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oss of Lead (Paperback) - 2003 Newbery
Avi 지음 / Hyperion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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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다.

어려울 거 같아서 그냥 번역본으로 읽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찾아볼 땐 재고도 없던 서점에 어느 날 갑자기 미국애들이 읽는 책이라고 버젓이 내놓고 팔길래 냉큼 사서 거의 단숨에 읽었다.

 

중세 역사를 다룬 소설이니까 공부도 할겸 착실하게 단어도 정리해 가며 천천히 읽자고 다짐했건만, 긴박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줄거리라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는 건 커녕 모르는 단어를 찾는 것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곱씹어 읽고 싶은 강력한 문장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디선가 번역본 리뷰에서도 소개되었던 이런 문장은 차마 잊을 수가 없겠다.

 

In the end I followed the path of the misty sun, which stared down at me from the gray sky like the dead man's blank and solitary eye. (65)

 

이에 앞서 교수대에서 죽어 썩어가는 그 남자(시체)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중세의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를 여의고 거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크리스핀이 그래도 죽는 것보단 살아남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On the third morning of my escape I woke to a wool-like world of misty gray. Thick and clammy air embraced me like the fingers of some loathsome toad. Sounds were stifled. Solid shapes were soft as rotten hay. No sun jeweled the sky. My entire world had shrunk down to the frayed margins of the sodden road. I walked as solitary as Adam before the creation of Eve.

As I pressed on through the boundless mist, my damp feet sucking soggy soil, the road went up an incline. Suddenly, I spied what appeared to be a man hovering in the air. Heart pounding, I halted and peered ahead.

……

It was a man-for so he had once been. Now his face was moldy green and much contorted, with a protruding tongue of blue that reached his chin. One eye bulged grotesquely. The other was not there. His body oozed from open wounds. Swollen legs and arms flopped with distended disjointedness. Bare feet pointed down with toes that curled upon themselves like chicken claws. Such clothing as he wore was nothing more than a loinchoth of filthy rags. Sitting on his left shoulder were blue-black crows feasting on his corruption. He stank of death.

……

How long I stared at the corpse, I do not know. But as I knelt, the mist seemed to ensnare my body like a sticky shroud, intent on dragging me down.

Except-as Jesus is my Savior-as sure as my heart understood anything-I knew then how much I wished, not to die, but to live.

I can give no explanation how I came to this understanding, save that I did not want to become the blighted man who dangled before me, pillaged by the birds. (62-65)

 

애비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적절한 공간과 상황 묘사로 몰입하게 만드는 거 같다.

이 책에서도 크리스핀의 시각으로 숲속을 헤맬 때와 그레이트 웩슬리에 처음 들어설 때 인상을 실감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시의 악취를 설명하면서 건물에서 창밖으로 오물(똥물)을 마구 내버려서 지나던 사람들이 뒤집어 쓴다든지 하는 그런 장면(168)이나 크리스핀이 도시를 헤매다가 성당에 들어설 때를 묘사한 장면들(190).

아마도 저자는 중세의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책 좀 많이 뒤졌을 것 같다. 이 책 말고도 역사소설을 많이 썼다고 하지.

 

 

아래는 크리스핀이 그레이트 웩슬리 대성당에 들어섰을 때.

But when I stepped past the vestibule, I gasped. Before me was a space of such immense size, height, depth, and breadth, that I never would have thought it could exist on mortal earth. Burning candles blossomed everywhere, enough to awe the stars. Through sweet and smoky air, great columns rose to dizzying heights, while enough multicolored light poured down through stained glass so as to turn the hard stone floor into pools of liquid hues. From somewhere unseen a chorus of swelling chant rolled forth, filling this celestial space with sounds that made me think of the measured beating of angels' wings. It was as if I had entered paradise itself. (190-191)

 

소설에 나오는 존 볼(John Ball)이라는 사람은 이 당시(14세기)에 영국에서 농노해방운동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크리스핀을 도와주는 베어도 이들과 한 패다. 아래는 크리스핀이 엿들은 존 볼의 연설.

"… that no man, or woman either, shall be enslaved, but stand free and equal to one another. That all fees, obligations, and manorial rights be abolished immediately. That land must be given freely to all with a rent of no more than four pennis per acre per year. Unfair taxes must be abolished. Instead of petty tyrants, all laws shall be made by the consent of a general commons of all true and righteous men.

"Above all persons, our lawful king shall truly reign, but privileged or corrupt parliaments or councilors.

"The church, as it exists, should be allowed to wither. Corrupt priests and bishops must be expelled from our churches. In their place will stand true and holy priests who shall have no wealth or rights above the common man…" (228)

 

그리고 베어를 구해내야 한다는 크리스핀의 각성.

I saw it then: Bear and Ball were talking about the very word Father Quinel had used, freedom. Something I had never had. Nor did anyone in my village, or the other villages through which we had passed. We lived in bondage.

To be a Furnival was to be part of that bondage.

As time passed in the darkness of my hiding place, the one thing I knew for sure was that as Bear had helped to free me, he had given me life. Therefore I resolved to help free him-even if it cost me that new life to do so. (253)

 

지금 곧바로 2편(Crispin: at the Edge of the World)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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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py (Paperback)
Avi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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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Avi)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희곡을 쓰다가 뒤늦게 어린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뉴베리상을 한 번, 뉴베리 아너상을 두 번 받았다.

내가 조사한 영어책 중에도 애비가 쓴 책이 많이 나오길래 찾아서 읽어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 판타지를 좋아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역시 재밌다.

 

문장은 낭독에 아주 좋을만큼 리듬이 있었고, 동물의 대사도 통통 튀고 재미있었다.

출퇴근길에 읽다가 소장하고 싶어서 하드커버를 주문할 정도로 읽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 스타일인가 모르겠는데, 좀 어렵고 고풍스러운 단어가 많이 나왔다.

단어장을 보니까 찾은 낱말이 모두 387개나 된다.

 

플롯은 아주 긴장감이 넘치고 줄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과 끝에 두 개의 죽음이 있지만, 결말은 행복하다.

어찌 보면 케이트 디카밀로의 <데스페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곳곳에 나오는 자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위트 넘치는 대사들. 아주 즐겁게 읽었다.

비가 왜 뉴베리를 3번이나 받았는지 알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표지는 다르다.

포피가 왼쪽 귀에 보라색 구슬 귀걸이를 하고 고슴도치 가시검?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Product Details 

 

번역서에는 포피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양귀비'로 나오던데, 처음에만 이름의 본뜻을 각주 같은 것으로 알려주고 그냥 '포피'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다른 동물 이름들도 다 뜻풀이로 나온다.

 

어두운 숲속에서
애비 워티스 (지은이), 펠릭스 샤인베르거, 브리안 플락커 (그림), 유동환 (옮긴이) | 푸른나무 | 2004년 8월

 

 

#

아래는 책에서 인용

 

- 포피가 딤우드 숲속에 들어설 때 묘사

It was as if the sun had been stolen. Only thin ribbons of light seeped down through the green and milky air, air syrupy with the scent of pine, huckleberry, and juniper. From the rolling, emerald-carpeted earth, fingers of lacy ferns curled up, above which the massive fir and pine trees stood, pillar-like, to support an invisible sky. Hovering over everything was a silence as deep as the trees were tall.

Poppy gazed at it in awe. She was not sure what she'd thought Dimwood Forest would be like. She knew only that she'd never imagined it so vast, so dense, so dark. The sight made her feel immensely isolated and small. Feeling small made her a part of all she saw. Being part of it made her feel immense. It was so terribly confusing. (83-85)

 

 

- 부엉이 Mr. Ocax를 피해 고슴도치 이레스의 집으로 피신한 포피와 이레스의 대화

"I think Ragweed would have liked you." Poppy said with admiration. But even as she spoke, a great wave of exhaustion swept over her. "Please, Ereth, would you mind very much if I took a nap?"

"Poppy, you can do what you want. But if I were you, I wouldn't sleep where you're standing. As I told you, it's my toilet, and it's too stinky even for me."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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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te Runner (Mass Market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Riverhead Books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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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에 이 책을 사서 읽어보려고 했다.

그 때 첫 장 몇 페이지를 읽다가 뭔 얘긴지 몰라서 일단 제쳐두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서 이제 다 마쳤다.

중간에 학회다 뭐다 일들이 많아서 출퇴근길에도 읽지 못하다가 요 며칠 뒷부분 거의 반을 한꺼번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손을 떼기 어려웠다.

 

 

문장 구조가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낯선 아프가니스탄 말이 수시로 나오고 작가가 의사여서인가 의학용어도 심심찮게 나오는 만큼 단어들은 정말 많이 찾아봐야 했다(물론 찾아도 없을 것 같은 낱말은 찾지도 않았다).

찾다 찾다 나중에는 단어장 만드는 건 포기하고 내용 파악만 하고 지나갔다. 아마 다시 읽으면 또 찾아야할 단어들이다.

밑줄은 쳐 뒀으니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 나중에 재독할 때 또 확인이 되겠지.

 

 

너무나 유명한 책이니 줄거리 재탕은 그만 둔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감동이 매우 컸다.

아미르와 하산에게 벌어진 일들이 아프간의 역사와 신분 갈등 등과 얽히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너 자신까지도 용서하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살면서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소랍을 탈레반이 된 아셉의 소굴에서 구해 내면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상처 받은 소랍에게서 미소를 다시 보게되면서 아미르는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배반을 용서받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아미르가 연을 쫓아가는 장면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북받침을 느꼈다.

아프가니스탄은 무자비한 탈레반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사랑과 용기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임을, 그 비극적 아이러니를 이 소설만큼 잘 표현해낸 책은 아마 없을 것 같다.

 

 

 

 

 

#

아미르가 카불의 고아원에서 소랍을 찾을 때.

이 문장 속에 이야기의 배경과 발단, 그리고 결말에 대한 암시까지 압축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I thought of the street fights we'd get into when we were kids, all the times Hassan used to take them on for me, two against one, sometimes three against one. I'd wince and watch, tempted to step in, but always stopping short, always held back by something.

I looked at the hallways, saw a group of kids dancing in a circle. A little girl, her left leg amputated below the knee, sat on a ratty mattress and watched, smiling and clapping along with the other children. I saw Farid watching the children too, his own mangled hand hanging at his side. I remembered Wahid's boys and ... I realized something: I would not leave Afganistan without finding Sohrab. "Tell me where he is," I said.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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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ver (Mass Market Paperback)
로이스 로리 지음 / Dell Laurel-Leaf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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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고 나서, 그것도 원서를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기란 난감할 때가 있다.

언어들이 내 어설픈 해독과 막연한 감정 때문에 뭔가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해서 읽다보면 좀 나아질까.

문장은 역시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처음으로 오디오북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동안 360여 개의 단어를 찾았고, 찾았던 단어를 또 찾아서 봤다.

카페에선가 어디선가 이 저자가 일부러 낱말을 반복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사실 번역본 <기억 전달자>는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조나스가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를 데리고 탈출하는 건 기억이 났지만 그게 가브리엘이었단 걸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다.

마지막에 조나스가 모든 힘을 다한 끝에 오른 눈 쌓인 언덕을 내려가면서 본 불빛은, 사람들의 노랫소리는, 실제인가 환상인가 긴가민가했다.

기억 속에서 끌어낸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걸 미루어보면 조나스가 의식을 잃으면서 생긴 환상인 거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너무 처절하고 비극적인 결말 아닌가.

확실한 이해를 위해서 번역본도 다시 읽어야겠지만, 원서도 다시 읽어야겠다.

가브리엘을 안은 채 언덕에서 쓰러져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 깊은 문장이었다.

 

Jonas felt himself losing consciousness and with his whole being willed himself to stay upright atop the sled, clutching Gabriel, keeping him safe. The runners sliced through the snow and the wind whipped at his face as they sped in a straight line through an incision that seemed to lead to the final destination, the place that he had always felt was waiting, the Elsewhere that held their future and their past.

He forced his eyes open as they went downward, downward, sliding, and all at once he could see lights, and he recognized them now. He knew they were shining through the windows of rooms, that they were the red, blue, and yellow lights that twinkled from trees in places where families created and kept memories, where they celebrated love.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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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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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뭐랄까. 매력 넘치고, 확 달아오르게 만드는 공부론이다.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도 많았고, 공감하는 주장도 꽤 있었다.

 

결국

읽어라, 숨 쉬고 있을 때 읽을 것이며, 읽어도 고전을 읽고, 이를 낭송하고, 구술하고, 함께 공부해라, 우리 몸과 일상에 주목해라,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배워라, 배움으로써 가르치라,는 얘기였다.

 

옳다.

옳고, 좋아 보이나 누구나 다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닐 테지.

공부해서 남 주자는 건데, 공부가 꼭 남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자폐적' 글쓰기도 실제로 그런 걸 수시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부정해야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것마저도 하나의 '공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조차도 내 일상이라면 일상일 수 있고, 거기에 더욱 빠져들어 바닥을 쳐 보지 않고 어찌 내 삶과 몸과 일상에 주목할 수 있단 말인가.

 

제도권에서 벗어나고 근대적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또 어떻게 버텨내느냐도 중요하다.

무조건 대학교(학교)는 틀렸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대학교 가면 모든 이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공부가 안되는 대학, 공부하지 않는 교수는 점점 사라지겠지.

이제 대학이 죽었다고 진단한 글쓴이의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조하지만 그럼에도 살아 남는 대학과 학생과 교수가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질문이 없고, 독서를 하지 않으며, '인정욕망'와 '죽음충동'에 휩싸여 있다고만 보는 건 힘들지 않을까.

책을 너무 읽지 않는다는 의견은 귀담아 들어야겠지만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편들은 너무 막연하고 이상적이다.

또 독서 대상으로 고전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아예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서 몽땅 이해되는 책은 당장 덮으라고 하니(125쪽) 그럼 책 읽으면서 맨날 골머리 싸매고만 있으란 말인가.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는 건 결국 모임을 만들어서 의견을 나누라는 것이고, 눈 앞의 현실에 '존재 전부를 기투'하라는 것은 결국 너 자신을 알라는 얘기겠지. 근데 공부 한답시고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던가.

공부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선동적인 책이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지나친 일반화가 조금 불편하다.

 

 

그런데, 이 모든 불평에도 여전히 장점이 많은 책이다.

고전은 눈이 아니라 소리로 만나야 한다는 주장은 아마 중국 고전과 시에 해당할 것이다.

모든 문학과 인문서들을 소리로 만날 필요는 없다. 소리보단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어야 하는 책도 많다.

소통하면서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줘라, 같이 밥 먹어라, 문체를 바꾸려면 표정과 몸과 삶을 바꿔라, 아이와 함께 책에 대해 얘기해라 - 이런 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바로 실천할 만하다.

 

문체는 경쾌하고 속도가 빠르다. 다만 물음표와 느낌표는 너무 남발했다.

'자유에의 도정', '생명에의 의지', '운명으로부터의 소외에 다름 아니다'와 같은 진부한 문체는 고치고,

'코뮌', '네트워킹' , '클리나멘', '레토릭', '기투(企投)해야' 등 현학적인 낱말들은 코뮌→모임/동아리, 네트워킹만남/관계/어울림, 레토릭수사/말장난, 기투해야(내)던져야 등으로 쉽게 쓰면 안되나. 클리나멘은 '변곡점'이라고 함께 써 놓았지만, 그것도 어렵긴 마찬가지.

 

하지만 아래 글들은 참 좋아서 되풀이해서 읽고 싶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면, 거기에는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진다.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다. 더이상 배울 게 없을 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만큼 모자라는 사람도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이 배움의 흐름에 들어가게 된다. 이탁오가 말한 바,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師友)의 의미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188)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189-190)

 

초·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억압적 구조, 오직 막무가내로 자기 자식만 챙기는 학부모들, 학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등 교실의 붕괴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 땅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실로 힘든 일이리라.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설령 입시를 위한 것일지라도 선생님이 공부에 미치면 자연스럽게 그 배움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왜 부모들은 공부하지 않는가?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갖은 고생도 마다 않고, 심지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일까지 다 감수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왜 공부를 하지 않는가? 공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부모들이 앞장서서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은 공부를 접었으면서 자식들한테만 공부를 강조하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자식들이 정말 공부를 통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부모도 자식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 오직 학벌을 위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게 되면, 그 지식은 결코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가 공부를 좋아하면, 자식들은 그걸 닮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열정이 일단 자식에게 전달되기만 하면, 설령 당장 성적이 처지고 대학에 못 가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스스로 공부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이 경우엔 딱 들어맞는다. 남보다 약간 뒤늦을 수도 있고, 먼 길을 우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어차피 앞으로는 직업과 가족의 유동성이 더 한층 심화될 것이다. 평생직장은 이래저래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당장의 성공에 끌려다니지 말고, 인생을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부모 자식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공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이미 강조했다시피, 지금 같은 핵가족 시대에 자식을 배려하는 것은 자칫 과잉보호로 빠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지금은 아이들이 집안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자칫하면, 서로에 대한 의존과 집착에 빠져들 확률이 아주 높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함께 공부를 하면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 평생의 길동무가 될 수 있다. 요컨대, 부모는 단지 배움으로써만 자식을 가르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왜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은 늘 스키장이나 화려한 외출, 해외여행 따위로 표현되는가?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부모 자식 혹은 친척들이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왜 상상조차 하지 않는가? 가장 싸게, 가장 밀도있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190-192)

 

 

스키장, 해외여행 운운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나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노는 것도 중요하다(먹는 거 중요하다면서 노는 건 왜 푸대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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