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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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니아 전기 1 - 방랑의 전사
카야타 스나코 지음, 오키 마미야 그림, 김희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폐하, 이것은 대체... 저 소녀는 대체, 어떤 자입니까?"
그 국왕폐하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몇 번 말했나. 저건 사람이 아니라고. 말 그대로 진정한 승리의 여신이라고 말이야."
소녀는 가렌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었다.
그 손이 자신에게 닿으려 했을 때, 가렌스는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뒤로 물러나려 했다. 호흡은 거칠어져 있고, 믿어지지 않는 것을 보는 눈으로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벌써 그런 태도를 창피하게 여긴 듯했다. 몸을 떨더니 양 볼을 철썩 소리가 나게 때리고는 점잖게 소녀의 손을 잡았다.
일어서자 두 사람의 신장 차는 상당한 것이었다.
"또 할래?"
"아, 아니. 실례. 이, 이젠 충분하다."
소녀를 보는 가렌스의 눈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18권에 이르는 <델피니아 전기>의 시작인 1권 '방랑의 전사'편.
카야타 스나코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글이기도 하다.
판타지나 추리 같은 장르소설은 아무래도 독자층이 고정되어 있는 편이다.
그것도 숫자가 적다.
게다가 그 적은 독자층 안에서도 호불호가 꽤 분명하게 나뉘는 편이다.
<델피니아 전기> 같은 경우도 호불호가 상당히 뚜렷할 거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 대중적이고 가볍고 재미있게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딱잘라 킬링타임용이라고 해도 좋다.
나쁘게 말하자면 진지함이나 인간이나 생에 대한 성찰 따위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
주인공은 먼치킨이라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도 태연하게 해치운다.
13살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미모의 소녀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자와 힘으로 겨뤄 이기고
검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며 말보다 빨리 달리는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 주인공 리(그란디에타 라덴)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판타지 독자의 반쯤은 고개를 젓지 않을까.
그렇지만 말이다, 이렇게 신나고 흥겨운 소설 하나쯤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1권은 18권이나 되는 시리즈의 첫 권이다보니 사건이 그렇게 많지 않다.
주인공인 리와 월의 만남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처음부터 신나는 활극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실망감을 조금만 참으면 정말 유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권에서 4권까지 왕위에서 쫓겨난 왕이 왕좌를 되찾는 판타지의 꽤나 전형적인 줄거리를
작가가 얼마나 맛깔스럽게 요리했는지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먼치킨이라도 좋다, 머리를 비우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신나는 소설이 읽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