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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순례는 세가지 욕망에서 비롯한다. 그 첫째는 ‘의외의 발견’에 대한 기대다. 사고 싶었으나 품절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을 발견한다거나 오래 전에 나온 책 가운데 이런 책도 있었네 하는 경우다. 이미 품절된 지 오래고 다시 나올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이는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까치) 같은 경우가 전자일 것이고, 60년대 졸부들의 거실을 채웠던 전집류 중의 하나인 <세계의 대사상> 시리즈에서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제4인터내셔널의 이론가였던 아이작 도이처의 <스탈린 평전>을 발견하는 경우가 후자다. 반공주의가 극성이던 시대에 극좌라 할 수 있는 도이처의 책이 소개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빨갱이 저자의 책이 나올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스탈린 비판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핑계로 서슬퍼런 ‘간윤’의 ‘필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물론 여기에는 지금도 그렇듯이 공안담당자들의 무식함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진보당의 조봉암이 사법살인을 당하던 시대에 전집에 이런 책을 슬쩍 끼워 넣을 줄 안, “심장이 왼쪽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돈이 없어 포기했던 책을 싸게 대량구매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경우 카드를 남발하게 되고, 책에 대한 어떤 예의도 없이 그저 노끈으로 책을 묶어 사들고 오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워낙 많은 책을 샀으므로 살 때의 욕망과 달리 읽기도 거의 포기하거나 한두권에 그친다. 이런 책 사재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나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리즈 같은 것들에 ‘삘’이 꽂힐 때 감행된다. 처음으로 헌책방에서 대량 사재기를 한 것은 1980년대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구술 민중자서전> 20여권을 샀을 때다. 서울역 주변의 헌책방에서 샀다. 내가 만난 우리나라 최고의 '읽기 매니어'와 함께였다. 평범한 민중을 불러내어 지역의 토박이 언어로 살아온 내력을 구술케 한 이 시리즈는 90년대 이후 널리 확산된 ‘구술사적 역사방법론'의 선구적 사례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세 번째는 초판본이나 고서와 같은 오래된 책에 대한 욕망이다. 한문해득에 능하지 못하니  그야말로 ‘고서’의 진가를 알아볼 리도 만무하고, 더구나 그같은 책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내가 감히 꿈도 못꿀 터이니, 겨우 살 수 있었던 책의 연대기는 60년대 어름까지가 한계다. 인사동 고서점인 통문관을 그닥 좋아하지 않은 까닭도 그것이다. 이런 서점은 일반인 헌책방 순례객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식민지 시대에 출간된, 그만큼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책을 구경만 하다 입맛만 다시며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기억은 조금 씁쓸하다. 창비의 편집위원인 최원식 선생이 한 평론에서 1948년에 나온 레닌의 <제국주의론> 번역서를 인용한 것을 읽었을 때, 그 시절 그 책을 번역한 한국의 볼세비키 추종자의 열정을 생각했었다. 왜 나는 비평을 보면서도 각주에 인용된 책의 ‘연대’에 눈길이 가는 것일까. 이런 스노비즘도 병이라면 병이다.

바로 그 세 번째 경우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조금은 후회되는 기억이 있다. 1990년 여름, 전주의 구시가지를 산책하다 그 주변에 즐비했던 헌책방을 들어갔을 때, 일제 시대 나온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책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제목에 마르크스라는 일본어가 박혀 있고, 출간일이 쇼오와(昭和) 00년 식으로 찍힌 이 책들에는 세월에 바랜 만년필 메모나 밑줄도 있었다. 낡은 나무 책장 서너 칸 쯤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들을 보면서 이게 동경에 유학했던 호남의 ‘마르크스 뽀이’들이 탐독했던 책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이 ‘동무’들과 읽었음직한 책들, ‘소년 빨치산’이었던 박현채 선생이 유년기에 읽었음직한 책들 말이다. 그들은 이런 책들을 독파한 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거나 삼팔선을 넘어 북으로 갔을 터였다. 대구가 좌파들이 득시글대는 ‘동방의 모스크바’였다지만, 전주니 광주도 그에 못지 않은 좌파 지식인들의 집단서식지였으니 이런 짐작이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일어를 못해 비록 읽지는 못할 지라도 한 두권쯤 살 수 있었을 텐데, 가난한 대학생이니 책장만 쓸어본 채 나오고 말았다. 때로 책은 내용보다 '아우라'로 감동을 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 몇 년 후에 다시 전주를 방문했을 때 그 많던 헌책방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고, 당연히 이 책들도 폐지수집상의 수레로 쓸려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제법 큰 돈을 주고 샀던 '오래된 책'은 고 임종국 선생이 편집한 <이상전집>(1956, 고대출판부) 초판본이었다. 이상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아마 이 전집의 공로가 크다고 할 것이다. 하드커버라기엔 너무 소프트한 표지, 낡은 갱지에 인쇄된 본문, 지금의 북한식처럼 보이는 명조체 활자, 세로 조판의 두권 짜리 전집의 가격은 15만원. 그 후 이어령의 전집(1977-1978, 갑인출판사), 김윤식․이승훈의 문학사상사판 전집(1989-1993), 가장 최근에는 김주현의 전집(2009)이 나왔으나 모두 출발은 임종국의 이 전집일 것이다. (임종국 선생의 이상연구와 친일문학연구 사이, 곧 모더니즘과 민족주의(혹은 실증주의)의 간극과 길항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임종국 선생의 이 <이상전집>은 한 지인이 서대문에 ‘어제의 책’이라는 헌책방을 열었을 때 3만원을 받고 팔아버렸다. 젊은 나이에 책이 좋아 헌책방을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돋보였고, 사라져 없어진 서점 ‘오늘의 책’의 역사를 잇겠다는 옥호(屋號)에 감명받은 바 있어 “헌책방이라면 이런 정도 책 한 두권은 구비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미련없이 판 것이다. 내게는 문학사상사판 전집도 있으니 판본비교 같은 쓸모없는 짓을 하지 않을 바에야 기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책을 산 어느 호사가에게 복이 있을 진저.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역에서 남영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는 헌책방이 가로로 죽 늘어서 있었다. 대개의 책들은 참고서거나 허접한 삼류 소설들이었으나 그 사이에 가끔 보물이 끼어 있었다. 또한, 이광수, 김동인 류의 근대소설가들의 초간본 책들도 안전한 카운터 뒷자리에 꽂혀 있었다. 이광수의 <무정> 초간본이라든가(초간본이긴 해도 표지는 심하게 닳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같은 책들. 대개의 책들이 당시 가격으로 10만원이 넘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책들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 금액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초서의 책 

 

책의 ‘내구성’을 구성하는 한 측면이 내용의 지속가능성이라면, 다른 측면은 물리적인 것으로서  제책의 견고함일 것이다. 분명 전후 미국원조를 통해 들어왔을 질나쁜 종이에 인쇄된 50~60년대의 책은 그런 측면의 내구성이 무척이나 허약하다. 식민지 시대에 나온 근대간행물들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한지로 만들어진 옛책의 견고함과 내구성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전후에 나온 책들을 보면 마구잡이로 지어진 판잣집 같다는 인상이다. 여태까지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산책 중 60-70년대 책 중에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면서도 장정이나 제책 면에서 점수를 줄만한 것은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전후문제작품집>(1964) 시리즈다..(미국의 비트세대 소설가들이나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같은 소설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아마 이 전집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 책의 명장 윌리엄 모리스가 없다는 것은, 아니 명장이전에 한지로 만들어진 옛책이 충분히 ‘근대화’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사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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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3-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형, 임종국 이상전집 나한테 한 권 기증한 거 기억 안 나우?
근데 나한테 준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유?

이진성 2010-03-0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헌책방에서 고른 책중에 내가 점수를 준다면 정음사판 셰익스피어전집!
번역도 장정도 최고!
게다가 가격까지. 헤이리 헌책방에서 권당 500원에 샀다면 믿겠수?

모든사이 2010-03-05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한권을 따로 구했던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언급한 건 묶음으로 산 온전한 전집 한질이라..ㅎㅎ 정음사판 세익스피어 전집은 아직도 여기저기 많아. 근데 그건 사고 싶지도 않고 읽고 싶지도 않아.

미국사람 2011-08-2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 책방 순례에 미친 양반이 또 있군요.

근데 그 책을 어디에다 쌓아두지요....
한20년 모으면 집이 좁아져서....
마누라 등쌀에 견디기 힘들게 되지요...

어쨌건 동업자를 만난 것같아 흐믓합니다. 다만 저와은 독서 취향이 달라 이 블로그에서는 건질 것이 별로 없군요. 하지만 건질 것이 있는지 천천히 다시 보아야 할 것 같군요. 꾸뻑

모든사이 2011-08-2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할때마다 한 짐씩 정리하지요.ㅋㅋ 재작년 이사때는 책장 두개 분량의 책을 후배에게 '분양'해 주었지요. 아, 그리고 우리나라 만화방에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중 책장이라고 있습니다. 책장이 앞에 하나 있고, 바로 뒤에 책장이 하나 더 있는...말하자면 좁은 공간에 책을 두기가 아주 좋습니다. 앞쪽 책장에 바퀴가 달려서 이리저리 밀수도 있고.. 고걸로 그나마 조금 해결하고 있지요.. 마누라 등쌀은 애진작에 흘려버리고 있고요...ㅎㅎ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호의 ‘진보좌파의 길’이라는 특집을 읽다가 잠시 상념에 젖다. 한 인터넷 논객은 해방이후 좌파의 궤적을 예의 그 ‘싸가지 없는 문체’로 이 잡지 한 면에 요약하더니, “자본주의 시민의 욕망과 자본주의를 벗어나려는 좌파의 욕망이 대화하고 섞이는 곳”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진보좌파의 길’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하나마나한 얘기다. 이게 이제는 퇴색하다못해 너덜너덜해진 주사파의 ‘대중노선’과 실천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욕망이라는 담론의 수사학이 덧붙여졌을 뿐, 그것은 “오래된 농담”이다. 앤더슨이 서구 좌파가 실천의 부재로 망했다더니, 한국 좌파의 실천은 여전히 앙상하다. 그 실천은 불가피하게 우원하고 더딘 대로 정책적 사고(이미지를 거부하는 좌파가 정책 말고 뭐가 있겠나)일 수밖에 없을 진대, 그럴 듯한 정책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좌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이 점에서 이 친구가 민노당 학출들의 ‘경력부재’를 말하는 대목은 전적으로 옳다. 그 경력은 국가를, 사회를, 조직을 제대로 움직여보고 운영해본 자들이 갖는 경험적, 암묵적 지식과 지혜일 것이다. 선험적 담론이나 이론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갈고 다듬어진 실천적 정책대안 말이다. 언젠가 진보정당의 후배에게 정말로 좌파가 집권하기를 바란다면, 10년 프로젝트로 100명 유학을 보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브라질에서 가서 룰라를 배워오든지, 공교육 정상화 떠들지 말고 핀란드에 가서 교육정책을 배워오든지, 독일에 가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배워오든지. 레디앙 같은 좌파 인터넷 매체의 기사에 달린 그악스럽고 모진 소위 “좌파들의 댓글 비판”을 보면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어떻게 저렇게 심하게 상대를 몰아부칠까, 저런 심성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집권하는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 (이점, 결코 대칭적이라 말할 수 없으나 수구꼴통들의 댓글에 스민 멘탈리티도 마찬가지다. MB시대, 우리는 그걸 이미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또다른 글에서 전 민노총 위원장인 이갑용은 노무현, 김대중 시절의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들 ‘우파 정권’에 투항했는지를 냉소적으로, 암울하게 들려준다. 그랬을 것이다. 가령 노동운동가였다가 한미FTA 국내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이제는 현역 의원인 홍모씨의 경우 같은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의 비판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소박하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전직 노동운동가들이 김문수, 이재오, 권용목 보다는 낫지 않나 라는 반감도 있다. 이들에게는 적어도 “쪽팔려할 줄 아는 양심” 정도는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갑용에게 찾아와 노무현 시대의 노동정책이, 비정규정책이 잘못됐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최원은(이 사람이 대학시절 ‘프롤레타리아 시’를 쓰던 그였던가?) 영호남 지역주의와 서울 지역주의에 대한 돌파를 주문한다. 적어도 계급적 구분선 못지 않게 지역적 구분선을 ‘현실’로서 포용한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한발은 더 나아간 듯 하다. 하지만, 현재의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에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서, 민노당이, 진보신당이 무슨 말을 했던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 내부에서는 그게 이슈화할 정치담론이라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원이 주문하는 ‘정치적 리얼리즘’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여전히, 앞으로도 당분간, 요원할 것이다. 참, 허망하고 안쓰럽다. 그 허망함은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민노당 ‘불법 후원금’(이라 경찰이 우기는)에 관한 기사가 전하는 권영길과 천영세에게 전달된 금액이 “10만원, 15만원”이라는 “팩트”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10만원, 15만원 때문에 ‘당’의 이미지와 대중적 공신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실이라니.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좌파란, 스스로 지식인이고자 하는 자들의 ‘페이퍼 담론’이다. 여기서 지식인은 고전적 의미의 지식인이라기보다 ‘좌파담론의 소비자’를 말한다. 그건 애거서 크리스티 팬클럽이나 짐모리슨 동호회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건 비아냥도 무엇도 아니다. 담론의 소비도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려니, 그 애호의 대상이 마르크스인들, 지젝인들, 밥 딜런인들, 진중권인들 무엇이 다를 것인가. 패배주의라는 비판도 기실은 어떤 초월적 권위를 상정한 뒤에야 가능한 비판이니, 초월도 권위도 사라진 마당에야 설득력이 없다. 누군가 내게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구독하라고 계속 권유를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와의 관계를 따진다면 그쯤 구독할 수 있겠으나, 실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나같은 좌파담론 소비자에게 ‘재미’란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니까. 물론 그 재미에는 좌파의 현실적 성취에 대한 것도 포함이 된다. 재미를 포기하면 담론의 소비도 지탱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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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방문한 헌책방은 어디였던가. 충청북도 청주시 북문로의 후미진 뒷골목,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헌책방에서 내가 무엇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삐리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삼중당 문고 한 두권 쯤을 샀으리라.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벌? 마농레스코? 다만, 세월의 더께가 자욱한 먼지로 뒤덮인 옛 책들의 포근한 아우라만이 기억에 생생하다.   

 

유종호 선생은 어린 시절  해방이후 청주의 한 고서점에서 일본 新朝社 판 세계문학전집을 사려다 돈이 없어 아쉽게 돌아섰다는 대목을 회고한다. 유선생은 한달여 뒤 큰 맘먹고 돈을 마련해 서점을 찾았는데, 그 전집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아쉬움 끝에 주인에게 누가 사갔느냐 했더니 청주사는 남재희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그 두 사람이 잘 알려진 다독가이자 해당 분야의 대가라는 점이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헌책방 드나들던 학창시절의 버릇은 유구하게도 한 사람의 생에 오롯이 남는 모양이다. 내가 고삐리 시절 다녔던 그 헌책방은 아마도 그 두분이 다녔음직한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이 헌책방을 다시 찾았는데, 거기서 나는 당시로서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김현과 곽광수의 <바슐라르 연구>(1978년 민음사 재판) 를 살 수 있었다. 어느 불문과 여학생이 팔았는지, '1985년 문화서림에서'라는 예쁜 글씨가 속표지에 쓰여 있었다. 책은 깨끗했고 표지의 바슐라르 캐리커처도 선명했다. 그러나, 게으른 불문학도였는지 밑줄 흔적도 책장을 넘긴 흔적도 없었다. 곽광수가 후일 <공간의 시학> 개역본의 길고도 긴 서문에서 김현의 논문을 마구 깔아뭉개기 전에 나온 책이니, 두 사람의 공동저자는 이 책에서 흐뭇해 보였다.

 

고삐리 시절 더 또렷한 것은 촌놈이 서울 광화문에 와서 놀랍고 신기해하다가 들어간 헌책방. 당시 그곳의 간판은 기억나지 않으나 추후 몇 개의 기록을 보니 아마도 신촌으로 이전하기 이전의 ‘공씨책방’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서소문 삼성플라자 건너편 쪽이었던 듯 싶다. 거기서 나는 시인 신경림이 편집한 <反詩>(실천문학사, 1983년판)라는 제목의 파란책 표지의 반시 동인들의 시집을 샀다.  

 

충청도 시골의 고삐리에게 시집 제목이 풍기는 불온한 이미지는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시를 몰랐어도,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의 면면을 알지 못했어도 헌책방이라는 음습한 문화에서 건져 올린 불온함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서울 공기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고삐리였더 그 시절 읽은 박노해 <노동의 새벽>의 충격만큼은 못했어도, 뭔가 말랑말랑한 시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위험한 시인들이 많구나.(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반시 동인 중 문학적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은 정호승, 김명인 쯤일 것이다.)

헌책방은 내게 옛 책을 찾는 ‘골취미’가 풍기는 역사적 퇴행성,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문화적 마이너리티(헌책방에 팔리는 책들이란 최초 주인에게 쓸모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것들이다), 뒷골목의 음습하고 불온함 등의 이미지로 뒤범벅되어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감성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둑한 공간. 마치 청소년기의 수음을 위한 골방 같은 곳. 그러고 보니, 헌책방은 내게 운동문화의 극성기에 스스로 찾아 들어간, 자발적 퇴영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때 연애하던 여자들은 헌책방 순례를 같이 즐기면서도 나중에는 한결같이 툴툴거렸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뻔질나게 헌책방을 드나들었다. 우선 신촌의 공씨책방. 총리가 된 이해찬과 장관을 지낸 남재희가 유별난 교유를 했던 주인 공진석 선생은 없었고, 두 딸이 번갈아가며 카운터를 맡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건진 최대의 수확은 <박상륭 소설집>(1971년 민음사)의 초판이었다. 박상륭이 캐나다로 가기 직전 넘긴 원고를 김현이 맡아 민음사에서 펴낸 책. 발문에서 김현은 박상륭과 박태순이 서로 자기가 최고의 소설가라며 상대방의 이빨을 깨며 싸우다 다음날 다방커피를 마시며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그러나 애정이 듬뿍 담긴 문체로 그려냈다. 하지만, 공씨책방은 책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고, 옛주인 공진석 선생이 <옛 책 그 언저리에서>에서 묘사한 70년대 말의 지적 풍경, 가령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을 논하던 지적교유의 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용산의 뿌리서점, 도대체가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허름한 뒷골목에 서점 가득 책을 쌓아놓고, 건너편에 해묵은 LP판을 되는대로 쌓아두었던 곳. 내 눈이 밝지 못했던지, 거기서 산 책중 ‘감동스러운 발견’은 없었다. 그중 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2007년 개마고원에서 서구지성사 3부작중의 하나로 재출간됐다) 아마 이 곳에서 나는 책보다는 LP를 더 많이 샀을 것이다. 어느 헌책방 매니아의 찬사와 달리 내게 이 곳은 이원수, 이원호 류의 70-80년대 싸구려 대중소설과 철지난 몽롱한 에세이 책들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된다.

외대 앞의 최교수네 헌책방. 내가 연고도 없는 외대에 왜 갔는지 모르겠다. 이 서점은 나중에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된 <겐지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판을 산 곳으로 기억된다.  <原氏이야기>(유정 번역, 한국출판사 1982년)로 제목을 단, 전집 중에 끼워진 두 권짜리 번역본이었다. 완역이라기보다 발췌본이었지만, 적어도 나남에서 <겐지이야기>가 최초 번역이라고 광고해댄 것은 오버인 셈. 근처 헌책방에서 <겐지이야기>를 샀다고 했을 때, 부러워하던 삐돌이 형의 표정이 떠오른다. 강남 대치동의 학원강사 알바를 하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은마 아파트 옆의 ‘책창고’. 강사료를 받으면 이곳에서 십여권을 한꺼번에 사 제꼈다.

헌책방에 가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창비 같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명가들에서 펴낸 책은 헌책방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 한길사, 나남, 문학동네, 그리고 과거의 명가였던 일조각이나 신구문화사 같은 데도 마찬가지. 대신 흔히 그렇듯이 당대의 베스트셀러나 에세이류, 전집류의 책들은 어딜가나 한가득이다. 중고삐리들의 ‘수험용’ 한국문학 작품집 들도 즐비하다. 박영사의 문고본 시리즈 중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읽을만한 책들은 빠져 있다. 요컨대, 책의 내구성에 관한 문제다.  

 

적어도 헌책방에 잘 나오지 않는 책은 그만큼 ‘내구성’이 있고, 시간의 풍화작용을 잘 견디고 있다는 얘기다. 가끔 인터넷 사이트에 헌책방을 과잉낭만화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웃기는 건 그렇게 낭만화할 만큼 좋은 책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책방 매니아인 서양사학자 이광주 선생이 독일의 헌책방에서 막스 베버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저작을 샀을 때의 감회 같은 것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과학 책들의 상당부분은 80년대 일본어 중역을 통해 양산됐던 일본의 속류마르크스주의 관련 책들이거나 소비에트의 변유, 사유 교과서들이다. 한 시대를 증거하기에는 그 책들에 스민 지적 사유의 두께가 너무 얇다.

이런 류의 책들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전복과 한국사회의 혁명을 꿈꾸었다니, 하는 헛웃음만 나온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당시 쏟아져 나온 일본계 사회과학 책들은 ‘운동권 포르노서적’인 셈이다. 포르노가 해적판으로 수입되어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팔리듯이, 해적판으로 번역된 책들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에서 포르노처럼 유포되었다. 또다른 헌책방 매니아 연극평론가 안치운 선생이, 신촌의 ‘숨어있는 책’을 내게 추천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쓸만한 책을 고르고, 팔 줄 아는 서점 주인,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내가 만난 서점 주인 중 최악은 10여 년전 서울대 앞의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이었다. 분명, 저울로 무게 달아 책을 사왔을 그는 납득이 가지 않는 가격을 매겨놓고, 고객 앞에서 그 책의 진가에 대해 아는 척을 해댔다. 책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무척이나 듣기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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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1-2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헌책방만 가면 눈이 희번득해서 찾아보는 책이 또 있잖습니까?
일본에서 판권 없이 마구잡이로 번역된 도미** 다케*의
여인추억 시리즈...포르노긴 한데 1950년대 일본 사회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세태소설 아직 못 보았소.
사람마다 성정이 다르듯 헌책방에 얽힌 기억도 이렇게 다르네요.
제가 좀 잡스런 편이죠?ㅋㅋ

모든사이 2010-01-2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아직 '빨간책' 보던 중고삐리 시절 감성을 못벗어 났구나. 도미시다 다께오에게서 '세태'를 읽는 그 희한한 독법이라니, so*a 카페에 가면 다께오 형님들 두루 널렸느니라.

이진성 2010-02-0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께오의 후예들이겠죠
 

 

센 강변을 어슬렁대고, 저녁이면 와인을 홀짝거리거나
몽마르트르 어름의 방 한켠으로 돌아와 누울 친구여.
기억하는가, 신촌 귀퉁이의 퀴퀴한 서적더미에서 보낸
우리의 이십대를, 함께 사무쳤던 그 시절들을.  

거기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허겁지겁 책을 사 모으고, 속살을 파먹었던 선배를,

마침내 밤이면 함께 누울 미운 아내를 만나지 않았던가. 
 

‘오늘의 책’은, 화려무쌍한 신촌 거리에서 우리가 망명할
오직 한 곳, 허기진 욕망의 가숙지가 아니었던가. 

늦가을 스산한 날씨 속에 들려온 우울한 소식 한자락.
한 시절 우리가 겸손히 마주하던 따뜻한 밥 한그릇을
마련해 주었던 그 조그만 서점의 몰락.
우리의 한 시절을 떼 메고, 우리 젊은 날의 기억을 지우며
저기 한 시대가 가네.

혹시라도 파리를 떠나 이 곳 신촌에 올적에도
갈 곳 몰라 서성이거나 우두망찰 서 있지는 말게나
우리가 찾을 곳은 이제 반가운 얼굴들 옹송거리는
‘오늘의 책’이 아니라네.

그곳은 켜켜히 쌓인 기억의 갈피 어딘가에
우리의 한 시절이 그러하듯이
흑백사진처럼 꼭 끼워져 있을 거네.
무릇, 기억은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겠는가.  

 

데자뷔? 만취에 비틀거리며 때 낀 유리창 너머로 ‘책’이 보이거든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의 그리움이 불러낸 허깨비인줄 알게나.
어느 날, 머나먼 이국의 꿈자락속에 비치는 휘황한 신촌 불빛이

어쩐지 어둡고 초라해 보인다면,
지상에 빛나는 별 하나가 떨어진 줄 알게나.  


 2000년 11월 10일 
 

주 : <오늘의 책>은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신촌 연대앞에 존재했던 한 조그만 사회과학 서점이다. 2000년 가을 이 서점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았다. 폐점 당시 누군가가 추모사 비스무리한 것을 써달라는 부탁으로 쓴, 시같지도 않은 글. 이 서점과 인연이 있는 자들이 2006년 펴낸 '안녕? 오늘의 책'이라는 책에 실렸다. 이 서점의 작은 연대기는 연출가인 후배 김재엽에 의해 2006년 대학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갔을까>로 만들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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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책 폐점 10주년에 대한 상상
    from 막내의 집 2010-03-29 08:24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신촌에서 약속을 잡는데 "어디서 볼까" 서로 묻기만 하다가 "오늘의책에서 보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올해 11월이면 오늘의책이 문을 닫은지 벌써 10년이다. 하지만 신촌 굴다리 옆 골목엔 여전히 오늘의책 간판이 걸려 있다. 그 간판만 봐서는 10년이란 시간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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