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2
벳시 프리올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세기의 요부 마릴린 먼로와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중에 누가 더 ‘유혹녀’(seductress)의 자질을 갖고 있을까. 먼로는 육감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으로 숱한 남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였지만 스타이넘은 늘그막에야 결혼에 골인했다. 그럼 정답은 먼로가 아닐까. 하지만 미국의 역사학자 벳시 프리올뢰는 먼로는 유혹녀가 아니고, 스타이넘이야말로 타고난 유혹녀라고 말한다. 그녀는 “독립적인 존재이자 쾌락주의자이며, 남녀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여성”이 바로 ‘유혹녀’의 새로운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대학에서 ‘소설에 나타난 유혹녀’를 주제로 강의한 뒤 펴낸 ‘유혹의 기술 2’는 ‘세상을 매료시켰던 여자들’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선사 시대의 여인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시대의 창부, 현대의 여성 운동가 스타이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대표적 유혹녀들을 분석하고 있다. 2년 전 번역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유혹의 기술’이 보편적인 유혹자들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그중 ‘여성’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유혹녀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으로 섹시함을 자랑하는 금발의 미녀이자 풍만한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스판덱스 소재의 옷만 골라 입는 요부”는 “천박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싸구려 유혹녀”에 불과하다. 이제 진정한 유혹녀는 탁월한 지성과 자율성, 성실함과 세련미를 두루 갖춘 여성이다. 역사에서 이런 여성들은 기존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악마’로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창부 아스파시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소크라테스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애인이었던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대신 작성해주기도 했다. 니체를 사로잡았던 루 살로메, 아르헨티나의 여신 에바 페론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나이든 유혹녀·지적 세이렌·예술가·정치가·모험가 등 6개 유형으로 유혹녀를 분류한다. 모두 육체적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남성들을 정복했던 여성들이다.

역사상의 유혹녀들이 가진 ‘유혹의 기술’은 어떤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먼저 성적인 기술이고, 우아한 몸짓과 스타일로 관능미를 발산할 줄 아는 ‘분위기 연출의 기술’이다. 또한 최음제처럼 말을 구사할 줄 아는 ‘대화의 기술’, 남성의 정신세계를 정복하고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심리의 기술’도 포함된다. 저자는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발휘돼야 하는지를 풍부한 ‘성공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유혹녀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여성 내부에 잠재된 유혹녀로서의 능력과 매력을 스스로 발견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단의 비밀 다음은 인도다
이장규, 김준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인도 취재를 간 한국인 기자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인도의 어린이들이 ‘19단’을 외운다는 사실이었다. 전세계의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고 있지만 인도의 아이들은 “19 ×19는 3백61”을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인도에 대해 “오늘날 인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정보기술(IT) 산업의 허브로 떠오른 것은 뛰어난 이공계 인력들을 양성했기 때문”이라며, 그 바탕에는 수학을 중시하는 인도의 풍토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펼쳐질 ‘인도의 세기’를 다룬 책의 제목을 ‘19단의 비밀’이라 붙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잠재적 경제 대국을 뜻하는 브릭스(BRICs)라는 용어가 유행어가 되면서 이제 인도를 가난과 문맹·종교 갈등으로 얼룩진 후진국으로만 보는 시각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2003년 미국의 투자회사 골드먼삭스가 브라질·인도·중국·러시아 등 4개국이 향후 세계 경제를 좌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인도는 전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그중 인도는 경제 규모에서 프랑스·독일·일본을 제치고 2050년께에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이들 국가를 잇따라 방문하며 ‘브릭스 외교’를 펼친 것도 이런 전망 때문이다.

이 책은 ‘다음은 인도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야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열풍을 이뤄왔지만 인도에 대해 대다수 한국인들은 무지하기 그지 없다. 인도의 문화나 사상, 독특한 생활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수종의 책이 나와 있지만 세계 IT산업의 연구·개발(R&D) 센터로 부상하는 오늘날의 인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조감도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한반도의 열다섯배 크기, 10억4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이 거대 국가의 활력과 가능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코끼리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코끼리가 성큼성큼 달려 나가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조명되는 인도의 모습은 종교 문화나 정치가 아니다. 저자들은 오늘날 인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경제, 그것도 IT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정보산업이라고 본다. 공대만도 1천1백여개에 이르고, 한해에 약 30만명의 엔지니어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 인도다. MS나 인텔·구글 등 세계적인 IT업체들이 속속 인도에 진출하고, 그곳에서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공급받고 있다. 저자들은 인도가 IT 대국으로 떠오른 것은 수학을 존중하는 문화 풍토만이 아니라 공대생 양성에 힘을 기울였던 인도 정부의 노력,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얻게 되는 이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인도는 문맹률이 35%가 넘는 나라이기도 하다. 외국 기업이 투자를 위해 서류를 작성하려면 하루 온종일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곳이다. 툭 하면 터지는 종교 분쟁과 인종간 분규도 인도의 그늘이다. 저자들은 이런 인도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를 솜씨있게 갈무리해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LG전자·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현지에서 ‘명품 메이커’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이다. LG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잔 뒤 삼성 전자레인지로 토스트를 굽고, 삼성 휴대폰을 들고 현대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게 인도 상류층의 모습이다. 꿈틀대는 오늘날 인도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화의 미소 - 노성두의 종교미술 이야기
노성두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유럽의 미술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화’(聖畵)들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나 최후의 만찬, 수태고지 등을 그린 그림들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성화들은 성서의 내용을 토대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성경을 정독하는 것과 같은 지루한 경험이다. 종교미술은 성경의 알레고리에서 출발한다. 종교가 미술의 출발이라는 점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전통 미술의 명작들로 알려진 것들은 많은 경우 불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소장 미술사학자 노성두씨는 성경의 내용을 다룬 회화를 찾아 한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옛 미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몸을 씻고 마음을 닦았다고 한다. 그리고 삶의 숫돌에 예술의 영혼을 단련했다. 종교미술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의 발걸음도 그들의 성스러운 여정의 그림자를 뒤쫓았다”라고 털어놓고 있다. 그가 이런 ‘순례’를 통해 성화를 깊고 섬세한 눈으로 읽고 나서 써낸 ‘성화의 미소’는 우리를 종교미술의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서양 고미술사와 중세미술사를 연구하는 그는 미술과 신학·인문학을 넘나들며 성화의 세계를 깊고 풍부하게 해석해낸다. 성화가 성서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것처럼 그 역시 성서의 이야기 순서를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해 노아의 방주, 바벨탑 등 구약성서에 담긴 내용들과 예수탄생, 이집트로 떠나는 성가족, 막달라 마리아, 최후의 심판 등 신약성서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샤르트르의 장미창, 중세시대의 필사화, 모자이크 미술, 목판화 등을 배경으로 한 성화이론도 책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저자의 관심은 성서의 주제들이 아니라 그것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다. 그가 여기서 담고 있는 성서 이야기는 모두 34개다.

그림 한점 한점을 해석하는 저자의 솜씨는 미술사라는 전공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노아의 방주를 다룬 장에서는 한글판 공동번역 성서만이 아니라 독일의 루터 성경, 라틴 성서와 이탈리아 성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과 그리스 신화까지 동원된다. 성서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는 시대나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도 초기에는 두 다리에 각각 못이 박혀 있었지만 나중에는 두 발을 겹쳐 모아 못 한대를 친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십자가의 못 세개는 육체와 정신·영혼의 세 고통을 상징한다.

이 책은 성화라는 종교미술을 통해 서양 미술의 원류를 탐사한다. 그것은 기독교 문명을 토대로 이뤄진 서구 문명의 근원을 캐는 작업이기도 하다. 매끄럽고 구수한 입담을 가진 저자는 뛰어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미술관을 돌아보려는 배낭 여행객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신들의 여행이 더욱 풍성해지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여자가 고민을 토로한다. 그녀가 만나는 남자는 출장이 잦을 만큼 무척 바쁜 사람이다. 일 때문에 전화연락이 안될 때도 많다. 그녀는 일로 ‘성공한 남자’를 만나려면 그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연애는 어떻게 될까? 그녀의 고민을 들은 그렉 버렌트는 “바쁘다는 말은 개똥 같은 단어이며, 나쁜 자식들이 애용하는 말”이라며 “그럴 듯한 구실같아 보이지만 결국 전화할 마음조차 없는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고 단호하게 충고한다. 요컨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으니 싹 정리하고 다른 남자를 찾으라는 얘기다.

그렉 버렌트는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세계 남녀들의 연애심리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의 인기 시트콤 ‘섹스 & 시티’의 스토리 컨설턴트다. 그가 이 프로그램의 책임 작가인 리즈 투칠로와 함께 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연애하는 여성들에게 ‘착각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며 유럽·캐나다에서도 수만부가 팔린 책이다.

‘섹스 & 시티’의 소재가 됐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따분한 심리교과서와는 사뭇 다르다. 연애의 달인이었던 버렌트의 ‘경험’과 51명의 ‘고민녀’들의 사례가 풍부하게 제시돼 있는 게 특징이다. 남자 혹은 여자를 사로잡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감성적이게 마련인 연애하는 여성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게 이 책의 독특한 점이다. 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에게 맘이 없는 남자는 그만 정리하고, 이제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래서 어찌할 바 모르고 애닳아 하는 남자를 찾아나서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보자. 한번 데이트하고 함께 밤을 보낸 남자가 2주가 지나도록 전화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가 무척 바빠서 전화번호를 잃어버렸을지 모르니 내가 먼저 전화한다? 천만의 말씀. 정답은 “그가 나한테 반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내 삶을 꿋꿋이 살아간다”이다. 남자를 만난지 한달쯤 됐고 섹스도 좋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섹스가 중단되고 함께 포옹만 하고 밤을 지새운다? 여자는 남자가 “그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게 돼서 겁내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착각이다. 남자가 진짜 반했다면 그런 두려움 따윈 없다.

유부남과 연애하고 있는 한 여성은 자신은 “사랑의 감정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내 경우는 전형적인 외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버렌트는 “그가 아내와 헤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저 유부남의 바람 상대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충고한다. 5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결혼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당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준비된 남자’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 책은 세계 어디서나 연애의 존재방식은 유사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고민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 졸이는 감정이야 어딘들 다르겠는가.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 연애는 거기서 출발한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한국 남자들은 대체로 감정 표현에 서툴고 무덤덤한 연애를 하는 편이다. 버렌트의 충고를 따르자면, 이랬다가는 여성들에게 딱지 맞기 십상이다. 여성에게 남자의 연애심리를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지만 남자들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는 얘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 폴리테이아 총서 3
로버트 달 지음, 박상훈, 박수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시 대통령은 재선 성공 직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미국식 헌법과 민주주의 모델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는 미국의 헌정체제가 현대 민주주의를 정초한 하나의 모델이라는 미국인들의 통념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헌정체제는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에 적절치 않으며 “미국인들이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도 미국은 이들 나라에 자신의 헌정체제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달이 보기에 미국의 헌정체제는 심각하게 “비민주적”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체계를 이상적 모델로 생각해 왔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런 시각은 다소 놀라운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 헌법을 모델로 헌법체계를 만든 나라가 아닌가. 지식인들과 언론들은 선진적인 민주주의를 말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미국을 거론하지 않았던가. 로버트 달이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일개 학자라면 이런 주장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 주류 정치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학자다.

이 책의 원제는 ‘미국의 헌법은 얼마나 민주적인가’다. 그가 비민주적이라 말하는 것들은 연방제, 양원제, 사법부의 법률심사권, 대통령 선거인단 등 사실상 미국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들이다. 이 제도들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위대한 민주적 실험이었지만, 그 후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이제는 “낡은 모델”이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이 초기에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민주주의의 제 3세계’가 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우리가 미국 정치체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미국 헌정체제의 비민주성은 ‘대표의 불비례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의한 ‘다수 지배의 체제’다. 하지만 연방제 및 이에 기초한 양원제와 대통령 선거인단 등은 모두 유권자들의 평등한 대표성을 왜곡한다.

미국은 상원의원 선출에서 인구가 많고 적고 간에 모든 주에서 2명을 뽑을 만큼 ‘대표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헌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헌법 개정은 상하 양원의 3분의 2가 찬성하거나 전체 주의 3분의 2 찬성을 통해 제안이 되고, 전체 주의 3분의 2의 승인 또는 상하 양원의 4분의 3이 동의해야 한다. 달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는 아주 먼 미래에서조차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비관한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미국 사법부가 과도한 법률심사권을 갖고 있다는 달의 비판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연방대법관 9명중 5명이 미국인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 한국 역시 지난 5월과 10월의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통해 사법부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이 사실상의 ‘입법권’을 행사하면서 대통령과 의회의 결정을 ‘판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이런 점을 들어 장문의 ‘서문’을 통해 헌재와 사법부의 권력을 비판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주장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