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나씽 - 북아일랜드의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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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어느날 오후에

 그이가 돌아왔지만

 한쪽 소매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네...'


여기에는 세 부류가 등장한다. 정치인, 군인, 민간인.

군인들은 자신들이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고 그 폭력을 전쟁과 군인이라는 등식을 통해 정당화하려 하였다.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의 역사는 길고 오래 되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들 집단은 영국이나 아일랜드 내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영국은 이들을 군인이 아니라 테러범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영국은 자신의 영토에서 벌어진 소란으로 치부한 반면 IRA는 찟겨진 일부 영토의 본국 귀환이라는 식민지 독립이라는 명분이었다. 이런 명분적인 것은 마이클 콜린스가 영국과 투쟁을 벌일때도 해결되지 못한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영국과 북아일랜드 전쟁에서 가장 이해 못할 집단이었다. 이들은 폭력을 조장한 일면이 있었다. 북아일랜드의 정치가들은 폭력이 이탈자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보았다. 반면 영국은 이들의 폭력이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 가를 증명하는 현실이라고 포장하였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자신들은 폭력을 증오하며 이 땅에서 폭력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 정치 모리배들의 이런 이중성은 북아일랜드를 더욱더 복잡하고 잔인한 투쟁의 장으로 몰아갔다. 정치적으로는 영국과 신페인당이 군사적으로는 영국군과 IRA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서로를 증오하고 스스로를 배신하며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된데는 북아일랜드 사태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이기심이 큰 역할을 하였다. 

가장 불쌍한 집단은 민간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였다. 아니 이들은 종교의 담장을 쌓으면서 스스로 고립되어 갔던 것이다. 이 고립 속에서 민간인들은 정치와 폭력의 가정 큰 희생자가 되었다. 이들의 희생은 어쩌면 불필요한 것이었음에도 양측의 본보기라는 면에서 가혹할 정도로 잔인하게 집행되었다. 이런 공포 속에서 모순적이게도 실종자는 있지만 희생자는 없다는 정치적 답변이 나왔던 것이다. 후일 영국과 신페인당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을 때도 IRA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타협이 민간인들의 희생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무기력하게 하였던 것이다. 


'착한 사람은 천국밖에 갈 수 없지만,

 나쁜 사람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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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맹 독본
서동진.박소현 엮음 / 현실문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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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수카르노, 네루, 주은래, 낫세르가 주축이 되어 미국도 소련도 아닌 세계를 대표하는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민족자결의 정신을 주창하였다. 

이들의 가정 큰 성과는 1971년 10월 25일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던 국가가 중화민국을 대신해 유엔회원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것은 제3세계의 커다란 승리의 한 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반민족자결주의자를 인정한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비동맹이란 커다란 대의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비동맹은 시작부터 커다란 함정이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앞자리의 학생들은 공부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뒷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지금의 내가 결코 틀린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비동맹도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절대축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이들은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생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몸부림을 장엄하게 설명하고 있다. 

1955년 한국은 사실상 이 회담에 초청을 받아야 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과 북은 초청을 받지 못했다. 대신 북한은 반둥회의 10주년이 되는 1965년 초청을 받아 한국을 외교적인 빈곤함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김일성은 '조선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 남조선 혁명에 관하여'라는 연설을 함으로써 한국 외교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당시 북한은 한국보다 GNP가 더 높았고 제3세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과연 이 지구촌에서 '비동맹'이 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16세기에 최초로 유럽에 나타난 매독이 전세계로 퍼지는 데는 대략 2년의 시간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빨랐던 셈이다. 하지만 에이즈가 처음 나타났을 때 콩고에서 스웨덴의 촌마을까지 퍼지는데는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동맹이란 어찌 보면 유토피아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공평성이다. 우리는 색깔로 혹은 빈부의 차이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 세계의 외침은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면서 모두가 가야만 할 저 먼 곳일 수 있다. 고대인들은 세상을 피라미드처럼 보았다. 피라미드의 정점은 세상의 끝이었고 그 위에 별들의 세계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정점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정점에서 다시 내려와야 하는 피라미드의 공식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비동맹은 이런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영웅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세상의 끝인 '세디르'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고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점은 데이야르 데스탱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천국'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곳은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했기에 너무도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이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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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와 향기 - 후각으로 본 근대 사회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주나미 옮김 / 오롯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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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동물적이고 후진적이다. 시각은 미술을 촉각은 조각을 청각은 음악을 미각은 식도락을 만들었지만 후각은 그 자체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냄새는 반문명적이라는 등식과 등가관계이다. 이는 서양사람들이 데오도란트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동물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방금 사용한 화장실에 다른 사람이 바로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꺼려한다. 그것은 자신의 냄새를 다른 사람이 맡는다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냄새는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좋은 것이 아니라는 무의식이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아침에 만원 버스를 타던 시절, 버스 차장이 문을 열고 닫으며 버스표로 요금을 받던 그 시절. 겨울철 버스속의 우리들의 냄새는 재래식 변기 냄새였다. 아무리 잘 차려입은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그 꿉꿉하고 무거웠던 재래식 화장실 냄새는 우리 모두를 평등한 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아니 냄새를 맡는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모두에게서 나는 냄새였기에. 그러나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면서 이 냄새는 점차 사라졌고, 그런 냄새가 나면 사람들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경험한 것처럼 그 냄새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변해가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향기로 변해가는 가를 보여준다. 인간에게 원초적인 냄새는 삶의 냄새와 죽음의 냄새뿐이었다. 삶의 냄새는 향기로운 것이고 죽음의 냄새는 부패한 것이었다. 이런 분류가 세분화되면서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는 확장되게 된다. 이것은 도시의 냄새와 시골의 냄새로 발전하면서 냄새의 억제와 냄새의 발산의 문제로까지 연장된다. 인간은 문명화되면 될수록 냄새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일반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고 농촌에서는 인분이 사용되던 토지에 화학비료가 뿌려진다. 이것은 냄새라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문명이라는 등식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냄새를 억제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였다. 아마도 향수는 자신의 냄새를 배제하기 위해 다른 냄새를 나게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유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 세상 존재하는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냄새라는 원초적인 것을 과학을 통해 극복하려 한 인간의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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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동물지 - 서양 중세의 동물 상징
작가미상, 주나미 옮김 / 오롯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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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박물학자 알드로반디Ulisse Aldrovandi는 '뱀과 용의 역사'를 썼다. 그는 당시 최고의 지식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뱀은 그렇다치고 용에 대해 썼다는 것은 현대의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정말로 용에 대해 알고 썼던 것일까?  이 책에서 용을 기술한 내용을 보면 당시에 용이 실재했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우리는 중세의 알드로반디 보다 뱀과 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용은 이들이 우리에게 주입했던 데자뷰가 아닌지.

중세의 동물지는 우리의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중세인들이 생각했던 주변의 동물들이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주변의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다. 

중세인들은 동물을 볼 때 생물학적인 모습을 본것이 아니다. 그 형상 이면에 새겨진 상징성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우리들이 생물을 볼 때 보는 시각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우리는 동물의 구분을 과학적인 체계 속에서 이해한다. 종, 속, 강, 아, 목같은 분류단계뿐 아니라 해부학적인 동물의 특성과 몸의 형태에 나타난 기능을 통해 그 동물의 과학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동물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생물을 바라볼 때의 관점은 이중적이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기능을 이해는 하지만 그 행동의 본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동물을 소개하면서 중세의 가장 중심적인 해석인 어원론을 가지고 해석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까치pice는 시인poetice와 연관시켜 해설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현대의 과학적 방식으로 볼 때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조용히 관조하며 바라보면 또 다른 동물의 모습을 보게된다. 

동물을 통해 중세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 혹은 상징을 우리도 공유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동물이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동물은 일생을 통해 몇 종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주 많은 동물의 이름과 형태를 알고 있다. 왜?

우리는 인간을 동물과 자주 비유한다. 개, 여우, 늑대, 뱀, 곰 등등. 왜 우리는 이렇게 동물과 밀접하게 얽혀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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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문화 - B.C 3,000년경~ B.C 323년 CLC 고대 역사 시리즈
알프레드 J.허트 외 2인 편집, 신득일.김백석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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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近東이라는 단어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단어가 중동中東이다.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이면서 아주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중동이라고 할 때는 왠지모르게 혼란을 떠올린다. 폭탄과 테러, 혼미한 정치와 같은 그런것... 하지만 근동이라고 할때면 극동極東을 떠올리게 된다. 극동이야 서양의 대척점이기에 이해가 되지만 근동은 동양과 어느정도 가까운 것일까? 오히려 근동은 서양에 가까운 그런 용어가 아닐까?

이 책은 매우 그리스도교적인 책이다. 여기서 취급하는 주제는 모두 성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언급된 중요한 이 지역의 민족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으로 시작하여 이집트인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내용은 신학적이면서 고고학적이고 그러면서 인문학적이다. 

특히 여기서 암몬, 모압, 에돔과 같은 성경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종족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를 담은 내용은 정말로 귀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트란스 요르단이다. 특히 트란스 요르단의 경우는 재미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아주 희귀한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는 근동이나 중동이라고 하면 언제나 중심에 이스라엘을 놓고 주변을 바라본다. 하지만 역사에서 이스라엘도 이 지역의 주변인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 신화 속에서 이스라엘을 해석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동등한 소유자인 다른 민족들을 소흘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란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냉정하면서 한계를 지니는 해석과 유사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역사의 패배자나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졌던 민족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어 가장 오래된 문헌이 구약성경 속의 내용과 고고학적 내용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중심의 성경의 역사가 이 주변 지역의 역사를 얼마나 오염(?) 시켰는지 알게된다. 사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였다. 그럼에도 종교적 역사관인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지역의 승리자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런 편협된 시각을 이 책은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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