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에

 

   텁텁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밤

   새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푸덕거리며

   갈대 속에서 방황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먼 마을 어부의 노래도 들려왔다.

 

   밤새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

   아주 먼 옛날의 전설을 들으며

   끝없는 방황의 고민을 토해낸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가슴도 먹먹해진다.

 

   걱정하지 말고 얼마든지 푸념하라.

   세상에 괴로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 다음에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여라.

   그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어부의 노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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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순국선열 몇 분을 소개합니다... 


 

<2천만 동포(同胞)의 10분의 1만 목숨을 내놓으면, 곧 독립(獨立)이 됩니다!>

 


 

 

 


 유관순(柳寬順) 또는 류관순은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렸던 분으로, 한국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소개를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인데, 그러나 그 짧았던 생에 비해서 너무도 강열한 인상을 남겼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한 번 소개해보려고 한다.

 유관순은 조선(朝鮮)의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탄생일에 대해서는 1902년 또는 1904년 3월 15일이라고 기록된 곳도 있지만, 그러나 <유관순열사기념관>의 자료에 의하면 1902년 12월 16(음력 11월 17)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사망일에 대해서도 9월 28일과 10월 12일 등의 자료가 있지만, 그러나 또 <유관순열사기념관>의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유관순은)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한 광 파열로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여 수의를 해 입혔다.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 주례로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고향은 충청남도의 천안군(天安郡-現 天安市)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龍頭里-옛 지명은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였고, 아버지는 유중권(柳重權), 어머니는 이소제(李少悌), 5형제 중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당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은 개명적(開明的)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흥호(興護)>라는 사립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빚을 많이 져서 가정(家庭)은 힘들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유관순열사기념관>의 자료에 의하면 <1915년 13세 때의, 4월 1일에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라고 했지만, 그러나 또 1916년에 크리스트교의 메서디스트(Methodist-監理敎會-국교회 등의 기성교회 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교회 또는 기독교 신교의 한 교파인 감리교에 속하는 교회) 미국인 선교사(宣敎師) 마리아(또는 앨리스) 샤프(sharp)의 도움 또는 권유로, 경성(京城)의 이화학당(梨花學堂 보통과)에 급비생(給費生-국가나 단체 또는 개인으로부터 학비지원을 받아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입학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1919년, 삼일독립운동(三一獨立運動)이 발발(勃發)하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부터 각 학교의 휴교명령이 내려졌다. 그러자 그때 유관순(柳寬順)열사는 학교의 제지(制止)에도 불구하고 담을 넘어서 그 운동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아래는 <유관순열사기념관>의 자료를 옮긴 것이다.

 3월 1일: 3.1운동이 발발하였다. 유관순은 학교 담을 넘어 서울 시위운동에 참여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3월 3일: 광무황제 국장례가 거행되었다. 이날은 시위가 자제되었다.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단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친구들과 함께 이 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경무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3월 10일: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3월 13일: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 천안으로 왔다.


 3월 14~3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각 마을을 다니면서 시위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31일: 유관순,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 아우내 만세시위 발발하다.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숙부 유중무, 속장 조인원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오빠 유우석은 공주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다 부상당해 붙잡혔다.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법원에서 5년형을 받았다.


 6월: 유관순과 아우내 만세 주역들이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이에 따라 유관순과 이들은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6월 30일: 유관순은 경성 복심법원 재판에서 3년형을 언도받았다. 유관순은 상고를 포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8월 29일: 유우석은 공주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9월 11일: 유관순을 제외한 시위주도자들의 상고가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1921년 1월 21일: 광무황제가 갑자기 서거하였다.


 2월 8일: 일본 동경 유학생 400여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였다.(2.8 독립선언)


 아무튼, 고향으로 돌아갔던 유관순열사는, 교회관계자 등과 함께 그곳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했고, 이어서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지만 그러나 일본헌병경찰의 발포로 아버지와 어머니 등이 사망했으며 유관순열사는 체포되었다.

 그러자 유관순열사는 1심(審)에서 폭력데모를 주도했다는 죄로 징역 3년(또는 5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抗訴審)재판에서 재판장과 말다툼을 했고, 그리고는 의자를 재판장에게 던졌던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또 법정모욕죄(法定侮辱罪)가 적용되어서 4년이 추가(追加)구형(求刑)되었지만, 그러나 선고(宣告)되었던 형기(刑期)는 3년이었다. 그러나 고등재판소(高等裁判所)에 상고(上告)하지는 않았고 그러자 또 감형(減刑)이 되어서 최종형량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유관순열사는 옥중(獄中)에서 대규모의 데모를 주도했던 등, 저항을 계속했지만, 그러나 일제(日帝)의 가혹(苛酷)한 고문(拷問) 끝에 결국, 1920년 10월 12일(음력 9월 28일-역시, 사망 日時에 대해서는 諸說이 있음)에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 안에서 사망했는데, 그때 유관순열사의 나이는 17세 또는 18세였다.

 그러자 또 그 뒤에 여러 가지의 소문이 난무했다지만, 확인할 수는 없고, 그리고 그 한참 후였던 1962년 3월 1일에 대한민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建國勳章)이 수여되었다. 그리하여 유관순열사는 독립열사(獨立烈士)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러자 또 크리스트교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시아의 잔 다르크(Jeanne d’Arc)>로 대우(待遇)되면서 신성화(神聖化)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어린 나이에 여린 여성의 몸으로 <강도(强盜) 일제(日帝)의 폭거(暴擧)>에 당당하게 맞서 싸웠던 분으로 우리들에게는 기억되고 있으며, 그 강직하고 불의에 지지 않는 민족정신은 여느 민족주의자나, 독립투사 또는 구국의 횃불을 들었던 분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위대한 열사는 더럽고도 천박한 왜놈들의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로 가볍지 않았으며, 더욱이 <나치>의 <유태인 홀로고스트>에 비견되게, 과연 어떻게 해야 <방광 파열>이란 것이 되는지에 대해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만행을 태연하게 자행한 <짐승보다 못한 왜놈들>에 의해서 처참한 최후를 당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한국인을 넘어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분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유관순 열사>는 한국 역사에서 길이 남을 위인으로 현재도 앞으로도, 한국인들의 가슴에서 <거룩하고 숭고한 한 송이의 꽃>으로 영원히 피어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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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현재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원한다

사랑만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를 원한다

어떤 이들은 가치 있는 것을 원한다

 

무엇을 원하든 그것은 개인의 바람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언제나 바뀐다

꼭 그것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의지다

그것은 자신의 의식이며 존재감이다

그것만이 오직 중요한 것이다

 

지금 세상에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전부 껍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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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여름

 

   계절답게 갑작스러운 천둥이 하늘에서 울었다

   정원의 보리수들이 두려워 몸을 떨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

 

   사슴처럼 커다랗고 물개처럼 젖은 눈으로

   한줄기 번개가 번쩍하고 지나며 남긴 빛에

   연못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줄기 위에서 춤을 추며

   기분 나쁜 바람의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그때 다시 먼 곳에서 천둥이 울렸다

 

   우리 곁으로 여름의 열기를 품은 바람이 지나갔다

   소녀는 나의 품에 안겨서 몸을 떨었다

   “당신도 천둥소리가 무서우세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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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냈으면 그만이지!...

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일종의 <신 풍속도>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번 중국발 코로나 때문에 생긴 일이다.

 

즉, 지난 <부처님 오신 날>에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부처님을 모시지 못했으니

오늘 다시 모시겠다고 해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이 두 번이 되었는데

어쨌든 그 날을 기념해서 두 편의 시를 올리므로

관심이 계신 분에게는 좋은 인연 되길 바랍니다...

 


 

<자비(慈悲)>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인심이다

세상에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인정이다

그 속에 자비는 얼마나 들었는가

 

입으로 하는 공치사는 넘쳐나고

모두들 행복하라고 외쳐댄다

그러나 정작 자비에는 인색하다

 

자비는 무조건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합당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자비를 받을 자를 선별할 혜안을 기르라

물고기도 치어는 잡지 않는다

그나마 인정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오늘만 같아라

악인들도 오늘만은 자숙을 하듯이

매일이 자비 넘치는 날이 되길 바라면서



 

 

  < 쌀 한 알 깨 한 알 >

 

  옛날, 성자께서 고행의 숲에 앉아계실 때
  스스로를 시험하려 모진 행위를 다하셨고
  그 결과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라

  성자께서는 쌀 한 알과 깨 한 알로 식사를 마치시고
  인간의 모든 더러움을 육체에서 뱉어내시니
  그 정갈함은 투명한 뼈로 나타내 보이시도다

  나는 감히 그 이야기만으로도 경악하여 할 말을 잃고
  더욱 엄두를 내지 못하여 한숨만 쉬고 있나니
  성자의 그 깨달음은 분명 예사 것이 아니어서이다

  하여 나는 이제 숟갈만 들어도 겁이 나고
  배가 조금만 불러도 죄를 지은 마음이다
  성자여, 성자여, 거룩하고 위대한 성자여... 
  라고 외치면서 

 

  쌀 한 알 깨 한 알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어도 
  쌀 한 알 깨 한 알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오늘도 거룩한 성자를 따르려 애쓰고 있다

  오, 진실로 위대한 성자여
  그대의 발끝에라도 다다르고 싶습니다

  라고  감히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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