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쓰기의 모든 것 - 소통과 글쓰기 11 아로리총서 26
김나정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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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서평 작성을 멈춘 후, 몇 달이 지나 읽은 책을 다시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도대체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서평쓰기의 모든 것을 구매했다. 그리고 읽지 않았다. 올해 초에 마음을 다잡고 쓰다 보니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럭저럭 내가 읽은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노선 또한 확실히 정했다. 나는 어떤 책도 평가할 깜냥이 되지 못했다. 분수에 맞게 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게 맞았다. 서평과 다르게 감상문은 특정한 제약이 없다. ‘감상(感想)’이라는 단어에서 나타내듯 내 느낌과 생각이 주되므로 자유분방하게 쓰면 된다. 노선이 정해지니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내 독서 루틴 때문이었다. 나는 오전에 작법서를 조금씩 읽는데, 이전에 꽤 두꺼운 작법서를 읽은 터라 쉬어가는 차원에서 서평쓰기의 모든 것을 선택했다. 역시나 서평과 내가 쓰는 감상문은 갭이 큰 글쓰기 형식이었다.

 

서평이란?

 

독서 감상문은 의 느낌이나 생각이 중심이고, 서평은 에게 그 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 p.13

 

일단 나는 단 한 번도 남에게 책을 소개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이 없다. 나를 위한 기록이 전부였다. 상대가 어떤 의견이든 그건 상대방 느낌이고, 내 글은 내 감상일 따름이다. 논리와 맥락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나의 글은 근본적으로 서평이 될 수 없었다. 반면, 서평의 주요 내용은 책과 관련된 모든 내용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책의 정보를 얻도록 하기 위해 쓰는 글(p.14)’이며 책에 대한 사유를 담은 논리적인 글이며, 서평을 통해 책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전달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글이자 관계적인 글(p.15)’을 지향한다. 객관적인 근거와 논리가 중요하다. 그만큼 형식 또한 강하게 제약을 받는다. 서론, 본론, 결론의 맥락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감상문보다 덜 자유롭지만 더 전문적인 글인 셈이다.

 

서평의 좋은 점은?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생각을 요약하며’, ‘전달하는과정을 통해 지식은 태어나며, 그런 의미에서 서평쓰기 자체가 하나의 지적 생산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 p.20

 

감상문은 주관성이 강해 대개 체계적이기보다 즉흥적이다. 학습이나 습득보다는 감정의 배출구 역할이 더 크다. 그에 반해 객관적 성격이 강한 서평은 논리적인 만큼 정보를 지식화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그 외에도 여러 도움을 주는데, 책에서는 7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단편적 정보의 지식화다. 정보는 이 시대에 널리고 널렸다. 궁금한 단어를 검색하면 관련된 정보가 주르륵 넘쳐흐른다. 흔히 지식인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정보의 해석이라고들 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정보를 아무리 많아도 지식으로 소화해야 우리 것이 된다. 그 능력을 키워주는 요소가 서평이다.

 

둘째,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학습 이후 20분내에 거의 절반을 잊는다고 한다. 서평은 글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다시 펼쳐 봐야 하기에 내용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셋째, 공부 능력 향상이다. 앞서 서평은 객관적 근거에 의한 논리적인 글이라고 했다. 그런 글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깊이 읽고 생각하여 써야 한다. 독서와 서평 능력이 길러지면 자연스럽게 문해력도 성장한다. 문해력은 세상 모든 맥락을 이해하는 근간이기에 공무 머리가 길러지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창의력이 길러진다. 서평에는 논리적인 자기주장이 들어간다. 자기주장은 사전에 존재하는 의견이 아니다. 저자의 생각과 본인의 생각을 연결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평을 쓰면 쓸수록 생각 정리 방법이 길러지고 중구난방으로 떠도는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자아정체성을 확립한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자신의 성격, 취향, 관심사 등을 발견하게 된다. 쓰기는 결국 내 안에 무엇인가를 모으는 행위(p.31)’여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굳건히 견디는 자아를 만들 수 있다.

 

여섯째, 살아가는 힘이 된다. 책에 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길이다. 서평은 각 길에 이정표를 심는 일이다. 이정표가 있다면 우리는 헤매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일곱째, 새로운 가치관을 더해준다.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마지막을 위한 빌드업이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지()의 범위를 넓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데 나는 왜 서평을 안 쓰고 감상문을 쓸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경계가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서평의 ()’은 말씀 언()에 평평할 평()자가 결합한 한자로 말을 고르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해석하기에 고르다누구나 알아들 수 있게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은 감상문도 포용할 수 있다. , 자의적인 해석이다.

 

서평쓰기 주의할 점

 

이 책의 주요 골자는 서평 쓰는 방법이다. ‘읽기 전’, ‘읽는 중’, ‘읽은 후로 나누어 서평 실력을 늘리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평 쓸 역량이 안 되니 내 감상문에서 주의할 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자는 8가지 주의점을 제시한다. 왼쪽은 저자의 주장이고, 오른쪽은 나의 덧붙임이다.

 

읽고 바로 쓰지 말자 최소 반나절 정도 묵히면서 생각 정리 필요.

앵무새가 되지 말자 단순 줄거리 요약 피할 것.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

그냥 재미있었다라고 쓰지 말자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었는지 확실히 언급할 것.

다짜고짜 재미없었다라고 쓰지 말자 근거 없으면 그냥 비난일 뿐.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지 말자 서평에 해당. 감상문에 해당 ×.

자기 지식을 과시하지 말자 세상에는 나보다 전문가가 훨씬 많음.

막무가내로 다짜고짜 쓰지 말자 엉망진창인 글이 됨. 뼈대 정도는 생각해둘 것.

뻔한 말로 끝내지 말자 결심은 지양할 것. 책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자.

 

이것만 조심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글은 나올 듯하다. 글 점검의 지표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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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도 얇고 저자가 쉽게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글쓰기 초보자가 접근하기에는 다소 벽이 느껴지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글쓰기가 무르익어 더 좋은 서평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나처럼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 들린 사람에게 약간 버거울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글은 감상문보다 서평의 성향이 더 짙은 듯하다. 내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부담이 줄어들었나? 그래도 나는 감상문을 고집할 것이다. 내 마음대로 쓰는 글이 훨씬 재밌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자기주장은 훗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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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츠파 - 창조와 혁신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인발 아리엘리 지음, 김한슬기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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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인 듯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집안에 여유가 없어지고 도망치듯 지방으로 이사했다. 재기불능 상태가 가져온 충격은 나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무난한 인생이 최고의 가치였고 열심히 사나 대충 사나 결과는 매한가지로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논리까지 세웠다. ‘열심히 살아서 실패하면 뼈아프지만, 대충해서 실패하면 그저 그렇다. 그러니 대충 살자.’ 지금까지의 내 삶을 요약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나마 요새 차츰차츰 바뀌려는 의지가 꿈틀거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 중이다. 궁극적으로 폴리매스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실패가 자연스러워져야 할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해도 숱한 실패를 겪어야 할진대,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너럴리스트려면 실패는 당연한 과정 아니겠는가. 인발 아리엘리의 후츠파는 실패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에 좋은 책이다. ‘후츠파(chutzpah)’란 부정적인 의미로는 무례하고 공격적인 사람 또는 행동을 뜻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사람 또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유아 시기부터 청년 시기까지의 활동에 걸쳐 보여준다.

 

나는 크게 어린이 시기, 청소년 시기, 청년 시기로 나누어 내 지나온 과거와 비교해 보았다. 비슷한 부분에서는 공감이 되었고, 아닌 부분에서는 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이 시기1

 

쓰레기장 놀이터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직접 마주하고 피하는 경험은 아이들이 독립심을 기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38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유치원 앞마당에는 쓰레기를 모아 놓은 놀이터가 존재한다. 녹슨 의자, 부서진 판자, 벽돌 등이 뒤섞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몇 가지 기본적인 규칙만 인지한 채 자유롭게 논다. 놀이터에서의 질서는 아이들끼리 만들어 간다.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는 서로 협력하고, 의견 충돌이나 곤란한 상황 등의 갈등은 타협과 창의적인 해결책을 떠올린다. 미리 정해진 질서가 없는 이런 상태를 발라간(Balagan)’이라고 한다.

 

발라간을 통해 아이들은 이 세상에 처음부터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p.45).’ 사회적, 개인적 규제의 뚜렷한 경계가 줄어들고 표현의 자유가 늘어난 아이들은 무질서의 모호함을 자주 대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호함의 불안이 줄어든다. ‘모호함에 느끼는 불안이 줄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의외의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p.45)’

 

더 나아가 이스라엘 아이들은 유대교 명절인 제33일절에 스스로 모닥불을 피우고 지킨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불장난하면 자다가 오줌싼다고 했는데, 이 나라는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숲이 있다면 쉽겠지만, 도시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도심 곳곳에서 땔감을 모아 온다. 나무 덤불, 분리수거장, 쓰레기 배출 장소 등등. 그중 목재를 많이 얻는 곳은 공사 현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장 근처만 가도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하는 판국인데 참 대단한 나라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목재는 슈퍼마켓 카트를 빌려 옮긴다(빌려주는 것도 신기하다).

 

여기서 어른들은 지켜보는 역할만 한다. 불을 지필 때 땔감으로 뭐를 써야 하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체험하면서 익힌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닥불을 다루면서 부모가 함께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내 어린이 시절은 이와 비슷하다. 우리집 교육 방침이 정해진 울타리 내에서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괜찮다여서 나는 굉장히 자유롭게 자랐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방바닥에 폭삭 쏟아놓고 놀았다(다 놀면 말끔히 치웠다.). 비 올 때는 우산도 없이 사방팔방 돌아다녔고, 주택 옥상 배수관에서 나오는 물을 폭포라며 맞기도 했다. 역사를 배운지 얼마 안 되어서는 간석기를 만든다며 일주일 내내 돌을 갈았던 적도 있다. 결국 날카로워지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불장난도 해봤다. 폐가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큰불을 낼 뻔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까지 출동했고, 그때 놀란 기억에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말 실패가 뭔지, 걱정이 뭔지도 모를 만큼 자유분방과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도 큰 문제는 (미수에 그친 게 있긴 해도) 일으키지 않았다. 반장, 회장, 우주소년단, 지금은 극혐하는 축구까지 다 손을 뻗치고 다녔으니 내 어린 시절을 요약하는 단어도 발라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 시기2

 

실험을 마친 하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은 혼자 신호등을 건너거나 중심가에 외출하는 등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성장했다고 느꼈으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길을 익히거나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지름길을 찾을 때 특히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 p.88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보호자 없이 스스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 맞벌이라 저녁이나 되어야 부모는 귀가한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녀를 걱정하기는커녕 무계획으로 돌아다니기를 장려한다. 이런 즉흥적인 행동을 리즈롬(leezrom)’이라고 하는데, ‘리즈롬은 단순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즐길 힘을 뜻한다(p.89).’

 

리즈롬이 적용된 이스라엘의 교육 프로그램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하다. ‘기본적인 지식만 가르친 후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도록 유도(p.98)’한다. 평가 역시 교사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학습의 지표로 삼는다(p.98)’. 이는 교육의 목적이 지식 수입보다 경험에 무게를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란 발리에 교수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며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이해하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 위주 학습으로 다수의 실패를 경험하며 대응하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 하이디 그랜트 할보르손은 실패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까지 함께 제거된다고 이야기했다(p.111).’

 

이래서 내가 학교 수업에 관심이 없었나? 나는 과학 실험이나 책 읽기를 원했으나, 학교에서는 매번 시험을 위한, 성적을 위한 공부를 강요했다. 설득이나 이해는 없었다. 틀리면 혼나고 잘하면 당연하고 아주 잘해야 칭찬을 받았다. 틀려서 혼날 때마다 나는 우울해졌다. 나의 해결책은 노력하고 혼나느니 그냥 안 하고 혼나련다였다. 그리고 공부를 완전히 놔버렸다. 실패 원인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 지금에서야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요새 코딩 공부가 그렇게 즐겁다. 취업해야 하는데 공부라니! 어쩌면 이것도 취업 실패를 피하려는 개수작일지도 모르지만, 코딩 공부로 실패에 대응하는 법을 차차 익히는 중이니 조만간 취업 도전도 막막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 착각일 수도 있고.

 

청소년 시기

 

아이들은 조핌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운동에 참여하며 스스로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능력을 더 키워야 하는지 확인한다. - p.145

 

조핌은 보이스카우트나 우주소년단 같은 이스라엘의 청소년 활동 단체다. 지도자인 마드리크와 학습하는 사람인 하니크로 나뉘어 활동한다. 이들은 만남부터 색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당 책임자가 누구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등을 세세하게 알아야 안심하고 단체에 아이를 보낸다. 조핌은 마드리크와 하니크가 서로 얼굴도,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 채 안내문 하나로 만남을 정한다. 또 어른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이 있다. 조핌의 역사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에 청소년이 스스로 정립하고 활동한 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조핌에서 하나의 부족으로 활동하는 마드리크는 고등학생이 주로 맡고, 하니크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들의 활동 전부가 학생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조핌 멤버들은 리더십과 창의력, 즉흥성, 자발성 등을 기른다. 더블유라이프를 창업한 기업가 나르키스 알론은 조핌 활동을 자랑스러워 하며 조핌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p.146)”이라고 했다. , 메타인지를 높여주는 조직 활동인 셈이다.

 

내가 참여한 청소년 단체는 초5 때의 우주소년단이었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선택한 단체였다. 그러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 글라이더, 고무동력기, 물로켓 등을 만들어 교내 과학 대회나 전국 대회 참여가 단체의 목표였다. 나는 성격이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만드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애들 날개 붙이고 있을 때 나는 아직도 몸통을 붙잡고 있는 식이었다. 담당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그는 도와주지 않았다. 나 같은 애들은 진즉에 버리고 가능성 있는 애들만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나는 곧 흥미가 떨어져서 한 학기만에 관뒀다.

 

이런 비극적인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는 신경 써서 조직에 들어갈 일이다. 리더가 과연 조직원의 역할과 역량을 제대로 판단했는지, 창의력, 즉흥성, 자발성을 해치지 않는지 말이다. 내가 리더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 메타인지를 높이면 훨씬 좋겠지만, 성장에는 때가 없으니 성인이어도 팀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리라.

 

청년 시기

 

이스라엘 방위군은 이와 반대로 입대 대상자가 어떤 기술을 익혔는지 확인하고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다. - p.182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군 복무가 의무이다. 차이점은 남녀 구분이 없다. 남자는 32개월, 여자는 24개월 동안 의무복무를 한다. 또 우리나라처럼 만 20세 이상일 때 영장이 날아오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즉시 입대한다는 점이다. 입대 절차를 거치면 국방부는 개인의 검사 결과에 따라 부대에 배치한다. 이들이 병력 확보에 주목하는 부분은 지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임무와 감당할 수 없는 임무가 무엇인지,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배울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p.185)’

 

장교를 뽑은 방법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사관학교 졸업생이나 ROTC에서 장교를 뽑는다. 능력이나마 있으면 모르겠지만, 나랑 비슷한 나이인데 무능한 호구 가 소위랍시고 나대는 꼴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병사로 입대해 훌륭한 장교가 될 잠재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아 훈련 과정을 밟아야만 장교로 진급할 수 있다(p.187).’ 함께 훈련하던 동료가 장교로 복귀하니 수평적 관계에 무거운 분위기도 아니라 문제점이나 불만 등의 토론이 수월하다.

 

다방면에 걸친 풍부한 지식과 자료, 유연한 사고, 순발력 등 여러 자질을 고루 갖추지 않고는 임기응변이 불가능하다. - p.236

 

또 다른 희한한 문화가 있다. 입대하여 받는 물건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개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성 있게 꾸미는 것뿐 아니라 편의에 맞게 헬멧, 조끼, 무기를 개조한다고 한다. 이를 쉬프주르(shiftzur)’라고 하는데, 최고의 쉬프주르는 선망을 사고 동료 병사는 물론 지휘관까지도 따라서 장비를 손본다. 이런 열린 사고방식은 문제 해결 능력 키우기에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 공군 문화 중 두그리(dugri)’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을 이야기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두그리를 갖춘 사람은 부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고 명료하게 이야기한다(p.232).’ 감정을 미뤄두고 개선점 찾기에 집중한다. 실수와 개선점을 분명히 인지한다면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청년기에 군대에서 습득한 능력과 인맥은 사회에 나가서도 선순환으로 작용한다. 전우회를 통해 자신의 기업에 맞는 인재상을 찾을 수도 있고, 어떤 기술을 가졌다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또 이들은 언제 어디서 인연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과 만남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가게에 줄을 서다가도 대화를 걸어 토론을 하고, 회사에 가는 동안 지인을 여럿 만나기 때문에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인구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라던데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방식 유연해, 실패에 대응할 줄 알아, 인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국가도 스타트업이 성행할 수 있도록 법적 체제도 조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유대인이야,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린이 시기부터 청년 시기까지 모든 과정이 실패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이를 관통하는 한줄기 맥락은 메타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다. 우리의 지식과 무지를 객관화하여 판단할 수 있을 때 실패는 경험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된다. 단순히 실패를 많이 거듭한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감정과 원인을 분리하지 못한 실패는 역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인지를 높여 긍정적인 후츠파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메타인지를 높이면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사실 나는 일상이 실패의 연속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백수 경력만 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폴리매스이고 하루하루 나에게 부족한 역량을 깨달으면서 실패에 대응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기록 혹은 기억이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패한 감상문을 마무리하련다. 자연스럽게 실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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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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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은 후, 조금씩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접하려는 시도 중이다. 지난 언젠가 중고서점을 들렀을 때 구매해 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1권을 얼마 전에 읽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너무 감명 깊게 본 탓일까? 내가 기대한 느낌은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야!’라는 감탄이었다. 그러나 유작 소설집인 빛이 있는 동안은 약간 실망스럽게 다가왔다. 9편의 단편 소설 중 추리 장르는 3편밖에 되질 않았다. 그마저도 추리 냄새가 물씬 풍겼던 작품은 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하나였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일 따름이다. 내가 워낙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이고 기대를 너무 부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모순적이지만 원래 책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내 마음을 강렬하게 끈 문장 하나만 얻어도 인생 책이 되기 마련일진대,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소설이 있었다면 후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한 번 더 모순적이게도 내가 선택한 소설은 기대와 다르게 추리 장르가 아니었다. 로맨스라고 해야 하나? 9편 중 사랑을 주제로 한 외로운 신이 가장 완벽한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외로움과 우연한 만남과 순애보

 

동양의 작은 신상(神像)은 오랜 시간 다른 중요한 신상에 떠밀려 외롭게 지냈다. ‘잿빛 돌로 거칠게 깎인 이목구비가 세월과 비바람에 거의 마모된 그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얼굴을 두 손 안에 묻은 채 외롭게 앉아 있었다(p.116P.’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숭배하지 않았다.

 

어느 날, 40대가 된 프랭크 올리버라는 남자가 강한 외로움을 느끼며 박물관을 찾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고국을 오래 떠나있던 탓에 시대에 적응을 못 했다. 친구의 아내가 멋진 여자들을 소개해 줬어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한마디로 소심하고 지질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외로운 신상을 봤으니 동질감이 드는 것도 이해된다. 그는 매일 박물관을 들르면서 독점하듯 신상을 숭배했다.

 

그러다 우연한 만남이 일어났다. 신상에게 두 번째 숭배자가 생긴 것이다. 20대 즈음의 앳된 여자로,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행색이 초라했다. 그는 그녀 역시 외로운 존재라고 단정 지었다. 한 동안 그녀를 관찰하던 프랭크는 외로운 신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느낌에 힘입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새 손수건을 하나 구해서 떨어뜨린 뒤 우연을 가장해 그녀의 것인지 물으면서 말꼬를 틔었다. 여자는 즉각 아니라며 떠날 궁리를 했으나 프랭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로운 신을 주제로 말을 이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침묵이 둘 사이에 자리했다. 침묵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여자였다. 예의상 인사를 하고 그녀는 박물관을 떠났다.

 

한동안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프랭크는 꾸준히 박물관에 들러 그녀를 기다렸다. 전시실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알 정도로 말이다. 고된 인내 끝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는 용기를 내어 친구가 되어달라고 고백했다. 일주일에 두 차례 만나 작은 외로운 신상에 대한 주제로 시작해 점점 서로를 알아갔다. 여자는 어느 집안의 보모 겸 가정교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고아라고, 이 세상에서 혼자뿐이라고 그에게 말했다(p.125).’ 그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림 그리는 게 취미지만, 아직 미숙하다고. 하지만 언젠가 근사한 뭔가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둘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이내 사랑이 싹텄다. 여자는 손수건 사건에 대해 프랭크에게 고마워하고, 그는 용기 내어 사랑을 고백했다. “언제나처럼 열 시에 만납시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과 지나온 얘기를 나눕시다. 아주 실제적이고 산문적이 되는 거요(p.131)” 그러나 둘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여자는 어린 소년을 시켜 편지 한 장만 전한 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날이 지났다. 프랭크는 취미가 아닌 업으로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성공적으로 명성을 가져다줬고 예술원에 전시되기까지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어느 공주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그려냈다. 모두가 공주를 위하지만 그녀는 지독히도 외로운 자태였다. 그 그림은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는 완전히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친구의 아내가 아가씨를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프랭크는 거절했다. 그에게는 오직 외로운 숙녀뿐이었다.

 

경마 대회 날, 박물관에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외로운 신상 앞에 당도했다. 그녀는 신상에게 프랭크가 나타나길 빌었다. 그 순간 프랭크가 등장했고 그녀를 얼싸안았다. 알고 보니 공주 이야기는 그녀가 쓴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부유했지만 외로운 여자였다.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며 애처로운 여자 연기를 했다. 프랭크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녀는 솔직하지 못한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그것이 도망친 이유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자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는 남자가 바로 프랭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진실한 사랑을 얻고 손을 잡은 뒤 박물관을 나섰다.

 

그로써 외로운 작은 신은 두 숭배자를 잃었지만, 그 역시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프랭크와 숙녀의 소망을 이뤄주었으니 말이다. 외로운 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낯선 땅에 표류한 외롭디외로운 작은 신이 아니겠는가?(p.137)’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언뜻 보면 우연과 운명으로 점철된 단순한 러브 스토리 같지만, 내게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소설로 보였다. 외로운 신으로 시작해 외로운 신으로 끝나는 수미쌍관 형식은 작은 신이 외로움의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번개의 신에게 번개가 없다면 번개의 신이 아니듯이, 작은 신에게 외로움이 없다면 그는 신이 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인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외로움의 신에게 외로움을 달래려는 숭배자가 생긴다면, 인간이 외로운 신에 의지해 영원토록 외롭다면 서로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숭배자를 그들만의 천국으로 인도했다. 각자의 존재가 온전해진 것이다.

 

여운이 길게 남아 나의 사족을 덧붙였다. 9편의 작품 중 하나만 다뤄 수준 낮은 감상문이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내 마음을 울린 소설은 이것 하나뿐인 것을. 이 작품 하나만 봐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시길. 대가의 작품집인 만큼 다른 소설도 훌륭하다. 아마 어느 독자에겐 이 소설이 별로고 다른 소설이 취향에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책은 본인이 읽고 판단하는 게 옳다. 별로 두껍지도 않으니까 누구든 금방 읽을 것이다.

 

기대에 크게 미치지는 못했지만, 쓰면서 복기하니 딱히 실망할 이유도 없는 듯하다. 감상문을 쓰느라 다시 읽었는데 역시 울림이 상당했다. 그렇더라도 유작 소설집은 여기까지만 감탄하고, 다음에는 정말 추리 소설을 읽어야겠다. 함께 사 온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대작이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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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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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지식은 문외한인 터라 내 의견을 개진하기 쑥스러워 철저한 감상문으로 대신한다. 이 글은 내 추억을 되짚는 잡설이다.

 

과학을 언제 포기했던가. 수학보다 늦게 포기했으니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내 기억에 문이과로 분반하기 전이어서 한 과목짜리 과학 수업을 들었다. 수능과 연계하여 과학이란 과목은 크게 네 가지로 분할된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나의 인식은 이랬다.

 

생물 호르몬을 외우는 암기 과목

화학 주기율표와 화학식을 외우는 암기 과목

지구과학 다양한 돌을 외우는 암기 과목

물리 물건 미는 힘이 몇 줄인가를 왜 구해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계산 과목 like 수학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어 생물, 화학, 지구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의 목차는 물리가 제일 앞에, 나머지는 뒤에 있었다. 계산에 매우 약한 나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고, 과감하게 과학을 포기했다.

 

분반을 정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이과를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과학을 사랑했고, 워낙 실험 등을 좋아했기에 배우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전설적인 물리 교사가 2학년에 존재했다. ‘제물포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였다. 무슨 뜻이냐면, ‘() 때문에 물리 포기라는 뜻이다. 항상 당구 큐대를 들고 다녔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걸로 허벅지를 때렸다. 가르치기도 더럽게 못 가르치는 전형적인 꼰대 교사였다. 계산에 약하고 교사는 거지 같으니 나의 포기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10년 동안 내 인생에서 과학은 없는 존재였다.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년 전, 다시 독서에 열을 올리면서부터였다. 떨림과 울림도 그즈음에 구매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계발이나 인문서에 관심이 더 커서 쉽게 펼쳐 보지 않았다. 2년을 묵힌 지금에야 마음에 여유가 생겨 살살 읽어 보았다.

 

김상욱 교수는 기초 물리학을 쉽게 풀어썼다.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해 나 같은 과학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알았으면 하는 부분과 몰라도 되는 부분의 경계를 명확히 해주어서 괜히 이해가 가지도 않는 내용을 붙잡고 끙끙거릴 필요가 없었다.

 

물리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대상은 쿼크가 존재하는 극도로 작은 세상에서 은하와 우주라는 거대한 규모에 걸쳐져 있다. 지금 우리는 단지 몇 개의 법칙으로 이런 모든 규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들을 이해할 수 있다. , 물리에 대한 흥미가 생겨나지 않는가? - p.34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을 암기 취급했다.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고 이해가 안 가면 외우라는 식이었다. 학생의 수준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똑똑한 놈들은 알아들을 것이고, 멍청한 놈들은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업은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관료의 모습이었다. 이런 교사 아래에서 과연 어떤 흥미가 생겨나겠는가.

 

얼굴 보고 가르친 교사는 흥미를 떨궜지만, TV로만 봤던 저자는 과학 문외한의 흥미를 돋웠다. 단순히 물리란 ‘F=ma’거리=속력×시간따위만 계산하는 과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학문의 근간인 셈이었다.

 

물리학의 지향점은 실로 다양했다. 우주의 탄생, 시공간의 개념, 입자의 최소 단위, 생물 탄생의 근거, DNA 등등 모든 과학 분야는 물리에서 세분화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물리,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을 분리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양성자, 중성자 등 물질을 이루는 모든 기본입자뿐 아니라,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원자도 전자와 같은 이중성을 갖는다. 이중성은 자연의 본질인 것 같다. 여기서는 질문이 존재를 결정한다. 보어(닐스 보어, 1922년 노벨물리학상)는 이중성의 이런 특성을 상보성이라고 불렀다. - p.135

 

이 책은 폴리매스를 더욱 이해하게 만드는 교량 역할도 했다.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듯이 폴리매스도 한 사람이 다중성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학문 하나 허투루 취급할 까닭이 없다. 문과생이라고 해서 이과적 계산을 멀리해서는 안 되고, 이과생이라고 해서 문과적 사고력이 없어선 안 된다. 예술 하는 과학자, 과학 하는 예술가가 더 나은 업적을 이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대는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인 사람만이 살아남는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문송합니다를 벗어나 교양으로나마 과학 서적을 꾸준히 읽어야만 한다. 내 꿈이 폴리매스인 이상 말이다.

 

응축된 한 점이 터지면서 우주가 시작되었다.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가 탄생하고 인류가 진화했다.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 종이 있고, 그중 인간은 70억 명에 이르렀다. 70억 명 중 나는 과학을 포기한 학생이었다. ‘제물포는 가르치기를 포기한 교사였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듯이 나의 가능성은 빅뱅 이래 팽창하고 있다. 사회는 문과와 이과를 나눴지만, 자연은 빛에 파동과 입자를 동시에 담았다.

 

우리는 예외 없이 자연에 속하고, 자연은 우주에 속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이지도 않는 사회가 정한 분반 개념을 내가 평생 따를 필요가 있을까? 인간에게는 빛처럼 문과와 이과의 성질이 모두 담겨 있다. 사회의 강제를 벗어난 지금, 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을 좀 더 가까이하고 싶다.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은 읽는 내내 과학적 흥미가 일깨워지며 떨리게만들고, 덮고 나서는 여운으로 감정이 울리게만들었다. 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하찮은 글쟁이라 전달하지 못해 아쉽다. 과학이 마냥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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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펭귄클래식 1
토머스 모어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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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파라다이스와 같은 맥락으로 이상향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된다.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그린 가상의 세계다. 공산주의 개념을 세상에 드러낸 까닭에, 이 책은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가 깊다. ‘공상적 공산주의유토피아는 수 세기 후 마르크스에게 과학적 공산주의의 영감을 심어주었고, 그로 인해 핍박받는 자들의 마음에 코뮤니즘 불을 붙여 냉전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북쪽에 있는 공산국가의 위협을 주시해야 하니 유토피아의 의지는 이어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서는 빛을 발하는 책일지 몰라도, 개인으로서, 한 명의 독자로서 나의 감상평은 핵노잼 작품이라는 것이다.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유토피아를 토머스 모어의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순진하게 소설의 구성 요소를 떠올리고 공산주의를 어떻게 썼을까 하는 궁금함에 꺼내 읽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소개는 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설이라고 했을 뿐, 그저 가상의 국가 체제를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1부에서는 여행객이자 화자인 라파엘이 유토피아빌드업을 위한 당시 체제의 불공정함을 이야기한다. 가령, 경중이 없는 형벌 제도로 인해 사소한 범죄를 벌일 사람이 중범죄자가 된다. 살인죄나 절도죄나 형벌의 정도가 같아 단순히 도둑질만 할 사람이 목격자를 살해한다는 것이다. 증인이 없어지면 자신이 잡힐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러한 기울어진 체제를 비판한 후 2부에서 그는 모어에게 유토피아체제를 아주 상세하게 풀어낸다. 그의 말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 모습 그대로다. 각자 주어진 주거 환경에서 부여된 역할에 충실하고, 사유재산이 없어도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아니, 아예 재물에 관심이 없다. 노예나 범죄자 등 가장 낮은 계급에게 금은을 치장함으로써 재물 = 노예라고 여긴다. 해외 어느 국가에서 유토피아 인의 기를 죽이려고 외교 대표가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입국하지만, 유토피아 인이 존중한 사람은 조촐한 차림의 하급 수행원이었다.

 

유토피아 인들은 학구열과 신앙심이 엄청나다. 노동 시간이 아니면 학업에 정진하고, 그중에서 박학다식한 사람은 마을의 감독관이나 시장이 된다. 높은 수준의 학업 능력을 쌓으면 누구나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식이다. 신앙심 면에서는 종교로 싸울 일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설득한다. 한쪽의 신이 더 설득력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화되고 통합된다.

 

전쟁은 국가나 국민에 직접적인 피해를 먼저 입었을 때만 나선다. 그것도 단계별로 나누어진다. 처음에는 용병을 보낸다. 유토피아는 돈이 차고 넘쳐도 쓸모없고, 용병은 돈만 받으면 목숨 걸고 싸우니 자국민을 내보내기 전에 용병부터 사용한다. 용병이 없으면 우방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우방국마저 쓰러졌을 때에야 비로소 자국민 부대가 출격한다. 그러나 승기를 붙잡으면 적을 쫓지 않는다. 괜한 함정에 걸려 피해를 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적이 불리해지면 유토피아의 사제들이 나서서 중재를 하고, 목숨을 구한 적들은 감화되어 유토피아의 우방국이 된다. 라파엘은 유토피아가 그 어떤 나라도 하지 못하는 체제로 굶는 사람 없고, 가난한 사람 없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라고 설명한다.

 

노잼은 노잼이고. 유토피아의 내용이 현대에는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당도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멋진 신세계라면 어떨까. 인공지능의 관리감독하에, 인간의 뇌에는 유토피아의 체제가 새겨진 칩이 심겨 있는 것이다. 개인의 욕망이 컨트롤 되고 정해진 대로 살아가면 유토피아는 절대 가상의 공간이 아닐 수 있다. 아마 인간성 말살이라는 생각이 말살되어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갈지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상상력의 여지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재미는 없으니 단순하게 내용이 궁금했던 사람들은 한 번 더 재고해보는 게 어떨지? 싫은 사람 있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그저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한 설명이 나열되었지만, 호기심이 일어 읽고 싶다면 말릴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게 읽었으니까. 읽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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