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만남

 

 

   해는 산을 넘어가고

   어둠이 서서히 찾아왔을 때

   낙엽이 쌓인 길과 벤치가 있는 공원에서

   저녁색깔처럼 쓸쓸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그때 서로를 보았다

   그러나 당신은 검은 말을 타고 와서

   그 검은 저녁 속으로 떠났다

   낙엽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불어오던 찬바람 속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던 모습으로

   그 서러웠던 만남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림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높은 울타리에 기대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별이 내리던 밤의 일이었다

   우리는 그날

   인사조차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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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말로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얼마나 울어야 하나? 또는 얼마나 참아야 하나?>

 

오늘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서 <악명의 이재명>이 또 목숨을 건졌다. 정말 <행운의 사나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죄를 짓고도 지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까지 되는 것이 바로 이 나라다. 물론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답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답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즉, 세상에 이렇게 쉬운 시험이 없다는 것이다. 답을 보여주면서 치르는 시험. 그것에 항의를 하는 사람도 없는 나라.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렇게 엄청난 선고를 받았을 때 난센스라고 했다. 법관들이 미쳤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책만으로 판단한 판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판결은 책이 아닌 <힘의 판결>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다보면 어떤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바로 어제 <이명희 사건>에서 보여준 사법부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결국 사법부란 것들도 칼 앞에서는 벌벌 떠는 자들이란 것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위 이 나라에서 조금 <가진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법관들이 눈치를 보고, 힘없는 대중들은 항변할 곳을 찾지 못해서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어제 역시 <박지원> 같은 <인간쓰레기>에 대해서 말이 나왔지만,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백(배경)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그 역시도 살아남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인 것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할까? 거기다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을 다투는 <김경수>까지 면죄부를 받는다면 이것은 독재 중의 독재요, 오히려 <양의 탈을 쓴 최악의 독재>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 사법부는 정부의 시녀노릇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러므로 이제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울어야 하나? 아니면 얼마나 참아야 하나? 외나무를 타면서도 잘 가고 있는 <전라도당>과 <멍청한 문재인 정부>에 축하의 박수를 보낼 일밖에는 없는 듯 하다...

 


 

<세상이 막장드라마인가?>

 

이번에 <이재명>의 재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이 나라는 완전 <막장드라마>다. 마치 외국의 <마피아영화>처럼 권력과 폭력단체의 결탁으로 나라는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서 <이탈리아>의 고관들과 <마피아>들간의 결탁으로 인해 뜻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나가고 있으며, 그래서 <이탈리아>는 부패나라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이재명>은 물론이고, 어제의 <이명희 사건>과 <박지원 사건> 그리고 그 전에 세상을 떠난 <박원순 사건>과 <오거돈 사건> 그리고 <은수미 사건>과 <안희정 사건>과 <김경수 사건> 그리고 또 그 전에 <노무현 자살사건> 등등 해서 <전라도당>은 그야말로 <뻘밭>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거기다 <서울대학교학생>들이 뽑은 제일로 부끄러운 선배 1위 <조국>에 이어서 2위인 <이해찬>의 <박원순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태도는 <거만함> 그 자체였다. 거기다 그는 <정체된 물>이라는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태를 읽을 줄 모르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느낌까지 받게 했다. 그런데 오늘 또 정말 허탈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반대의견을 낸 법관들의 내용이 어느 것 하나 틀린 것 없이 타당하다는 느낌이 있던 중에 <파기환송>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사라져버린 법관들. 그들의 등 뒤에서 무거움과 쓸쓸함이 느껴진 것은 왜였을까? 그리고 마치 자신들의 판결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장황하게 늘어놓은 <서론>은 차라리 처량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법 현실이다. 그들은 <앞뒤가 꽉 막힌 상자들>이란 인상을 주는 가운데, 앞의 박근혜 판결에서도 <그것이 과연 옳은 판결이었는가?> 하고 의심이 들고 있는 중에 이런 판결은 그런 의구심을 더욱 짙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삼척동자도 다 알 그런 사건을 그렇게 판결 내버린 그들의 머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그들은 법관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인간쓰레기 이재명>의 목숨을 살려준 그들이, 앞의 박근혜 판결을 내린 자들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적어도 이 나라를 위하고, 이 사회를 위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안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준 판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그런데 오늘 판결을 내린 법관들 중에서 과연 솔로몬 같은 자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솔로몬은 지식이 많았다거나, 학식이 높아서 현명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통찰과 사태를 직시할 줄 아는 현명함으로 그런 명성을 얻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오늘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의 <의식 사망>을 안타까워하며, 미래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앞날을 조상(弔喪)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막장드라마>는 결국 그 끝도 막장일 뿐만 아니라, 더욱 비참할 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앞으로 벌어질 그 지저분한 결말이 어느 정도일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지켜보고, 그것으로 <인과응보>의 교훈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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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얼굴>

 

얼굴을 돌리는 것은 체념

그냥 웃어버리는 것은

문이 열렸다는 뜻인가

주로 그런 때가 많다

 

여자가 얼굴을 돌리면 싫다는 뜻이다

여자가 웃으면 재미없다는 뜻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

자주 바뀌기까지하니 종잡을 수가 없다

 

여자의 얼굴은 카멜레온이다

여자의 얼굴은 개의 꼬리다

잘 살펴보면 답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자의 얼굴 오늘은 어떤 모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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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마담에게

 

   당신은 천상의 천사입니다.

   훤한 이마는 이지적이며

   미소를 띤 갈색의 눈은 아름답습니다.

   머리칼은 비단 같이 곱고 부드러우며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를 잘 모릅니다.

   어디서 언뜻 스쳐 지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뿐, 당신은 무심히 저를 지나칩니다.

   그 아름다운 미소로 다른 사람을 맞이합니다.

   그 사람은 그것이 행복이고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너무도 맑고 지적인 미소로 당신은 이야기합니다.

   가끔씩 외국의 달콤한 노래를 곱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 나직한 노래를 저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입모양만 보아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저에게 관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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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라>

 

 

 

 

 Each player must accept the cards life deals him or her; but once they are in hand, he or she alone must decide how to play the cards in order to win the game.

 인생(人生)이라는 게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일단 주어진 자신의 패(牌)에 만족을 해야 하며

 그것으로 어떻게든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볼테르(Voltaire-1694년 11월 21일부터 1778년 5월 30일)의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çois Marie Arouet)였고, 그래서 볼테르((Voltaire)는 일종의 필명(筆名)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였고, 작가, 문학자, 역사가였으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그는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의 한사람으로서 활약하기도 했고, 또한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였다.

 그는 파리에서 공증인(公證人)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아주 우수했던 학생으로 그때부터 시집(詩集)을 계속해서 냈다거나, 그에 대한 상(賞)도 받았다. 그리고 1716년에는 섭정(攝政)의 연애(戀愛)에 관한 시(詩)를 썼다고 해서 루아르(Sully-sur-Loire) 성(城)으로 끌려갔던 것을 시작으로 해서, 몇 번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그리하여 1717년 5월, 프랑스의 정치와 정부를 통열(痛烈)하게 중상(中傷)했던 시(詩)를 썼던 그는, 결국 바스티유감옥에 투옥(投獄)되었고, 그곳에서 약 11개월을 보냈는데, 그때 그의 나이 22, 3세 때였다. 그리고 또 그 즈음부터 <볼테르>란 필명(筆名)을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1718년 11월 18일에는 그의 처녀작(處女作) <에디프(Œdipe-oedipus)>가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그러자 그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래서 그 후, 45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 즈음부터 그는 대작가(大作家)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러나 또 명문귀족과의 트러블로 인해서 1726년 4월 17일에 다시 바스티유감옥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그는 오히려 민심(民心)을 얻었으며, 그리하여 다시 풀려나서 동년(同年) 5월 11일에 영국(英國)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에는 또 뒷이야기가 있었지만 일단 생략하며, 그러나 또 어쨌든, 그 여행으로 인해서 그는 자신의 철학 성립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리하여 그의 유명한 저서였던 <철학서간(哲學書簡-Lettres philosophiques)>이 1733년에 런던에서 영어(英語)로 발표되었는데, 하지만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 다음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해적판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프랑스의 파리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그 내용상의 문제 즉, 당시의 자유스러웠던 영국에 대한 호감 등으로 인해서, 프랑스의 애국자들은 자극을 받았고, 그리하여 그 책 한 권이 불태워짐으로 해서 그에게는 다시 체포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 후, 네덜란드로 도망을 가서 당분간 지냈던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갔고, 그 후에는 집필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때, 그는 뉴턴(newton)의 책을 번역해서 뉴턴의 사상을 전파하는데도 일조(一助)했으며, 문학과 철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제1선에서 활약했던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1750년에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대왕>을 방문하기도 했고, 백과전서(百科全書)에도 기고(寄稿)를 했던 등, 왕성한 저작활동을 했으며, 1762년 3월 9일에 발생했던 <카라스(Jean Calas-1698~1762) 사건-프랑스에서 일어났던 異端迫害冤罪事件으로, 가톨릭의 不寬容 狂信에 의한 迫害사건으로 알려져 있다>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발언을 활발히 전개했던 실천적(實踐的)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그 결과, 1763년에는 <관용론(寬容論-Traité sur la tolérance)>이, 그리고 1764년 또는 1766년에는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18세기 자유주의의 상징 중 한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사망했을 때, 파리의 교회(敎會)들은 그를 매장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그래서 그는 스위스 국경근처에 매장되었지만, 그러나 또 프랑스혁명이 한창 중이었던 1791년에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서 파리의 팡테옹(Panthéon)에 이장(移葬)되었다.

 그는 생전에 소설, 시, 희곡, 일기, 편지 등, 많은 작품이나, 저서 등을 남겼고, 그 중에서도 <역사철학, 관용론, 철학사전, 철학서간, 오이디푸스,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등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계몽사상의 전형(典型)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또 그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신뢰(信賴)했고, 자유(自由)를 신봉(信奉)했다.

 그리고 또 그는 거의 평생 교회(敎會)의 부패(腐敗)와 크리스트교의 악폐(惡弊)에 대해서 비판했으며, 혼신(渾身)의 정력(精力)을 기울여서 이신론(理神論-합리주의종교관)의 입장에서 교회(敎會)를 탄핵(彈劾), 비판했다. 그리고 또 그는 궁정연회에서 <루소>를 만나기도 했으며, 그래서 또 한때 친교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러나 또 1755년에 발생했던 <리스본지진(Lisbon Earthquake)> 발생 이후, 종교적인 견해차이 등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나빠졌다.

 그리고 또 그의 유명했던 말 중에는 <나는 당신의 의견(意見)에는 반대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주장하는 권리(權利)는 내 목숨을 걸고 지킨다 또는 그 권리에는 찬성한다>라는 말이 있으며, 그것은 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서, 특히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원칙을 단적으로 표시했던 명문(名文)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사람(Stephen G. Tallentyre. 本名은 Evelyn Beatrice Hall)의 저작(著作-The Friends of Voltaire. 1906)중에서 부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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