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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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 출신답지 않게 요즘의 나는 문학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했다. 실용적이지 않고 시간 아깝다고 여기며 읽기를 거부했다. 취업이 급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였다. 문학 독서는 뭔가 한가로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억지로 멀리했다. 그렇게 안 읽다 보니 이제는 읽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반향만 울릴 뿐,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래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을 사랑했기에 언제나 갈증은 남아 있었다. 취업하거든 마음 편히 읽으려고 쟁여 둔 소설이 독서 목록 한 쪽에 즐비했다. 이런 마음 가닥에 딱 알맞은 제목의 책이 등장했으니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구원의 광명 같은 책은 앵거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였다.


부제는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으로, 현실 세계의 도구로써 발명품이 아닌 뇌 과학과 심리적인 발명품을 지칭한다. 어떠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반응이 발현된다. 그러한 장치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작동법을 25장에 걸쳐 안내한다. 각 장의 마무리에는 해당 발명품을 더 느낄 수 있도록 관련한 문학 작품을 수록했다.


※문학 발명품과 뇌 과학


잠깐 대학 시절을 회상해 보면, 문학의 구성 요소를 배울 때 뇌 과학은 전혀 없었다. 좋은 문학의 구조가 어떻고, 이렇게 쓰면 안 되고, 저렇게 쓰면 안 되고, 이런 게 좋은 글이고, 저런 게 나쁜 글이고…….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필요한 지식이겠으나, 어디까지나 글쓰기 방법론 한정이었다. 내 글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개인의 감각 역량일 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고딩 때의 문학 시간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심했지. 문학을 분석해서 외우고 문제 풀어야 했으니까. 한 사람의 독자 입장에서는 개 쓰레기 같은 교육 방식이었다. 독서의 재미는 저런 것들이 앗아갔다. 좀 화가 나는데.


아무튼, 저자는 진부한 방식으로부터 문학을 건져 올렸다. 문학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유용한 장르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감정적 테크놀로지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p.26).”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고 진정시켜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으며 용기를 끌어올렸다. 이 용기는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먼저 용기의 뇌 과학적 출처는 편도체다.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 재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두려움을 자극해 아드레날린과 천연 오피오이드 진통제 혼합물을 방출하게 해, 어떠한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이 힘의 본래 생물학적 목적은,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신경성분을 한 가지 더하면 용기로 전환될 수 있는데, 그 성분이 바로 옥시토신이다(p.65).”


피를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의 열기, 고통을 덜어주는 천연 오피오이드의 열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옥시토신의 열기. 이 신경화학적 묘약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하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 한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heart flame)이 바로 용기이다. – p.67


호머는 두려움에 더할 옥시토신을 ‘찬가’라고 칭했다. 전쟁에 나선 이들이 ‘함께’ 신을 향해 ‘찬가’를 노래하니 용기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리아드》 속 인물들과 찬가를 부르며 자신에게 내재된 용기를 북돋았다.


혹은 요정이 나타나 행운의 반전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유치하게 들린다면, 그 안에 숨겨진 발명품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뇌가 (투쟁-도피 반응을 촉발시키는) 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좌뇌가 (우리를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달리 말하면, 우뇌는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쉬운 반면, 좌뇌는 잘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다(p.201).’ 즉, 치킨만 반반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도 희망 반, 절망 반의 세트 메뉴인 셈이다.


관점에 따라 절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고 희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는데, 동화(fairy tale, 요정 이야기)가 전하는 행운의 반전은 좌뇌를 자극해 우리를 낙관적이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존재한다. ‘첫째, 좌뇌에게 스토리는 절대적 규칙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좌뇌는 동화의 반전이 그저 우리가 운이 좋을 수 있다고,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상기해줄 뿐이다. 이러한 암시는 우리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기존에 가진 좋은 것들에 감사하도록 한다(p.211).’ 반면, 우뇌는 비관론을 펼치는데, 이는 우리의 사망률을 높이는 것과 상관있다. 자살, 심장병, 뇌졸중 같은.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이 낫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어느 쪽이 되었든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낙관론이 우세일 때는 아마 균형잡기가 쉬울 것이다. 현실은 행운보다 불운이 더 가깝고 빈번하니까. 반대인 경우라면 동화의 반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가 무려 23가지나 더 존재한다. 로맨스, 분노, 호기심, 슬픔, 창의성 등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발명품들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속한 대학 팀인 ‘프로젝트 내러티브’에서 찾아낸 발명품은 무려 수백 가지. 이런 문학 이론서라면 100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으니 추가로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나 스스로 발명품을 찾아내는 공부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익숙한 문학 작품을 마주하고, 또 낯선 작품도 만나면서 다시금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샘솟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 몇 권을 구매했다. 이제는 마음 편히 먹고 찬찬히 읽어볼 요량이다. 그간 삶이 퍽퍽하다고 여겼는데, 되돌아보니 문학을 소홀히 대했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반성하면서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는 문학을 좀더 가까이 대해야겠다.


※문학에 대한 태도


중세 성직자들은 고대 서사시에 주석을 달며 교리에 대한 설교로 바꿨다. 이교도의 알레고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수정했다. 가만 보니 이 꼬라지는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작품을 분해하고 단어를 해석하며 ‘A=B’로 매칭하는 작태.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힘이 없는 문학은 수술대에 묶인 실험체일 뿐이었다. 교과서나 지문에 수록되길 거부한 작가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나도 배우는 내내 더럽게 재미없어서 판타지 소설로 관심을 돌렸다.


그 교육 방식은 나의 한국 문학 경시 사상의 뿌리이기도 하다. 왠지 한국 문학을 읽으면 해석해서 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그 불쾌감이 독서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한참 문학에 빠져 있던 시기에 나의 지론은 이것이었다. ‘문학은 읽는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 분석과 해석은 비평가의 몫이며, 독자는 그저 독서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지금 보니 나 한정으로 알맞은 논리였다. 재미없는 독서는 죽은 독서다. 앞으로 내가 가질 문학에 대한 태도다. 분석하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정답 찾지 말고, 억지로 느끼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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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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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 번은 읽는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다. 언제 읽는가 하면, 내 자신이 한없이 쓰레기 같고, 사는 게 절망스럽고,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을 때 위로 삼아 읽었다. 읽고 나면 개운하지는 않아도 상태가 많이 완화됐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도 아름답거니와 나의 현실은 아무리 벅차도 주인공 ‘요조’의 그것과는 갭이 상당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상태에서 읽게 되었다. 두 가지의 심경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는 다소 낙관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문학의 가치를 잊었다는 점이다. 이 요인들이 시너지를 내니 과거와는 다르게 이만큼 시간 아까운 독서가 없었다.


요조는 자신의 생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보다 수치심을 아는 인간이 더 낫다.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도 타계하기 보다 도피를 선택하고, 그 수치심에 취해 스스로의 동정을 합리화했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행동거지를 보면 본인은 불행해도 싼 인간이기 때문에 이 상황과 싸우는 일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심리적으로 어떻고, 화자의 성장 배경이 어떻고, 시대상이 어떻고 한 사항을 분석하며 읽을 때야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나도 덩달아 우울해지는 친구를 둔 느낌이랄까. 한순간에 받아들이는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최근 문학을 접할 때마다 겪는 놀라움이다.


아무튼, 요조의 그런 행보는 현재 내가 가진 가치와 전혀 궤를 달리해 예전만큼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다. 감상문의 길이가 짧은 것만 봐도 얼마나 임팩트 없이 읽었는지.


이러한 느낌에는 예전과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은 탓도 있을 것이다. 매년 읽은 『인간 실격』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이번 것은 ‘코너스톤’에서 출간한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이다. 흠, 어차피 올해 또 이 책을 다시 읽을 날이 분명히 있을 테니, 그때는 각각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은 별 감흥 없는 감상으로 끝났지만, 언제 또 감명 깊게 읽을 지 모른다. 작품 자체의 짜임새 와 문장이 워낙 좋으니까. 다음에는 또 다른 독서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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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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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소설 경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기니까 ‘재미없다’는 메인 이유만 남겨두고 넘어가자. 덕분에 책 구매를 좋아해도 한국 소설은 대체로 제외하는 편이다. 그나마 장편 소설은 몇몇 보는 작가가 있지만, 소설집은 더욱 싫어한다. 단편 소설의 매력도 모르겠거니와 한 편 읽고 끊기는 느낌이 되게 별로다. 그런데 장르가 SF, 그것도 판타지가 아닌 문학이다? 거침없이 ‘아웃 오브 안중’이다.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나의 불만족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책이라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유일하게 친한 대학 동기가 연말 선물로 주지 않았다면 절대 볼 일 없었을 책이었다. 선물을 받아와 다른 독서는 미뤄두고 이 책부터 펼쳤다. 선물 받은 책에 대한 최고의 처사는 곧장 읽는 것이라는 내 철학 때문이었다. 물론 간만에 받은 책 선물이라 설레는 마음도 한껏 담겨 있었다.


불행이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재밌는 책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점이 불행했고, 그 불행 덕분에 이 재밌는 책을 선물 받아 즐거운 연말을 보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SF 판타지가 아닌 SF 문학의 재미도 처음 느꼈다. 내가 아는 SF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격정적인 대립이었다. 참 무지렁이 수준의 지식을 가진 나였음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총 7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는데, 이중에서 나는 후반부 세 편인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가장 몰입해 읽었다. 앞의 네 편은 좀 더 나의 감상을 분석해야 느껴지는 재미라면, 뒤의 세 편은 직관적인 재미라고 할까.


「감정의 물성」은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유발하는 상품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야기로, 침착의 향수를 뿌리면 침착해지고, 우울의 자갈을 쥐면 우울에 푹 빠지게 된다. 그 특이한 성질로 인해 사회적으로 크게 유행했지만, 마약 성분이 검출되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 속에서 화자는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긍정적인 감정의 수요는 이해되지만, 도대체 분노, 증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왜 사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삼류 신파 영화를 봤던 기억에서 도출되었다. 한 여자가 영화를 보고 마냥 울다가, 영화가 끝나자 영화 포스터를 구겨 버리는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 p.215


우리가 표출하는 감정은 정말 순수한 감정일까? 나는 정상적으로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웃기다고 해서 무조건 웃으면 안 되고, 화난다고 해서 아무 때나 화내면 안 된다. 즉, 우리의 감정은 이성의 검열을 받은 정제된 감정이다. 물론 사회 질서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때때로 그것이 개인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충분히 힘듦을 표출할 때임에도 그렇지 않다고 여기며 삶을 이어가다 무너지는 사람들이 해당되지 않을까. 이런 부류에게는 ‘감정의 물성’ 중 부정적인 면이 더 약이 될지 모른다. 뭐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다는 뜻.


「관내분실」은 빅데이터 교육을 받으면서 잠깐 떠올렸던 상상과 맥락을 함께해 흥미진진했다. 소설 내 도서관은 죽은 이의 정보를 데이터로 바꿔 저장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납골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자(死者)의 데이터는 이름이나 특징으로 인덱싱되어 마인드라는 형태로 보관된다. 화자는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았으나 ‘관내분실’되어 찾을 수 없었다. 인덱스가 지워져 마인드는 존재하나 불러올 수 없던 것이다. 다행히 개발 중인 기술의 도움이 잘 작동해 어머니의 마인드를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저 디지털 미아가 어느 기업의 데이터였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치 있었다면? 화자가 그런 데이터를 다루는 개발자였다면? 후, 상상만으로도 식겁할 부분이다. 소설의 내용과는 별 상관 없지만, 어쨌든 재미가 더해진 부분이었다.


마지막 소설인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가윤’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재경’의 진짜 행적을 알게 되었어도 그녀에게 영웅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제를 가졌다. ‘재경’은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우주 저편으로 통하는 ‘터널’로 향할 우주인 3인 중 하나였으나, 진입 당일에 이탈하여 바다 속으로 종적을 감췄다. 나머지 2인은 터널 입구에서 캡슐이 폭발해 죽음을 맞이했다. 항공우주국은 ‘재경’의 행적이 들통나면 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에 쉬쉬하며 함께 죽은 것으로 덮어버렸다. ‘가윤’ 역시 그런 행적은 모른 채 ‘재경’을 영웅으로 삼아 우주인을 꿈꿨다.


우주인 훈련을 하면서 그녀는 ‘재경’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비난의 여론에 피로를 느꼈으나, 그럼에도 ‘재경’이 그녀의 영웅임은 변하지 않았다. ‘재경’의 행동엔 ‘재경’만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었고, ‘가윤’에게는 ‘가윤’만의 진심이 있으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의 개인사 중 일부가 내 존경심을 해할 이유가 되는가. 예를 들면, 나는 F.스콧 피츠제럴드를 존경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괴팍한 성격을 들이밀며 내 존경심을 왜곡된 시선으로 판단했던 적이 있다. 다른 예로는 스티브 잡스도 있고, 빌 게이츠도 있다. 흠, 나의 영웅을 너에게 대입하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또한 내가 존경하는 부분이 흠이 아니라면 더더욱 상관없는 일 아닌가. 가끔 드는 생각을 끄집어낸 소설이었다.


김초엽의 SF 문학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에 다른 책이 나온다면 곧장 사 볼 계획이다. 그러나 다른 작가의 SF 문학도 내 마음에 들지는 의문이다. 조만간 서점에 가서 몇 장 훑어봐야 될 것 같다. 다른 소설도 흥미진진해서 퍽퍽한 실용서만 깃드는 내 마음에 문학의 불이 다시 지펴졌으면 좋겠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준 나의 대학 동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임인년의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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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2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찐새 님 리뷰 좋아요 세 번 누르고 싶어요.
반갑습니다. 김초엽은 저도 최근 관심 갖게
되었어요. 이 소설집 이후로도 꾸준히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더군요. 우선 선물 받은 행성어서점부터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에 밀리고 있어요. 임인년 출발 신나게 힘차게 하셨지요^^
 
GAN 첫걸음 - 파이토치 신경망 입문부터 연예인 얼굴 생성까지
타리크 라시드 지음, 고락윤 옮김 / 한빛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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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IT 교육 내 팀 프로젝트로 ‘CNN’을 다루면서 신경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물론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나지만, 여기저기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흥미가 꺼지기 전에 궁금했던 GAN에 손을 댔다.


제목 그대로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의 기초 개념을 잡기에 좋다. 더불어 내 경우에 무지성으로 그냥 사용했던 활성 함수나 손실 함수에 대한 지식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레이어층 쌓은 후 무조건 ReLU를 사용했다. 그냥 그러려니 싶었던 것. 그것이 기울기를 유지하기 위함인 줄은 전혀 몰랐다. 또, 이진 분류일 때는 손실 함수를 Binary Cross Entropy를 썼다. 단순히 Binary가 들어가서 이진 분류에 사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지만, 내 무지함에 참 부끄러워졌다. Binary Cross Entropy는 정답이 아닌 것에 벌점을 더 부과하여 정확도를 높인다고 한다.


책의 코드를 따라가면서 학습 결과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MNIST는 그저 그랬지만, CelebA 자료를 사용한 GAN은 흥미진진했다. Epochs에 따라 점점 선명해지는 게 마냥 신기했다. 


처음에는 그냥 도트 같더니 최종적으로 배운 코드에서는 얼추 사람의 형태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한참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더 학습시키면 결과가 나아질지 모르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내 노트북이 힘들어해서 포기했다. 8 epochs 돌리는 데 5시간 23분이 걸리니 말 다했지. ‘기계 학습’ 때마다 좋은 하드웨어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진다.


GAN에 대해 찍먹하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모르는 용어도 꽤 많아서 저자의 전작인 『신경망 첫걸음』도 한 번 볼 예정이다. 신경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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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사용설명서 -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바꿀 거의 모든 돈의 미래 NFT 사용설명서
맷 포트나우.큐해리슨 테리 지음, 남경보 옮김, 이장우 감수 / 여의도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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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수집품’에 대해 꽤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고 팔고 구매하는지, 방향성은 어떠한 지 등등 두 저자가 전문적인 견해를 들려준다.


새로운 개념의 존재이며 거래 방식이지만, 읽다 보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일환일 뿐, 놀랍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쉽게 요약하자면 코드화된 유희왕 카드 콜렉션 같달까?


지구의 모든 사람이 유희왕 카드를 수집하지 않고,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희귀한 카드는 매우 비싼 값에 거래가 된다. 나는 관심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수집의 세계는 소규모라도 유지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르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의 대표 주자인 게임으로 비교해보자. 게임 아이템 중 현금 거래가 되는 경우는 빈번하다. 그것들은 NFT도 아니고, 영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인간의 열정(방향성이 어찌 되었든)을 대변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거래들에 신뢰성과 공정성, 투명성을 더한 것이 NFT 거래 세계라면 어떨까? 충분히 납득 가능한 영역이다.


책의 저자들은 NFT의 가능성을 메타버스, 디지털 아트뿐만 아니라 비유동성자산이나 부동산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가능성이야 어디든 산재되어 있으니 도래하지 않는다면 모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NFT의 영역 역시 지금의 코인이 거래 자산으로 자리잡았듯 자신만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리라는 점이다. 주요 시장으로 올라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매니아의 영역으로 명맥을 꾸준히 유지할 것 같다. 물론 블록체인이 확실한 기술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나는 블록체인 기술을 믿으니까.


NFT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서 굳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NFT 제작에 관심이 있는 부류만 참고하면 좋은 정도? 책 제목에 충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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