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년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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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이다. 박범신의 글은 신문 등에서 가끔 읽었는데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자못 문장이 고풍스럽고 세련된 낱말들이 적혀있다.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각은 옳다. 그것은 나랏것들이 독점해서는 안되고 백성들의 삶에서 쓰여야 하는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백성들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길 위에 서 있었다. 그가 길을 더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김정호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아버지가 품고 떠난 군현도는 바로 물길과 산 들이 제각각 떨어져 맥을 이루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살이도 사람과 사람, 떼와 떼의 맥을 짚어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고, 산하를 치세함에 있어서도 산과 산, 물과 물의 이어짐을 잘 짚어내지 못하면 치세의 죽음뿐이다. 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줄기를 잘 엮고, 떼와 떼의 이음새를 잘 다루어, 억울하거나 원통한 이 없이, 밖으로는 방비를 든든히 하면서, 안으로는 그 맥에 따른 특성을 잘 살펴, 사람과 자연을 함께 이롭게 하는 일일 터이다.
물론 지도는 치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임금과 재상이 강토의 형세를 알아 치국의 저울로 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백성이 땅을 알아 이롭게 가꾸고 넉넉히 거두며, 물과 바람을 알아 살림과 식솔을 보호하고, 험난한 곳과 평탄한 곳, 급한 곳과 원만한 곳을 알아 풍속을 바르게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마땅히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라야 한다.
그가 굳이 대동여지도를 목판본으로 새기고 절첩식으로 고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도는 당연히 나라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편협한 생각 때문에 결국 아버지가 죽은 게 아니던가. 목판본 대동여지도로써, 온 백성이 이를 지녀 더이상, 아버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자는 게 그의 오랜 꿈이다. (84-85)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게 된 동기는 꽤 절실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지도 제작의 지난한 과정은 생략되거나 간략하게만 다루어져서 리얼리티에서 느껴지는 감동 같은 게 조금 부족했다. 자료와 발이 아니라 영감과 어조로 쓴 듯한 소설이다. 김정호가 길에서 홀로 맞아야 했을 그 많은 고갯길과 이슬과 호랑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고자 합니다. 이용후생입지요. 제 선친께서 일찍이 실제와 다른 지도로 억울하게 작고하셨습니다. 관아에서 내준 지도였어요. 지도란 사람살이의 흥망은 물론이고 목숨줄이 달려 있는 겁니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강토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는 나도 대마도, 우리 땅이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 이상이나 정치적인 목적, 판단은 제 소임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시 말해 대마도를 우리 강토로 그려내도록 하는 일은, 여기 계신 대감 같은 분의 소임이지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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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의 슬픈 노래


꽃게는 사람들에게 잡혀
시장으로 가
찰깍찰깍 철꺽철꺽
슬픈 노래를 부르네

 

우리 엄마에게 끌려와
냉동실에서
찰깍철꺽
슬픈 노래를 부르네

 

냄비에 들어가니
온몸이 주황으로 변하고
입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꽃게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네 철꺽 철꺽 철꺽


(2015년 8월 24일 초등 2학년 딸내미 동시)


이 시를 아내가 읽어주었다. 딸내미 감성이 남다르다는 걸 전부터 느꼈지만 이건 거의 시인이 아닌가.

냄비에 꽃게가 들어간 모습을 보면서 딸내미는 꽃게가 되었던 거 같다.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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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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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범주의 깊이 있는 서술을 볼 때마다 부럽다. 그러다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자괴감이 들 때쯤 공연히 별점을 한 개 줄이고 싶은 못된 심술이 솟아나기도 한다. 저자의 폭넓은 견문과 학식을 접하면서 마치 테레비에 나오는 '참 쉽죠~'라는 유행어를 듣는 거 같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읽히는 개설서지만 이런 책은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여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별점을 꽉 채웠다.

 

공포와 화반의 역사적 변천과 한중일 교류 관계에 대해 개요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석조물에서도 몇 가지는 기존에 듣지 못한 분석이 있었다. 불국사 석축에 관한 건축적 분석은 귀담아 들을 만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우리 문화재에 관해 금시초문인 내용들이 많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유물이나 유적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 그 예술적 가치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알면 알수록 더욱 찬탄을 하게 된다. 모르면 감동도 없는 법이다.

 

종묘 정전 월대 박석에 관한 막연한 찬탄이나 감상이 아닌 시각적, 기술적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건축사와 공장사(工匠史)를 전공한 저자가 아니라면 절대 들려주기 힘든 설명이었다. 

 

(종묘 정전 박석의) 돌은 규산염광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화강암은 실리카, 즉 규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그 색상은 기본적으로 희다. 따라서 이런 흰빛을 띤 화강석 표면을 너무 곱게 다듬어서 바닥에 깔게 되면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되고 또 빗물이라도 표면에 남아 있으면 미끄러질 우려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불편한 돌 표면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석공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해서 박석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두었다. 박석의 크기도 일정하게 하지 않고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얼핏 보면 부실 공사이거나 일을 대충하고 마무리를 치밀하게 완성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옳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석공들의 가슴에 담긴 천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완벽한 마무리에 매달리지 않고 재료가 갖는 속성을 숙지하여 가장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려는 미학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해 이와 비슷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종묘 정전 월대 박석도 그런 평가의 대열에 넣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

 

책에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보들이 수두룩하였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성과에서 오는 것이다. 다만 어떤 내용에서는 충분한 도판이 소개되지 않아 막연한 짐작만 하고 넘어간 경우가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다.

 

한국건축사 수업에서는 교재 다음으로 읽어야 할 필독도서급이고, 동양건축사 수업을 한다면 거의 교재급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권위자의 경험과 관점을 골고루 담아낸 역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결정적 문장들을 밑줄을 좍좍 치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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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세는 지붕부터
    from 突厥閣 2015-08-04 23:07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
 
 
달걀부인 2015-08-0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돌궐 2015-08-05 07:40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 님 반갑습니다.^^
 

요즘 읽고 있거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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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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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지음 / 태학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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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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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지음, 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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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감동도 없다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적인 방식을 대충 흉내 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서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비록 도시의 비좁은 집이지만 처마만은 그럴듯하게 꾸며서 구매자들의 선호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8-111)

 

요즘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지로도 유명해서 나도 가본 일이 있는데, 지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물론 처마의 곡선을 살리는 예가 있지만, 대개는 궁궐이나 종교시설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미보다는 시공상의 간편함을 추구했고 이에 따라 아름다운 처마곡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이 처마 곡선을 만드느라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부동산'으로서 북촌의 살림집들이 지어졌다니 참 재미있다. 속(구조)은 부실한데 겉모양(지붕)만 그럴싸한 것들로 허세 부리는 전통이 과연 어디서 왔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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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옥의 지붕은 그저 한국적 곡선미를 보여주는 건축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오늘 본 글 중에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

돌궐 2015-07-31 22:13   좋아요 0 | URL
물론 지붕 곡선이 아름다운 건 맞지만, 그걸 위해 경제성이나 효율성이 희생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처마 쪽에 부채처럼 펼쳐지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만병통치약 2015-08-0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옥에 대한 책을 보면서 과학적 우수성에 감탄했는데 위 사진보니 기능성에 허세도 많이 들어갔네요 ^^ / 아파트에도 처마 기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돌궐 2015-08-01 23:07   좋아요 0 | URL
와 아파트에 처마라... 대단하겠는데요? 더불어 방과 거실에는 이중 슬라이드 책장까지 구비되면 금상첨화겠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