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의 슬픈 노래


꽃게는 사람들에게 잡혀
시장으로 가
찰깍찰깍 철꺽철꺽
슬픈 노래를 부르네

 

우리 엄마에게 끌려와
냉동실에서
찰깍철꺽
슬픈 노래를 부르네

 

냄비에 들어가니
온몸이 주황으로 변하고
입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꽃게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네 철꺽 철꺽 철꺽


(2015년 8월 24일 초등 2학년 딸내미 동시)


이 시를 아내가 읽어주었다. 딸내미 감성이 남다르다는 걸 전부터 느꼈지만 이건 거의 시인이 아닌가.

냄비에 꽃게가 들어간 모습을 보면서 딸내미는 꽃게가 되었던 거 같다.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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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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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범주의 깊이 있는 서술을 볼 때마다 부럽다. 그러다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자괴감이 들 때쯤 공연히 별점을 한 개 줄이고 싶은 못된 심술이 솟아나기도 한다. 저자의 폭넓은 견문과 학식을 접하면서 마치 테레비에 나오는 '참 쉽죠~'라는 유행어를 듣는 거 같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읽히는 개설서지만 이런 책은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여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별점을 꽉 채웠다.

 

공포와 화반의 역사적 변천과 한중일 교류 관계에 대해 개요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석조물에서도 몇 가지는 기존에 듣지 못한 분석이 있었다. 불국사 석축에 관한 건축적 분석은 귀담아 들을 만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우리 문화재에 관해 금시초문인 내용들이 많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유물이나 유적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 그 예술적 가치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알면 알수록 더욱 찬탄을 하게 된다. 모르면 감동도 없는 법이다.

 

종묘 정전 월대 박석에 관한 막연한 찬탄이나 감상이 아닌 시각적, 기술적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건축사와 공장사(工匠史)를 전공한 저자가 아니라면 절대 들려주기 힘든 설명이었다. 

 

(종묘 정전 박석의) 돌은 규산염광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화강암은 실리카, 즉 규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그 색상은 기본적으로 희다. 따라서 이런 흰빛을 띤 화강석 표면을 너무 곱게 다듬어서 바닥에 깔게 되면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되고 또 빗물이라도 표면에 남아 있으면 미끄러질 우려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불편한 돌 표면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석공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해서 박석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두었다. 박석의 크기도 일정하게 하지 않고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얼핏 보면 부실 공사이거나 일을 대충하고 마무리를 치밀하게 완성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옳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석공들의 가슴에 담긴 천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완벽한 마무리에 매달리지 않고 재료가 갖는 속성을 숙지하여 가장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려는 미학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해 이와 비슷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종묘 정전 월대 박석도 그런 평가의 대열에 넣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

 

책에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보들이 수두룩하였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성과에서 오는 것이다. 다만 어떤 내용에서는 충분한 도판이 소개되지 않아 막연한 짐작만 하고 넘어간 경우가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다.

 

한국건축사 수업에서는 교재 다음으로 읽어야 할 필독도서급이고, 동양건축사 수업을 한다면 거의 교재급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권위자의 경험과 관점을 골고루 담아낸 역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결정적 문장들을 밑줄을 좍좍 치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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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세는 지붕부터
    from 突厥閣 2015-08-04 23:07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
 
 
달걀부인 2015-08-0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돌궐 2015-08-05 07:40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 님 반갑습니다.^^
 

요즘 읽고 있거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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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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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지음 / 태학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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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감동도 없다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적인 방식을 대충 흉내 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서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비록 도시의 비좁은 집이지만 처마만은 그럴듯하게 꾸며서 구매자들의 선호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8-111)

 

요즘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지로도 유명해서 나도 가본 일이 있는데, 지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물론 처마의 곡선을 살리는 예가 있지만, 대개는 궁궐이나 종교시설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미보다는 시공상의 간편함을 추구했고 이에 따라 아름다운 처마곡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이 처마 곡선을 만드느라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부동산'으로서 북촌의 살림집들이 지어졌다니 참 재미있다. 속(구조)은 부실한데 겉모양(지붕)만 그럴싸한 것들로 허세 부리는 전통이 과연 어디서 왔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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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옥의 지붕은 그저 한국적 곡선미를 보여주는 건축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오늘 본 글 중에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

돌궐 2015-07-31 22:13   좋아요 0 | URL
물론 지붕 곡선이 아름다운 건 맞지만, 그걸 위해 경제성이나 효율성이 희생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처마 쪽에 부채처럼 펼쳐지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만병통치약 2015-08-0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옥에 대한 책을 보면서 과학적 우수성에 감탄했는데 위 사진보니 기능성에 허세도 많이 들어갔네요 ^^ / 아파트에도 처마 기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돌궐 2015-08-01 23:07   좋아요 0 | URL
와 아파트에 처마라... 대단하겠는데요? 더불어 방과 거실에는 이중 슬라이드 책장까지 구비되면 금상첨화겠죠. ㅋㅋㅋ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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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삼십대 암담한 젊은이들의 상황들,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그들의 생각이 엿보여서 몰입하며 술술 읽었다. 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을 때가 있잖은가.

한국이 싫다고 하는 입장과 의견은 잘 알겠고, 어느 정도 인정한다. 200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와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꽤 유용한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한국이 싫어서 이민 간 사람의 변명으로 읽어주기엔 너무 길지 않은가 싶다. 날씨가 싫고, 애인이 싫고, 결혼이 싫고, 직장이 싫고, 삶의 구조가 싫어서 떠난 걸 '한국이 싫다'는 편리한 핑계를 만들어서 장황하게 둘러댄다. 하소연만 있고 감동은 없는 줄거리였다. 

소설에 감동이나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취향일지는 모르겠다. 근데 요즘 청년들이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취향 아닌가. '한국이 싫다'는, 그런 뚜렷한 취향과 세태를 제대로 묘사해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계나의 소망은 사실 단순하다. 대단한 이념이나 철학적 고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 (152-153)

 

그런데 이상한 건 '어떻게' 쪽이라고는 하면서 정작 바라는 것들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건 (저자가 의도한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안위와 자존심 뿐이다.

소설 끝 부분에 나오는 독백을 읽으면서는 일반화가 매우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좀 길지만 옮겨와 보면,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185-187)

 

그런데 말이다, 호주만 가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고 너무 막연하다. 남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진상떠는 인간, 며느리 괴롭히는 '시어머니년', 연고대 무시하는 서울대 애들 물론 있다.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마치 다인 것처럼 말하면서 그 때문에 자기가 더러워서 떠난다는 투의 주장은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흉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굴복하여 떠난다는 건 그래도 남아서 버티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짓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호주 이민을 알아보는 단순하고 성급한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 나라에 넌덜머리를 내며 이민을 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꼴저꼴 보기 싫고 외국 나가서 살겠다는 거다. 그 마음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나라도 능력만 되면(그리고 누가 불러주기라도 한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력이 있더라도 싫증 났다고 이민 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넌덜머리를 내서 나가떨어지게 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축사 속의 가축'으로만 안주하도록 만들려는 무리(체제)에게 굴복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막연한 실체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근데 이건 멀리 나가 봐야 겨우 깨닫게 된다. 그런 걸 깨닫기 위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 나라를 떠나도 좋다. 유학도 좋고 이민도 좋다. 하지만 그냥 싫어서 떠난다는 말은 별로다. 도대체 뭐가 싫다는 건가. 조국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던데(170), 조국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누구를 사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쯤되면 이건 뭐 거의 어리광 수준이다. 세금은 조국이라는 허황된 개념을 위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내는 거다.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 복지도 하고 국민들 교육도 하는 거다. 그걸 엄한 데 쓰는 거 못봐주겠거든 끝까지 이 땅에 남아 투표하고, 제대로 된 정치가를 뽑을 일이다.

 

꼰대같은 소리라 해도 할 수 없다. 싫다고 공동체를 빠져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그 사회의 미래는 뻔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아니, 그들이 어딜 가든말든 나는 관심이 없다. I don't care. 사람대접 받고 싶다던데, 관심이 없으므로 대접해줄 용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괴로움이다. 그럴진대 한가하게 내 행복이나 목 빼고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나. 극단적인 예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 때문에 세월호에서 손도 못 쓰고 돌아간 사람들만 304 명이다. 이 위태로운 나라에서 산다는 게 난파한 여객선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으며 넋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품 해설에서 평론가 허희가 쓴 말이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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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8-28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 않아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뭘 잘 모르고, 특히 외국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편견을 버무린 듯 하네요.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곳이고, 얻는게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죠. 3000만원으로 살고 어쩌고 하는데, 연 3만불 벌어서 지은이가 말하는 것들을 하고 사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네요. 저도 외국에 살면서 이런 저런 삐딱한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지만, 그리고 종종 이곳의 삶에 만족하고 다행이란 생각도 하지만, 저자의 글 - 인용하신 부분 - 같은 이유는 아니네요.

돌궐 2015-09-05 06:27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소설이 마치 연구실적 쌓으려고 쓴 논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편적인 아이디어와 미미한 자료로 깊이 없이 급하게 쓴 논문이요. 근데 그런 실적은 선수들끼리는 거들떠 보지 않죠.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갑다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