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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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와 계곡으로 유명한 ‘진평’에서 아픈 엄마와 소방관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고등학생 ‘도담’.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인명 구조에 늘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를 존경하며 병치레를 하는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기며 사랑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수영을 하러 갔다 인상적인 첫인상의 남자아이 ‘해솔’을 보게 되는데 그가 물에 빠질 뻔한 것을 아빠와 함께 구해주게 된 것을 계기로 도담의 가족은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해솔의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첫만남부터 운명적이었고 강하게 끌린 이 둘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이들은 행복한 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담은 친구로부터 아버지가 자신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해솔의 어머니와 만났다는 사실을 친구로부터 듣게 됩니다. 이들의 불륜을 의심한 그녀는 그들의 뒤를 쫓은 끝에 한밤중 장마철의 계곡에서 두 남녀가 밀회를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고 분노에 휩싸입니다. 도담을 따라온 해솔이 그녀를 말리려다 우발적으로 들고 있던 랜턴을 그들에게 비추게 되는데,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급류에 휩쓸려 끝내 죽게 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두 사람은 끝내 헤어지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남은 인생에 더 이상의 급류는 없길 바라며.

 

‘다수가 선호하는 작품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을 높은 가능성’과 ‘내가 읽고 싶은 작품을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로 꽤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는 보지 않고 있습니다.(물론 ‘내 취향=베스트셀러’인 경우는 제외) 그럼에도 간혹 베스트셀러를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시류에 뒤쳐지지 않고 싶다는 욕구와 주변에서 강하게 추천하는 경우입니다. 이 소설은 후자 쪽이 읽게 된 이유였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너무나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고 버틸 수가 없을 정도였죠. 많은 이들이 강조했던 ‘충격적인 도입부와 휘몰아치는 서사’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과연 충격적인 도입부였습니다. ‘두 남녀의 시신은 엉켜 있어 끌어안고 있는 듯 보였고 사체를 뜯어먹는 다슬기가 얼굴을 뒤덮고 있었’던 장면은 그로테스크 공포 만화로 유명한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자극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다음의 전개를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드는 이 사건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탓일까요? 이후의 이야기는 평범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상처 받은 남녀의 치유를 통한 내면의 성장과 이로 인해 완성되는 사랑’이라는, 유사 이래 수도 없이 창작되어 온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제는 작가의 필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의해 한 끗 차이로 ‘통속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을 읽을 바에는 유사한 내용의 고전 소설을 읽는게 낫다는 의미입니다. ‘폭풍의 언덕’이나,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 좋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작금의 출판시장의 참여자 중 소수자에 가까운 40대 남성 작가의 ‘격정적인 매운맛 사랑’ 이야기가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는 사실은, 소위 팔리는 책만 팔리는 기형적인 이 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시작부터 완성형인 작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시장의 성장은 꼭 필요합니다. 독자 역시 출판시장의 혜택을 보는 참여자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벤처 투자자의 마음가짐으로 선호하지 않는 작품이라도 웬만하면 구매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는 수천 권이 아닌, 적어도 수만 원은 팔려야 순위권에 드는 그런 모두가 행복한 독서의 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 인스타그램/네이버 블로그/알라딘 서재에서 ‘도란군’ 계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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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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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생육, 인구 통제가 바로 위대한 이치입니다. 악당 역할을 하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당 역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죽어 지옥에나 가라고 절 욕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이런 걸 믿지 않습니다. 철저한 유물론자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설사 정말 지옥이 있다 해도 난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습니까! 철사 줄을 풀어 사오상춘 대문에 걸어요! (p.222)

 

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장 신성한 목소리와 부름을 들었습니다 .인류의 가장 장엄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사랑들은 하나같이 모두 평범하고 저속합니다. 선생님, 제 영혼이 엄숙한 세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과거 모든 죄악에 대한 속죄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저에게 왔건, 아이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기건 개의치 않고 저는 두 팔을 활짝 열어 하늘이 주신 제 아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p. 423)

 

인형을 받쳐 든 고모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인형을 요리조리 살펴보았습니다. 고모의 얼굴이 한껏 포근해졌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 모습이에요. 그 애에요. 고모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어 인형에 대고 말했습니다. 바로 너야, 꼬마 요정! 빚 받아 가야지! 이 고모할머니가 저세상으로 보낸 2800명 아이 중에 네 녀석이 빠졌어. 이제 너까지 모였으니 모두 모인 셈이구나! (p. 429)

 

잠정적으로 개구리라는 뜨의 ‘와’라고 했어요. 물론 여와의 ‘와(媧)’를 쓸 수도 있어요. 여와가 사람을 만들었고, 개구리 와(蛙) 역시 다산의 상징이잖아요. 개구리는 우리 가오미 둥베이 향의 토템이에요. 개구리 점토인형이나 설날 실내에 붙이는 민화에 개구리가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죠. (p. 483)

 

저는 5남매의 장남이고, 제가 어렸을 때에도-지금은 더더욱 그렇지만-자식 다섯 있는 집은 귀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의 저의 소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사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제가 5남매인 것을 알고 나서 ‘너의 부모는 야만인’이라는 발언을 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경도된 정부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며 펼쳤던 산아제한 정책이 다자녀 가족을 ‘사회적 야만’으로 규정한 것이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계획생육’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중국은 한술 더 떠 1982년에 아예 한번에 이를 명시해버렸을 정도죠. 우리나라보다 인구 팽창에 따른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중국은 수 십년간 ‘계획생육’ 정책을 폭력적으로 유지해왔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과 희생은 묵살되었습니다. ‘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라는 과격한 구호 하에, 국가의 특명을 받은 지방의 관리들은 무자비한 강제 집행을 했습니다. 이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이 소설의 화자의 주인공인 고모 ‘완신’과 같은 산부인과 의사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드문 교육받은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의사가 되어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산을 하던 늙은 노파들을 경멸하며 임산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산모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게 해 주었고, 점차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커져갔습니다. ‘계획생육’의 기수가 될 당시의 완신은 이미 수천명의 아이를 받은 ‘베테랑’이었죠. 그녀는 이를 사명으로 여기고 과도한 ‘생육지표’ 달성을 위해 마을 남자들의 정관을 꿰매고 여자들을 낙태시켰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다산과 남아를 선호하고 먹고 살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촌 지역에서의 저항은 극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화자와 고모 완신의 주위 사람들이 희생당하자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였으며, 고모는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별명과 엄청난 비난과 저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옌은 그러나 계획생육을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무자비한 정책의 최전선에서 자신이 받았던 생명의 수 이상의 태아의 목숨을 앗았던 고모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풍랑에 휩쓸린 한낱 인간이라는 관점인 것이며, 이는 소설 결말부에서의 고모의 진심어린 참회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백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역사라는 결과의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이죠. 5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서사와 모옌의 문장력 때문에 술술 읽히는 ‘개구리’를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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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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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강력한 인수공통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고, 가까스로 치료제를 개발한 인류 외의 거의 모든 동물들이 멸종됩니다.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된 인류. 그러나 인류의 육식에 대한 강한 갈망의 본능은 일본의 후지야마 히로미라는 정치인에 의해 클론 인간을 사육해 육식을 한다는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해소됩니다. 윤리적인 문제는 반드시 고객의 DNA를 이용해 배양한 클론 인간을 식용 동물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즉, 클론 인간을 인공 수정시켜 키우고 도살한 다음 머리를 잘라 고객에게 배송하는 것이죠. 사체 하나 당 샐러리맨 평균 연봉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인육을 통한 단백질 섭취는 고가의 가격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일부의 반대에도 이 시스템은 정착되는 듯 보였습니다. 클론 인간 사육을 주도한 국회의원 후지야마 히로미의 집에 ‘고기 뿐만 아니라 뇌수도 함께 먹는게 어떻겠냐’는 협박장과 분명히 잘라서 폐기되었어야 할 머리가 함께 배달되는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클론 인간을 생산하는 회사인 만복산업의 제2플라나리아 센터의 처리부에서 근무하며, 배달 테러 사건 당일에 머리를 해체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주인공 시바타 가즈시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그는 자신의 또다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자신의 집 지하에 몰래 빼돌린 클론 인간을 사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진범은 누구일까요? 클론 인간 사육을 반대하는 NGO 활동가? 후지야마 히로미의 정적? 주인공에게 원한을 가진 누군가?



이 소설은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대가 시라이 도모유키의 데뷔작입니다. 특수설정 미스터리란 일본 추리 소설의 한 장르로, SF, 환타지 장르 등의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제로 한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데뷔작부터 인간을 먹고, 잘린 머리를 배달하고, 클론 인간을 학대 사육하는 내용이라니, 역시 작가는 악마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특수 ‘설정’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후의 작품보다는 좀 약한 면이 보이는데, 클론 인간을 고기로 섭취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말이죠. 거듭되는 반전과 복선이 소설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스토리나 설정을 밝히는 것은 곤란합니다만,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클론’이라는 키워드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결말을 본다면 제 말이 이해가 갈 것입니다. 도모유키의 작품 중 ‘순한맛’으로 취급되는 이 소설을 읽고 ‘특수설정 미스터리’에 본격 입문해 보시겠습니까?



* 인스타그램/네이버 블로그/알라딘 서재에서 ‘도란군’ 계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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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정 허균 - 화왕계 살인 사건
현찬양 지음 / 래빗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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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선사 이래로 인류에게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도구 중 하나이며 지금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 중 노아의 방주로 대표되는 전세계의 ‘대홍수 설화’와 같이 복붙 수준으로 유사한 것도 참 많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게 그거죠. 그렇다면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장 유명한 탐정 소설 중 하나인 셜록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가 우리 나라의 역사에도 있지 않았을까?

 

살인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강력 범죄이며, 한민족 중에도 홈즈와 같이 걸출한 천재와 왓슨과 같이 충직한 친우이자 의술가가 있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매 이 조선판 홈즈는 팔도 제일의 머리 좋은 양반 허균으로, 한번 맛보는 것만으로 식재료 뿐만 아니라 양념까지 구분하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이자 맛있는 음식을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는 탐식가이자 탐정으로, 그의 곁에는 구암 허준의 수제자였건만 산 자의 맥과 혈을 찾지 못해 죽은 자를 보는 의원이 된 ‘재영’과, 과감하고 눈치 100단인 찬모이자 다모(조선시대 여경)인 ‘작은년’이 있으니, 조선제일탐정 허균이 조선 반도를 뒤흔든 이른바 ‘화왕계’ 연쇄살인 사건을 어찌 해결하지 못할 리가 있으랴?

 

소설은 주인공 식탐정 허균이 조선 반도 양반이라면 누구나 품고 싶어 했던 인기절정 기녀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러 모로 셜록 홈즈를 연상시키는 허균이 홈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가 먹는 것에 진심인 탐식가라는 것이죠. 소설 곳곳에서 그가 펼쳐 보이는 조선 시대 음식에 대한 집요할 정도로 해박하고 디테일한 지식은 처음에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으나 그가 이를 사건의 단초, 나아가 결정적인 증좌로 절묘하게 풀어내는 것을 보게 되면 ‘역시 조선 제일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식(食)이란 것은 인간의 필수적이자 반복적인 행위로 죽은 자가 먹었거나 현장에 남겨진 음식을 통해 사인을 파악하는 것은 실제로도 활용되는 방법이니 허균이 추리에 음식을 활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추리에 있어 음식의 비중이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는 그의 엉뚱하고 수다스러우면서도 의뭉스러운, 독특한 캐릭터를 강조하고 나아가 다채로운 한식의 향연을 펼치는데 기여할 따름인데, 이런 점은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연관이 없어 보였던 기이한 살인 사건들이 허균의 명쾌한 추리로 점차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 이었음이 드러남과 동시에 ‘홍보 책자나 요리책을 연상시킬 정도의 디테일한 ‘K-푸드’ 요리법과 재영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을 허균이 번번이 골탕을 먹이는 장면들과 맛깔난 전라도 사투리로 할말은 하는 작은년의 당돌함이 콜라보되니, 이게 바로 웰메이드 우당탕탕 좌충우돌 추리 활극 K-드라마가 되는 것이죠.

 

실제로 이 작품은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당선작을 소설화 한 것이고 드라마 제작도 확정지었다고 하니, 틀린 말이 아닌 셈이 되네요. 작품에 잘 어울리는 배우만 캐스팅된다면 꾸준히 이어지는 ‘인기 퓨전 사극’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데, 제 나름대로 한번 캐스팅을 해 보자면, 허균 역에는 이제훈 배우, 재영 역에는 조정석 배우(둘의 역할을 바꿔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작은년 역에는 김세정 배우를 추천합니다! ‘식탐정 허균’이 드라마로 방영되는 날을 고대해 봅니다!



* 인스타그램/네이버 블로그/알라딘 서재에서 ‘도란군’ 계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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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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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완만한 대왕들’이라는 단편에는 글랜에 살고 있는 드랙스와 드랜이라는 두 대왕이 나오는데, 이들이 지각하는 시간의 흐름은 인간과 달라서 아주 느립니다. 두 왕은 평소처럼 하루의 시작으로 대화를 나누다 로봇 하인 진드롬에게 자신들을 섬길 우주 어딘가에 있을 지성체를 찾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이들이 ‘잠깐’ 대화를 하는 동안 100년의 시간이 흘렀고, 진드롬은 한 쌍의 인간 남녀를 데려옵니다. 대왕들은 연약한 인간들 대신 진드롬 같은 로봇을 복제하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으로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진드롬에게 이들이 어떻게 됬는지 물어봅니다. 이에 진드롬이 ‘왕성히 번식하여 문명을 이루었으나, 2000년 전에 핵전쟁을 일으켜 자멸’했다고 답하니, 두 대왕은 진드롬에게 자신들을 섬길 수준이 되는 지성체를 다시 찾아오라 명령하고 잠에 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이 단편을 지금껏 읽은 ‘시간’이 주제인 SF 소설 중 가장 창의적인 작품으로 평가했었습니다. ‘엔트로피아’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한 장군이 선지자를 찾아가 ‘조국을 지킬 방법’을 묻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합니다. 자신은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경험하고 느끼며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져서 태어남으로 가고 있는, 미래에서 과거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선지자는 그를 의심하는 장군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강대한 나라의 왕에게 그의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 예언하는 남자와 이를 거스르고자 노력하는 왕세자, 광기의 연금술사에 의해 엄청나게 복잡한 방정식을 연쇄적으로 푸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책이 된 사람과 이 책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남자, 시간여행이 일상화되었으나 미래의 역사가 불변하다는 진리를 모두가 알고 시대에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여 미래를 바꾸고자 미래를 침공한 남자. 선지자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했으며, ‘미래는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며, ‘인간은 선택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단언합니다.

주인공인 선지자가 읽었거나 겪었던 3가지의 서로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가 담긴 액자식 구성과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건의 과거부터 수백년 후의 미래를 다루는 이 작품은, 복잡한 구성과 큰 스케일로 필히 서두의 연표를 참조해가며 집중해서 읽을 것을 권합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된 작품으로 간주하고 읽어도 무방한데, 두 번째 책 이야기인 ‘책이 된 남자’는 소설의 메인 테마인 ‘시간’과 관계없는 지금의 인류에게 있어 가장 혁신적인 기술인 AI의 작동 원리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라 뛰어난 작품성과는 별개로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깰 정도는 아닌데, 각각의 이야기는 그 내용과 관계없이 선지자가 과거를 향해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는 네 번째 이야기가 숨어 있는데, 바로 선지자가 어떻게 미래에서 과거를 향해 살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두 번이나 읽은 지금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해보자면, 선지자의 삶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지만(몇천년씩 살아가는 것은 물론 기이하지만), 선지자 내면에서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그 반대입니다. 그렇기에 선지자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와 어떻게, 언제 헤어지는 지를 알고, 미래에 읽었던 책에 담긴 이야기를 장군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미래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며, 자신의 탄생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또한 한탄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 자신이 층층이 쌓아가는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미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죠. 다시 말하면, 미래는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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