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속물이라서 남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일이 있다.

무릇 사람이라면 남의 이목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름을 날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마침 『논어』 안연편에서 통달[達]과 소문[聞](명성, 이름)을 비교하는 대목을 읽었기에 옮겨 본다.

 

자장이 여쭈었다.

"선비는 어떻게 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냐? 네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 안에서 반드시 소문이 나고, 가문 안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김, 227)

 

공자가 통달에 대해 묻자 자장은 '소문'이 나는 걸 '통달'한 것이라 대답한다. 아마도 공자는 자장이 헛된 명성을 좇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통달이 무어냐고 반문을 했던 것 같다. 자장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의 눈과 귀에만 온 신경을 다 쓰는 사람, 권위에 의존하고 복종하며 심지어는 거기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 인생의 의미를 남에게 인정 받고 그들의 이목에 띄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남과 비교하여야만 자신과 자기 자식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사람, 95점을 받아도 100점을 받은 누군가 때문에 불행하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 오직 보여주기 위해서 불필요한 일들과 허망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 남들의 평가가 자기 행동의 기준이 되고 좋은 평판을 획득하게 되면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 실력이 아니라 이름과 간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어서 공자가 말했다.

 

 

"이것은 소문이지 통달이 아니다. 통달이라는 것은 본바탕이 바르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안색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에서도 통달하고 가문에서도 통달할 수 있다) 소문이 있다는 것은 겉으로는 仁을 취하면서도 행동은 [仁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스스로는 仁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라 안에서 반드시 소문이 있고 집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있는 것이다(是聞也, 非達也. 夫聞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김, 227-228)

 

한편 신창호 『한글논어』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었다.

 

"그것은 명성을 드날린 것이지 통달이 아니다. 통달이라는 것은 성품이 소박하고 강직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남의 말을 깊이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여, 신중한 태도로 항상 자신을 낮추는 일이다. 그래야 나라에서도 통달하고 가문에서도 통달할 수 있다. 명성을 드날린다는 것은 겉으로는 열린 마음을 지닌 것처럼 하되 실제 행실은 그것에 어긋나는 짓을 하며, 그렇게 처신하면서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가문에서도 명성을 드날린다." (신, 307)

 

자장류의 인간은 소문만 있기 때문에 그 소문을 유지하기 위하여 남을 속인다. 거짓을 일삼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통달이 아니라 위선이고 허세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있어 왔다.

 

겉으로는 열린 마음을 지닌 것처럼 하되 - 어르신들 지원을 더 하자,

실제 행실은 그것에 어긋나는 짓을 하며 - 접대골프를 하고, 의료원은 폐쇄하며, 애들 급식비는 지원 못한다,

그렇게 처신하면서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 - 표밭은 변하지 않으니까 자기는 옳다고 여기는,

드높으신 명성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

자기 전에 논어 한두 구절씩 읽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구구절절 무릎을 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책 서문을 보니 김원중 선생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늘 고전을 읽고 번역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까진 못하더라도 조금식,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뒷골목 서당개 노릇이라도 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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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정합니다!
(그래서 Agalma씨는 본의와는 다르게 유죄선고를 받고...)

돌궐 2015-04-09 13:44   좋아요 0 | URL
저도 유죄입니다. 같이 소주 한 잔 하시죠.ㅋㅋㅋ

만병통치약 2015-04-0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의있습니다. 전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지만 겉으로는 통달한 척 하고 있습니다. 정상참작바랍니다.ㅋㅋ

돌궐 2015-04-09 14:53   좋아요 0 | URL
집행유예 1년입니다. 같이 합석하시죠.ㅋㅋ
 

연민이란 누군가가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볼 때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그들이 받는 고통과 불행이 나에게도 닥쳐올 수 있다고 의식하는 순간 연민은 공포로 바뀌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라며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게 되면, 연민은 쉽사리 ‘그럴싸한 만족감’이 될 수 있어요.
아프리카,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저런 미개하고 뒤떨어진 나라에 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고통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려 버리는 순간 그런 사진들은, 우리는 고통스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걸 확인해 주는 것으로 그쳐 버리죠.

- 김남시, 『본다는 것』, 너머학교, 2013, 109.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라. 연민이란 참으로 게으로고 뻔뻔한 감정이다.'(니체) 상식적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이다. 그러나 수전 손택 역시 비슷한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연민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옮김, 이후, 2004, 154쪽)

 

우리가 마음껏 가엾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상활에 우리 자신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할 때뿐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교통사고 사망자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는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는 없다. 손써볼 사이도 없이 발생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이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동정심 많고 선량한 얼굴을 한 정치인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어이없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참사가 교통사고에 비견될 수 있다면, 모두들 자신이 음주운전으로 타인을 죽인 운전자라도 되는 듯 자책하는데 유독 정치인들만이 길 가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행인처럼 굴고 있는 듯하다. 목격한 것도 신의 뜻이니 모처럼 좋은 일 좀 해보자는 것일까? 그러니 사고 이후 정치인들이 내놓는 주된 수습안들이 모두 연민과 시혜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엾은 희생자의 가족들을 위해 적절한 보상금을 책정하고 생존자에게 특혜를 베풀어서 착한 정치인으로 남고 싶은 거다.

 

배를 운항한 사람들과 구조를 맡았던 사람들과 상황을 보도했던 사람들과 그 모든 것을 총괄해야 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뽑아놓고 감시하고 항의해야 했던 우리와...... 모든 이들의 잘못이 들통나버렸다. 수치심으로 얼굴 붉히며 참사를 가져온 겹겹의 잘못에 대해 오래오래 따져 물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누군가 지독한 수치심으로 괴로워해야 할 순간에 그저 울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단한 것이라도 베풀듯이 눈물을 보였다는 시혜의 관점이 아니라면, '용서해주세요'도 아니고 '잘못했습니다'도 아닌 '도와주세요'라는 그토록 당당한 선거 구호가 등장할 수는 없다. 그런 이들이 이제 노란 리본을 보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동정이나 연민은 베푸는 사람의 마음이지 받는 이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히 동정해줬는데도 자꾸 사실을 규명해야겠다니 이제는 피곤도 하고 화도 치밀 것이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가 어째서 뻔뻔스러운 사회인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백 일 넘는 시간 동안 참담한 상황을 보며, 서글프게도 니체의 저 구절들이 이해되었다.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73-75.

 

 

 

 

 

 

 

 

 

 

 

 

 

 

 

 

그들은 늘 이런 식이다.

나는 정말 묻고 싶다. 진짜 돈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보상금 챙겼으면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돈을 주면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겠지. 윗대가리들이 이렇게 베풀어줬으니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있자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 한 것이고.

이러니 우리가 쪽팔리는 줄을 알아야 하는 거다.

 

당연히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야 할 애들 급식비도 선심쓰듯 골라서 '시혜'하(여야)겠다는 그들은 사실 우리 옆에도 많다. 심지어 그런 생각을 과감하게 발표하고 실천에 옮기는 자들도 있더라.

내가 낸 세금으로 재벌집 애들 먹이기 싫고, 내 자식 급식은 내 돈 내고 먹이겠다는 논리, 전체주의적 획일 급식은 싫고 낸 만큼 멕이겠다는 뜻은 뭐, 존중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치열한 의지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꼭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내 자식 하나 잘 되면 장땡이라는 그들의 천박한 열정은 교사들에게 찔러주는 뒷돈과 뇌물, 온갖 향응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애들은 자연스럽게 뒷돈과 부정이 만사를 해결해 준다고 여기겠지. 

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고, 부정으로 범벅된 '네월호'는 그렇게 또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겠지.

악담은 그만 하자. 말이 씨가 될라.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지 말자는 사람들이 많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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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틀린 말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점심값이니 이게 왜 무상입니까. 무상하니까 자꾸 공짜`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데 엄연히 국민 세금 걷어서 내는 것이니 것이니 말입니다. 글고..
보상은 보상이고 처벌은 처벌이지, 무슨 보상했으니 다 됐다 ?! 이건 그냥 노예 근성이죠.
옛날에 빠따 열 대 때리고 돈 백 주고 끝내자던 어느 기업 사장 생각나네요..
그 사람도 보상은 했으니 빠따 열 대 때린 것에 대해 아무 비판 하지 말아야 합니까... 하여튼...

돌궐 2015-04-05 13:03   좋아요 0 | URL
책에도 나오지만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쌓인 `사건`입니다.
처벌받고 물러나야 할 애들은 버젓이 활개를 치고, 그들에 놀아나는 언론은 보상금 액수부터 공개하고 나서는 꼴을 보고 있자니 니기미된장그지같은 욕만 나옵니다.
 

불경에서는 정말 탁월한 비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법화경>에 나오는 '三車火宅'의 비유는 정신 없이 노느라 집에 불난 줄도 모르고 안 나오는 어린 아이들을 장자가 대문 밖에서 장난감으로 가득 찬 수레로 유인하여 무사히 빠져나오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자기에게 맞는 것이 있으면 저절로 거기에 따르게 된다는 비유이다.

속세의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방편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법화경 변상도> 부분 '삼차화택', 고려, 1340년, 일본 나베시마보효회 소장 

 

 

가만히 생각하면 나 역시 저 불타는 장자의 집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서까래 밑에서 집착과 욕망에 사로잡혀 아둥바둥 살아가는 중생일 뿐이다. 

아래 옮기는 인생에 대한 비유는 처음 들어본 것인데 이또한 적절함을 넘어서 섬뜩할 정도가 아닌가.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니 우물 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위를 쳐다보았더니 코끼리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칡넝쿨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면서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를 노리고 있었다.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면서 칡넝쿨을 잡고 매달려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날아와 칡넝쿨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꿀을 한 방울씩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는 꿀을 받아먹으면서 달콤한 꿀맛에 취해 위급한 상황을 잊은 채, 꿀이 왜 더 많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안수정등도(岸樹井藤圖)에 나오는 인생의 비유이다. 여기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줄을,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이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五慾樂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이다.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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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 정말 오래만에 읽어요.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은 서재 이웃님도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아마도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4, 5년 전이었을 거예요. 그 분의 글 덕분에 법화경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돌궐 2015-03-20 22:4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선배님이 계셨었군요. 경전 중에 게송들이 너무 길거나 지루하게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에는 좀 건너뛰면서 읽으니까 그나마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아, 물론 한글경전이요.ㅎㅎ
 

 

 

 

 

 

 

 

 

 

 

 

 

여성의 미모라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것인가.

자현 스님의 <붓다순례>에서 연화색 비구니 이야기를 옮겨 본다.

 

 

연화색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미모만큼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니 순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할 수 없는 기구함이 그녀의 삶에 존재한다.


처음 연화색은 울선(鬱禪)으로 시집을 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해산하러 와 딸을 낳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연화색의 어머니와 남편이 불륜 관계를 맺게 된다. 연화색은 이 사실을 여종에게 듣고는 안고 있던 딸을 집어 던졌다. 이때 아이의 머리에 상처가 생긴다. 얼마 후 연화색은 모녀가 한 남자와 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자탄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이후 바라나시로 갔다가 그곳에서 연화색의 미모에 반한 상인을 만나 재혼한다. 그런데 상인은 후일 울선으로 무역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 현지처를 두게 된다. 이후 연화색은 이를 눈치 채지만, 자신도 재혼이었으므로 울선의 현지처를 데려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이렇게 두 부인이 형님, 동생하면서 살게 되는데, 하루는 머리를 빗겨 주다가 머리의 상처를 보고는 그녀가 자신의 친딸임을 알게 된다.


결국 연화색은 운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집을 뛰쳐나가, 정처 없이 떠돌다 반쯤 실성해서 도착한 곳이 우연찮게도 왕사성의 죽림정사였다. 연화색을 본 붓다는 이 여인의 문제를 한눈에 파악하고, 수행자를 만들어 교화한다. 연화색은 현실에 대한 애착이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깨달아 비구니 중 신통제일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출가한 이후 연화색의 미모는 또 다른 장애가 된다. 홀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모에 반한 일반인과 실랑이가 발생하고, 과격한 다툼 속에서 결국 눈이 빠지는 상처를 입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모두가 원하는 미모의 가치가 때론 슬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인생의 또 다른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붓가가 상카시아로 내려오실 때, 연화색은 지상의 제자로는 자신이 가장 먼저 붓다를 맞이하고자 했다. 이때 이곳에는 목건련이 없었기 때문에 연화색을 능가하는 신통의 비구는 없었다. 그래서 비구 교단이 발칵 뒤집어지게 된다. 붓다께서 3개월 만에 오시는데, 비구가 아닌 비구니가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때 왕사성 영취산의 수보리는 가사를 깁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잠시 붓다는 형상의 존재가 아님을 관상한다. 그러고는 다시금 가사를 마저 기웠다. 이때 연화색이 붓다를 맞이하면서 자신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왔다고 하자, 붓다께서는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수보리’라고 답하신다. 『증일아함경』 권28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연화색의 일생을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다. 이렇게라도 해서 인정받고 싶어 했던 연화색을 붓다가 용인해 줬다면,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위한 애틋함을 보이기 위해 도리천으로 가신 붓다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수보리에 대한 이야기는 후대에 부가된 것은 아닐까? 특히 수보리가 상카시아가 아닌 왕사성에 있었다는 점에서, 왠지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왜곡의 그림자가 느껴지곤 한다. (284-286)

 

 

#

붓다는 멀리 있던 수보리가 가장 먼저 붓다를 맞이했다는 말을 굳이 연화색한테 했을 리가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 부분은 스님의 말씀대로 후대에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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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서 파는 토종순대를 삼천 원어치만 포장해달라고 했다.

오천 원어치를 사면 꼭 먹다가 남겼기 때문에 삼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집에 반 병 남아있던 소주와 함께 혼자서 순대를 먹었다. 허파와 간도 먹었다.

오늘 내가 굳이 순대를 사서 먹은 이유는 아무래도 아까 식전에 이런 시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식물성 곱창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석쇠 위 둥글게 몸 말고 있는,

한때 초원 하나쯤은 거뜬히 소화시킨 기관들

성급한 젓가락을 찌르고 누르고 뒤집는다

달구어진 쇠에 찰싹 달라붙어 불을 버티는

초식기관들 그러나 생전의 소가 그러하였듯

길길이 날뛰는 막무가내의 고집,

토막난 채 흘러나오는 누런 콧물 눈물

깍지를 풀고 노릇노릇 익는 동안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제 참나무는 죽어 숯불이 되고

죽은 소의 일부가 안주로 남았다

입속에서 잘게 톱질당한 곱창들

찬 소주와 함께 빈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화하게 피어나는 풀냄새,

왕성한 위액이 또 입맛을 다신다

 

- 이재무, <저녁 6시>, 85쪽

 

 

#

시인들은 음식을 소재로 시 쓰는 일이 많은 듯하다.

나는 그저 게걸스럽게 먹기 바쁜데 그들은 곱창을 앞에 두고 이런 낱말들을 떠올린 것이다.

 

혼자서 곱창집에 가긴 뭣 하고 그렇다고 불러낼 이도 없었다.

순대를 사서 소주와 함께 먹은 걸로 만족한다. 

뇌수조차 얼어 터질 것 같은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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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 6시
    from 突厥閣 2015-03-20 01:26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시집 두 권을 빌려왔다. 그 중 하나가 <저녁 6시>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시집인데, 이제서야 겨우 읽었다. 몇 년 전에 신문(아마 한겨레였을 듯)에서 '갈퀴'를 읽고 나서부터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저녁 밥을 먹고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읽기 시작하여 내처 해설까지 다 읽었으니, 이건 시집 한 권 읽으려면 한참이 걸리는 나로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cyrus 2015-03-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에는 술과 따끈한 안주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집에 시원한 막걸리를 마셨는데 영 만족스럽지 않군요. 친구들 불러서 포장마차에 가고 싶은 날입니다. ^^

돌궐 2015-03-10 21:38   좋아요 0 | URL
뜨끈한 술국과 소주 한 병 정도면 딱 좋지요. 포장마차 대합탕도 괜찮겠어요.^^

transient-guest 2015-03-1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한 국물과 데운 술도 빼놓을 수 없지요..

돌궐 2015-03-13 01:26   좋아요 0 | URL
정종에 오뎅국물도 정말 좋지요^^

돌궐 2015-03-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본 시는 <저녁 6시> 85쪽에 나온 시였다. 지금 읽고 있다가 `식물성 곱창`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서점에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와 함께 들춰봤는데, 페이퍼 작성하다가 출처를 헷갈린 것이다. 나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