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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평점 :
*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돈까스와 제육볶음과 떡볶이와 김치찌개 등 너도나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국인의 수많은 ‘소울 푸드’의 공통점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만들 수 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가격도 싼 음식들 말이죠. 이런 음식만이 수없이 많은 한국인들의
위장과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울 푸드가 가장 많이 포진해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분식집’입니다. 그 중에서도 ‘국민 식당’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곳은 ‘김밥천국’, 소위 ‘김천’뿐입니다. 1995년
인천광역시 주안동에서 즉석김밥 전문점으로 시작해 전국으로 프렌차이즈화 되고, 상표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똑 같은 이름의 업체가 난립하여 ‘분식집’의 대명사가
된 곳. ‘김천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 정도가 아니라 안 가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국민 분식집 김밥천국을 소재로 연작소설을
낸다면, 어떤 내용일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삶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에서 고단합니다. 자의던 타의던 가정과 일터, SNS와 동호회 등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 여러 가지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고단함은 누구에게나 무차별합니다. 재벌 총수라고 해서 고단함이 덜어지는 것도, 길거리의 노숙자라 해서
고단함에 짓눌리는 것도 아닙니다. 저만 해도 가정에서는 세 아이의 아빠로, 사랑하는 사람의 남편으로, 회사의 팀장으로, 달리기(대회도 나가는)와
독서(SNS도 운영하는)를 취미로, 집안의 장남으로, 처갓집의 막냇사위로, 회사나 학교 동기모임의 일원 등 사회적으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죠.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윤활유가 되는 것이 바로 식사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면 밥생각이 먼저 나는 것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먹고 살기 바쁜 소시민들에게는 이 밥 한끼 조차도 또다른 고단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먹고 살 걱정’은
없는 재벌 총수와는 다르게, 밥먹는 것조차도 물질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반겨주는 곳이 바로 ‘김밥천국’입니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이걸
어떻게 다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메뉴, 생각보다
퀄리티 좋은 음식은 사람들의 주린 배를 양껏 채워주고, 때로는 마음까지 채워 줍니다. 이런 경우에 음식과의 특별한 인연이 생기게 됩니다.
‘바쁘고, 힘들고, 지치고, 마음이 헛헛하면 이곳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고급스러운 호텔 조식까지는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바쁜 아침에 누군가 내게 차려주는 따뜻한 아침밥은 그 자체로 충분히 호사스럽고
감사했다. 그것도 맛있게 갓 볶은 따뜻한 밥이 얇고 보들보들한 계란지단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이런
오므라이스라면. (p.107, ‘오므라이스’)’
‘항암제를 맞고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는 음식에 특히 주의해야 했다. 밖에서 포장해온 음식도, 데웠다가 식은 음식도 전부 안 된다. 병원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입에 대지도 않던 진수였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포장을 열고 김치만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죽음을 각오하며 한 입 먹어볼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씹을 때마다
가슴을 저미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났다.(p.148, 김치만두)’
김밥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은 다양합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회원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학습지 교사,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삶을 반추하는 세무사, 홍보 SNS 계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시달린 공무원, 자식도 모자라 남편의 어린 동생까지 키워냈건만 흰소리만 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한 엄마, 의병 때 모시던 서장님을 사고처리를 위해 출동한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 기쁜 마음인 현장출동기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이죠. ‘기쁜 일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픈
일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음식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많이 만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김천’은
앞으로도 쭉 우리에게 든든한 영혼의 한끼를 제공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김밥천국에 가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육덮밥을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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