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忍耐)는 정신(情神)의 제일로 훌륭한 선물(膳物)...>

 


 

 

 

 인내(忍耐)는 정신(情神)의 제일로 훌륭한 선물(膳物)이다.

 하지만 마치 자전거(自轉車)를 처음 배울 때처럼, 그 습득(習得)에도 뇌(腦)의 훈련(訓練)이 필요하다.

 

 (Toleration is the greatest gift of the mind; it requires the same effort of the brain that it takes to balance oneself on a bicycle)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1880년 6월 27일부터 1968년 6월 1일)는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미국의 교육가(敎育家)였고, 사회복지활동가, 저작가(著作家)였으며, 자기도 중병을 앓고 있었으면서도 세계 각지를 역방(歷訪)하면서 신체장애자들의 교육과 복지에 힘썼던 여성(女性)이었다.

 그녀는 1880년 6월 27일, 미국의 앨라배마 주(州) 터스컴비아(Tuscumbia)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사항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1882년, 2세(생후 19개월)였을 때 고열(高熱 또는 성홍열, 뇌막염)에 시달렸지만, 의사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겨우 치료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청력과 시력을 잃었고,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양친(兩親)으로부터의 교육도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그녀는 수화(手話)로 가족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1887년에 그녀의 양친(兩親)은 당시 청각장애아의 교육을 연구하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전화의 발명자)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벨은 당시 매사추세츠 주(州-Watertown)에 있었던 퍼킨스맹(盲)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를 소개해주었고, 그러자 그녀의 양친(兩親)은 그 학교의 교장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3월 3일에 가정교사로 왔던 여성이 바로 당시 그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그녀 본인도 어려서부터 약시(弱視)였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수술을 해서 조금 호전되었다고 했던 20세의 앤 설리번(Anne Sullivan 또는 Annie Sullivan Macy,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1866년 4월 14일부터 1936년 10월 20일. 통칭은 애니, 그러나 상세한 것은 후술 또는 생략)이었고, 그리하여 그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던 두 여인은 그때부터 서로 의지하면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앤 설리번>


 그 후, 헬렌은 그녀로부터 여성의 기본교육이라든가, 지문자(指文字-시각적 의사소통수단의 하나로, 손과 손가락의 모양으로 글자를 나타내는 것 등, 또는 손바닥에 글을 써주고 익히는 방법 등), 단어의 습득 등을 교육받았다. 그러자 그때부터 헬렌은 포기하고 있었던 타인과의 대화(對話)가 가능해졌으며, 그 후로 설리번은 약 50년간 헬렌의 좋은 스승으로 또는 친구로 헬렌의 의지가 되었다.

 그 후, 몇 곳의 학교를 전전했던 헬렌은 1897년 설리번과 충돌했던 케임브리지(Cambridge) 여학원(女學院)을 퇴학하고 랜섬(Wrentham-매사추세츠 州)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또 한명의 가정교사와 함께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900년에는 래드클리프(Radcliffe)여자대학(현재의 하버드대학)에 입학했으며, 1902년에는 <나의 생애(生涯)>를 출판했다. 그리고 1904년에 동(同) 대학을 졸업했으며, 문학사(文學士)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190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州)의 맹인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09년에는 미국사회당에 입당했다. 그리고는 부인(婦人)참정권(參政權)운동과 산아제한운동, 공민권(公民權)운동 등, 많은 정치적이며 인도적(人道的)인 항의(抗議)운동에 참가했으며, 저작가(著作家)로서의 활동도 계속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세계산업노동조합(IWW)에 관심을 가져서 그 활동에 참가했으며, 1917년에는 러시아혁명을 옹호했다.

 하지만 또 그때, 피로 누적으로 설리번의 눈병이 재발했고, 그러자 두 사람은 그때부터 폴리톰슨(Polly Thompson女史, 나중에 秘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1936년 10월 20일에 설리번은 사망했는데, 그런데 또 바로 그 직전에 이와하시타케오(岩橋武夫-1898년 3월 16일부터 1954년 10월 28일. 일본의 사회사업가) 등의 요청으로 일본에서의 초청이 들어와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설리번은 주저(躊躇)하던 헬렌에게 그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앤 설리번과 함께, 헬렌 8세경>

 

 그리하여 설리번은 세상을 떠났으며, 헬렌은 1937년 4월 15일에 설리번의 유언을 따라서 톰슨과 함께 일본의 요코하마항(横浜港)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신주쿠교엔(新宿御苑)으로 가서 환영회에 참가해서 <일본 왕(昭和)>을 만났으며, 그 후에는 일본 각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헬렌은 그때, 당시 <일본의 헬렌 켈러>라고 불렸던 나카무라히사코(中村久子-1897년 11월 25일부터 1968년 3월 19일)도 만났으며, 그때 또 헬렌이 <아키타이누(秋田犬)>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그 개 두 마리도 나중에 선물로 받게 된다. 하지만 또 그때 약간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고 했는데(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코하마 항의 客船대합실에서 헬렌이 毛布를 取했다고 함. 그러나 일본에서는 훔쳤다고 신문에 보도됨), 그러자 일본 각지에서 성금(誠金)이 쇄도(殺到)해서 원 모포(毛布) 가격의 10배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였던 8월 10일에 헬렌은 일본을 떠났으며, 1946년에는 <해외맹인미국협회>의 대표가 되어서 톰슨과 함께 유럽을 방문했다. 그리고 1948년에는 두 번째로 일본을 방문했으며, 그러자 또 일본에서는 그 일을 기념해서 <헬렌 켈러 재단(財團)>이 설립되기도 했다. 그리고 1951년에는 남부아프리카를 방문했으며, 1952년에는 프랑스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훈장(勳章-L'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 프랑스의 최고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또, 그때부터 1957년까지 중동(中東)과 중부아프리카, 북유럽, 일본 등을 차례로 방문했으며, 그 중의 1955년에는 설리번전기(傳記) <선생님>을 출판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일본방문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때의 방문목적 중의 하나는 그때까지 친구로 지냈던 이와하시타케오(岩橋武夫)가 1954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영전(靈前)에 꽃을 바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헬렌은 그 이와하시(岩橋)의 이름을 부르고 울면서 일본을 떠났고, 1960년에는 의지했던 톰슨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헬렌도 1961년에 병이 들었으며, 그때부터 서서히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9월에 미국정부로부터 <대통령자유훈장>이 주어졌고, 1968년 6월 1일 코네티컷(Connecticut) 주(州) 이스턴(Easton)의 자택(自宅)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 87세였다. 그러자 일본에서도 훈일등(勳一等) 즈이호우쇼우(瑞寶章)가 증정(贈呈)되었다.

 그리고 헬렌은 이미 알려진 대로 복지(福祉)활동뿐만이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서 광범위(廣範圍)한 활동을 했던 여성이었고, 그래서 또 당시로서는 선진적(先進的)인 사상(思想)을 가지고 남녀동등권론자(男女同等權論者)로서 부인참정권(婦人參政權)이나 피임구(避妊具)의 사용(使用)도 주장했던 여성이었다. 그리고 또, 인종차별반대론자(人種差別反對論者)였기도 했던 그녀는, 그래서 또 과혹(過酷)한 어린아이들의 노동(勞動)과 사형제도(死刑制度)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의 살육(殺戮)에도 반대를 했다. 그러자 에프비아이(FBI)에서는 그녀를 요조사인물(要調査人物) 또는 요주의인물로 지목하기도 했으며, 최초의 일본방문 때에는 특별고등경찰(特別高等警察)의 감시(監視)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그녀와 설리번의 이야기는 "The Miracle Worker(기적을 이룬 사람들 또는 내용적으로 기적을 이끌어낸 설리번)"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으며, 그것은 또 일본에서도 <기적(奇蹟)의 인물>이란 제목으로 수차례 상영되기도 했는데, 하지만 또 그것은 설리번의 이야기를 헬렌의 일로 오해했던 결과였다고 한다. 그래서 또 당시, 헬렌은 일본에서는 <기적(奇蹟)의 대명사(代名詞)>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그것은 또 당시 설리번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그 설리번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 역시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임을 잘 보여준 케이스였다고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신체적인 불완전함과 정신적인 불완전함이 합쳐진 것으로, 니체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 예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격려와 함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럼에도 거의 폐기될 수도 있었던 한 인생을 그렇게도 역전시킬 수 있다는 한 예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인생은 두려움을 모르는 과감한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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