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메리 더글러스의 ‘오염’에 관한 설명은 흥미롭다. 그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은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라 말한다. 쓰레기가 쓰레기장이나 휴지통에 있을 때는 더럽지 않다. 하지만, 쓰레기가 식탁 위에 놓여 있거나 침대 위에 있다면 그것은 더러운 것이 된다. 물론, 그녀의 관심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가르는 분류체계에 있을 것이다. 오염에 대한 그녀의 설명을 좀더 확대하자면 맥락을 떠난 말, 궤도를 이탈한 채 진행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것은 많은 경우 ‘자기만의 방’에 갇혀 몰입해 있을 순간에 벌어진다. 몰입은 상황과 조건, 맥락과 역사를 배제한 곳에서 시작된다.

나는 땅에 몸이 닿는 부분이 가장 적을 때 몰입의 강도가 가장 세진다는 터무니없는 속설을 근 20여 년째 믿고 있다. 이런 근거 없는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었는 데, 그게 어느 책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것은 시인 천상병이 두꺼운 ‘서양문화사’의 책장을 넘기면서 마산거리를 걸어갔다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천상병은 예의 그 속설을 믿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안락한 책상을 떠나 ‘걸어가면서’ 책을 읽었을 것이고, 읽고 난 뒤에도 생생한 기억력으로 르네상스와 빙켈만을 줄줄이 떠들어 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걷는 것보다야 뛰는 게 땅에 닿는 몸의 부위와 시간이 가장 적고 짧겠지만, 인간이 아직 뛰면서 책을 읽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읽으며 걷기가 아직은 최선이다.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제이 파리니, 솔)을 버스 정류장에 서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키들거리며 읽었다. 퇴근 시간의 버스는 복잡하기 마련인데, 내 두 발바닥의 면적만큼 땅에 닿았으므로, 그것은 낮 동안 두 발바닥과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때보다야 훨씬 적게 땅에 닿은 것이므로, 당연 몰입의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벤야민의 전기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절친이었던 게르숌 솔렘의 회고로부터 시작된다.  <한 우정의 역사>(게르숌 솔렘, 한길사)에서 그가 보여준 벤야민에 대한 애정과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탄식을 기억한다. 그는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을 시오니스트이긴 하나 벤야민에 대해서만큼은 그의 기억과 기록을 신뢰해도 좋을 것이었다.

그의 기억을 빌어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벤야민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우유부단함”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가령 그것은 식당에 가서도 몇 번이나 주문을 번복하다가 결국은 처음 주문한 생선을 먹거나, 음식이 왔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주문한 음식을 부럽게 쳐다보는 버릇에서 절정을 이룬다. 결국 보다 못해 “좋아, 발터 나랑 음식을 바꾸세. 내 접시를 자네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선 식사를 못하겠어”하고 음식을 바꾸자마자, 벤야민은 한숨을 쉬며 “내가 주문을 잘 한거야. 그렇지? 자네 음식은 맛이 없군”이라고 말한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한대 쥐어박았을 우유부단과 머뭇거림의 극치다.

숄렘은 벤야민이 여자문제에 관해서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벤야민은 상대여성이 다른 남자와 살고 있거나 그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만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 아샤 라시스에 대한 찌질한 구애의 맥락도 그의 본성에 비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극히 벤야민스럽다. 그 대목에 밑줄을 긋는 데 버스가 흔들리면서 제대로 그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며 혼자서 킬킬대는 내 모습을 옆자리의 여학생이 힐끗 봤던 것도 같다. 이런 벤야민이기 때문에 그의 삶에는 어찌할 수 없는 비극성이 간직되어 있었고, 종내에는 국경수비대가 온다는 낭설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했을 것이다. 나치의 예고된 공격으로 불안해진 파리를 빨리 떠나야 하는데도 파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차마 떠나지 못하고, 빨리 파리를 떠나라고 재촉하면서도 ‘수표’를 보내오지 않는 미국의 호르크하이머를 원망하고 있는 벤야민. 이 자가 가진 구제불능의 우유부단함과 섬약함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갑작스럽게 솟아나는 벤야민에 대한 애정, 이것은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퇴근 버스 안에서 이런 대목과 조우하는 순간은 유쾌한 경험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안의 맥락 안에서의 움직임일 뿐이다. 책과 책속의 인물과 그것이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읽기의 역사적 맥락은 다른 자리에 놓이게 되면, 애초에 간직한 ‘말끔한 유쾌’를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유쾌함을 나누고자 하는 욕망은 다른 맥락과 자리에서는 추악한 것이 되거나, 때로는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책의 맥락과 현실의 맥락을 혼동하고, 아니 때로는 전자가 후자를 구축하는 만용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기 몰입이 빚어내는 비극이자 몰입이 결과할 것을 망각한 자리에서 벌어지는 추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더글러스가 말한 대로 식탁위에 놓인 쓰레기다. 몰입을 경계할 일, 타자를 배제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집중은 질병 수준이다.

베르그송은 ‘웃음’에 관한 그의 책에서 웃음이 유발되는 순간은 적절한 기대를 배반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은 멀쩡하게 잘 걸어가던 사람이 휘청거리며 꽈당 넘어질 때 같은 경우다. 정상적인 맥락과 기대를 벗어나 의외의 순간이 연출될 때 웃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읽을 때 웃음이 가진 폭력성을 떠올렸었다. 푸코의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런 웃음은 정상적 맥락을 단일한 회로로 가진 자들의 폭력적 감정이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회로가 공존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동일성이 타자에 대해 낳는 폭력적 결과가 웃음인 것이다. 그것이 폭력화되지 않으려면, 몽상의 거처는 자기안의 방이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외여행의 경험은 많지 않다. 당연히 외국의 헌책방을 가본 적도 많지 않다. 유럽의 경우는 이광주 선생의 책 같은데서 얼핏 분위기를 보았을 뿐이고, 일본은 유학을 했던 자들이  간다 헌책방 거리(神田 古本街)를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근대적 제책의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헌책방도 그만큼 부실한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외국의 헌책방은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할 터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서재에 고작 1천여 권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정도 규모는 지금으로 치자면 1만권이 넘는 분량에 해당할 것이다.  


문학사회학의 접근방법은 서적의 유통과 근대적 독자의 탄생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 접근은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초기의 ‘딱지본 소설’에 와서야 가능하다. 17세기 자본주의와 함께 출발한 서구의 근대적 책의 생산과 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사회학적 접근방법이 문학과 사회의 상동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인 서정주의 <화사집>이 5백부 한정본으로 출간돼 지인들끼리 나눠 가졌다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근대적 독서계층의 형성 어쩌고 하는 접근은 공허한 얘기다.

외국의 헌책방이 다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은 이런 맥락에서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 외국의 헌책방은 영화로도 유명해진 파리의 'Shakespeare & co' 였다. 그 책방 앞으로 센강이 흐르고, 강둑에는 헌책 노점상들이 주욱 늘어서 책을 팔고 있었다. 서점 안에 있는 것보다는 노점 좌판에 놓인 책들이 더 낡아 보였고 종류도 다양해 보였다. 악보만 파는 노점, 소설책만 파는 노점 등, 지금도 이런 지는 모르겠다. 왜 서점의 이름을 ‘세익스피어 앤 코’로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제목의 간판을 나란히 달고 있는 두개의 가게가 인상적이었다.

헌책방 특유의 비좁고 퇴락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먼지 앉은 책들, 신간과 구간이 뒤섞여 있는 서가. 우리나라처럼 중고삐리들 참고서나 대중잡지 등이 보이지 않는 게 다르다면 다른 모습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서점의 2층 한구석에 때 묻은 담요를 반쯤 덮고 자고 있는 앳된 모습의 여대생이다. 책더미 사이의 좁은 마루 바닥에서 어깨와 배가 훤히 드러난 티셔츠를 입고 허연 목덜미를 드러낸 채 잠에 빠져 있는 여학생. 서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10여년 저쪽의 세월임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릇 책이 있는 곳이란 비몽사몽을 오가는 사유와 몽상의 공간이 아닐 것인가.

아마도 그날 거기서 산 책은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의 영어본 두어 권, 르네 마그리트 화집 정도일 것이다. 파리를 알지 못하는 나를 거기로 안내한 유학생 부부는 파리가 나의 유별난 취미를 만족시킬 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준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소설가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탐욕스런 눈으로 서가를 훑었는데, 정작 아무 것도 사질 않았다. 영어 소설을 밥 먹듯 게걸스럽게 읽어치우는 이 소설가의 책탐으로 보자면 국내 출간이 되지 않은 영어본 책들을 살 법도 한데, 그러기에는 지나치리만큼 검약(?)스러웠다. 귀국 비행기에 싣고 갈 캐리어의 무게를 걱정한 탓일까.

지난 7월 다시 파리에 갔을 때 이 곳에 들러 몇 권의 책을 사왔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클턴의 책, 보수적 인문주의자 매튜 아놀드 평전, 20세기 초 파리에 머물던 예술가들에 대한 책,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문 만화 버전 등. 약속시간이 임박해 좀 더 느긋하게 헌책을 뒤져보지 못한 게 아쉽다. 서점은 10여 년 전과 똑같았으나 달라진 것은 나와 내 일행들이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혼자였던 것. 파리도, 세익스피어앤코도, 센강도 그대로였으나 나를 둘러싼 관계의 구조와 사슬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느낀 적막감과 쓸쓸함은 이런 변화에 대한 실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뉴욕에 갔을 때 들른 곳은 유니언 스퀘어 부근의 스트랜드(Strand) 서점. 벌써 5년째 아놀드 파머사에서 ‘우산’을 그리고 있는 사촌 동생은 제 오빠의 유난스런 취미를 짐작해서인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곳이 뉴욕이라서 그랬을까, 책값도 싸고 쌓인 책들의 더미도 많았다. 책을 사면 서점 로고가 새겨진 흰색 천가방을 덤으로 주었다. 사람들은 어느 코너의 책마다 북적댔다. 뉴욕답게 1, 2층으로 된 대형서점이라 그런지 작은 규모의 헌책방이 주는 포근하고 정겨운 아우라는 없었다.

여기서 산 책은 <누바 족의 최후, The Last of NUBA>,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If not now, When> 두 권. 앞엣 것은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누바족 사진집이고, 뒤엣 것은 레비가 쓴 장편소설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파시스트 예술가였고 다른 한명은 반파시즘 작가였다. 정치적 열광이자 이념으로서의 파시즘은 사라지고, 파시즘의 미시정치학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건 무슨 ‘흘러간 유행가’에 대한 탐닉일까.

리펜슈탈 사진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수잔 손탁이 쓴 <우울한 열정>에 실린 에세이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선전영화 감독이기도 한 리펜슈탈은 미학으로 무장한 파시스트였다. 그것도 거칠고 투박한 파시스트가 아니라 세련되고 감각적인 파시즘 미학의 구현자였다. 손탁은 그녀에게서 ‘파시즘’을 괄호치고 ‘미학’에만 주목하는, 그리하여 그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열정적 예술가로 평가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보낸다.

<누바족의 최후>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리펜슈탈의 열광이다.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원시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벌거벗은, 그러나 매우 단단하게 단련된 신체. 이 사진집에 실린 ‘몸’들은 여성의 그것이 아닌 남성의 신체다. 이것은 리펜슈탈이 만든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올림피아>가 보여주는 신체의 미학과 빼닮았다. <올림피아>의 첫 장면 역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 형태의 ‘몸’을 보여주는 그리스 조각이 아니던가.

 <누바족의 최후> 역시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점만 빼면 신체에 대한 그리스적 이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파시즘의 재생신화와 관련된다. 윤리적 타락과 속물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를 부정하고(반근대), 인류문명의 시원적 공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문명을 건설(재생)하고자 하는 ‘의지’. 그녀의 사진은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렇듯 거기 스민 정치적 상상력은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파시스트로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열정적 예술가를 자처하고자 했던 리펜슈탈의 음험한 시도는 손탁에 의해 여지없이 폭로된다. 스트랜드 서점 서가에 꽂힌 <누바족의 최후>는 모두 세권. 이 책을 샀던 사람들은 그녀가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이 작가의 자살 소식이 실린 <뉴욕타임스>와 <뉴욕리뷰 오브 북스>  의 서평 기사가 오려진 채로 끼워져 있었다. 아마도 레비의 자살 소식이 실린 기사를 읽고 이 책을 샀나 보다. 그 자신이 반파시즘 빨치산이었던 레비는 그 경험을 이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가 자전적 수기임에 비해 이 책은 ‘소설’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그는 ‘시대의 증언’을 위한 글쓰기에서 ‘소설로서의 글쓰기’로 나아갔다. 자신이 겪은 잔혹한 경험은 소설 이전에 사실로서 기록되어야 했던 것이다. 소설은 ‘사실’ 이후에야 가능한 형식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에서 와서 그는 비로소 ‘소설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도 얼마전 출간 됐는데, 언제 ‘리뷰’를 올릴 수 있을까.)

파리와 뉴욕의 두 헌책방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이다. ‘물질’로서의 책은 활자가 찍힌 종이의 묶음이 아니다. 그 물질로서의 책이 실어 나르는 것은 콘텐츠와 저자-독자 사이의 내밀한 교류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아우라, 기억들이기도 하다. 책과 그 책을 함께 읽었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의 냄새. 그 기억의 매개로서의 책은 새것이 아니라 적당히 낡은 것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책방 순례가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 매니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함께살기’라는 필명을 쓰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최종규씨로부터 SF 평론가 박상준, 연극평론가 안치운, 그리고 인터넷에 서식하는 다수의 매니어들까지. 최종규씨는 헌책방 순례와 함께 고 이오덕 선생의 후예답게 ‘우리말 지킴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진 언어순수주의에 대한 욕망은 좀 불편하지만, 그의 활동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크게 존중받아 마땅하다. 물론,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후기 북경의 고서점가 ‘유리창’을 뒤지고 다니던 완당 김정희도 헌책방 매니어일 것이다. 6.25 때 집이 불타면서 수만 권의 책을 태워먹은 육당 최남선도 그렇다.   

  

서강대 김열규 선생은 부산피란 시절 국제시장 노점 좌판에 쏟아져 나온 미군부대 책들을 뒤지면서 수잔 K. 랭거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영문본 같은 ‘보물’을 찾아내던 일을 회고하고 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의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의 ‘캔디 차관’으로 연명하던 한국경제와 마찬가지로 미군부대에 기생하며 지적 자양분을 흡수했던 모양이다. 6.25 전란의 와중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책더미와 2차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더미를 뒤지던 사람 가운데에는 민병산 선생(1928-1988)도 있었다.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였던 선생은 오히려 ‘인사동의 디오게네스, 인사동 거리의 哲人’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의 번역으로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다>를 읽었다.

내가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역시 헌책방에서 구한 책 그의 유작 <철학의 즐거움>(1990, 신구문화사)에서였다. 그에 대해서는 책과 신경림, 구중서, 박이엽, 김성동, 방영웅, 강홍구와 같은 인사동에 모여 그와 교유했던 6,70년대 문학예술인들의 애틋한 회고담을 통해 어림짐작할 뿐이다. 헌책수집가인 그가 수집대상으로 삼았던 것들은 특이하게도 ‘인물평전’이었다. 그가 남긴 인물평전은 <똘스또이>, <난센> <세종대왕> 등 여럿이나 지금 찾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듯 하다. 대학시절에 그와 그의 책을 발견한 이후 대체로 헌책방 순례와 같은 낡은 습속을 되풀이하는 자의 면모는 민병산 선생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전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60년대 초, 그가 기록하고 있는 헌책방의 순례의 풍경은 이러하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서 그 운명의 길을 더듬어 간다 - 고 하지만, 정말 여행을 많이 다닌다. 대여행가의 트렁크에 명산대천의 스탬프가 붙어 있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장서인’이 셋도 찍히고, 다섯도 찍힌 책이 있다. 지구를 한바퀴 다 돌아온 책도 있다. 이 책은 절대 문밖에 나가지 않는다 - 는 엄숙한 단서를 붙이고 버젓이 돌아다니는 책도 있다. 그 형체도 천태만상이다. 손때가 묻어서 번지르르한 책, 겉장이 떨어져 나간 책, 물을 먹어 불룩한 책, 불에 그슬리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책, 좀이 먹어서 모서리가 쏠린 책, 그런가 하면 케이스 속에 들어앉아 반세기 이상 한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도 드물지 않다. 그 신분이나 유서도 형형색색이다.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최신 가요집> 밑에 고운 최치원의 <계원필경>이 나오기도 하고, <무전여행 세계일주> 옆에 영국 재상 디즈레일리가 젊은 날 대륙여행을 소재로 해서 쓴 소설 <알로이>의 삽화들의 호화판이 꽂혀 있기도 하다. 혹은 윌리엄 모리스가 찍은 켈름스코트판 <세익스피어>가 헌 신문지 다발에 가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철학의 즐거움>에 실린 ‘고서 이삭줍기’의 한 대목이다. 본래 충북 청주 갑부집의 아들이던 그는 운전기사가 달린 세단을 타고 등교할 정도로 ‘귀족’이었으나 ‘문학청년’이 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유산도 포기하고, 가족과도 단절한 채 독신으로 살면서 책을 ‘줍고’, ‘읽고’, ‘쓰는’ 일로 나머지 삶을 살았다. 부모의 어마어마한 재산에도 욕심이 없었던 그인데도 책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6.25때 조부를 포함한 3대가 모아놨던 책을 잃어버린 탓인지, 그는 평생 연애도 하지 않고 책만을 사랑하고 찾으러 다녔다.

 “고서가를 다니는 사람이 얻는 가장 큰 기쁨은, 어떤 책이 - 당연히 존속할만한 생명을 지닌 책이, 자칫하면 멸망을 하려는 순간에 내 손을 뻗어서 구출하는 일이다. 책 선반에 반듯이 꽂혀 있는 책은 언젠가는 임자를 만나서 팔려간다. 어여쁜 아가씨는 곧 시집을 가는 것처럼, 그런데, 신데렐라가 부뚜막 앞에 맨발로 쭈그리고 있었던 것처럼 고귀한 책이 - 참으로 고귀한 책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다가, 지금 막 저울에 달아서 휴지상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 그 찰나에 발견을 하는 예가 있다.”

헌책방 매니어들은 이런 묘사의 실감을 알 수 있으리라. 대학 3학년 때, 한 일간지의 문화부 기자를 오래한 덕분에 증정본 책을 수천권 쌓아두고 있던 사람을 아버지로 둔 선배가 나를 불렀다. 이 책 죄다 헌책방에 팔아버릴 것인데, 네가 갖고 싶은 책 다 가져가라고. 책 좋아하던 친구를 불러 하루 종일 이 책 저책 뒤지고 챙기는데 도저히 내가 들고 갈 수가 없어 포기했던 책이 부지기수였다. 김승옥과 같은 4.19 세대 소설가로 단 한권의 소설만을 남겼던 강호무의 <화류항사>, 이윤기가 번역한 존바스의 <키메라>,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의 미술책들, 그리고 열화당에서 나온 화집들 정도가 생각난다. 겨우 30여권 정도나 챙겼을까.

내가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기자 그 선배는 헌책방의 주인을 불러 나머지 책들을 팔아 넘겼다. 용달 트럭을 가져온 헌책방 주인은 저울로 책 무게를 재어 선배에게 ‘폐지값’을 주고는 가버렸다. 민병산 선생이 묘사하는 저 찰나의 순간을 맛본 셈이다. 어떤 고귀한 정신, 혹은 어떤 작가의 불면에 찬 고뇌가 담겨있을지 모를 책들이 저렇게 ‘저렴하게’ 팔려나간다. 유종호 선생은 대형할인마트에서 책과 함께 고추, 마늘, 간장, 과자, 신발 따위가 들어있는 쇼핑 카트 안에 신간도 몇 권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인류의 정신적 산물을 저렇게 취급하다니 하며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저울에 달아 팔리는 책과 쇼핑목록에 포함된 책에 대한 탄식, 이건 지나친 책 물신주의일까?

그러나, 민병산 선생은 이런 책탐 마저도 버리고 떠났다. 그가 살던 단칸방에 불이 나면서 평생을 모아온 책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그는 헌책방 순례를 멈추고 이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따 민병산체, 혹은 청구자체(靑丘子體), 구불구불해서 호롱불체로 불린 그의 글씨는 지금도 오래된 인사동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술값이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서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후배들이 갹출하여 치러준다는 자신의 회갑연을 한사코 거부하다 바로 그 회갑전날 세상을 떠났다. 회갑연에 입을 한복은 그대로 수의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신경림은 이런 시를 썼다. “허름한 배낭 어깨에 걸고 / 느릿느릿 걷는 그 별난 걸음걸이는 / 이제 인사동 거리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 귀천 또는 수희재에 앉아 / 눈을 반쯤 감고 어눌한 말소리로 / 지나가듯 토하는 날카로운 참말도 / 더는 인사동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인사동) 그는 멋진 오빠였던지, 장례식에 문인보다 인사동 술집 여주인, 여종업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생전의 그를 나는 오로지 그의 지인들이 남긴 글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 잡식성 독서 때문인지 그에 관한 글을 나는 여러 군데서 접했다. 창비에서도, 문부식이 만들던 ‘공동선’에서도, 이문구, 신경림, 강홍구, 구중서 등등의 글에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한다. 나혼자 주절주절 헌책방 순례기를 쓰면서 문득, 그에 관해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몇 달 전 중앙일보에 실린 조우석 선배의 칼럼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한국언론의 스타일리스트라 할 수 있는 조우석은 ‘인사동 디오게네스 민병산’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079523)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저자거리의 ‘고수’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점점 더 모든 것이 제도권 내(가령 대학)로 흡수 되어가는 세상이라 그럴까.

인사동 문우서림의 김영복 선생을 만났을 때 우연히 민병산 선생 얘기가 나왔다. 김선생은 인사동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고서화 전문가다. 그에게 민병산 선생을 아시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반가워하면서도 놀라던 기억이 새롭다. 저 새까만 놈이 어찌 그런 옛날 사람을 아느냐는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읽은 민병산의 책 <철학의 즐거움>도 인사동 거리의 ‘후배’이자 ‘도반(道伴)’인 그가 만든 책이었다. 나 역시 그저 책으로만 알고 있던 민선생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가웠다. 그가 반가워 하며 “나한테, 민병산 선생 글씨가 좀 있는데, 하나 줄까?” 했을 때, 나는 받고 싶었지만 거절했다.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진성 2010-06-1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 선생 궤적은 타계 20년 맞춰 나온 추모집 『으능나무와의 對話』에도
자세하게 드러나 있죠.
그리고, 형이 청주 출신이니까 잘 알거유
일제 강점기 으리으리했던 민 선생 저택이
바로 청주 중앙공원 자리라는 거...
거기 1000년된 은행나무가 바로 민 선생 뜰에 있었다는 거...
그래서 제목을 은행나무의 충청도 사투리인 으능나무 라고 붙였다는 걸...

미국사람 2011-08-2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병산 선생이 번역한 책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이 있읍니다. 또 60년대 일본 바둑 최고수였던 사카다의 묘시리즈를 번역 했기도 하구요.

조우석의 글을 읽어보니 경제신문 바둑 관전기자가 쓴 민병산론인가를 보고 쓴 것이네요.(불행히 이 사람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인사동에서 종로를 건너면 관철동인데 그곳에 한국기원이 있었읍니다. 지금은 경찰병원 건너편 왕십리 쪽으로 갔구요. 60-70년대 문인중 한국기원에서 죽치는 사람이 많았고 민병산 선생도 그랬나봅니다.

명인번역본에는 신경림의 작품 해설이 붙어있는데 바둑을 조금이라도 아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단 지금도 출판이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한국 사정에 어두워서....

모든사이 2011-08-21 09:50   좋아요 0 | URL
그 민병산론은 강홍구 선생의 글이 아닌지? 아무튼 반갑습니다. 민병산 선생을 아는 분이라니... 그런데, 이 조우석은 요새 좌파->리버럴-> 이제는 우익 이데올로그로 변신했더군요. 박정희 책을 하나 쓰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이승만-박정희를 찬양고무하는... 그런데, 조금 새로운 우파 논리를 들고 나올줄 알았는데, 어찌 그리 조갑제식의 조악한 우익 논리와 닮았는지.. 씁쓸하더군요,..

미국사람 2011-08-22 01: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경제 신문관전기자이던 노승일 (1943- ) 의 굿바이 관철동 (1994년 출판)에 실린 글입니다. 다만 바둑관계 이야기라 바둑을 모르시면 읽기 곤란할 책 (책이 없어져서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민병산론은 꾀 길게 쓴 것으로 같읍니다.) 민병산 선생을 관철동의 디오게네스라고 한 건 한국기원에서 죽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던가....

하여간 50년대 60년대 문인이야기를 보면 바둑이 많이 끼어있구요 종로2가 관철동일대가 아지트였던 듯하구요. 조연현이나 정비석도 50-60년대 한국 최고수 조남철선생과 교유가 있던 걸 보면 요즘과은 많이 다른것 같읍니다.

관철동을 둘러싼 문인이야기는 고인이 된 강홍규의 문학동네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절판이군요.(관철동이야기라는 재목으로 나왔다가 강홍규 사후 이름을 바꾸어 나온책입니다)

참고로 제가 민가여서..... 민병산선생은 족보로 제 아저씨뻘입니다. 물론 일면식도 없긴하지만

 

 

어린이날 파주출판단지는 아이들로 북적댔다. 여기가 출판단지이고, 입주한 출판사의 상당수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까먹었던 탓이다. 겨우겨우 헤르만하우스 근처에 차를 대고 헌책방 ‘보물섬’을 찾았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지만 자유로 인근에서 결국 포기했다. 휴일의 도로를 달리는 차는 너무 빨랐고, 자전거 도로는 곳곳에서 끊겨 있었다. 확실히 지자체의 생태도시, 자전거 도시 운운은 전시용이다. 파리의 밸리브를 흉내 낸 ‘fifteen' 자전거들은 아무도 그걸 타지 않아 거치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신도시는 날림으로 순식간에 지은 조립주택 같은 공간이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가 잘 그려냈듯이 신도시의 욕망은 허망하고 부질없다. 하기야 어디 신도시만 그러하겠는가. 역사가 거세된 모든 공간은 모두 허공위에 지은 집과 같지 않을까.

휴일에 헌책방이라니. 엊그제 휴일에 서점에 가는 사람의 내면은 황폐한 것이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했었는데, 나 또한 이 무슨 구태인가. 보물섬은 그리 크지도 않고, 갖춰놓은 책들도 변변한 구색은 아니었다. 이 곳이 출판단지라서 파본이나 낙장으로 빠져나온 신간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느 헌책방과 다를 바 없었다. 헌책방에 가면 흔히 만나는 80년대 사회과학 책들과 철지난 에세이들. 한때의 베스트셀러와 예의 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같은 책들.

처음 집어든 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사회과학>(김성기, 문학과 지성사).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1990년 무렵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비판논리로 시작되었던 서구의 맥락과는 달리 그 당시 한국사회의 문화예술을 풍미하던 리얼리즘에 대한 반동적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권택영이니 김욱동이니 하는 소장 영문학자들이 창비류의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을 넘어서기 위해 시작했던 것. 김성기의 이 책은 문화예술 중심이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사회과학으로 이끌어간 선구적인 책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때 이 책을 처음 건네준 한 여인은 밑줄을 꼼꼼히 긋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의 밑줄을 따라 동글동글한 글씨의 메모를 따라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읽었던 이 책이 어디로 간 것일까. 옛일이 생각나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두 번째는 두레에서 나온 문고본 레닌 저작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모택동의 <실천론/모순론>과 로자의 <러시아 혁명> 등과 함께 시리즈로 묶였던 책. 레닌의 비난만 믿고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을 역사에 다시 없는 반동적 인물이자 ‘배신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선배가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극우보수 일간지의 사회부 기자를 하다 대기업 부장으로 ‘영전’해 있는 그 선배는 그때 과연 ‘인터내셔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크크, 웃기는 일이다.

함께 집어든 <1985년>(최광렬 옮김, 신평론)도 비슷한 류의 책이다. 내 기억으로는 집안이 부유했던 한 미국 유학생이 유학갔다가 ‘트로츠키주의’에 빠져 귀국 후 국제사회주의를 널리 전파(?) 하려고 이 출판사를 차렸다.(10년도 더 된 술자리의 한 전언에 따르면 말이다) 그 뒤 책갈피라는 출판사로 개명하면서 참으로 집요하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 하먼,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은 이론가들의 책들. 이 출판사와 관계가 깊었던 몇몇 트로주의자들이 생각난다. 하나같이 문약스럽고 비리비리한 인물들이었는데, ‘구라’와 ‘인간성’만큼은 감동적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책, 서점, 출판사 언저리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1985년>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빗대어 그 후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라는데, 낯익은 오웰의 ‘언어학 사전’ 용어들과 빅브라더의 이름이 보인다.

김용학 선생의 <사회구조와 행위>(나남)도 챙겼다. 시카고대 출신의 이 명민한 사회학자는 어울리지 않게(?) 좌파인 캘리니코스의 <역사와 행위>(교보문고)를 번역 소개했었는데, 그 뒤에 써낸 책이 이 책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김교수가 <사회비평>이라는 잡지에 분석 맑시즘에 대한 글을 썼는데, 하마터면 나는 그 사람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할 뻔 했다. 대학시절 사회학과 대학원을 준비하던 한 여인이 이 책을 탐독하던 기억이 난다. 그녀를 따라 1-2장 쯤이나 읽었을까? ‘강 00 씨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드립니다’ 라는 저자의 헌사가 선명하다. 이 강모씨는 왜 이 책을 내다 팔았을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내가 봤던 것은 이 책의 초판(1985년)인데, 오늘 산 건 2001년에 나온 재판이다.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유명했는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내 손으로 표지를 쌌던 책만해도 족히 30여권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왜 있잖은가. 아무리 읽어도 선명은 커녕 점점 몽롱해지는 듯한 ‘정신주의’를 부추기는 책들. 이를테면, 카잔차키스의 <영혼으로 서리라>(청하), 류시화 류의 책들. 나는 아마 이 책을 사놓고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잃어버린 책을 다시 산 경우. 대학 1학년 즈음에 읽었다가 1년 뒤쯤 대학에 들어온, 지금은 게이가 된 후배 놈에게 <중국의 붉은별>, <전태일 평전>과 함께 선물로 줬을 것이다. 아마도 그 넘은 그 책들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녀석에게 이 따위 책들을 선물이랍시고 주는 선배라는 넘도 정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전사> 시리즈는 아마도 1-4권까지는 가지고 있었을 텐데,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2권 밖에 없다. 다시 펼쳐보니 송건호, 임종국, 유인호와 같은 돌아가신 분도 있고, 이 ‘빨갱이 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도 보인다. 그때 선배들이 분단과정을 다룬 김학준의 논문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현대사상사). 책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읽지는 않았었다. <WAY OF SEEING>으로 잘 알려진 존버거의 <영상커뮤니케이션과 사회>(나남)도 샀다. 내가 예전에 이 책을 갖고 있었던가, 아닌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런가. 대학시절에 존 버거를 아주 좋아하던 한 철학도가 읽어보라고 권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는 책이다. 존 버거가 쓴 소설 <결혼을 향하여>도 벌써 몇 년 째 중간에서 읽다 만 채로 있다.  

 

박완서 선생의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문학사상사)는 세계사판 전집에서는 <도시의 흉년> 두권으로 묶였던 책. 학원강사 알바를 하던 시절,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던 여중생에게 빌려 줬는데, 그녀는 박완서 선생의 세계사판 <미망> 3권과 함께 이 책을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을 터인데, 말수가 적고 국어만 유난히 잘하던 그 여학생이 생각났다.

또하나의 구입목록은 우리로 치자면 대중소설과 본격소설 중간 어디쯤 되는 소설을 쓰는 명민한 작가 줄리안 반즈의 <10과 1/2로 쓴 세계사>. 반즈 소설은 집에 여럿 있었으나 ‘서재 이혼시키기’와 더불어 딴 곳으로 가고 말았다. 앤서니 기든스가 쓴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의 첫장은 반즈의 소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으로 시작한다. 성찰없는 욕망이 부르는 비극을 소재로 한 그 소설은 개인의 판단를 좌우했던 외적 준거가 사라진 시대의 윤리를 묻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최인훈의 문학과 지성사판 전집 일부인 <크리스마스캐럴/가면고>. 그가 <화두>를 써냈을 무렵 갈현동 집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신경질적이고 까탈스런 모습이었다. <광장>의 작가, <화두>의 소설가라는 신화는 그날 이후로 내게서 와장창 무너졌다.

소나무에서 나온 <제주민중항쟁>까지 포함하여 이 책들 전부의 가격은 1만9천원. 싸다, 싼 것이 이 책방의 미덕이다. 자유로를 달리면서 헌책방을 가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퇴행성 질병임을 새삼 절감했다. 더불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딜레탕트이자 스노비스트라는 것까지. 그런데, 가만, 스노비즘이라도 없다면 9 to 5의 삶에서 어찌 책 한권이라도 꺼낼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스노비즘을 은밀히 나누고, 키들거리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적 공동체라도 없으면, 얼마나 황막한 세계일 것인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라 2010-05-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갈피가 그런 곳이었군요 파주에는 헌책방들이 거기 말고도 또 있나요? 저는 신림동에 있는 걸 가 본 것이 고작이라.. 굉장히 저렴한 편인 거 같네요.

모든사이 2010-05-07 13:35   좋아요 0 | URL
파주출판단지의 헌책방은 어린이 책을 파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나다 흘낏 본 것 말고는 들어가보질 않았으니 어떤 지는 잘 모르겠고요. 1994년 이 출판사의 대표가 구속되는 조직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죠. 기사를 찾아보니 23명이 구속되었었네요.

nashe 2010-05-0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촌의 "숨어있는책" 분점이 파주 단지에 있습니다. 파주단지내 중앙로(?)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보물섬 있는 쪽이 아니라 그 건너편쪽에 있습니다. 자세한 위치는 포털 지도서비스에서 확인가능합니다. 숨어있는게 특기인 책(방)이라 근처에서 가서도 잘(!) 찾아야 합니다. 안쪽 길가에 있음에도 잘 안보입니다.

모든사이 2010-05-07 00: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숨어있는 책이 헌책방 가운데에서 질과 양 모두에서 가장 훌륭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파주에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거기도 들렀을 텐데..
 

2001년 7월에 쓴 글. 게시판에 흘러넘치는 감성의 물줄기를 식히기 위함. ㅎㅎ 

-----------------------------------------------------

매년 되풀이되는 무더운 여름이지만, 이번 여름 독서가들의 서재는 시원해질 것 같다. 바로 장쾌하고 속시원한 혁명영웅들의 일대기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마르크스 평전’)과 정치(‘호치민 평전’,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문화(‘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방면에서 실패한 혁명가의 장엄한 죽음(‘트로츠키 자서전 나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한국 출판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체 게바라 동지’의 뒤를 이으려는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출판사들은 먹구름이 덮인 장마철의 하늘과 역시 먹구름이 덮인 한국 독서시장을 헤치고 나갈 ‘영웅’들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이 ‘영웅’들의 위대한 삶은 한 권의 책에 담기는 순간 ‘영웅소설’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위인전과 전기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겠지만, 더이상 이 ‘영웅’들의 삶과 같은 투쟁방식과 해법이 통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기묘한 ‘안정성’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히 구조적․총체적으로 불안정하고 뒤틀려 있는 한국사회지만 이제는 아무도 “에라, 다 망해버려라”하고 외치지는 못한다. 불꽃같은 혁명의 꿈은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 논리 앞에 무력해진 가운데, 다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은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산다. 한때 세상을 바꾸었던 이들의 삶을 사서 소비한다. 이제 이들이 읽는 것은 ‘혁명의 지침서’가 아니라 ‘영웅소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비록 혁명의 껍데기이고 한 권의 영웅소설이라 할지라도, 꿈은 꾸지 않는 것보다 꾸는 것이 낫고 책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좋은 법. 기왕 혁명가들의 삶을 소비할 바에는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이리라. 그러면, ‘영웅소설’화된 영웅들의 삶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가장 정통적인 방법은 역시 영웅들의 삶에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서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주의자가 되고, 활동 중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뜨렸다가 불사조처럼 살아나 다시 활약한, 그리하여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미국을 이겨낸 ‘호 아저씨’(호치민)의 삶을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아니면 “자본을 써 봤자 그것을 쓰느라고 피운 시가 값도 안 나올” 가난과 몰이해 속에 시달리면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상적 도약을 감행한 마르크스의 삶을 가슴을 조이며 읽을 수 있다. 문화대혁명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고, ‘주자파’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마침내 중국에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등소평의 일대기는 ‘삼국지’나 ‘수호지’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둘째, 한 걸음 물러나 이들의 삶을 인간적 시각에서 살피는 것이다. 큐비즘과 멕시코 민중의 생활을 결합시킨 혁명적 벽화를 그려낸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작품보다,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댔던 디에고 리베라 때문에 나이차가 훨씬 나는 세 번째 부인 프리다 칼로가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느껴보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난장판을 피우는 젊은 마르크스의 모습, “귀족과 결혼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하녀를 임신시키고, 공산주의 하에서는 누가 구두를 닦느냐는 물음에 “당신이 닦으쇼!”하고 쏘아붙이는 열혈 혁명가의 모순된 삶에는 나름의 ‘인간적’인 재미가 있다. 등소평이 하방되었을 때의 독서목록을 들여다보거나, 감방 안에서 독서를 하며 “정말 기분이 좋아. 나는 여기에 앉아 일하고 있고, 그래서 아무도 나를 체포할 수 없다는 확신이 완벽하게 들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트로츠키의 여유를 바라보는 것은, 감옥에 들어가면서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던 7, 80년대 운동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세째, ‘관계의 맥락적 재구성’을 통해 책을 읽는 재미. ‘호치민 평전’을 쓴 찰스 펜은 미 정보국(CIA)의 전신인 OSS에 근무하면서 호치민 주석과 직접 접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베트남의 지도자가 미국인 정보부원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바라보는 것, 또한 등소평의 세째딸 등용이 철저히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은 어떠한지, 제국주의 국가였던 프랑스의 문호 르 클레지오가 식민지의 예술가였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느끼고 쓰는 방식은 무엇일지를 관찰하는 것은 또다른 방식의 재미이다. 폭풍같은 변화와 혁명의 시대에 저명인물들은 어떻게 얽혀있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호치민과 프랑스․소련의 공산주의자들, 트로츠키와 리베라-칼로 부부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 같은 것들은 그들을 둘러싼 신비로운 아우라를 벗겨내기도 하고 더 강화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 ‘운동권 정서’를 짚어보는 씁쓸한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이제 무턱대고 ‘타도하라’고 외칠 수 없는 시기, 운동은 세계혁명의 위대한 꿈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자본은 생활 구석구석 침투해 있고 전복의 꿈은 대안이 없고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지금, 갈 데 없는 희망은 과거의 위대한 성공들의 순간에 돌아가 침잠한다. “고독하고, 도전적이며, 공격적이고, 철저히 개인주의적”이었던 디에고의 혁명과 같은 예술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꿈을 꾸어볼 수 있다. 사실, ‘영웅소설’로서의 평전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