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2월호 제6호

 

[불온한 서재]

승리를 위한 불온한 조직화를 시작하자

노동운동의 혁신과 조직화/ 루스 밀크먼 외/ 노동의지평 / 201312/ 15,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현재와의 단절은 불온하다

꼭지 제목이 불온한 서재이다 보니, 책을 선정할 때 어떤 책이 불온한 지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불온하다는 것은 온건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 기준도 애매모호할 뿐더러,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불온한 주제가 변하기도 한다. 기후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탈핵에너지전환은 점차 불온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고, ‘평화북한문제는 여전히 불온의 온상이다.

불온하다는 의미를 돌려 생각해보면, 현재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 곧 출간될 녹색평론에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가 2008년 자국 헌법에 명시한 부엔 비비르’(buen vivir·자연친화적인 좋은 삶이란 뜻을 담은 스페인어)에 관한 글이 실린다고 한다. 노동당의 강령은 우리 시대를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 지구생태계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가 그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단절의 중심 개념으로서 부엔 비비르야말로 불온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 위기는 주체의 위기가 뒷받침하고 있어서 더욱 심각한 것은 아닐까? ‘단절을 결단한 주체의 위기, 주체의 부재, 주체의 미약, 주체의 부동. 우리 운동이 맞이하고 있는 오래된 위기의 근원에는 바로 이와 같은 주체의 위기가 있다. 우리 노동운동은 96~97 총파업 이후 좀처럼 사회변화의 중심세력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낮은 조직률과 적은 조합원수, 정규직 중심 조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계급 대표조직이 굳건하게 서 있지 못하고, 계급적 성과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설사 만들어지더라도 공유되지 못하는 속에서 사회운동의 중심에 계급적 쟁점이 들어서지 못하고, 계급운동의 힘이 투영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는 멕시코에서 LA로 불법이민 온 청소노동자와 SEIU(국제서비스노조) 활동가의 투쟁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에도 묘사되어 있듯이 SEIU청소노동자에게 정의를’(J4J : Justice for Janitors) 운동을 통해 대도시 지역의 저임금(이주)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화한다. 잘 알다시피 영미권 노동운동은 유럽노동운동에 비해 노사관계의 제도화 수준도 낮고 노동운동의 조직율과 단체협약 적용률도 낮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신자유주의와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위기가 심화되던 영미권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혁신을 부르짖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영미 노동운동에서 시작된 노동운동의 혁신의 중심에는 노조 조직화과제가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0년에서 2010년까지 약 30년동안 영미권 노동조합 조직률은 급속하게 낮아졌다.(뉴질랜드 69%20%, 영국 49%29%, 미국 22%13%, 호주 48%18%) 한국 역시 199018.4%에서 20109.7%로 반토막이 났다. 게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노동조합(do-nothing unionism)을 빼면 실질 조직률은 3~4% 정도에 머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영미권과 한국, 일본 등은 조직률 뿐만 아니라 낮은 협약적용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시작된 미국노동운동의 혁신노력은 노선으로서의 사회운동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의 정립과 노조 조직화의 과제로 정리되었다. 이 와중에 킴 무디, 워터만 등(사회진보연대에서 번역한 일련의 책들) 미국 노동운동의 이론가들은 남아공, 브라질 노동운동과 함께 한국의 노동운동을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모범사례로 제시하기도 했었다.

 

*사진: 19121월 메사추세츠 섬유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왼쪽), 전미 호텔레스토랑 노조(Unite HERE)의 캠페인 일어서라 호텔 노동자”(오른쪽)

 

전 세계 노동운동이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 혁신과 노조운동 재생

변화의 시작은 9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1995년 미국노총(AFL-CIO) 위원장 선거가 40년만에 이루어졌다. 노동총연맹 AFL과 산별회의 CIO가 통합한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경선을 통해 SEIU 출신인 존 스위니(John Sweeney)가 위원장에 당선된다. 전임 위원장이었던 커클랜드(Kirkland)와는 달리 존 스위니는 전면적인 조직강화와 혁신을 내걸었고,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던 SEIU의 경험에 따라 전체 예산의 30%를 조직화사업에 투여하는 등 혁신을 이끌었다. 그러나 스위니 집행부의 이러한 노력은 혁신을 이끌던 SEIU, UFCW(식품노조), UFWA(농업노동자연맹), 팀스터(Teamsters, 전미트럭운전자조합) 등의 요구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직화 방법과 속도 등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미국노총(AFL-CIO)은 역사적 분열을 하게 된다. SEIU의 앤디 스턴 위원장과 팀스터 호파 위원장(바로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호파>의 아들이 바로 그다.) 등이 주도해 만든 제2 미국노총(CtW : Change to Win, 승리를 위한 변화)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AFL-CIOCtW의 조합원 규모는 각각 약 800만 명과 650만 명 정도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이러한 조직화전략은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와 한국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재생을 꾀하는 나라의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카고에 소재한 CtW의 전략조직화센터(Strategic Organizing Center)에는 수백만 달러의 예산과 10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센터 소장은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SEIU 부위원장 톰 우드러프가 맡고 있다.

노동운동의 혁신과 조직화는 한국노동운동연구소의 기관지 <노동의지평>에 실린 각 나라 노동운동의 혁신과 조직화와 관련한 글들을 모아 낸 자료집이다.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전세계 노동운동이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있는 혁신과 노조운동 재생의 과제를 공유하면서 우리 운동의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다. 조금 길더라도 목차를 일별하자면 1. 미국 노조의 회생은 가능한가? 노동운동의 쇠퇴와 재생 / 2. 실리조합주의에서 사회운동노조주의로 / 3. 일터에서 거리까지: Unite HERELA 호텔 조직화 / 4. , 세 뿌에데: 노조의 조직화 전략과 이주노동자들 / 5. 영국: 새로운 조직화문화의 개발을 위한 TUC의 접근 / 6. 영국 노조 조직활동가들과 그들의 이야기 / 7. 캐나다 : 노조 조직화와 노조 재활성화 / 8. 프랑스의 노조 혁신: 쉬드-철도노조(SUD-Rail)의 사례 / 9. 일본: 유니온 운동의 형성과 실태 등이다. 전략조직화와 혁신을 주도한 미국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실리주의 조합주의에서 벗어나 사회노동조합주의(Social Unionism)로 노선을 정리하고 급진화된 노동운동이 정당운동의 급진화를 이끈 캐나다의 노동운동, 그리고 1995년 공공부문 투쟁을 통해 CFDT로부터 떨어져 나온 프랑스 SUD의 활동, 그리고 우리나라 청년유니온 운동 등에 영향을 끼친 일본의 유니온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새 술은 새로운 사람들이 담글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도 이제 3기에 들어섰다. 미국, 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략조직화 역시 활동가들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직률 하락을 반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 서비스 부문 조직화, 성동조선 노동조합 설립, 인천공항 비정규직 조직화, 학교 청소용역노동자 조직화, 대형마트 조직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티브로드 투쟁 등 성과가 없었던 것만도 아니다. 새로운 조합원들의 진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조합원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 문화와 활력들을 재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고, 그 이전에 새 술은 새로운 사람들이 담글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고용률 70%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우리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도 민주노총 직선제와 같은 소모적 쟁점에 주력하기보다는 전대미문의 조직률 20%를 장기적 목표로 설정하고 함께 실천하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보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저작권 문제 등으로 인해 노동운동의 혁신과 조직화는 비매품이다. 필요하신 분들은 한국노동운동연구소로 연락(070-8220-3130/sanbyoul@hanmail.net)을 하면 구할 수 있다.

 

<더 볼만한 자료>

킴 보스, 라셸 셔먼, 과두제의 철칙 깨뜨리기 : 미국 노동운동의 노조 재활성화”,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61(139)

에드문드 히어리, 멜라니 심스 등, “영국 노총의 조직화 아카데미 평가”,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62(140)

임월산, “전략조직화와 국제연대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CtW 방문기”, 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20119·10(102)

김종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전략조직화사업 진단과 향후 과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201311·12(173)

한국노동운동연구소·노동자운동연구소, <공단조직화사업 진단과 과제> 토론회자료집(201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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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
가이 스탠딩 지음, 김태호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3호 2014년10월호

[불온한서재]

위험한 계급의 성장,

프레카리아트와 접속하라!

프레카리아트/ 가이 스탠딩 / 박종철출판사 / 20146/ 30,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20147, 일본 요코하마에서는 세계 사회학회(ISA) 주최, 세계 사회학대회가 열렸다. 현재 세계 사회학회 학회장은 생산의 정치로 유명한 마이클 뷰러워이(Michael Burawoy) 교수이다. 그는 노동자들은 저항과 동의의 양면적 태도로 생산의 정치내에서 노동과정의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하면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로 인한 탈숙련화 테제를 주장했던 해리 브레이버만의 1974년 기념비적 저작 노동과 독점자본을 논박한 바 있다. 사회학회 전임 회장은 마이클 뷰러워이와 함께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리얼 유토피아로 유명한 분석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대가 E.O.라이트였다. 이러한 새로운 맑스주의 사회학자들이 기세등등한 사회학대회에 전세계 6천명이나 되는 사회학자가 몰린 것은 자본주의가 좀처럼 위기에서 탈출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지구적 위기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위험한 계급, 프레카리아트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주장은 기본소득론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경제학자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였다고 한다. 그의 저작 프레카리아트는 계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변혁주체로서의 프레카리아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적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위험한 계급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 계급은 이전 시대의 노동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계급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친디아(Chindia)를 포함해 풍요로운 시장경제와 신흥 시장경제에 속한 수백만 명의 새로운 존재들이기도 하고, 1세계의 배제되고 정체성이 결여된 노인, 범죄자, 여성, 청년 등의 불안정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프레카리아트’. 불확실하다는 뜻의 “precarious”라는 형용사와 그 어근이 되는 “proletariat”라는 명사를 조합한 신조어인 이 말은 일시직 노동자, 계절노동자를 묘사하기 위해 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고용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피고용인으로서의 집단적 관계나, 미래에 대한 전망도 알지 못한다. 또한, 노동시장 보장, 고용보장, 직무보장, 소득보장, (집단적) 대표권 보장, 숙련기술 재생산 보장 등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일에 기반을 둔 정체성, 즉 직업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집단의 화폐임금보다 더 낮게 받고 더 가변적이다. 실업은 이미 그들의 삶의 일부이며, 불안은 내재적 속성이다. 따라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분노(anger), 아노미(anomie), 걱정(anxiety), 소외(alienation) 등 네 가지 A를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

그렇다고 이 성장하는 계급은 20세기 프롤레타리아트처럼 세상을 확 뒤집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들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 대자적 계급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들은 기술상의 힘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와 교전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3차산업 중심의 사회이고, 더구나 업체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내부 경력을 쌓거나, 기술적 숙련을 쌓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일본의 NEET)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기 이전에 이미 집단 내부에서 스스로와 교전 중이라는 것이다. 각종 연금개혁과 복지의 축소 속에서 노인들은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여성들은 남성들과 경쟁하며, 신자유주의 정치는 점증하는 범죄자, 장애인, 이주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긴다.

국가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간질에 몰두한다. 또한, 이들의 시간을 쥐어짜면서생활속 여유를 거세하고 스트레스에 기반한 지옥정치(politics of inferno)를 구사한다. 영장 없이 도청이 행해지고 촘촘한 감시가 일상적인 사회경관이 된다. 근로연계복지(workfare)를 통해 죄책감을 주입하면서 노동윤리를 훈육한다. 프레카리아트의 일부 집단(예컨대 이주자, 범죄자)을 악마화하면서 네오파시즘으로 이끈다. 민주주의는 앙상해진다.

 

극우파의 부상과 그 계급적 토대

저자는 프레카리아트를 좋은 프레카리아트나쁜 프레카리아트로 나누는 것은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나쁜 프레카리아트의 준동(?)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 조선인의 권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이토쿠가이(ざいとくかい, 在特会)는 일본 프레카리아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본의 넷우익(Net 極右)들은 한국으로 건너와 일베가 되었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극렬하게 집결해 먹방을 선보였던 일베들은 일본의 우익들이 조선인들의 권리를 문제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에 열을 올린다. 비단 일본과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 불고 있는 극우파 정당의 부상에는 이러한 계급적 토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태도는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은 치열하고, 자기 존재는 찌질하고, 일자리는 없고, 불안이 내재화된 현재가 좋을 리가 없다. 나쁜 프레카리아트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지난날의 황금기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해주기 위한 낙원정치(politics of paradise)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공동체의 합법적 거주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 급여를 주는 기본소득은 시장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힘을 길러줘 자본과의 교섭에 당당하게 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간 쥐어짜기에 맞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가능성을 높인다. ‘슬로우 타임운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프레카리아트의 상태를 일시적인 예외상태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구적으로 늘어나는 점차 다수가 되는 이들의 삶의 양태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정상상태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이들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방식, 조직방식, 운동방식, 공감과 자긍심의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아마미야 가린이 주도한 일본 프리타운동과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외부에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유니온운동’, 그리고 유럽의 유로 메이데이운동(Euro mayday)의 퍼레이드(한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시도가 있었다.), 영국의 거리되찾기 운동’(Reclaim the Street)은 프레카리아트의 집단적 역능의 일부를 보여준다.

정통적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라는 카테고리가 계급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는 자격미달로 보일 수도, 따라서 분석도구의 무용성을 주장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러한 반란주체의 새로운 조합과 제시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는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과 다중(multitude)’을 제시한 바도 있다. 또한 계급론적 분석도구로서의 유의미함이 곧바로 실천적 유의미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이 스탠딩의 개념과 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는 운동의 위기의 알맹이가 운동 주체의 ()생산의 위기라고 한다면 우리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좀 더 긍정적인 숙고를 일부러 해야만 한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되풀이되는 세대론에 기댄 폄하는 지겨울 뿐만 아니라 반대급부의 혐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사이 프레카리아트는 우파들의 선동 속에서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읽을만한 책>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이진경·신지영 / 그린비 / 20128/ 20,000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 기노시타 다케오 / 20117/ 15,000/ 이 책의 5장과 6장에는 프리터를 중심으로 기업횡단적, 개인가입 유니온 건설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프레카리아트/ 아마미야 가린 / 미지북스 / 20117/ 15,000

분배의 재구성 / 브루스 액커만 외 / 나눔의집 / 20102/ 18,000/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과 분석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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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로빈후드 - 뉴욕에서 몬드라곤까지, 지구를 바꾸는 도시혁명가들 도시혁명 프로젝트 2
박용남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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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2호 2014년9월호

[불온한 서재]

 

도시의 로빈후드/ 박용남 / 서해문집 / 20145/ 17,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우리가 진보정당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 삶은 크게 일터삶터’, ‘일하는 시간노는 시간’, ‘돈벌이소비로 나눠진다. 오랫동안 우리 운동은 앞부분, 일터의 문제, ‘일하는 시간에 벌어지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 ‘만족’, ‘자유와 관련한 것은 바로 뒷부분, 여가시간’, ‘삶터’, ‘소비’, ‘정주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은 당연히 총체적이고, 두 가지 부분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통이 발달(?)하면서 일터와 삶터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 것이 도시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97, 비로소 대중적인진보정당운동이 시작되었다. 익숙한 시야와 습관 때문인지 몰라도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뭔가 쭈삣쭈삣거렸다. 지역 분회모임을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머뭇거렸다. 고참 노동조합운동 선배가 얘기하기를 기다리는데, 쟁쟁한 선배들도 주제가 겉돌고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을 알리고자 하니 두려웠다. 방법도 잘 몰랐다. 마을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프로그램 리플렛을 가져와서는 주민들 속으로 들어갈지 말지 머뭇거렸다. 생전 안 나가던 반상회에 나가니 동네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고 이에 움츠려들었다.

초기 진보정당운동(민주노동당) 시절, 이렇게 쩔쩔 매고 막막해할 때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 바로 박용남 선생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2000)였다. 이 책은 해를 거듭하면서 필독서가 되었고, 이후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 꾸리찌바 에필로그(2011) 등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정당 활동가들과,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민운동가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막막함을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사례를 통해 해소했고, 지방선거와 자치에 대한 상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를 통해 깨달았으며, 우리 삶터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꾸리찌바를 통해 상상할 수 있었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산별노조)과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초기 진보정당운동에 준거점이 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브라질과 남미의 경험은 초기 민주노동당 활동가들, 특히 울산과 창원 등의 노동자 밀집 도시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에게 한번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를 빌어 보자면, 진보정당운동 초기의 역사는 박용남 선생의 책을 돌려보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진보정당이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 무엇을 통해 바꿀지 머리에서 시작해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로 뛰며 지역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활동을 했다. 물론 우리 진보정당운동은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울산 북구와 동구, 창원의 경험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튼튼하지는 않더라도 초기와는 달리 진보정당운동의 손길이 느껴지곤 한다. 지역주민들에 뿌리박은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의 활동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로빈 후드들의 빛나는 성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수정당 의원으로서 의미있는 반대와 틈새 조례 제정은 눈물겨운 돌파의 흔적이다.

 

사진: 벨루오리존치의 민중식당, 보고타의 트랜스밀레니오

 

박용남 선생의 초기 저작들의 중심 모델이 브라질의 꾸리찌바였다면,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와 이번 책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시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이다. 짧은 임기동안 획기적으로 보고타를 바꾼 로빈 후드엔리케 페냐로사전 시장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존 상식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 어린이들의 안전과 보행자로서의 인간의 권리로 꽉 차 있다. 그의 이러한 생태교통에 입각한 도시계획은 세계 최고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인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를 만들었고, 매년 2월 첫 번째 목요일을 차 없는 날로 선정해 세계 최대의 차 없는 도시실험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총연장 17km의 보행자 거리 알라메다 엘 뽀르베니르도 보고타의 명물이다.

박용남 선생의 저작들의 중심에는 생태교통이 있다. 그런데 이때 교통은 단순히 도시에 필요한 시스템 중 하나가 아니다. 교통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핵심 열쇠이다. 생태교통은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고,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량을 저감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자동차 이동량의 감소와 사회적 교류의 활성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브라질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는 세계 최초로 식량권을 인정한 도시이다. ‘벨루오리존치는 기아 문제를 식량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과 결부된 식량 접근의 결여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이의 원인을 시장의 실패때문으로 본다. PT당 소속 시장 파투루스 아나니아스 데 소자93년 시민식량권을 인정하고 시에 조달국을 설치했다. 이후 벨루오리존치는 시민들에게 민중식당(Restaurante Popular)’기초식량바구니’(22개 품목의 꾸러미)를 제공하고, ‘푸드뱅크영양실조 예방 및 퇴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과 로컬 푸드, 가격명세서 공지 시스템, 학교 텃밭 등 먹거리와 관련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펼친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낙후된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 시에서 출발한 파우마스 은행(공동체 은행)과 지역화페 파우마의 사례(조아킴 데 멜로 창립자), 내생적 발전을 추구하는 일본 가나자와 시, 그리고 자동차 없는 도시를 위해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공용자전거 벨리브를 도입했으며, 세느 강의 도로를 막고 해변(파리 플라주)을 만든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사회당), 버려진 화물철도형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한 하이라인(High Line)의 사례, 공용자전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자동차 없는 뉴욕을 위해 분투하는 뉴욕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실험들도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롭게 뿌리내리고, 변형시키는 구체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 구상과 실행의 통일, 아니 간단하게(실은 간단치 않은) 우리 모두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런 활동가들이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고, 동네 찻집을 운영하며, 지역 라디오방송국을 꾸려 나가는 이들 말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고민들은 이러한 활동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리고 아래 추가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더 읽을만한 책>

무상교통/ 김상철 / 이매진 / 20145/ 10,000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하승우 외 / 20145/ 13,000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찰스 몽고메리 / 미디어 윌 / 20144/ 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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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혁명 - 성 역할의 혁명, 고령화에 대응하는 복지국가의 도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지음, 주은선 외 옮김 / 나눔의집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 8월호


불완전한 여성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도전!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




끝나지 않은 혁명/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 나눔의집 / 20143/ 14,000


73, 다른 당 또는 당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다양한 결사들에 이어 노동당 내에도 드디어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출범 선언문에는 우리는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기본적인 삶을 보장 받는 보편적인 복지국가의 미래를 꿈꾼다……복지국가의 이상이 구현되는 날까지 노동당 사회민주주의 당원모임은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선언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당 사회민주주의당원모임>의 출범 선언문에는 복지국가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목표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매우 특수한 세계사적 조건(예컨대 냉전) 하에서 형성된 체제이지만,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금까지 현실성 있는 모델로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물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복잡하고 다양하며 명징하지 않은 혼돈 자체이기도 하다. 노동당 강령은 이와 관련해 복지국가라는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를 훼손하는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또한 극복 대상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언급은 한편으로는 복지국가를 긍정적인 성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 맞게 복지국가를 뜯어 고쳐 개선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또는 복지국가라는 역사적 성과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실패한 책임을 사회민주주의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만만치 않은 반론이 계속되어 왔다.

 

세계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출산률 저하, 이혼율 상승, 노동력 부족이라는 인구학적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중차대한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밋빛 미래는 없다.

 

덴마크 출신의 사회학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1990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지국가의 유형을 탈상품화의 기준과 복지국가 정책에 따라 자유주의 유형(미국 등), 보수주의-조합주의 유형(독일,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 유형(북유럽 스칸디나비아)으로 분류한 바 있다. 탈상품화는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복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복지국가에도 상당한 균열과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에스핑 안데르센은 이른바 영미형 수렴론을 경험적으로 반박한다.

이 책 끝나지 않은 혁명은 에스핑 안데르센의 최신작으로서 여성의 역할과 가족의 변화, 이에 대한 복지국가의 대응을 다룬다. 그는 이 책의 초점을 여성의 변화하는 지위이며 이러한 변화가 혁명적인 격동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증가하는 여성 노동시장 참여, 가정 내 노동 분담, 자녀에 대한 투자 등 성 평등적 균형이 형성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 평등적 균형은 충분하지 않고 혁명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다. ‘미완은 극심한 저출산, 가구소득의 양극화, 부모의 자녀투자에서의 양극화, 성별분업 및 젠더 평등의 양극화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시민들 대다수는 매우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놓여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최적 이하의 결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바로 성 평등적 균형이 지배적인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저소득, 저학력자들 사이에서의 성 평등화가 필요하다. 또한 복지국가의 혁신, 성 평등적인 복지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가족정책이 여성혁명의 성숙을 가속화시킬 필요가있는 것이다. 특히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은 노년기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결국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은 이를 연금 개혁은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집약한다. 양질의 돌봄과 교육 평등을 위한 복지국가의 개입이 세대 간 공평성과 세대 내 평등을 동시에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내공이 집약되어 있는 잘 짜여진 퍼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인 구석이 없지 않다. 그가 주장하듯이 가족과 여성 역할의 변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심화시킨다는(그는 그렇기에 미완의 여성혁명을 복지국가의 조력 속에서 더욱 밀어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소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가 전제로 받아들이는 다니엘 벨 류의 탈산업사회론도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그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물론 정당하게 강조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마치 해결의 유일한 키워드인 것처럼 강조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그가 얘기하듯 지체된 국가 대한민국의 복지 수준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이론적 검토와 정책적 실천이 부럽기만 하다. 예컨대 그는 대규모의 이민이 발생했을 때, 이민 자녀들에게 집중적인 교육지원을 하는 스웨덴에서조차도, “이민 자녀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자국민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이민 가족 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은 다른 북유럽의 저명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복지국가론이든, 자본주의 국가론이든, 사회사상이든 영미의 학자들에 의존하는 지적 풍토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역작인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역시 16~17년이 지나서야 번역이 되었다. 그나마 번역이라도 된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첨언하자면 이 책을 번역한 주은선, 김영미 교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다룬 노르딕 모델(삼천리), 가이 스탠딩, E.O.라이트, 빠레이스 등의 기본소득논쟁을 다룬 분배의 재구성등 중요한 저작들을 공동 번역했다. 정말 판매가 가능한 지 모를 정도로 척박한 사회복지 분야의 최근의 논의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역자들의 노고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진보진영 내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론자들의 공세(?)가 약간 주춤한 듯도 한데, 에스핑 안데르센의 저서를 통해 보다 더 실천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노동당은 자극이 필요하다.

 

 

<더 읽을만한 책>

변화하는 복지국가/고스타 에스핑 앤더슨 / 인간과복지 / 19998/ 12,000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 일신사 / 20067/ 20,000

복지체제의 위기와 대응 / G. 에스핑앤더슨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71/ 20,000

복지국가론 개정2 / 성경륭, 김태성 / 나남출판 / 20143/ 28,000(복지국가론을 공부할 때 가장 기초적으로 봐야 할 개론서이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이창곤 / / 201011/ 15,000(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1, 2(인간과복지) 이후 최근의 논의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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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 현대중국의 중국의 사상과 이론 2
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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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8호 2014년4월호

 

중국 신좌파의 불안한 모험?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추이즈위안 / 돌베개 / 20142/ 12,000

 

얼마 전 영국의 좌파저널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인터뷰를 모은 책 좌파로 살다(사계절)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60여년 동안 발행되는 이 저명한 잡지의 수많은 인터뷰 중 <뉴레프트리뷰> 편집부가 누구의 인터뷰를 선별해 실었고, 어떻게 배치했는지였다. 16개의 인터뷰 중 제4부에서는 21세기 비서구 좌파의 사유를 다루었는데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브라질 MST)와 아사다 아키라(일본),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인 왕후이(汪暉)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인터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난 조반니 아리기였다. 이러한 선별과 배치는 20세기와 21세기 초입을 거치면서 전지구적으로 분포된 좌파의 확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추이즈위안(崔之元, 1963년생)은 왕후이(1959년생)와 동년배로서 이 둘은 중국 신좌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왕후이가 루쉰 연구가로서 인문학적 신좌파를 대표한다면, 추이즈위안은 정치(경제학)학자로서 제도적 신좌파를 대표한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는 신좌파 중에서도 가장 실천적으로 충칭모델의 성립에 가담했다. (지난 미래에서 온 편지2호에 소개했던 책 중국을 인터뷰하다(창비)에는 추이즈위안의 인터뷰와 중국 신좌파들의 최근 경향에 이론적 영감을 준 자유주의자 야오양,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첸리췬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바로 그 충칭모델의 이론적 자원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계속된다

2012년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는 대륙 권력의 핵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 직전 역풍을 맞고 추락했다. 이로서 중국 신좌파의 충칭실험이 끝난 게 아닌가, 광둥모델의 대항마는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세간의 평이 존재했다. 그러나 추이즈위안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보시라이와 더불어 충칭모델의 또다른 핵심 주체였던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이 중국공산당 183중전회에서 개혁방안의 초안을 작성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추이즈위안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을 비롯한 중국의 신좌파들은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질서에 매우 부정적이며 이러한 질서를 확립한 서구 보편주의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를 경우 제3세계의 다양성과 역량을 사상시킨다. 그렇다고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상대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신좌파들은 양자를 초월하기 위한 관건은 제도의 창조적 혁신이라고 보고 있다. 추이즈위안이 보기에는 이러한 혁신의 총합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또는 자유사회주의이다.

그는 국가소유도 아니고 개인소유도 아닌 중국 농촌의 토지 집단소유가 푸루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대농장이 소농을 모두 잡아먹기를 기다리던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다른 중국적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이론가 중 하나는 제임스 미드이다. 미드의 노자합자기업사회적 배당’(기본소득과 연결되는 개념)을 근거로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주식합자제도가 사회적 배당으로 나아가는 실험을 기대한다.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제도적 설계의 이면에는 사상적 전제가 있다. 바로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시장적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를 대표하는 이론가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페르낭 브로델이다. 이 지점에서 브로델-월러스틴-아리기의 사상적 계보가 중국의 신좌파들로 연결되고 있다.

 

신좌파, 공산당의 이데올로그인가?

최근 한국 지식계에서도 오랜만에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중심에는 연세대 조경란 HK 연구교수가 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글항아리)가 있다. 조경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2000년대 후반, 정확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중국 경제의 성공(이른바 중국 굴기(崛起)’) 이후 왕후이를 비롯한 중국 신좌파들은 더 이상 비판적 지식인도 아니고 국제주의자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중국 신좌파들은 자본에는 비판적일지언정 국가에는 침묵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그가 되었다는 것이다. 왕후이는 2000, “세계 체계의 힘에 주목하고 그 힘에 대항하는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시진핑이 얘기하는 중국몽(中國夢)을 두둔하면서 세계질서 속에서의 중국의 위상 재고, 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전략, 중국모델론, 소프트파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경란 교수의 이러한 신좌파 비판에 대해 신좌파에 대해서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일당체제가 체제의 출발점인 사회에 대해 서구적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아닌가등의 반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왕후이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인 루쉰 연구가이자, 신좌파에 대해 관대했던 첸리췬의 중국 신좌파에 대한 비판적인 물음을 들어보면 중국 신좌파의 위상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정말로 자기조정의 기제를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농민은 진정 사회적 주체성을 지니는가? 중국의 당과 정부는 진정 중성적(中性的)이어서 이익집단과 분리되어 있는가?”

예컨대 신좌파들은 야오양의 중성정부(中性政府)’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정부(혹은 중국 공산당)특정한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계급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데, 이거야말로 국가에 포섭된 지식인의 대표적인 모습 아닌가?

중국 신좌파들이 국가주의화 되면서 이들의 관심은 중국모델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모델론은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바로 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현실 가능한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 말이다. 중국모델론은 미국 중심 체제,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델로의 정합성과 현실성을 기준으로 지적 자원이 배치되면서 상상력을 제한하고 협소해질 수 있다. 또한 중국 공산당 체제를 옹호해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주목해서 봐야 한다. 설사 그러한 대안적 중국모델이 성립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서구 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첸리췬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재구성이 신좌파보다 더욱 좌파스럽게, 더욱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물론 복잡한 대륙의 사상적 지형을 온전히 따라잡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곳으로, 보다 넓은 시야로 옮겨가야 하지만 말이다.

 

<더 읽을만한 책>

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좌파로 살다/ 뉴레프트리뷰 엮음 / 사계절 / 20142/ 35,000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조경란 / 글항아리 / 201310/ 18,000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8/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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