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를 그리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고증하여 쓴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발원을 마치고 담징이 일어섰다. 맨 먼저 미륵불부터 벽에 옮기기로 했다. 다른 그림이야 어려울 턱이 없었다.

담징은 뒤에서 지켜보고 서 있고, 도리가 화공들을 지휘하며 벽에 고령토와 백포를 섞어 발랐다. 며칠 기다렸다가 한 화공이 벽 위에 다시 황토와 백아를 섞어 칠을 했다. 도리는 북벽에 담징이 그린 미륵정토와 밑그림을 붙였다. 중안이 밑그림 윤곽선을 촘촘하게 바늘로 찔러놓고, 숯가루를 넣은 주머니로 바늘구멍을 따라 종이를 두드렸다. 중안이 밑그림을 떼어내자 벽 위에 그림 윤곽이 나타났다.

도리가 밑그림 위에 먼저 석채(石彩)로 주홍색을 칠했다. 도리가 호분에 갠 장단, 양록, 삼청, 진녹, 석연지, 하엽, 석자황, 석간주 등을 그림에 맞추어 발랐다. 도리가 그림의 먹 선을 그었다. 차례로 분선, 황선, 금선을 그려 넣었다. 도리는 특히 금선을 긋는 데 혼을 쏟았다.

 

늦겨울에 작업을 시작했으나 계절이 바뀌어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벽화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어언 두어 달이 더 지나 네 벽화 가운데 미륵정토화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미륵의 얼굴이었다. 윤곽은 그려져 있었으나 채색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초가을 어느날이었다. 도리가 돌아보았다. 담징이 퀭한 눈으로 벽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눈길이 섬뜩했다. 이윽고 담징이 빙긋이 웃었다. 벽화가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스님께서 안채(顔彩)를..."

 

담징은 고개를 저었다.

 

"불자께서 하세요."

 

도리는 뜻밖이라는 듯이 담징을 쳐다보았다. 담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가 사다리에 올라가 붓을 들었다. 낯과 이목구비를 석간주로 채색했다. 안채를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온 도리가 담징에게 붓을 내밀었다.

 

"점안(點眼)만은 직접 하셔야 합니다."

 

담징은 앞으로 나아가 붓을 받아들었다. 힘들여 사다리로 올라가서 미륵불 눈 근처로 붓을 가져갔다. 손이 떨렸다. 담징은 손을 내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물에 젖어 있던 여인의 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눈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담징은 붓을 들어 미륵불 그림에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자위를 칠하고 나서 눈동자를 그려 넣고 마지막으로 한가운데에 점을 찍었다. 그렇게 하여 미륵의 얼굴이 완성되었다. 눈은 웃는 듯이 울고, 우는 듯이 웃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관능적이지 않고 기품이 밴 그런 미소, 그런 얼굴이었다.

점안을 마치고 담징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도리와 중안이 담징을 부축했다. 담징은 고개를 들어 미륵상을 바라보았다. 미륵이, 아니 여인이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담징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325-327)

 

 

#

이 부분만 보아도 저자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꽤 많은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 뒤에 소설에 참고한 문헌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

덧붙임. 호류지 금당벽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3-0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징,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국사 시간에 금당 벽화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정말 안타까웠어요.

돌궐 2015-03-07 23:25   좋아요 0 | URL
사실 소실된 벽화가 담징이 그린 것이 맞다 아니다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 불화가 대단한 명작이란 평가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일본 기록에 ˝담징이 스이코여왕 18년에 고구려에서 건너 왔고, 오경에 능통하고 그림과 공예에 정통하여 종이와 먹, 채색 및 맷돌을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저자는 이처럼 짧게나마 기록된 사실을 소설의 줄거리 속에서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한 거 같습니다.
담징, 쇼토쿠태자, 혜자, 도리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AgalmA 2015-03-0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불화그리는 걸 엄청 배워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삶에 쫓겨...
만다라 전승처럼 담징의 예술이 명맥이 이어져왔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런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싶지만...

돌궐 2015-03-08 07:4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참 많아요. 저도 그렇습니다.ㅜㅜ
그리고 먹고 살면서 배우기까지 하려면 정말 하루하루는 짧은 시간이더라구요.

만병통치약 2015-03-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스코와 비슷하군요(맞나요?) 실제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돌궐 2015-03-08 14:28   좋아요 0 | URL
아마 그럴 거에요. 일본 사이트에 벽화에 대한 개설과 그림들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조금 있어요.
구글에서 horyuji temple wall paintings 치셔도 좀 나오구요.
제가 찾아보니 이런 곳이 있네요(일본 개인사이트 같습니다).
http://reijiyamashina.sakura.ne.jp/horyujif/horyujig.html
 

 

 

 

 

 

 

 

 

 

 

 

 

 

 

제목이 구미를 당기길래 잠깐 앉아서 앞 부분만 조금 읽어 보았다.

아래 옮겨 적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을 없애면 사람은 변한다
이런 무서운 실험도 있다. 그 유명한 밀그램의 실험이다. 이것은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권위와 복종에 대해 연구하던 중 실시한 실험으로 내용은 이렇다. 피실험자 40명이 각각 교사와 학생, 실험자의 역할을 맡는다. 학생들은 학생만의 방에 들어가고, 실험자와 교사는 함께 다른 방에 들어간다. 그들은 학생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며, 인터폰 너머로 학생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교사의 질문에 학생이 대답한다. 교사는 틀린 대답을 한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며, 실험자는 교사에게 학생이 틀린 대답을 할 때마다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리도록 지시한다.


사실 이 실험의 대상은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었고, 학생과 실험자는 한통속이었다. 실험자가 교사에게 “지금 학생이 틀렸으니 전압을 올리십시오”라고 말하면 교사는 전압을 올려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도록 했다. 그러나 사실 전류는 흐로지 않았고,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실험 도중에 권위 있는 박사 역할을 맡은 사내가 나타나 힘찬 어조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교사 여러분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학이 집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실험을 계속하자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 모두가 30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고, 60퍼센트가 최대 전압인 450볼트까지 계속 전압을 올렸다고 한다. 자신의 조작에 학생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권위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이유로 윤리적 가치관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린 것이다.


이 실험을 기획한 이유는 히틀러의 학살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히틀러는 우생 사상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이 정말로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을 자행한 것인지, 즉 인간은 명령을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 그에 따를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실험 결과, 명령에 끝까지 복종한 사람은 60퍼센트였다. 또 상당한 수준까지는 지시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사람이 40퍼센트였다. 놀랍게도 처음부터 명령을 거부한 사람이나 이른 단계에 이탈한 사람은 없었다.


이 실험의 경우는 “심리학 실험입니다”라고 처음부터 알려주었으므로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명하복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군대에 들어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호된 처벌을 받는 상황이고 주위 사람들도 명령을 따르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명령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원래 겁이 많은 존재다. (37-39)

 


뇌를 절제해 병을 고친다?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Antonio Egas Moniz, 1874~1955)라는 무서운 의사가 있었다. 포르투갈의 신경학자이며 정치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그는 악명 높은 로보토미(Lobotomy) 수술을 고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그는 1949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 이유는 ‘정신병에 대한 전두엽 절제술의 치료적 효과에 관한 발견’이었다.


로보토미는 통합실조증(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두엽의 일부를 절제하는 치료법이었다. 현재는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술로 부정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매우 효과가 좋은 수술로 여겨졌기 때문에 노벨상까지 받았던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의 정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노벨상조차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이다.


모니스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1903년부터 1917년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외무 장관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1944년까지는 리스본 대학에서 신경학 교수로 있었다. 1927년에 엑스선을 이용한 ‘뇌혈관 조영법’을 개발한 엄연한 신경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1936년에 동료와 함께 로보토미 수술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어째서인지) 미국에 전해져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월터 J. 프리먼과 제임스 워츠라는 두 정신과 의사가 모니스의 방법을 ‘개량’해 누구나 간단히 로보토미 수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아이스픽(얼음을 잘게 깨뜨릴 때 쓰는 송곳)처럼 생긴 기구를 사용해 코 윗부분에 뾰족한 기구의 끝을 꽂아 넣고 뇌를 힘껏 휘저어 ‘치료’한다. 이 수술을 받은 환자는 폭력적인 성향이 사라지고 온순해지지만, 그 대신 인격이 상실되어 무기력해지고 감정의 기복도 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이것은 정말 비인도적인 수술이다. 로보토미 수술은 그 문제점을 고발한 유명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켄 키시 저)의 영향으로 1975년 이후로는 전혀 실시되지 않게 되었다.

 
모니스는 75세에 과거 자신이 시술한 환자에게 총격을 당해 척수가 손상된 후 휠체어 신세를 졌다. 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으로 생각되지만, 그에게 수여된 노벨상은 아직도 취소되지 않았다. 노벨상 사이트에 가면 변명 같은 설명문이 올라와 있는데, 어쨌든 역대 수상자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당시의 일류 의사와 과학자들이 그를 칭송해 수상을 하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42-44)

 

 

#

이밖에도 기요틴(단두대)으로 목이 잘린 사람은 의식이 있을까 라든지, 식인 박테리아 얘기, 블랙홀 등 우주 관련 이야기와, 화산.쓰나미 같은 지구 재난들, 정치와 군사에 이용된 과학자들 얘기들이 나온다.

나중에 다 읽어보고 리뷰도 써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3-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렸을 때 교양과학으로 포장하여 불가사의 혹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 같은 내용을 모아놓은 책을 좋아했어요. 그 책의 제목에도 ‘무시무시한’이라는 형용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뇌 절제로 병을 고치는 치료법은 서프라이즈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정신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두통 환자를 치료할 때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고 합니다...

돌궐 2015-03-04 22:30   좋아요 0 | URL
저는 왜 그런 재미난 책을 찾아보지 못했던 건지... 학교에서 읽으라는 거 겨우 읽고 독후감만 써내는 수준이었죠. 아, 그러고 보니 <괴수공룡대백과>와 카드마술책은 즐겨 봤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AgalmA 2015-03-0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쪽이 아닌 사회학적 접근 책이었군요. 전쟁이 나면 죽는 것보다 인간이 얼마나 악랄하게 바뀔지 그걸 보는 게 더 두렵고 고통스러울 듯합니다

돌궐 2015-03-04 22:3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뒤에는 또 무슨 얘기일지 모르겠어요. 우주도 나오고 지구도 나오더라구요.
우리 안에 악은 다 있겠지만, 그걸 서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 수밖에요.
 

강가의 기러기들은 이제 마지막 안식을 즐기고 있다.

철새들은 곧 이 땅을 떠날 것이고, 한 해의 농사도 시작될 테지.

 

지난 초록들을 정리하다 보니 다랑이논에 대해 평한 글이 있길래 옮겨 본다. 

 

 

 

가천마을 다랑이논, 경남 남해 홍현리 (사진출처: 문화재청)

 

연곡사 언저리에서부터 강변마을 가까이까지 계곡의 양쪽 산비탈에 다랑이논들이 수십 개씩의 계단을 이루며 빈 틈이라고는 없이 촘촘하게 일구어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피아골에 물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며 고달픈 삶을 부지해가는 화전민이라는 것도 다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이유가 있듯이, 바깥세상을 등지고 피아골로 들어와 다랑이논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들도 다 그들 나름으로 바깥세상과 고리지어진 쓰라리고 아픈 곡절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선량한 사람들인가는 그들이 일궈낸 다랑이논들이 입증하고 있었다. 돌투성이 산비탈들을 따라 일구어진 다랑이논들 - 성품이 선량하지 않고, 정신력이 끈질기지 않고, 몸이 부지런하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돌투성이 산비탈에다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내는 그 일은 생존의 터전을 잃고 죽음과 맞선 인간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면서, 인간의 인내와 의지와 성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는 시험장이기도 했다. 그 세 가지 중에 어떤 것 하나만 모자라도 그 일은 해낼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 <태백산맥> 10권, 9-10.

 

 

 

 

 

 

 

 

 

 

 

 

 

 

 

 

#

다른 얘기지만, 인용문에 나오는 연곡사에 승탑이 여러 개 있는데 동승탑은 쌍계사 철감선사탑,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과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품이다.

 

 

 

연곡사 동승탑, 통일신라 9세기, 높이 3.0m, 전남 구례 내동리 (사진출처: 문화재청)

 

 

* 한 줄 요약 - 답사 가고 싶다.  

 

(2011. 6. 작성)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2-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사진전 갔다가 저도 이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바퀴벌레도 살기 힘든 북극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오고 있는 인간의 꿋꿋한 삶의 의지를...

돌궐 2015-02-28 09:52   좋아요 0 | URL
근데 어떤 사진전에 가셨길래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AgalmA 2015-02-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서도 글 올린 적 있는데...르완다 난민 사진 이후 인간사에 절망해 사진찍기를 포기했다가 다시 사진작업을 시작하며 지구의 창세기를 조망해본 세바스티앙 살가도 전시요^^. 전시장 배치와 조명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의 사진은 정말 예술과 철학의 극치였죠. 오늘이 마지막 전시~

돌궐 2015-02-28 11:13   좋아요 0 | URL
아 오늘 바쁜데... ㅠㅜ

AgalmA 2015-02-28 11:21   좋아요 1 | URL
살가도 TED 강연 보시거나 도서관 가서 제네시스 사진집 보셔도^^
 

 

 

 

 

 

 

 

 

 

 

 

 

 

최준식 선생 책 <한국의 종교 불교>에서는 일반인들이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매우 잘 담았다.

중론과 유식학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공부 삼아 옮겨 본다.

초록을 쓰면서 미처 페이지를 옮겨 적지 못했는데, 나중에 찾아서 적어놓아야 한다.

 

 

새롭게 발전한 대승 철학: 중론과 유식학

 

이제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철학 가운데 가장 어려운 철학이라고 해야 할 대승 철학, 그중에서도 중론을 볼 차례가 되었다. 이 사상은 너무 심오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은 그 자세한 내막을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상은 대승의 정통 철학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살펴보되 극히 간단하게만 보기로 하자.

 

보통 중론(中論, doctrine of middle path)이라고 부르는 이 사상은 2세기 전후에 살았던 사람으로 인도 최고의 사상가이자 불교 승려였던 나가르주나[龍樹]가 창안한 것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공사상이다. 이 공사상은 간단하게 말해서, 사물의 본성은 한마디로 비어 있다는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사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본성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무아론이나 연기론을 더 발전시킨 설로 보면 된다. 어떤 사물이든 실체가 없이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데에 따라 명멸을 거듭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공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려면 항상 공(空)의 시각에서 조망해야 한다. 사물의 근본적인 모습은 근원적 실재라 할 수 있는데 이 절대 실재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본 『금강경』에서 "어떤 시각도 갖지 말고 생각을 내야 한다"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딜레마는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갖지 않으면 그 사물을 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절대적 실재는 존재하는 것 전부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실재를 묘사하면서 x라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전체였던 실재는 x에 한정되기 때문에 더 이상 절대 실재가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 학파에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견해도 갖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가르주나도 자신의 책에서 어떤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해를 모두 논파하는 방법을 취한다. 만일 그가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면 그것 역시 절대 실재를 한정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기존 견해를 계속해서 부정하면 올바를 견해가 스스로 드러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을 파사현정(破邪顯正, '잘못된 것을 부수면 올바른 것이 드러난다'는 뜻)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사물 자체도 비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 학파이다. 이 학파의 핵심 사상을 가장 잘 요약한 것 중에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경전은 뭐니뭐니해도 『반야심경』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나가르주나가 『반야심경』을 저술한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은 300자 미만으로 된 경전으로 대승 철학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전을 다시 네 글자로 줄이라고 한다면 '색즉시공(色卽是空)'-'공즉시색'도 가능하다-으로 축약할 수 있다(세 글자로 줄이면 색시공이라고 해도 된다!). 이 경전은 우리 주위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승려나 불교도들이 예불할 때에 반드시 이 경전을 읽기 때문이다. 승려들이 예불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맨 처음 불상을 마주 보고 여러 가지 경을 읽으면서 그에 맞추어서 불상을 향해 절을 한다. 그것이 주된 예불인데 이 순서가 끝나면 승려들은 법당 옆에 걸려 있는 불화를 향해 서서 목탁을 치면서 경전을 읽는다. 이때 읽는 경전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존재들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령들인데 승려들은 그들에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불교의 최고 진리인 『반야심경』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색즉시공 혹은 공즉시색이란 요즘 말로 하면 '있는 게 없는 것이고 없는 게 있는 것' 정도가 될 터인데 이것을 이해하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시도가 될는지 모르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제시하는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책상과 같은 사물을 보면 그것을 딱딱한 고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미시적인 차원으로 내려가 보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최소 단위를 원자라고 놓고 보았을 때 원자란 가운데 아주 작은 핵이 있을 뿐이고 그 주위는 텅 비어 있다. 이것을 거시 세계로 보면 큰 야구장 한가운데에 야구공을 하나 놓은 꼴이라 하겠다. 원자핵은 그 공의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은 거의 비어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과연 불교의 현자들이 이 사물의 세세한 모습을 직접 관(觀)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불교와 현대 물리학이 물질에 대해서 갖는 생각이 비슷해서 재미있다.

 

대승학파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학파가 있다. 중국의 현장법사가 7세기 중엽 인도에 갔을 때 그는 인도에서 불교가 이미 스러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인도에는 많은 종파들이 다 시들하고 방금 설명한 중론학파와 이제 설명하려고 하는 유식학(唯識學)을 내세웠던 유가학파(瑜伽學派, Yogacara)만 유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약 5세기경에 만들어진 유식학은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학파의 이름을 영어로 번역할 때 Consciousness(혹은 Mind)-only School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학파의 주장은 사실 엄청나게 과격한 것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달이든 산이든, 책상이든 관계없이 모두 의식의 표상(representation 혹은 ideation)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외부의 사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투사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학파에서는 절대적 실재, 즉 이 우주에서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뿐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이 학파에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많은 신비가들은 우주의 실재를 대령(大靈, The Spirit) 혹은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으로 보았고 비슷한 맥락에서 불교의 다른 학파에서도 일심(一心, One Min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힌두교에서 개인의 가장 깊은 의식을 뜻하는 아트만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가장 깊은 의식이 우주에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양의 고등종교들이 모두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의식만이 실재한다는 이 학파의 주장은 깊은 명상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태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이 학파와 연관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이 학파가 인간의 의식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을 매우 세세하게 분석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에게는 감각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눈·귀·코·입·몸과 관계된 다섯 가지 의식이 있고 이것을 총괄하는 여섯 번째의 의식이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가 항용하는 의식이라는 용어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낱말은 불교에서 유래했고 불교 중에서도 이 유식학에서 나온 것이다. 이 6식까지가 수면에 드러난 의식이고 그 다음부터는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6식 바로 밑에는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제7식인 마나식이 있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마나식 밑에 있으면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제8식이다.

 

이 식은 알라야식-한자 글자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표기함-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store(-house) consciousness'라고 번역한다. 'store(창고)'라고 했으니 모든 것을 저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 때문에 한자로 의역할 때는 장식(藏識)이라고 쓴다. 이 식은 사람의 의식 가운데 가장 기저에 있으면서 그 위의 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저장해 놓는다.

 

불교에 의하면 우리가 윤회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나 말·행동이 그대로 8식에 저장되고 그것들이 일종의 에너지가 되어 또 삶을 살게 만드는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혹은 욕망)을 내면 그것은 또 다른 생각(혹은 욕망)을 내게 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굴러가기 때문에 그 힘으로 또 다음 생에 태어나야 할, 혹은 태어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8식에는 우리가 말이나 행동은 고사하고 아주 가벼운 것이라도 어떤 생각을 하면 모두 저장된다고 한다. 이렇게 저장된 일정한 식(識)의 에너지는 나중에 그와 맞는 인연을 만나면 발현된다. 그러나 이때 또 어떤 생각을 하면 생각의 사슬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여기에는 나쁜 생각이나 말, 행동만 저장되는 것이다 니라 좋은 것들도 저장되고 그것도 역시 집착의 형태로 나중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든 그 학파의 교리를 따르면 우리는 이 8식에 들어 있는 모든 생각의 종자(種字, seed)를 완전히 소탕했을 때에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됐을 때에만 윤회의 바퀴를 돌게 하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이론 역시 일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깊은 명상을 해서 아주 깊은 의식까지 들어가야 이런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식의 잠재의식 이론은 서양 심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서양에서 무의식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서양의 낭만주의 심리학자들이 유식학의 이론을 접한 이후라고 한다. 

 

 (2011. 4. 작성)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2-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팬 할랍니다!
제가 처음 금강경을 접했을 때 `여여`를 남겨주었는데, 평생의 화두입니다. 아직도 못 배운 게 너무 많아요...

돌궐 2015-02-28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한참 더 배워야 합니다.
알라딘 서재에는 이런 뜬금없는 걸 올려도 외면하지 않고 말씀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좋네요.ㅎ

AgalmA 2015-02-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다뇨... 어디든 철학전반이 서양철학에 너무 치중된 감이 있는데(저도 부끄러운 점이기도)...돌궐님의 이런 글이 제게 연꽃향 같기도 합니다. 감사드려요

돌궐 2015-02-28 11:1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연꽃향까지야... 근기가 워낙 높으셔서 금방 알아들으실 거 같은데요.ㅎ

AgalmA 2015-02-28 11:13   좋아요 0 | URL
으흑, 근기...가 제일 문제입니다. 관심사가 너무 많으니;;
 

 

 

 

 

 

 

 

 

 

 

 

 

 

발제는 붓다의 사촌 동생이다. 자현 스님이 쓴 <붓다 순례> 239-243쪽에 이 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붓다의 아버지 정반왕의 동생인 백반왕의 차남인데, 붓다가 왕사성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자가 되어 가비라로 귀국했을 당시 석가족 왕이었다. 

 

발제왕은 역시 붓다와 자신의 사촌인 아나율의 설득으로 출가하게 된다. 아나율의 부모(곡반왕)가 아나율이 출가한다고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현재 왕인 발제가 출가하면 출가를 허락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곡반왕과 왕비는 영화를 누리고 있던 발제왕이 출가를 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나율의 설득에 의해 처음에 발제는 쿨하게 "알았다, 내가 왕이 됐으니 딱 7년 만 이 생활을 누린 뒤 출가하자"고 했는데 아나율의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6년, 5년, 3년, 2년, 1년으로 줄고, 또다시 7개월에서 1개월, 마침내 7일로 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출가 전 마지막 7일 동안 발제와 아나율은 약간 과장하여 온갖 광란의 분탕질로 마지막 유흥을 즐겼다.

뭐랄까, 매우 화끈하고 호방하며, 집착이 없고 매사에 긍정적인 분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젊은 왕과 그 동갑내기 사촌이 화끈하게 놀았으니 얼마나 대단했겠나! 약간 부럽다.

자현 스님은 이 두 사람의 일탈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출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걸림 없는 삶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다가 장엄한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변화이다. 연극의 장엄함을 위해서 코미디의 재미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코미디로서 즐기는 것이고, 연극은 연극으로서 또 다른 즐거움을 내포하는 것이다. 인도인들의 생각은 이렇게 양자를 분절한다. 이것이 출가 전의 유희라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240-242)

 

맞다. 바짝 조이기 전에 좀 풀어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발제왕이 출가하고 난 뒤의 사연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경전에서는 석가 귀족들이 스스로의 교만을 제어하기 위해서 신분이 낮은 (이발사였던) 우바리를 먼저 출가하도록 해 자발적으로 밑에 위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우바리가 석가 귀족들에 비해서 선배가 된다. 그런데 선배에 대해 차례로 예를 올리는 과정에서 왕이었던 발제는 우바리 앞에 와서 주저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석가족의 왕이었던 발제에게 있어서 하인이었던 우바리의 발에 예배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제는 스스로를 제어하여 결국 우바리의 발에 예를 갖춘다. 이때 경전에는 신들의 찬탄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미화된 것이지만, 분명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붓다에게 출가하는 사촌들 중 발제는 가장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발제야말로 진정한 인격자임에 틀림없는 분이다.
발제는 출가 후에 나무 밑에서 명상하다가 가끔 “참으로 즐겁구나, 참으로 즐겁구나.”라는 독백을 하곤 한다. 이를 들은 승려들 중 일부가 붓다에게, 발제가 과거 왕이었을 때의 쾌락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준다. 아마도 왕이었던 사람이니, 발제로 인하여 소외되거나 심적인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이들이 붓다에게 발제를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발제를 불러서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그러자 발제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고, 붓다는 다시금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묻는다. 이때 발제는 “왕일 때에는 모든 것을 갖추고 무사들의 보호 속에서도 혹은 지위를 잃을까, 혹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출가하고 나니 나무 밑에서 홀로 밤을 지내도 두려움이 없으니, 이것을 즐겁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 모든 것을 떨쳐 버린 자의 참다운 행복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244-245)

 

한편 석가족에서 가장 먼저 출가했던 난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난타는 자의에 의해 출가한 게 아니라 강제로 출가한 거였다.

여자가 그리워 고민하는 난타에게 붓다는 그에게 맞는 방편으로 꼬드겨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난타의 출가
붓다의 귀향 후 석가족 중 가장 먼저 출가하는 사람은 난타이다. 그런데 난타의 경우는 붓다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출가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출가는 강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붓다가 이복동생인 난타에게 이렇게 강압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당시 난타가 순다리와의 결혼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난타와 공양을 마친 후 일부러 발우를 놔두고 간다. 난타는 발우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때 강제로 출가시키고 삭발을 단행한다. 난타는 순다리가 보고 싶어 탈출을 감행하지만, 귀족으로 성장한 난타에게 아무도 모르게 탈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울적해하며 붓다를 원망하고 있는데, 붓다는 난타의 성욕이 강한 것을 알고 신통으로 천상의 선녀들을 보게 해 준다.
그러자 선녀에 꽂힌 난타는 선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붓다에게 묻고, 붓다는 수행법을 지도하게 된다. 후일 난타가 깨달음을 얻자, 난타는 스스로 이 약속을 취소하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난타의 강제 출가는 위태로운 가비라국의 멸망으로부터 이복동생을 구하려는 붓다의 손길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비라국이 멸망할 때 붓다의 지친들은 모두 출가한 상태여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옳은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난타의 석가족 내 입장과 관련해서 강제 출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더 유력한 것으로 판단된다. (230)

 

#

이 책은 월간 <불광>에 3년 반 동안 연재된 칼럼을 모은 책이라 각주나 참고 문헌 목록은 없지만 책에 소개된 일화가 나오는 경전 출처는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불교 관련 독서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조계종출판사의 <부처님의 생애>에는 발제와 난타의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소개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두 책을 함께 보면 붓다 전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2-27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붓다의 일가친척 출가 얘기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고보니 자신을 내려놓고 내주는 종교적 자세들이 왜 신 앞에게만 집중되고 말았는지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연결고리들에 또다시 의문이 들고야 마는군요. 강약이 있을 뿐 모든 종교의 숭배가 저는 그래서 못마땅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존경합니다!

돌궐 2015-02-27 01:20   좋아요 1 | URL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죠. (이젠 신도 아니고) `돈`이 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고.
정말 타락한 종교를 보면 저도 못마땅합니다. ㅜㅜ

AgalmA 2015-02-27 01:23   좋아요 0 | URL
아! 욕망(돈과 권력욕)을 깜빡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