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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권사우 글.그림, 홍쉰타오 원작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고남순 회장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일도 잘 안될 지경... -_- 

뭐, 그건 그거고 ...

<학교 2013> 최근화에서는 교내 논술시험 문제와 모범답안을 미리 알고 있었던 민기가 시험을 포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문제를 정성껏(!) 입수해준 사람은 엄마... 민기는 시험을 포기하고 조용히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다...

문제 유출에 대해 알게 된 아이들이 한껏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자, 옥상에서 '너무 무거웠던' 가방을 내던지고는 찬바람을 맞으며 웅크리고 울던 민기를 울며 안아주었던 정인재 선생은 말한다.

"너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민기는 시험을 포기했다. 답안지를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너희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마량이 갖고 있던 신기한 붓이 새삼 생각났다.

무엇이든 그려내고 그대로 눈앞에 펼쳐보일 수 있는 신기한 붓. 

마량은 그 붓을 갖게 되자 시험삼아 큰 수탉 한마리를 그려보고는, 그 다음으로는 배고픈 아이들을 만나 '밥'을 한 솥 가득 그려준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예쁜 옷도 그려준다.  

고생스레 밭을 가는 할아버지한테는 힘센 황소를 그려주고, 소의 목에 예쁜 워낭까지 그려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뒤로도 마량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그림을 그려주었어요."

마량이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붓을 가졌지만, 마량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처음에 입었던 옷 그대로, 머리 모양도 신발도 그대로이다. 

그에 반해, 마량을 불러 앉힌 원님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금덩이, 황금산이다.

마량의 천진난만하고 고운 얼굴 못지않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얼굴은

황금산을 목전에 둔 탐욕의 정점에서 오히려 불안과 공포심 가득한 낯빛을 보이던 원님의 얼굴이었다.

아, 이제 곧 파국이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던 그 얼굴...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신기한 붓이 있다면...'

자신에게 그런 큰 힘이 있다면,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그것을 마량처럼 선뜻 남을 위해 쓴다고 할까? 민기처럼 시험을 포기할 수 있겠냐던 물음에 잔잔히 토해지던 아이들의 한숨이 생각났다.


권선징악의 옛이야기는 단순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고,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제 한몸 챙기는 것만이 능사요, 남의 기회를 뺏어서라도 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세태에 <신기한 붓>을 읽는 마음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왜 마량에게 공감을 보내고, 원님의 몰락에 통쾌해하는가. 

나에게 있는 '힘'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량이 속세에서 한몫 잡지 않고 세상 곳곳을 떠돌며 웃음꽃을 피워내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마량이 그리는 그림은 어째서 이렇게 포근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이들과 이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남을 위해 아름다운 것을 그려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꿈결처럼 고운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 권사우님께 감사를! 화가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금덩이가 아니라 꽃과 새와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앞에서 우리가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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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1-2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는 처음에만 보다만 드라마인데요. 고남순 회장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역지사지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도 그것처럼 힘든게 없어요.
또치님, 저도 이 책 읽고 싶네요.

또치 2013-01-21 23:58   좋아요 0 | URL
Arch 님 반갑습니다.
네, 정신 차리고 사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렇다고 넋 놓고 살자니 그것도 힘들고...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는 나날이 너무 많네요...

요샌 모든 책에 엉뚱한 감정이입을 해갖고 보는 건 아닌가 싶은데
어쨌거나 <신기한 붓>은 참 곱고 이쁩니다. 눈이 맑아지실 거예요 ^^

러브캣 2013-01-2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비단길로 간다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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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고등학교 때 역사 공부를 참 못하고 싫어했다. 역사는 '암기과목'이라며 달달 외우면 점수를 잘 받게 시험을 출제하곤 했으니 어찌어찌 외워서 점수는 잘 받았지만, 그래서 더 싫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는 정작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100점 받으면 뭐하냔 말이지.

암기 교육을 워낙 충실히 받은 탓에 나는 아직도 삼국시대의 중앙관제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지방관제는 어떻게 정비했는지, 귀족들 회의기관 이름이 뭐였는지까지 기억이 나려고 한다. 으으...

 

"난 역사 과목 싫어." 하는 나에게 

"왜? 옛날 얘기 듣는 거 같아서 재미있지 않아?" 하는 친구도 가끔 있었는데 내 대답은 이랬다.

"뭐, 왕이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전쟁 나고 다 망하는 얘기잖아."

어린 마음에도 역사에 대해 궁금한 건 왕이 어떻게 다스렸는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신라는 군주 6부 5주, 백제는 방령 5부 5방... 이런 거 외워서 어디다 쓰게?!  저 무거운 금귀걸이는 도대체 귀에 어떻게 걸었는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저 그릇은 뭘 담아 먹을 때 썼는지... 이런 게 궁금했지만, 진도 나가기 바쁜 수업 시간에 불쑥 물어볼 수도 없었고, 선생님이 잘 대답해줄 거란 기대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걸 '생활사'라고 한다는 걸  아주아주 나중에야 알았고, 이런 걸 모른 게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발해' 이야기는 정말로 수업시간에 스치듯 지나갔었다. 시험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저 넓은 곳을 마음껏 호령했던 나라라니... 그 마음을 나중에 서태지가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로 만들었을 때 얼마나 좋았었는지...!

이현의 <나는 비단길로 간다>는 발해의 여자아이 이야기다. 보통 여자아이도 아니고, 큰 상단을 몇달씩 이끌며 장사를 하고 꿈을 찾아가는 아이. 일찍이 본 적 없는 스케일이다. 


소년들은 어느 순간부터 '동화'를 떼고 영웅 이야기를 읽었다. 플루타크 영웅전, 일리아드 오디세이... 하지만 소녀들에게는 <빨간 머리 앤> <초원의 집> 같은 책들이 주어지곤 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이렇게 자꾸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갔던 것 같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으면서, 여자아이들에게 홍라를 꼭 만나게 해주고 싶어졌다. 사고뭉치 앤도 좋고, 말괄량이 로라도 물론 좋지만, 몇 나라를 넘나들며 세상을 배우는 홍라의 삶을 만나보게 해주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어머니가 남긴 상단을 떠맡게 되었지만, 홍라는 서서히 '리더'로 성장한다. 비록 결과는 미약할지라도, 우리는 홍라의 성장이 눈부신 것이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홍라는 그 과정을 함께해준 수많은 조력자들 덕에 자기가 있게 되었다는 것도 대견하게 깨닫고, 혼자 힘으로 자기 삶을 개척할 용기를 얻는다. 


영웅적인 주인공에 집중한 동화가 주변 인물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홍라의 조력자로 나서준 다른 인물들도 다 너무 개성 있고 아름다워서, 책을 두 번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하늘의 비밀을 알고 싶어 천문생을 꿈꾸었던 월보 ... 월보 어머니가 "그냥 여기서 흙이나 파고 있었더라면 이 꼴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이란 게 꿈을 꾸게 생겨먹었더라는 거지요. 배고프고 헐벗은 우리네도 꿈이라는 걸 꾸게 마련이라는 거지요. (...) 그래도... 억울하네요. 참 많이 억울하네요. 가슴에... 억울한 게 사무쳐서... " (178-179쪽) 하고 흐느끼는 대목에서는 두번째 읽었을 때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역사를 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많이 한다. 왕이 누구든 지배계급이 어떻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지혜롭게 살아왔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세상에 남겼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 끝없이 아름다운 것과 정의로운 것과 희망적인 것들을 생각하며 후대에 남겨주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더 나중의 세대들이 우리 삶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지금 발해의 홍라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듯이...


* 사족 1 - 푸른숲의 역사동화 시리즈에는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라는 말이 표지에 박혀 있는데... 음... 이건 '동화', 즉 픽션인데 초등학교 교사들이 꼭 감수를 해야 하나? 굳이 역사 문제의 고증을 해야 한다면 전공분야의 역사학자가 감수를 하는 게 맞지 않나? 


* 사족 2 - 책 말미에 '동화로 역사 읽기'라는 꼭지가 있는데, 이 부분은 집필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 다음에 이 꼭지가 있는 걸로 보아 작가가 이 부분까지 집필한 건 아닌 듯한데... 이 부분을 초등사회교과모임에서 쓴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주인 없는 글 같아 보이니 집필자를 밝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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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1-24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또치 2013-01-24 12: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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