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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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진중권 / <크로스> / 웅진지식하우스

 

정재승과 진중권이 쓴 <크로스>를 봤다.
필자들의 명성을 생각할 때 많은 독자들이 존재할 것 같은 책.
따라서 나는 간단하게 '생략'해도 될 법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읽었다.
 

'스타벅스','스티브 잡스','구글','제프리 쇼','헬로 키티','셀카','프라다' 등
나와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21개의 주제들이 나열되어 있고.
게다가 정과 진이 따로 나눠 썼기 때문에 독립된 유닛은 42개로 늘어난다. 

<스타벅스>편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다.  

스타벅스는 식품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변화시켰다...애플 사용자들은 컴퓨터의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출하는 데 민감하다...미래의 경제학은 점점 더 미학을 닮아간다.(18쪽) 

스타벅스는 '긍정의 심리학'을 십분 활용...가장 싼 것을 시키면서도 '톨tall'이라고 주문해야 한다. 더 큰 것들은 '그란데grande','벤티Venti' 같은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24쪽)
 

그런데 이러한 경제학의 '미학화', '심리학의 이용'은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생수의 판매전략에서도 나타난다. 

아마도 21세기 '생수'는 이제 '패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의 세련된 디자인을 보라. 어쩜 그렇게 마시고 싶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상류사회에 대한 '대리체험'이자 '자기과시 소비'의 아이템으로 '21세기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193쪽) 

사실, 볼빅이냐, 에비앙이냐 하는 서구의 말도 안되는 생수의 선택 갈등은 이제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고 있다. 롯데나 동원에서 나오는 생수보다는 삼다수나 석수가 더 나아 보이게 하는 효과.  

더 나아가 볼까? 

렘 콜하스는 뉴욕의 프라다 스토어의 천장에 유리 새장들을 설치..."특정한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의 종교로서 획득하게 된 기능"...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매장을 성 유물을 보관하던 중세의 성당과 비슷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신도들이 성당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았듯이, 현대의 신도들은 프라다 매장을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느낀다. (175쪽) 

하지만, 이러한 '상품미학'은 21세기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상품미학은 고유한 자본순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진정 새롭거나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과 가상, 실재와 이미지, 대상에의 동일성,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일 것이다. 

정재승과 진중권은 '세컨드 라이프'와 '제프리 쇼', '마이너리티 리포트','파울 클레', '구글'에서 이를 설명한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제프리 쇼가 보여준다면, 과학과 기술이 미학을 통합하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아트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에 대한 몰입감이 엄청나게 높아져 '인식 확장' 수준이 됐다...과학자가 예술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자가 되어간다는 사실.(84쪽,87쪽) 

학생들에게 나는 늘 영감을 일으키는 '기계적 절차'가 있다고 가르친다...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텍스트가 화면에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영감이다...무작위로 돌아가는 검색엔진의 멍청함이 외려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해 줄 수 있다.(48-49쪽)
 

유럽 베낭여행을 갔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뽕삐두 센터에서 열린 특별전 '소니 프로세스'였다. 즉 제프리 쇼와 같은 인터랙티브 아트였는데, 이러한 것을 처음 접했던 나는 어떤 나의 감각과 인식의 공간이 확장되는 점을 느꼈다. 

두 저자가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은 공유하지만 여러가지 차이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재승은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을 내놓는다. 과학계의 이슈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들의 최대 화두는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통해 인간의 행동, 언어적/비언적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자동적으로 정량화할까 하는 점. 이는 '셀카' 편에서도 언급되는데, 바로 야후 등이 기획하고 있는 거대한 '라이프로그 시스템Life log system의 개발이 문화기술학의 중요한 화두라는 점이다.

또한 정재승은 빅뱅이론에 맞서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설명한다. 초끈이론은 우주를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세계로 파악하는데, 21세기는 과학자들이 이 초끈 이론의 가설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고자 애쓰는 100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서양과 우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주 '구술문화'(한국)와 '문자문화'(서구)에 대한 적응성과 강조점의 차이가 서로 다른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위키피디아' 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문자문화의 합리성을 강화해야 할 시기에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구술매체가 등장함으로써, 감성과 정서가 과잉한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는 상황.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키피디아가...대중지성의 가장 강력한 발현 형태...(이러한) 부진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299쪽) 

(구글과 네이버를 비교하면서) 가장 큰 원인은 서구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이 정보적이라면, 한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은 친교적,오락적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그 대신 생활 밀착적 정보는 역시 네이버가 제일이다. 한국은 여전히 구술문화다.)(49쪽)


그 외에도 크로스는 관심없던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준다. 예를 들자면, 프라다의 부상에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좌파 페미니스트로서 프라다의 경영에 이러한 이념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명. 또는 구글 23andMe와 같이 구글이 바이오정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 야후의 라이프 로그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 정보통신회사들의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바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가 결코 희망차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굿나잇 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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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라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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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의 <핫라인>/ (2002, 열린책들) 

아주 짧은 세풀베다의 소설, <핫라인>(2002)은 민주화 이후에도
칠레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주인공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 형사는 마푸체 인디오이다.
그는 장군의 아들을 총으로 쏴 부상을 입힌다. 가축을 훔친 현장에 출동했다가
우연히 부상을 입힌 것이다.
이후, 권력을 쥔 장군의 압력으로 카우카만 형사는 산티아고에 발령을 받는다.
거기서 그는 성범죄와 관련한 부서를 맡게 되었다.
73년 아옌데 인민정부에 대한 미국 CIA 와 칠레군부가 벌인 쿠데타로 인해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부부는 민주화 이후 칠레로 돌아오지만 막막했다.
그래서 벌인 사업이 폰섹스 사업. 이를 상징하는 용어가 바로 핫라인.
그러나, 이 핫라인에 장군의 부하들이 나타나 카우카만을 다시 노린다.
 
카우카만은 지략을 발휘해 장군의 부하들과 장군의 발언을 라디오로 생중계하고
체포에 성공한다. 마치 이 짧은 소설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매우 시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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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간중간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 아옌데 대통령, 또는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구술이 나타나 있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49년생으로 73년 24살에 피노체트 군사쿠데타 이후 수감되었다가 77년 석방후 망명길에 올랐다. 83년부터 88년까지 그린피스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마흔살인 89년에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세풀베다는 서문에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격언을 인용한다.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 독재에 대한 그의 시각을 잘 나타내준다. 

땡전뉴스에도 많이 나왔듯이 소설은 칠레의 허튼 여론조작의 현장을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아나운서는 칠레가 아주 잘 나가고 있다고, 너무나도 잘 나가고 있다고, 지금보다 더 잘 나갈 수는 없다며 확신에 차 말하고 있었다. 수출이 극에 다다라 모두에게 풍요로운 미래가 열릴 거라고 말했다. 이제 곧 낙관주의를 몇 톤씩 수출할 판이었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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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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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명상, 삶에 대한 명상,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9)

 

http://blog.naver.com/dohwasun

 



 

주제 사라마구가 2005년에 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정영목이 맡았다.(중역이긴 하지만.)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11쪽) 

그리고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279쪽)

로 끝맺는다. 

줄거리는 짧게 요약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세한 긴 이야기는 철학적 성찰을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 죽음이 멈추었다. 죽음이 중지하자, 장의사들, 보험업자들, 병원 등이 타격을 입는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기에 혼란은 가중된다.
꼭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죽음 직전의 가족을 둔 빈민층들은 곤란에 빠진다.

이들은 국경 너머로 데려가 죽음으로 '인도'한다. 이를 두고 살인이냐 아니냐 논란이 벌어진다.
또한 '죽음으로의 인도'가 마피아와 국경수비대의 비호와 짝짝꿍 아래 이권사업이 된다. 

이러한 비즈니스 말고도 국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죽어야만 하는 모후는 죽지 않는다.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난다. 죽지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전하, 우리가 다시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겠군. 그렇습니다. 전하. 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 합니다. (116쪽)

 
그러다 다시 죽음이 시작된다. 기다리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부터 주제 사라마구는 '죽음'을 의인화 한다.
'죽음'씨는 죽음 일주일 전 편지로 통보하는 형식으로 다시 죽음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또다시 혼란이 벌어진다. 

대학살보다 훨씬 심각했다. 죽음의 일방적 휴전이 지속되던 일곱 달 동안 죽음 직전에 이른 대기자 명단은 육만 명이 넘었다.(143쪽)
 

그렇지만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세워지지 않는다.  

죽음은 어느날 '죽음 통보 우편'이 반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9세의 첼리스트.
그러자 죽음은 '여성'으로 변장하여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죽음' 자체는 그와 함께 잠자리에 들며 소멸한다.
'죽음'이 잠들자 다음날 '죽음'은 또다시 중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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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모두가 경건하게 죽음을 애도하고 삶을 돌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지는 않는 법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력들, 즉 마피아, 병원, 정부, 언론, 성직자, 장의사협회, 빈민층, 외국 등은 모두가 죽음의 중지에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사업의 손익계산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하나의 계기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계속 되다가 '중지' '재개' '재중지'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세력들의 수만큼 복잡했던 죽음에 대한 자세는 또다시 일대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과 같은 것. 바로 '죽음의 중지'가 이러한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불로초는 진시황만이 먹어야 하는 것이지 중생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죽음이 첼리스트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첼리스트에게 집착한다. 그 집착은 결국 죽음 자체의 소멸을 불러온다. 죽음씨가 마지막에 '잠이 드는 것인지, 죽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쨌든 죽음은 멈추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전작들처럼 그는 불특정 다수들에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짊어지운다. <-자들의 도시> 시리즈 외에도 <돌뗏목>과 같은 책도 익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건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세세하게 그려 나간다.

주제 사라마구는 마르케스(백년동안의고독), 보르헤스와 더불어 세계3대 작가이자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그의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충격이다.

우리가 살면서 그 사람의 인생이나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맑스의 <공산당 선언> 등. 어떤 이들에게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 없다.   

<죽음의 중지>는 주제 사라마구의 비교적 최근의 책이다. 

거의 20년동안 포르투갈 공산당 활동만 하다가 다시 문필을 시작한 주제 사라마구는 아흔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고 녹슬지 않는 필력을 가지고 있다.(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역시 좌파활동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남미 및 이베리아 문학의 힘이다.)

지금 나는 그의 저서 <돌뗏목>도 읽고 있다. 2008년작 <코끼리의 여행>의 번역본 출간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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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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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반납해야 되기 때문에 먼저 읽지는 않았지만

기록을 해두어야겠다.

 

 

따뜻한 노인의 시선, 폴 오스터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가 쓴 <어둠 속의 남자>(2008)는 불행과 고단한 삶, 심지어 고통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매우 따뜻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역자가 말하듯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닮아 있었다.

틀 속의 틀, 그림 속의 그림과 같은 구조. 즉 액자구조의 형식.

 

주인공 '오거스트 브릴'은 가공인물 '오언 브릭'을 통해 하나의 픽션을 완성해 나간다.

작자 폴 오스터까지 합치면 삼중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삼중 구조가 나타내는 것은 바로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다중 리얼리티(multi reality) 개념이다.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야. 많은 현실이 있는 거야. 단 하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상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각 세상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누군가가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각각의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즉, 이러저러한 아픔을 간직하고, 사별한 노인 '오거스트 브릴'은

잠이 안올 때마다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오언 브릭'이며 주인공은 미국의 2차 내전 상황에 빠져든다.

그리고 '오언 브릭'은 이 전쟁을 창시한 작자, 즉 '오거스트 브릴'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왜 주인공 브릴은 가공 인물 브릭에게 이러한 기괴한 임무를 부여한 것일까?

 

그는 이 세상을 발명하지 않았어. 오직 이 전쟁하고 브릭 자네만을 발명했지.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나?

이건 자네의 이야기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 노인은 말이야.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자네를 발명한 거야.

(98쪽)

 

 

'임꺽정'에게 홍명희를, '장길산'에게 황석영을 살해하라는 명령과 같다.

 

2차 내전 상황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에코토피아>와 닮아 있다.

<에코토피아>에서 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한 주들이 세로 생태적인 나라를 건설한다. 

마찬가지다. 연방주에서 분리한 주들은 내각제로 운영되고, 연방주의 대통령은 조지 W.부시이다.

분리 독립주들은 뉴욕 주, 뉴햄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뉴저지, 펜실베니아 주 등이다.

 

폴 오스터는 이러한 2차 내전 상황을 바로 '이라크 전쟁'에 비유하고 있다.

 

바로 주인공 '오거스트 브릴'의 불쌍한 손녀 카티아의 애인인 타이터스가 이라크 전쟁에 전쟁용역업체 직원으로

참전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비극적 결말은 이 책의 전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계속 굴러가기만 한 '괴상한 세상'에 대해

폴 오스터는 오거스트 브릴을 통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거스트 브릴을 입을 통해 폴 오스터가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단지 참혹함 만이 아니며, 통제불가능한 불행만은 아니다.

폴 오스터가 말해주는 바는 소설 속 소개된 것처럼, 또 영화 도쿄이야기의 시아버지의 말처럼 ,

"행복해지기를 바래"(109쪽)라는 축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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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로 가자면.

 

할아버지 브릴이 첫번째 부인 소니아와 이혼 후 다시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소니아가 브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합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나온다.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배종옥과 김갑수를 닮아 있다.

배종옥도 김갑수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 이전의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하지는 않는다.

 

나(브릴)는 매해 그녀의 생일 때면 그녀에게 청혼을 했어.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암호문, 혹은 그녀가 다음 생일까지 나를 믿어도 좋다는 징표 같은 거였어.(219쪽)

 

곧이곧대로 말을 들으면 안된다. 관계는 말에 우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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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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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없는 길을 간다!  <더 로드 the Road>(코맥 매카시,2008, 문학동네)

 

양솔규 블로그 : http://blog.naver.com/dohwasun

 

 

지루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여정은.

식인의 추적을 피해 가고자 하는 고단한 여정은 당연히 조우를 배제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히 파괴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탈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막연히 남쪽, 바다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 바다는 최종적으로 검은 절망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죽는다.

아들은 살아남아 다른 어느 가족과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최근의 영화와 소설 등에서 다루는 '파괴 이후'를 다루는 그 흐름에 같이 서 있다.

 

영화 <해프닝>,<나는 전설이다> 등과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더이상 80-90년대 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막고자 하는 과정을 영웅을 등장시켜 그리지 않는다.

역자가 지적하듯이 <더 로드> 역시 배경이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 자체'가 아니라, 파괴된 '이후'의 세계이다.

무엇이 이러한 끔찍한 묵시록적 상황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과감한 생략'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바는 과거미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그 결말 역시 희망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이 책의 결론, 식인을 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을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을 말할 수는 없다. 마치, 영화 <미션>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원주민 아이들로 제국주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더군다나 이 새로운 가족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역시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길에서 만난 노인이 말한다.

 

이런 때에는 말을 적게 할수록 더 좋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아남아 길에서 만난 거라면 우리는 할 말이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린 살아 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195쪽)

 

바로 이것이 파괴된 세계의 진정한 비극이다. 살아 남았으되, 살아 남은 것이 아니라는 점.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2005년과 2006년 1년 상간으로 나온 현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작가와 포르투갈의 작가가

완벽하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여기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고 죽음도 얼마 가지는 못할 거요. 죽음이 길에 나서도 할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은 이럴 거요. 다들 어디로 갔지? 그렇게 될 거요. (197쪽)

 

 

주제 사라마구나 코맥 매카시가 보여주는 바는 소설의 스케일이 단순히 책의 두께나 등장인물의 수로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소설이 상상력의 산물인 만큼, 독자의 상상력과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 발휘되는 증폭되는 것 같다. 또한 소재의 묵직함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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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후 영화 <더 로드>를 보았다.

책 표지에 등장인물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상상한 정도의 그림이 나왔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비고 모르텐슨'은 체중감량과 수염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지의 제왕>에 나온 아라곤이더라.

요즘 읽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돌뗏목>에 보니, 아라곤은 또한 스페인의 북동부 지방 명칭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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