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평화 - 자연과 놀고, 사람과 놀고, 역사와 놀고, 노래와 놀며 캐낸 평화 이야기, 평화의 상상력
홍순관 지음 / 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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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번 달 말이던가. 모 모임에 들렀다가 모님께서 첫번째로 기획하신 책이 출판되었다고 건네주신 [춤추는 평화]는 아이들이 읽어보면 참말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행간, 자간도 넓고 시원시원한 글자체 하며 두껍지도 않고 한번에 쑥 하고 읽어 내려갈 짧은 글들로 평화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가볍고 진정성있게 잘 풀어냈다. 

 

 우리나라에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여러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짧은 글귀 또한 개개인이 모여 사는 이 지구에 왜 평화란 것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귀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는 평화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그릇은 얼마나 넓고 좁은지 큰 의미인지 작은 의미인지 새삼 뒤돌아 보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도 그랬다.  평화에 대한 짧은 글귀를 가지고 그 말씀을 하신 분의 직업에 따라 바라보는 시점과 생김새와 기타 등등(성격)은 어떨까 하고 상상을 하는 것. 각자 처해진 시선으로 평화를 바라 보는 ^^ 그 분들의 눈빛을 마구 그려 보자면 어찌나 즐거운지 ~~   그 중 몇개를 간추려 보자면.... 

 

평화는 비싸다. 최동훈(영화감독)  - 이 분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약간 시니컬 한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날카로운 눈매에 마른 몸 그리고 원인에 대한 결과값을 반드시 도출해 내야 한다는 완벽주의 성격을 가지진 않았을까...?

 

평화는 바로 너와 나의 끊임없는 배려이다. 윤도현(가수)  - 평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방송생활이나 가지고 있는 이미지, 옳은 것에 대한 신념, 그 주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말이다.    

 

누구도 제 빛깔 잃지 않고 조화롭게 하나되는 조각보 같은 것. 이철수(판화가) - 이 글귀를 읽는 순간 선생님의 단순하지만 절제된 미학, 하나의 이미지가 판화처럼 머릿속에 딱 하고 그려졌다. 과연 조화를 중시하는 그 분 답다.

 

있는 그대로를 놔두는게 평화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 평화는 없다. (강정마을에서) 문정현(신부)   - 행동하는 지식인, 투쟁하는 종교인인 문정현 신부님을 뵈오면 누구라도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그러시지 않으셨던가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죄악이다.' 평화를 위해 온 몸을 다해 세상과 맞서 싸우시고 계신 세상의 모든 용기있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고 깨닫고 그리고 행동하기를......  

 

그 외,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이 말씀하신 평화에 대한 짧은 명언은 강렬하고 신선하다.

 

  책을 읽다 '우리학교 방문기' 란에선 격하게 눈가가 충혈되서 머쓱했다. 다큐영화로 접했던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때 그 장면이 고스란히 책으로 되살아 난다. 일본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정체성, 자긍심, 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혼신의 배움....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떠한 것도 해주지 않았으나 그들은 스스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왜 평화가 이토록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게 사는 것일까에 대한 소중한 답을 이 책에서 아이들이 찾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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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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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12월엔 남들 다 하는 영어 독해가 후지다고 나름 판단하여 공부도 할 겸 어렵지 않는 책을 찾아다녔는데 이 달엔 크리스마스가 있는 터라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를 골라 쉬엄 쉬엄 읽어 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사전 찾기가 귀찮아 두권을 둘다 들고 다녔는데 페이퍼 백이라 가능한 일이지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고.  펭클 두근두근님의 [까페 런던] 을 쫒아 가보려 했으나 원체 삶이 무규칙적인 데다가 수준이 너무 높기도 하여 혼자 진도 나갈때 까지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의외로 빨리 끝나게 되더군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복문이 상당히 많아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스토리가 꽤 익숙한지라 나름 선방... (다시 기초부터 해야 할까 봅니다 흑...) 원서는 기존 펭클 판형보다 약간 작지만 표지가 훨씬 선명한 편이고 그외는 같습니다. 삽화 은근히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 ( 뉴욕 피어폰트모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판을 그대로 살렸다고 해서 혹시나 컬러 도판을 하나라도 넣어주나 싶었는데 원서도 삽화는 번역판도 같더라구요.)

 

   생전에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라 불리울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사후에도 한번도 절판된 적이 없을 정도로 널리 읽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역시 초등학교때 축약본으로 읽어 본 후 제대로 된 원본은 처음 읽어보는데요. - 아... 초등학교 5학년때 스쿠루지 연극하던 때가 30년이 넘어서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이는 내가 말리 유령 역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색종이를 동그렇게 오려붙인 다음에 길게 늘여뜨려 쇠사슬을 온몸에 칭칭 동여맸는데 이건 꽤나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알록달록한 쇠사슬이라니 원...) 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조카의 부인으로 나왔는데 그 조카가 나와는 일종의 연적인 동시에 라이벌 관계에 있어 몹시 분했던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그 유명한 묘지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각보다 분량이 없어 의외였고 (사실 연극의 하일라이트 였는데 말입니다....)  책표지에 나오는 페치위그 씨의 축제 대목은 연극 자체에선 통편집 되어 다소 생경했는데요 디킨스식 화려한 묘사에 - 이를 테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악사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특별히 준비를 해 둔 흑맥주 술통으로 가서 얼굴을 처 박았다. 그랬다가 이 정도 추고 쉬느냐고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등장해서는, 춤추는 사람들도 없는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전의 악사는 녹초가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지금 막 새 악사가 도착해서 쓰러져 죽어 없어질떄까지 해보자고 굳게 결심한 것 같았다.]  읽는 눈이 다 흥겨워졌지 뭡니까.

 

  어쨌거나 <크리스마스 캐럴>보다는 주인공인 스쿠루지 영감만 기억났던 이 책이 머리 속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성탄전날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에서 아기 예수 마굿간에서 태어난 연극 하던 기억과 (늘 저는 동방박사 3 이 역할로 주어졌지요) 누이들 따라 새벽송(케럴링이라고도 하는데요. 요즘은 잘 하지 않더라구요) 부르면서 동네 돌던 아련한 기억이..... 음.. 고딩으로 올라간 후 교회에 가 본적이 거의 없어서.... (저를 아껴주시는 모 전도사님은 늘 저를 위한 감사기도를 올려 주신다는 데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만..) 매해 크리스마스때 떠오르는데요 올해는 처음으로 혼자 보내서인지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 심지어 회사 출근까지 해서 온종일 일을 했던 터라 - 공교롭게도 그날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몸이 살짝 움직여지더군요. 특히나 꼬맹이 팀에게 양부가 되어주기까지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올때는 괜시리 웃음이 삐죽삐죽 튀어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근사한 단편이 무려 일곱편이나 들어 있습니다. <가난한 일곱 여행자와 몇 몇 단편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하니 눈여겨 볼만 하겠습니다. 또한 <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 라는 단편집 또한 곱씹어 볼만 하겠죠.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즐거운 날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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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펭귄클래식 48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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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ROTHER IS WATCHING YOU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

 

 

 

  2011년 겨울이 슬슬 다가오는 느낌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참 오래도 읽었다. 세번이나 읽어 다 아는 내용을 곱씹어 가기엔 슬슬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낸다. 라면을 끓여 냄비 받침대로 쓰려고 신문을 헤적거리다 보니 그 틈 사이로 이 책이 뒤집어진채 놓여있다.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 속에서 들불일어 온 산을 태워버릴 듯 쏟아진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비정상적인 가진자의 마음도 저러할 것이리라. 북한을 방패삼아 끊임없이 우리를 협박하고 하고 싶어 한 말은, 밥그릇을 뺏어 버림으로 속박하며 국민들에게 무지를 강요하는.

 

  어찌 1948년도의 디스토피아는 1984년도를 지나 2011년도에도 폐기되지 못한 상태에서 심심풀이로 읽지 못하게 되는지...... 하하.. 정말 이거 예언서인가...... 이 땅, 12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입맛이 씁쓸함을 떠나 이런 세상에선 별로 살고 싶지 않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1984는 여러모로 지금의 한국 사회에 끼워넣어도 무방할만큼 대단히 흡사하다.  우리의 영웅이 될뻔 했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에서 근무를 한다. 진리부라고 ? 여기는 거짓을 조장하거나 기록변조를 하는 곳이다.  지금의 한국 검찰에서 일하는 셈이다. 아... 물론 검찰이 한 99%는 진실한 진실을 찾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물론 검찰내에서 양심의 소리는 스미스처럼 아주 조그맣게 들리지도 않게 소리가 날듯 말듯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아... 이것도 또한 주어를 빼야 하나......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스미스는 체제에 반기를 들려고 했다. 왜 ?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 때문에 ? 글쎄.... 무의식적인 인간 본연에 충실하려고 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비겁하게도 나는 성선설에 희망을 거는 편이다.) 그의 대척점에 있는 오브라이언은 어떨까 ? - 모든 인간을 전부 성선설에 대입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人間들은 성악설에 가까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 그리하여 세상은 불공평하며 인간또한 불완전 하지 않은가 말이다. - 체제의 수호자이며 어쩌면 그가 빅 브라더의 후계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스미스는 죽기 직전에야 빅 브라더의 무한한 사랑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을 보자니 한국의 모 국회의원이 모락모락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민주화의 열사로 시작해서 거대 여당의 거시기까지 떠올랐다가 토사구팽의 위기에 몰린 듯한 모양새의 소유자.... 물론 스미스와는 좀 다른 선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면에서 오브라이언의 인간 내면은 어떤가. 외형적 실체가 없는 듯 하지만 기득권의 최상위층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며 우매한 일반 대중의 사소한 것 하나 까지(아...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지도 편달해야 할 어리석은 백성들로 보고 있다. 네까짓 것들이... 발톱에 때만도 못한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우리가 그리 정했다면 당연히 따라 와야지. 조금 배웠다고 설치는 꼴들이라니....) 조정하고 조작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를 농락하듯 말이다. - 얘네들은 그때 만큼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었지만 싸구려 스릴러 소설에서 처럼 모든 것은 오브라이언 류의 지적 설계(?) 에 의한 것이지 않았던가.

 

  이 둘의 중간지점엔 상당히 모순적인 - 마치 요즘의 젊은 아해, 미안한다 1년에서 ~4년전 쯤 전의 아해들을 보는 듯한 줄리아가 인상적인데 다음 세대를 생각지 않고 나의 일에만 관심이 있는,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어찌되던지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는 ( 그리하여 윈스턴 스미스는 그 유명한 말을(?) 내뱉었는데 "당신은 허리 밑으로만 반역자군요") 그녀는 1984에 어울리지 않는 명랑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흠... 뭐 바꿔 말하자면 그런 성격이 아니고서는 저런 정신나간 환경속에서 버틸 수가 없었겠지 하는 안쓰러운 마음도 있고, 어쨌거나 그에 머물지 않고 각성하는 그녀의 사랑스런 모습은 소설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꽤 비극적인 1984의 결말은 처음 읽었을 당시와는 달리 - 그때는 어릴때라 어안이 벙벙했으며 뭐 이딴 그지같은 소설이 있지 라고 집어던진 것 같은데 -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두번을 더 읽고 나니 울컥 눈물이 솓구친다.  [ 투쟁은 이제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는 이제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집단앞에 무너져 내린 스미스의 마음이 역설적으로 내 보여진 마지막 문장은 두고 두고 공포 속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버렸다. 인간의 의지란 집단의 무지 속 공포와 세뇌 속에서 무력할 수 없다는..... 지금 2011년 생존의 밥줄을 끊어 저항을 분쇄하려는 대한민국 0.1% 기득권의 세력은 빅브라더와 다를 바 없는 망령들이다.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도서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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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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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함과 간결함은 산문의 첫 번째 가치이다.
산문은 생각, 생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없다면 빛나는 표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산문에 관하여 中 - 알렉산드르 푸슈킨

 

작품 해설을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눈에 와서 콕 박힌다. <작가에게는 끊임없이 '생각 , 생각 '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생각, 즉 작가의 예술적 기획은 안타깝게도 작품의 행간에 교모하게 숨겨져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적극적인 독서와 반추를 요구한다.> - 즉슨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유일 것이다. 등등.  
 

아...... 우리는 그저 눈에 밟히는 대로 읽으면 안 되는 것일까 ? 그냥 좀 편하게 읽으면 않될까 ? 그냥 재미있는 연애소설 낭만담이잖아. 지식소매상이시라는 유모님처럼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로 해석하면서 행간 하나 하나의 의미를 따라가기엔 시간이 부족하잖아, 아니 이건 핑계지..... 그저 깊게 생각하기 귀찮을 뿐이야. 이런 건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꺼잖아. 생각, 생각을 필요로 하는 책은 머리 아파. 난 그냥 내가 읽고 싶은대로 읽을꺼야, 라고 부질없이.. 가끔 반항해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시대상을 비추지 못하는 글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수많은 글 중에서 살아남은 고전이기에 내가 살아가는데 실제적 좌표를 세워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말이다. 
 

예전엔, 나는 책읽기가 버거울때가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어려운 책도 아니였다. 그저 줄거리만 따라가도 즐거운 소설이었다. 나는 입을 헤에 벌리고 서사가 주는 눈의 즐거움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부유하다가 어느 순간, 장애물에 턱 하고 걸려 더이상 떠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읽기의 고통은 시작되었다. 생각, 생각이 많아지면 책읽기는 속도가 느려진다. 어떤 날은 책 한 페이지도 넘기기 못할때가 있다. 그걸 무시하고 읽다가는 그 책은 볼장 다 본 것이다. 나중에 이 책을 왜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하얗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책에 대한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배경지식을 알아야 이해가 되고 생각도 좀 덜하고 재미있는 가벼운 고전을 골라 읽었다. 주석이 많은 책을 좋아라 했고 (주석을 달지 않는 개같은 출판사와 번역자는 망해버려랏!!) 길지 않는 소설을 읽다 보니 책읽기의 즐거움과 생각을 덜하게 되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책읽기를 대략 삼사년 정도 반복하니 이제 좀 정리가 된 것 같다. 
 

오래 전 읽었던 [대위의 딸]을 다시 한번 펼쳐 본다. 유쾌한 낭만 모험극으로 기억하고 있던 책이다. 역시 즐겁다. 잔치국수 먹듯이 후루룩 마시고 났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고명을 얹지 않아 먹은 듯한 느낌이다. 아... 재미있다 그럼 끝인가 ? 이건 좀 아니잖아...... 집에 있는 러시아 역사서와 인터넷으로 [대위의 딸] 집필 당시 배경을 발췌해서 읽어본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어떠했는지 푸슈킨이 멋진 녀석으로 묘사한 푸가쵸프도 찾아보고 말이다. 일주일을 묵혀놓고 다시 슬슬 읽어본다. 줄거리는 다 알고 있으니 조급하게 따라 갈 일도 없다. 느긋하게 읽다보니 과연 작품해설에서 말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나는 오렌부르크 봉쇄를 묘사하지 않으련다. 이는 역사의 영역이지 가족연대기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방 관료들의 허술한 조치가 도시의 봉쇄를 초래했고, 그 결과는 실로 치명적이어서 주민들은 기아와 온갖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점에 대해서만 간략이 적어두기로 한다. 오렌부르크의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모두들 실의에 빠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긴 한숨만 내쉬었다. 주민들은 자기 집 뜰 안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익숙해졌으며 푸가쵸프가 기급공격을 해와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P.119

마치 앞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 묵시록적 예언처럼 들려왔다. 우리는 과연 안드레이치 그리뇨프처럼 해피한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 기적처럼 여제를 만날 것인가.

현실은 혹독하다. 그리하여 현실을 동화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미화하려 하지만 가엾게도 다 떨어져 나간 외피 사이로 눈물은 뚝뚝 떨어진다. 그 슬픔을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스스로 닦지 못했다. 상황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그들에겐 무기가 없었지만 우리에겐 주권을 행사할 한표가 있다. 이것으로 어쩌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 아 갑자기 울컥했다.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다시.....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 남들과 어떻게 잘 조화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위함이 아니던가. 답을 찾으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담아야 한다. 그 생각을 찾아야 하고 생각을 실행하여야 한다. 대위의 딸이 마냥 낭만 모험활극담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죽어라 파기만 해서는 무엇할 것인가. 즐거움도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중용이라는 것 -'중간(中)에 서서 한편에 치우침이 없다'- 이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리해싸면 회색분자같은 새끼라고 이젠 욕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잠결에 비몽사몽... 
                                                   펭귄 클래식 코리아엣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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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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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은 뒤 내 무덤에 표할 적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준다면
나의 마음 잘 이해했다 할 것이니
품은 뜻을 천년 뒤에 알아주리
                  

                               나의 삶 (我生) - 김시습

사랑은 미몽처럼 어지러우나 달콤하고 깨어난 후엔 슬프다.
현실과 어긋난 삶은 비극적이다. 그러함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내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내 사랑은 우울하다.
양생이 이러하였고 이생이 그러하였다. 그럼으로 사랑은 고독해 진다.
홍생의 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은 영원의 채비를 서두르지 않았던가.

한 그루 배나무 꽃 적막함과 짝하여
가련하게도 달 밝은 밤을 저버렸네
청춘에 홀로 누운 외로운 창가에 누웠는데
어디서 귀한 님 피리를 불어주나                            - P.7

사랑은 사랑을 부른다. 그것이 어떤 사랑인지 따위는 알 수 없다. 귀인의 사랑이어도 좋다. 나는 단지 사랑하였을 뿐이다. " 그대의 천도제에 힘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덜어져 있지만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대는 다시 불법을 닦으셔서 함게 윤회를 벗어납시다." 사랑은 이리 짧게 흘러갔고 이별을 고했으며 슬픔을 남긴다. 그가 어떻게 세상을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생이 이어서 읊조리기를,

뒷날 우리 사랑이 새 나가면
비바람 무정하게 불어닥치리니 또한 가련치 않은가         - P.32

사랑은 처음부터 불길한 기운을 자아낸다. 이생은 원형질의 무의식 속 불안함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다. 사랑은 지키려는 자의 몫인가. 여자는 스스로를 지키고자 스스로를 버렸고 스스로 이생을 찾아 온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어쩔 수 없음에 떠나가고 만다. 꿈은 깨어났고 그는 절망하여 병이 들어 죽어간다. 
 

양대에서 맺은 운우의 정은 한바탕 꿈속
어느 때나 옷소의 팔찌를 보게 될까
강 물결 무정타 해도
흐느끼며 이별의 강기슭 흘러가네.             - P.67

아스라히 생각해 보니 꿈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생시인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았던 홍생은 어찌 하였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두가 이승과의 사랑은 아니였구나. 그런 것 따위가 뭐 어쨌다는 것인가. 나는 책장을 가만히 가만히 쓰다듬고 만지며 쓸쓸하게 홍생의 시귀를 속 죽여 읽어 본다. 나는 그러함에도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지...... 그냥 되는대로 물어 보다 별안간 얼굴이 벌겋게 되어 허허 웃고 말았다.
 

 

남염부주지 와 용궁부연록은 빼 놓았지만 시감이 어찌나 착착 들어 감기는지 원 ^^ 
 

ps. 펭클 코리아에서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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