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산
낸 셰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에 대해 늘 가지고 있던 경외심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자주 가고, 탐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 읽고 있는 와중에도, 완독하고 나서도 공존하는 산으로, 지배하는 산으로, 겸손하게 하는 산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름답고 두려워서 마음이 벅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했던 큰 고민이 있었다.


일본 망가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우리집 녀석은 그 작품을 보지 않았음에도 영화의 OST를,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짱구, 도라에몽 등 고전들에도 욕심을 내고 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게 아닌가!국내 아이돌에도 무관심하던 녀석이 갑자기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참 먼나라인 일본. 노 재팬 불매운동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이러한 관심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변화는 친구들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반 친구들과 유튜브를 통해 관련 컨텐츠를 많이 접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아, 이게 맞나. 일본 문화가 개방된 것이 1998년이었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흐르는 넓고도 깊은 과거사의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거늘,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빠른 속도로 빠져드는 녀석의 관심에 당황했었다. 아니 얘네는 뭘 제대로 알고나 이러는 걸까? 이거 괜찮나? 아니 그러는 나는 어떤데? 유니클로는 불매하면서 닌텐도 게임은 하고있는 나는? 애니와 일본 작가의 책을 보고있는 나는?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런 와중에 마침 제안을 받았으니... 일본 대학생들이 세미나를 통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직접 쓴 한일 역사에 대한 책이라지뭔가! 한국엔 반일 정서가 일본에는 반한 정서가 암암리에 흐르고 있다고 기사에 등장하는 가운데 과연 그들은 무어라 하는지 궁금했다. 문화와 역사 사이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대학생들은 괜찮을까, 부모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사회에서 지탄받지는 않았을까 그들의 안위가 염려되는 가운데...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의 가토 게이키 교수의 세미나 팀이 썼다. 읽어 내려갈수록 녀석과 꼭 이 책을 공유하고 싶단 생각을 했더랬다. 나도 이렇게까지 정리된 위안부, 노동착취,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몰랐다. 그저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일본 애니와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녀석이 제대로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궁금해지는 마음. 


이런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학생들의 계기도 이 책에 나오는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참여한 학생들도 있지만 세미나에서 운영하는 한국방문 프로그램의 금액이 저렴해서... 인 이유도 있다! ㅋㅋ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의 주제가 무려 "위안부" 라능.... 그리고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이들은 이 방문과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 토론을 통해 위안부를 알고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우와. 부끄럽지만 나도 잘 몰랐던 역사와 일본이 한국에 끼친 영향들을 자세히 알게됐다. 더불어 일본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워온 것들이 반일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배워왔으니. 게다가 이 대학생들이 부모=기성세대와 겪는 갈등은 지금 우리집 녀석과 나(=기성세대)의 갈등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강한 현타가 왔더랬다. 녀석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려 우리는 일본문화 금지세대였음을... 일본 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반발심이 아직도 내재되어있음을 알았으니, 녀석이 일본문화사랑에 손사래치는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단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녀석은 이제 식민통치시절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문화에 대해 타국가의 문화 대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냥 재밌고, 좋으면 좋다 말하는 것. 녀석에게도 문화는 별개로 읽히는 것이며 영웅이나 봉오동 전투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가깝게 역사를 대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제대로 아는 것의 힘은 비단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닌 듯 싶다. 우리가 겪은 일은 두 나라가 각각 다르게 겪은 일이 아니라 두 나라가 같이 겪은 하나의 역사였다.


이 책을 쓴 일본 대학생들의 고민 시작점이 나와 같음에, 그리하여 끝점도 같을 수 있음에 희망을 가져본다. 기성 세대들이 물러나고 나면 우리 사이의 깊고도 깊은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이상하고 요상한 상태말고, 아프더라도 제대로 마주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 역시 우리 이야기를 우선 제대로 알고,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액션을 한다면 이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에 출간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문화와 역사 정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혐오와 반대를 넘어 제대로 알고 인정하고 사죄하여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한국어로 번역되며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일본 젊은이들이 던지는 이 질문들은 정작 우리 역사에 무지한 한국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까.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쓴 생각입니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 한국에 호감이 생긴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 중에는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과 다시 사이가 좋아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한‘이든 ‘친한‘이든 일본인이 한국인과 역사 인식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통된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한국인과 일본인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역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친한‘이었던 사람이 감자기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은 그 틈새에 있다. - P29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상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발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가역적 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 P49

일본 정부는 패전 후에도 여전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내비치지 않고 있으며, 그 사이에 피해자들은 인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고 있다. 자결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일본이 만들어낸 식민지 조선의 사회 분열은, 현재도 남북분단이라는 형태로 조선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23~126쪽 참조).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한류스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호소하는 행위는 우리에게도 아주 의미있는 일 아닐까. 반일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일단 멈취 서서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보자. 그렇게 하면 좋아하는 사람의 팬을 그만둘 필요도, 못 본 척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P83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P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 소설을 두어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읽을 때마다 참 아프네요. 이 책, 많이 아픕니다. 작가님은 이 시절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그 시절의 감정들, 생각들, 의문들을 이리 끄집어다 쓰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도 신기합니다. 읽을 때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 - 세상의 불합리에 대한 반항심과 의구심들이 다시 소환되네요. 새삼 이상해 보이던 어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던 그 시절의 프레임이 생각납니다. 아마, 녀석도 곧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에 대해 엄마는 왜... 하게 되려나, 싶어 관습적으로 했던 말들과 습관들을 점검해야겠다, 는 생각도 들고요.

원제는 "외계인의 비밀" 이었다고 합니다.

다 읽고 나니 납득이 가는 제목이에요. #또래집단 이라는 것이 만들어 내는 정상과 비정상, 평범과 특별, 인기인과 왕따... 극명한 이분법의 기준이 존재하던 그 시절의 그 교실에서 분명 한번은 차라리 딱 부러지게 모습마저 외계인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실제 출간되는 책의 제목은 #율의시선 입니다.

주인공 이름은 안율. 빛날 율자를 쓰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아버지는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랑 둘이 삽니다. 율이는 아버지를 보낸 다음부터 늘 발 끝에 시선을 두고 살죠. 사람의 눈을 마주보지 않고, 발끝만 봅니다.


가제본 책과 함께 온 작가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려운 일이 많지만 그중 제가 제일 꺼리는 건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대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폭발하는 상념을 견디지 못하고 때론 먼저 눈을 피해버리곤 합니다.

율의 시선은 곧 작가님의 시선이기도 하다고, 작가님은 편지에 쓰셨네요. 이 책을 쓰면서 성장통을 단디 겪던 그 시절을 다시 다 되짚으셨을까요?

아버지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을 율이의 시선 변화는 외상 후 트라우마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습니다. 율이는 그 병명을 "댁의 아드님은 사회 부적응자" 라고 해석하고 이런 말을 덤덤하게 엄마에게 말하는 무감감하고 무정한 의사를 "인간적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원래 인간은 그런것인데, 엄마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슬픈 얼굴을 한다고 이상해 하죠. 언제는 강하고, 이성적으로 살라고 하면서 정말 그렇게 살면 슬퍼하는 엄마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에 대한 율이의 생각들을 읽을 때마다 뜨끔 모먼트였어요. 나도 얼마나 모순적인 말들을 했을까, 가끔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세상의 부조리들을 물어올 때마다 수긍도 반박도 못하는 상태로 어버버하는데, 이제 이 질문들이 쏟아지겠구나 싶어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율이의 시선을 따라 율이의 세상을 그려냅니다. 까칠하고 예민하다, 고 세간이 평가할 율이의 시선들은 그 시절의 저를 소환했네요. 교실이 이랬지, 선생님과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디고 제멋대로이며 그럴듯한 모순의 말을 늘어놓았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들이 명확해졌습니다. 무뎌지지 않은 날것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평가하기 시작한 녀석에게 원래 그래, 라는 식상한 말들을 해선 안된다는 각성의 책이 되어 주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의 엄마의 반만큼은 실천해야 된다는 반성의 책이 되었네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했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또래 집단, 기준 집단이 있었던 시절. 평균에 휘둘리던 시절이어서 그랬었던 게지요...? 성장도, 성적도, 친구도, 사회성도 모든 게 평균인지, 미달인지, 월등한지 진단되고, 수치화되고, 판단되고, 공개되었던 날들. 비밀은 많았으나 어떻게든 공개 되었고, 수군거림이 늘 있었고, 평균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액션이 취해졌던 그 시절. 내가 나 자신으로 판단되지 못하고 기준집단에 비롯하여 평가되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었구나,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각 반에는 인기인과 왕따가 생기고 인기인 주변에는 눈치 빠른 친구들이 붙고, 인기인의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사는 그 외 학생들이 있고요.


으악, 다시 쓰면서도 정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입니다.그러나 거쳐야 할 나날들이겠지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침묵하고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해자가 되었던 날들. 내 의견에 솔직하기 보다 그냥 대세를 따르고 묻혀가는 회색분자가 되는 것이 더 쉬웠던 날들. 그러면서 오는 자괴감과 무력감은 그 감정들이 뭔지도 모른 채 쌓여만 가서 답답해지기만 했던 그 시절이 아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율이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회 부적응자라는 말을 듣지만 사회 생활을 못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행동에서 나에 대한 비하와 우월한 마음을 읽지만 싸움을 하는 대신 아첨을 하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죠. 게임과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안전하게 졸업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친구 관계를 유지합니다. 아이고, 이 정도면 너무 잘하는 것 아닙니까? 비록, 스스로는 너무 괴로웁지만 말입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거지 뭐, 자조적으로 말하게 되겠지만요.


율이는 인간에 대해, 사회 생활에 대해, 어른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견해들을요. 그리고 그것이 맞는가 자문자답의 시간을 거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답들이 변해갑니다. key man 이도해, 학급 인기인인 서진욱, 서진욱에게 고백했다 차인 김지민 등 율이의 주변인들로 율이는 성장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중학교 3학년을 보내고 대망의 졸업식을 하게 되지요. 울컥하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율이의 성장, 그리고 율이와 함께 변화를 겪는 친구들, 엄마까지도 모두 성장하는 1년이 책장을 덮고 나면 참 소중해집니다. 곧 중학생이 될 아이에게,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너 만큼은 너 자신을 떠나지마.

너는 의미있는 사람이야.

170



*출판사에서 가제본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언제부터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게 된 걸까.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불편했다.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신경 쓰였다. 그러다 보니 불쾌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멋대로 상상하게 되었다. 상상 속에서 그들은 대체로 내게 상처를 입혔다. 불쾌가 공포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선이 일그러진 내 속을 구석구석 관통하는 느낌. 관찰당하고 있디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24

내가 들은 건 여기까지. 나머지는 수업 종이 쳐 버려서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 있었다. 언뜻 마주친 1반 애의 눈빛은 아주 기묘했다. 자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향한 의구심과 공포심을 결들인 눈빛. 그래서 알게 되었다.

이도해는 단순한 왕따가 아니다

이도해는 비정상이다.
- P38

이상한 사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도해는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애는 처음이었다.

"나보단 네가 더 이상한데.

"아니. 네 쪽이 휠씬 더 이상해. 나랑 말을 섞는 것부터 그래. 왕따랑 있으면 좋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거잖아. 비정상적이야.

비정상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뜻이 아닌데도 이도해는 그 단어를 꼭 칭찬처럼 내밸었다.
- P44

"네 기준에서는 어때?"

"내 기준?"

"그래, 너만의 기준."

이도해는 마치 내가 정상적인 기준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말했다. 세상은 늘 내게 평균치의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이도해는 손쉽게 내게서 평균의 잣대를 빼앗았다. 그러자 검열되지 않은 생각들이 일제히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날것 그대로의 상태로 정상‘이라는 수문을 넘어, 더 이상 쏟아지는 생각을 수용할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도해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뒤흔들었다. 적어도 나는 이도해 앞에서 매일 흔들렸으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타인에게 내 속을 내비쳤다. 암울하고 비뚤어진 비정상을. - P80

너 만큼은 너 자신을 떠나지마.

너는 의미있는 사람이야.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츄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암실문고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윤석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조리 소장하고 싶은 암실문고 시리즈 중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발튀스 조합을 만났다. 릴케는 이름만 알고, 발튀스는 초면. 무지한 게 부끄럽지만, 앎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물성이 참말 좋아서 고양이 러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다. 겉커버, 속커버 두가지인데 둘 다 내 취향. 겉 커버는 갱지 느낌, 속커버는 터콰이즈!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커버가 단단하여 만졌을 때 느낌이 좋다. 보관하기도 좋을 듯.



암실 문고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입니다.


이 책은 어떤 어둠을 담아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발튀스가 13세에 출간한 이 책은 40편의 고양이 그림을 담고 있다. 10살에 만난 고양이 미추와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년의 그림들. 실제 그림 사이즈 그대로 만들었다고 하니, 참 작은 종이에 그려낸 그림들이고 검은색만 사용한 드로잉인데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훌륭하다, 고 감탄했다! 재능을 알아볼 줄 아는 릴케와 한 집에서 살았던 것이 발튀스의 행운이렸다. 게다가 릴케가 쓴 서문을 읽고 - 그림을 보고 - 이현아님의 해설을 읽고 난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림을 다시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매직. 발튀스의 인생에서 유년기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왜 그렇게 그리워하는 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암실 문고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발튀스의 어둠은 상대적으로 빛이 많이 드는 어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고양이 미추는 결국 자유를 찾아 떠나는데, 발튀스가 느낀 상실감은 당연히 어마어마할 터...! 마지막 장면이 짠한 발튀스 앞에 닥친 이 사태에 대해 릴케는 상실과 소유로 풀어낸다. 상실은 소유의 끝이며 소유를 확인시켜주는 제 2의 소유일 뿐이라고... 이렇게 상실과 소유를 가르쳐 줄 어른이 가까운 곁에 있다는 것 역시도 발튀스의 행운이지 싶었다. 이현아 님의 말처럼.


발튀스는 유년기에 겪은 상실을 기록하고 애도할 수 있는 드문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드로잉집의 서문을 쓴 릴케는 발튀스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발튀스는 그의 꿈에 머물 것이고, 모든 현실을 자신의 창조적 필요에 맞게 변형할 겁니다" 그의 유년은 상실의 까만 심연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111-112)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 유년의 기억. 충만하게 보낸 유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발튀스. 릴케와 함께한 그의 유년시절이 어땠을지, 이 책을 보며 더듬더듬 그려본다. 릴케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피붙이도 아닌 발튀스 형제가 학업을 이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지어 발튀스에게는 인생의 문을 열어준 사람. 이 두 예술가의 만남과 성장이 따뜻했다. 


1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아가며 고된 삶을 살았으나 언제나 함께했던 고양이 미추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책, 더불어 릴케의 서문으로 더 인상 깊었던 책이었다. 발튀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지만... ^^;; 이 책만큼은, 상실에 대해 따뜻하고 소년스럽게 이야기하는 발튀스를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집사님들께, 고양이 러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도서를제공받아작성되었습니다

인생+고양이

장담하건대, 이 둘의 합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나쁜 일을 당하거나,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결국엔 늙고 쇠락한다고 가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양이를 잃어버린다‘라는 표현은 절대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고양이를, 살아있는 생명체를, 하나의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의 생명체를 잃어 버리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

그건 바로 죽음이에요 - P19

발튀스는 유년기에 겪은 상실을 기록하고 애도할 수 있는 드문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드로잉집의 서문을 쓴 릴케는 발튀스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발튀스는 그의 꿈에 머물 것이고, 모든 현실을 자신의 창조적 필요에 맞게 변형할 겁니다" 그의 유년은 상실의 까만 심연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 P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계속 써주세요 작가님 제가 열심히 열렬히 읽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