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점들’, 한 여인의 변덕과 연약함에도 애착을 갖는다. 그녀의 얼굴에 주름살과 기미, 오래 입어 해진 옷과 삐딱한 걸음걸이 등이 모든 아름다움보다 더 지속적이고 가차없이 그를 묶어 놓는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런가? 감각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 창문과 구름, 나무가 우리 두뇌 속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바로 그 장소에 깃들고 있는 것이라는 학설이 옳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긴장되고 구속되어 있다. 우리 눈을 못뜨게 하면서 감각은 한무리의 새떼처럼 그 여인의 눈부심속에서 펄럭이며 날아오른다.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숨을 곳을 찾는 새들처럼, 그렇게 저 감각들은 안전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그늘진 주름살 속으로, 매력없는 행동과 사랑받는 육체의 드러나지 않는 흠들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 결을 지나가는 그 누구도 바로 여기 이 결점들, 이 흠들 속에 덧없는 사랑에의 동요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 <모스크바 일기>(김남시 번역) 44쪽 각주에서 인용

 사랑하는 남자는 연인의 ‘결점’에만, 여자의 변덕과 약점에만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얼굴의 주름, 기미, 낡아 빠진 옷과 비뚤어진 걸음걸이가 모든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그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감각은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창문, 구름, 나무를 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보는 장소에서 느낀다는 설이 있는데,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볼 때도 우리 외부에 있게 된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장하며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채. 현혹된 우리의 감각은 여자의 광휘 속을 새들 무리처럼 빙빙 돈다. 그리고 새들이 잎이 무성한 나무의 은신처에서 보호처를 찾듯이 온각 감각은 애인의 육체의 그늘진 주름, 품위 없는 동작,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 속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안전하게 은신처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바로 이곳, 결점이 있는 곳, 비난받을 만한 곳에 한 여자를 숭배하는 남자의 화살처럼 빠른 연정이 둥지를 튼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 <일방통행로> (조형준 번역) 33쪽 ‘알리는 말씀 : 우리 모두 삼림을 보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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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is 2010-05-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의 '실수', 여성스러운 변덕이나 약점에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더 오래, 더욱더 사정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어째서인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한 창문, 구름, 나무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여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서 몸을 움츠린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떨림은 바로 거기, 결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될 만한 것 안에 둥우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일방통행로> (최성만, 김영옥, 윤미애 번역) p80 알림 : 여기 심어놓은 식물들 보호 요망

모든사이 2010-05-03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남시의 '서정적인' 번역과 조형준의 '서투른'(?) 번역과 최성만 등의 '건조한' 번역. 그래도 김남시 번역이 어쨌거나(!) 울림은 더 큰 것 같구만요..

alanis 2010-05-0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구나 어떤 물건을 떠올릴 때면, 그 모양보다는 그와 연관된 기억,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나는 "삐삐"을 생각할 때면 먼저 떠오른 느낌이 있다. 보통은 음악을 녹음해 두었던 삐삐 인사말에, 어느 춥고 바람 불던 날 술먹고 귀가하다가 쓸쓸한 마음에 음악 대신 진짜 인사말을 녹음하고선 다시 전화 걸어 들었을 때 전혀 낯설은 내 목소리가 주던 그 어색함, 부끄러움, 당혹감, 약간의 공포...

내 귀로 들어가는 내 목소리는 입안에서의 울림과 더해져 달리 들린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른 이에게는 그렇게 인식되는 나를 사실은 나 자신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당혹감.... 그 시절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라고 당당히 외칠 수 없는 상황.... 내 자신이 온전히 나를 통제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은 약간의 편집증, 강박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가뜩이나 평소 대인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는 나로서는 또하나의 대인기피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내가 인식조차 못하는 내 모습에 대해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어찌 소화를 할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벤야민의 글을 곱씹어 읽어보다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이란 구절에서 불현듯 삐삐의 공포를 떠올렸다.

결국은 그 공포감이란 감정의 문제가 아니였을까? 그 목소리가 말하는 뜻은 같으나 전혀 다른 내 목소리에 깃든 감정(이것 또한 내 감정)과 내가 그 말을 할 때의 감정간의 불일치감에서 오는 공포감. 일종의 라캉이 얘기하는 상징계로 넘어가지 못한 감정에 대한 상상계적 혼란이 아닐까?

감정이 실재하며 진실된 순간임을 알지만, 불쑥 떠오르는 감정은 그때 그 전화기속 내 목소리처럼 낯설고, 부끄러우며, 당혹스럽고, 공포스럽긴 여전하다.

모든사이 2010-05-0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감각은 실존하는 것이다. 이 봄날, 미치도록 환장한 꽃 내음 속에서 잠시 우리는 감각의 실존에 몸을 가누고 거기 도취하는 것이다. 순간, 무엇이 있어 이 현전하는 감각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취한 채 그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흔들리거니. 더 흔들리고 흔들려 제 몸이 따라 흔들릴 때 그 때, 우리는 알게 되리라. 바람의 근원은 결국 제 몸뚱아리인 것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 없는 이 육체성의 현현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할지니. 그건 공포라기보다 차라리 넉넉한 긍정이려니. 긍휼스러워 말지어다, 그대여. 언젠가 간직하고 잃어버렸던 맑고 투명한 여의주 앞에, 잠시 엎드려 경배하기를. 라일락 향기가 너무 짙어 그 그늘아래 취했거늘, 관능을 열어 가쁘게 숨쉴 밖에 다른 그 무엇을 탓하겠는가. 주름살이 아름답게 보이는 자, 이제 비로소 지극한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 있으려나.

april 2010-05-0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둘이 사귀나봐...여기 분위기 왜 이래요?ㅎㅎ

모든사이 2010-05-0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에 홀려 한잔 한 탓이겠져. 오마르 카이얌의 옷자락 한올 잡았달까? ㅎㅎ

술은 액체로 된 루비, 술잔은 나의 현현
술잔은 육체이며, 그 안의 술은 영혼
술로 흡족해 하고 있는 그 맑은 술잔은
눈물, 그 안에 숨겨진 마음의 피이네
- 오마르 캬이얌, <루바이야트> 중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 글로벌 시대, 치열했던 한중일 관계사 400년
오카모토 다카시 지음, 강진아 옮김 / 소와당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오카모토 다카시의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은 김홍집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김홍집은 25세때 과거에 급제해  영의정에 오른 정치가이자 구한말 대외교섭의 최고책임자였던 인물. 갑오개혁을 비롯한 근대개혁을 이끌었던 핵심인물이었던 그는 1896년 아관파천으로 4차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면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군중에게 몰매를 맞아 죽었다. 오카모토는 그가 죽어가면서 “천명(天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고종을 비롯한 친러파의 반발과 갑오개혁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겹치면서 그의 목숨과 함께 그가 추구한 근대개혁은 좌절되고 말았다. 군중이 던진 돌이 그의 몸을 부수었어도 그는 다만 자신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창밖으로 한눈에 보이는 광화문이 새삼 달라보였다. 불과 백여년 전에 이곳에서 성난 군중들은 내각의 최고 책임자를 돌로 쳐 죽였다. 충성스런 경찰이 없어서였을까. 백여년이 지난 뒤 국정최고 책임자는 '산성'을 쌓아 군중의 접근을 막았지만, 그때는 산성도 경찰벽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외침도 없이 “천명”으로 알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쯤 되면 거의 영화의 한 장면이다. 풍운의 한 시대를 살았던 재상/근대개혁가/조선의 대표적 외교관이 역사의 풍랑을 운명으로 여기고 죽어가는 모습. 그가 살았던 1842년부터 1896년의 시대야말로 그 이후의 한반도 역사를 결정지은 최대의 역사시간이었다. 동시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1868)과 중국의 아편전쟁(1840)이 열어젖힌 동아시아 근대의 최대 격변기였다. 세종대왕 상이 흉물스럽게 들어선 저 광화문 광장 한복판 어디쯤, 성난 군중의 분노와 김홍집의 외마디가 묻혀있을 수도 모를 일.

오카모토가 김홍집 죽음을 불러낸 까닭은 그의 죽음이 일본과 청을 오가며 ‘독립 자주’를 관철시키려 했던 대외적 노선의 좌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김홍집은 “독립이 환상인 이유를 조선의 입장에서 가장 잘 알고 있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청의 대조선 정책을 지지하고 일본의 갑오개혁에 협력했던 것이다... 김홍집의 사업은 어느 것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 끝에서 그는 더 이상 뜻을 얻을 수 없다고 체념하고 스스로 생애의 막을 내렸다. 그것은 역시 비극이라고 할 것이다.”(p. 256)

성리학의 명분론이 지배하는 조선사회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리얼리즘의 시각’은 관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리얼리스트’였던 김홍집은 대내외적으로 그의 리얼리즘을 실현시킬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조선적 현실주의 노선의 죽음이기도 한 것. 오카모토의 책은 김홍집 개인의 죽음을 통해 당대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세력관계를 해명하고, 조선과 중국, 일본, 그리고 영국 등의 국가들이 의해 추구되었던 ‘독립 자주 노선, 혹은 조선 중립화론’의 형성과 좌절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주변 강대국과 외세가 조선의 운명을 두고 벌였던 도박과 논쟁의 변천사다.

명청 시대 이래 조선의 대외관계는 사대교린(事大交鄰)이었다. 사대교린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속국 자주’라는 모순적인 관계규정을 낳았다. 속국자주는 현실적으로 ‘조공체제’라는 모습으로 외화된다. '상국' 중국과 '속국' 조선, 그리고 여기에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개혁에 성공한 일본이 부상하면서 한중일의 근대 동아시아 삼국지가 전개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3국지가 아니라 약소국 조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각축이다. 조선의 입장에서 속국자주는 ‘독립 자주’로 극복되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여기서 ‘독립’은 청과의 관계에서 명분으로나 실질로나 독자적인 주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일전쟁 직전 조선의 군사적 공백(중일양군의 철수에 따른)과 중국과 일본의 ‘세력균형’은 청과의 오랜 관계를 벗고 ‘독립’으로, 나아가 자주의 길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일의 세력이 팽팽하게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지속되어야만 조선의 독립 자주는 가능했다. 김홍집의 노력은 바로 이같은 노선을 향한 전략적 선택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독립 자주’는 주체의 역량보다는 ‘세력균형’의 산물인 것이다. 

대한제국의 성립 역시 사학계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자주적 개혁군주로서의 고종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청일전쟁 패배로 청이 조선에서 물러간 뒤 러시아가 일본과 세력균형을 이루는 또다른 주체로 등장한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균형이 만들어낸 '힘의 공백'의 필연적 산물이다. 청이 물러난 뒤에야 고종은 비로소 ‘조선의 자주국임’을 대외적으로 선언할 수 있었다. 오카모토의 말을 빌면, “속국자주를 독립 자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자주를 성립시키는 세력균형은 그대로 보지하면서도 청의 속방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독립은 청을 포함한 조선을 둘러싼 외세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청일전쟁 이전의 ‘자주’는 국제적 세력균형은 갖추었으나 독립에 있어 각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던 것. 그래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속국 자주’ 시절의 대외조약을 폐기하고(청의 세력이 쇠퇴했으므로) 새로운 조약관계를 수립하려 했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참여하는 북핵폐기의 국제 공조 프로세스인 '6자회담'의 원형적인 형태인 셈이다.

청일전쟁 '전야'와  더불어 러일전쟁 직전의 상황 역시 독립자주의 또다른 기회였다. 청이 물러간 자리를 대신한 러시아는 이제 일본과 조선을 둘러싼 새로운 세력균형을 형성했다. 이즈음 한국의 중립화론이 등장한다. 1894년 일본의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조선을 1) 독립국화 2) 보호국화 3) 청일 양국 정부에 의한 상호승인(태국의 경우?) 4) 중립국화(스위스, 벨기에)라는 네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외교정략론에서도 조선에 대해 중립화 구상안이 유력하게 제시된 바 있다. 물론 그 이후의 역사는 일본에 의한 보호국화로 뒤결되었다. 초기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조선중립화론은 세력균형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지고 만다.

 

대외적인 세력균형을 깨뜨린 것은 러시아의 남하(여순, 대련 조차)로 벌어진 국제관계의 악화. 영국은 여우처럼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세력으로 청을 선택하더니, 청이 몰락하자 이제 일본을 선택한다. (영일동맹) 국내적으로는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러파가 등장하면서 중립화 구상은 현실적 동력을 상실한다. 러시아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중립화 구상을 폐기하고 조선 진출을 가속화하게 된다. 이 둘 사이의 충돌, 러일전쟁은 그러한 움직임을 최종적으로 완결한, 사실상 조선을 둘러싼 그 이후의 질서를 완결한 역사적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한 4차 김홍집 내각의 붕괴. 김홍집은 타살당하고, 재무장관 어윤중은 도망중 살해당하고, 외무장관 김윤식은 체포되어 유배당하면서 온건개화파는 궤멸된다. 남은 것은 친러파 관료. 그러니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한 뒤 조선의 개혁주체는 남았을 리가 없었던 것. 오카모토는 이들 온건개화파의 좌절을 이렇게 설명한다. “청이나 일본 혹은 열강의 특정 일개국가와 걸핏하면 일방적으로 결탁하려고 하는 당파 사이에 서서 항상 극단적인 움직임을 억제하고, 청과의 전통적 관계를 배려하면서도, 지나친 압력에는 결코 굴하지 않는, 이른바 절도를 지닌 균형자(balancer)였다. 그들의 역할과 존재는 청일전쟁 이전에 조선의 ‘속국 자주’ 및 그것이 가져온 세력균형을 체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224)

늘 그렇듯이 조선말기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더구나 근대초기의 식민화 과정을 공부하는 것은 아주 씁쓸하고 우울한 경험이다. 오카모토의 시각은 새롭고 신선하지만  또다른 우울의 목록을 추가한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그리고 근대 이후로는 미국과 소련(러시아)라는 또다른 ‘외세’가 개입하고 간섭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살길은 주체적 노력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확인은 독하게 쓰다. 한반도는 속국자주의 현대판인 한미동맹이 작동하고 있으며, 청일전쟁 직전의 상황처럼 ‘6자회담’과 같은 국제적 공조가 오히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다. 과거의 청일․러일의 세력균형이 현대에 와서 미(일) vs. 중(러)의 세력균형으로 치환되고 있는 셈이다. 자주적 통일은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될까.  


김홍집이라는 인물을 새삼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우유부단한 정치가, 친일관료 쯤으로 알고 있던 그의 대외 노선은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떠올리게도 했다. 오카모토가 김홍집 세력을 balancer로 규정했을 때, 그 균형자는 노무현의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19세기 영국이 그러했듯이 '패권국가에 의한 균형'이 아닌 조정과 타협의 주도자로서의 균형자 말이다. 저자의 서술은 국내 사학자들의 춘추필법 혹은 열혈 민족주의와는 다르게 대단히 실증적이고 담담하다. 실증은 당대 중국과 일본의 외교문서와 사료에 충실하다는 의미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대목도 여럿이나 대체로 이 단명한 시대에 관한 역사상을 그려보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고 명쾌하다. 책을 산 지는 한달이 넘은 듯한데, 지난주에야 책장을 덮었다. 5년여 계속된 동아시아 근대사 공부의 한 줄기를 끝낸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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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10-04-1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모든사이 2010-04-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감사합니다.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 한미동맹과 전시작전권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김종대 지음 / 나무와숲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조선의 대외관계를 좌우하는 키워드는 ‘사대교린’(事大交鄰)이었다. 중국과의 관계는 ‘사대’ 이고, 일본과의 관계는 ‘교린’이었다. 하지만 사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소국이 대국을 섬긴다” 정치경제적 종속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건 이슬람권에서 ‘메카’가 있는 사우디와 다른 이슬람국가와의 관계와 유사한 지도 모르겠다. 물론, 관계의 강도는 한중관계가 더 높았겠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유교의 종주국에 대한 존중의 표현에 가깝지 국가적 독립을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웃 나라와의 친교를 뜻하는 교린은 다분히 해당 국가를 중국보다 한 수 아래에 두는 수평적 관계를 지칭했다. 사대교린은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속국자주’라는 모순적인 대외관계를 만들어냈다. 속국이면서 자주권을 가진 관계라니,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가 바로 그것.  

 

문명개화를 통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대정봉환을 거치면서 막부권력이 붕괴하고, 천황제가 근대적으로 부활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외교문서에는 ‘천황’이 등장했다.  일본이 생각하는 국제관계는 ‘만국공법적 세계’, 곧 주권국가가 동등한 지위에서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는 방식이었다. (설사 만국공법적 세계가 실제의 세력관계를 반영하지 않은 허구의 세계라 할지라도) 일본은 만국공법적 체계를 근대적 외교패러다임으로 인식하고 이를 조선에 강요했다. 바로 이 지점이 한중일의 근세가 침략과 전쟁, 불평등 조약과 저항으로 얼룩지는 대목이다. 조선에 대해 속국이면서 자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중국, 중국을 ‘사대’하는 국가인 조선은 중국의 ‘천자’와 양립하는 ‘천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늘의 아들이 두명이나 있겠는가. 거기에 만국공법적 세계에서 조선과 ‘동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마당에 청나라가 왜 개입하는가라는 일본의 대외인식이 개입되면서 한반도의 이들 두 국가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청일전쟁이 필연적으로 예비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중국과 조선의 대외관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사대교린/속국자주’가 근대적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조선의 근대적 대외관계는 실현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오카모토 다카시가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에서 펼치고 있는 논리다.

이 책과 거의 동시에 김종대의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를 읽었기 때문일까. 두 책에서 내가 얻은 문제의식은 하나의 주제로 관통된 것이었다. 조선왕조가 사대교린/속국자주라는 모순적 패러다임에 안주하며 근대개혁을 소홀히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이후 한미관계는 한미동맹/주한미군의 우산 속에서 전개되며 한국의 외교안보는 정체되어 왔다. 조선이 사대교린을 넘어 근대적 외교관계, 근대적 국가주권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듯이, 지금의 한국사회는 ‘한미동맹’을 재편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노무현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권의 운명을 걸고 도전했던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이 “시대의 문턱”을 넘었다는 김종대의 평가는 바로 이 점을 의미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한미동맹 재조정,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의 감축과 전략적 유연성, (협력적) 자주국방, 동북아 균형자론, 남북정상회담 등 노무현 시대 내내 논쟁과 이슈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과제를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뼈대만 간추려 보자. 노무현 정부는 북핵위기와 이라크 파병이라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출범했다. 이 책에도 잘 나오지만 이라크 파병은 북핵으로 야기된 한반도 전쟁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지렛대였다. 네오콘의 강경책이 지배하는 미국은 공공연히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언급하는 상황.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대북공세를 누그러뜨리고 한반도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한국 외교안보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범위’를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을 두고 뼈저리게 후회했으나, 어찌보면 '미국이라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의 대안으로 “동아시아 지식인과 민중의 연대”니 하고 떠드는 일부 진보의 담론은 ‘농담’에도 이르지 못한 한심한 얘기다. 그러나, 과연 노무현의 이런 전략은(사실은 이종석의 전략은) 성공했을까. 미국의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북핵문제의 해결도 북미관계의 질적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것 아닌가. 부시의 대북강경책은 결국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제기된 비판 속에서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노무현의 외교안보 전략은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권 확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주권국가가 아니다. 노무현은 박정희 이후 사라져버린 ‘자주국방’을 공론화하면서 한미동맹을 재조정하려 했다. 자주국방은 국방을 중시하는 보수적 담론과 자주를 중시하는 진보적 담론이 뒤섞인 이차방정식의 구조. 이것은 보수언론이 쏟아낸 것처럼 한미관계의 파탄, 안보위기가 아니라 50년이 넘은 한미동맹을 변화하는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 맞게 갱신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가피했다. 미군이 전세계의 미군을 재배치하고 신속기동군화(GPR:Global Posture Review)하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에게는 조만간 주한미군 감축으로 현실화될 터였다. 언제까지 주한미군에 국가의 존립과 방어를 의지할 것인가.

 

네오콘의 강경파 롤리스가 주한미군 감축을 통보해온 다음부터 벌어지는 청와대와 국방부, 군 내부의 논쟁과 미묘한 갈등이 이 책의 전반부를 이룬다. 전략적 유연성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미래의 한중관계를 포함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려 했다.  중국 원바자오와 일본의 고이즈미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은 앞으로도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 "나는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 군대로 전환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한 그러한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청와대 내부의 극심한 논란과 갈등은 노무현의 청와대가 대통령의 인식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사례일 것이다. 

 

 

 한미동맹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국방개혁2020이었다. 전쟁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나라는 주권국가가 아니다.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국방은 이제 한국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낡은 국방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 고민과 모색의 산물이 국방개혁2020이다. “국방개혁은 본질적으로 국방력을 더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군의 ‘자주적 방위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미 북한을 압도한 한국의 국력이 주변국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시대를 여는 국가적 역량이 바로 ‘자주적 방위역량’이다. 자주가 없는 국방개혁은 목표와 방향성이 상실된 맹목적 개혁 지상주의가 되고 만다. 또한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자주란 만용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군사적 감상주의다.”(p. 562) 국가주권의 핵심적 조건으로서 군사적 자주와 그것을 위한 개혁, 노무현이 넘은 시대의 문턱은 바로 이것이다.

임기 후반기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공부’에 천착하면서 점점 역사철학자가 되어 갔다. 그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라기 보다는 자신이 딛고선 위치가 어디인지, 앞으로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도자였 다. 임기 후반기의 그가 쏟아낸 말들은 그 자체로 정치학 개론이자 한국정치사, 언론학 개론이자 한국언론의 정치경제학, 국제관계론이자 동북아 평화 안정론이었다. 나는 어느 자리에선가 그가 펼치는 담론을 두어시간 동안 들으면서 가장 생생한 역사철학과 정치학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석학적 대통령’이라는 찬사 아닌 비아냥을 했던 것이 기억나지만, 그는 그렇게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펼쳐 보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이게 한 국가의 대통령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자 역량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 없이도 대통령 하는 사람 참, 많지 않은가. 이 책에서 김종대는 ‘대연정론’을 이런 역사철학적 고민의 소산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그의 이해방식이 부분적으로 타당하다고 믿는다. 현실정치에서 그것이 발휘했던 효과와 역풍을 빼자면 말이다. 어쨌거나 역사철학자로서 노무현이 끝까지 고민하고 넘어서고자 했던 것은 외교안보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그것의 핵심 중 하나는 자주국방이었고.  


그러나, 겨우 문턱을 넘은 이 새로운 자주국방의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본인 입으로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이상희 합참의장은 나중에 이를 번복하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방장관이 되어서는 전작권 환수 연기를 외친다. 노무현 국방개혁의 핵심인 국방개혁2020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보수언론은 입을 모아 전작권 환수 연기를 떠들어 대고, 국방개혁에 대한 담론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제껏 한국군 자주화를 지지해 왔던 예비역 장성들은 한 때 그들이 금과옥조로 신봉했던 ‘자주국방’이라는 말 자체를 불온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작권 전환을 목청 높여 반대하는 지도급 예비역 장성들은 과거에 국방개혁을 반대했고, 군정과 냉전의 영속을 바라마지 않았던 인물들이 다수다.”

이 책에서 가장 추악한 것은 바로 이같은 한국군의 모습이다.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분석하라는 노무현의 주문에 국방연구원은 육해공군의 엄청난 압력과 로비에 시달린다. 이미 수십년 간 북한의 10배가 넘는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북한보다 전력이 뒤진다고 써달라는 한국의 군대. 그래서 나온 결론은 육군은 열세, 해공군은 대등 혹은 다소 우위. 주한미군이 감축되면 금세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군대. 그러면서도 2차대전 이후의 온갖 재래식 무기부터 최첨단 무기까지 거느리고, 수많은 재래식 전력 중심 부대를 운용하면서 ‘승진할 자리’를 만들어내는 군대. 군인으로서의 소신은커녕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는 저 숱한 ‘똥별’들, 이 책에는 이 똥별들이 만들어내는 추악한 냄새가 진동한다.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냉전에 사로잡혀 있는 인식의 불구자들, 백령도 천안함 침몰도 이런 후진적인 군대의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외교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보이는 외교부의 면모는 조직이기주의와 관료주의, 게다가 국익보다는 주재국 혹은 자신이 주재했던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때로는 대통령까지도 기망하기를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정부의 모든 업무평가에서 꼴찌를 도맡아 하면서도 자신들이야말로 최고의 인재집단이라는 착각이 매우 심한 사회. 이종헌 외교부 조약과장의 평가는 기억할 만하다 : “우리는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하면 절대 복종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고 거짓말하고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외교부의 습관이다. 외교부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p. 254) 주한미군 감축과 이전비용에 대해 노무현을 속이려 들던 반기문 장관은 노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하자 “외교부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셔서 앞길을 가르쳐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합니다”라고 아부성 발언을 한다. 반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은 절대로 그의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 덕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외교부와 NSC가 국정상황실과 벌인 청와대 내부의 ‘전쟁’이다. 노무현을 기망하고 한미간의 쟁점을 은폐하려 했던 외교부와 NSC. 그리고 이 암투의 과정에서 환멸을 느끼고 정부를 떠난 권계현. 전언에 의하면 외교부 출신인 그는 지금 삼성 상무로 재직하고 있고, 자주파로 불린 이종헌도 시련을 겪다가 좌천되고 말았다. 이 문제를 취재했던 후배기자가 특종기사를 들고 왔을 때, 나는 ‘대통령 기망’이 뭔지 이해를 못했다. 이제 보니 그 후배는 국정상황실에 ‘빨대’를 두고 정보를 얻은 셈이었다. 청와대 내부의 전쟁과 그 전쟁의 와중에 언론은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활용’되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가 가진 조정과 통합의 능력이 대단히 취약했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상의 혼란과 논쟁은 소수자 정부가 넘어설 수 없었던 한계로 평가하고 싶다.  정작 외교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과 외교부는 저항하고, 보수언론은 연일 폭탄을 터트리고, 미국은 딴지를 걸며, 대통령은 외롭게 몇몇의 행정관들과 함께 상처입은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상황.

나는 곳곳에서 탄식하고 분노했다. 참여정부 시절, 저자는 함께 술을 마실 때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는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술자리 방담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고, 하나의 줄거리로 완성되었다. 아, 그래서 김선배는 그런 얘기를 했었구나,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뒤늦은 자각. 그가 술자리에서 전해준 말들은 이제 보니 하나같이 ‘특종감’이었으나 둔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맥락이 그려지지 않았다. 네오콘의 한반도 담당 행동대장 쯤 되는 롤리스가 한번 한국에 왔다가면 조중동은 ‘한미동맹’이 파산 직전이라며 대서특필을 해댔다. 노무현은 외교 아마추어였으며, 한반도에 안보공백을 만들어내는 얼치기였다.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의 한미관계 보도는 한마디로 그악스러울 정도로 심했다. 이들이 매일이다시피 쏟아낸 저주와 폭론들은 가뜩이나 취약했던 한국의 대미협상력을 위태로울 정도로 약화시켰다. 반노무현이라는 ‘맹목’으로 인해 그들은 아예 언론이기를 포기했다. 조중동이 참여정부 시절 독극물이었던 것은 맞다.

사건이 터지고, 암투가 벌어져도 누군가는 그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역사는 무서운 법이다. 참여정부 외교안보 현장에서 벌어진 중요한 일들은 김종대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고 분석되었다. 외교안보의 대전환기에 터진 숱한 이슈와 쟁점들은 격렬한 토론속에서 좌초되기도 했으며, 조금씩 진전되기도 했다. 김종대는 그것을 차갑게 혹은 뜨겁게 기록하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유일한 민간인 출신 국방전문가로서 이제 그는 뛰어난 글쟁이로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외교안보라는 재미없는 주제의 책을 그는 무협지처럼 재밌고,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 놓는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같다. 누군가 참여정부가 외교안보에 대해 어떤 일을 했던가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서슴없이 이 책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내게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들은 전작권 전환을 반대했다고 써달라고 사정하더라고 전했다. 정권이 바뀌면 소신도 바뀌고,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모양이다. 놀라워라, 그런 그들 대부분이 ‘장성’들이다. 그래, 기록의 목적은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제 사람들을 기억하자. 시대의 문턱을 넘어 새로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고민했던 노무현, 군기득권 구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진전을 만들어갔던 윤광웅, 안광찬. ‘가짜 자주’를 넘어서려 했던 자주파 외교관리 이종헌과 권계현. 소신과 논리를 갖춘 보수 김희상. 그리고 반대편에 선 숱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야할 것은 조중동,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김정안 기자 같은 사람이다.

동아는 2004년 미국기업연구소(AEI) 같은 네오콘 싱크탱크의 입을 빌려 특집 시리즈로 노무현을 공격해댄다. 김정안 기자는 이 시리즈 말미에서 “문제는 (AEI 같은) 창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 청와대에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외교안보전략을 구상하는데 네오콘 싱크탱크를 활용해라? 대북 강경파이자 군사모험주의자들인 그들의 논리를 가져다 쓰라? 노태우때의 작전권 환수에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이들이 노무현의 전작권 환수에는 저주와 비아냥을 퍼붓는다. 이런 그들이니 부시가 일방주의를 포기하고 다자주의로 회귀하려 했을 때 ‘배신감’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반노에 눈이 멀어 국익도, 안보도 팽개치는 이들. 김정안 기자는 자신이 노무현 시대에 썼던 기사들이 부끄럽지 않을까. 아니, 그를 포함해 숱한 저주의 기사를 썼던 기자들, 외교안보가 파탄이라고 네오콘의 입을 빌어 썼던 기자 아닌 기자들은 또 어떤가. 이제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 냈던 ‘거대한 기만의 세계’, 그게 지난 정부 5년 동안의 한국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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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0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선 외교안보 관련 글을 찾기가 힘든데,매우 상세하게 쓰셨군요.2006년 2007년 역사비평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미관계에 대한 글이 몇 편 나와 있던데 정독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한국전쟁 전후한 미국 국무성,국방성 그리고 일본의 맥아더 사령부의 암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부서들의 암투는 어떤지 궁금하군요.
요즘도 전작권 환수연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매일경제 같은 보수적인 경제지도 '우리가 그 문제를 먼저 꺼내면 약점을 잡히는 것'이라는 기사가 있더라구요.

모든사이 2010-04-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지난 정부 5년간의 국방, 외교, 남북관계 등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고 정밀하게 분석한 책이 없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에 대한 신뢰가 크다는 탓도 있겠지요. 그가 국방문제에 정통한 민간인이자 실제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진보적이되 합리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신뢰 말입니다.
보수지식인들의 친미적 남북대결적 태도도 문제지만, 우리가 한미동맹의 현실속에 처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진보지식인들의 인식도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이 국방문제에 대해서 떠드는 것을 보면, 평화운동 단체의 담론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진보진영의 취약분야가 군사나 국방이죠.그런 건 보수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하지만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그 분야에서 주도권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니 문제죠.운동권 기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것에서 아직 탈피를 못하고 있으니까요.
 

 

3월 셋째주 구입 도서 목록. 요즘 가끔 방문하는 효자동 헌책방 가가린에 산 헌책, 그리고 교보문고와 알라딘에서 산 새 책들. 우선 새 책, 한강이 오랜만에 펴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 지성사)과 그녀의 에세이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 그녀의 소설은 여전히, 아직도, 고통과 절망과 바닥을 알 수 없는 삶의 얼룩과 비의를 말하고 있을까. 또 예술가를 등장시켜 어둡고 우울한, 어쩌면 칙칙한 세계를 말하고 있을까. 개인의 내면으로, 비극적 가족사로 환원되는 고통의 내력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에세이집은 아이오와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경험을 쓴 것인데, 눈밝고 부지런한 작가들은 어떻게 이 프로그램만 갔다오면 죄다 에세이 한 권 씩을 쏟아내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한강의 재능들을 발견하는 재미. 그녀는 시와 소설에 이어 작곡과 연주를 하더니만, 이 책에서는 프로수준의 크로키까지 선보인다. 소설가는 글쓰는 것 외에는 다른 재주가 없어야 명작이 나온다는데, 이 친구는 왜 이리 재주가 많은지.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민음사)는 이 작자의 본격 작품은 처음이라서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궁금해서 샀다. 브르통의 ‘작품’은 별로 번역이 안된 것 같은데, 대중성이 떨어져서인가, 아님 지나치게 전위적이어서인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문학과 지성사)는  내가 좋아하는 스펙트럼 시리즈로 나왔는데, 루소에 대한 토도로프의 주석쯤 될 것 같다. 이제 껏 문학이론가, 서사학자로만 알고 있던 토도로프였는데, 정치철학도 나름 섭렵했던 모양이다. 유럽의 변방 불가리아 출신들이 이렇게 잘나가는 거 보면, 그들이 평지돌출이어서가 아니라, 나름 합스부르크 제국의 문화적 후광이 그만큼 커서 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토도로프에 이어 또하나의 잘 난 불가리아 출신 작가. 헌책방에서 산 <비잔틴 살인사건>(소담)도 유럽 변방 불가리아 출신 비평가 크리스테바의 작품. 남편 필립 솔레르스도 소설 깨나 썼는데, 마누라인 이 여자의 소설만도 <사무라이들>(솔),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민음사)에 이어 이 책이 세 번째로 번역된 모양이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인데, 추리/미스터리 장르로 분류될 이런 소설을 크리스테바가 썼다니, 의외의 수확이었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동문선)은 헌책방에서 보이길래 샀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나 그저 소장용으로 샀다. 대학원 시절, 교수가 계속 비코의 중요성을 떠들어 댔었는데, 그는 과연 책을 읽기나 하고 떠들었을까. <한국의 민화> 역시 소장용으로 샀다. 한때 조갑제가 편집장으로 있던 80년대 잡지의 양대산맥인 ‘마당’에서 나온 책. 요즘 헌책방에 가면 이런 ‘그림책’들에 눈이 간다. 책꽂이에 꽂아두고 아무 때나 펼쳐 읽을 수 있는 그림책들. 민화/민속품 하면 야나기 무네요시일텐데, 민화가 재발견된 것은 그의 유산인지, 아니면 60년대 이래의 민족주의 문화연구의 영향 탓인지.

2월과 3월에 걸쳐 펼쳐 놓고 일부 혹은 절반, 혹은 거의 읽었으나 아직 끝마치지 못한 책들. <창작과 비평>(2010년 봄호), <마음의 사회학>(김홍중, 문학동네),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김종대, 나무와 숲), <스토리텔링>(크리스티앙 살몽, 현실문화연구), <여론>(월터 리프만, 현대사상사),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오카모토 다카시, 소와당),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안병길, 동녘), <사회계약론>(루소, 박영사). 리뷰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책은 김종대의 책과 오카모토의 책. 김종대의 책은 참여정부 인사들이 써낸 책중 가장 중요한, 그리고 노무현의 ‘진실’을 가장 잘 증언하고 있는 책일 것이다. 잠들기 전 책을 읽고 있는데, 책장을 넘길때 마다 탄식과 분노, 아쉬움과 허무함을 떨칠 수 없다. 다 끝내지 못하고 다시 내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볼 때마다 나는 엄청난 부채감을 느낀다.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이거늘, 이 마음의 소리는 왜 이리 강박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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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3-2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승자 시인도 아이오와 갔다 와서 에세이집 냈죠
세계사에서 '어떤 나무들은' 이라고.
서울서나 아이오와에서나 생활은 똑같았다는 시인의 말에
외국만 나가면 뭐도 보고 뭐도 해야만 하는 부류와
'참 많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죠.
뭐, 사실 외국 나간다는 게 장소 바꿔가며 술 먹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이 책 보다 들게 됐고.

노이에자이트 2010-04-0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터 리프만<여론>은 헌책입니까? 현대사상사 판이 지금도 서점에 나오나요?

모든사이 2010-04-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프만의 책은 당연히 헌책이지요. 오래전에 구한 책인데, 이제야 읽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현대사상사라는 출판사가 꽤 좋은 책이 많습니다.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의 <지성사의 전개>나 신학자 하비 콕스의 <바보제> 같은 책들 말입니다. 현대사상사판 리프만 책을 아시는 것을 보니, 노이에자이트님의 연세도 조금 되시는 모양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0-04-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한 10년 전 광주 헌책방에 현대사상사 책이 열권 정도 무더기로 나왔길래 그때 알게 되었어요.제가 보는 책으로만 나이를 짐작하시면 70세가 넘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걸요.헌책방에서 구한 60~70년대 세로줄의 국한문 혼용체 책도 꽤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현대사상사 책들은 10년 전까지 기독교 서점에도 있었구요.새 책은 거의 안 삽니다.

모든사이 2010-04-0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본의아니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 역시 60년대 대학생 쯤 되는데 말입니다. 너그러이..

노이에자이트 2010-04-0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헌책을 많이 읽으면 그럴 수 있지요.
 
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탈리즘>(유병선 옮김, 위즈덤하우스)를 읽으며 고대생 김예슬의 선언을 떠올렸다. 이 고대 자퇴녀의 선언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글 가운데 최고다. 잔대가리 굴려 쓴 글이 아니라 온 몸으로 쓴 글이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야,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청춘도 있구나. 인터넷에 서식하는 저 무수한 키보드워리어니 하는 인간들보다 수백 배 낫지 않은가.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저 당당한 선언, 무슨 밀교적 제의처럼 블로그를 쏘다니며 저들만의 담론을 만드는 아해들보다 얼마나 싱싱한가. 우리사회의 주류적 질서가 강요하는 질서를 이탈하여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 기투(企投)의 삶이란 저런 것이다.

김예슬의 선언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80년대의 대학인들은 자본주의와 파쇼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대항담론을 만들어냈으나 거기에는 ‘개인의 실존’은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해방이후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논리로 무장했으나 역설적으로 그 자본주의에 가장 잘 적응했다. 그들은 운동권에서 나오자마자 벤처기업가로, 펀드매니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비판대상의 논리를 쉽사리 실존적으로 내면화했던 것이다. 이념과 삶의 괴리는 이미 발생론적으로 예비되어 있던 것이다. 박노자가 어느 글에선가 썼듯이, 군사파쇼를 비판하던 이들은 아무런 내면의 고통없이 군대를 갔고, 군대의 질서를 회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예슬은 다르다. 그녀는 ‘자기에의 배려’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줄 알며, 동시에 그것이 지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 역시 통찰할 줄 안다. 부디, 이 친구가 잘 버티고, 잘 살아내기를!

김예슬의 선언은 리처드 세넷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서사를 벗어나 ‘개인의 서사’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른바 ‘경제경영 실용서’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실용서들은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으며, 당신이 어떻게 해야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설파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왜 우리가 자신의 ‘삶의 서사’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미국의 이른바 ‘컨설턴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멍청한지, 그들의 컨설팅이 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세넷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에 의하면, 제도와 시스템의 신봉자들인 그들은 그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스펙’을 쌓고, 퇴출의 공포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근원적 불안’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한때 상사로 모셨던 김영희 대기자는 자신은 세 종류의 책을 늘 펼쳐 놓고 읽는다고 했다. 하나는 세계관과 가치에 관한 것으로 그에게는 헤겔철학서가 대표적이다. 또하나는 보다 중범위적 정치사회적 전망을 할 수 있는 책으로, 토플러나 프리드먼의 책이 그런 경우다. 마지막은 순수하게 ‘정보’를 얻기 위한 책. 리처드 세넷의 이 책은 그중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는 현대의 자본주의가 “정처없이 표류하는 삶”을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을 규명하면서 탈주의 길을 모색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자본주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장기보다는 단기를 선호하고, 잠재력만을 중시하며, 과거의 경험을 기꺼이 내 팽개칠 수 있는 개인의 자질이란 아무리 어려움을 견디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지금 여기서의 내 삶을 아프게 찌른다. “유동적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삶”, 유동성은 끝없이 증대되어 왔으되, 삶은 정처를 잃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질서 속에서 불안하게 견뎌 내는 것. 왜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떨치지 못하는가. 종횡으로 얽힌 구조의 사슬 속에서 개인은 주류적 질서와 과감히 결별하지 못하고(혹은 안하고) 내 것이 아닌 열망으로 살아간다. 이보다는 차라리 포디즘 시대, 산업시대의 삶이 더 낫지 않았을까. 자본주의의 관료제적 질서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서사화할 수 있었다. 9 to 5의 삶속에서, 직장의 엄격한 상하관계 속에서, 기계적인 노동속에서도 인간은 내년이면 월급이 얼마나 오를지, 언제 집을 살 수 있을지를 설계할 수 있었다. 노동은 팍팍하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올라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업시대의 상대적 안온함)

그러나,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구성원이 자신의 조직을 믿지도 못하고(언제 짤릴지 모르니), 사람들 간의 관계도 붕괴되었다.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the social)은 죽었다.” 유동하는 근대화(지그문트 바우만)가 만들어내는 삶은 끝없이 유동하는 불안한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노마드’는 국내적으로는 비정규직의 확대요, 글로벌 차원에서는 노동이주민의 급증을 은유한다. 디지털 노마드족? 88만원 세대에게 그런 소리 하다 돌 맞는다. 나중에 보상을 받기 위해 보여줬던 절제의 미덕도 절약의 노동윤리도 사라졌다. 오로지 오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끝없이 이동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던질 뿐.

리처드 세넷은 미국의 68세대 신좌파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이런 진술, “지난 10년간 내가 만난 미국인 중산층은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을 체념한 채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일자리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학교가 민간기업처럼 경영되는 것을 불가피한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누구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비정규직 증가속도가 전세계 최고 수준이고, 학교는 학원화되고(아, 쓰벌 대체 교육의 ‘출구’는 없는 것일까?) 모오든 것이 시장화 하는 곳이다. 소수의 비판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너무나 소수이고, 그래서 변화의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출구로서의 정치는? 세넷은 대안을 말하지 않고 현실을 말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다섯가지 이유. 1) 정치의 플랫폼화 : 폭스바겐이 공통의 플랫폼을 갖고 고급세단과 보급형 차량을 만들어내듯이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유사한 표준 플랫폼을 공유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중도주의의 모습을 띄고 있는데, 그 속성은 노동유연화, 세계화, 능력사회로의 전환이다. 2) 정치적 금박 입히기 : 플랫폼이 유사하니 사소한 차이밖에 없고, 이 사소한 차이를 갖고 죽자 사자 싸운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무슨 플랫폼의 차이가 있나.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금박’을 입히지만, 이건 쉽게 벗겨지게 마련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협력’해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킨다.

3)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 :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펴지만 그로 인해 완전한 목표달성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제도의 불완전성을 말하면서 ‘인간성이라는 휘어진 목재’를 거론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배제한 채 만들어지는 정책이란 얼마나 허약한가. 친서민 정책이라고 자랑하고 떠들어대지만, 실제 서민의 일상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4) 사용자 중심의 정치에 대한 신뢰 강요 : 시민들이 소비자처럼 행동하게 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시민은 나태해지거나 첨예한 현안은 눈길을 돌린다. 5)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치신제품들 : 첨단제품들은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한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노동당에 대한 신뢰는 경향적으로 떨어진다. (소비자로서의 시민) 새로운 제품을 사기 위해 타올랐던 욕구는 사자마자 사그러든다.(소멸하는 열정, 한국으로 치자면 롤러코스터 민주주의, 열망과 절망의 사이클)

우석훈과 박권일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선동했지만, 세넷은 보다 실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경험많은 노동자를 함부로 자르면 안된다),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의 세 가지. 이런 대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개인의 서사화’다. 개인의 자기 삶의 주제로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살아) 가는 것. 이건 들뢰즈 용어로 개인의 재영토화, 혹은 생활세계의 회복쯤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리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20대의 어린 대학 자퇴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결론, “나는 하나의 역설, 즉 새로운 권력구조가 대단히 천박한 문화를 통해 생겨났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문화의 천박함이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리고 분명히, 지금의 새로운 질서 그 다음 단계의 역사의 첫 페이지는 이처럼 깨지기 쉬운 문화에 대한 반란이 장식하게 될 것이다.”

ps. 한 ‘영국 애호가’(?)가 빌려준 책인데, 그녀가 이 책을 빌려준 이유는 네 실존을 곱씹어 봐라는 오묘한 의미에서인지, 저자에 대한 애정이 넘쳐 빵처럼 나눠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선지, 잘 모르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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