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py and Rye (Paperback)
Avi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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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다 읽었는데 크리스핀에 비하면 약간 수월한 편이다.

 

책에서 나오는 악의 축, 비버들은 탐욕과 교활의 아이콘이다.

비버 우두머리 Canad는 연못을 호수로, 호수를 바다로 만들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개울가 땅 속에 살던 들쥐 식구들같은 이웃은 어떻게 되건 말건!!

이처럼 비버 무리의 탐욕스러운 소굴 확장은 뭔가 자본논리나 제국주의, 아니면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행태(NIMBY 또는 PIMBY)를 풍자하는 걸 수도 있다.

 

Poppy는 Ragweed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려주기 위해 고슴도치 Ereth와 함께 길을 떠나고, Rye는 Ragweed를 찾아 떠난다.

그러다가 포피와 라이는 길 한가운데서 만나고, 거기서 함께 춤을 춘다. 둘은 서로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포피는 라이와 그 가족에게 레그위드가 죽었고 자기가 레그위드를 사랑했었다고 말한다.

이 말에 좌절한 라이는 포피에게 인정받기 위해 충동적으로 비버 소굴로 향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만들어 낸다.

 

30분에 12쪽 정도 읽는 속도로 한 1주일 걸린 듯하다.

 

이 책에서는 캐너드의 욕심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레스의 엉뚱한 순정도 안타까우면서 재미있었다.

이 고슴도치는 꽤 까다롭고 시니컬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아래는 탐욕과 자본과 경쟁의 상징 캐너드의 말과 생각.

 

But now, how different the beavers had made it! Every day the pond was growing wider, deeper, grander. It had taken on the vibrant color of mud. It was a home for hearty, busy beavers who worked day and night.

"This," Mr. Canad said to himself with genuine pride, "is progress." The portly beaver felt so good about it, he spelled the word out letter by letter: "P-R-O-G-R-E-S-S!"

And yet, Mr. Canad had to confess, he was not fully satisfied. No, he was not. What he and his company had created was -he had to admit it- merely a pond.

Mind, he told himself,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a pond. A beaver who built a good pond had every reason to be pleased with himself. Yet even the word pond suggested smallness, a compactness of size which might be good enough for some, but not for the likes of Caster P. Canad and Co! Not only could they do better, they should do better. As Mr. Canad saw things, it was not a pond that was needed but a lake!

The beaver cast his keen engineer's eye over the little valley. To achieve a lake they needed to build another dam higher up.

 

좀 뒤에 캐너드는 이런 말도 한다.

Then he mused. "If I can make a lake, well, bless my teeth and smooth my tail, why not an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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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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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원서로 읽어보려고 했던 책인데 어려운 거 같아서 관두고 번역본으로 봤다.

내 글쓰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가 많았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저자가 말하는 것에 공감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싫어하는 것과 악담하기 위해서 글 쓰지 말자.

쓰려면 애정을 갖고 쓰자.

글쓰기는 만만한 게 아니다.

생각이 완성되고 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고치면서 생각이 완성되는 것이다.

초고는 다듬지 말고 빨리 써서 뼈대를 갖춘 다음에 수정하자.

사람과 장소: 논픽션의 두 뿌리.

사람이 '그곳'을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아래는 책에서 인용.

 

 

글을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명료한 문장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심지어는 세번째까지도 적절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24)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언제나 써야 할 것보다 많은 자료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힘은 가장 도움이 되는 일부분을 추려내기 위한 여분의 자료가 얼마나 많으냐에 비례한다. 평생 자료만 수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조사를 마치고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59)

 

 

이런 종류의 여행기를 써보는 연습을 하자. 그렇다고 모로코나 몸바사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쇼핑몰이나 볼링장, 탁아소도 좋다. 다만 어느 장소건 그곳만의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은 자주 가보아야 한다. 그 특별함은 대개 그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조합된 것이다. 집 근처 볼링장이라면 내부 분위기와 주로 찾아오는 사람들, 외국의 어느 도시라면 고대의 문화와 현재의 주민들이 그 특별함을 이룰 것이다. 그것을 찾자. (105)

 

 

미국의 실업계는 쉬운 말을 편안하게 사용하는 곳이 아니다. 글 한 줄 한 줄에 허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지위가 높건 낮건 관리자들은 문체가 단순하면 생각이 단순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단순한 문체는 고된 노력과 사고의 결과다. 문체가 엉망인 글을 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뒤죽박죽이거나 오만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글은 여러분에게 거래나 돈이나 선의를 제공할 누군가에게 여러분을 알릴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글이 현란하거나 거만하거나 모호하면 여러분도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57)

 

 

좋은 평과 좋은 비평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은 제시할 수 있다.

먼저, 비평가는 자신이 평가하는 매체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영화는 죄다 시시하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에 대해 써서는 안 된다. 독자는 지식과 열정과 편애를 키워줄 영화광의 글을 읽을 권리가 있다. 비평가가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할 필요는 없다. 비평이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니까. 그러나 비평가는 모든 영화를 보러 갈 때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즐거울 때보다 실망할 때가 더 많다면, 그것은 그 영화가 최선의 가능성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이든 곱지 않게 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비평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카프카적인'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보다도 더 빨리 싫증을 느낀다. (162-163)

 

 

 

이 비평은 최고다(위). 멋지고 비유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글은 우리의 신념 체계를 건드리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비평은 대개 그래야 한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열쇠구멍이라는 적확하고도 신비한 은유다. 그러나 한 나라의 가장 강력한 매체가 자국이 수행하고 또 확대하고 있는 전쟁에 대해 자국민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그대로 남는다. 이 칼럼은 미국인 대부분이 아직 베트남전쟁을 지지하던 1966년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만일 텔레비전이 열쇠구멍을 넓혀 물결치는 옷자락뿐 아니라 잘려나간 목과 불에 타버린 아이를 보여주었더라면 사람들은 더 일찍 전쟁 반대로 돌아섰을까? 답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적어도 비평가 한 사람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비평가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닐 때 그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169)

 

 

모트 살(Mort Sahl)은 미국이 조용히 안정을 누리려던 1950년대 아이젠하워 시대에 깨어 있었던 유일한 희극 배우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을 냉전주의자로 보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쁜 것을 바꿀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트제너레이션(1950년대 미국에서 대두한 보헤미안적 문학 예술가 세대)처럼 '난 개입하지 않을 테니 딴데 가보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있으며 개입한다(If I criticize somebody, it's because I have higher hopes for the world, something good to replace the bad. I'm not saying what the Beat Generation says: 'Go away because I'm not involved.' I'm here and I'm involved)."

진지한 유머를 쓰고 싶다면 "나는 여기 있으며 개입한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자. 유머 작가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시사적인 문제에 깊이 뛰어든다. 그들은 대중과 대통령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아트 버크월드와 개리 트루도는 매주 한 번 용감한 일을 감행한다. 그들은 일반 칼럼니스트들은 차마 할 수 없지만 할 필요가 있는 말을 한다. 다행인 것은 정치인들은 유머에 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보다 더 어리둥절해한다는 것이다. (181-182)

 

 

이 글이 왜 끔찍한지 애써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한마디로 조잡하고, 진부하고, 장황하다. 언어를 깔보는 태도가 있다. 가식적이다(나는 '아시겠지만'이라고 쓰는 사람의 글은 더 읽지 않는다). 그러나 성긴 글에서 가장 딱한 점은 제대로 된 글보다 읽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글은 독자의 여행을 편하게 만들어주려 한 나머지 천박한 속어, 조악한 문장, 내용 없이 철학자인 체하기 같은 이런저런 방해물을 길에 늘어놓고 만다. 화이트의 글은 훨씬 읽기 쉽다. 그는 문법이라는 도구가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문법은 독자들이 알게 모르게 크게 의지하는 버팀목이다. E. B. 화이트나 V. S. 프리쳇의 글이 너무 훌륭하다고 해서 읽기를 그만두는 독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글쓴이가 자신을 깔본다고 느끼면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선심 쓰는 체하는 필자를 참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상의 언어에 대한, 그리고 최상의 독자에 대한 경의를 품고 쓰자. 성긴 문체를 쓰고 싶은 충동이 너무 강하다면, 자신이 쓴 글을 큰 소리로 읽어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직접 느껴보자. (205)

 

 

여기에서 논픽션 작가가 얻을 만한 교훈은, 자기 과제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듀본』에 쓰는 글이라고 해서 꼭 자연에 대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카 앤 드라이버』에 글을 쓴다고 해서 꼭 자동차에 대해서만 쓸 필요는 없다. 써야 할 주제의 범위를 넓혀서 그것이 여러분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자. 자신의 삶을 거기에 가미하자. 여러분이 쓰기 전까지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221)

 

 

논픽션 작가라면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한다. 흥미로운 주제가 있으면 쫓아가야 한다. 다른 지역이든 다른 나라든 찾아가봐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찾아오지는 않는다.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자. 그리고 하기로 결정하자. 그리고 하자. (257)

 

 

아버지에게서 선물을 하나 더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 길을 떠난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것은 좋은 품질은 그 자체가 커다란 보상이라는 뼛속 깊은 신념이었다. 나 역시 글을 팔기 위해 돌아다닌 적이 없다. 집 안에서 글을 좋아한 분은 어머니였지만 -책 수집가, 영어 애호가, 현란한 편지 문장가로서- 내가 장인의 윤리를 배운 것은 사업의 세계에서였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고쳐 쓴 것을 끊임없이 고쳐 쓰고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글을 쓰려고 애쓰는 자신을 볼 때면, 셸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속에서 들여온다.

최선을 다해 잘 쓰는 것 외에도, 나는 최대한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야심만만한 작가들에게 어느 정도는 자신을 엔터테이너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카니발이나 곡예나 광대를 연상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즐거운 글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서 돋보여야 한다. 여러분의 글쓰기를 엔터테인먼트로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대개 독자들에게 즐거운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유머, 일화, 역설, 뜻밖의 인용, 강력한 사실, 특이한 디테일, 우회적인 접근, 단어의 우아한 배열 등 어떤 것이든 좋다. 사실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것들이 바로 여러분의 문체가 된다. 우리가 어떤 작가의 문체가 좋다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종이 위에 표현하는 그의 개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함께 여행할 친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대개 여행을 밝게 만들어줄 만한 사람을 택하게 마련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하는 사람이다. (275)

 

 

성실한 필자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조 디마지오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디마지오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이며, 누구도 그만큼 편안하게 경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외야에서 광범위한 수비 영역을 책임졌으며, 우아한 걸음으로 움직였고, 언제나 공보다 앞서 와 있었으며, 가장 어려운 공도 아무렇지 않게 잡았고, 타석에서 엄청난 힘으로 공을 쳐내면서도 전혀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힘들이지 않는 듯한 모습에 감탄했다. 그것은 매일같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어떻게 하면 늘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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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pin: the End of Time (Library, Reprint)
Avi / Balzer & Bray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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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크리스핀 트릴로지는 읽기 계획에 없었던 책이다(그렇다고 요즘 읽은 책들이 다 목록에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1편을 보고 그 뒷 이야기가 참 궁금하여 후편들을 연달아 독파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고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모험과 긴장으로 가득 찬 성장소설을 언제 또 읽어 보나.

 

중세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사건-배경이 잘 녹아 있는 팩션이다.

말랑말랑하고 여운이 많고 큰 갈등이 부족한 우리 어린이 팩션 소설에 비하면 매우 감정 소모가 심한 줄거리임은 분명하다.

아무리 중세 배경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 어린 아이들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지 저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책 뒤쪽에 보니 어느 독자는 저자가 2편에서 크리스핀의 멘토인 베어를 죽게 했다고 화까지 냈다고 한다.

그뿐인가. 3편에서는 트로스마저 크리스핀을 떠나고 만다.

들판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몸부림치는 크리스핀의 모습은 정말 암담함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아무튼 이런 기구한 운명이 그 시대에는 흔했을 것이다.

소설은 시대의 단면을 지식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느낌으로도 전하는 것이다.

책 속에는 중세의 다양한 장소와 시간들이 묘사되었고, 그곳에서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드러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읽었는데,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끝까지는 오늘 저녁에 한꺼번에 읽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40+15+45+45+25+85+20+30+180분=485분(8시간 남짓) 정도?

페이지 수를 223쪽으로 나누면 한 쪽 당 평균 2.175분 가량이 나온다.

가끔 단어 찾느라 지지부진한 적도 있었으니 대략 한 페이지를 2-3분 정도에 읽는 꼴이겠다.

내용 파악에 문제가 안되는 한 모르는 단어는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정독했다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원서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지 아니면 워낙 급박한 이야기라 어쩔 수 없이 막 넘긴 건지 모르겠다.

아마 몰입도가 없다면 좀더 느려질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큰곰 별자리(Great Bear)를 바라보며 나누는 크리스핀과 Thorvard의 대화를 옮겨 본다.

 

He pointed up. "Consider that bear. The smaller one. Can you see it clearly?"

"I think so."

"That bright star there-at the end of smaller bear's tail," he said. "Do you see the one I mean? It's called the North Star. Ancient mariners called it Cynosure."

I looked along the reach of his arm and hand and thought I saw what he meant. "What of it?"

"That's the mariner's star. It shows true north. It's always there. Unmoving. Know that star and you shall know where you are and where to go. That star is the sailor's hope and guide. I named this ship after it. Always look for it. It can be your salvation. Crispin, follow your Bear."

My heart seemed to swell. "Will it... will it always be there?"

"Until the end of time."

I stared at the star, fixing it in my heart. "Then can I follow Bear forever?"

"Not follow, Crispin. Use. Learn to use him to help you know where you are and where you're going."

My tearful eyes made the star blurry. But I saw it still. And would see it, I knew, till the end of time.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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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실전적 문장비법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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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가 말하는 낱말 찾기, 속성 찾기, 본성 찾기 같은 준비 작업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이것이 꼭 픽션을 쓰는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

 

반납 전에 몇 마디 옮겨 적는다.

 

나쁜 놈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놈이 나쁜 놈일까.

나는 딱 한 가지 부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뿐인 부류다. 그러니까 나뿐인 놈이 바로 나쁜 놈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뿐인 놈이 음운학적인 변천과정을 거쳐 나쁜 놈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남들이야 죽든말든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무조건 나쁜 놈에 속한다. (52)

 

허영 중에서도 글쓰는 사람들이 특히 매력을 느끼는 허영이 지적(知的) 허영이다. 여기에 빠지게 되면 창작을 하더라도 보고서나 논문을 연상시키는 문장들을 구사하게 된다. 소화되지 않은 학문, 소화되지 않은 철학은 글쓴이를 위선자로 만들기도 하고 읽는 이를 청맹과니로 만들기도 한다. 허영은 국어사전 그대로 겉치레에 불과하다. 알맹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문장. 끊임없이 열거되는 전문용어. 철학적인 사고나 지적인 이론으로 점철된 문장. 지나치게 남발되는 외국어. 이런 허영들을 도구로 사용해서 자신이 돋보이기를 바라지 말라. 허영은 자신의 정신적 빈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가식이나 욕심과 마찬가지로 문장의 생명력과 설득력을 말살시킨다. (111)

 

그대가 고작 밥을 먹기 위해서 글을 선택했다면 단언컨대 그대는 밥조차 먹기 힘든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대의 의식을 밥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채우지 말고 그대의 의식을 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채우라. (145)

 

스케치의 단계는 바둑에서 포석의 단계와 같다. 포석의 단계를 무시해 버리고 다짜고짜 전투를 감행하면 대부분 하수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스케치는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구어체로 거침없이 써내려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급적이면 정치법에 의거한 단문을 사용하자. 이 단계에서 간혹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결말에 이를 때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 가도록 하라. (162)

 

다양한 수사를 구사하는 것보다 정확한 수사를 구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설픈 수사를 구사한 문장은 차라리 죄악에 가깝다. 어설픈 수사법을 구사하느니 담백하고 정직한 문장을 구사하다. 그대가 문장을 꾸미고 싶을 때 수사가 그대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겉멋이 그대를 수렁에 빠뜨릴 우려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 (176)

 

직유법이 음료수와 흡사하다면 은유법은 발효차와 흡사하다. 직유법은 문장을 경쾌하고 신선하게 만들어주고 은유법은 문장을 심오하고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에만 그러하다.

직유법과 은유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싶다면 먼저 속성찾기와 본성찾기에 주력하라. 직유법은 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은유법은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178-179)

 

활유법: 무생물을 생물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다.

- 날이 저물자 산그림자가 마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의인법: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다.

- 전봇대가 밤새도록 치통을 앓고 있었다.

- 봄바람에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둑길을 허청허청 걸어가는 수양버들. (180-181)

묘사적 문체는 감각의 정밀성을 요구한다. 평소 사물을 건성으로 보아 넘기는 습관을 버려야만 묘사적 문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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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Edge of the World (Paperback) - At the Edge of the World
Avi / Disney Pr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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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핀을 읽고 나서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내처 읽었다.

단어를 거의 찾지 않고 읽었는데 다행히 읽히긴 하더라.

 

줄거리가 워낙 롤러코스터이고 전편보다 더욱 비극적 플롯으로 가득 차 있다.

이교도와 기독교인의 갈등이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이 배경으로 설정되었다.

크리스핀은 베어와 함께 풀려나지만 또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과정에서 화살에 맞은 베어를 구해준 사람은 숲속에 사는 이교도 오드와 그녀가 데리고 사는 소녀 트로스였다.

오드는 인근 마을에서 아이를 낳는 여자들의 산파노릇을 해왔는데,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그건 정말 중세 영국인들의 편견과 맹목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핀과 베어는 새로운 일행이 된 트로스와 함께 무역선을 얻어 타고 영국을 떠나게 된다.

폭풍우를 뚫고 도착한 프랑스 땅에서도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울하고도 슬픈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줄거리로 아마 트릴로지 가운데 가장 감정의 소모가 심할 것 같다.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몇 군데 있는데,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 묘사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그러나 이 더위에 애써 옮기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3편을 읽고 있다. (201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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