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 3 :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오덕 일기 3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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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이오덕 일기>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한 권 집어들었다. 한때 이오덕 선생이 쓰신 <우리글 바로쓰기>를 정독하며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 책을 보게 될 가능성도 줄었을 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기를 정리한 3권을 빼내어 잠깐 훑어만 보려고 했다. 내 어리고, 치기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이오덕 선생은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데군데 읽어 본 글들이 너무나 울림이 커서 결국 빌려와서 읽고 있다.

 

87년 민주화 운동 때 선생을 비롯해서 문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 일기를 통해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간 듯했고, 김지하가 '저주의 굿판을 집어치워라'고 했을 때 이오덕 선생과 문인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 내막이 드러나 있다. 일기에 따르면 당시 고은 시인이 회장으로 있던 작가회의에서는 김지하 시인의 제명까지 결의했다고 나온다.

반면에 3권에서 이오덕 선생이 칭찬하고 좋게 본 작가들은 김유정, 김남주, 리영희, 백석, 그리고 권정생 선생 등이다.

 

한 사람의 일기가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헌이 되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잠깐 살펴본 이 일기 몇 줄만으로도 한 시대를 뚜렷한 방향과 사상으로 살아갔던 인물의 기록은 엄청난 무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한가하다면 이 다섯 권 일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정독하고 싶다. 

 

 

초록

 

1987년 6월 20일 토요일

......

오후에는 종로 2가에서 송현 씨를 만나려고 현실문제연구소에 갔더니 송현 씨가 민음사 앞에 있다고 해서 그 사무실에 있는 젊은이 한 분과 그쪽으로 가는데, 조금 전에 왔던 수협 건물 앞에서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나와 같이 가던 젊은이가 박수를 쳤는데 나는 한 손에 우산을 짚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아이들의 그 씩씩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화락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참았다. 아, 이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 겨레가 살아 있는 것 아닌가. (91)

 

1987년 6월 26일 금요일

......

... 이쪽저쪽 인도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지켜보면서 박수를 치고, 함께 구호를 외친다. 겨우 빠져나가는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든다. 아, 이 광경, 이 역사적인 광경.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나도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었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메우고, 교통을 차단시켜 아주 마음껏 외치고 뛰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안 된 것은 오늘 관공서고 기업체고 모조리 직원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는 데다 대회장에 못 들어오도록 전경들을 이중 삼중으로 배치하고 전철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97)

 

1987년 11월 6일 금요일

......

차숙이는 오늘 그 지역 일대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공장이 쉬게 되었단다. 오늘 쉬는 대신 모레 일요일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공장의 시설, 관리자들의 횡포 같은 것을 들으니 너무 기가 막혔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이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종교인이고 문인이고 정치인이고 그는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니 노태우를 찍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니,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노예근성으로 길들여 놓았는가 알 수 있다. 노예사회가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의 도시는 거대한 노예 도시로 노예국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29)

 

1987년 12월 18일 금요일

......

지하도를 지나는데 내 옆을 가던 어떤 여자가 "선거가 잘됐는데, 학생들이 무슨 재미로 또 데모를 하노"해서 내가 "선거가 잘됐다고요? 모르고 그런 말 마시오!" 했다. 그런데 내 뒤 어디에서 또 여자 목소리가 났다. "미친 것들 또 데모를 하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거리 곳곳에 전경들이 무리지어 서 있었다. 오늘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지만, 거기엔 아침부터 철통같이 경비를 한 모양이다.

집에 와서도 아무것도 손에 걸리지 않아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134)

 

1988년 3월 24일 목요일 맑음

뜻밖에 오늘은 아침에 한길사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나를 단재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축하한다고 했다. 나는 놀랐다. 내가 무슨 단재상을 받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단재상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도대체 무슨 상 받을 일을 했는가? 그리고 나는 단재의 책을 한 권도 읽은 바가 없다. 전집을 사 놓고도 못 읽었다. 어떻게 내가 그 상을 받겠는가? (149-150)

 

1988년 5월 22일 일요일 비

온종일 쉬어 가면서 교단 일기를 옮겨 썼더니, 밤 9시 반이 되어 드디어 한 권 분량(약 1,300장)을 마쳤다.

이 일기를 옮겨 쓰면서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몇십 년 옛날에 써 둔 것을 읽으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온갖 일들이 되살아난다. 참 이런 일도 그때 있었구나, 이건 이렇게 했던 게로구나, 하고 여러 가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사람의 머리로 기억해 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모호하고, 잘못되어 있기도 하다. 일기를 적어 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둘째, 그 옛날의 삶을 기억만으로 회상할 때는 즐겁게 달콤하기도 한데, 일기를 읽어 보니 참으로 괴롭게 살았구나 싶다. 나는, 지금 내가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내 지난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내 과거의 교직 생활은 고뇌에 가득 차 있다.

셋째, 그러나 그 옛날의 일기를 하루하루 읽으면서 옮겨 쓰면서, 지금의 삶과도 비교해 보고,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내가 살고 있는 듯한 심정도 들어, 그것이 그처럼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단지 마음으로 되씹는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을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도 일기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일기를 옮겨 쓰는 것을 귀찮은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지금의 일기를 쓰는 것도 즐거움으로 여겨야겠다. (165-166)

 

1989년 6월 8일 목요일 비

아침에 셔츠를 빨았다. 비누를 묻혀서 자꾸 치대면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무엇을 생각하면서 손으로 치대는 것이 참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빨래를 다 마치고 그것을 걸어 둘 때도 즐겁지만, 다 마른 것을 거두는 것도 기쁘고 깨끗이 빤 옷을 입는 것도 기쁘다. 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건 재미있는 시적인 생각이라,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빨래'란 제목으로. (219)

 

1990년 1월 5일 금요일 흐림

......

권정생 선생 집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좀 지났다. 강아지 뺑덕이가 훌쩍훌쩍 뛰어 반겼다. 권 선생은 몇 달 전부터 간에 대한 약을 먹고 있는데, 전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잠시 누구와 앉아 이야기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잖다고 했다. 일직 장터까지 나갔다가 오는 것도 된다고 했다. 단지 갔다 오면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고 손가락 끝이 저리다고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겠지. 아무튼 간이 회복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간이 나빠진 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있었으니! 20몇 면 동안 계속해서 결핵 약을 먹었으니 그 약의 해독이 이렇게 사람을 못쓰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린다는 약이 도리어 사람을 잡는 독이 되어 있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권 선생은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245)

 

1990년 4월 6일 금요일 맑음

......

... 공 박사는 여전히 기계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한참 동안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타자기는 무얼 씁니까?" 했다. 아직 안 배웠다고 했더니 그래서 안 된다면서 다시 또 한참 열변을 이었다. 공 박사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내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박사님 말씀 모두 옳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자기 안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박사님 기계화 자꾸 말씀하시지만, 기계화만 된다고 사회가 구제되는 것 아니라요. 책방에 가면 책이 산으로 쌓였는데, 저는 이제 글 쓰는 사람들 제발 글 좀 조심해서 적게 썼으면 싶어요. 원고지 한 달에 천 장 쓰던 사람은 백 장 쯤 줄였으면 싶어요. 활자 공해, 인쇄물 공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저 자신도 이제 글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62-263)

 

1990년 5월 5일 토요일 맑음

.....

아침에 권정생 선생한테 전화를 걸어 풍금을 탈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악보 보고 가락만 탈 줄 안다고 하면 내가 샀던 것과 같은 악기를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에 언젠가 일직교회 갔을 때 풍금 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락을 대강 탄다면서 그렇잖아도 풍금을 하나 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번 한겨레신문사에서 책이 나오면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것을 하나 사 줘야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사람은 악기라도 탈 수 있도록 해야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269)

 

1991년 1월 17일 목요일 맑음

......

중동에 전쟁이 기어코 터졌다는 소식이다. 미국 놈들이 어째서 그곳까지 가서 전쟁을 하나? 참으로 용서 못 할 일이다. 그런데 노태우 정권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축하하면서 군대를 보낸다고 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291)

 

1991년 3월 19일 화요일 맑음

아침에 목욕을 하고 빨래를 했다.

오늘은 21일 한길문학에 가서 강의할 준비로 소설 문장 보기글을 고르고 그것을 옮겨 쓰느라고 온종일 걸렸다.

저녁에 헌책방 앞에 가서 신문을 사고, 오는 길에 찰떡을 2천 원어치 사서, 그중 천 원어치를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애를 먹었다.

밤에는 《백석 시집》을 읽었다. 이 시가 좋은 줄을 이제 새삼 알겠다. 이런 시를 지금의 청소년들도 좀 읽을 수 있어야겠는데, 참 이런 우리 정서가 아주 끊어졌으니 답답하다. 그래도 몇 편쯤 골라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298-299)

 

1991년 5월 5일 일요일 맑음

......

<조선일보>는, 이 김지하 씨의 글 옆에 또 운동권 학생과 인사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글을 실어 놓았다. 더러운 신문이다.

김지하란 사람은 이제 그 본질이 드러났다. 이 사람은 본래 노동을 하면서 자라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어도 그렇다. 이상한 신비주의와 영웅 심리 같은 것이 뒤섞인 성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이 한때 그처럼 영웅이 된 것은 재주 때문이다. 그가 쓴 시는 삶의 바탕이 없고, 그저 막연한 영웅적 울분과 감정의 배설 뿐이다. 그의 산문은 관념과 추상의 신기루다. 그런 심리들 속에 영웅으로 떠받들어진 자신이 괴로워(그렇게 살아갈 도리가 없기에) 이제 고백이니 참회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들을 그처럼 악의에 넘친 말로 욕할 것은 뭔가? 역사 속에 매장되어야 할 사람이다.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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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보는 법 너머학교 열린교실 8
김남시 지음, 강전희 그림 / 너머학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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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을 우리가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해석은 나만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또 망원경과 현미경, 사진, 스마트폰 등 다양한 시각 도구들이 ‘보는 것’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며 마치고 있다. 본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는 관음증과 노출증 같은 병리적 현상들, 그리고 그렇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노출하고 공개하는 행위와 그에 동조하며 열광하는 반응들은 마치 나치가 유태인을 핍박하고 모욕하면서 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했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와중에도 포털과 언론 누리집에는 여배우와 걸그룹 가슴골을 ‘함께 보자’고 번쩍이는 기사와 이미지 배너들이 판을 치고 있고, 블로거들은 어제 산 명품과 속옷만 착용한 직찍 사진을 올려놓고 자뻑하고 있으니 오늘날 우리들의 공동체 시선이 가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알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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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의 수수께끼 - 제3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9
안소정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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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세한도> 얘길 조금 끄적였는데, 마침 도서관에 들어왔길래 재빨리 읽었다.
몇 년 전에 완당 세한도에 숨겨진 수학적 비례에 대해 나온 논문(이수미,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 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 2007)을 읽고 정말 유물을 옆에 두고 보고 또 보면서 분석하고 연구하면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물을 보고, 분석하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도 잘된 논문을 쓰지 못한다면, 결론이 나올 수가 없는 논증에 집착했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거라고 봐야겠지.

 

책 제목을 봤을 때 그 논문에서 나온 얘기들을 참고해서 쓴 책이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세한도>의 경물들이 1:√2의 금강비에 입각하여 배치되었다는 결론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 이후 다른 연구글을 본 적은 없으니 이것이 수학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내린 결론인지 아니면 다른 논문이나 책에서 참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추리소설처럼 주인공들(미술 좋아하는 학생과 수학 샘)이 박물관에서 은밀하게 없어진 유물들과 <세한도>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제중화척과 도량형, 구고현의 정리와 피타고라스의 정리, 근의 공식, 마방진 등 문화유산과 수학에 관한 지식들이 퍼즐처럼 펼쳐진다.


내가 수학 컴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주비산경』에 나온다는 저 그림은 신기하기만 하다. 구고현의 정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5백 년 먼저 나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걸 학교에서는 배운 적(기억?)이 없는 것일까.

 

줄거리는 처음부터 아주 강렬한 시작은 아니지만 중반 이후로는 매우 긴박하게 진행된다. 수학 지식들이 정말 정교하게 미스테리에 짜맞추어져 있는 게 조금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아주 잘 쓴 수학 소설이다.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정도는 알고 수학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책에서 마방진 만드는 법을 배웠으니 애들한테 잘난 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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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최경원 지음 / 현디자인연구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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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들렀다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선정작을 모아 둔 곳에서 발견한 책이다. 감은사탑, 달항아리, 고구려 철갑옷, 독락당, 석굴암 다섯 가지 문화재를 분석하여 우리 문화의 탁월한 구조와 형식미, 정신성과 조형이념, 실용성과 기능은 물론 역사성까지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문화 버리기’라는 제목은 사실 책의 내용에 잘 부합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한국문화가 무엇인지 그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2장에서 기존 학자들이 내놓은 한국문화에 대한 담론, 이를테면 ‘막걸리 맛’이나 ‘못 느끼면 말을 말자’ 따위 밑도 끝도 없는 애매한 감상은 이제 그만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막연한 감상으로 우리 문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영 탐탁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두루뭉술한 ‘감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해석을 통해 한국문화를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 한국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과 글에 활용된 폭 넓은 지식들도 인상적이다. 뜬구름 잡는 인상비평이 아니라 철저한 형식 분석과 다양한 시각 자료를 동원해서 해당 유물들을 검토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사용된 자료나 그림들은 그동안 미술사 저술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많다. 다섯 개 꼭지마다 우리 유물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서양의 미술품과 유물들이 비교되고 있다. 범위와 종류도 다양해서 회화나 조각은 물론 고대와 현대의 건축물, 산업 공예품과 디자인 제품까지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학술 논문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논지를 거리낌 없이 제대로 펼쳐내었다. 학계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겠지만, 그래서 더 편하고 자유롭게 주장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 조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주장들이 학계에서 회자되는 이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소장학자들이 이 책의 논지와 비슷한 주장들을 펴왔고, 저자는 이 연구성과들을 잘 정리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서 일반 대중들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말하자면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연결해주는 중간 필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디자인연구소에서 펴낸 책이어서 그런지 편집 형태도 독특하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나오는 각종 화려한 도면과 훌륭한 도판들도 책 ‘보는’ 즐거움을 준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미술사 서적들에 견주면 꽤 파격적이다. 책의 인상을 굳이 표현하자면 뭐랄까, 디자인 잡지에 연재된 고미술 관련 칼럼을 모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먼저 감은사탑을 다룬 1장에서 질서와 불규칙의 조화, 상승감과 안정감, 육중함과 날렵함의 공존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디자이너답게 탑의 형태를 분석하여 설명한다. 탑에 보이는 짜임새 있는 비례와 엄격한 구조를 ‘화엄’이나 ‘화쟁’사상과 연결하여 해석하였는데, 심정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치밀한 논증은 아닌 것 같다. 탑을 화엄종의 사상이나 철학만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뒷산의 ‘불규칙한 선의 곡선이 규칙적인 탑의 외형을 절묘하게 타면서 흐르고 있다’(56) 같은 문장은 개인적인 감상을 현상에 투영하여 해석한 것이다. 또 ‘감은사지에서는 탑이라는 인공물과 자연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58)는 것은 저자가 비판하던 선학들의 말투와 비슷하다.

 

달항아리 설명을 읽으며 정말 많이 놀랐는데, 내가 늘 주장하듯 '달항아리를 제대로 보려면 손으로 돌려가면서 보고, 그럴 처지가 아니면 돌면서 보라’는 정확한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독립 전시장 속의 달항아리를 한 바퀴 돌아가면서 보면 그 윤곽선이 아주 미묘하게 변화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운동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찌그러진 형태’를 굳이 피카소의 회화에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찌그러짐이 분명히 의도한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형이상학(성리학, 태극도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어느 성리학자가 태극도설에 입각해서 도공들에게 ‘둥그렇되 조금 찌그러진 항아리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는 명확한 문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일단 이것은 도공들의 창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공들은 달항아리를 만들었고, 그 중 몇몇이 수요가 있자 좀 더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수요층을 쥐락펴락까지는 아니어도 이런저런 제품들을 만들어 '제시'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요에 소속된 장인들은 잘못 구운 공납품이 되돌아오면 다시 만들어야 했고 늘 주어진 할당량을 제작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했다. 수요층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전통이나 규범에 따라 만든 것 외에는) 그저 만들어진 상품 가운데에서 ‘선택’했을 뿐이다. 19세기에 달항아리 제작 방식을 계승하여 제작된 이른바 '고구마형' 항아리는 주로 민요에서 제작되었는데, 이런 유물들의 수요자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한 뒤에야 달항아리 계열의 용도불명 백자가 지니는 가치를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달항아리에 담긴 '사상'에 대해 그 무엇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군가 금사리 항아리들을 '선택'하여 '수요'한 것까지는 분명하지만 그것에 성리학이나 태극도설 같은 ‘의미부여’까지 했는지는 증거가 없다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에 와서야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 뿐이다. 논거가 부족하면 불완전한 가설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엘리트들은 가끔 보면 자기네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미술사에서 후원자와 주문자 연구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후원자와 주문자들이 직접 도구를 들고 재료와 씨름해 가면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은 아니다.

 

3장에서 고구려 철갑옷은 공예가 아니라 디자인이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전쟁에 쓰였던 물건이므로 신속한 제작과 기능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청자가 대량 생산되었다고 해서 이것도 역시 ‘기능’이 강조되는 현대적 개념의 디자인에 부합하는 유물이라는 설명은 무리가 있다. 청자와 같은 도자공예품이 어느 정도 대량 생산 요소가 있다고는 해도 완전히 기능성만 추구하지는 않았다. 단적으로 청자의 ‘무늬’는 아무런 실용적 기능이 없다. ‘비색’이라 부르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이라는 말에 너무 논리가 묻힌 것 같은 인상이다.

 

경주 독락당과 낙수장(Falling water)을 비교하여 서술한 4장에서는 기시감이 들었다. 독락당에 관한 김봉렬 선생의 논조에다 디자이너의 감각을 덧보태 더 이상 한국 건축은 초라한 건축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선조들은 건물의 크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념적 건축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건축에서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문증들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도 건축주의 생각과 이상이 설계에 직접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이 4장을 읽으면서 이라크의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그 괴상한 건물을 건축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도, 그렇다고 역사성이 있는 것도 아닌 그 뜬금없는 외형에 참 어이가 없었는데, 과연!

 

석굴암이 국제적 양식의 건축과 조각을 보여주고 있고, 12당척을 기본으로 해서 √2의 비례가 반영된 구조라는 건 꽤 오래 전에 규명되었다. √2라니까 생각났는데, 최근에는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구도 속에도 매우 엄격한 수학적 비례가 사용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함께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석굴암의 돔 구조가 로마에서 유래한 건축이라고는 하지만 만들어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그 구축법이 독특한 팔뚝돌을 이용한 매우 독창적인 공법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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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본 전통 문화 교양서로서 충분한 미덕을 갖추었고 곳곳에 번뜩이는 직관과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꼭지 정도는 숨가쁘게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다만 기존 학설에서 인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들은 본문에서 논저자의 이름만 슬쩍 언급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각주나 미주로 명확한 출처표시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즘 교양서들 보면 참고 도서 생략하고 입 씻는 게 유행인 것 같은데, 각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끝에 참고 문헌을 덧붙이지 않은 것은 무척 아쉽다. 참고 문헌 챙겨 적는다고 해서 저자를 깎아내리는 독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관심 있게 읽은 독자들은 더 찾아 읽을 목록을 알려주어서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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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나의 힘 - 나는 나를 사랑해요 명주어린이 2
김경우 지음, 이상미 그림, 조선미 감수 / 명주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애들 국영수 학원에다 과학실험과 역사체험 등등 시키는 거 다 좋은데요, 운동을 해야 성적도 더 오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라 하고 안하고가 문제입니다. 추우면 집에서 체조라도 시켜야 합니다.

저는 애들 중고생 되어도 운동 시킬 겁니다. 그 다음에야 지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운동 안 하면 집중력 떨어져서 학습이 잘 안되고, 운동을 하면 지능지수 높아지는 건 물론 수리 능력이 발달하고, 자기통제, 계획, 추론, 추상적 생각과 관련 있는 뇌 기능이 올라간다는 과학적 연구 성과가 나와 있다는 얘기를 주구장창 해도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낸다면 애들 인성 나빠지고 앉아서 게임만 하려는 건 둘째치고, 다른 학업 성적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도 힘들죠.

 

5장까지는 앞서가는 부모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 너무 당연한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들(위에 말씀 드린)입니다.  

6장은 '운동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꼭지인데, 네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ADHD를 수영으로 극복한 마이클 펠프스

한쪽 팔이 없는데도 폴란드 탁구 대표팀이 된 나탈리아 파르티카

운동(농구와 달리기)으로 인생을 바꾼 버락 오바마

27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운동과 독서로 자신을 단련하고 다른이마저 변화시켰던 넬슨 만델라

 

'운동'이라는 코드를 통해 네 사람의 위인전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고 지금 바로 실천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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