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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요즘 이삼십대 암담한 젊은이들의 상황들,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그들의 생각이 엿보여서 몰입하며 술술 읽었다. 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을 때가 있잖은가.
한국이 싫다고 하는 입장과 의견은 잘 알겠고, 어느 정도 인정한다. 200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와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꽤 유용한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한국이 싫어서 이민 간 사람의 변명으로 읽어주기엔 너무 길지 않은가 싶다. 날씨가 싫고, 애인이 싫고, 결혼이 싫고, 직장이 싫고, 삶의 구조가 싫어서 떠난 걸 '한국이 싫다'는 편리한 핑계를 만들어서 장황하게 둘러댄다. 하소연만 있고 감동은 없는 줄거리였다.
소설에 감동이나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취향일지는 모르겠다. 근데 요즘 청년들이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취향 아닌가. '한국이 싫다'는, 그런 뚜렷한 취향과 세태를 제대로 묘사해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계나의 소망은 사실 단순하다. 대단한 이념이나 철학적 고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 (152-153)
그런데 이상한 건 '어떻게' 쪽이라고는 하면서 정작 바라는 것들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건 (저자가 의도한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안위와 자존심 뿐이다.
또 소설 끝 부분에 나오는 독백을 읽으면서는 일반화가 매우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좀 길지만 옮겨와 보면,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185-187)
그런데 말이다, 호주만 가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고 너무 막연하다. 남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진상떠는 인간, 며느리 괴롭히는 '시어머니년', 연고대 무시하는 서울대 애들 물론 있다.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마치 다인 것처럼 말하면서 그 때문에 자기가 더러워서 떠난다는 투의 주장은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흉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굴복하여 떠난다는 건 그래도 남아서 버티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짓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호주 이민을 알아보는 단순하고 성급한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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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 나라에 넌덜머리를 내며 이민을 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꼴저꼴 보기 싫고 외국 나가서 살겠다는 거다. 그 마음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나라도 능력만 되면(그리고 누가 불러주기라도 한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력이 있더라도 싫증 났다고 이민 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넌덜머리를 내서 나가떨어지게 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축사 속의 가축'으로만 안주하도록 만들려는 무리(체제)에게 굴복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막연한 실체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근데 이건 멀리 나가 봐야 겨우 깨닫게 된다. 그런 걸 깨닫기 위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 나라를 떠나도 좋다. 유학도 좋고 이민도 좋다. 하지만 그냥 싫어서 떠난다는 말은 별로다. 도대체 뭐가 싫다는 건가. 조국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던데(170), 조국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누구를 사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쯤되면 이건 뭐 거의 어리광 수준이다. 세금은 조국이라는 허황된 개념을 위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내는 거다.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 복지도 하고 국민들 교육도 하는 거다. 그걸 엄한 데 쓰는 거 못봐주겠거든 끝까지 이 땅에 남아 투표하고, 제대로 된 정치가를 뽑을 일이다.
꼰대같은 소리라 해도 할 수 없다. 싫다고 공동체를 빠져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그 사회의 미래는 뻔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아니, 그들이 어딜 가든말든 나는 관심이 없다. I don't care. 사람대접 받고 싶다던데, 관심이 없으므로 대접해줄 용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괴로움이다. 그럴진대 한가하게 내 행복이나 목 빼고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나. 극단적인 예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 때문에 세월호에서 손도 못 쓰고 돌아간 사람들만 304 명이다. 이 위태로운 나라에서 산다는 게 난파한 여객선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으며 넋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품 해설에서 평론가 허희가 쓴 말이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