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양상 현대지성 클래식 60
루스 베네딕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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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수능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선택했었고, 경영학 전공임에도 첫 학기에 ‘문화인류학 개론’을 수강했을 정도로 저는 인문학에 참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지정 도서 중 하나가 ‘국화와 칼’이었고, 취업 후 첫 월급으로 을유문화사 판을 바로 구매하여 지금껏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새롭게 출간하여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하니,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와 이 책과의 인연을 좋게 보아주셨는지, 처음으로 비소설 서평단에 선정됬네요.

‘국화와 칼’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국의 종전 후 대일본 정책 방향성을 결정하기 위해,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요청하여 탄생한, ‘일본문화 연구 보고서’입니다. 1946년 출간되며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며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국내도 여러 번역본이 나왔고,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이 높아지던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명성을 쌓아 과거에도 지금도 ‘일본 문화’ 추천 서적 1순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가난한 어린 시절과 열병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던 아픈 과거를 딛고 인류학의 매력에 빠져 박사가 된 후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던 사회에 실력으로 당당하게 맞서고 당대 주류 사조였던 문화상대주의를 지지하며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와 여러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런 활동 와중에 미정부의 위촉으로 1944년부터 일본 문화를 연구하고, 종전 후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 책은 현장 답사 없이 이루어진 저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적국이었던 일본 방문이 불가능했던 제약과 더불어, ‘발간 자료와 인터뷰를 통합해 문명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방법론’이라는, 이른바 ‘원격 문화연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숙련도를 보유했던 그였기에 이루어진 성과물입니다.

일본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것이 있습니다. ‘본심과 배려’, ‘속마음과 겉마음’ 등으로 해석되는 이 말은 개인의 본래 마음과 사회적인 규범에 의거한 의견이 다른 일본인만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국화와 칼’은 이의 원인을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으’며 질서와 위계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일본 문화의 특성에서 찾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부모나 스승, 천황 등이 부여한 은혜인 ‘온’과, 온을 갚기 위한 무한정의 부담인 ‘기무’, 타인에게 호의나 모욕을 받았을 때 자신이 입은 온만큼 돌려주려는 ‘기리’, 그리고 내면의 윤리 기준이 아닌 외부의 강제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치의 문화’를 더해 다른 동양권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일본만의 것을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것이죠. 히로시마 폭격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서도 결사항전을 부르짖던 일본이 천황 폐하의 항복 선언 후에 거짓말처럼 성실하고 충실한 패전국으로 돌변한 것이 가장 좋은 예일 것입니다. 제목인 ‘국화와 칼’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국화와, 사무라이 정신을 대표하는 칼을 대비시켜 그들 문화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잘 드러내 보입니다.

물론 이 책에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제작된 보고서라는 점, 문화 연구의 핵심인 현지 조사와 객관적인 통계 자료 등이 없이 사례만 나열했다는 점, 인류의 문화를 패턴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루스 베네딕트의 가치관이 반영된 일반화의 오류가 일부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죠.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일본의 문화∙사상과 지금의 그것이 어떻게 달라지고 발전하는지 비교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고전’의 경지에 오른 것이죠. 일본 문화와 인류학, 나아가 인문학 대한 관심과 흥미가 있는 독서가라면 꼭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화와칼 #인문 #인문고전 #도서추천 #도서협찬 #서평단 #문화인류학 #루스베네딕트 #현대지성 #책 #독서 #책읽기 #독서리뷰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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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스페이스
칼리 월리스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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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SF와 미스터리는 잘 어울리는 장르의 조합입니다. SF는 비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이야기이고 미스터리는 그 반대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SF는 성간 이동 우주선 등 먼 미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미스터리는 현실의 과거 또는 현재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공포감을 자극하는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낯선 환경에서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한다면-이런 생경한 상황을 작가가 독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읽는 이의 카타르시스는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합은 까다로운 각 장르의 독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작가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킨다면, 장르 문학의 걸작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죠.

‘데드 스페이스’의 주인공 헤스터 말리는 인공지능 전문가로 위성 타이탄 연구를 위해 떠난 우주선에 탑승했다 테러에 휘말렸으나 근처를 지나던 자원개발 회사의 화물선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몸의 절반을 인공 기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은 불행한 과거가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천문학적인 비용의 치료비를 갚기 위해 회사에 고용되어 회사가 소유한 소행성에서 보안분석가로 일하고 있으며, 적은 급여로는 지구의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노예와도 같은 삶에 지쳐 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타이탄 연구 우주선에 함께 탑승하여 극적으로 생존하였으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큰 빚을 지고 회사에 고용되어 광산 기지가 있는 소행성에서 시스템관리자로 일하고 있던 데이비드가 보낸 영상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근황을 묻는 대수롭지 않은 내용에 답신을 망설이던 도중 업무 단말기에 새로운 사건이 뜨는데,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헤스터는 자신과 깊은 우정을 쌓고 연구자로 존경했던 데이비드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현장 조사 파견을 자원합니다. 기지의 대원들과 운영을 총괄하는 인공지능을 탐문하고 기지를 살펴보며 진상을 파악하려 하나 조사는 거듭해서 난관에 부딪힙니다. 기지 대장은 현장조사를 월권이라 생각하는지 매우 비협조적이고, 인공지능이 관리하던 데이비드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의 기록은 비어 있습니다. 과연 헤스터는 데이비드의 죽음과 함께 숨겨져 있을지 모를 거대한 음모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많은 SF 작가들이 이 소설과 같은 SF+미스터리 장르의 조합을 시도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소설로만 한정해봐도 조지 R. R. 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아서 C.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등 많은 소설이 있죠. 이중 ‘나이트플라이어’처럼 폐쇄적인 우주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션’, ‘그래비티’, ‘라이프’, ‘에이리언’ 등 SF영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닫힌 공간(우주선 또는 우주 기지 등)과 충격적인 사건(조난, 살인, 테러 등)의 조합을 통해 관객이 몰입 가능한 극적인 내러티브와 긴박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데드 스페이스’의 경우 ‘나이트플라이어’와 같은 명성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결코 이 작품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플라이어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적어도 흥행한 상업 영화만큼의 수준과 재미는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광의 과거에 갇혀 절망의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 거대한 음모를 밝히다 의문사를 당한 주인공의 친구이자 멘토 등 등장인물들은 스테레오 타입으로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배경이 되는 미래 시대와 소행성 광산 기지 역시 그러하구요. 오히려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이 애정을 담아 만들어낸 기지의 인공지능의 모습이 전형적이지 않으며, 이 부분이 결말 반전의 나름의 키포인트가 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는 언급할 수 없지만 다른 등장인물처럼 ‘~답지는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구원의 날’이 영화화 중이라는 점이 그의 작풍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여러모로 한편의 잘 만든 상업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오히려 영화의 시나리오로서 더 후한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데드스페이스 #칼리월리스 #황금가지 #서평단 #도서추천 #SF #미스터리 #장르문학 #도서제공 #책리뷰 #책읽기 #독서리뷰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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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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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사랑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즐겁고 기쁘며, 사랑받지 못해 슬프고 분노하고 증오하며, 사랑하기 위해 욕망합니다. 인간 감정의 궁극은 사랑이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죠. 문학 작품에서도 ‘사랑’은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이며, 지금껏 수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사랑은 ‘인간 모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작가들은 사랑을 이야기로 만듦에 있어 다양한, 다시 말하자면 ‘비범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 시도에는 사랑하는 방법-이를 테면 가학적 성 도착증자의 사랑-이나 결말-이를 테면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바꾸는 것도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체를 비범한 것으로 비트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금지된 사랑’, 즉 귀족과 농노의 사랑, 근친 간의 사랑, 노인과 청년의 사랑 등이 그것이죠. 이런 경우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라 할지라도 읽는 이에게 깊은 비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성공 여부와 상관 없이 그들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사랑 이야기는 대중의 흥미에 영합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통속적인 것으로 폄훼될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소설이 명작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통속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오늘 리뷰할 ‘셰리’는 50대의 성공한, 아름다운 위엄을 갖춘 여성 레아와 그녀의 친구의 아들인, 그 철 없음 마저 매력으로 보이게 만드는 치명적이고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한 20대 남성 셰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회 통념상 용납되지 않는, ‘비범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친구로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사이였으나, 어느 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서로 키스를 한 이후 그들은 ‘세상이 뒤에서 수근거리는’ 부적절한 관계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혼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며 칭얼대는 미청년과,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화가 치밀지만 마치 에로스가 육화된 것처럼 느껴지는 관능적인 셰리의 자태와 아름다움을 보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그녀는 언뜻 보기에 오히려 다정한 모자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곧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레아의 친구-이나 증오하는-이자 셰리의 어머니인 플루 부인이 추문을 덮고 증오하는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들의 결혼을 진행시키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거부할 명분이 없기에,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들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레아는 모든 것을 다 잊기 위해 훌쩍 장거리 여행을 떠나고, 셰리는 아름다운 신부를 집에 두고 가출해 버립니다. 그래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언젠가는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는 이제 그만 끝내고 세상이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리라는 결심이 묻혀 있습니다. 오랜 방황 끝에 마주하게 된 레아와 셰리. 그들은 이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게 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만, 여러분은 이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콜레트는 마지막 장에서 소설 밖에서의 스토리의 통속성에 대한 비판과 소설 안에서의 이들 관계의 부적절함에 대한 비난을,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깨 부셔버립니다. 또한 요약된 내용으로 보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그런 처연할 정도의 아름다움이 레아와 셰리의 기나긴 대화에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흔한 사랑 이야기를 이토록 찬란하며 깊은 울림을 주는 마스터피스로 만든 콜레트와, 또한 이를 지금의 세상에 다시 알린 ‘녹색광선’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셰리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콜레트 #프랑스문학 #프랑스소설 #녹색광선 #힙스터 #텍스트힙 #내돈내산 #독서 #책 #책리뷰 #책읽기 #독서 #독서리뷰 #서평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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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벽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황성연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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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5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의 전편인 ‘제왕의 위엄’의 줄거리를 복기해 보았습니다. 켄 리우의 ‘민들레 왕조 연대기’는 초한지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동양의 고전 문학을 서구권에 소개하기 위한 켄 리우의 ‘호걸역(과거 서구권의 생소한 문학을 동아시아의 번역자들이 원문을 현지 사정에 맞춰 자유롭게 변용하던 번역 방식)’의 적극적 활용의 성과물입니다. 제왕의 위엄은 초한지 내용 중 고귀한 가문의 마지막 후예 마타 진두(=항우)의 패전 및 죽음과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했던 동네 건달 쿠니 가루(=유방)의 건국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초한지 줄거리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본서를 포함한 이후의 시리즈는 켄 리우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라 볼 수 있습니다.

종이 동물원’을 읽고 팬이 되었던 SF 장르 독자들이 그의 첫 장편이자 중국 고전을 ‘실크 펑크(켄 리우가 만들어낸 SF 서브 장르. 초한지라는 유명 동양 고전을 주제로 한 ‘실크’와 하늘을 나는 기구와 복잡한 기계 장치의 기술 문명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스팀 펑크의 ‘펑크’를 합성)’로 재창조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전편을 보고 다소 실망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저도 그랬습니다.), 이는 초한지와는 완전히 다른 전개를 보이며 그 서사성에 있어 극찬을 받았던 후속편인 2~4부가 같이 묶여 나오지 않았던 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평가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성격을 비틀고 기존의 줄거리를 아무리 훌륭하게 재해석했다 하더라도 원본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2차 창작물의 숙명 때문입니다. 차라리 1~4부 모두 완간된 후 한꺼번에 번역∙출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한번에 모든 시리즈가 나오는게 더 좋겠죠.

폭풍의 벽 상권은 쿠니 가루의 황제 즉위 이후의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민들레 왕조의 미래를 책임질 황자와 황녀들의 성장하는 모습과 개국 공신들의 안정된 제국에서의 활약상, ‘건국’ 이후 정권 안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내∙외부의 위기가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1부 ‘제왕의 위엄’에서는 오리지널 캐릭터와 역사라는 한계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처럼까지 느껴졌던 인물들의 모습이 이번 작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령 쿠니 가루는 측근들 앞에서는 여전히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이는 황제이지만 제국의 미래를 위해 후계를 내세움에 있어 엄청난 도박을 감수하며, 뛰어난 장수였으나 부족한 정치력과 처세술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명장 한신을 모티브로 한 여성 ‘긴 마조티’는 일국 원수로서의 재능 못지 않은 남성 편력과 정치력을 보이며 한신과는 사뭇 다른 ‘멋진’ 최후를 맞이할 예정입니다. 이는 켄 리우가 인물상을 조성함에 있어 초한지의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하되, ‘켄 리우’ 표 오리지널리티를 조화롭게 덧붙인 덕분일 것입니다.

폭풍의 벽 상권의 마지막은 한창인 개국 공신들의 숙청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황제에게 티무 황자에 대한 긴급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끊는 타이밍이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작품 소개에서 언급되었던 강력한 외세의 침입을 암시하는 이 결말을 읽고 나니, 반드시 폭풍의 벽 하권과 이후에 나올 3~4부를 꼭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었습니다. 하권까지 포함하여 서평단을 선정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는 독자의 욕심이겠죠. 조만간 하권 서평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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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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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 리뷰할 ‘미로 속 아이’의 작가 기욤 뮈소의 출세작인 ‘구해줘’가 오랫동안 저의 집 서가에 있었음에도 계속 보지 않았던 이유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선입견-높은 대중성에 반비례할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성-으로 인해 이 책이 저의 독서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음에도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한 것은 양산형에 가까운 다작 및 지나친 상업성 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작품들이 항상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였습니다. ‘지나치게 현학적인 독서만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라는 자아비판에 따른 대안이기도 합니다. 어떤 글이든 나름의 가치는 있기 마련이므로, 편견을 버리고 진중한 마음으로 ‘미로 속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이탈리아 유명 기업의 상속녀가 자신의 요트에서 잔인하게 타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장르 스토리의 전형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기업의 승계를 둘러싼 내부의 권력 투쟁,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살해당한 주인공의 어릴 적 트라우마, 한때는 열정적이었으나 개인적인 상처로 이제는 다 때려치우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살인 사건의 담당 팀장, 역시 과거의 아픔이 있지만 유능하고 일중독자인 팀장의 과거 상사였으나 지금은 부하 직원인 형사, 또다른 용의자로 의심되나 그 정체가 모호한 남편의 내연녀(로 의심되는)인 젊은 여성 등이 그것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 치정극, 휴먼스토리, 로맨스, 반전 스토리 등 대중적인 장르 소설의 매력 포인트가 집대성된 작품이죠. 기욤 뮈소에 대한 세간의 비판(극단적으로 ‘양판소’ 작가라는)을 매우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 1/3 지점까지 읽었을 때는 딱 ‘기대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3 지점까지 읽고 난 후에는 세간의 평가가 너무 혹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개만 짚어보면, 대중성을 폄하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 중의 하나는, 이 대중 속에는 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평균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술을 고답적으로 인식함에 따른 오류인 셈이죠. 오늘날에 널리 읽히는 고전 소설의 다수가 당대의 ‘대중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수결은 ‘정의’가 아닐 수는 있지만, 선택한 이들에게 대부분은 최선의 선택으로 인도합니다. 다음으로는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한 수많은 장르들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하게 다른 장르적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욤 뮈소는 이를 유기적으로 엮어,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매혹합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그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은 수많은 독자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다수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 수 있겠죠.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상업 영화를 본 것과 같은 느낌으로 ‘미로 속 아이’를 다 읽었습니다.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전 결말의 기승전결도 매우 좋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설 내에 펼쳐진 장르의 세상이 좀 더 좁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혼합된 장르 소설을 대중적으로 성공시켰다면 분명히 하나의 장르 소설에서도 그의 진가는 발휘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집에 있는 ‘구해줘’를 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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