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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빈틈 없이 차 있다. 퍼즐 맞추는 것처럼 책 위치를 바꾸면서 이리저리 옮겨봐도 더 이상 꽂을 데가 마땅치 않다. 조그만 개인 연구실이라도 마련하여 튼튼한 2중 슬라이드 책장을 설치하고 책들을 도서관 분류식까진 안되더라도 나름 체계를 잡아 정리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생겼다.

 

이제 더 이상 꽂을 데도 없는데, 그래도 사야하고, 사고 싶은 책들이 많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관심사가 넓어짐에 따라 구간 도서 중에서 눈에 밟히는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이래서 책덕후들이 책 사재기에 혈안이 되는가 보다.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과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얼마 없어 비싼 책을 사는 것은 엄두가 안난다. 생각해 보면 식구들과 외식 한 번 하려면 보통 4-5만원 정도가 드는데, 5만원 넘는 책을 사면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 입기가 힘들어진다. 책 한권에 사오 만원이면 꽤 비싼 편이지만, 그런 책들은 대개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역작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책들은 외식비 조금씩 아껴가며 사두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연장해 가며 읽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전류도 비싼 것들이 많다. 얼마 전에 만병통치약 님 소개로 알게 된 <한국지명유래집>은 매우 탐나는 아이템이다. 관련 전공자들이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낱말의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전7권)은 아예 머리 속에 입력하고 싶은 사전이다. 내 글이 너무나 졸렬하고 조잡해 보일 때 단어라도 바꿔서 있어보이게 하려면 이런 사전을 뒤져서 쓸만한 낱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88만 2천원(핡).

각 권이 9만 5천원인 단국대동양학연구소 <한한대사전>(1~15)은 그저 꿈일 뿐. 내가 동양고전 연구자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활용도 못 하면서 꽂아두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라고 구차한 핑계를 대본다). 서울대역사연구소 <역사용어사전>이나 큰맘 먹고 겨우 비벼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15만원이면 4-5인 가족 워터파크 입장료에 필적하는 가격이다: 긴축정책과 맹렬한 부업이 요망된다. 아래 사전들을 검색하다가 줄기에 딸려온 왕건이 감자처럼 검색된(알라딘의 획책이 분명한) <중국사상문화사전>도 숨이 잠깐 멎을 만한 사전이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도 추가.

결국 이 페이퍼를 계속 쓰다가는 탐욕과 갈등만 생겨날 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듯싶다. "깨지않을 꿈을 꾸도록" 눈을 감는다는 노래가 있던데, 눈 감는다고 책이 나한테 달려오지는 않는다. 책은 꿈에서는 읽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정말이지 꿈에서 책을 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거 같다.

 

 

 

 

 

 

 

 

 

 

 

 

 

 

  

 

 

 

 

 

 

 

 

 

 

 

 

 

 

 

이제 비현실적이며 허황된 꿈들은 잊고, 그나마 실현이 가능한 꿈을 꾸도록 하자.

일단 전공 개설서류는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들춰보게 된다. 훌륭한 도판까지 있다면 급하게 자료로 스캔받기도 좋다. 전공자들은 개설서를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가끔씩 개설서에 적힌 내용에서 영감(과 반감)을 얻는 경우도 있으므로 무시해선 안되겠다. 한국미술사 개설서 중에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시리즈가 도판도 좋고 내용도 좋다. 근래의 연구성과들을 반영하여 작성한 내용도 (몇 개 발견한 오류를 빼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1권은 중고서점에서 시력이 45라는 '낙타의 눈'으로 찾아내어 구입했는데, 2권과 3권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일단은 빌려서 통독하고 밑줄은 사서 치자.

서양미술사의 '넘어서야 할 아버지' 파노프스키의 핵심은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에 있다고 하던데, 반드시 소장하여 철저히 정독하고 그 논지를 검토해야겠다.

 

 

 

 

 

 

 

 

 

 

 

 

 

 

 

교양(과 허세)을 위해 철학책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철학책은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야하므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게 어렵다.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면서 읽는 게 제맛이니까. 그래서 가성비가 뛰어난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중에서 몇 권 찍어두었다. 베르그송, 마르크스, 스피노자, 베버 등 그 이름만으로도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잔구성 암산처럼 느껴진다. 가진 거라곤 달랑 등산화 한 켤레 뿐인데... 한길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도 좋은 책이 많다. 한나 아렌트, 플라톤, 헤겔, 레비-스트로스, 엘리아데 등 서양 사상가와 정약용, 리쩌허우 같은 동양 사상가 책도 꽤 있다. 다만 월드북 시리즈보다 가격이 좀 센 편이어서 구입이 망설여진다.

 

이런 시리즈들을 전질로 들여놓고 과시할 경제적 능력과 공간은 없더라도 책들을 읽어낼 수 있는 정신적 능력과 뇌용량에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서를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굳건한 시력도 필요할 것이다. 운동을 해야 눈이 더 나빠지지 않을 거 같다. 좀 움직이면서 살자. 우중충하게 책상에만 붙어있지 말고.

 

 

 

 

 

 

 

 

 

 

 

 

 

 

 

플라톤의 <국가>와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가격도 그나마 합당한 편이어서 올해 안에는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도 언젠가는 사야겠다. 러셀의 명료한 문장을 원문으로 읽는 것도 평생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주제파악을 해야겠지. 호평 일색인 빨간색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상권은 역시 중고서점에서 '낙타의 눈'으로 발견했기 때문에 이제 하권만 구하면 된다. 명성이 자자한 까치글방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는 언제 읽을 것이며, <논어> 마치면 읽을 <장자>, <도덕경> 같은 동양 고전은 또 언제 읽을 수 있을까.

 

 

 

 

 

 

 

 

 

 

 

 

 

 

북플과 서재를 짬날 때마다 둘러보면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불어나게 되는데 이 또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서재에서 본 이오덕 선생 신간도 탐이 나고,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도 궁금하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읽다가 말았는데,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사계절에 갔다가 반값 전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지금 사둔들 읽을 시간도 없고 꽂아둘 공간도 없다는 핑계를 들어 제자리에 조용히 놓아두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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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두꺼운 책들은 꽂아둘 책장이 없다는 것만이 문제일 뿐 죽기 전에는 꼭 사서 읽어 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집을 넓힐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려면 어서 빨리 이 부동산 거품이 꺼져야 한다. 책도 맘 놓고 못 사는 이 사단이 어디서 온 것인가. 책이라는 '동산' 소비를 막고 있는 '부동산' 투기꾼 님들은 영원히 나한테 저주받아 마땅하다. 백성들이 저마다 교양을 마음껏 쌓지 못하게끔 꾸준하고 지대한 공헌을 해 오신 분들이 바로 이 분들이니까. 된장, 결국 기승전부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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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살이 2015-06-0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책 책입니다~^^ 외식비 아껴서 책 사야징

돌궐 2015-06-04 07:0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야 하는데 잘먹자는 것도 평소 지론이라서 힘드네요.ㅎ

자유도비 2015-06-0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공감, 절대 공감!

˝도서관에서 연장해 가며 읽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일단은 빌려서 통독하고 밑줄은 사서 치자.
그리고 독서를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굳건한 시력도 필요할 것이다. ˝

위의 문장, 제가 쓴 줄 알았습니다. 돌궐님 제 글벗으로 나타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

돌궐 2015-06-06 14:22   좋아요 0 | URL
껌정드레스 님 글을 열심히 읽은 제가 껌정 님께 빙의하여 쓴 문장들입니다. 제가 언제 저런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하

yamoo 2015-07-11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책 덕후, 옷 덕후..ㅋㅋ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제가 옷 덕후로서 돌궐님께 팁하나 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유니클로에 들르십시오. 그러면 꽤 괜찮은 옷을 매우 싸게 데려올 수 있습니다. 여름 셔츠 같은 경우 3만원짜리가 5천원에 팝니다. 대개는 2-3만원이면 셔츠와 바지를 살 수 있지요. 잘 만 노리면 5천원 대박 세일(연중 합니다) 옷을 꽤 많이 건질 수 있습니다. 티셔츠, 셔츠, 면바지 정도...베이직한 옷을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매장 가면 절대 이가격에 이 정도 퀄러티의 옷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러니 정기적으로 유니클로를 방문해서 5천원짜리를 노리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유니클로 5천원 짜리 셔츠가 오마샤리프 4만원짜리 셔츠 보다 좋다면 말다했지요..ㅎ)

돌궐 2015-07-11 12:17   좋아요 0 | URL
음.. 당장 유니클로 매장 위치를 알아봐야겠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돈보 2015-07-11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경우, 중고책방이나 염가,특가도서 기회가 되면 두눈질끈감고 들고오시는게 정신건강에 좋더군요 몇번 들었다놨다 했다가 그냥 온 경우에 거진 후회막급이던군요. 다른거 아껴서라도 평소 관심목록이 싸게 눈에 띠면 무조건 낚으세요.

돌궐 2015-07-11 12:20   좋아요 1 | URL
근데 사실 저는 책 욕심이 별로 없어요. 안(못) 샀다고 후회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사고 싶은 마음도 막상 그때 뿐이더라구요.^^ 다만 필요한 책은 꼭 사려고 합니다.
 

역사 소설에 관심이 조금 있어서 오다가다 눈에 띄면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담징>, <솔거>, <소년이 온다>, <지워지지 않는 나라>를 읽었는데, 혼자 매긴 별점에 편차가 좀 있었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쓴 것도 있지만 임시저장만 하고 마지막 전송 버튼까지 누르지는 못했다.

 

 

 

 

 

 

 

 

 

 

 

 

 

 

 

 

소설로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을 서술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소설 형식을 빌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소설에서 중요한 건 표현이고 양식이라고 본다. 역사의 상황 속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치밀한 논증을 갖춘 논픽션이나 논문을 쓰는 것이 낫다. 상황에 공감되지 않거나 대사에 집중할 수 없는 소설은 읽어내기가 매우 힘들다.

 

이번에 읽었던 소설 중 한 권이 그랬다.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과 같은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몇 장 읽자마자 드는 느낌은 '뭐지 이건?'이었다. 등장인물의 대사들은 학회 발표문 같았으며, 플롯은 엉성하였고, 상황 묘사가 거의 없이 사건만 나열되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불분명하며, 행동과 대사가 어설펐다. 그리고 문장에는 스타일이 없었다.
서사 구조는 마치 소설로 된 <디워>를 보는 듯했다. 맥락 없이 전개되는 사건과 사건들……. 미모의 여성과 주인공이 술 마시면서 내내 학술적인 얘기만 나누다가 난데없이 동침하는 전개라니…….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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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는 인물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이런 것을 읽으려고 소설책을 찾는 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쪽)

참 아름답고 상징적인 문장이다. 그러고 보니 한강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고 썼던 시인 아닌가. 돌아간 그들의 영혼을 이만큼 성실하게 만져질 듯이 되살리려 했던 글이 또 어디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이었다. 너의 일은 힘들지 않았다. 선주 누나와 은숙 누나는 베니어합판이나 스티로폼 판에 미리 비닐을 깔아놓고 그 위에 죽은 몸들을 눕혔다. 얼굴과 목을 물수건으로 씻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는 빗으로 정돈한 뒤, 냄새를 막기 위해 몸에 비닐을 둘렀다. 그사이 너는 그들의 성별과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겼다. 갱지 쪽지에다 같은 번호를 적어서 가슴께에 핀으로 꽂아놓은 뒤, 얼굴 아래로 흰 무명 천을 덮고는 누나들과 힘을 합해 벽 쪽으로 밀어놓았다. 도청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보이는 진수 형은 하루에도 몇번씩 다급한 걸음걸이로 너를 찾아왔는데, 네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을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너는 흰 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신원이 확인되면 멀찍이 물러서서 오열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너무 험하지 않게만 대충 수습해놓은 시신을,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렇게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하는 것까지가 너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그날 오후엔 유난히 신원 확인이 많이 돼,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16-18)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 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어. 참나무 숲 우듬지 사이로 오렌지색 광선을 내쏘며 해가 저물어갈 무렵, 누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는 데 지친 나는 이제 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51-52)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나의 어린 상상과 달리 이마에 총을 맞지도,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은 희영이 고모가 잠깐 다니러 올라와 있었다.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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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에서 사실과 해석을 어느 정도 담아 낼 것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그럴듯한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소설은 드라마지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끌 수 있는 플롯과 (인물의) 성격이 있어야 하며,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급전과 반전’이 이루어져야 독자들은 군침을 삼키며 책장을 넘길 수가 있을 것이다.

역사 인식이나 학설들을 개연성 없는 사건들 속에다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의 그 책은 학술적이고 이념적 대사들만 가득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아주 거북스러웠다. 학자들이라고 해서 술 마시면서 그렇게 '세미나'만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소설에 학술적인 대사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는 민중들의 천박하고 말초적인 대사뿐만 아니라 엘리트들의 이념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들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 대사들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속에서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역사소설에서 그런 글을 보고 싶었다. 역사 지식과 서사가 따로 놀아 설익은 밥을 씹는 것 같은 글 말고 잡곡과 백미가 같이 찰지게 익어서 부드럽게 씹히고, 빛깔과 냄새도 좋은 그런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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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석(曜夕), 빛나는 저녁
    from 突厥閣 2015-07-12 23:37 
    #역사 소설을 가끔 챙겨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사실과 정보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사실과 정보는 역사책이나 논문을 보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은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구체적 상황들을 재현해내어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흡입력 있는 줄거리와 현실성 있는 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연성 있는 사건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야만 생겨나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일반
 
 
비로그인 2015-06-0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는 거의 증언문학수준의 소설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작가님도 90%이상은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제가 한강작가님 팬이라서..;;)
저는 개인적으로 4장 `쇠와 피`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프리모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도 많이 생각이 났어요.....ㅜㅜ

돌궐 2015-06-03 22:00   좋아요 0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증언`이라고 할 만한 구절들이 떠오릅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그런 구절들인 거 같아요.
 

연휴가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너도나도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안달인 이 때, 꿋꿋이 서울에 남아 있다가 도심에 있는 종묘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종묘대제가 봉행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5월 3일이다. 이 날 우리는 '공짜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실연되는 장면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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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돌아간 조선의 왕과 왕후들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으뜸 사당[宗廟]'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종묘는 사직과 함께 ‘국가’라는 말로 대체될 만큼 과거에는 중요한 곳이었다.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국가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모두 국가에서 주관하는 제사를 시행하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시대 국가 제사 중에서도 종묘와 사직의 제사는 모두 가장 중요한 대사(大祀)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종묘와 사직에 관해 본 책 중에는 이현진·강문식 공저로 나온 『종묘와 사직』(책과함께, 2011)이 가장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종묘 건축의 기능과 역사, 종묘 제례와 제례악의 내용과 절차 등을 알기 쉽게 서술했다. 딱딱하고 읽기 힘든 글이 아니라 친절하고 재미있는 글이었다. 종묘와 사직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도 많이 인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이 크게 놀라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즐비했고 죽은 자도 많았다. 그래서 평수가는 할 수 없이 남별궁으로 옮겼다. 이것은 한나라 고조의 영혼이 나라를 빼앗은 왕망에게 위엄을 보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선조실록26, 선조 2553(임술)

 

왜적이 종묘를 불태웠다. 왜적이 처음 도성에 침입했을 때 궁궐은 모두 타버리고 종묘만 남아 있었다. 왜의 대장 평수가(平秀家, 다이라노 히데이에)가 그곳에 거처했는데, 밤중에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따르던 졸개 중에 갑자기 죽는 자도 생겼다. 어떤 사람이 이곳은 조선의 종묘로서 신령이 있는 곳이다라고 하자, 평수가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종묘를 태워버리고 남방(南坊)으로 옮겨 거처했다. 남방은 바로 남별궁이다.

-선조수정실록26, 선조 2551(경신)

 

나는 정말 저 용감한 '신병'들이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종묘를 능욕한 왜군에 분개한 나머지 게릴라전을 펼친 의병이었을까, 아니면 왜군에 대한 적의로 똘똘 뭉친 하급무관이었을까. 왕실과 조정 대신들은 도성을 내팽개치고 신주 단지만 들고 북쪽으로 도망간 판국에 한양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왜군들을 밤마다 기습하여 피해를 입히다니... 그 정도의 용맹과 담력이라면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 이상한 게 이 나라는 위기를 맞으면 높으신 분들은 재빨리 백성은 내버려둔 채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고, 이렇게 이름도 모를 이들이 온몸으로 나라에 닥친 위험들을 막아내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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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대제에서는 제관들에 의해 제사가 엄수되고, 의식과 함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이 연주된다. 한두 번 종묘에 갔다가 들어본 일이 있었는데, 국악은 잘 몰라도 그 넓은 정전 앞마당에서 울려퍼지던 조화롭고 경건한 가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종묘제례악 소개 동영상 (문화유산채널)

 

종묘제례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춤과 기악과 노래가 어우러진 일종의 공연 예술이다. 세종이 처음 만든 이후 세조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한다. 조금 길지만 종묘제례악에 관해 설명된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종묘 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기악[노래[[]을 갖추고 종묘 제례 의식에 맞추어 연행하는 음악이다.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제례 의식을 위한 춤인 일무(佾舞)를 춘다.

종묘 제례악은 세종대 연향악(宴享樂, 궁중의 잔치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제정된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연원을 두고 있다. 보태평은 조선 역대 국왕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고, 정대업은 외적에 맞서 군사상의 공적을 세운 선왕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1464(세조10)에 이르러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을 처음으로 종묘 제례에 연주하면서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했다.

종묘 제례악은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이 연주되는데, 연주 위치와 악기 편성에 따라 악대가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로 나뉜다. 등가는 정전 앞 계단 위 월대에서 연주하는 악대이고, 헌가는 정전 앞 계단 아래 월대에서 연주하는 악대이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였다.

종묘 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춤인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곁들여진다. 문무는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에 맞추어 왼손에는 구멍이 세 개 뚫린 관악기인 약(), 오른손에는 긴 막대기에 꿩 깃털을 단 적()을 들고 추는 춤이다. 무무는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아헌례와 종헌례 때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에 맞추어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손에 쥐고 춘다.

종묘 제례악은 편종과 편경, 방향과 같은 타악기의 선율과 여기에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관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졌다. 또한 장구, , 태평소, 절고, 진고 등의 악기가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준다. 특히 중간 중간에 울리는 박() 소리는 종묘 제례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종묘 제례악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종묘 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와 사직』,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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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를 놓쳤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할 것은 없다. 종묘에서 보아야 할 것이 제례와 제례악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묘는 건축으로도 매우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평일에(다만 이 때는 자율관람이 아니라 해설사와 함께 다녀야 한다) 종묘 건축의 조형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종묘 정전 공중 사진(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도록)

 

종묘 건축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정전이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부를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는 가로 19칸짜리 건물이다. 많은 학자들의 극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묘 건축은 정전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신향로(神香路)부터 종묘의 건축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종묘에 마련된 길과 건물의 배치, 그리고 그 위로 나아가는 신관들의 의식 절차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묘 건축을 이해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종묘의 모든 길과 판위(版位), 그리고 정전과 영녕전 앞의 드넓은 월대(月臺)는 제례가 시작되고, 멈추었다가, 다시 진행되는 거대한 '무대'이다.

 

 

 

종묘 정전 월대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도록)

 

신향로는 돌아간 왕과 왕비의 넋과 제사를 치르기 위한 향(香)만이 지나는 길이다. 인간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신로를 따라 걷다가 관리인들의 약간 지나친 듯한 호통까지 듣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방문객들도 잠깐 길을 가로질러 갈 때를 제외하고 신향로를 따라 걷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승효상 선생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컬처그라퍼, 2012)에서 정전의 월대는 그 '비어있음'에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오로지 의례만을 위해 비워낸 이 광활한 공간은 종묘 건축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정전 월대의 크기는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종묘 정전의 건축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 김동욱 선생의 글을 몇 줄 옮겨 본다.

 

종묘건물은 건물을 단순히 옆으로 늘리기만 한 것이 아니고 증축에 의해 생기는 건축 전체의 분위기를 적절히 조정하여 하나의 장대한 제사공간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서 종묘의 뛰어난 조형성을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의 한 칸 한 칸은 지극히 단순한 구성을 한다. 아무 장식을 가미하지 않은 간결 소박한 조형이다. 각 칸의 평면구성은 전면 반 칸을 기둥만 세운 개방된 공간으로 꾸며 제사 때 헌관이 제례를 치르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그 뒤에 육중한 판자로 된 문이 설치되고 실내에는 간소한 탁자가 하나 놓여 그 위에 위패를 모신 작은 상자를 둔다. 이런 간결한 조형이 옆으로 길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엄숙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특히 건물 전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독립해서 서 있는 20개의 굵은 기둥의 도열은 숨 막힐 정도의 압도적 힘을 느끼게 한다. 엄청난 크기나 요란한 장식이 아닌 가장 단순한 요소의 반복이 주는 조형의 힘이 여기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칸의 긴 건물은 앞으로 돌출한 좌우 월랑 덕분에 공간적 짜임새를 갖춘다. 특히 동쪽의 벽이 없는 월랑은 동쪽 문으로 들어오는 참배자들에게 네모난 액자 속에 구성해 놓은 그림과 같은 정전의 장대한 경관을 보여준다. 건물 앞에 마련한 넓은 월대도 제사공간의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북돋아준다. 월대에는 박석이라고 하는 거칠게 다듬은 얇은 돌판이 넓디넓은 바닥 전면에 깔린다. 하나하나의 크기나 모양이 다른 박석을 의도적으로 불규칙하게 바닥에 깔아 화강석 석재의 친근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잘 나타낸다. 또 월대 전체는 가운데를 약간 볼록하게 곡면으로 만들어 주는 시각적인 조정도 빼 놓지 않았다. 화강석을 다루는데 있어 달관한 경지에 이른 석공의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중국의 건축형식을 한반도의 토착적인 건축미학으로 새롭게 다듬어 낸 조선시대 대표적인 건축의 하나로 평가된다.

- 김동욱, 『한국건축의 역사』, 기문당, 189쪽 

 

 

 

 

모든 제례는 왕과 왕후의 신주를 봉안한 정전으로 귀결되었다. 기둥과 그 위 지붕 밑으로 보이는 서까래 끝부분들은 서월랑 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그림에서나 볼 듯한 소실점을 이루고 있다. 하늘로 치솟은 빌딩들과 그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허공 속의 소실점에만 익숙하던 우리들에게 종묘 정전은 가로로 길게 뻗은 목조건물이 만들어내는 낯선 소실점을 보여준다. 이런 긴 건물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희귀하고 색다른 경험인가. 옛 건물이 주는 고풍스러움과 그 특유의 향취 같은 걸 느끼지도 못할 만큼 정전은 이미 우리의 눈을 압도한다. 

 

 

 

종묘 정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전 회랑은 어둡고 단순하다. 기둥은 끝없이 반복된다. 장식이나 꾸밈이 없이 오로지 기둥과 벽면과 서까래로 되풀이되는 선과 면이 시야에 가득 찬다. 이것을 한 눈에 담기 위해서 정전이 한꺼번에 보일 것 같은 위치로 발길을 옮긴다. 공신당 앞으로 지나 남신문 앞에 서면 정전은 이제 겨우 그 검은 지붕과 붉은 기둥들을 눈앞에 온전히 드러낸다. 하늘은 변화무쌍하나 정전은 변하지 않고 고요하다. 가운데로 곧게 뻗은 신로(神路)와 검푸른 지붕, 붉은 기둥들이 지어내는 색과 인공의 선들은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선들과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정전은 신과 인간이 만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고궁박물관 도록에 실린 <종묘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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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왼쪽의 재궁은 왕과 세자가 목욕제계하며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다. 종묘에서 치뤄지는 모든 의례에는 남성들만 참여했으며 제사 음식의 준비도 모두 남자들이 했다고 한다. 

제사 음식에 바칠 희생을 잡을 때도 격식을 갖추었다. '난도(鑾刀)'라고 부르는 칼은 희생의 목숨을 끊기 전에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듣게 하려는 뜻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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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건축과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내쫓았던 神兵의 화신 너구리라도 찾아 보자. 몇 년 전 영녕전에서 만났던 너구리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궁금하다.

그 때 내가 가까이 가서 사진에 크게 담으려고 하자 그 너구리는 정말 너구리처럼 스리슬쩍 도망가더라.

그 어떤 조급함도 보이지 않고. 

한 밤에 야음을 틈타 왜병 막사에 침투한 뒤

병사 몇을 베고 유유히 사라졌던 

그 때 그 신출귀몰했던 병사처럼.

 

 

 

 

이상교 글, 김동성 그림 <종묘 너구리네>라는 책이 있던데, 한 번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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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2015-07-12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세대에게 잊기 쉬운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게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자료도 풍부하고 그림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돌궐 2015-07-12 06:46   좋아요 0 | URL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조금 열고 북플을 보고 있자니
그 살짝 열린 창틈으로 벚꽃잎이 마구 들어온다. 바람을 따라.
벚꽃잎은 왜 이렇게 하나하나 떨어져서 함박눈처럼 휘날리나. 노트 위에도 벌써 두 개나 떨어졌다.

아주 오래 전에 청자켓을 입고 학교에 다닐 때 벚꽃잎이 떨어지는 교정 벤치에서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그 작은 잔에도 벚꽃잎 하나가 찾아와 제 몸을 담그길래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함께 마셔주었다.
그 옅은 분홍빛 작은 잎 하나가 지금도 내 몸 속 어딘가에 피가 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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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4-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오늘은 골든베르그 말고 그리그 페르귄트로 가죠~, ㅋ~.

돌궐 2015-04-21 16:52   좋아요 1 | URL
페르귄트가 없어서 돌아오는 길에 레드제플린 들었습니다.^^;;

럭키언니 2015-04-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돌궐 2015-04-21 16:52   좋아요 0 | URL
민망합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U2 보노를 골라놨어요~^^

돌궐 2015-04-21 17:12   좋아요 0 | URL
아 갑자기 경복궁 인근에 있는 올드락 신청곡 받는 호프집에 가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소주잔 위에 떨어지는 벚꽃이라.... 가장 근사한 안주로군요.

돌궐 2015-04-21 20:00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랬었죠. 지금도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인생도, 여자도 모르던 그 시절...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 통장에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큰아이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세월호 양대홍 사무장이 아내와 나눈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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