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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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34년에 쓰인 이 책. 그 후에 수많은 작가들의 생활과 사고하는 법, 글쓰는 습관의 원천이 된 책. 이만하면, `원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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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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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은 1934년에 출판된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설도 아닌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책은 장장 80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의 양분이 되었다.

많은 작법서를 읽었지만, 내가 읽어온 많은 (미국) 작법서들이 이 책의 방법론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이 책은 그렇다면, 작법계의 고전쯤 될 수도 있겠다.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갖춰야할 습관이란 무엇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가가 되어야 하는가.

책 내용의 대부분이 이렇게 짜여져있다.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일러주는 소중한 책.

 

 

지금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작가로서의 성공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공정하게 평가할 입장이 못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조금만 더 지나면 지금은 어렵거나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일들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시때때로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자신에게 쉬운일은 무엇이고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를 짚어내는 안목이 생길 것이다. 그때 가면 이런 명확한 결점을 바로잡기 위해선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할지가 눈에 보이면서 낙담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도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훈련 기간에는 실패의 가능성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

 

사실 두 가지의 기본 원칙이 있을 뿐이다. 첫째, 소설가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자신의 팔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것만 다루어야 한다. 둘째, 주제의 가치는 작가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또 그 안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느냐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 있다.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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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패러다임을 뒤흔든 논쟁의 과학사
토비아스 휘르터 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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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닐스보어의 머릿속도 궁금했고, 파장이론을 만들어놓고도 양자역학을 부정한 아인슈타인의 머릿속도 궁금했다. 보르헤스와 토마스 핀천이 만들어낸 세계를 보면서 그들의 머릿속도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가 아닌 세계도 궁금해졌다.

 

책이 도착하고 보니 독일 사람 두 사람이 쓴 책이었다. 한명은 철학과 수학을, 한명은 물리학을 공부했다. 책 날개에 적힌 재밌는 저자 설명: '이 책을 쓰면서 토비아스 휘르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실제로는 여러개의 세상들일 수 있다는 생각과 친숙해졌다. 하지만 막스 라우너는 다중우주이론을 더욱더 기묘한 이야기로 여기게 되었다.'

 

"그럼 평행우주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어떤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우리의 죽은 선조는 다른 우주들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미치오 카쿠의 답변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우주, 그러니까 그들이 이미 죽고 사라진 우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우주를 진짜인 것으로, 우리의 것을 가짜로 여깁니다"(월드 사이언스 페스티벌, 2008년 5월 맨해튼)

이 대화만 뚝 떨쳐놓으면, 마치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법한 대화다. 죽은 자들이 계속 사는 세계라니, 심지어 그 세계에서는 우리가 가짜라니. 이것이 다중우주다. 왜 이런 공상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론 물리학자들의 설명은 정말 '기가 막히다'. 중세 시대 기독교 사상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했다. 그 전지전능을 뚫고 이 세계가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이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을 했던 과학자들은 죽어나갔다. 그렇게 보면, 중세란 참으로 많은 것을 겁탈했던 시기였다. 당연히 이런 공상같은 세계에는 수많은 이야기거리를 품고 있다. 보르헤스, 핀천이 만들어 낸 그 세계도, 다중우주에서는 가능하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노인의 세계도, 다중우주에서는 가능하다.

 

내가 내가 아닐 수 있고, 내가 아닌 것이 나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물질이기도 하고, 허상이기도 하고, 스치는 바람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하면 양자역학이다. 더 나아가, 그러니 결국 소유라는 것은 없었고, 나는 공과 같으며, 내 존재는 원래 자유로웠던 존재, 괴로움이 없던 존재라고 하면, 이건 불교적 관점이 된다. 정말. 신기하게 들어맞는다.

 

미친 생각 같은가?

훗. 평행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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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패러다임을 뒤흔든 논쟁의 과학사
토비아스 휘르터 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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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평행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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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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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에는 굉장한 동양철학의 통찰력이 숨어 있다.

역술적인 면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운명을 '간파'하고 그것을 헤쳐나가라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자기 운명과 직면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명리학을 앞서 놓았던 저자는, 명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인연조건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인간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 인간도 없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늘 길한 것도 없고 늘 흉한 것도 없다는 것. 받아들이려고만 하면 반드시 비워내야할때가 오고, 욕망을 쌓으면 반드시 분출해야할 때가 온다. 그것은 우주적 관점에서 모든 것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모복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운명이 드세다는 것과 같은 말, 재물복이 많다는 것은 정신세계에 대한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말.

 

당연히, 이런 풀이에 '좋은 사주'란 없다. 그것을 운명처럼 믿어버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해서는 안될일. 왜냐하면, 인간의 운명은 원래 돌고 돌게 되어 있으며,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쁜 때도 반드시 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궁합을 맞춰본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상보가 있을 뿐 -충이라는 개념도 결국 상충, 그러니까 당연히 오행의 한쪽이 먹히는 관계에 있으면 한쪽은 먹는 관계에 있는 법이라는 거다.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은 매우 적절하게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해 소개된다.

 

신탁이 예언한 바대로, 자신이 아비를 죽이고 엄마를 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먼 길을 떠난다. 눈을 찌른다는 건 더 이상 이전의 방식대로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실존적 결단이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오이디푸스 신화가 말해주는 바는 인간이란 결국 출가出家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출가, 곧 오이디푸스 삼각형으로부터 탈주할 때만이 운명의 지도를 바꾸는 길찾기가 가능하다는 것.  

그러니 인간의 운명이란, 환경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만들어 가는' 자신의 것.

 

인간은 원초적으로 출가자이며 이주민이라는 주장이 매우 탁월하고 논리적이다. 배후에는 양자역학!과 동양의 철학사상, 무와 공 같은 개념들이 깔려있는데, 신기하게도 불교와 명리학, 동양철학사상과 지금의 최첨단 물리학인 양자역학이 여기에 모두 한 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다.

 

1.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아이다. 미숙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 자신의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고정시킨다. 강인한 자는 그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고자 한다. 완벽한 자는 그 자신의 장소를 없애 버린다.

결론적으로, 사주 명리학의 이치는 '육친법의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생극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별들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덫을 박하고 나오는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이 것은 모두, 사주팔자를 능동적으로 구현하는 내면의 힘이 갖춰질때 비로소 가능하다.

 

요컨대, 좋은 팔자란 길한 것을 맞이하고 흉한 것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과 흉에 대한 인식과 욕망의 배치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생명의 바다, 음양오행의 매트릭스에 길흉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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