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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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에 갔다가 황석영의 신간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엉겹결에 샀다. 서가배치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나는 작가명이나 가나다순 배치를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출판사별 배치인데, 그것도 장르별로 따로 구분해 놓은 게 아니라 한 출판사의 인문, 사회, 문학 등 출판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방식의 배치다. 10여년 저쪽의 교보나 종로서적은 아마 그런 식의 배치를 했던 듯 하다. 그래야 해당 출판사의 ‘색깔’을 알 수 있고, 편집자의 개성도 느낄 수 있다. 어쨌거나 황석영의 <강남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표지를 드러낸 채 누워 널찍한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눈에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황석영 말마따나 ‘강남형성사’다. 그런데, 황석영이 강남형성의 주역으로 꼽은 것은 룸살롱 호스티스와 국정원 직원, 건설업자, 부동산 투기꾼, 그리고 조폭이다. 그것이 외적으로 드러난 양상은 강남 나이트클럽과 백화점, 떳다방 등이다. 한마디로 강남은 환락과 투기와 조폭의 세계다. 권력이 은밀하게 개발을 추진하고, 투기꾼들이 가세해 부풀리고, 조폭이 지켜주는 공간이다. 황석영은 꼭두각시 놀음과 같은 소설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각기 제 몫을 해내며 오늘날의 강남의 전사를 충실하게 재연해낸다.

먼저 전직 북창동 호스티스인 박순녀. 그녀는 아리따운 몸매 덕에 북창동 룸살롱에 진출하고, 여차저차 인연을 이어가 강남에 대형 나이트를 세운다. 서울의 유흥가가 종삼과 북창동 시대에서 강남 룸살롱으로 중심이동 하던 흐름을 그녀의 동선은 정확히 재연한다. 아니, 그 흐름을 타고 떼돈을 번 유흥세력의 면모를 연기하는 꼭두각시다. 오늘날의 북창동은 4대문 안의 대표적 유흥가라는 과거의 전력을 잃어버리고 다소 퇴락했지만, ‘북창동식’이라는 보통명사화된 룸살롱 스타일이 보여주듯이 그 위용은 여전하다. 물론, 강남의 ‘텐프로급’ 이상에 비하면 수질이 한참 모자라지만 말이다.

친일파 밀정이었다가 미군정의 하급관리로, 6.25를 거치면서 정보부 요원으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했던’ 김진. 그는 강남의 역사적 뿌리를 상징한다. 지금의 강남 아파트들 상당수가 한강 모래사장을 메워 만들었듯이, 그는 봉건 귀족 문화도, 근대 부르주아 문화도 취약한 한국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강남부유층의 뿌리를 드러낸다. 친일과 독재의 그늘에서 쌓아올린 부와 그것의 허망한 추락.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밀려 나듯이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벼락부자가 된 전후 1세대 부유층은 뒤이은 IT와 금융 부자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말죽거리 신화의 실제 주인공들인 부동산 투기꾼 심남수와 박기섭.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들고 부추겨온 이들은 최근 몇 년까지도 시중의 부동자금을 쥐락펴락하던 떳다방의 원조인 셈이다. 지난 정부는 ‘투기시대의 종말’을 호기롭게 떠들었으나 결국 이긴 것은 이들이었다. 강남개발의 역사가 70년대부터이니 가히 40여년 이상을 승승장구해온 이들의 ‘체험적 진리’앞에서는 어떠한 부동산 정책도 요지부동이었던 것.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부동산 불패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으니, 남은 것은 손낙구의 지적대로 ‘부동산 계급사회’다.

호남 조폭 홍양태. 부산 조폭 칠성파가 상경하지 않은 까닭은 그곳이 일찍부터 일본과의 밀수 등 ‘먹을 것’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호남 조폭은 먹고 살거리를 찾아 대거 서울로 상경해 자유당 시절 이정재와 임화수가 지배했던 서울 뒷골목을 차지했다. 전통적 건달의 시대와 신흥 조폭의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이 바로 홍양태와 같은 호남 조폭의 서울 상경이 이뤄지던 1970년대. 이들 역시 명동과 종로, 북창동 일대에서 강남으로 진출하면서 강남 형성사의 한축을 담당한다.

그리고 도시빈민의 딸인 임정아. 무너진 삼풍백화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 그녀의 부모는 70년대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공돌이/공순이였으며, 지금의 성남시에서 벌어졌던 ‘광주대단지 사건’의 주인공들. 황석영은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 인물’로 묘사되는 임정아를 통해 기형적으로 개발된 도시의 새로운 주역이자 미래를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은 하지 마세요”라는 당당한 자기인식을 드러내는 그녀는, 저항보다는 굴종을 선택했던 부모세대인,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와는 다르다.

이들이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혀 만들어내는 ‘꼭두각시 놀음’은 흥미롭다. 1995년 삼풍백화점의 붕괴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강남의 고현학(考現學)이 아니라, 고고학(考古學)이다. 이 책이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적 내러티브거나 주인공들의 각축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이 주인공들과 사건들의 실제 인물과 배경을 추리해내는 재미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황석영은 이 소설의 인물과 배경을 대체로 실제 인물과 사건에서 따왔다.

무너진 백화점의 회장 김진의 모델은 몇 년전 유명을 달리한 삼풍백화점의 실제 회장 이*다. 군 보안사 준위 출신의 그의 배경부터가 소설속 인물과 닮았다. 투기꾼이자 건설업자인 박기섭은 은마 아파트 건설과 분양 성공으로 느닷없이 중견건설사로 부상했던 한*건설의 정** 회장이 모델이다. 실제의 정회장 역시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강남 개발과 더불어 재력을 쌓았고, 그 재력으로 정치자금으로 권력에 손을 대고, 철강회사를 차리려다 부도를 맞고 말았다. 호남 조폭 홍양태와 그의 라이벌  강은촌 , 그리고 두 조폭간의 갈등 속에서 신흥 강자로 부상하는 인물도 서방파의 김태촌, 양은이파의 조양은, OB파의 이동재 등 실제 보스들이다.

소설 속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는 명동 사보이 호텔 사건(1971)은 바로 전통적 건달의 잔재였던 신상사파의 몰락과 이들 삼대 패밀리의 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양은이파의 보스가 행동대장으로 나선 이 사건은 명동 신상사파가 급속하게 몰락하고, 호남 조폭 패권시대를 개막시켰다. 주먹이 사라지고 회칼이 등장하며, 업소보호에서 직접 사업으로, 구역다툼에서 전국구로라는 조폭 세계의 변화는 이들 삼대 패밀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다.  한국 조폭의 계보와 역사에 대해 얼마쯤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의 내러티브는 픽션 아닌 르뽀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 소설이 실망스럽다면 바로 이런 측면에서였을 것이다. 강남의 형성이 투기와 유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거기에는 70년대의 중정과 박정희 정부가 깊숙하게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도시사학자 손정목의 다섯권 짜리 <서울도시계획 이야기>(한울)가 더 흥미진진하다. 실제 서울시 도시계획 담당 간부였던 저자가 쓴 이 빼어난 실록은 서울이 왜 파행적으로 건설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600년 수도였던 서울이 파리도 뉴욕도 베를린도 될 수 없었는지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여준다. 전근대의 역사와 문화를 한순간에 휩쓸어 버린 전쟁과 전후의 난개발, 그리고 투기와 권력의 공생이 만들어낸 괴물이 바로 서울, 그것도 강남이다.  

 

황석영의 이 소설은 거기에 조폭문화와 도시빈민의 삶을 슬쩍 끼워 넣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뒷골목의 언어를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문장들은 왕년의 황석영답다. 특히 호남 조폭 세계의 상스럽고 되바라진 언어들을 복원해내는 솜씨는 거장답다. 친일 밀정이던 김진의 만주시절을 다루는 솜씨도 그렇다. 하지만, 친일독재와 강남형성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지나친 역사교양으로 나아갔고, 조폭이야기 또한 너무 일화적 구성에 치우쳐 있다. 이야기의 얼개는 앞서 말했듯이 이미 알려진 실제 사건들이고. 거장이면 좀더 나아갔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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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죄수 -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자오쯔양.바오푸 지음, 장윤미.이종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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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중국의 인민해방군에 의해 학생과 노동자가 총과 대포로 학살당했다. 정확하게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이 ‘천안문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초년생 시절에 봤던 교지에서였다. 천안문 사건 당시의 대자보와 구호, 사진과 외신보도를 그대로 전재한 대학 교지의  특집은 1980년 광주의 학살을 연상시켰다. 거친 질감의 흑백사진들은 ‘사회주의 중국’의 정치적 억압성과 폭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민의 정부, 인민의 당을 표방하고 있는 ‘공산당’이,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상대로 저런 폭력과 살인을 행한다는 역설. 그것은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나온 구호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로 재연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안문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당시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던 쟈오쯔양(趙紫陽, 1919-2005)의 실각소식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었다. 천안문 사건도 스탈린의 학살이나 북한의 연안파․소련파 숙청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벌어졌던 여느 사건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천안문 사건 특집을 실은 대학교지 편집자의 의도 역시 사건 자체보다는 ‘사회주의 중국’에서조차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우리도 마땅히 거리에 나서야 할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당시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군부 잔당들이 지배하는 곳이었으므로, 대학 교지의 ‘천안문’은 당시에 한국사회에 대한 오마쥬였던 것이다.

쟈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천안문 사건 전후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으로 16년간의 가택연금을 당한 끝에 2005년 사망했다. <국가의 죄수>는 천안문 사건에 대한 자오의 회고이면서 중국 정치엘리트 내부의 정치적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갈등과 쟁투를 보여주는 실록이다. 자오는 자신에게 뒤집어 씌워진 “동란 지지와 당 분열”이라는 죄목의 부당성에 대해 격정적인 어조로 토로하고 있다. 자오는 천안문 사건이 ‘반사회주의, 반혁명 분자들에 의한 동란’이라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시대는 변하고 있고, 민주와 법제의 흐름에 따라 반드시 이와같은 사고방식(계급투쟁을 강령으로 하는 오랜 이데올로기)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으며 학생시위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자오의 다음과 같은 옹호는 공산당 간부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시각이다 :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행한 민주제도는 완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고, 인민이 주인되지 못하며 소수,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다. ... 오히려 서구의 의회민주제가 그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 제도가 지금 찾을 수 있는 비교적 좋은, 더욱 충분한 민주를 구현할 수 있고 현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또한 비교적 성숙한 제도인 것 같다. 지금은 아직 이것보다 더 좋은 제도를 찾을 수가 없다.”

공산당 일당 지배의 중국사회에서 ‘의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신념’으로 가진 자가 ‘공산당 지도자’이니 그의 축출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구의 의회민주주의에 대해 중국은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회의)라는 또다른 ‘대의기구’를 가지고 있으며, ‘인민’의 당인 공산당이 지배하는 곳이니 ‘의회제도’는 ‘부르주아의 정치위원회’ 쯤으로 격하돼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이같은 시각은 천안문 사건의 직접적인 촉발 계기가 됐던 인물 후야오방(湖耀邦, 1915-1989)과 더불어 자오와 중국 최상층부 엘리트 내부의 정치개혁파들이 공유하는 입장이었다.

후야오방이 자오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개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면, 자오는 이 책에서 잘 드러나듯이 정치개혁에 대한 신념은 있되 우유부단하고 ‘정치적 처세’에 능숙하지 못한 인상이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4.19 직후의 장면과 비슷한 꼴이랄까. 그는 학생 시위대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줄기차게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덩사오핑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노심초사 한다. ‘후견정치’가 지배하는 중국에서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늙은 자오의 모습은 안쓰럽다 : “나는 단지 그가 오랫동안 신임해왔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던 내가 비록 학생시위에 관한 그의 결정에는 따르지 않았으나 결코 절박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거칠게 말해, 중국 지배엘리트들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개혁파와 보수파(마오주의 노선)과 구분되고, 공산당의 개혁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다시 개혁파와 보수파가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오의 사망과 4인방의 숙청 이후 개막된 ‘덩의 시대’는 중국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가져왔고, 이와 동시에 부상한 반부패,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는 덩사오핑의 4대 기본원칙(마르크스레닌 마오주의 노선, 공산당 영도, 사회주의 원칙, 인민독재) 하에서 억압되었다. 요컨대, 정치적 민주화 자유화의 사회적 요구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과실’과 맞교환 된 것이다. 경제를 줄 테니, 정치개혁에 대해 입다물어라. 역자 장윤미 박사는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사건으로 인해 입은 정치적 타격을 경제성장을 통해 정당화․합리화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하자면, 박정희 노선의 중국 버전?

장 박사는 한국의 90%가 넘는 ‘미국박사’들이 가진 불안감을 소개했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로 잘 나가던 시절에 이 나라로 유학을 했던 한국 대다수의 학자․지식인들은 미국 패권의 몰락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한다는 것. 어서 빨리 미국 패권시대가 다시 도래했으면 하는 게 이들의 바램. 아마 이들이 걱정하는 건 자기들이 공부해온 ‘워싱턴 컨센서스’와 같은 미국식 표준과 가치들의 몰락일 것이다. 물론, 그것을 대체할 다른 패러다임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식 가치와 표준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현실을 제대로 해명하지도 못한다. 천안문 사건이 벌어졌을때 미국내 파워엘리트들이 보여준 태도도 마찬가지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천안문 사건이 중국 붕괴의 서막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인민의 군대’가 자국 인민 수 천명을 죽였으니, 이제 중국은 망할 거라는 파국적 인식을 가졌던 것. 그러나 중국에서는 홍수로 수만명이 죽어도 꿈쩍않았고, 대장정으로 함께 도망쳤던 홍군이 10분의 1로 줄었어도 동요가 별로 없었다. 이런 중국인의 태도를 어찌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치와 척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잊을만 하면 나오는 미국발 북한붕괴론도 이와 똑같다. 와인과 영화를 즐기는 뚱뚱한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곧 망할 것이라는 미국의 예견은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장 박사는 “국가가 시장화 개혁을 주도하고 일당영도와 민주가 공존하며, 사회참여와 국가통제가 공존하는 이른바 ‘중국식 발전모델’”을 말한다. 맑스레닌주의는 중국에 와서 마오주의라는 중국적 마르크스주의가 됐고, 시장경제는 중국에 와서, 분명 모순어법일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됐다. 민주주의는 중국에 와서 ‘민주집중제’가 됐다. 지오반니 아리기가 희망적으로 관측했던 ‘중국식 발전모델’은 이런 요소들의 모순적 융합의 산물이다. 그것이 국가자본주의이든, 국가사회주의이든, 관료자본주의이든 다른 국가와 경제시스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가 될 것이다.

천안문 사건은 발생한지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중국 지도자들은 권좌에 오르면서 당시의 진압을 칭송하는 선서를 한다고 한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수백 만명이 죽었지만, 인민의 군대가 직접 인민에게 총을 들이댄 경우는 오직 천안문 사건 하나뿐이다. 천안문은 중국 현대 정치의 아킬레스 건이란 얘기다. 20년도 넘은 이웃나라의 한 사건과 그 사건의 핵심당사자의 회고를 도대체 내가 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는데, 반쯤 읽고 나니 읽지 않는 것보단 낫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오쯔양은 정말 매력없는 정치인이다. 마오나 덩사오핑에 비하면 중국사에서 단막극 조연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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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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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의 <시>는 시(예술)의 연원과 형식에 대한 사유로 보인다. 그것은 중년, 노년이 되어서도 ‘문학소녀/청년’이고자 하는 ‘시 동호회’의 속물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른 ‘고통과 상처’에 대한 이해와 깊은 교감이 필요하다는 전언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문학소녀 양미자는 자살한 여중생의 내면과 고통을 알기 위해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러한 공감의 회로를 알지 못하는 것은 시 이전(以前), 예술 이전이다. 영화의 첫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흐르는 강물, 어린 여중생의 고통을 받아 안은 저 자연은, 그렇게 두개의 상처를 잇고 포개며 시를 만들어 낸다. 하나의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창동은 그렇게 그만의 예술철학을 드러내는데, 서울 근교의 그저 그렇고 그런 삶들 속에서도 시가 예비되어 있음을, 미만하여 있음을 느릿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민규의 <죽은 왕비를 위한 파반느>(예담)을 일주일 동안 느릿느릿 읽었다. 느릿느릿 읽은 것은 이 소설이 튼튼하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부재하기 때문이고, 아무렇게나, 아무곳이나 펼쳐 읽기 시작해도 무방한 에세이적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이야기. 여주인공이 늘 미인이었던 모든 소설의 관습적 클리쉐를 전복시키는 연애담. 스무살의 푸른 청춘들이 만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박민규스럽지 않은(?)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문체로 보여주는 것. 여기서도 ‘사랑’의 탄생은 고통에 대한 이해이자 교감이며, 그것의 연대다. 개인이 가진 내밀한 상처를 앎이 없이 어떻게 사랑이, 시가 가능하겠는가.

박민규를 별로 좋아하지도, 읽지도 않았다. 서너 개의 단편을 보고 나서 나는 그가 내 독서관습을 거스르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매우 보수적인 독서관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하듯 “무규칙이종소설가”라는 그에 대한 평가부터가 탐탁지 않았다. 정교하고 단단한 서사, 완미한 문체, 밀도 높은 서사와 같은 19세기 소설적 취향을 가진 내게 박민규는 별 선호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이 인터넷 연재물이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불규칙한 행갈이와 단락구분이 주는 불편함은 독서관습을 심하게 거슬렀다. 스크롤의 압박도 없는 종이 책에 이 무슨 해괴한 실험인가.

소설속의 시간은 중고교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와 나는 거의 동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모양이다. 프로야구, 조다쉬 청바지, 나이키, 비틀즈, 아하, 영웅본색, 이선희 이런 80년대의 문화적 아이콘들이 곳곳에서 상기되며 개발연대의 막바지였던 지방 소도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소설이 가버린 스무살 청춘을 회억하며, 순정했던 연애, 그 순금(純金)의 시간을 풋풋하게 불러오듯이, 잠시 옛적의 기억에 젖어 묵은 일들을 떠올렸다. 오래되어야 금이 되고, 더 오래되어야 순금이 되듯이, 기억은 묵어야 온전히 제 빛깔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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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추억 -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
김연철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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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의 <냉전의 추억>(후마니타스)를 읽은 건 꼭 천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겨레21>에 연재됐을 당시부터 김연철의 글을 흥미롭게 보았던 처지라 작년 6월 이 책이 나왔을 때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샀다. 1년 여 묵어 있던 이 책에 다시 손을 댔을 때, 마침 우리 사회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전쟁이 뭐 별것이겠는가. 휴전선에서 대북 확성기에 대고 선전방송을 해대고, 거기에 열받은 북한이 조준사격을 하고 우리가 대응사격을 한다면 그게 바로 국지전이고 전쟁 아니겠는가. 김연철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8월의 포성>(평민사)은 그런 ‘우연’이 만들어낸 1차대전이라는 대참사를 기록한 책이다.


바바라 터크만의 <8월의 포성>
<냉전의 추억>은 남북관계 혹은 남북교류에 관한 역사에세이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진행된 남북간 대화, 교류, 협력, 협상의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자 평가다. 이 책으로 보건대 확실히 남북관계는 간헐적인 퇴행에도 불구하고 교류와 협력의 확대라는 방향으로 진전돼 왔다. 김연철은 이런 관점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북한이 핵개발을 했던 노무현 정부 시대에도, 심지어 전두환 정부 시절 아웅산 테러 이후에도 남북관계는 더디지만 조금씩 진전돼 왔다. 대결과 긴장의 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가는 것은 불가피한 세계사적 진보다. 백낙청의 말을 빌면, 분단체제는 남북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흔들려” 왔던 것이다.


김연철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햇볕정책에서 달빛정책’으로 퇴행했다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와 고려대 연구교수,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 기업과 정부, 학계를 두루 거친 그의 눈에 비친 현재는 그렇다. 하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에 대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북관계는 꼭 10년 전으로 퇴행했다. 현재의 긴장과 대결국면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때 그 시절의 ‘올드보이’들이 다시 등장한 것도 그렇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에 실패하고 있는 점도 똑같다. 대체 이상우, 유종하 같은 사람이 언젯적 사람들인가. 북한에 대한 조갑제식의 인식으로 남북 평화프로세스를 풀어갈 수 있을까. 박정희, 전두환보다 더 퇴행적이었던 YS의 대북강경 노선과 그 주도자들이 10년 후에 재등장했다는 역사의 비극이자 희극이다.

보수정부가 들어섰을 때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만큼은 진보정부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보정부가 남북화해를 추진할 때마다 불거졌던 남남갈등이나 대북퍼주기 논란은 한결 줄어들 것이라 판단했다. 보수여론의 발목잡기에 엉거주춤했던 진보정부보다 보수정부가 더 몸 가볍게 남북화해를 추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있었다. ‘비핵개방3000’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많은 대북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정부 역시 ‘대북 퍼주기’를 할 진대, 적어도 이 정부 이후로는 소모적인 대북 퍼주기 논란은 수그러들 것이라 전망했다. 역사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진전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현실은 이런 기대를 처절하게 배반하고 말았다.

<냉전의 추억>에는 현실에 대한 시적 인식과 산문적 인식이 교차한다. 이산가족, ‘관제’ 간첩 사건에 대한 글들은 분단이 만들어낸 비극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남북협상과 북미관계사를 검토하는 글은 현실에 대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빛난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미 관계가 선순환을 이룰 때 가능하다”거나 “서해가 한반도 문제를 푸는 열쇠다”라는 진단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역사적 시간과 북미관계의 역사적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본격화하자 강경파인 부시가 등장하고, 부시가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로 변화하자마자 한반도에서는 냉전적인 보수정부가 들어선다. 그 와중에 한반도 평화는 퇴행과 좌절을 반복하고.

김연철은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문제해결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남북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과 대화가 되지 않는 남한을 6자회담 테이블에 불러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나서서 직접적인 북미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 아닌가.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 제네바합의 때가 그랬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해서 타결안을 내고, 우리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경수로 비용을 감당했던 것. 그토록 강조하는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는 협상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대로 가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조차 남의 손에 맡기는 꼴이 될 것이다.

김연철은 오늘자 한겨레 칼럼에서 “대한민국의 어떤 정부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포기한 적이 없다”며 “전쟁불사 패러다임은 원조 보수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뉴라이트’의 특이한 인식일 뿐”이라 비판한다.(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3234.html) 이 ‘특이한 인식’이 냉전반공주의와 결합하여 ‘북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나는 김연철의 이 책이 많이 팔려 많은 사람들이 맹목과 무지에서 눈을 떴으면 좋겠다. 좀더 차분히 남북관계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천안함 사태는 우리 안의 ‘냉전반공주의’가 여전히 강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가까스로 화해와 협력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2년 만에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토대가 허약했던 것이다. 냉전반공주의의 ‘체제’와 ‘무의식’을 걷어 내기에는 지난 50년 반공국가주의가 너무 강력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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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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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영화를 공부하는 후배 한 녀석이 물었다. “형, 심수봉 노래의 비밀이 뭔지 아세요?” 그와 나는 주책 맞게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심수봉의 열렬한 팬이다. “심수봉은 그대,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항상 ‘여자’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나는 여자이니까’ 등등의 노래를 떠올려 보니, 그래, 맞다. 심수봉은 대상이 모호한 그대, 그녀, 그 라고 하지 않고 남자/여자를 말한다. 심수봉 노래속의 ‘여자’는 사랑에 달뜨고 몸살이 나며, 질투하고 욕망하는,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여자’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내보이는 ‘여자’. 이게 남근적 시선이라고? 그래도 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수컷’이거나 ‘암컷’이다. 중간이거나 초월은 없다.

최영미의 시는 바로 그런 ‘여자’의 시다. 오랜 만에 그녀의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을 사서 군밤 까먹듯 읽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도 그녀는 사랑하는/사랑했던/사랑하고픈 여자임을 표나게 보여줬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그렇다. “무릇 여자로 태어나 노래하는 것들/홀로 달콤하며 홀로 아프고/홀로 뜨거운 것들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2007년의 사포’)라니, 이건 그녀에게 불가피하게 수락해야할 ‘운명’인 모양이다. 이 운명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러나, 심각하지 않다. 관음증의 그것처럼 음습하지도 않고 차라리 유쾌하다. 그녀의 시는 자주 스무살 무렵의 시간대로 회귀하는데, 그런 시를 읽을 때면 나 역시 그맘 때로 돌아가 그녀의 문장 속에 내 삶을  뒤섞곤 한다. 이것도 바르트적인 의미의 “쓰여지는 텍스트”인 것인가. 그녀의 시는 내게 ‘마들렌 과자’인가. 

최영미의 사랑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가 휘젓고 다닌 구석구석이/흉터와 무늬가 되어/그가 일으킨 물결 밑에/꼼짝않고 얼어붙어/비가 와도 나는 흐르지 못한다.”(‘ love of my life?’) 몸에 각인된 흉터와 무늬. 불쑥불쑥 현재의 삶으로 틈입하여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몸의 기억들. 그런데, 이상도 하여라. 그녀는 흉터와 무늬를 남겼던 사랑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기를 꿈꾸고 있으니, “이대로 세차게 흔들리다/누군가의 가슴바닥에/훅, 떨어졌으면...”(‘11월의 낙엽’). 그녀에게 사랑은, 몸으로 욕망하는 사랑은, 존재의 법칙이자 이유(raison d'etre)인 모양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독약이라도 마다 않는”(‘그여자’) 여자였을 것이며, “날마다 찾아오는 쾌락을/잘게 부수어/구멍으로 밀어 넣는다/싱싱한 고기의 피묻은 입술(‘가장 쉬운 길’)로 살과 피를 먹고 살아야만 비로소 살아가는 힘을 얻는 여자.

이 정직하고 싱싱한 욕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몸이 벌써 그걸 먼저 알아챈다.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가까이 코를 갖다댄다//그렇게 학대했는데도/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중년의 기쁨’) 이런 몸적 인식은 역사의 진보에도 적용이 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몸의 변화이자 그 변화에 대한 인식이다. 가령, 이런 ‘아줌마스러운’ 인식(?)은 즐겁다.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2008년 6월 서울’) 남자 몸의 품종개량의 역사가 곧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다. 이건 ‘여자’로서의 자각이 아니라면 쉽게 보이지 않을 터. 꽃미남에 열광하는 이 중년 여자의 욕망은 별로 추해보이지 않는데, 그건 생기로 발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잘 알려진 축구광이자 호나우디뉴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몸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여자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자 다시 사랑할 순간이다. “너를 보기 전에 나는/내가 얼마나 아름다움에 굶주렸는지를 몰랐다/너의 풍부한 표정, 입가의 사소한 움직임을/놓치지 않으려 눈을 반짝이다.../누워 쓰러지기 전에 나는/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지 못한다”(‘일상의 법칙’) 굶주렸으니 채워져야 하고, 채워지지 않으면 그것은 죽음이다. 욕망하는 존재, 욕망하는 여자.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는 중년의 나이를 쓸쓸하게 확인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빨 빠진 늙은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겠지/욕망이 지나간 구멍으로 바람이 들락거리겠지, ‘온종일 집에서’) 김지하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사랑이 아니면 자살이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화산이 타고 남은/재에 묻힌, 그녀는 날마다 자살을 꿈꾼다”(‘어떤 동문회’)

유예된 욕망,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므로 그녀는 반생은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이다. 떠돌이의 삶이므로 연애와 사랑으로 충만했던 과거를 회고할 도리 밖에 없다.(“이 남자에서 저 여자로 옮기며/나도 모르게 빠져간 젊음/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 탐욕스럽게 몸을 갈구하는 육식동물로서 살아가던지, 


그것을 하지 않고
팔 년만에 돌아온 봄이었다.  


금욕에 길들여진 정갈한 방.
화분에 물을 주고 밖을 내다 보니
벌레처럼 들끓는 봄볕
범람하는 꽃가루 때문인가  


쉽게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던 육체가
바위처럼 뻣뻣해진 가슴 열고,
뜨거웠던 용암의 분화구를 추억한다.  


사교계의 꽃이 되고 싶지 않아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가
길게 누워 봄을 앓는다  


소문만 무성했지 자신을 불사르지 못한 

 생애의 마지막 연기를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고 립스틱을 칠한다.
(취미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겠지?)  

 

질겨진 가죽에 향수를 바르면
육식동물이 될까?
- 4월은 잔인한 달  


이 시집의 발문은 그녀의 첫 시집을 두고 “욕정을 사랑으로 은폐함이 없이 성에 직핍한 그녀의 대담성에 독자들, 특히 남성들은 혼비백산하였다”는 최원식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혼비백산은 너스레일 것이다. 현실원칙의 제어를 받지 않은 쾌락원칙의 솔직한 토로는 혼비백산하게 만들지 않고, 은밀한 공감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은밀한 이유는 추상과 논리를 경유하지 않고 남자-여자를 잇는 사적인 회로를 거치기 때문이다. 시를 쓰느라 낑낑대며 언어를 메치고 되치며 은유와 상징의 좁고 복잡한 우회로를 통과하는 건 때로 시에 대한 매혹을 반감시킨다.  

 

반성(reflexive)이 지나치면 요상한 시가 되기도 한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을 마주하는 건, 내 안의 그것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로 인하여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고 “마지막 연애의 상상”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최영미 시를 보며 그런 몽상에 잠시 젖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눈을 들어보니 시커먼 사내들이 튀어나온 배를 흔들며 지나가고, 숙취로 얼굴이 벌건 아저씨들이 이빨을 쑤시고 앉아 있다니. 허망하여라, 내 우울한 몽상이여, 5월 한낮의 백일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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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5-1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말이우, 형은 날 것 그대로의 욕망에 충실하신지?

어디(?)에 쏠려야할 욕망이 모조리 상반신 끝으로 전이돼 버린 건 아닌가...

책으로만 발산되는 건 아닌지...

모든사이 2010-05-1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