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경험은 많지 않다. 당연히 외국의 헌책방을 가본 적도 많지 않다. 유럽의 경우는 이광주 선생의 책 같은데서 얼핏 분위기를 보았을 뿐이고, 일본은 유학을 했던 자들이  간다 헌책방 거리(神田 古本街)를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근대적 제책의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헌책방도 그만큼 부실한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외국의 헌책방은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할 터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서재에 고작 1천여 권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정도 규모는 지금으로 치자면 1만권이 넘는 분량에 해당할 것이다.  


문학사회학의 접근방법은 서적의 유통과 근대적 독자의 탄생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 접근은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초기의 ‘딱지본 소설’에 와서야 가능하다. 17세기 자본주의와 함께 출발한 서구의 근대적 책의 생산과 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사회학적 접근방법이 문학과 사회의 상동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인 서정주의 <화사집>이 5백부 한정본으로 출간돼 지인들끼리 나눠 가졌다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근대적 독서계층의 형성 어쩌고 하는 접근은 공허한 얘기다.

외국의 헌책방이 다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은 이런 맥락에서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 외국의 헌책방은 영화로도 유명해진 파리의 'Shakespeare & co' 였다. 그 책방 앞으로 센강이 흐르고, 강둑에는 헌책 노점상들이 주욱 늘어서 책을 팔고 있었다. 서점 안에 있는 것보다는 노점 좌판에 놓인 책들이 더 낡아 보였고 종류도 다양해 보였다. 악보만 파는 노점, 소설책만 파는 노점 등, 지금도 이런 지는 모르겠다. 왜 서점의 이름을 ‘세익스피어 앤 코’로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제목의 간판을 나란히 달고 있는 두개의 가게가 인상적이었다.

헌책방 특유의 비좁고 퇴락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먼지 앉은 책들, 신간과 구간이 뒤섞여 있는 서가. 우리나라처럼 중고삐리들 참고서나 대중잡지 등이 보이지 않는 게 다르다면 다른 모습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서점의 2층 한구석에 때 묻은 담요를 반쯤 덮고 자고 있는 앳된 모습의 여대생이다. 책더미 사이의 좁은 마루 바닥에서 어깨와 배가 훤히 드러난 티셔츠를 입고 허연 목덜미를 드러낸 채 잠에 빠져 있는 여학생. 서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10여년 저쪽의 세월임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릇 책이 있는 곳이란 비몽사몽을 오가는 사유와 몽상의 공간이 아닐 것인가.

아마도 그날 거기서 산 책은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의 영어본 두어 권, 르네 마그리트 화집 정도일 것이다. 파리를 알지 못하는 나를 거기로 안내한 유학생 부부는 파리가 나의 유별난 취미를 만족시킬 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준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소설가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탐욕스런 눈으로 서가를 훑었는데, 정작 아무 것도 사질 않았다. 영어 소설을 밥 먹듯 게걸스럽게 읽어치우는 이 소설가의 책탐으로 보자면 국내 출간이 되지 않은 영어본 책들을 살 법도 한데, 그러기에는 지나치리만큼 검약(?)스러웠다. 귀국 비행기에 싣고 갈 캐리어의 무게를 걱정한 탓일까.

지난 7월 다시 파리에 갔을 때 이 곳에 들러 몇 권의 책을 사왔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클턴의 책, 보수적 인문주의자 매튜 아놀드 평전, 20세기 초 파리에 머물던 예술가들에 대한 책,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문 만화 버전 등. 약속시간이 임박해 좀 더 느긋하게 헌책을 뒤져보지 못한 게 아쉽다. 서점은 10여 년 전과 똑같았으나 달라진 것은 나와 내 일행들이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혼자였던 것. 파리도, 세익스피어앤코도, 센강도 그대로였으나 나를 둘러싼 관계의 구조와 사슬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느낀 적막감과 쓸쓸함은 이런 변화에 대한 실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뉴욕에 갔을 때 들른 곳은 유니언 스퀘어 부근의 스트랜드(Strand) 서점. 벌써 5년째 아놀드 파머사에서 ‘우산’을 그리고 있는 사촌 동생은 제 오빠의 유난스런 취미를 짐작해서인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곳이 뉴욕이라서 그랬을까, 책값도 싸고 쌓인 책들의 더미도 많았다. 책을 사면 서점 로고가 새겨진 흰색 천가방을 덤으로 주었다. 사람들은 어느 코너의 책마다 북적댔다. 뉴욕답게 1, 2층으로 된 대형서점이라 그런지 작은 규모의 헌책방이 주는 포근하고 정겨운 아우라는 없었다.

여기서 산 책은 <누바 족의 최후, The Last of NUBA>,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If not now, When> 두 권. 앞엣 것은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누바족 사진집이고, 뒤엣 것은 레비가 쓴 장편소설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파시스트 예술가였고 다른 한명은 반파시즘 작가였다. 정치적 열광이자 이념으로서의 파시즘은 사라지고, 파시즘의 미시정치학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건 무슨 ‘흘러간 유행가’에 대한 탐닉일까.

리펜슈탈 사진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수잔 손탁이 쓴 <우울한 열정>에 실린 에세이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선전영화 감독이기도 한 리펜슈탈은 미학으로 무장한 파시스트였다. 그것도 거칠고 투박한 파시스트가 아니라 세련되고 감각적인 파시즘 미학의 구현자였다. 손탁은 그녀에게서 ‘파시즘’을 괄호치고 ‘미학’에만 주목하는, 그리하여 그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열정적 예술가로 평가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보낸다.

<누바족의 최후>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리펜슈탈의 열광이다.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원시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벌거벗은, 그러나 매우 단단하게 단련된 신체. 이 사진집에 실린 ‘몸’들은 여성의 그것이 아닌 남성의 신체다. 이것은 리펜슈탈이 만든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올림피아>가 보여주는 신체의 미학과 빼닮았다. <올림피아>의 첫 장면 역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 형태의 ‘몸’을 보여주는 그리스 조각이 아니던가.

 <누바족의 최후> 역시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점만 빼면 신체에 대한 그리스적 이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파시즘의 재생신화와 관련된다. 윤리적 타락과 속물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를 부정하고(반근대), 인류문명의 시원적 공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문명을 건설(재생)하고자 하는 ‘의지’. 그녀의 사진은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렇듯 거기 스민 정치적 상상력은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파시스트로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열정적 예술가를 자처하고자 했던 리펜슈탈의 음험한 시도는 손탁에 의해 여지없이 폭로된다. 스트랜드 서점 서가에 꽂힌 <누바족의 최후>는 모두 세권. 이 책을 샀던 사람들은 그녀가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이 작가의 자살 소식이 실린 <뉴욕타임스>와 <뉴욕리뷰 오브 북스>  의 서평 기사가 오려진 채로 끼워져 있었다. 아마도 레비의 자살 소식이 실린 기사를 읽고 이 책을 샀나 보다. 그 자신이 반파시즘 빨치산이었던 레비는 그 경험을 이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가 자전적 수기임에 비해 이 책은 ‘소설’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그는 ‘시대의 증언’을 위한 글쓰기에서 ‘소설로서의 글쓰기’로 나아갔다. 자신이 겪은 잔혹한 경험은 소설 이전에 사실로서 기록되어야 했던 것이다. 소설은 ‘사실’ 이후에야 가능한 형식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에서 와서 그는 비로소 ‘소설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도 얼마전 출간 됐는데, 언제 ‘리뷰’를 올릴 수 있을까.)

파리와 뉴욕의 두 헌책방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이다. ‘물질’로서의 책은 활자가 찍힌 종이의 묶음이 아니다. 그 물질로서의 책이 실어 나르는 것은 콘텐츠와 저자-독자 사이의 내밀한 교류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아우라, 기억들이기도 하다. 책과 그 책을 함께 읽었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의 냄새. 그 기억의 매개로서의 책은 새것이 아니라 적당히 낡은 것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책방 순례가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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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매니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함께살기’라는 필명을 쓰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최종규씨로부터 SF 평론가 박상준, 연극평론가 안치운, 그리고 인터넷에 서식하는 다수의 매니어들까지. 최종규씨는 헌책방 순례와 함께 고 이오덕 선생의 후예답게 ‘우리말 지킴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진 언어순수주의에 대한 욕망은 좀 불편하지만, 그의 활동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크게 존중받아 마땅하다. 물론,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후기 북경의 고서점가 ‘유리창’을 뒤지고 다니던 완당 김정희도 헌책방 매니어일 것이다. 6.25 때 집이 불타면서 수만 권의 책을 태워먹은 육당 최남선도 그렇다.   

  

서강대 김열규 선생은 부산피란 시절 국제시장 노점 좌판에 쏟아져 나온 미군부대 책들을 뒤지면서 수잔 K. 랭거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영문본 같은 ‘보물’을 찾아내던 일을 회고하고 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의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의 ‘캔디 차관’으로 연명하던 한국경제와 마찬가지로 미군부대에 기생하며 지적 자양분을 흡수했던 모양이다. 6.25 전란의 와중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책더미와 2차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더미를 뒤지던 사람 가운데에는 민병산 선생(1928-1988)도 있었다.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였던 선생은 오히려 ‘인사동의 디오게네스, 인사동 거리의 哲人’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의 번역으로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다>를 읽었다.

내가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역시 헌책방에서 구한 책 그의 유작 <철학의 즐거움>(1990, 신구문화사)에서였다. 그에 대해서는 책과 신경림, 구중서, 박이엽, 김성동, 방영웅, 강홍구와 같은 인사동에 모여 그와 교유했던 6,70년대 문학예술인들의 애틋한 회고담을 통해 어림짐작할 뿐이다. 헌책수집가인 그가 수집대상으로 삼았던 것들은 특이하게도 ‘인물평전’이었다. 그가 남긴 인물평전은 <똘스또이>, <난센> <세종대왕> 등 여럿이나 지금 찾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듯 하다. 대학시절에 그와 그의 책을 발견한 이후 대체로 헌책방 순례와 같은 낡은 습속을 되풀이하는 자의 면모는 민병산 선생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전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60년대 초, 그가 기록하고 있는 헌책방의 순례의 풍경은 이러하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서 그 운명의 길을 더듬어 간다 - 고 하지만, 정말 여행을 많이 다닌다. 대여행가의 트렁크에 명산대천의 스탬프가 붙어 있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장서인’이 셋도 찍히고, 다섯도 찍힌 책이 있다. 지구를 한바퀴 다 돌아온 책도 있다. 이 책은 절대 문밖에 나가지 않는다 - 는 엄숙한 단서를 붙이고 버젓이 돌아다니는 책도 있다. 그 형체도 천태만상이다. 손때가 묻어서 번지르르한 책, 겉장이 떨어져 나간 책, 물을 먹어 불룩한 책, 불에 그슬리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책, 좀이 먹어서 모서리가 쏠린 책, 그런가 하면 케이스 속에 들어앉아 반세기 이상 한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도 드물지 않다. 그 신분이나 유서도 형형색색이다.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최신 가요집> 밑에 고운 최치원의 <계원필경>이 나오기도 하고, <무전여행 세계일주> 옆에 영국 재상 디즈레일리가 젊은 날 대륙여행을 소재로 해서 쓴 소설 <알로이>의 삽화들의 호화판이 꽂혀 있기도 하다. 혹은 윌리엄 모리스가 찍은 켈름스코트판 <세익스피어>가 헌 신문지 다발에 가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철학의 즐거움>에 실린 ‘고서 이삭줍기’의 한 대목이다. 본래 충북 청주 갑부집의 아들이던 그는 운전기사가 달린 세단을 타고 등교할 정도로 ‘귀족’이었으나 ‘문학청년’이 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유산도 포기하고, 가족과도 단절한 채 독신으로 살면서 책을 ‘줍고’, ‘읽고’, ‘쓰는’ 일로 나머지 삶을 살았다. 부모의 어마어마한 재산에도 욕심이 없었던 그인데도 책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6.25때 조부를 포함한 3대가 모아놨던 책을 잃어버린 탓인지, 그는 평생 연애도 하지 않고 책만을 사랑하고 찾으러 다녔다.

 “고서가를 다니는 사람이 얻는 가장 큰 기쁨은, 어떤 책이 - 당연히 존속할만한 생명을 지닌 책이, 자칫하면 멸망을 하려는 순간에 내 손을 뻗어서 구출하는 일이다. 책 선반에 반듯이 꽂혀 있는 책은 언젠가는 임자를 만나서 팔려간다. 어여쁜 아가씨는 곧 시집을 가는 것처럼, 그런데, 신데렐라가 부뚜막 앞에 맨발로 쭈그리고 있었던 것처럼 고귀한 책이 - 참으로 고귀한 책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다가, 지금 막 저울에 달아서 휴지상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 그 찰나에 발견을 하는 예가 있다.”

헌책방 매니어들은 이런 묘사의 실감을 알 수 있으리라. 대학 3학년 때, 한 일간지의 문화부 기자를 오래한 덕분에 증정본 책을 수천권 쌓아두고 있던 사람을 아버지로 둔 선배가 나를 불렀다. 이 책 죄다 헌책방에 팔아버릴 것인데, 네가 갖고 싶은 책 다 가져가라고. 책 좋아하던 친구를 불러 하루 종일 이 책 저책 뒤지고 챙기는데 도저히 내가 들고 갈 수가 없어 포기했던 책이 부지기수였다. 김승옥과 같은 4.19 세대 소설가로 단 한권의 소설만을 남겼던 강호무의 <화류항사>, 이윤기가 번역한 존바스의 <키메라>,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의 미술책들, 그리고 열화당에서 나온 화집들 정도가 생각난다. 겨우 30여권 정도나 챙겼을까.

내가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기자 그 선배는 헌책방의 주인을 불러 나머지 책들을 팔아 넘겼다. 용달 트럭을 가져온 헌책방 주인은 저울로 책 무게를 재어 선배에게 ‘폐지값’을 주고는 가버렸다. 민병산 선생이 묘사하는 저 찰나의 순간을 맛본 셈이다. 어떤 고귀한 정신, 혹은 어떤 작가의 불면에 찬 고뇌가 담겨있을지 모를 책들이 저렇게 ‘저렴하게’ 팔려나간다. 유종호 선생은 대형할인마트에서 책과 함께 고추, 마늘, 간장, 과자, 신발 따위가 들어있는 쇼핑 카트 안에 신간도 몇 권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인류의 정신적 산물을 저렇게 취급하다니 하며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저울에 달아 팔리는 책과 쇼핑목록에 포함된 책에 대한 탄식, 이건 지나친 책 물신주의일까?

그러나, 민병산 선생은 이런 책탐 마저도 버리고 떠났다. 그가 살던 단칸방에 불이 나면서 평생을 모아온 책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그는 헌책방 순례를 멈추고 이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따 민병산체, 혹은 청구자체(靑丘子體), 구불구불해서 호롱불체로 불린 그의 글씨는 지금도 오래된 인사동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술값이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서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후배들이 갹출하여 치러준다는 자신의 회갑연을 한사코 거부하다 바로 그 회갑전날 세상을 떠났다. 회갑연에 입을 한복은 그대로 수의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신경림은 이런 시를 썼다. “허름한 배낭 어깨에 걸고 / 느릿느릿 걷는 그 별난 걸음걸이는 / 이제 인사동 거리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 귀천 또는 수희재에 앉아 / 눈을 반쯤 감고 어눌한 말소리로 / 지나가듯 토하는 날카로운 참말도 / 더는 인사동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인사동) 그는 멋진 오빠였던지, 장례식에 문인보다 인사동 술집 여주인, 여종업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생전의 그를 나는 오로지 그의 지인들이 남긴 글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 잡식성 독서 때문인지 그에 관한 글을 나는 여러 군데서 접했다. 창비에서도, 문부식이 만들던 ‘공동선’에서도, 이문구, 신경림, 강홍구, 구중서 등등의 글에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한다. 나혼자 주절주절 헌책방 순례기를 쓰면서 문득, 그에 관해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몇 달 전 중앙일보에 실린 조우석 선배의 칼럼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한국언론의 스타일리스트라 할 수 있는 조우석은 ‘인사동 디오게네스 민병산’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079523)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저자거리의 ‘고수’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점점 더 모든 것이 제도권 내(가령 대학)로 흡수 되어가는 세상이라 그럴까.

인사동 문우서림의 김영복 선생을 만났을 때 우연히 민병산 선생 얘기가 나왔다. 김선생은 인사동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고서화 전문가다. 그에게 민병산 선생을 아시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반가워하면서도 놀라던 기억이 새롭다. 저 새까만 놈이 어찌 그런 옛날 사람을 아느냐는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읽은 민병산의 책 <철학의 즐거움>도 인사동 거리의 ‘후배’이자 ‘도반(道伴)’인 그가 만든 책이었다. 나 역시 그저 책으로만 알고 있던 민선생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가웠다. 그가 반가워 하며 “나한테, 민병산 선생 글씨가 좀 있는데, 하나 줄까?” 했을 때, 나는 받고 싶었지만 거절했다.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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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6-1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 선생 궤적은 타계 20년 맞춰 나온 추모집 『으능나무와의 對話』에도
자세하게 드러나 있죠.
그리고, 형이 청주 출신이니까 잘 알거유
일제 강점기 으리으리했던 민 선생 저택이
바로 청주 중앙공원 자리라는 거...
거기 1000년된 은행나무가 바로 민 선생 뜰에 있었다는 거...
그래서 제목을 은행나무의 충청도 사투리인 으능나무 라고 붙였다는 걸...

미국사람 2011-08-2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병산 선생이 번역한 책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이 있읍니다. 또 60년대 일본 바둑 최고수였던 사카다의 묘시리즈를 번역 했기도 하구요.

조우석의 글을 읽어보니 경제신문 바둑 관전기자가 쓴 민병산론인가를 보고 쓴 것이네요.(불행히 이 사람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인사동에서 종로를 건너면 관철동인데 그곳에 한국기원이 있었읍니다. 지금은 경찰병원 건너편 왕십리 쪽으로 갔구요. 60-70년대 문인중 한국기원에서 죽치는 사람이 많았고 민병산 선생도 그랬나봅니다.

명인번역본에는 신경림의 작품 해설이 붙어있는데 바둑을 조금이라도 아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단 지금도 출판이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한국 사정에 어두워서....

모든사이 2011-08-21 09:50   좋아요 0 | URL
그 민병산론은 강홍구 선생의 글이 아닌지? 아무튼 반갑습니다. 민병산 선생을 아는 분이라니... 그런데, 이 조우석은 요새 좌파->리버럴-> 이제는 우익 이데올로그로 변신했더군요. 박정희 책을 하나 쓰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이승만-박정희를 찬양고무하는... 그런데, 조금 새로운 우파 논리를 들고 나올줄 알았는데, 어찌 그리 조갑제식의 조악한 우익 논리와 닮았는지.. 씁쓸하더군요,..

미국사람 2011-08-22 01: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경제 신문관전기자이던 노승일 (1943- ) 의 굿바이 관철동 (1994년 출판)에 실린 글입니다. 다만 바둑관계 이야기라 바둑을 모르시면 읽기 곤란할 책 (책이 없어져서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민병산론은 꾀 길게 쓴 것으로 같읍니다.) 민병산 선생을 관철동의 디오게네스라고 한 건 한국기원에서 죽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던가....

하여간 50년대 60년대 문인이야기를 보면 바둑이 많이 끼어있구요 종로2가 관철동일대가 아지트였던 듯하구요. 조연현이나 정비석도 50-60년대 한국 최고수 조남철선생과 교유가 있던 걸 보면 요즘과은 많이 다른것 같읍니다.

관철동을 둘러싼 문인이야기는 고인이 된 강홍규의 문학동네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절판이군요.(관철동이야기라는 재목으로 나왔다가 강홍규 사후 이름을 바꾸어 나온책입니다)

참고로 제가 민가여서..... 민병산선생은 족보로 제 아저씨뻘입니다. 물론 일면식도 없긴하지만

 

<맥베드>(신정옥 옮김, 전예원)를 읽다. 세익스피어 작품 치고는 출퇴근 시간에 하루면 뚝딱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희곡. 세익스피어의 한문장을 찾기 위해 펼쳐든 것이지만, 그 문장은 맥베드에 없었다. 대신 권력에 취해 운명을 기꺼이 수락하는 사내의 장중한 독백들이 눈에 띄었다 : “어제라는 날들은 모두 우매한 인간에게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횃불처럼 밝혀 준다. 꺼져라 꺼져, 짧은 촛불이여.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동안 무대위에서 흥이 나서 덩실거리지만 얼마 안가서 잊혀지는 처량한 배우일 뿐이다. ... 바람아 불어라, 파멸아 오너라.”(5막)

세익스피어를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찰스 램이 쓴 <세익스피어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것도 아동용으로 윤색돼 희곡 아닌 소설로 뒤바뀐 것. 성경 역시 찰스 램이 풀어 쓴 것으로 읽었을 것이다. 초등학생때의 일이니 <햄릿>의 작가를 찰스 램으로 오랫동안 착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대로 읽은 것은 빨간색 천으로 싸인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오화섭 선생 번역의 세익스피어였을 것. 깨알같은 글씨의 위 아래 두단 세로조판의 이 전집은 스탕달도 플로베르도 가르쳐준 고마운 전집이다. 세익스피어 작품 중에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로나의 바람둥이 페트루키오의 장광설이 재밌어 몇 번이나 읽었을 것이다.

국내에 세익스피어의 작품과 그의 연극을 제대로 소개한 것은 오화섭 선생이 아니었을까. 이대 교수이자 남로당 비밀 조직책이었던 아내를 우파의 총에 의해 잃은 뒤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세익스피어 번역이었던 것. 전후 극우반동의 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이력과 성향을 숨긴 채, 고전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그의 아들인 오세철 교수가 경영학 교수에서 점차 완강한 좌파로 변신해가는 과정은 어찌할 수 없는 핏줄의 내력을 짐작케 한다. 오세철이 <다시혁명을 말한다>(빛나는전망, 2009)에서 고백하는 이 집안의 내력을 나는 아프게 읽었다.

<맥베드>는 마녀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맥베드가 왕위에 오르지만 그의 아들은 왕위를 잇지 못할 것이라는 마녀의 예언. 운명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인간본성의 인격화인 것처럼, 맥베드의 마녀는 그의 본성에 내재한 권력 욕망의 현현(epiphany)이었을 것. 비극은 우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맥베드는 운명과 사투를 벌이지 않는다. 그는 기꺼이 이 운명을 수락하고 스스로 패배한다. 그리스 비극과 이 작품이 갈라지는 지점. 운명이란 불가해한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내재한 ‘기질’의 다른 표현일 것. 백석이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남신의주유동박씨봉방) 중얼댄 것은 그의 착하고 여린 심성이 만든 환영에 불과하다.

맥베드는 고뇌의 표정을 보여주지만 그의 아내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 “자, 어서 오너라. 눈을 가리는 밤의 어둠이여. 연민의 정이 고인 낮의 부드러운 눈을 가려다오. 그리하여 너의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 얼룩진 손으로 나에게 겁주고 있는 저자의 목숨의 증서를 갈기갈기 찢어다오. 어둠발이 내리는 구나, 까마귀는 서둘러 숲속 보금자리로 가고 있다. 낮의 세계의 선량한 것들이 고개를 수그리고 졸기 시작하고, 밤의 사악한 앞잡이들은 먹이를 찾아 눈을 붉힌다.” (3막, 맥베드의 독백) 그러나, 확실히 여자는 욕망 앞에 더 강하다 : “무서운 음모에 끼어든 악령들이여. 어서 와서 날 나약한 여자로부터 벗어나게 해다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잔인한 마음으로 날 채워다오. 나의 피를 응결시켜 연민의 정으로 통하는 길목을 끊어, 그래서 동정이라는 자연의 정이 동하여 나의 흉악한 계획을 좀먹지 않게 해다오. ... 어두운 밤아, 깃을 펼쳐 지옥의 시커먼 연기로 널 뒤덮어라. 나의 날카로운 단도가 찌르는 상처를 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늘이 암흑의 장막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면서 ‘안된다, 안된다’하고 외치지 않도록(맥베드의 아내, 1막)” 
 

신정옥의 번역은 운문 번역이 아니다. 최종철의 번역이 세익스피어 문장의 리듬을 살린 운문번역이라는데, 그냥 읽기에는 신정옥의 번역이 더 낫다. 게다가 싸고 얇다. 그런데, 전예원의 이 세익스피어 시리즈가 절판인지 검색이 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나머지도 헌책방에서나 찾아야할 모양이다.  

  

* P.S. 마녀의 가마솥에 들어가는 것들(4막), 요컨대 절대적인 악을 구성하는 혐오와 금기, 더러움의 목록들인 셈. 메리 더글러스의 ‘오염과 순수’의 분류체계를 원용해 세익스피어 시대 영국의 문화적 금기의 목록을 만들 수 있을 것. 흥미로운 것은 독사의 살점와 늑대이빨과 나란히 유태인과 터키인, 타르타르인(중앙아시아)이 들어가 있다는 것. 이를 두고 세익스피어를 반유대주의자이자 문화제국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오버일까?  


“늪에서 자란 독사의 살점아, 끓어라 익어라 가마솥 속에서. 도롱뇽의 눈알과 개구리 발가락, 박쥐의 깃털과 개 혓바닥, 독사의 갈라진 혀와 맹사의 독침, 도마뱀의 다리와 올빼미의 날개, 이 주문으로 무서운 재앙을 일으켜 지옥의 국물처럼 펄펄 끓어라. (...) 용의 비늘과 늑대의 이빨, 마녀의 미이라 탐욕스런 상어의 위와 창자, 신을 모독하는 유태인의 간장, 산양의 쓸개와 월식의 밤에 꺾은 주목의 가지들, 터키인의 코, 타르타르인의 입술, 창녀가 낳아서 목을 졸라 죽여 시궁창에 버린 갓난애의 손가락, 죄다 집어넣어 진국으로 끓여라. 호랑이 내장을 더 넣어서 가마솥 국을 끓여라”(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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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5-2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화섭 선생 그러면 따님인 오혜령 씨가 먼저 생각납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그이의 암 투병 에세이 '일어나 비추어라'를 본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유명한 집안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 대학 들어가고 나서 오화섭 박노경 오세철 오혜령...이런 이름을
다시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충정로 문화일보 앞을 지날 때마다 옛 동양극장 사진이 떠오르는데
오화섭 선생의 집은 아마 그 동양극장 자리 길 건너편에 있었을 겁니다.
북아현동 어디 였다는 기록 본 적 있는데 가물가물...

모든사이 2010-05-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네 쓸모없는지식에 대한 탐닉도 어지간하다. 이 잡식성 호사가야. 집 자리가 뭘 그리 중요하냐. ㅎㅎ

이진성 2010-05-2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함다.

'서울의 오래된 극장은 서대문 네거리 못 미처의 동양극장이다(...)
바로 건너편에 돌로 지은 우람한 집 2층에 '여인소극장'이 있었는데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박노경의 자연장(紫煙莊)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효선(아동문학가)의 '헐려버린 극장' 중에서

모든사이 2010-05-25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네가 이 서재에 거의 유일하게 댓글을 주르르 다는 열혈독자이니 딴 건 둘째치고 그거 때문에라도 눈물나게 고맙다. 대체 어효선이라니, 언제적 이름이더냐. 초딩때 보고 수십년만에 듣는 이름이로구나. ㅋㅋ
 

이번주에 읽은 두권의 책. 김기협 선생의 <페리스코프>(서해문집)와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돌베개). 두권 모두 아주 빠르게, 그리고 아프게 읽었다. 김기협-유시민-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운명의 고리’가 애석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김기협과 유시민의 기이한 인연도 그러하거니와 김기협의 책이 거의 노무현에 대한 나름의 추념을 담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세속의 시각으로 경기고-서울대의 주류 엘리트의 길을 걷다 스스로 마이너리티가 된 김기협은 자연스럽게 노무현과 조우한다. 이게 역사적 필연인지, 혹은 정치적 사회적 마이너리티였던 노무현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정치공학으로 안되는 어떤 진정성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것은 눈 밝은 자들의 눈에는 아주 명확한 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정치공학을 거부했고(아니, 생래적으로 그에 맞지 않았고) 김기협의 눈은 그걸 꿰뚫어 보고 기꺼이 ‘노빠’를 자임했다.  

사유의 깊이가 어떤 지극한 경지에 달할 때 언어는 지시대상을 넘어 보이되 보이지 않는 진리에 육박한다. 나는 노무현의 ‘유서’가 그같은 경지에 이르렀던 偈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어느 해 인가, 조계사 앞 불가 서점들을 돌아다니다가 샀던 ‘선시’ 앤솔로지에서 얼핏 읽었던 김달진 선생이 모은 禪詩集 의 풍경은 그러했다. 그가 죽었던 지난해 어느 시사지에서 그의 비문을 응모했을 때, 나는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도 후보로 인정받지 못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대통령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전직 대통령이 되어서도 전직 대통령이 되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내용의 비문을 보낸 적이 있다. 간결 완미해야할 비문으로는 적당하지 않았으나 그 잡지에 오롯이 실려 내심 반갑기도 했다. 이 완강한 기득권 동맹의 철저한 배제의 논리 앞에서 그의 죽음은 역사적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불편했다. 출근버스 안에서 가끔씩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느라 힘겨웠다. 그만큼 그의 삶이 내게 ‘객관화’되지 않은 탓이다.

유시민은 노무현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성찰적 지식인’이었다고 부르고 싶다. 성찰의 과잉은 때로 과도한 부끄러움과 명분론을 낳기도 한다. 위선과 위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성찰’하며 사는 것은 스스로의 쪽팔림을 인식하는 삶이기도 하다. 나는 생전의 그를 다섯 번 만났다. 민주당 경선후보 시절 금강빌딩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실에서, 그리고 정몽준과의 단일화 직전에, 그리고 그 후에 두 번.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가 점점 역사의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고 느꼈다. 마흔이 넘은 사람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2년 대선이 점차 무르익으면서 그는 점점 변해갔다. 눈빛은 더 형형해졌고, 자신감과 에너지는 점점 더 흘러 넘쳤다. 저렇게 한 개인은 역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정몽준의 사진을 두 번에 걸쳐 두시간 동안 찍었던 한 선배는 “아무리 눈에 초점을 맞춰도 도대체 눈빛이 맑게 찍히질 않아”하고 투덜거렸다. 그는 작가의 반열에 드는 뛰어난 사진작가였다. 눈에서 광채가 나지 않는 정치인, 그 말을 듣는 순간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는 노무현이 이길 것이라 직감했다. 결단을 앞둔 사람의 눈이 그렇게 정직하다는 것을 나는 사진기자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김기협과 노무현의 책이 아프고 쓰린 것은 그런 눈을 가진 정치인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공과와는 별개로 그나마 당대와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전직 대통령을 잃어버렸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이성적 토론과 합리적 접근, 요컨대 그는 토론이 가능한 대통령이었다. 천안함 사태를 맞은 청와대에서 전직이랍시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전두환과 김영삼 둘 뿐이라는 것은 정말 희극적이다. 노무현의 책이 아주아주 많이 팔려 조중동에 가려워졌던 그의 진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노무현과 그의 정책에 대해서 제대로된 회고와 평가를 할 수 있기를.  

노무현의 신화를 넘어서는 작업은 조만간 어디에서든 시작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고한 보수기득권 동맹에 에워싸였던, 그래서 개혁의 폭이 대단히 제한되었던 어떤 정치세력의 운명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불가피한 '제한성'을 애써 외면하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에게서 정치적 리얼리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비)과 같은 전시대에 대한 평가서가 가진 한계도 그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이 책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하나의 규범적 비판논리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진보적 이성과 지향이 한국사회라는 현실을 경유하여 만들어내는 복합성과 중층성을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레디앙같은 진보인터넷 신문이나 과거 진보누리와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받게 되는 인상은 이들의 인식과 논리가 참으로 앙상하고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알아도 헤게모니적 실천과는 영 동떨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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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파주출판단지는 아이들로 북적댔다. 여기가 출판단지이고, 입주한 출판사의 상당수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까먹었던 탓이다. 겨우겨우 헤르만하우스 근처에 차를 대고 헌책방 ‘보물섬’을 찾았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지만 자유로 인근에서 결국 포기했다. 휴일의 도로를 달리는 차는 너무 빨랐고, 자전거 도로는 곳곳에서 끊겨 있었다. 확실히 지자체의 생태도시, 자전거 도시 운운은 전시용이다. 파리의 밸리브를 흉내 낸 ‘fifteen' 자전거들은 아무도 그걸 타지 않아 거치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신도시는 날림으로 순식간에 지은 조립주택 같은 공간이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가 잘 그려냈듯이 신도시의 욕망은 허망하고 부질없다. 하기야 어디 신도시만 그러하겠는가. 역사가 거세된 모든 공간은 모두 허공위에 지은 집과 같지 않을까.

휴일에 헌책방이라니. 엊그제 휴일에 서점에 가는 사람의 내면은 황폐한 것이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했었는데, 나 또한 이 무슨 구태인가. 보물섬은 그리 크지도 않고, 갖춰놓은 책들도 변변한 구색은 아니었다. 이 곳이 출판단지라서 파본이나 낙장으로 빠져나온 신간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느 헌책방과 다를 바 없었다. 헌책방에 가면 흔히 만나는 80년대 사회과학 책들과 철지난 에세이들. 한때의 베스트셀러와 예의 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같은 책들.

처음 집어든 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사회과학>(김성기, 문학과 지성사).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1990년 무렵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비판논리로 시작되었던 서구의 맥락과는 달리 그 당시 한국사회의 문화예술을 풍미하던 리얼리즘에 대한 반동적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권택영이니 김욱동이니 하는 소장 영문학자들이 창비류의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을 넘어서기 위해 시작했던 것. 김성기의 이 책은 문화예술 중심이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사회과학으로 이끌어간 선구적인 책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때 이 책을 처음 건네준 한 여인은 밑줄을 꼼꼼히 긋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의 밑줄을 따라 동글동글한 글씨의 메모를 따라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읽었던 이 책이 어디로 간 것일까. 옛일이 생각나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두 번째는 두레에서 나온 문고본 레닌 저작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모택동의 <실천론/모순론>과 로자의 <러시아 혁명> 등과 함께 시리즈로 묶였던 책. 레닌의 비난만 믿고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을 역사에 다시 없는 반동적 인물이자 ‘배신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선배가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극우보수 일간지의 사회부 기자를 하다 대기업 부장으로 ‘영전’해 있는 그 선배는 그때 과연 ‘인터내셔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크크, 웃기는 일이다.

함께 집어든 <1985년>(최광렬 옮김, 신평론)도 비슷한 류의 책이다. 내 기억으로는 집안이 부유했던 한 미국 유학생이 유학갔다가 ‘트로츠키주의’에 빠져 귀국 후 국제사회주의를 널리 전파(?) 하려고 이 출판사를 차렸다.(10년도 더 된 술자리의 한 전언에 따르면 말이다) 그 뒤 책갈피라는 출판사로 개명하면서 참으로 집요하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 하먼,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은 이론가들의 책들. 이 출판사와 관계가 깊었던 몇몇 트로주의자들이 생각난다. 하나같이 문약스럽고 비리비리한 인물들이었는데, ‘구라’와 ‘인간성’만큼은 감동적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책, 서점, 출판사 언저리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1985년>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빗대어 그 후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라는데, 낯익은 오웰의 ‘언어학 사전’ 용어들과 빅브라더의 이름이 보인다.

김용학 선생의 <사회구조와 행위>(나남)도 챙겼다. 시카고대 출신의 이 명민한 사회학자는 어울리지 않게(?) 좌파인 캘리니코스의 <역사와 행위>(교보문고)를 번역 소개했었는데, 그 뒤에 써낸 책이 이 책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김교수가 <사회비평>이라는 잡지에 분석 맑시즘에 대한 글을 썼는데, 하마터면 나는 그 사람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할 뻔 했다. 대학시절 사회학과 대학원을 준비하던 한 여인이 이 책을 탐독하던 기억이 난다. 그녀를 따라 1-2장 쯤이나 읽었을까? ‘강 00 씨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드립니다’ 라는 저자의 헌사가 선명하다. 이 강모씨는 왜 이 책을 내다 팔았을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내가 봤던 것은 이 책의 초판(1985년)인데, 오늘 산 건 2001년에 나온 재판이다.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유명했는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내 손으로 표지를 쌌던 책만해도 족히 30여권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왜 있잖은가. 아무리 읽어도 선명은 커녕 점점 몽롱해지는 듯한 ‘정신주의’를 부추기는 책들. 이를테면, 카잔차키스의 <영혼으로 서리라>(청하), 류시화 류의 책들. 나는 아마 이 책을 사놓고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잃어버린 책을 다시 산 경우. 대학 1학년 즈음에 읽었다가 1년 뒤쯤 대학에 들어온, 지금은 게이가 된 후배 놈에게 <중국의 붉은별>, <전태일 평전>과 함께 선물로 줬을 것이다. 아마도 그 넘은 그 책들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녀석에게 이 따위 책들을 선물이랍시고 주는 선배라는 넘도 정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전사> 시리즈는 아마도 1-4권까지는 가지고 있었을 텐데,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2권 밖에 없다. 다시 펼쳐보니 송건호, 임종국, 유인호와 같은 돌아가신 분도 있고, 이 ‘빨갱이 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도 보인다. 그때 선배들이 분단과정을 다룬 김학준의 논문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현대사상사). 책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읽지는 않았었다. <WAY OF SEEING>으로 잘 알려진 존버거의 <영상커뮤니케이션과 사회>(나남)도 샀다. 내가 예전에 이 책을 갖고 있었던가, 아닌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런가. 대학시절에 존 버거를 아주 좋아하던 한 철학도가 읽어보라고 권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는 책이다. 존 버거가 쓴 소설 <결혼을 향하여>도 벌써 몇 년 째 중간에서 읽다 만 채로 있다.  

 

박완서 선생의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문학사상사)는 세계사판 전집에서는 <도시의 흉년> 두권으로 묶였던 책. 학원강사 알바를 하던 시절,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던 여중생에게 빌려 줬는데, 그녀는 박완서 선생의 세계사판 <미망> 3권과 함께 이 책을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을 터인데, 말수가 적고 국어만 유난히 잘하던 그 여학생이 생각났다.

또하나의 구입목록은 우리로 치자면 대중소설과 본격소설 중간 어디쯤 되는 소설을 쓰는 명민한 작가 줄리안 반즈의 <10과 1/2로 쓴 세계사>. 반즈 소설은 집에 여럿 있었으나 ‘서재 이혼시키기’와 더불어 딴 곳으로 가고 말았다. 앤서니 기든스가 쓴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의 첫장은 반즈의 소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으로 시작한다. 성찰없는 욕망이 부르는 비극을 소재로 한 그 소설은 개인의 판단를 좌우했던 외적 준거가 사라진 시대의 윤리를 묻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최인훈의 문학과 지성사판 전집 일부인 <크리스마스캐럴/가면고>. 그가 <화두>를 써냈을 무렵 갈현동 집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신경질적이고 까탈스런 모습이었다. <광장>의 작가, <화두>의 소설가라는 신화는 그날 이후로 내게서 와장창 무너졌다.

소나무에서 나온 <제주민중항쟁>까지 포함하여 이 책들 전부의 가격은 1만9천원. 싸다, 싼 것이 이 책방의 미덕이다. 자유로를 달리면서 헌책방을 가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퇴행성 질병임을 새삼 절감했다. 더불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딜레탕트이자 스노비스트라는 것까지. 그런데, 가만, 스노비즘이라도 없다면 9 to 5의 삶에서 어찌 책 한권이라도 꺼낼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스노비즘을 은밀히 나누고, 키들거리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적 공동체라도 없으면, 얼마나 황막한 세계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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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5-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갈피가 그런 곳이었군요 파주에는 헌책방들이 거기 말고도 또 있나요? 저는 신림동에 있는 걸 가 본 것이 고작이라.. 굉장히 저렴한 편인 거 같네요.

모든사이 2010-05-07 13:35   좋아요 0 | URL
파주출판단지의 헌책방은 어린이 책을 파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나다 흘낏 본 것 말고는 들어가보질 않았으니 어떤 지는 잘 모르겠고요. 1994년 이 출판사의 대표가 구속되는 조직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죠. 기사를 찾아보니 23명이 구속되었었네요.

nashe 2010-05-0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촌의 "숨어있는책" 분점이 파주 단지에 있습니다. 파주단지내 중앙로(?)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보물섬 있는 쪽이 아니라 그 건너편쪽에 있습니다. 자세한 위치는 포털 지도서비스에서 확인가능합니다. 숨어있는게 특기인 책(방)이라 근처에서 가서도 잘(!) 찾아야 합니다. 안쪽 길가에 있음에도 잘 안보입니다.

모든사이 2010-05-07 00: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숨어있는 책이 헌책방 가운데에서 질과 양 모두에서 가장 훌륭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파주에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거기도 들렀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