에 다섯 끼씩 먹어도 안될 것 같아 손꼽기는 포기했다.

그러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다락방 감자탕'집! 

그 집 풍경을 묘사한 대목을 읽다가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다락방님이랑 꼭 같이 가서 돼지 뼈다귀를 산처럼 쌓아놓고 감자탕을 먹으며 소주를 한정없이 마셔줘야 할 거 같은... 

 전주는 굳이 큰 도시가 되지 않으려고 해서 좋다. 으리으리하게 테마 파크를 짓는다거나, 관변 행사를 크게 연다거나 하지 않는다. 큰 행사라면 전주 영화제 정도? 굳이 서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도시, 자기네 고장의 음식과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도시, 그래서 전주는 시끄러운 축제를 벌이지 않아도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어제 오늘 부여에 다녀왔다. 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6400억을 들여(이 돈이 도대체 어디서...?) '대백제' 테마파크를 짓고, 곳곳에 넓은 길을 닦아 놓은 모습이 내 눈엔 처연하게까지 보였다. 역사에서 大 자를 붙이는 건, 프랑스 대혁명 정도나 되어야 붙이는 것 아닌가? 스스로 나를 높이는 일이 이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냥, 작은 걸 인정하면 안 되나? 이건 다른 지방 도시를 가도 늘 마찬가지로 느끼는 감정이다. 

전주가 생각난다. 집집마다 특징 있는 안주와 함께 병맥주를 파는 '가맥'집들이 있고, 개성있는 안주를 경쟁하듯 내놓는 막걸리집들이 있고,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의 콩나물 해장국집이 있고, 만원짜리 한정식 집이 있는가 하면 수랏상 버금가는 한정식 집도 있는... 자기 고장에 대해 자긍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찾아오는 곳 전주.  

다음에 가면 꼭 '다락방 감자탕집'에 가볼 테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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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1-01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전주가 참 좋아요. 가본 적은 한 번 밖에 없는데, 그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아. 또 가고 싶다 :)

레와 2010-11-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 저도 한번 가봤는데 첫인상이 좋았어요.
기회되면 한옥집에서 몇일 묵으며 가맥집도 가보고 아침에 콩나물국밥도 먹어보고..^^

언제 전주에서 깜짝 번개 이런거 해도 좋겠어요. ㅎㅎ

태그에도 공감백배!!

산사춘 2011-01-0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 전주, 전주!!!!!!!!!!!!!!!!!!!!!!!
전주 너무 사랑해요, 또치님도 사랑해요.
다락방님 감자탕도 이번 달 안에 사랑하려구요.
주변에 델구 가달라는 사람이 엄청 많은 전주여요.
 

지난 토요일엔 인제 점봉산에 다녀왔는데, 곳곳에서 억새 꽃대가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어 깜짝 놀랐다. 작년만 해도 계절이 바뀌는 것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흠 ... 나이탓일까. 변하는 모든 것이 참 속도가 빠르다 ㅠㅠ

억새를 보며 제주 생각을 했다. 10월말 11월초면 육지에선 한창 단풍 구경에 열을 올릴 때인데, 그때쯤 제주에는 억새가 가장 보기 좋다. 특히 한라산 주변을 돌아가는 산록도로 주변은 키가 큰 하얀 억새로 덮여 장관이다. 산굼부리 같은 데는 따로 억새 산책로를 근사하게 마련해 놓아서 연인끼리 "나 잡아봐라" 놀이 하기 딱 좋다 ;; 

꽃 피는 봄, 바다에서 놀기 좋은 여름, 이런 때는 제주 여행도 성수기여서 비행기삯도 비싸고 잠잘 곳도 붐비는데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11월초는 비수기라고는 하지만 제주의 정취를 누리기에 이만큼 좋은 때도 없는 것 같다. 비행기삯은 물론 숙박요금도 싼 시즌인데다, 왠지 이때는 생선도 더 맛있는 것 같단 말이지!! (방어나 갈치는 찬바람이 불어야 제맛~)  2박 3일만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단풍놀이 대신 억새 구경이 어떨까! 

 

억새를 찍은 게 없나 해서 봤더니, 이 사진을 찍은 날짜는 무려 12월 6일이군요...  여기가 바로 산굼부리입니다... 얼굴은 차마... 사진은 구리지만 걍 분위기가 이렇다고요 ;;

작년과 올해 '제주올레' 열풍 덕인지 제주 여행책들이 엄청 많이 나왔다. 그야말로 여행 가이드북도 있고, 제주올레를 걷고 난 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쓴 듯한 에세이+사진집들이 올여름 휴가철 전에는 반드시 나와야겠다는 듯 쏟아져 나와서 올 여름에는 그 책들을 읽느라 나름 바빴다. (정작 나는 여름에는 제주에 못 갔음) 

이 책은 올해 4월에 초판이 나왔다. 제주올레가 16코스까지 소개되어 있고(9월 25일 현재 17코스까지 열렸다), 제주시와 한라산 주변, 이름난 오름, 맛있는 집, 다양한 형태의 숙박지, 골프코스까지 컨텐츠가 방대하다. 잡지처럼 사진도 시원시원하게 잘 배치되어 있고(어떤 것은 너무 관광 홍보용 사진 같기도 하지만) 설명글도 자세한 편이다. 다만, 비싼 음식점과 호텔, 골프코스 같은 곳에 대한 설명은 너무 보도자료 같은 냄새가 나서 슬렁슬렁 넘기게 된다. (나랑 별로 상관없는 곳이기도 하고 말이지.) 

작년과 올해 나온 여행책 가운데서, 제주 여행 초심자에게 가장 권할 만한 여행 가이드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혼자 여행할 예정인 사람이나 가급적 돈을 적게 썼으면 좋겠다는 사람은 이 책에 소개되는 음식점이나 숙박지가 별로 탐탁치 않을 수 있겠다. 홀로 여행하는 분이나 알뜰한 여행책을 찾으시는 분께는 정원선의 <제주 풍경화>라는 책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 

<스타일 제주>는 <제주 풍경화> 같은 책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봐도 좋은데, 고급스러운 제주의 명소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재미나게 살펴볼 수도 있겠다.   

 패션 에디터 출신 저자가 쓴 책이다. 특급호텔과 부띠끄호텔, 수영장 딸린 풀빌라 리조트, 독특한 갤러리, 고급 스파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여기 소개된 곳들도 11월 비수기에 가면 비교적 싼값에 예약을 할 수 있으니 하루 이틀쯤 사치를 부리고 싶다면 가보는 것도 좋을...까? ^^ 

아, 나는 그런데 패션지의 한글 문장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질 생각도 없고 말이지. 포도호텔 레스토랑에 우동 먹으러 가는 김에 비오토피아에 들러 박여숙 갤러리 같은 데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거나, 이 책에 소개된 부띠끄 호텔을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둘러보니 9월 이후에는 1박에 17만원 정도니까 한번 질러볼까 고민하게 해준다거나, 제주 전통 가옥 형태를 그대로 살린 씨에스호텔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31만원에 1박 숙박권 + 자잘한 혜택이 주어진다거나 하는 정보에 귀가 솔깃하게 해준 건 고마웠으나, 설명하는 문장들이 하나하나 참... 읽다가 읽다가 나중에는 막 웃어버렸다.  

 "보오메꾸뜨르 호텔의 인테리어는 젠 스타일을 기본으로 프렌치 감성이 더해졌다." "계량화된 서비스 대신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구조와 서비스로 특별함을 더했다"  "어메니티가 하나도 구비되어 있지 않아... " <-- 아니, 제발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주세요. 젠 스타일은 알겠다고 쳐도 프렌치 감성은 어떤 것이랍니까?? 계량화된 서비스란 무엇이며 프라이빗한 서비스는 어떤 걸 말하는 거랍니까? 투숙객 각자 식성에 맞춰 아침식사라도 따로 준비해주나효?? 세면도구나 편의용품이 없었다고 해도 될걸 꼭 어메니티란 말을 써야 하나?? 이건 패션지가 아니라 단행본이니 어메니티, 컨씨어지, 이런 말은 좀 안 쓰거나 덜 쓰면 어디가 덧나나. 아아, 진짜 자기만 다 안다는 듯한 이런 문장 정말 싫다. (언어를 통해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을 상향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과시욕으로 보여 영 불편...)    

이 책 표지가 바로 11월쯤의 제주 중산간 풍경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깨알같은 정보를 자랑한다. 제주 초심자가 아니라 중급 이상(?) 여행자, 남들 다 가는 곳이나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인 삐딱한 여행자, 혼자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많지 않은 숙소 정보에서도 새로 생긴 게스트 하우스들을 잘  소개해놓았다.) 

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씁쓸했던 것은 1) 나 제주 좀 아는 남자야, 당신은 나만큼은 제주를 몰라, 하는 듯한 약간의 허세가 느껴지는 문체  2)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제주엔탈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제주에서 인생 후반부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제주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부러 경계를 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제주를 신비화하고 절대화하는 시선이다. 그런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제주도 결국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림에서 비양도까지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땅 장사 집 장사를 해보겠다는 욕망 또한 항상 들끓는 곳이다. 제주를 그저 자주 왔다갔다 할 뿐인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원색적인 욕망이 탈색되고, 추억 속의 여성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삶을 꾸리고 돈을 벌며 살아갈 곳이 아니라 소비하고 떠날 곳이기 때문에 그저 얼마간 머무는 아름답기만 한 곳일 수 있다. 이 책은 사진도 글도 아름답다. 하지만 '타자'의 시선일 뿐이었다. 정색하고 쓴 여행책 <올레! 제주 여행 바이블>이 훨씬 더 건강한 시선으로 느껴졌다. 

올레를 걸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건 이제 너무 많아서, 앞으로 책을 낼 사람은 제주 전체를 돌아가는 올레 코스가 완성이 된 다음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하듯 전체를 다 돌아보고 책을 내야 할 성싶다. 

 

 

 

 

 

 

 

 

 

 

 

 

 

 

 

우앙... 정말 많다...!  어린이용 만화책까지 나왔으니... 

이 가운데는 '흠, 이건 일기장이면 족한데 왜 책으로 냈을까' 하는 것도 있었다. 올레 책들에 대해선 일일이 코멘트하기가 벅차다. 올레에 대한 정보를 굳이 이 책들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 코스 정도를 그냥 걷고 나면 이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 쓸데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억새가 피는 가을이다. 제주에 가기 좋은 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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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9-2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월초의 산굼부리는 저런 분위기군요. 여름겨울 빼고는 휴가가 없지만, 1박2일이라도 휙 다녀오고 싶어집니다.

또치 2010-09-28 09:25   좋아요 0 | URL
네, 바람 쐬고 오는 거 좋죠!! 저도 가끔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휙 갔다가 일요일날 저녁에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 )

치니 2010-09-2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으, 영국만 아니면 11월에 무조건 지르는 거였는데! 하지만 내년에 꼭!
우선 위 책들 중 두 권 보관함에 넣었구요, 올레 관련 글은 쓰지 말아야지 ㅋㅋ 결심했고요,또치님이 나중에 내려가시면 거기서 제주 관련 책 소개하는 작은 도서관 하나 만들어도 (오프로) 참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앙앙 좋아요.

또치 2010-09-28 13:41   좋아요 0 | URL
도서관도 이미 많고, 북까페도 이미 많고... ;;
뭔가 창의적인 걸 해야 할 텐데요, 끄응!

2010-09-28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치 2010-09-28 13:42   좋아요 0 | URL
네네네!! 저도 연휴 페이퍼 잘 봤어요. 걸으면 마음속에 잡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많이 걸어요, 우리!!

레와 2010-09-2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제주..!

또치 2010-09-28 13:42   좋아요 0 | URL
혹시 침이 고이셔서 그런 거? : )

마노아 2010-09-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해요! 10월 말에 엄마는 제주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데 억새를 잔뜩 보고 오실 수 있겠어요. 나도 막 날아가고 싶어요. ^^

또치 2010-09-28 13:43   좋아요 0 | URL
와, 딱 좋을 때 여행 가시네요. 산굼부리 꼭 가보시라 말씀 드려주셔요. 좋아하실 거예요. 근처 비자림도 좋고, 그 동네(조천 교래리)에는 토종닭 요리 잘하는 집도 있거든요~

바이런 2010-09-2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여름 끝자락에 제주도에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 페이퍼 보니까 또 가고싶어요 ㅠㅠ 끝없는 제주앓이..가을의 제주도 역시나 근사하겠지요? T_T 가고싶다!!

또치 2010-09-28 13:44   좋아요 0 | URL
흐르는 눈물이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ㅠㅠ
우리 호시탐탐 다시 갈 기회를...

2010-10-14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요하고 청순한(?) 포크 음악을 하는 '재주소년' 두 사람은 학교를 제주에서 다녔다. 원래 일산인가에 살았던 거 같은데, 제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제주에 있는 학교를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정말로 한 사람은 제주대에서 철학을, 또 한 사람은 한라대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했다고. (역시 예술가의 피에는 '결단력'이 흐르고 있는 것인가...) 

재주소년 2집에는 <봄비가 내리는 제주시청 어느 모퉁이의 자취방에서... >라는 연주곡이 있다. (위에 링크해놓은 음악입니다) 제주 중산간에는 비가 한번 오면 막 쏟아져 내려 무서울 때가 있지만, 봄날 시내에 내리는 비는 이렇게 조용하고 촉촉한 느낌이다. 제주 생각이 날 때는 이 음악을 틀어놓고 '지금 날씨가 어떨까...' 하면서 상상하곤 한다.  

재주소년은 이제 제주에 살고 있지 않지만, 음악가들 중에 제주에 내려가 있는 분들이 좀 있는 듯하다. 장필순, 함춘호(아니, 조동익 옵빠던가??), 그리고 또 몇분이 애월읍 어딘가에 살고 계시다고 들었다. 장필순, 함춘호 두 분이 만든 <그는 내 안에 있네> 음반 속지를 보면, 맨발에 커다란 리트리버를 발밑에 두고 편안한 모습으로 기타를 잡은 장필순 언니의 사진이 있는데 참으로 평화롭고 좋아 보인다. 애월의 집에서 찍었을 것 같은 사진.     

 (발냄새를 맡고 있는 뵨태 리트리버 같으니!  >.<  )

뭐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살 곳을 찾아 자연스레 제주로 내려가게 된 사람들 가운데는 나이 어린 사람은 드문데, 20대에 결혼하자마자 제주로 내려가 살고 있는 참 예쁜 부부가 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부부인데, 얼마전 KBS 인간극장에도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각각 광고와 북디자인 일을 하던 광국씨 정은씨 부부는 결혼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갔다. 차 한잔을 마실 공간을 찾기 위해서도 돈을 지불하고 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서울이 싫어 "나랑 결혼해서 제주로 내려가 살든가 아님 헤어지자"라고 단호하게 청혼(!)했다나. 

날마다 소풍을 즐기듯 제주 구석구석을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이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광국씨가 북디자인 일을 해서 살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돈을 벌고 한달에 50만원 가지면 충분히 산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만사 태평하고 느긋하기 짝이 없는 이 부부가 어떻게 광고회사를 다니고 마감날짜를 지키며 살았는지 지금 모습을 보면 의아할 따름...  

여유를 얻고 창조적 에너지를 받기 위해 가난을 택하기란 그닥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용감하게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나도 수도권을 떠나 더 가난하게, 하지만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것이다. 제주에서 살아가는 육지 사람들이 나에게 계속 용기가 되어주고 있다. 그들의 블로그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날마다 혼자 좋아하고 있다.

 역시나 인간극장에 나와 유명세를 탔던 박범준 장길연 부부. 내로라하는 좋은 대학을 나온 젊고 예쁜 부부가 무주 산골에 묻혀 사는 모습을 사람들은 참 신기해했고, 찾아가서 보고 확인하고 싶어했나 보다. 그 등쌀에 괴로웠던 두 사람은 다른 곳을 찾아 헤맸고, 지금은 제주에 내려가 조천읍 와흘리에서 '바람도서관'과 함께  B&B(Bed & Breakfast)를 운영하고 있다. 박범준씨는 제주에 가더니 어린이들에게 제주를 알려주는 정보책도 썼네.   

나도 제주의 다양한 컨텐츠를 책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부러 제주를 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도, 제주의 자연환경, 음식, 신화, 여성들 이야기 등도... 신나는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곳일 것만 같아, 제주를 생각하면 좋아하는 사람 생각하듯 가슴이 떨리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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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9-08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제주도의 특별함을 저도 곧 만나고 싶어요. ^^

또치 2010-09-08 10:03   좋아요 0 | URL
가실 때 저한테 연락 주세요. 맛있는 집을 동서남북 구역별로 정리한 엑셀 파일을 드리겠습니다 ㅋㅋ

레와 2010-09-08 15:36   좋아요 0 | URL
(슬쩍)
또치님, 저 막 친한척 하고 싶어요.

^^;

또치 2010-09-08 21:31   좋아요 0 | URL
하하, 레와님 반갑습니다! 친한 척, 얼마든지요!! : )
맛집 파일 필요하면 말씀하셔요 호호

레와 2010-09-09 09:27   좋아요 0 | URL
시간 나실때, 날려주세요.
제 이메일 주소 입니다. vino4@hanmail.net

고맙습니다. 또치님!
제주 맛집을 다니면서 또치님을 생각할께요! 헤헤..:)

2010-09-08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8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8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0-09-0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극장에 나왔던 그 부부가 책도 냈군요. 그 인간극장,주위 또래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였어요.

또치 2010-09-08 21:35   좋아요 0 | URL
BRINY 님, 반갑습니다아~
음, 그 방송을 화제로 삼는 분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일 거예요 >.<
많은 사람들은 20대에 미친 듯이 일해서 뭔가를 '성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누구나한테 다 통용되는 가치는 아니잖아요. 그게 자기 몸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도 어렵고, 깨닫고 나서 다른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부부는 참 용감해요. 막상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히히 웃고 말지만요.
 

서른살이 되기 전에 꼭 해보라고 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낯선 곳에서 석 달 이상 살아보기'다. 나는 철이 늦게 들어서 서른둘에 방황을 가장 심하게 했다. 그때 오사카에서 보냈던 석 달, 처음으로 혼자 밤기차에서 자고 다니며 홋카이도까지 올라갔다가 배를 타고 다시 교토로 내려왔던 여행을 잊지 못한다. 비로소 나 혼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를... 

외국어도 자신없고, 어디 가고 쉬고는 싶은데 딱히 가고 싶은 나라도 없고... 하다면 제주도에서 살아보라고 한다. 도시의 편리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제주 신시가지의 오피스텔을 얻으면 되고(한 달 단위로 단기임대가 되는 원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월세 50만원 안팎), 이방인이 된 느낌을 조금 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옛날 북제주군 쪽이나 서귀포의 한적한 동네에서 살다 오면 좋을 것이다. (민박을 하는 집에서 한달 이상 장기로 묵겠다고 하면 월 25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어디에 살든 차로 30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고, 몸 고되게 등산하고 싶다면 한라산에 오르면 되고, 마음이 심란해 바람 좀 쐬고 싶다면 360여 개나 되는 오름 가운데 하나에 올라 실컷 바람을 맞으며 꺽꺽 외로움을 토해낼 수 있다. 명상에 잠기기 좋은 포인트가 사방에 널려 있다. 좀더 한적한 섬으로 가고 싶다면 가까운 가파도, 비양도 등으로 배를 타고 가도 좋다. 육지 음식과 좀 달라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생선과 돼지고기와 해조류가 들어간 음식이 뭐든 다 맛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하루에 다섯끼씩도 먹고 싶어진다. 동네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구경만으로도 신난다. 서울에 가고 싶다면 공항이 그리 멀지도 않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나는 제주시가 춘천시보다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질 정도.) 여름이 상상을 초월하게 습하다는 것, 겨울 바람이 생각보다 매섭다는 것 빼고는 제주의 자연환경에서 단점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주가 좋아서 정말로 제주에서 몇년간 살았던 사람들이 쓴 제주 여행기들 가운데 두 권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여행자의 자세와 생활인의 입장이 섞여 있는 이런 책들이 요새 많이 나오고 있다. 어쩌면, 누구라도 제주에 오래 살면 책을 쓰고 싶어질 것 같다. 제주는 그런 곳이니까... (진짜로 몸을 움직여 책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이들에게 우선 박수를!) 

이 책의 지은이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가 지친 어느 날, '이런 곳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제주로 떠났다고 한다. "1년 있다 올게~" 했지만 2년을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섬을 잘 모르겠다고... 

지은이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대로 "제주의 참다운 맛과 멋은 유명 관광 명소에 있지 않다. 바닷가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이 들르는 소박한 식당, 네비게이션의 실수로 우연히 접어든 한적한 오솔길이야말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라는 말에 동감하며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생각한다면 제주에 가기 전에 이 책을 보면 좋을 것이다. (저 말은 다른 모든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만...)

제주의 곳곳을 서쪽 해안 / 서귀포 / 한라산과 중산간 / 동쪽 해안 / 제주시 권역으로 나누어 얘기해주고 있는데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젊은 여성이라서 그런지, 사진도 참 아기자기하고 내용 설명도 비교적 꼼꼼하다. 걷기 좋은 곳, 생각에 잠기기 좋은 곳 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아이의 '체험학습' 결과물을 가져가야 하는 가족 단위 여행자나 (드라이브나 낚시 등을 즐기는) 남성보다는 혼자서 혹은 많아야 서넛으로 여행할 아가씨들의 취향에 어울릴 것 같다. 지은이의 관점에 동의만 한다면, 제주에 처음 가보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추천하고픈 책. 일정은 짧지만 이름난 명승지는 다 돌아봐야겠다는 사람에게는 비추. 숙소와 식당 정보가 짧게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주로 볼 것 위주로 쓰여 있다. 그리고 대중교통보다는 렌트카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보는 것이 좋겠다.  

잠깐 딴 얘긴데, 난 '체험학습'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이 불편하다. 그냥 '물놀이장'이라고 하면 될 텐데 '물놀이 체험장'이라고 써놓은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귤 따기 체험, 도자기 체험 ... 여행지가 될 만한 곳에 가면 사방이 '체험'장이란다. 이 말은 그곳과 나(혹은 아이들) 간의 거리를 영원히 낯설게 벌려 놓는 말 같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말이니 계속 이러겠지. 좀 슬프다.  

 <제주 풍경화>는 책 제목에서 주는 느낌이 별로 없어서 '뭐 별거 있겠어' 하고 보았는데, 의외로 참 좋았다. 제주 초급자용은 아니고 제주 여행 중급자(?) 이상에게 추천. 다른 책에서 잘 볼 수 없는 정보가 꽤 많았다. 최근에 나온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작년 6월에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를 잘 얘기해줘서 내 마음도 므흣.  

또 딴 얘긴데, 제주에 가면 커피 마실 곳이 별로 없어 아쉽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은 곳곳에 좋은 카페가 많이 생겼다. 내가 추천하고픈 곳은 제주시의 '이레하우스'라는 곳과 제주도립미술관 커피숍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커피숍은 물과 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너무 좋아서 '아아, 여기서 하루 종일 된장녀 놀이 하고 싶다아...' 생각했던 곳 ^^  미술품 관람도 좋지만, 여기는 커피숍 때문에 또 가게 될 거 같다.

다시 책 얘기!  이 책의 지은이는 73년생 남자이고,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숨을 돌리러 내려갔던 제주에서 '삶의 거처를 이곳에 두고 싶다'고 생각한 뒤 정말로 섬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대형 서점의 인터넷서점 컨텐츠 기획과 서비스 일을 하면서 1년에 십여 차례 서울을 오가며 산다고.  

그런데 이분은 '제주올레' 열풍이 살짝 못마땅했나보다. 뒤표지를 보니 '제주도' 하면 그저 '올레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라고 쓰여 있는데, 흠... 뭐 이렇게 도전적일 필요까지 있나 싶기도...  올레길을 한번 제대로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제주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할 텐데 말이다. 사실 올레라는 게 제주의 집앞 길을 가리키는 말이니, 제주에 살면서 여기저기 골목골목을 숱하게 돌아다녔던 사람들은 별스럽지 않게 다니던 길이 갑자기 올레길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마뜩찮았을 수 있겠다 싶다. 작정하고 '올레길'말고 다른 곳들을 소개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이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 

내가 이 책을 무엇보다 좋게 본 것은 '공정한 여행'을 위한 갖가지 세심한 서술 때문이다. 맛있는 횟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다가 요리를 해먹어보라는 권유나, 이왕이면 좌판을 펼치고 있는 할망들에게 먹을거리를 구입해보라는 얘기,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를 꼼꼼히 소개하는 대목들이 자못 감동적이다. 그리고, 차를 갖고 다니지 않을 사람들을 위한 버스 정보가 정말 자세하다. 제주에 사는 동안 버스만 이용하면서 여기 쓴 모든 곳들을 걸어서 가보는 확인작업을 거친 끝에 나온 정보라고.    

총 40여 곳을 소개하는데, 꼭지마다 '볼멍놀멍'(주변의 볼거리, 놀거리) '잡술멍'(음식점) '쉴멍'(숙박업소) '탈멍'(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편) 정보가 아주 꼼꼼하다. 제주 여행책을 숱하게 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한 책은 처음 보았고, 특히나 숙박지 정보는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과 비싸지 않지만 경치 좋고 소박한 풍광을 지닌 펜션과 호텔 들을 정말 잘 소개해주었다. 비수기 기준으로 1박에 10만원을 넘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고, 어느 곳은 직접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싸고 또 어떤 곳은 여행사를 통해야 싸다는 정보도 잘 소개해서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난 빌붙을 곳이 있긴 하지만... ^^ 내 취미는 내가 좋아하는 곳의 숙박지 검색이거든요~) 

다음에는 육지에 살면서 제주를 자주 왔다갔다하는 여행(전문)작가들이 쓴 제주 여행책을 정리해볼 텐데, 음... 사실 나는 제주 사람이 쓴 <제주 여행법>이 가장 좋았고, 그 다음으로는 이 페이퍼에 소개한 두 책이 좋았다. 그래도 제주의 여러 가지 모습을 소개해주는 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왠지 바쁘네. 아, 얼른 제주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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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10-08-30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첫번째 책에 홀딱 반했던 사람. 작년에 다녀왔는데,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주병을 앓아요. 지금도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아 딱 한 달만 살다오면 좋겠다. 하루에 한끼 라면만 먹고, 한 달 민박집 25만원, 저가항공 왕복이면... 이렇게 계산을 하다가,
아,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ㅠㅠ
이런 생각을 혼자 아주 짧게, 그러나 아주 심각하게 했답니다.
그런데, 이 페이퍼가 연재라는 거죠?
죽이십시오-_ㅠ

또치 2010-08-30 21:29   좋아요 0 | URL
제가 언젠가 제주에 집을 얻어 놓을 테니 그때 걍 애들 델꼬 내려와 놀다 가세요.
큰애는 제주에서 학교까지 보내시고, 음하!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에게 방 한 칸 내주고, 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좋은 글 멋진 그림 그리고 가라고 토닥토닥해주며 사는 게 제 꿈 가운데 하나...

치니 2010-08-3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쯤 되면 제주시에서 또치님에게 민간인 홍보대사 임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 정말 추천 10개가 모자랍니다.
흠, 월 25만원도 땡기네요, 년세로 처음부터 살려면 조금 부담스러울 거 같고...

또치 2010-08-30 21:31   좋아요 0 | URL
어떤 부부는 귤 농장 하는 집에서 귤 좀 봐주는(?) 조건으로 농장에 딸린 집을 걍 얻어 살기도 했더라구요. 사는 데는 참 여러 방법이 있나 봐요 ^^

마노아 2010-08-3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치님의 제주 사랑도 누구 못지 않군요. 다음 편이 또 있으니 기대감으로 돌아가요~

또치 2010-08-30 21:36   좋아요 0 | URL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꾸 먼곳에 마음이 쏠리나봐요. 그렇다고 거기가 낙원은 아닐 텐데... 뭐 이런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해요. 근데 가면 갈수록 마음이 끌리는 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마노아 님 방학 때 꼭 가보세요~~~ ^^

코코죠 2010-08-3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에게 방 한 칸 내주고, 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좋은 글 멋진 그림 그리고 가라고 토닥토닥해주며 사는 게 꿈 가운데 하나라니요... 아아, 저도 또치님의 절친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으로라도 있다는 게 너무나 영광이에요. 또치님은 뭘 드시고 살길래 이리도 멋진가요, 정말. 이토록 뭉클하신 분이라니 맙소사!

또치 2010-09-01 09:16   좋아요 0 | URL
안빈낙도를 좋아하실 것이 분명한 오즈마님도 대환영!!!!!

2010-08-31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7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 송당리의 오름에 데리고 가주지 않았더라면, 보목포구에서 자리물회와 한라산 소주를 사주지 않았더라면, 제주시에 사는 분들이 운동삼아(!) 오르내리는 사라봉 별도봉에서 보는 제주항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버찌를 닮은 '삼동'이라는 까만 나무열매를 맛보게 해주고, 산록도로 주변 어디에 산딸기가 지천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도 제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제주 여행 책은 육지에서 나고 자란 여행작가들의 손으로 쓰였기 때문에 제주의 넓고 깊은 속사정을 조곤조곤 얘기해주기보다는 제주를 여행지로 며칠 훑고 지나갈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에 충실하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는 석 달에 한 번은 제주의 바람을 콧구멍에 넣고 와야 도시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거꾸로 일 년에 한두 번만 서울 바람을 쐬면 되도록 삶을 바꿔볼 생각이다.) 나는 왜 제주에 가면 외할머니 댁이나 이모 댁에 가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고 좋을까. 저런 사람과 이웃이 되면 좋겠다,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 탓일 텐데 왜 유독 제주에 그런 사람이 많았을까... 를 이 책을 보면서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음식점들의 대부분은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곳들이다. 이곳들 중에는 제주도의 적은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하려면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많은데 특이하게도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든지 영업시간이 짧기도 하다. 주변의 서울 친구들은 그렇게 장사가 잘되면 휴일도 없이 하루 종일 장사를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묻기도 했었지만 바로 그게 제주도 사람들이다." (256쪽 '제주 여행법 속 맛있는 여행' 가운데서)  

"가끔 TV 에서는 남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나고 몇 시간 늦게 자는 부지런으로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거창한 배경음악과 함께 나올 때가 있다. 제주도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그런 장면을 보고 있다면 분명히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야, 저렇게까지 할 거면 성공 안하고 말겠다.' 이런 것이 제주도 사람들의 성공을 바라보는 쿨한 소견이다. 제주도는 정말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너무 잘 사는 사람도, 너무 못사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사람보다 더 성공해야지, 더 노력해야지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저 주어진 만큼에 만족하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은 내일이면 된다. 집주소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모두가 성공을 위해 치이면서 달리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제주도가 그립다." (330쪽, '섬 사람 이야기' 가운데서) 

이 책을 쓴 홍창모 씨는 제주 출신의 디자이너다. "매번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맞이하는 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다. 제주 사람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공원(이런 데를 가보면 정말 작고 예쁘다. 한적하고. 최고다.),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피서지, 시장, 바다가 보이는 동네 목욕탕 ... 334쪽의 적지 않은 책에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동네를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제주를 여행할 수 있는 고급의 정보가 가득하다. 

읽으면서 깔깔 웃었던 대목이 있는데,  바로 제주의 응원전 이야기다. 

  북한의 카드 섹션을 연상케하는 제주 학생 축구리그 백호기 응원전 얘기다. 축구부가 없는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는 군대 얘기에 끼지 못하는 여자들만큼이나 소외되어 술만 마신다고. 나도 말만 좀 들었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나니까 내년 3월에는 일부러 이 응원전을 보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삼다수 이야기.  

 저자는 삼다수를 마시지 않는다. 나도 이 책을 읽고 가끔씩 사서 마시던 삼다수를 아예 끊었다. (사먹는 물 가운데서는 삼다수가 가장 맛있기는 한데... ) 이유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물이 귀한 제주에서 지하에 곤히 저장되어 있는 용천수를 이렇게 내다 팔면 뒷감당을 어찌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것. 물이 귀한 섬의 물을 판매하는 곳은 전세계에서 제주도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골프장의 잔디를 위해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쓰고 있는 데다 농약 때문에 지하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말이다. 선조들이 어려운 환경을 이기며 고이 저장해둔 자원을 함부로 돈과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인데, 아아 육지에 있는 우리는 어쩌자고 강바닥을 파대는 것인지... 왜 우리는 이렇게 당연한 바람을 어렵게 지켜가며 살아야 하는 신세인지... ㅠㅠ

<제주 여행법>은 흔한 관광지가 싫은 여행자, 제주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고 싶은 사람, 난 이제 더이상 제주에선 볼 게 없는 거 같아! 하며 자만하고 있는 콧대 높은 친구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제주 출신 친구 하나를 둔 것 같이 마음 든든하게 해주는 좋은 여행책.  서귀포 쪽의 유명한 관광지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옛날 북제주군 쪽과 제주시 쪽의 숨은 명소들을 잘 알려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단, 이 책에는 숙소 정보가 하나도 없고 결정적으로 지도가 그닥 친절하지 않다. 제주시권 / 제주 서쪽 / 제주 동쪽 / 서귀포시 권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했고 책 말미에 간단한 지도 + 모델 여행코스가 붙어 있어서 실용적인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지명만 대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째깍 알아채는 '고급' 제주도 여행자라면 모르겠지만, 산방산이 어느 쪽이야? 협재 해수욕장은 제주시에 있나 서귀포에 있나? 하는 것이 헷갈리는 초중급 여행자에게는 아무래도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하지만 제주의 삶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겐 참 좋은 책이고, 여행 정보 측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무엇보다 음식점 정보다. (여기서 언급된 집들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맛있는 집들임. '대화동 신선생'이라 불리는 무자격 요리사 또치가 보장합니다.)  

제주 토박이가 쓴 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사)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가 제주올레에 대해 쓴 두권의 책.  

 단순히 제주올레가 생겨난 이야기뿐 아니라,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저자의 체험이 맛깔나게 녹아 있어 좋다. <제주 여행법>에서 제주시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서명숙 씨의 책에서 서귀포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제주에 대해 완벽한 공부가 될 것 같다.  

제주올레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새 코스 개장 행사가 있으면 내려가서 단체로도 걸어보고, 행사에 참여 못하면 사람들 북적이기 전에 얼른 걸어봐야지! 하면서 서둘러 내려가곤 했다. (헤헤, 그래서 ,<놀멍 쉬멍 걸으멍...> 어딘가에는 내 뒤통수가 나온 사진도 실려 있다 ^^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한 달에 한 코스씩 개장을 하니까 10 코스 이후로는 따라잡지를 못하고 있다.  

<꼬닥꼬닥 걸어가는...>이 출간되고 나서 바로 사서 보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3월 어느날, 챙겨야 할 결혼식이 있는 것도 까먹고 충동적으로 내려간 이후로 한 번도 못 가서 몸이 달아 있던 참엔데 이 책을 읽었으니... 9월초라도 오후에 기온이 좀 높다 싶으면 바다에 몸을 담가도 괜찮은 곳이 제주다. 김녕 해수욕장에서 요트 투어를 할 생각인데, 돌고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요트 투어 회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돌고래 씨가 "180회 가운데 123회 출현"했다신다 ㅋㅋ ) 어쨌든 배에서 내리면 바닷속에 최소한 무릎까지는 담가 보리라. 그리고 14-1 코스인 무릉 곶자왈 구간을 꼭 걸어보리라. 책에 소개된 '제1회 올레걷기축제'는 홈페이지가 열리자마자 참가신청을 해놓았다. 11월초다. 그렇다. 이 두 책은 정신없이 '제주 지름신'을 부른다. 부디 조심하시길. 

다음에는 제주에 와서 살아가는 육지 것들(제주 사람들이 외지인을 부르는 말 ^^)이 쓴 책들에 대해 얘기해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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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8-2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저에게 꼭 필요한 연재 페이퍼! 다음 편이야말로 왕기대! 또치님, 게으름 부리지 말고 ㅋㅋ 꼭 써주셔야 해요.
(아 물론 9월에 제주 다녀와서도 여행기 써주셔야 하고. 돌고래씨가 출연했는지도. ㅎㅎ)

또치 2010-08-29 23:06   좋아요 0 | URL
어익후, 치니님도 제주도 잘 아실 텐데...! 부끄럽사와 ;;

마노아 2010-08-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편이 더 있다니 역시 기대치를 높여주십니다. 제주도 한 번도 못 가본 이 처자 가슴이 왈랑거려요.(>_<)

또치 2010-08-29 23:07   좋아요 0 | URL
엄훠, 마노아님 제주에 안 가보셨다고라!
방학 때 제주도 같이 가욧!!

rainer 2010-08-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통수(!) 찾아봐야겠어요. ^^

또치 2010-08-29 23:08   좋아요 0 | URL
rainer 님 반갑습니다아~
뒤통수, 흐흐, 가로 세로 2.5mm 정도밖에 안 보여요.
그래도 책에 나온 게 영광이지요 뭐~

다락방 2010-08-3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외출할때 편의점에 들러 삼다수를 사먹곤 했는데, 이제 삼다수를 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