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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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제프 푸셰’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2007년 대선 무렵일 것이다. 17대 대선이 한나라당의 경선으로 ‘사실상’ 끝이 나고 정권교체가 명백해지던 무렵, 나는 푸셰와 그의 정치적 삶을 떠올렸다. 권력변동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자들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는 베버적 의미의 ‘영혼부재의 관료론’이 언론의 비아냥 속에 오르내리면서 실존적으로 떠올리게 된 질문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책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한길사, 1998)을 찾게 된 내력도 그러하다. 푸셰의 삶을 뒤따라간다는 것은 권력교체기에 불가피하게 ‘정치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들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시골교사에서 급진 자코뱅 당원으로, 다시 왕당파로, 나폴레옹의 최측근으로, 복귀한 루이 18세의 경무대신으로, 실로 현기증 나는 배반과 변신을 보여준 이 정치적 인간의 한 생애는, 5년 주기로 사람 하나 바뀌는 것일 뿐(?)인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치적 운명’에 대해 던지는 의미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츠바이크의 푸셰 평전에 손이 가질 않았다. 왜 그랬을까. 200여 년 전에 등장하고 사라진 한 인물의 삶을 읽어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 것인가. 이게 무슨 자본론도 아니고, 읽기 버거운 요즘의 철학서도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서구 인문주의의 적자이자 그 세례를 듬뿍 받은 츠바이크의 저작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왜 나는 이 책을 선뜻 펼치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당대의 내 삶과 일을 스스로 정당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적 지배질서와 오랫동안 섞이지 못했던 개인적 이력도 그렇거니와 지금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퇴행성에 생래적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이미 스스로 퇴행의 일원이 되어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자기모순. 박권일의 말을 빌어 ‘먹고사니즘’으로 손쉽게 합리화하기에는 내 안의 ‘정치사회적 우울증’이 이미 중증이었다.


Joseph Fouche(1759-1820)
조제프 푸셰는 1759년 5월 30일 프랑스의 낭트에서 선원이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820년 12월 26일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죽었다. 그의 60여년 생애는 프랑스 혁명과 그에 뒤이은 국민의회, 자코뱅 독재, 나폴레옹의 출현과 유럽의 전쟁, 나폴레옹의 몰락과 왕정복고라는, 인류사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세기 전환기의 한복판에서 모든 당파를 이끌었고, 이 세계 전환기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 남자”였다. 그의 혁명 동지들인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라마르틴도 죽고, 바라스 탈레랑 등의 재상들도 가고, 나폴레옹마저도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에서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쳤지만, 오직 한 사람, 푸셰만이 “배신자, 음모가, 파충류, 변절자, 비열한 경찰근성, 배덕한”의 정신과 기질로 살아남았다. 


그의 출발은 참으로 미미했다. 창백한 표정의 이 과묵한 사내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를 퀴퀴한 수도원에서 라틴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사제로 보냈다. 프랑스 혁명의 열기가 수도원의 담을 넘어오자 그는 정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수도복을 벗어버리고 ‘거리의 정치가’로 변모했다. 그런 노력으로 32세 때인 1792년 국민의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중앙의 정치무대에 등장한다. 그의 외모를 묘사하는 츠바이크의 필치는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 “거의 망령과 같이 뼈뿐인 말라붙은 육체, 모가 난 가느다란 얼굴, 그것은 흉하고 불쾌했다. 코는 날카롭고 언제나 다물고 있는 입도 날카롭고 좁다. 졸고 있는 듯한 무거운 두 눈은 생선 눈과 같이 차가왔다. 고양이 같은 회색의 동공은 유리알 같았다. 막 질병으로부터 벗어난 회복기의 환자 같다.”  외모로서 보자면, 그는 만화와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음모가와 사술(邪術) 전문가의 전형적 유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푸셰는 대세의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읽어내는데 능숙했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기술이다. 루이 16세에 대한 국민의회의 평결에서 그는 ‘대세’를 따라 국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대열에 줄을 섰다. 이념적 자코뱅이 아니라 처세로서의 자코뱅. 그에게는 “언제나 승리자 편에 있고, 결코 패배자 밑에는 남아 있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외적으로는 온건주의였지만 자신이 자코뱅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리옹에 국민의회의 파견의원이 되어 귀족과 왕당파를 처단하고, 교회와 신성을 파괴하는데 앞장선다. 부자의 재산을 박탈하고, 모든 시민은 전시에 애용되는 똑같은 빵을 먹어야 하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강요한다. 심지어는 수백 명의 인간을 모아 놓고 대포로 쏘아 죽이는 제노사이드도 서슴지 않았다. 푸셰가 파견된 이후 몇 주 동안 소도시 리옹에서 1천6백명이 학살된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자코뱅에 충성하고 있는 혁명의 충실한 주체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츠바이크는 그를 세계 최초의 볼세비키이자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보다 1백여년 앞선  ‘공산당 선언’의 기초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살의 책임문제가 거론되자 그는 돌연 태도를 바꿔 모든 책임을 함께 부임한 콜로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은 살아 남는다. 뱀처럼 교활하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두 번의 걸쳐 반복된 푸셰 자신의 운명을 건 정치적 대결이다. 그 첫째 상대자는 로베스피에르이고, 두번째는 나폴레옹이다. 물론 두 번 모두 최후의 승자는 푸셰다. 푸셰를 탄핵하는 로베스피에르의 격정적 연설 : “이 세상에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민중에게 가르칠 사명을 누가 그대에게 부여하였는가. 우리들에게 공개하라. 모든 맹목적인 힘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때로는 미덕을, 때로는 악덕을 아주 우연히 두들겨 부수고 인간의 영혼은 무덤의 입구에서 소멸하는 연한 입김에 지나지 않는다고 민중에게 믿게 하는 선동에서 그대는 어떠한 이득이 있다고 보는가. 무고한 자들에게서 이성의 왕홀을 탈취해서 악한의 손에 넘겨주는 일을 그대는 어떠한 권리로 감히 행했던가. 그대는 자연의 모습에 수의를 걸어주고, 불행한 자들을 더욱더 절망케 하였다. 범죄자의 죄를 가볍게 해주고, 미덕을 암담하게 하고, 인류를 비천하게 했을 뿐이다. … 자연이 우리들에게 무 이외에 어떠한 아름다운 것도 보낼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경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범죄자일 따름이다.”(91p) 이 추상같은 연설이 주는 준엄함! 피가 튀고 살점이 난무하는 혁명의 와중에도, 인간의 목숨을 단두대가 선 형장으로 내보내는 무시무사한 탄핵연설에 동원되는 ‘정치담론의 수사학’은 이토록 우아하다.

급진 자코뱅 로베스피에르에게 푸셰는 하잘 것 없는 존재였으나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치면서 죽은 것은 오히려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충실한 심복 생쥐스트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격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푸셰는 온갖 음모와 술수로 로베스피에르의 친위대이자 혁명의 사령부인 ‘자코뱅 클럽’의 영수로 선출된다. (로베스피에르의 분노에 찬 토로, “푸셰, 네놈이 감히!”) 그 뒤 ‘청교도적 공화파’인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짓눌려 있던 국민의회 온건파의 반란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이게 테르미도르(프랑스 혁명력 제11월, 7월19일 ~ 8월 18일, 프랑스 혁명력은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 같은데서 다시 쓰여지고 있는데, 이 희한한 달력의 울림은,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나에게조차도 시적으로 느껴진다.) 9일에 벌어진 인류사적인 반동이다. 후일의 역사는 로베스피에르를 굵은 고딕체로 기록하지만, 현실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그가 아닌 푸셰다.

역사에서 간주곡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푸셰는 리옹의 학살 책임이 뒤늦게 문제되어 회색의 망명객으로, 화려한 국민의회 의원에서 가난한 평민으로 전락한다. 가난한 시골의 다락방에 살며 ‘돼지먹이’ 일로 겨우겨우 살아가던 푸셰는 당시의 권력자 바라스의 ‘밀정’이 되어 남이 하는 말을 엿듣고, 뒤를 캐는 일로 그의 신임을 얻는다. 그의 기질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이 스파이 짓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의 특기와 장점을 살리게 된다. 그 ‘실력’으로 당대의 권력자 바라스의 눈에 들어 하루아침에 맨 밑바닥에서 5인 집정내각하의 프랑스 공화국 경무대신으로 등극한다. 한국사회로 치자면 ‘경찰총장’이 된 그는 과거 자신에게 해꼬지를 한 자코뱅파를 처단하고, 해고하고, 감옥에 가두는 일에 혈안이 된다. 여기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 그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내어 출세를 시킨 바라스 역시 후일 푸셰에 의해 ‘추방’된다는 것. 츠바이크에 의하면 이는 “배은망덕에 대한 세계사적 교훈”을 실천한 것이다.

초라한 포병장교에서 쿠데타를 통해 일약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 나폴레옹은 푸셰의 과거와 음모가적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완전히 몰락시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주지도 않는 방식으로 푸셰의 목줄을 쥐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경무대신직에서 면직되고, 한직인 원로원 의원이 되어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지만, 대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건 바로 ‘돈’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사업수완으로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돈보다 더 달콤한 것은 권력이었다. 말하자면 권력중독자인 푸셰에게 돈의 세계보다 더 달콤한 것은 권력이었다 : “권력은 메두사의 눈을 갖고 있다. 한번 그 놈의 얼굴을 본 자는 그 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고, 언제까지나 정신이 홀려 사로잡혀 있게 된다. 한번 지배하고 명령하는 도취감을 맞본 사람은 결코 그 도취감을 단념할 수 없다. 세계 역사를 훑어보면 권력을 자진해서 단념한 실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181p)

종신집정관에서 황제를 꿈꾸던 나폴레옹과 다시 권력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푸셰의 욕망은 맞아 떨어졌다. “카이사르가 되려는 자는 안토니우스와 같은 자를 필요로 하는 법”. 푸셰는 나폴레옹에 의해 경무대신으로 다시 복귀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 둘 사이의 스파이질과 반대 스파이질은 교활해지고 추악해진다. 나폴레옹은 푸셰를 믿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오트란트 공작’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이 공작가문의 문장은 황금의 기둥 둘레를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 나폴레옹의 재치가 빛나는 대목이다. 푸셰가 나폴레옹과 싸워 이기는 순간은 푸셰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초기 프랑스를 구한 영웅에서 ‘황제가 된 이후’ 나폴레옹이 숙명처럼 안고 있던 전쟁광 기질이 빚은 참극이기도 하다. 엘바섬에 유배됐다 탈출한 나폴레옹에 의해 세 번째로 경무대신에 임명된 푸셰는 영국과 메테르니히 등 적대국가들과 은밀하게 거래를 벌였고, 결국 100일 천하를 이끌다 워털루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에게 결정적 타격을 안긴다. 재기를 꿈꿨던 나폴레옹은 루이18세를 옹립하여 왕정을 복고하려는 푸셰의 계획에 따라 서서히 침몰하다가 결국 반동의 물결에 의해 처단된 것. 최종 승자는 역시 푸셰였던 것. 그는 왕정복고를 위한 준비기간 동안에는 5인의 집정내각중 두명을 매수하여 5일동안 프랑스의 절대군주가 되기도 했다. 가난한 시골교사에서 경무대신, 오트란트 공작, 임시정부 의장으로 최고권력까지.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은 이렇게 외친다 : “나는 오직 한 사람, 참으로 완전무결한 배반자를 알았다. 그 사람은 푸셰다.”

츠바이크의 탁월한 점은 한 인물이 가진 복잡다단한 성격과 기질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복원하면서도 역사의 우연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적절히 통찰하고 배합할 줄 안다는 점이다. 푸셰의 몰락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이 푸셰의 추악한 과거를 잊거나 잊으려 했지만, 단 한사람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딸 앙굴렘 공작부인. 그녀는 푸셰가 자기 아버지 루이 16세에게 사형을 외쳤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으며, 푸셰를 포함한 자코뱅들이 어머니와 부모의 친척, 친구들에게 한 짓을 아주 끔찍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 다시 재개된 왕정에서 루이 18세는 앙굴렘 공작부인이 가진 푸셰에 대한 미움을 핑계로 그를 외국으로 추방해 버린다. 이제 절대권력자에서 몰락한 푸셰는 한 때 친한 사이였던 유럽의 모든 실력자들에게 거부당하고, 오스트리아의 시골과 프라하를 거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죽었다.

츠바이크는 푸셰가 마지막이자 최초로 범한 우매한 짓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한다. 그게 몰락의 시작이었던 것. 다시 말해, “배반해야할 주군도 없는 푸셰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배반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배신과 배신의 배신, 배신의 배신의 배신으로 점철된 생애가 결국 마지막에 배신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츠바이크가 말하는 ‘정치적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적 삶의 숙명이 살아 움직이는 권력의 생리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것이라면 ‘배반’은 불가피하다. 영속적인 권력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 배반의 귀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온 자신의 역사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인간에게 ‘자기 성찰의 회로’가 존재한다면 그는 더 이상 정치적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성찰은 반성을 부르고, 반성은 정치적 생존과 비약을 위한 선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을 반복하는 회의주의자는 정치적 성공을 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이는 정치의 영역을 좁은 의미의 정치사회, 적어도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국한했을 경우다.

성찰의 결여와 더불어 푸셰가 진짜배기 ‘정치적 인간’이라는 점은 그가 가진 모든 음모의 기록, 공개되면 피바람이 불 모든 문서들과 편지들을 불태웠다는 점이다. “그토록 완고하게 과묵했던 사람은 무덤속에서조차 진실을 누설하지 않았다.” 행복한 망각을 선택함으로써 후대의 재평가를 통해 역사적으로 ‘재기’ 할 기회를 노렸던 것일까. 츠바이크는 “정치적 인간의 유형학”을 수립하려 했다지만, 이것은 유형학이라기보다 차라리 정치적 인간의 ‘생태학’이거나 ‘인류학’에 가깝다. 그것이 생태학이자 인류학인 까닭은 정치적 인간의 속성은 규모와 크기를 달리하여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배반’은 ‘변화의 수용’으로, ‘역사적 퇴행’은 ‘시대정신’으로, ‘존재에 대한 성찰’은 ‘(불가피한) 숙명에의 너그러운 수락’으로 치부되는 수사학만이 조금씩 달리 구사될 뿐. 그러니, 어찌 푸셰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2007년 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제목은 “우리는 모두 조제프 푸셰의 후예다”라는 것이었다. 
 

* ps.  정치적 ‘거물’들의 세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간들의 생존법을 일러주는 한 에피소드 :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 당시는 시간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규탄하고 있는 동안에 조용히 있기만 하면 사람들은 묵인할 것이다. 공포정치 수년동안 줄곧 의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한번도 입을 열지 않다가 후일에 그 전체 기간중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천재적인 대답을 한 시에예스의 그 유명한 처방대로 마치 많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듯이 푸셰는 죽은체 하고 있었다.”
 -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쓸모있는 지혜일 것이다. 근데, 이 재밌는 책이 왜 품절일까. 변절의 시대에 매우 유용한 참고서이자 교과서인 이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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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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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를 읽는 건 마치 히로카네 겐지의 만화거나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같은 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을 소박한 휴머니즘으로 덧칠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재주. 아마도 일본식의 휴머니즘일 듯한데, 여기에는 회사인간으로 살아가는 일본인의 내면에절절한 인간적 욕망과 화해를 향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백화점의 여성복과장이었던 한 성실한 회사원이 죽은 뒤 7일 동안 ‘이승’에 내려와 자신의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이야기. 여기에 인간적인 야쿠자였던 한 사내의 삶이 겹쳐지고, 야쿠자의 아이로 태어나 보육원에 맡겨졌던 한 아이의 스토리가 거기 또 엮어져 있다. 목숨의 이쪽과 저쪽 세계가 연결돼 있고, 휴대폰으로 연결되며, 공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등장한다는 식의 상상력이 발랄하다.

아사다 지로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아무런 부담 없이 술술 잘 읽히고, 재미도 쏠쏠하다. 주말 동안 서울과 부산을 KTX로 왕복하며 읽었다. 그러나, 아사다 지로 소설의 본령은 역시 단편에 있다는 생각. 가장 뛰어난 단편집인 <철도원>이 그렇고, <장미도둑>이나 <사고루 기담> 같은 단편집도 심금을 울리는 진진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지하철>이나 <천국까지 1000마일>, <칼에 지다>같은 장편은 단편이 주는 재미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돌이켜보니, <프리즌 호텔> 정도를 제외하면 꾸역꾸역 이 사람의 소설을 거의 다 읽어온 셈인데,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곱씹어 읽는다기보다 마치 휴일에 배 깔고 누워 만화를 보는 경험과 비슷했다. 가끔 웃기도 하고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여전히 ‘감성적’이었다.


아사다 지로가 보여주는 일본적 감성에 대해서는 일종의 ‘버텨읽기’가 필요한 대목도 있다. 그의 소설이 가진 인간적 축축함은 감동스러운 바가 있지만, 어느 순간 이성적 합리를 훌쩍 뛰어넘어 휴머니즘을 강요하는 듯한 진한 감성은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들은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으며 자신의 과거로 인해 현재의 삶이 불행하거나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 현실 혹은 인간적 관계에 대한 전면적 긍정과 화해의 길로 접어든다. 자신을 잘 보살펴준 보스를 위해서라면 눈물을 머금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의 순백의 내면. 2차 대전의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본인들의 고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많은 텍스트들이 그러하듯이, 전쟁의 비극과 인간적 고통은 절절하지만 정작 전쟁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물음은 실종된 상황과 유사하다.

성실한 백화점 맨으로 평생을 살다 죽은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은 이승으로 건너가 자신의 아내와 오랫동안 불륜 관계에 있던 부하직원을 만나지만 정작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은 자신이 일하던 백화점의 바겐세일의 매출액이 얼마냐 하는 것이다. 사후 7일간의 허락을 얻어 이승으로 자신을 버린 야쿠자 부모를 찾아간 아이는 ‘저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오직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저 세상으로 간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건, 자기 아들이 불륜사이에 낳은 아들임을 알건 모르건, ‘회사’일에 충실한 가장. 옳든 그르든 오야붕을 잊지 못하고 그를 위해 사후에도 충성을 다하는 야쿠자 ‘고붕’들. 한 남자를 사랑하고 20년동안 섹스파트너로 지냈으면서도 사랑을 숨긴 채로 결혼을 축하해주는 여자. 이들은 직업적 성실성으로 충만해 있고, 조직의 위계구조, 보스, 연인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은 절대적이다.

이같은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있으나 이런 멘털리티가 ‘무책임의 체계’를 가능케 한 일본적 정신구조는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다소 과장해서 이해하자면 사람은 저마다 인간적 진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이자 다른 모든 것들을 일거에 무화시킬 수 있다는 전언. 이 전면적 ‘인간주의’의 숨겨진 구석에는 파시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 헨리의 단편집과 비슷비슷한 느낌들인데, 그와는 달리 한구석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의문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이고, 재미있으면 그로서 평균 이상은 되는 것이니, 이 따위 혐의가 무에 대수랴.  내 우중충한 시간을 종종 구원해줬던, 이 전직 야쿠자 출신 소설가에게 복이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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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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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회고체를 부른다. 나 역시 한때 르뽀의 세계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5공정권의 폭압이 극성에 달하던 시절, 일련의 무크지를 중심으로 르뽀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전설이 된 <마당>이니 <뿌리깊은 나무>니 하는 잡지들이 앞다투어 르뽀를 실었고, ‘르뽀시대’니 하는 동인들도 생겨났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한 내가 더 흥미를 느낀 것은 전시대의 그늘진 유산들이었다. 그런 책들을 통해 읽은 김현장의 ‘무등산 타잔’ 같은 소설같은 이야기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극우가 돼 버린 조갑제의 <유고>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같은 뛰어난 르뽀집들, 그리고 황지우의 반짝반짝 하는 재기발랄한 현장 르뽀르타쥬.

창비와 문지가 강제폐간된 당시에 르뽀를 통한 ‘게릴라 전술’은 일종의 ‘숨구멍’이기도 했던 듯 하다. 무크지 아니면 단행본을 통한 당대 지배질서에 대한 대항 기동전. 단행본으로 나온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나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같은 노동자의 현장 수기도 그에 못지않은 감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어느 헌책방 구석에 쌓여 있을 70~80년대의 목소리들은 ‘귀족노조’가 등장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생생한 감동이다. 하지만 이제 누가 이 70년대의 노동자의 현실을 기꺼워하면서 읽을 것인가. (이 시기를 다룬 강준만의 <한국현대사 산책 70년대편>이 제법 팔리는 것을 보면 당연히 지금은 ‘역사화’되어 가는 것 같다. 강준만의 ‘짜깁기로서의 역사’도 이런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대학 초년 시절, 어느 우파 교수가 사회과학적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박한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정치경제학 이전에 <전태일 평전>이 있었고, <자본론>이전에 멘체스터 방직공장을 나오는 어린 노동자를 연민으로 쳐다보던 맑스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르뽀의 재미와 감동으로 따지자면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만한 것이 있으랴. 그 책을 읽으면서 잠시 마오주의자가 되어 중국 사회주의의 거대한 뿌리를 슬쩍 만져본 것 같은 경험이 아직도 쟁쟁하다.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간>,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 역시 선명하다. <카탈루니아 찬가>는 아마 고종석이 당시 한겨레신문에 소개한 <스페인 내전>(형성사) 때문에 읽었을 것인데, 반파시즘 국제연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감격스런 깃발 아래서 벌어지는 사상투쟁과 내부분열이 참담했다. 후일담 문학이 지배하던 당시의 지리멸렬한 풍경 속에서 이런 르뽀에 코박고 ‘소설 같은 현실’에 몰입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이런 옛 기억을 불러냈다. 한겨레에서 이 책의 소개를 봤을 때 나는 이것이 황석영이 썼던 ‘사북사태’ 르뽀와 비슷한 것이리라 지레 짐작했다. 궁핍과 비참의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인간적 연대감과 근육과 땀으로 삶을 일구는 자들에 대한 동경.(이것이 극단적으로 미학화되면 김훈의 문장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위건 부두’는 없었다. 이 지명에서 한창 시절 마론 브란도가 연기했던 ‘워터 프론트’에서와 같은 부두 노동자의 삶을 기대할 건 없다. 영국 북부 탄광지대 노동자의 빈곤한 삶과 곤궁이 적나라하게 나올 뿐이다. 더구나 1부를 제외한 2부는 1930년대 유럽에 유령처럼 출현한 파시즘과 그것에 사회주의가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설파한 ‘정치평론’이다.

‘제국의 영광’을 찾아볼 길 없는 1930년대, 조지 오웰은 극도의 궁핍과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의 삶을 찾아 나선다. 르뽀라기 보다 한 사회학자의 현장 보고서 같은 날카로운 분석과 관찰력이 빛난다. 노동계급의 삶과 주거, 가족의 면모를 묘사하는 그의 필치는 그닥 심금을 울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노동계급에 대한 오웰의 시선, 영국 사회에서 계급문화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눈길이 간다. ‘h' 발음을 하지 못하는 자(하층 노동계급)과 할 수 있는 자(상류층)로 구분하는 섬세한 문화적 계급구분법. 
 
오웰이 전하는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의 풍경은 정겹고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 “겨울날 저녁에 차를 마시고 난뒤, 조리용 난로에서는 불꽃이 춤을 추고, 난로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셔츠 차림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경마 결승전 소식을 읽고, 어머니는 다른 한쪽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아이들은 1페니 주고 산 박하사탕 때문에 행복해하고, 개는 카펫에 드러누워 불을 쬐는 정경을 볼 수 있는 집은 정말 가볼만한 곳이다.” 영국 노동계급은 우리처럼 경제적 계급 상승을 위해 애면글면 하지 않는 모양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적 계급구분 속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방식의 경직된 사회적 이동성은 ‘계급정치’가 가능한 토대이리라.  


나로서는 이 책의 2부가 더 흥미로웠다. 역자가 붙인 소제목 “민주적 사회주의의 길”은 글쎄, 그렇게 타당한 제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노동계급 앞에서 ‘이데올로기’니 ‘동지’니 하는, 우리로 치면 ‘운동권 용어’를 남발해대는 ‘사회주의자’를 비판하는 대신, 사회주의적 가치의 필요성과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사회적인 상식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본론>의 이론을 구현한 세계인 것도 아니고, 볼셰비키의 집단주의도 아닌 “정의와 자유”의 세계다. “모든 억압자는 언제나 그르며, 모든 피억압자는 언제나 옳다”라는 인식 아래, “진정한 사회주의자란 압제가 타도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의와 자유”를 외치는 것이다. 193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유럽의 절반을 장악한 지금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정의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박(?)하다. 이 책 후반부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파시즘의 위협에 대한 오웰의 위기의식이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아마도 반파시즘의 현실적 이념이자 실천적 운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상당분량을 할애해 그같은 사회주의로 갱신하지 못하는 당대의 “사회주의자들”과 “귀족적 사회주의자들”(여기엔 버나드 쇼나 시드니 웹, 웰즈같은 사람도 포함된다.)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이 책이 당대의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아마도 오웰이 제안하는 사회주의의 재구성이 한국의 진보세력 반성과 성찰에 일정한 통찰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량한복으로 상징되는 시민운동가들, 두루마기가 보여주는 후진적인 미적 감수성, 별나고 이상한 사람들로 비치는 운동권들 등. “연합해야할 사람들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라는 통찰도 그렇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 : “여기서 우리는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진짜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지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냄새’는 이성적, 경제적 계급 구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면적이고, 넘어설 수 없는 깊은 차별의 강이다. 어설픈 사회주의자, 강단 좌파, ‘학출’ 여부를 폭로하는 기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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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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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소설. 이 여사의 후의와 강력추천으로 <벨벳 애무하기>에 이어 두 번째로 사라 워터스를 읽다. <벨벳>보다 스토리 구조는 더 복잡해지고, 분량도 길어졌으며, 반전이 이끄는 재미도 볼만 하다. 곳곳에 스민 ‘하이틴 로맨스’적인 심리묘사와 서술도 여전하다. 전작보다 분량이 길어진 탓인가, 중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BBC 드라마를 봤기 때문일까. 1부까지 흡인력 있게 읽히던 작품이 2부를 지나면서 툭, 맥이 끊기는 경험. 읽는 속도가 한결 더뎠다.

이 소설의 매력은 두 번에 걸친 대반전에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1부는 귀족 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에 가담한 여주인공 수전이 또다른 여주인공 모드에 사랑에 빠지고 ‘음모’에 배반당하는 스토리다. 이 소설의 가장 극적인 반전의 대목인 셈인데, 음모의 가담자에서 은밀한 쾌락의 공유로 변화하는 수전의 감정적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 뒤의 반전과 재결합은 췌사에 가까울 정도로 느릿하고 지루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BBC 드라마는 원작의 미묘한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불안한 감정상태를 표현하기에 딱 알맞은 얼굴을 가진 엘레인 캐시디, 순진무구함과 천박성, 감춰진 성적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볼만 했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다소 비약적으로 비칠 정도로 빠른 데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인상이다. 아주 고전적인 장면들로 인해 19세기말 런던 뒷골목의 음습하고 패덕스러운 분위기는 잘 살아나고 있다.


이 소설이 레즈비언 소설인 이유는, 여자들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남성성에 맞서는 ‘여성성’의 세대적 연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드-석스비 부인, 매리언-수전의 모녀 관계는 삼촌/젠틀먼의 폭력적 남성 세계와 대비되는 모성과 사랑의 연대다. 여성들은 이대에 걸쳐 수난을 당하지만, 결국 남성(들)은 파멸하거나 죽고, 끝까지 사랑을 쟁취하는 것은 여성(과 여성의 연대)이다.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며 허스토리를 구성하는 여성들의 ‘略傳’, 사랑이야기이면서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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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 21세기의 계보 프런티어21 9
조반니 아리기 지음, 강진아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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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아리기는 내게 이름만 익숙한 사회학자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저작을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신좌파 마르크스주의 학자쯤으로, 세계체제론자, <뉴레프트 리뷰>에 간혹 글이 실리곤 하는 학자로 안 것이 전부다. 모리스 돕, 폴 스위지, 로버트 브레너 등 그보다 앞선 좌파 경제사학자들의 글에도 익숙치 않은 내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읽으면서 버거워 했던 것은 당연한 일. 이 두꺼운 책을 추천한 놈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겼다. 아리기의 방법론적 시각을 보여주는 1부와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대목인 4부에 대한 정리와 인상기다.

아리기의 관심사는 현재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세기’를 역사사회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19세기 초까지는 동아시아가 서구사회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해 있었다. 그가 ‘大分岐’라고 부르는 이 시기 이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측 세계’(서구 선진국)가 전세를 역전시켜 20세기 초까지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그리고 20세기 말에 다시 이 분기는 역전됐다. 바로 이 역전된 분기의 시기, 곧 ‘신아시아 시대’가 역사적으로 부상하게 된 연원과 매커니즘을 분석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현상을 애덤 스미스의 경제발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리기의 목적이다.  

 

 

그런데, 왜 애덤 스미스가 베이징에 와 있는가. 중국의 시장경제 확산은 그 속도와 파급력 면에서 가히 “시장레닌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리기는 ‘디트로이트의 마르크스’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대비시킨다. 마르크스의 논리는 격렬한 계급투쟁이 계속된 유럽에서 더 잘 관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본주의의 노자대립의 ‘전형’은 미국, 그것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에서 였다고 말한다. <노동과 독점자본>으로 유명한 해리 브레이버만이 “몸으로 쓴” 마르크스주의 노동과정론이 출현할 수 있는 맥락도 바로 여기서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미국 노동운동은 극히 쇠약한 지경이었지만, 브레이버만처럼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볼 때 오히려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은 “시장의 확대가 경제발전 정도를 견인한다”는 스미스적 시각으로 볼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아리기가 중국을 분석하기 위해 들이댄 이론적 프리즘인 셈이다.

동아시아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리기는 스기하라 가오루의 ‘근면혁명’이라는 독특한 설명방법을 끌어온다. 19세기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발전은 소농경제에 입각한 노동집약적인 산업화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가족경영을 포함한 노동집약적인 농업경제, 곧 ‘인적자본’을  통한 경제발전을 통해 세계 GDP에서 서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가 산업혁명이라는 ‘생산의 기적’을 이루었다면, 동아시아는 노동집약적인 에너지 절약형 산업화를 통해 ‘분배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아리기가 애덤 스미스를 끌어들이는 부분이다. 그는 스미스에 대한 몇몇 이론가의 해석에 힘입어 “자기조정적인 시장의 옹호자, 노동분업의 옹호자, 경제팽창 엔진으로서의 자본주의의 옹호자”가 아니라 강한 국가의 존재를 전제한 자본을 규율하고 통제하려한 경제학자로 부각시킨다. 스미스는 “공공서비스를 하기에 충분한 세입을 국가에 공급”하기 위해 강한 국가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자본친화적이라기 보다 노동친화적이고, 기술적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그 유명한 핀공장의 사례)를 말하면서도 노동분업이 노동자의 지적 능력의 퇴화를 가져온다는 사실로 인하여 분업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한 이런 해석. <도덕감정론>에 기대어 시장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지적은 들어봤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계몽적인 대목이었다. 스미스는 중국이 내부의 농경의 확대와 개선이 제조업으로, 제조업의 확대가 외국무역의 진전으로 나아간 “자연스러운 발전경로” 밟았음에 비해, 서구는 외국무역이 제조업을 도입하고, 이것이 다시 농업생산의 개량으로 나아간 정반대의 경로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부자연스러운 발전경로”라고 평가한다. 중국적 발전경로에서 농업노동자는 생산과정에 대한 주의나 판단이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서구 산업노동자보다 지적 퇴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스미스에게 중국은 “시장 기반 발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시장은 자본주의적 관계라기다 조금 더 포괄적인 상업적 거래를 의미한다. 유럽은 외국무역에 의존하고, 중국은 국내의 무역에 기반한 경로를 발전시켜왔는데, 스기하라가 말한 동아시아의 근면혁명은 소농경제에 기반한 노동력이기 때문에 상황에 유연한 대처능력, 예견과 방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훗날의 유연생산이론에서 전형적으로 표출되는 노동의 형태와 유사하다. 이 대목은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능동적 참여를 보장하는 도요타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중국적 발전과정은 서구의 자본주의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다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서구의 경우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정에서 농업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되어 산업노동자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파괴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소농경제가 온존되면서 시장기반의 경제를 발전시켰다. 마르크스적 설명이 중국에는 들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구의 경우는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경제적 주도국의 변천과정이 잘 보여주듯이 비자본주의 경제의 파괴와 식민화를 통해 이윤율의 지속적 하락에 대처하며 자본의 자기팽창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중국과 서구의 또다른 차이는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1500년 이래로 중국과 서구 자본주의의 분기의 원인은 서구는 자본주의와 근대국가를 발견했으나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고, “서구와 중국의 경로의 차이는 특정 비즈니스나 국가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상이한 권력구조내의 조합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는 자본가들의 국가의 힘을 넘어서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했던 반면, 중국은 국가의 자본가들을 경쟁시키고 국익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의 말 “자본주의는 오로지 국가와 동일시되거나 자본주의가 바로 국가일 때만 승리한다”는 말은 서구의 경우에나 해당한다.

스미스적 시각에서 본 이런 ‘유구한’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신자유주의적 개방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깨져야할 신화”다. 중국과 인도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르지 않았고, 그걸 따른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몰락했다. 중국은 외국자본에 모든 것을 내주지 않고 자신의 룰과 관습을 고집하는 “자국중심적 국민경제의 장점을 결합”하여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국가의 역할은 마르크스의 “부르주아의 용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그친 것이 아니라, 모든 자본 사이의 경쟁을 유도하고 개혁 역시 사유화가 아니라 국가독점과 장벽 제거를 위한 경쟁 강화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중국에서의 자본가는 마르크스의 자본가가 아니라 국익에 복무하는 스미스적 자본가다.

강탈없는 축적과정.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역의 토착기업인 향진기업(鄕鎭企業)이었는데, 이는 농촌의 잉여인구를 흡수하고 시장진입에 다른 경쟁압력을 완화하고, 농민에게 수입을 보장하여 농민의 조세부담을 완화하고, 이윤과 임대수입을 지방정부에 재투자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적 인프라로 작용했다. 노동자에 대한 “강탈없는 축적”을 설명하는 대목은 주목을 요한다. 윈펑의 자동차 공장에는 로봇이 한대도 없는데, 여기서 만드는 수제 호화 지프는 8만~15만 달러에 팔린다.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를 감축하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 아리기는 “중국의 경쟁우위는 노동자 임금이 싸다는 게 아니라 관리자 임금이 미국보다 35% 싸다는 것”에서 찾는다. 자본을 절약하고 노동에 더 많은 역할을 다시 맡김으로써 중국의 공장들은 오히려 미국보다 더 (실제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한다.

아리기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새로운 자본가 계급을 만들어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전통은 국가개혁에 대한 내부 억지력으로, 국가의 부패나 불평등한 시장화에 대한 항의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덩사오핑의 경제개혁은 당과 관료들에게는 문화혁명으로 약화된 힘과 특권을 새롭게 부여했으며, 중국인민들에게는 중국 혁명의 성과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공자산의 전유, 국가기금의 횡령 등 강탈에 의한 축적이 거대한 부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들은 경제적 성공이 낳은 모순들, 예컨대 당-국가와 중국의 서발턴 사이의 전통적인 마오주의적 관계(양방향 사회주의)가 당-국가와 신흥 부르주아지로 대체되는 방식의 문제를 낳았다. 현재로서는 “중국에는 노동운동이 없다”는 전통적 상식은 전복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농촌경제 중시와 균형발전 전략이라는 진로 변경을 꾀하고 있는데, 이는 1장에서 말하는 후진타오의 마르크스주의 재해석과도 일맥상통한다. 농업중심 전략은 마오주의적 전통의 재해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득불평등의 확대에 따른 대중의 불만이 혁명전통을 침식할 우려에 대한 공식적 대응전략이기도 하다. 이미 중국 경제는 마오시대의 사회적 성과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것의 핵심은 농업생산 혁명과 교육의 보급, 기초복지의 확대다. 요컨대, 덩사오핑의 경제개혁의 사회적 토대는 마오시대에 이미 갖춰졌다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아리기는 중국의 부상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등장이고, 이것의 핵심은 다자주의(multilateralism)와 지방화(localization)라고 규정한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과거의 제3세계 비동맹 회의인 ‘반둥’의 부활인 ‘새로운 반둥 모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대중전략은 제임스 핑커턴의 제3자전략 ; 1차 대전처럼 유럽국가들끼리 싸우도록 놔두고 자금과 군수품을 공급, 헨리 키신저의 ‘끌어들이기 전략 ; 중국을 미국 중심 세계질서로 편입, 로버트 카플란 ;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다.

1997~98년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질서의 중심이 미국 패권이 관철되는 IMF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아시아 원조국가가 됐다. 흥미로운 표현 : “중국은 북쪽 경쟁자들과 비교하여 정치적 단서는 더 적게 붙이고, 비싼 상담료도 없으면서 더 많은 차관을 남측국가들에게 제공하고 비용은 북측의 절반밖에 안드는 벽지의 대규모 복합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공하여 남측국가들이 보다 더 여유로운 조건으로 천연자원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도와 중국의 거대인구를 고려할 때 휴대폰의 새로운 표준은 그곳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고, MS의 대체물 역시 중국제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의 부상을 설명하면서 아리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낙관적이다. 중국과 인도의 지배집단이 자국 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따라 생겨난 생태적 황폐화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적 발전경로가 동아시아적 경로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근대화의 혜택을 세계 인구 대다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국과 인도는 서구의 길이 아니라 강탈 없는 축적과 농업기반의 자국중심의 경제발전 전략, 내식대로 말하자면, 내포적 발전전략을 통해 경제적으로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간디의 말 : “만약 3억명이나 되는 한 나라 전체가 비슷한 경제적 착취에 몰두한다면 세계를 메뚜기떼처럼 초토화할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가 4분의 1이라도 미국과 같은 생산 소비 방식을 취한다면 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질식사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 : “만약 이 방향전환이 중국의 자국중심적 시장기반 발전, 강탈없는 축적, 비인적 자원보다 인적자원을 동원하고, 대중의 참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정부 등과 같은 중국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공고히 하는데 성공한다면,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문명연방을 출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방향전환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중국은 아마도 사회적, 정치적 대혼란의 새로운 진원지로 변모하여, 흔들리는 세계 지배를 확립하려는 북측(서구 선진국)의 시도를 촉진할 것이다. 혹은 조지프 슘페터의 말을 다시 빌리면, 냉전 세계 질서의 청산에 수반하여 나타난 폭력의 격화라는 공포(혹은 영광) 속에서 인류가 불타버리는 것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아리기의 논지. 두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하나는 그는 자주 중국=동아시아로 혼동하고 있는데, 중국은 동아시아의 일원이지만 곧 동아시아 전체를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중국적 경제발전 과정은 일본과 한국과도 대단히 상이하며 일치보다는 불일치의 경험이 많지 않나하는 것이다. 복수의 동아시아적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 이는 해제에서 역자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세계사적으로 볼 때, 긍정적으로 기여해왔고,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이다. 미국의 포식성과 중국의 포식성 중 어느 것이 더 잔혹스러울 것인가. 제국주의 미국과 제국주의 중국은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일까? 미국은 자신의 가치와 질서를 타자에게 강요하고 심어 왔지만, 중국 역시 과거 제국경영의 과정에서 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 티벳과 신장위구르를 보라.

어쨌든 방대한 두께만큼이나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해, 나로서는, 새롭고 신선한 설명이었다. 아리기의 중국에 대한 상대적 애정(?)은 중국이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역시 사회주의라는 국가적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데서 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도 있다. 마르크스를 부실하게 관리했던 구소련이나 국가적 실천이라는 경험이 부재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중국은 이들 좌파들에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아니었을 런지. 동양을 ‘발견한’ 이들 서구 좌파 마르크시스트(캘리포니아 학파?) 중 한 사람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책 제목이 <리오리엔트>라는 것이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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