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밀러 펭귄클래식 27
헨리 제임스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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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왜 걸작이고, 명작인지 모르겠다. 미국태생의 자유분방한 '아가씨' 데이지 밀러가 고루하고 인습적인 19세기 유럽귀족문화가 만든 편견으로 몰락하는 이야기. 그녀는 잘생긴 이탈리아 청년과 숙녀가 가서는 안될 곳에 함께 산책을 하고 거기서 얻은 열병으로 죽는데, 이것은 그녀의 분방한 자유가 19세기 유럽귀족들의 삶의 방식과는 불화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고루한 유럽문화에 의해 천박한 미국문화가 죽는 셈인데,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일 것 같다. 19세기 유럽은 벨에포크를 정점으로 쇠락하고, 헐리우드를 앞세운 자본주의 미국문화가 그 자리를 잠식했으니 말이다. 유럽은 미국에 진 것이다.

 

단편이라기 보다는 조금 길고, 장편은 더더욱 아닌데, 펭귄 클래식 판은 앞에 데이비드 롯지의 긴 서문과 헨리 제임스의 글을 함께 실어 장편소설의 두께가 되어 있다. 열광적인 사랑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이렇다할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고, 다만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 분방할 뿐인 미국 젊은 여자의 행태 정도가 전부인 소설. 그녀의 성격(character)이 조금 도드라지게 부각되어 있을 뿐인 이 소설이 고전에 반열에 드는 이유를 도무지 알수 없다. 오후 한때 무료한 시간을 함께 했으나 실망스러운 소설이다. 굳이 누구에게 읽어보라 권할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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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였던 그림자

남미판 386세대의 후일담 소설. 혁명은 가고 남은 자는 먹고 살아야 한다. 후미진 뒷골목 주택에서 집단으로 서식하는 이 왕년의 투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찌질하다. 피노체트 이후 30여년, 이들의 그림자는 길고 우울하지만 절망적이진 않다. 실패한 혁명 이후의 풍경을 보고자 했으나 소기의 목적 달성에는 실패.

 

 

 

 

일단 웃고 나서 혁명

오르한 파묵 때문에 들추게 된 터키 소설. 우디 앨런 소설 이후에 이렇게 유쾌하게 본 소설이 있을까. 풍자는 예리하고 유머는 도를 넘지 않는다. 무스타파 케말 파샤를 동경한 유신의 주역들이 떠오르는 장면들. 군인과 정치가, 언론과 혁명가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 터키판 돈 카밀로와 페포네? 정치풍자 유머 소설로는 최고수준이다.

 

 

 

비틀거리는 여인

이 우익 파시스트에게 이런 정도의 타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니. 연하의 남성-유부녀 사이의 내밀한 감정을 얇고 여린 꽃잎 들춰내듯 묘사해내는 미시마 유키오의 감각. ‘도덕에서 관능으로, 내부의 격렬한 들끓음이 차분차분한 외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일본적 사랑의 존재론. 다른 우주에 대한 이해, 컴컴한 우물을 들여다보는 기이한 각성의 순간들. 인물의 위치를 반대로, 거꾸로 베껴쓰고 싶은 욕망.

 

 

 

 

 

위풍당당

유쾌한 성석제의 귀환, 그는 B급 정서를 가진 동네 양아치를 그리는데 가장 탁월하다. 거기에 맞서는 우직하고 순박한 자들의 원시적 매력까지도.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르는 잡것들이 가족 아닌 가족을 이루고 몸을 부려 하루를 먹고 사는 이야기.

 

 

 

 

 

아버지의 자리/포옹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소설가다. <탐닉><단순한 열정>의 이 여자는 자기를 팔아 소설을 쓴다. 그리고 그 소설은 한 젊은이를 매혹시키고, 그 놈은 33살 연상의 이 소설가와 연애를 하고, 그 이야기를 팔아 소설가가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 지갑에서 툭 떨어지는 동구권 외교관의 그 사진. 넘어설 수 없는 절망의 절벽.

 

 

 

 

어머니의 연인

처음 읽은 스위스 소설. 미약한 처음부터 창대한 내일에 이르기까지의 헌신과 배반. 이탈리아 북부에서 겪은 무솔리니 군대. 실제와 허구가 교차하는, 부성에 대한 애증,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그가 한국 출신의 정치학자라는 게 이런 책을 쓰게 했을 터. 언제나 부분에 대한 확대해석은 전망의 과잉으로 나타난다. 징후적 이해로서는 동의할 만하나, 대안적 질서의 창출로는 난망. 언제나 과잉대표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끝없이 경계할 일.

 

 

 

 

 

디지털 시민의 진화

디지털 시민은 격자 속에 갇혀 있다. 광장은 사라지고, 장벽으로 가로막힌 골목에서 애들이 놀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시민들을 호명해내었으나, 그 진화는 현재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해 가로막혔다. 디지털 생태계의 변동에 대한 설명은 더할 나위 없이 현장밀착적이다. 인터넷 세계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면서 섬세한 애정이 아니라면 쓰여지지 못했을 것.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글쓰기가 혁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글읽기과 글쓰기에서 혁명은 시작된다는 전언. 과연 혁명은 펜과 종이쪼가리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인식 이전에 구체적 삶이 있었다는 유물론에 대한 공박? 또 한명의 재기발랄한 아사다 아키라를 보는 느낌. 그런데, 왜 일본 젊은 지식인들의 책에서는 사기성이 그리 진하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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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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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자야 여사의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을 애틋하고 흐뭇하게 읽은 적이 있었다.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두 번씩이나 마음에도 없는 시골처녀와 결혼을 했고, 그 때마다  아내를 버리고 서울로 도망쳤다. 부모를 피해 도망 온 그가 매번 찾아간 곳은 김자야 여사의 집이었다. 둘은 겨우 3년 동안 불같은 사랑과 달콤한 행복을 맛보았을 뿐이다. “한국 페시미즘의 절창이라 꼽히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씨봉방에 나온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잃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의 그 아내가 바로 김자야 여사다.

 

이 책에서 가장 애틋한 장면은 늙은 김자야 여사가 백석의 시집 사슴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대출받은 뒤 가슴에 꼭 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백석의 시집은 87년 민주화 이후에야 금서에서 풀렸다.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시인의 옛 시집을 50여년 뒤에야 펼칠 수 있었던 심경이 오죽했으랴. 조선권번의 기생이었던 그녀는 훗날 한국 요정정치의 요람인 대연각의 여주인으로 일세를 풍미한 밤의 여인이 되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해 지금의 길상사를 세운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내 사랑 백석>이 울림이 컸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김자야 여사의 문장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배우고 쓴 사람들의 문장은 지금의 그것과는 달리 담백하기 그지 없다. 한국어의 문장이 지금처럼 복잡하고 어렵게 변한 것은 추상적 논리의 언어로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이런 과정에서 마음의 자기표현과 감정의 담백한 토로라는 문장의 본령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연변작가인 고 김학철의 문장 같은 문인들의 글을 보면 자본주의의 가 문장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짐작이 된다.

 

김자야 여사의 책에는 현학과 수사를 걷어낸 문장의 맨 얼굴이 있었다그녀는 착하고 탁월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문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시인 못지않은 감성과 문학적 재능을 가진 시인의 아내이자 연인이었으며, 그녀는 남은 생이 증거하듯 남루하고 궁핍한 시인의 아내로서 필수불가결하게(?) 갖추었어야할 생활력과 '의지'도 아울러 갖춘 여인이었다. 모름지기 시인의 아내란, 정말 힘이 센 것이다.

 

<내 사랑 백석>의 뒷자리에 <김수영의 연인>(책읽는 오두막)을 놓고 싶다. 올해 2월에 출간된 이 책을 동네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단숨에 읽었다. 분량이 얇기도 하거니와 까칠하고 괴팍했던 김수영의 숨겨진 면모와 내면, 그 시인을 온전히 사랑하고 살뜰하게 챙겼던 시인의 아내가 살아온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이 책을 쓴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역시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였다.  팔순 노인의 문장이 이렇게 세련되고 촉촉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고스트라이터가 아니라 그녀가 직접 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한 챕터는 나는 시인의 아내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이런 자기선언은 당차고 아름답다. 이런 자존의 언어는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에서 보이는 고독과 유폐의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40년대 이화여대를 다닌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 책에는 '흑인시'를 쓴 시인이자 남로당 지하당원이었던 배인철과의 짧고도 비극적인 사랑, 김수영과의 만남과 임산부로 치른 전쟁의 참혹함, 섬약하고 신경질적이었던 김수영과의 결혼생활, 김수영의 어이없는 사고사, 김수영의 시와 그 시에 얽힌 가정사 등 노년에 이른 김현경의 담담한 회고가 담겨있다.

 

김수영은 시를 쓰고 그녀는 그 시를 원고지에 정서했다. 그녀가 없으면 김수영은 밥을 챙겨먹지 못했으며, 시를 원고지에 옮기지도 못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서강대 언저리인 구수동에서 양계장을 했으며, 재봉틀을 돌려 양재를 했고, 양장점을 운영했다. 그녀가 차린 양장점 '그레이스'는 당시의 서울 상류층이 드나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수영 사후에는 미술품 컬렉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생계를 감당한 여성 가장으로서의 면모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김수영 특유의 가부장적이고 소시민적인 신경증을 감내한 여자로서의 모습이다그녀는 김수영의 폭음과 선병질적인 기질을 온전히 포용하고 미덥게 그를 보살폈다.  

 

그가 짜증을 낼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아내인 나밖에 없었다. 수영은 밤새도록 우리의 억압적 현실을 탄식하면서 상처난 짐승처럼 괴로워했다, 그때 나는 그런 수영을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다. 왜 한 가정의 평안이, 시대의 우울에 영향을 받는 한 남자로 인해 파탄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수영의 분노를 묵묵히 받아내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김수영이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바람아 먼지야 물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라고 자책할 때, 그 탄식과 신경질을 온 몸으로 받아냈던 여인이 김현경이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수영 시의 현대성은 시대인식, 양식과 감수성의 현대성을 의미할 뿐, 그 현대성의 안쪽 한켠에는 가부장적 봉건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김수영 평전을 쓴 최하림은 그를 일러 퓨리탄의 초상이라고 했다. 퓨리탄의 염결성안쪽에는, 그러나, 위장된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런 김수영-김현경 부부의 내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김수영의 시 죄와 벌은 이렇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그러나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우리들의 옆에서는/어린 놈이 울었고/비오는 거리에는/사십명 가량의 취객들이/모여들었고/집에 돌아와서/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아니 그보다도 먼저/아까운 것이/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것이었다.”

 

아내 김현경은 묻는다. “대로변에서, 그것도 어린 아들 앞에서 부인을 때리는 시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시에다 우산을 두고 온 일이 아깝다고 말하는 시인의 감정에는 무엇이 섞여 있었을까?” 여기에는 남편 김수영에 대한 서운함이 살짝 묻어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회고가 '남편'을 향해 있지 않고, ‘시인의 마음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의 한쪽으로서 그날의 폭력을 묻지 않고, ‘시인이라는 일반명사의 주체에게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김수영은 그런 존재였던 모양이다. 남편이기에 앞서 자신의 내부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자 세상과 불화하며 성스러운 아우라를 함께 지닌 인간. 그런 '시인'이기에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있었던 것.

 

그것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아니 바로 그 첫 날 밤은/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모양이다/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다시 돌아간다/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전문)

 

그녀는 사창가 창녀와 외도를 하고 온 날 자신과 섹스를 하는 내용의 시 을 공개하며, “나는 그런 마음으로 아내로서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이 시를 공개하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면 어떠랴.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시가 더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수모와 치욕도 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를 두고 김수영다운 적나라한 솔직함이라고 말해선 안된다. 그 시는 공개발표된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서랍에서 발견된 것이다김수영은 이 글을 시로서 의식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메모하듯 휘갈겼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밀한 일기의 편린을 본격적인 시라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김현경은 만남에서 죽음까지 애오라지 김수영만을 사랑하고 그만을 위해 헌신한 아내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그로테스크한 삽화처럼 보여지는 대목은 김현경과 김수영의 선린상고 선배인 이종구와의 인연이다. 김현경은 전쟁의 와중에 의용군에 징집되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수영과 극적으로 재회했으나, 전쟁으로 생활이 궁핍해지자 이종구에게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간다. 그러다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이종구의 손에 이끌려 사실상의 결혼 상태로 일년 이상을 함께 살았다.

 

어느 아침 이종구와 김현경이 나란히 앉아 아침밥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 김수영이 자신의 아내를 찾으러 이종구의 집에 왔다. 그러나, 김수영은 자신의 아내를 되찾아 돌아가진 못했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아내를 선배에게 빼앗긴(?) 채 돌아오는 김수영, 그리고 남편인 김수영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을 감금하고 감시한 이종구와 일년여를 동거한 김현경. 그녀의 선택은 이종구에 의해 강요된 것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김현경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식결혼을 요구하는 이종구를 따돌리고 김수영에게 돌아간다.

 

잘못된 선택으로 수영을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게만큼은 귀하고 당당한 여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마조마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수영이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를 본 수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꼭 잡고는 근처 거리를 천천히 돌아 그 길로 자신이 살던 집에 데리고 갔다. 마치 늘 하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의 손을 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으로 돌아가는 김수영, 그리고 그를 따라 선선히 집으로 돌아가는 아내.  영화 라 스트라다를 보고 난 뒤 거리에서 아내를 우산대로 구타한 김수영의 심리에 대해 김현경은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앤서니 퀸이 남루한 모습을 한 채 방랑하는 야바위꾼으로 나왔던 그 영화. 상영 내내 펼쳐지던 황량하리만큼 넓은 영화의 공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수영과 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수영은 나를 때리고 죄와 벌을 썼는지 모른다. 수영은 그날 일에 대해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1958년 가을이었다.”

 

김수영의 시 죄와 벌도 이해가 간다. 사람의 삶이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욕망과 좌절, 사랑과 질투, 인내와 폭력 사이에서 길항하고 충돌하며 굴러가듯이, 이 시인 남편과 그 아내의 삶도 애증병존과 모순적 감정의 뒤섞임으로 이뤄진 것이리라. 김수영의 사랑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왜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고, “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이던가. '금이 간 얼굴'은 흉터로 남아 그 앞에 선 사람이 평생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그리고 수영과 나라는 짧은 두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복잡한 심경과 인생의 내력이 숨어 있을 것인가. 당사자가 아닌 독자는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김수영의 연인>에는 김자야 여사의 백석 회고처럼 순정하고 기구한 사랑의 내력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수영의 싯귀는 공자의 생활난의 마지막 대목이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事物과 사물의 生理/사물의 數量限度/사물의 愚昧와 사물의 明晳性/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소시민 김수영의 고뇌는 잘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영 특유의 그 형형한 눈이 보인다이따끔씩 나는 사물의 생리와 수량과 명석성을 바로 보자는 김수영의 단단한 결의를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돌연사의 예고도 함께 말이다. 

 

ps. 김수영의 넷째 동생은 수려한 용모의 엘리트였으나 북한 의용군에 자원입대를 했고, 우익 대한청년단의 단장이었던 셋째 동생은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둘째 동생은 무능한 장남의 자리를 대신한 가장이었고, 누이동생 김수명은 문학잡지 <현대문학>의 편집장을 지낸 미모의 문인. 김수영의 복잡다단한 심리만큼이나 그의 가족사도 기구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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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보 2013-03-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도 쓰셨소.
 

 

책을 기억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출판사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이건 대학시절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긴 버릇인데, 그래서인지 집에 있는 책도 출판사별로 정리를 해 놓고 있다. 이건 사실 미학적이유이기도 하다. 출판사 별로 총서류를 내놓고 있고, 이 시리즈물들은 대개 디자인도 훌륭하고 가지런히 꽂아 놓을 때 보기도 좋기 때문이다. 이사를 한 뒤 출판사 별로 책을 정리하고 나서 훑어보니 내가 선호하는 출판사들이 한눈에 정리가 되었다.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한길사, 후마니타스, 돌베개, 새물결 등 대개가 인문사회과학 책을 내는 곳들이었다. 흰색 바탕에 빨간 띠를 두른 문학과지성사는 책을 한데 모아 꽂으면 방안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디자인이나 책 장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책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밑줄을 긋고 책장에 꽂아놓은 책들은 문지도 창비도 아닌 민음사의 책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가장 많은 책들도 바로 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창비, 문지, 민음사, 한길사 등의 출판사에 큰 빚을 졌다는 철학자 박구용의 말을 빌자면, 내 생각과 세계관은 이 출판사로부터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읽기에서 시작되었을 민음사 책에 대한 선호는 지금도 여전하다. 오늘의 작가총서, 오늘의시인총서, 세계시인선, 벤야민과 아우에르바흐가 들어가 있는 이데아총서, 김우창·유종호·고은·김춘수 전집, 수많은 단행본들, 그리고 모던클래식과 세계문학전집. 심지어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셜록 홈즈 전집을 낸 황금가지와 칼 세이건이 포함된 사이언스북스. 비룡소의 어린이 책까지 민음사와 그 방계 출판사는 오랜 세월 내 외로움과 고독의 동반자이자 지식과 안목의 밑거름이었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자서전 <>을 읽은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김현과 고은, 김병익 등의 책에서 간헐적으로 읽은 바 있으나 그의 육필로 그의 생애와 민음사의 뒷이야기를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 자서전에 싣고 있는 소설 자유풍속을 오래 전 선배의 서가에 꽂힌 50년대 서울대 문리대 문학회지에서 읽은 기억도 난다. 맥파로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소설을 썼던 문청출신의 사장이라니 과연 이 출판사의 책들이 왜 문학과 인문학에 집중되었는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그의 품성과 인간적 교유, 가치관과 행태마저도 고스란히 이 굴지의 출판사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하룻동안 후딱 읽어냈는데, 그만큼 흥미롭기도 했고, 내가 가진 특유의 호사취미에 들어맞는 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의 이와나미 쇼뗑이나 프랑스의 갈리마르 같은 출판사들은 나름의 고집스런 자기 원칙과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도 나름의 인문사회과학의 에콜을 형성하고 있는 창비나 문지같은 출판사가 있다. 그러나, 민음사는 김우창과 유종호, 이남호가 편집위원으로 있던 <세계의 문학>이 잘 보여주듯이 민음사는 특정한 에콜과 상관없이 폭넓은 의미에서 인문주의적 시각을 표방하고 있었으며, 좌와 우(라기 보다 자유주의적?)를 아우르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느 출판사보다 기민하게, 그리고 때로는 더 선도적으로 트렌드를 읽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책을 내놓았은 곳일 터이다, 나쁘게 말해 상업주의적 감각에서는 우직한 창비나 문지보다 훨씬 윗길이었고, 책을 펴내는 감각도 탁월했다. 여기에는 김승옥, 정병규, 박상순으로 이어지는 탁월한 북디자이너들의 기여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사회의 문학(인문) 세대의 어떤 부침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한다. 박맹호 곁에는 신동문과 고은, 김현, 김우창, 유종호 등이 있었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6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문학의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가장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주역들이다. 고은의 감성, 김현의 문학적 감식안, 김우창의 인문주의, 유종호의 탁월한 비평이 없었더라면, 이 출판사의 오늘도 없었으리라. 김현이 쓴, “문학이 그것을 산출케 한 사회의 정신적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면, 시는 그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이룬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시인총서 발간사는, 개인적으로 20세기 한국문학이 산출해낸 가장 탁월한 문장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헌책방 순례를 취미삼아 다닐 때, 눈에 잘 띄이지는 않지만 보는 족족 샀던 책들이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정현종의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가 끼어있는 오늘의 산문정신 시리즈였다. 나온 지 오래되었어도 장정이나 편집, 필자와 글도 결코 낡지 않은 책들이었다. 헌책방에 쌓인 저 수많은 책들 가운데 90%는 다시 읽히지도, 읽을 필요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일본어 중역의 날림 번역본 소설들, 디자인이라 할 수 없는 장정, 몽롱하고 애매하며 순응주의적인 긍정의 철학을 설파하는 에세이들 가운데 민음사의 이 시리즈는 오롯하게 그 현재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책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간의 풍화작용과 패러다임의 변혁을 겪고 나서도 남는 것, 사상과 콘텐츠로서만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책도 남을 수 있어야 하는 것,

 

박맹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우리시대의 한 탁월한 출판편집자가 그런 책을 낸 사람중의 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는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자아버지를 두었으나 그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인문출판의 커다란 산실을 만들었다. 그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지만 대개 저자를 만나고 책을 만드는 것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수천그루의 나무를 희생하여 출판시장에 상품을 내놓는 일일지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가장 를 짓지 않고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거나, 남의 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강탈하거나, 현혹과 요설과 악문으로 살아가는 일이 대부분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일진대,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그게 가장 행복한 직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을 통해 본 박맹호의 삶은, 아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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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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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소설에서 여자는 성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친밀감의 대상, 말하자면 프렌치키스로 가기 직전의 키스같은 것이다, 라고 쓴 적이 있었다. <제망매>에서 <엘리야의 제야>에 이르기까지 그의 누이 콤플렉스가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번에 나온 <해피 패밀리>를 보니 이젠 키스를 넘어 섹스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절필을 선언한 마당이니 친밀감을 넘어 아예 근친상간까지 가보자는 것일까. 문학적으로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온건한 자유주의자를 자처해온 고종석에게 그런 주제는 다소 파격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황인숙, 강금실, 그리고 죽은 여자 시인 이윤림 등과 같은 실제의 누이들’(언니들?)에 대한 애정을 표나게 강조해 왔는데, 그것은 애정어린 친밀감의 관계였지 성적 관계를 의미하거나 연상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소설인데 뭔 얘긴들 못하겠는가. 고은의 시 폐결핵을 두고 김현이 누이 콤플렉스 운운했지만 이 허풍스런 시인에게도 누이는 없었지 않나.

 

나는 고종석의 소설보다 먼저 그의 기사를 먼저 읽고 익숙해진 세대에 속한다. 그의 언어학이전에 소설과 시에 대한 그의 비평(이라기보다는 기사에 가까운, 비평저널리즘이 맞을 것 같다)을 먼저 읽은 세대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사회의 문학적 지적 산출물에 대한 고종석의 요령있는 기사를 먼저 읽은 사람의 눈에는 그의 소설이 소설로 보이지 않더라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스토리 전개와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비평, 문학비평, 언어학적 지식을 슬쩍슬쩍 끼워 넣고 있는데, 지적 교양을 풀어 놓으려는 이 유난스러움은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장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유럽 기자 연수프로그램을 다녀온 뒤 써낸 <기자들>도 그러하고, 최인훈의 <회색인>의 후속편을 써내려간 <독고준>도 그러하다. 그러니, 순전히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완미한 단편들이 차라리 더 소설같다는 느낌이다. <해피 패밀리>가 소설로서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내게는 그러했다.

 

가족, 그러니까 소설 속 한씨네 가족들의 이야기는 이 혈연공동체가 기실은 부스러지기 쉬운 허약한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 공동체와 혈연적 끈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존재(영미)를 좀처럼 내부 구성원으로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 완강한 배태성을 속성(민경화-한민주)으로 하고 있으며, 구성원 사이의 불가피하게 존재해야 마땅한 금기를 넘어서려는 위반의 욕망(민형-민희)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자,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는 끝없는 분투와 노력(민형-현주)을 해야만 하는 집단이다. 게다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증오,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원/구심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애정은 때로는 더없이 끈끈하면서도 때로는 서로에 대해 냉담하기도 하다. 이런 공동체가 가족이라는 경계를 스스로 허물지 않고 있는 이유는 위선때문이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서현주)

 

언어도 순수한 언어는 없으며, 이종 언어간의 상호작용과 뒤섞임 속에서 감염된 언어로 존재하듯이, 가족 역시 서로 다른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면서도 깨지지 않고 굴러가는 느슨한 연대의 산물이라는 게 고종석이 말하는 가족이다. 그런데, ‘위선을 필연적 속성으로 가지지 않은 가족이란, 아니 공동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애정과 결속의 힘이 유난히 강력하여 도무지 다른 틈을 허용하지 않은 순백의 가족은 존재할 수 있을까. “완전한 소통과 연대는 불가능하다라는 고종석의 전언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 불가피한 위선이 자신의 글쓰기로 향할 때, 그는 돌연 순정한 낭만주의자가 된다. “내 가족에 대해서도, 내 술 친구들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한민형의 말을 빌어 풀어놓는 이 전언에는 =사람이라는 뷔퐁의 격언이 전제되어 있다. 그가 이 소설 첫머리에서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라며 뷔퐁을 부정하고 있으면서 왜 그는 떠들썩하게 일간지에 대고 절필을 선언했을까. 사람이 위선자인데, 글까지 위선을 확장할 수 없다는 글쓰기의 순수주의? 글이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의 영역이어서?

 

말이 나온 김에 고종석의 절필선언에 말해보자면, 나는 좀 뜨악한 편이다. 김주영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이 고갈되고 관습적인 글쓰기만을 하고 있다며 절필 선언을 했을 때, 김승옥이 광주이후 절필을 하고 기독교에 귀의했을 때, 한수산이 전두환에게 된통 얻어맞은 뒤 절필선언을 하고 일본으로 (문학적) 망명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대체 고종석의 절필선언에는 어떤 내적 절실함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그리도 많은 글을 쓴 백낙청이 통일부 중하급 관료나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보좌관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라고 말할 때는 더더욱 뜨악했다. 아니, 고종석의 글쓰기가 언제부터 세상을 바꾸는일이었던가. 애시당초 그의 글쓰기는 전투성을 내장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실천적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았던가. (이른바 창비 사단에 대한 그의 혐오에 가까운 독설을 보면 더더욱)

 

트위터리안 ‘JS’로서 고종석은 문학적 글쓰기와는 달리 전투적인 글쓰기를 감행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른바 친노’(혹은 깨시민, 혹은 문빠)에 대한 그의 비아냥은 다소 불편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쾌하게 그의 트윗을 읽고 있다. 호남, 김대중, 구민주당, 김현과 문지사단, 프랑스의 지적전통에 대한 상대적 호의도 여전히 그의 트윗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인 것 같다. 때로, 그의 전투적인 트윗을 보면 그게 어떤 콤플렉스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호남출신, 서울대가 아닌 후기 성대, 언어학과 대학원에 들어간 법학 전공자(그것도 수료), 프랑스 어/문학 전공자출신이 아닌 프랑스 유학생, 상대적 마이너였던 코리아타임스에서 출발한 기자생활, 진보성향의 기자들이 득시글대던 초기 한겨레에서 보기 드문 자유주의적 성향 등등. , 물론 이는 아무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고, 그의 글쓰기가 어디서 연원하든 나는 그를 오랫동안 읽어왔고, 탐독해 왔으며, 그가 절필선언을 철회하고 다시 종이에 쓰여진 글을 썼으면 좋겠다. 콤플렉스는 그의 몫이 아니라 기실 그 자신이 많은 고종석 에피고넨들(나를 포함하여)에게 유발시켰던 심리적 열등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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