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최경원 지음 / 현디자인연구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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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들렀다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선정작을 모아 둔 곳에서 발견한 책이다. 감은사탑, 달항아리, 고구려 철갑옷, 독락당, 석굴암 다섯 가지 문화재를 분석하여 우리 문화의 탁월한 구조와 형식미, 정신성과 조형이념, 실용성과 기능은 물론 역사성까지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문화 버리기’라는 제목은 사실 책의 내용에 잘 부합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한국문화가 무엇인지 그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2장에서 기존 학자들이 내놓은 한국문화에 대한 담론, 이를테면 ‘막걸리 맛’이나 ‘못 느끼면 말을 말자’ 따위 밑도 끝도 없는 애매한 감상은 이제 그만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막연한 감상으로 우리 문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영 탐탁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두루뭉술한 ‘감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해석을 통해 한국문화를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 한국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과 글에 활용된 폭 넓은 지식들도 인상적이다. 뜬구름 잡는 인상비평이 아니라 철저한 형식 분석과 다양한 시각 자료를 동원해서 해당 유물들을 검토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사용된 자료나 그림들은 그동안 미술사 저술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많다. 다섯 개 꼭지마다 우리 유물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서양의 미술품과 유물들이 비교되고 있다. 범위와 종류도 다양해서 회화나 조각은 물론 고대와 현대의 건축물, 산업 공예품과 디자인 제품까지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학술 논문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논지를 거리낌 없이 제대로 펼쳐내었다. 학계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겠지만, 그래서 더 편하고 자유롭게 주장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 조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주장들이 학계에서 회자되는 이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소장학자들이 이 책의 논지와 비슷한 주장들을 펴왔고, 저자는 이 연구성과들을 잘 정리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서 일반 대중들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말하자면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연결해주는 중간 필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디자인연구소에서 펴낸 책이어서 그런지 편집 형태도 독특하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나오는 각종 화려한 도면과 훌륭한 도판들도 책 ‘보는’ 즐거움을 준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미술사 서적들에 견주면 꽤 파격적이다. 책의 인상을 굳이 표현하자면 뭐랄까, 디자인 잡지에 연재된 고미술 관련 칼럼을 모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먼저 감은사탑을 다룬 1장에서 질서와 불규칙의 조화, 상승감과 안정감, 육중함과 날렵함의 공존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디자이너답게 탑의 형태를 분석하여 설명한다. 탑에 보이는 짜임새 있는 비례와 엄격한 구조를 ‘화엄’이나 ‘화쟁’사상과 연결하여 해석하였는데, 심정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치밀한 논증은 아닌 것 같다. 탑을 화엄종의 사상이나 철학만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뒷산의 ‘불규칙한 선의 곡선이 규칙적인 탑의 외형을 절묘하게 타면서 흐르고 있다’(56) 같은 문장은 개인적인 감상을 현상에 투영하여 해석한 것이다. 또 ‘감은사지에서는 탑이라는 인공물과 자연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58)는 것은 저자가 비판하던 선학들의 말투와 비슷하다.

 

달항아리 설명을 읽으며 정말 많이 놀랐는데, 내가 늘 주장하듯 '달항아리를 제대로 보려면 손으로 돌려가면서 보고, 그럴 처지가 아니면 돌면서 보라’는 정확한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독립 전시장 속의 달항아리를 한 바퀴 돌아가면서 보면 그 윤곽선이 아주 미묘하게 변화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운동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찌그러진 형태’를 굳이 피카소의 회화에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찌그러짐이 분명히 의도한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형이상학(성리학, 태극도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어느 성리학자가 태극도설에 입각해서 도공들에게 ‘둥그렇되 조금 찌그러진 항아리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는 명확한 문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일단 이것은 도공들의 창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공들은 달항아리를 만들었고, 그 중 몇몇이 수요가 있자 좀 더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수요층을 쥐락펴락까지는 아니어도 이런저런 제품들을 만들어 '제시'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요에 소속된 장인들은 잘못 구운 공납품이 되돌아오면 다시 만들어야 했고 늘 주어진 할당량을 제작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했다. 수요층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전통이나 규범에 따라 만든 것 외에는) 그저 만들어진 상품 가운데에서 ‘선택’했을 뿐이다. 19세기에 달항아리 제작 방식을 계승하여 제작된 이른바 '고구마형' 항아리는 주로 민요에서 제작되었는데, 이런 유물들의 수요자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한 뒤에야 달항아리 계열의 용도불명 백자가 지니는 가치를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달항아리에 담긴 '사상'에 대해 그 무엇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군가 금사리 항아리들을 '선택'하여 '수요'한 것까지는 분명하지만 그것에 성리학이나 태극도설 같은 ‘의미부여’까지 했는지는 증거가 없다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에 와서야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 뿐이다. 논거가 부족하면 불완전한 가설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엘리트들은 가끔 보면 자기네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미술사에서 후원자와 주문자 연구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후원자와 주문자들이 직접 도구를 들고 재료와 씨름해 가면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은 아니다.

 

3장에서 고구려 철갑옷은 공예가 아니라 디자인이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전쟁에 쓰였던 물건이므로 신속한 제작과 기능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청자가 대량 생산되었다고 해서 이것도 역시 ‘기능’이 강조되는 현대적 개념의 디자인에 부합하는 유물이라는 설명은 무리가 있다. 청자와 같은 도자공예품이 어느 정도 대량 생산 요소가 있다고는 해도 완전히 기능성만 추구하지는 않았다. 단적으로 청자의 ‘무늬’는 아무런 실용적 기능이 없다. ‘비색’이라 부르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이라는 말에 너무 논리가 묻힌 것 같은 인상이다.

 

경주 독락당과 낙수장(Falling water)을 비교하여 서술한 4장에서는 기시감이 들었다. 독락당에 관한 김봉렬 선생의 논조에다 디자이너의 감각을 덧보태 더 이상 한국 건축은 초라한 건축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선조들은 건물의 크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념적 건축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건축에서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문증들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도 건축주의 생각과 이상이 설계에 직접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이 4장을 읽으면서 이라크의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그 괴상한 건물을 건축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도, 그렇다고 역사성이 있는 것도 아닌 그 뜬금없는 외형에 참 어이가 없었는데, 과연!

 

석굴암이 국제적 양식의 건축과 조각을 보여주고 있고, 12당척을 기본으로 해서 √2의 비례가 반영된 구조라는 건 꽤 오래 전에 규명되었다. √2라니까 생각났는데, 최근에는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구도 속에도 매우 엄격한 수학적 비례가 사용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함께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석굴암의 돔 구조가 로마에서 유래한 건축이라고는 하지만 만들어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그 구축법이 독특한 팔뚝돌을 이용한 매우 독창적인 공법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본 전통 문화 교양서로서 충분한 미덕을 갖추었고 곳곳에 번뜩이는 직관과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꼭지 정도는 숨가쁘게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다만 기존 학설에서 인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들은 본문에서 논저자의 이름만 슬쩍 언급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각주나 미주로 명확한 출처표시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즘 교양서들 보면 참고 도서 생략하고 입 씻는 게 유행인 것 같은데, 각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끝에 참고 문헌을 덧붙이지 않은 것은 무척 아쉽다. 참고 문헌 챙겨 적는다고 해서 저자를 깎아내리는 독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관심 있게 읽은 독자들은 더 찾아 읽을 목록을 알려주어서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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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방법론
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외 지음 / 서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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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학계에 미술사 연구방법론 논의가 꽤 유행이었던 것 같다. 모대학에서는 미술사 방법론 연구회가 기치를 내걸고 진행되었고, 이즈음 이러한 연구 경향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나 나름 새로운 시각의 연구가 배출되기도 했다. 새롭게 시도되는 사회·경제적 연구(미술품 후원자), 문화적 연구(문학관련, 의례·의식 관련), 전기적 연구(작가 연구) 등은 기존의 양식사와 도상학(도상해석학)적 방법에다 더욱 폭넓은 시각을 더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방법론’은 결국 기존의 연구방법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적용되는 예가 없이 방법론 자체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천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이론이라는 말이다. 결국 실천하면서 이론을 적용하면 될 것을 굳이 그 이론을 규정하고 논의하는 것은 쓸모없는 시간낭비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예전에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방법론이란 건) 논문 쓰면서 그냥 하면 된다”는 얘기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희의적으로 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다. 방법을 생각하면서 방법에 대한 성찰과 비판도 가능할 터. 실제로 이 책을 보면서 새롭고 색다른 연구 방법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같은 작품을 참 여러 가지 시선과 해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형식과 도상, 사회맥락 연구, 전기적 방법까지는 그나마 익숙하고 실천도 많이 되고 있는 방법론들이지만 기호학과 정신분석은 내용도 매우 어려웠고, 내 전공 분야에서는 거의 적용하기 힘든 방법론인 듯하다. 다만 정신분석과 미술을 논한 부분에서 위니코트의 ‘전이 대상(transitinal object)’을 종교미술(장례미술)에 적용하여 해석한 부분은 꽤 참조가 되었다.

 

방법론은 결국 미술사 연구자들이 유물을 보고 해석하면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필요한 경우 새로이 계발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이 책을 페미니즘 부분까지만 읽고 방치했던 이후 일종의 미련 같은 것이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작정하고 다 읽었다. 이제 미련은 없으나 어려웠던 뒷부분은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2009년에 재판이 되었나 본데, 내가 읽은 것은 가지고 있던 초판이다.

5장 페미니즘 부분에서 소개된 그림 <Charlotte du Val d'Ognes>은 최근에 Marie-Denise Villers의 작품으로 밝혀졌다고 하니 이런 내용들이 수정되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해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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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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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면 수지가 나중에 지어달라며 이제훈에게 집 설계도를 하나 그려 준다. 이 어설픈 도면을 남주인공이 책상에 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다 꽂아두었다가 빼보는 모습이 나온다. 깨알같은 고증이다. 90년대 초중반 쯤 대학생들 책상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한 권 정도는 있었으니까. 게다가 건축학도라면 그 책에 나오는 유홍준 교수의 저 감은사지 석탑에 대한 격정적인 감상(아, 감은사 탑이여, 아, 감은사 탑이여를 되뇌이던)을 아주 인상 깊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에 어떤 책에서도 경주 촌구석 들판에 서있는 쌍탑에 대해 그 정도 파토스를 드러내며 비평한 예가 없었으니까.

 

나도 학창 시절에 이 답사기들을 읽었다. 답사 가기 전에 유홍준 교수는 뭐라고 했나 궁금해서 읽었던 거 같다. 공감되는 것도 많았고, 마치 희대의 만담가가 답사 현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듯이 써내려간 필력에 많이 놀랐다. 무엇보다도 문화사의 시각에서 유물들을 설명하고 있는 점이나, 미술사 논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에 미학적 가치들을 부여하는 태도'에 속이 다 시원했었다. 때때로 적당한 문학작품과 시가 인용되었고, 곳곳에 적절하면서도 위트 있는 비유가 사용되었다. 이런 글쓰기는 보통 내공이 없고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은 것이고,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비웃음만 살 게 뻔한 방법들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 때문인지 답사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과 환영을 받았고, 지금까지 시리즈책을 출판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나도 유홍준의 답사기를 3권까지는 가지고 있고, 나머지 책도 통독은 못했지만 조금씩은 읽어 보았다. 최근에 나온 제주도편은 나 역시 잘 모르는 곳이라서 오랜만에 구입해서 완독했다. 아마 제주도편이 내가 읽었던 유교수의 답사기 가운데 가장 재밌게 본 책일 것이다. 제주도는, 유홍준 스타일의 저술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유물들이 제주도라는 땅과 자연과 인간과 함께 어우러지며 갖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물들만 따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가치와 상징들이 저자의 능숙한 스토리텔링으로 모양을 갖추었다. 나로서는 다 읽고 나서 제주도를 다시 가고 싶었던 그런 책이었다. 답사와 기행책에 이만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가고 싶게 만드는 책"

 

그리고 올 여름 일본편 답사기가 나왔다길래 내심 궁금하던 차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걸 보고 2편만 빌려서 쭉 읽어 보았다. 일본의 교토와 나라, 오사카를 가본 게 벌써 옛날이다.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더라. 기행문으로서 일본 아스카·나라편 답사기는 또 다른 스테디셀러가 될 것이다. 아스카와 나라의 문화유산들을 이만큼 '감상'이 아닌 '해설'로 소개한 기행문은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라시대까지 일본 고대의 역사를 제법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딱딱한 역사서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그 대략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되도록 상세히 서술하여 일본의 고대사. 아스카~나라시대까지 역사를 일람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교양서로서 매우 큰 장점이다. 어차피 세세한 내용들은 전문서나 논문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웬만한 교양인들의 지적 허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책도 없다.

다른 답사기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글쓴이는 아스카와 나라의 문화유산들의 겉모습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들을 담고 있는 지리와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서 건축과 미술품을 설명하고, 나아가 문학과 인간을 이야기하며, 오다가다 지나는 자연까지 탐미한다. 마치 작정하고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장소를 보고 인간을 본다. 학술적인 글에서는 쓰기 힘든 심미적인 감상이 적극 쓰여졌고 지루해질 때쯤이면 흥미로운 야사나 개인적인 여담을 가미하였다. 이런 매력적인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솔직히 눌변에 글도 빨리 잘 못쓰는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러워 죽겠다.

 

저자는 글 속에서 걸핏하면 미술사학자, 미술사가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미학과(학부)와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거 같다. 유물과 예술을 보는 그의 시각은 미술사학자라기보다는 미학자나 철학자에 가까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자의 책에서 작품의 치밀하고 정교한 분석보다는 직관적, 심미적, 문화사적, 사상적 해석이 더 자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똑같은 설명을 해도 지루하지가 않고 금방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있어 보이는' 문체에 쉽사리 경도되면서 비판 정신이 수그러드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전공자들이야 빠순이가 아니니까 너무 나간 이야기나 헛점들을 잡아내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듯하다.

기본적으로 좋은 책이다. 정말 거의 다 좋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새삼 우리 자신을 다시 보게 해주었고, 일본도 물론 다시 보게 해 준다. 하지만 옥의 티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아스카 지역의 <선악의 이면석> 등 돌조각과 연관시켜볼 만한 게 없다고 하는데(109)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석상이 아스카 지역의 돌조각들과 유사하다고 일본인 스스로 지적한 바가 있다(가종수·기무라시게노부, 『한국석상의 원류를 찾아서』, 2011). 또 일본과 한국의 정원을 비교하며 이야기한 부분에서 우리더러 좀 '정리하면서' 살자고 권고하는 건(182) 괜한 오지랖이다. 한국인은 한국인답게 살다가 죽으면 된다. 이른바 '막사발'을 일본인들이 '다완'으로 재발견하여 숭배해 마지않는 건 참 재미있는 현상이긴 하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만들어서 썼다. 그리고 그것을 '버렸다' 그네들은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완들은 스님들이 썼던 그릇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는 이런 행태야말로 진정한 선승의 태도 아닌가. 일본인들은 그릇에 이름 붙이고 의미부여하기에 급급했다면(그릇 하나와 성을 바꿨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인들은 한낱 물건인 것에 초연했을 뿐이다.

<몽유도원도> 설명에서는 이상한 연극이론을 갖다 붙이던데(198),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몽유도원도는 두루마리 형태로 (오른쪽부터) 펼쳐 보는 그림이다. 돌돌 감겨 있던 두루마리를 펼치기 시작하면 '몽유도원도'라는 안평대군의 글씨와 찬문이 나오고 이어 역동적인 기암괴석 한 가운데 도원이 그려진 장면이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안평대군이 꾼 꿈을 화원 안견이 그림으로 그릴 때 시간순으로 그린다면 오른쪽에 속세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먼저 그리고 맨 왼쪽에 도원이 그려져야 한다. 이걸 반대로 도원을 먼저 오른쪽에 그린 것은 안견이 그림을 펴자마자 이야기의 절정이자 핵심 부분이 나타나기를 의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와 그림은 다른 것이다. 이야기를 시각으로 구현해 낼 때 화가의 응용력과 창의력은 이렇게 발현된다. <몽유도원도> 화면 구성에 굳이 도망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잡히게 하라는 연출 이론을 적용하는 건 매우 이상하다. 한번에 보는 그림이 아니라 두루마리로 펼치면서 보는 그림이다.

흥복사 팔부중상 설명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이라는 해설은 이제는 촌스럽고 너무 관습적인 설명이다(224). 불교에 나오는 호법신들의 범위가 너무 넓고 막연하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수호들을 한다는 건가? 팔부중상과 제자들과 보살들이 모두 등장하는 장면이 누군가로부터 불법을 수호해야만 하는 장면인가? 그렇다고 이들이 경전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인상이 험악하고 무기라도 잡고 있다고 해도 다 호법신은 아니다. 합장하고 기도하고, 깨달음에 희열하고, 눈 감고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으로 표현되어도 갑옷 하나만 입으면 무조건 수호신인가? 

 

성급하고 근거가 없는 판단과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지 못한 서술들은 앞으로 보완을 더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읽어서는 안되는 책은 아니다. 몇몇 오탈자는 편집자와 교정자의 실수니까 그냥 넘어가자. 책을 서둘러 만들었나 보다.

 

나머지 일본편 답사기도 어서 찾아 읽어야겠다.

방사능 화염을 내뿜는 고질라가 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가보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2015. 2. 20. 덧붙임.

위에 아스카 지역 '선악의 이면석'을 한 일본인이 미륵사지 석상과 비교한 바가 있다고 했는데, 최근 이 미륵사지 석상은 절 건립 당시에 만든 것이 아니라 후대에 제작한 것임을 밝힌 논문이 발표되었다. 따라서 아스카 석상과 미륵사지 석상의 영향 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이들의 정확한 조성연대에 관한 사실부터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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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한국불교
이이화 지음 / 역사비평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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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김영태 선생의 <한국 불교사>를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강의 노트식 맥락 없는 정보의 나열이었던 탓도 있겠지만(의미없는 스님들의 저작 나열 같은) 역사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고, 그 시대 사상과 문화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책에서도 느끼는 바지만 이이화 선생은 민중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애정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만민의 평등과 민중들의 복지와 이익을 설파한 스님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불교사 속 인물들의 '간판'만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처세와 신념, 사상까지 이야기하기 때문에 불교라는 종교의 흐름을 통해 우리 역사를 한 번 더 훑어보는 듯했다.

저자가 사상사에 집중하지 않고 역사적 실체에 치중했다고는 하지만 필요한 곳에서는 사상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했다.

 

불교 승려나 신봉자라고 해서 모두 옳고 신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남들은 다 욕하고 저평가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얕잡아 보거나 그 가치를 비하하지 않았다.

또 남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인물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감싸주지 않는다.

비판할 부분은 가차없이 비판하고 위대한 것은 아낌없이 위대하다고 말해야 한다.

가치와 한계를 다 말하는 것. 이것은 지식인이라면 늘 가슴에 신조로 삼고 있어야 하니까.

 

승려들은 중생과 떨어져서 수행을 하거나 국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어용승려로 활약하기도 했다.

꽤 많은 중들이 어용승려였다. 여기서 '어용'이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스님들은 시대의 큰 스승 역할을 했고, 국가에 정치적으로 많은 기여도 했기에.

가진 자들의 이익과 극락왕생만을 말하지 않고(물론 없잖아 그런 예도 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민중들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과 평등을 주장해 온 것이 불교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일제 시대에 친일행위를 한 경우가 어용 승려의 나쁜 예일 것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권상로, 방한암은 친일 승려였으며, 송만공, 한용운은 끝까지 자존을 지킨 승려였다고 한다.

 

컴퓨터로 책 내용을 입력하고 있다.

제대로 정리하려면 인물과 사건 위주로 노트정리도 필요하다.

일전에 훑어만 봤던 <조계종사>도 다시 읽어야겠다.

 

머리가 나쁘니 손발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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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운동 주춧돌 5
이이화 지음, 김태현 그림 / 사파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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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배웠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동학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왜일까?

 

1894년 가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을 길이란 걸 뻔히 알고서도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생각은 누구보다도 앞서 있었고, 또 정당했다.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 기록인 <전봉준 공초>가 지금도 서울대 규장각에 남아있다고 한다.

거기 나오는 전봉준의 말은 동학농민운동이 왜 일어났는지를, 왜 정당하고 정의로운 운동인지를 알려준다.

 

동학은 과거 잘못된 세상을 고쳐 다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나선 것이라, 민중에 해독되는 탐관오리를 버히고 일반 인민이 평등적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복(私腹)을 채우고 음탕하고 삿된 일에 소비하는 국세와 공전을 거두어 의거에 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조상의 뼈다귀를 우려 행악(行惡)을 하고 여러 사람의 피땀을 긁어 제 몸을 살찌우는 자를 없애 버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람으로서 사람을 매매해 귀천이 있게 하고 공토로서 사토를 만들어 빈부가 있게 하는 것은 인도상 원리에 위반이라, 이것을 고치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며 악한 정부를 고쳐 선한 정부를 만들고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냐? 자국의 백성을 쳐 없애기 위해 외적을 불러들였나니 너희들 죄가 가장 중죄한지라. 도리어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냐? (298-299)

 

하나 더 놀라웠던 건 동학군이 행동 강령에 따라 백성들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않았던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랬다고 자화자찬한 게 아니라 타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취재한 일본 기자가 <동경일일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동학당은 술과 여자를 탐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등의 규율이 있고, 당원들은 그것을 잘 지켜 조금도 농민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왜 농민군으로 참여했냐고 묻는 자가 있으면, 정부의 잘못된 정치를 고치고 조선에 있는 외국인을 추방해 국민의 만복을 도모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한 말이 항상 실현되었다. 일찍이 고부에서 전주로 진격할 때 구경꾼들이 산을 이루어 논밭 도로들이 다 밟혀 엉망이 되는 것을 보고 단지 농작물을 상하게 하는 것을 경계해 공포를 쏘아 논밭에서 물러나게 한 것도 그 한 보기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는 잡다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에 맞는 현금을 주고 사서 상업적으로도 약간의 이익을 주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하여 백성들 사이에서는 자못 평판이 좋다. 농민군의 이런 행동 원칙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114-115)

 

전봉준이 훗날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 될 충청감사 박제순에게 보낸 편지는 너무 안타깝다.

씨알도 안 먹힐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농민군의 처지는 완전하고 철저한 비극으로 치닫는 최적의 조건 아니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람은 기강이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다. 거짓말하고 마음을 속이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일본의 도둑들이 군대를 움직여 우리 임금을 핍박하고 우리 백성을 걱정스럽게 하니 어찌 참는단 말인가? 임진왜란의 원수를 초야(시골)에 있는 필부나 어린애까지도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기억하는데, 하물며 각하는 조정의 녹을 먹는 충신이니 우리 무지렁이들보다 몇 배 더하지 않겠는가?

지금 조정 대신들은 망령되고 구차하게 자기의 안전에만 빠져서 위로는 군부를 협박하고 아래로는 인민을 속여 일본 군대와 손을 잡아 삼남의 인민들에게 원한을 불러오고 임금의 군사를 움직여 옛 임금의 힘없는 백성을 해치려 하니 진실로 무슨 의도이며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지극히 어렵겠지만 일편단심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쓸어 조선 500년의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다. 각하는 크게 뉘우쳐서 대의를 위해 함께 죽는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나. (209-210)

 

어떻든지 박제순은 죽기는 싫었겠지.

어떻게 된 게 무지렁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고 하고, 조정의 대신이란 자는 제 배때지 불리려 나라까지 팔아 먹는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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