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머니 - 부의 거인들이 밝히는 7단계 비밀
토니 로빈스 지음, 조성숙 옮김, 정철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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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책 감상문 작성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문외한이기도 하거니와 너무 복잡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 어지러울 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 로빈스의 머니는 쓰고 싶었다. 거의 900쪽에 달하는 육중한 책의 완독을 기념하기도 하면서 꼭 기록해두고픈 내용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벌써 기억이 흐릿하다. 챕터를 쪼개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읽었더니 앞부분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가물가물한 내용은 대충 건너뛸 생각이다.

 

이 책은 총 7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투자 공부에 뛰어들기 전 마음가짐, 2부는 일반 투자자가 속거나 당하는 통념들을 다룬다. 3부에서는 투자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이다. 저축을 늘리고 소득을 올리고 세금과 수수료를 줄여 그만큼 더 투자하라고 말한다. 4부부터는 본격적으로 투자 공부에 들어간다. 자산 배분을 위한 바구니 나누고 5부에서 그에 걸맞은 전략을 소개한다. 6부는 이 시대 부의 거인들을 만나 나눈 인터뷰를 요약하여 실었다. 마지막 7부는 부가 가야 할 방향으로 나눔을 제시한다.

 

본 내용을 적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투자란 요새 핫한 파이어족이나 단타와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은퇴 자금혹은 노후 준비를 목적으로 하며 자산 배분을 통한 장기투자를 말한다. 그리고 미국 실정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므로 국내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보험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고려는 하되 또 다른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다. 또한, 코로나 사태 한참 전에 출간된 책이니 역시 지금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자산 배분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살아남는 차원을 넘어 순항하게 해줄 최적의 투자 배합을 찾기 위해서라도 분산 투자를 행해야 한다. - p.420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무사히 들고 가면 그만한 이득이 없지만, 혹시나 실수로 바구니를 떨어뜨린다면 모든 계란이 깨지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살아남았다손 쳐도 나머지 깨진 계란의 손해가 막심해 눈물이 줄줄 흐를 것이다. 투자계도 마찬가지여서 투자의 대가들은 한목소리로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말한다.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변동성 방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득보다는 손실에 더 큰 불행을 느낀다. 평소에는 10% 손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겪으면 뼛속까지 아파진다.

 

계란과 마찬가지로, 투자 역시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 책에서는 이 바구니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주식, 부동산 등 위험 자산을 담는 위험/성장 버킷’, 안전 자산을 담는 안전/마음의 평화 버킷’, 인생에 활력을 더하기 위한 드림 버킷이 그것이다.

 

위험/성장 버킷

 

위험/성장 버킷에 모든 돈을 다 집어넣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키스이다. - p.473

 

위험/성장 버킷에 들어가는 종류는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한다. 주식, 하이일드 채권(정크본드), 부동산, 원자재, 통화, 수집품, 구조화채권. 여기서 수집품은 아마도 접근 가능성이 매우 떨어질 것 같으니 빼도록 하자.

 

주식과 부동산은 장기적 우상향!’이라고 말하지만 하락했을 때의 변동을 메우려면 그것의 두 배 되는 수익을 올려야 본전을 찾는다.

 

정크본드는 신용도가 낮은 채권을 말하는데, 높은 위험성을 대가로 높은 이자를 지급한다. 재수 없으면 채권이 종이짝으로 변할 수도 있다.

 

원자재는 경제 동향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한 예로, 코로나 사태 직후 원유 차트를 보면 알 수 있다.

 

통화는 환율의 변동성 때문에 위험 자산으로 분류된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제외하면 나머지 통화는 모두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마지막 구조화채권은 종류가 다양해 안전 자산도 되고 위험 자산도 된다고 한다. 원금을 25%만 보호해주는 구조화채권의 경우 시장 하락 25%까지는 손해가 없지만 25%가 넘어가면 초과분만큼 원금 손실이 생긴다고. 독일 국채 파생 상품이었던 DLS인가가 이런 것인가? 그것도 금리 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이 보장되는데 마이너스 금리가 되어버려서 손실이 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이건 잘 모르겠으니 패스.

 

안전/마음의 평화 버킷

 

안전/마음의 평화 버킷은 재무적 자유를 향한 경주에서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거북이이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대개 거북이가 이긴다! - p.422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는 종류로는 현금/현금등가물, 채권, 양도성예금증서, , 공적연금, 연금보험, 생명보험, 구조화채권이 있다. 안전 자산은 비교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금등가물은 MMF를 말하는데, CMA와 비슷하면서도 예치 기간이 있는 펀드 상품이다. 우량 채권에 투자해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가져오면서 원금 손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양도성예금증서는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증서이다. 은행에 빌려주는 만큼 안전하긴 할 것이다.

 

집은 부동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접근 개념이 다르다. 부동산은 차익이나 세를 받으면서 수익을 내는 자산을 말하고, 집은 최후의 보금자리가 되는 장소를 말한다. 집값은 오르면 좋고 폭락하더라도 지낼 곳은 있어야 재기가 가능하다.

 

공적연금은 국민연금이니 패스. 연금보험은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 가입할 수 있다. 이 역시 변액보험인지, 사업비와 보장이율이 얼마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생명보험은 나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드는 보험이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자산이라고 생각하자.

 

또 나온 구조화채권은 잘만 고르면 하방 위험을 덜고 상방 수익에 동참하는 훌륭한 투자 수단이라고 한다. 잘 고르면 안전 자산, 잘못 고르면 위험 자산인 셈이다.

 

드림 버킷

 

자신이 무엇을 위해 저축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일정 부분을 저축한다면 아무 꿈도 실현되지 못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그리고 왜 원하는지 알고서 그 꿈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 비밀이다. - p.488

 

인간의 의지는 나약하다. 첫날 넘치는 열정으로 대단한 각오를 다져도 그것이 평생 지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물며 한참 먼 것처럼 보이는 노후를 위한 투자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궁극적인 투자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삶의 윤활유가 필요한데 드림 버킷은 그것을 위한 바구니이다.

 

투자 전의 기본은 저축과 소득을 늘리고 세금과 수수료를 줄이는 것이다. 그 차액만큼 투자를 늘릴 때 일정 부분을 자신의 꿈을 위한 저축으로 전환한다. 여행이 될 수도, 새 차가 될 수도, 집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꿈이든 간에 드림 버킷의 돈은 목표한 금액이 달성될 때까지 꺼내면 안 된다. 목표 금액이 너무 크다면 꿈을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순서대로, 큰 꿈에서 작은 꿈 순으로, 단기적인 꿈에서 장기적인 꿈 순으로 목록을 작성하고 왜 이뤄야 하는지 이유를 적는다면 우선순위 정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 드림 버킷의 지분은 꼭 할당하도록 하자.

 

올시즌스 포트폴리오

 

돈을 똑같이 나눌지라도 두 투자의 위험 수준이 동등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가 아니다! - p.544

 

사실 여기를 적고 싶어서 위의 긴 글을 적었다. 버킷의 종류를 알았으니 이제 비율에 따른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을 7525로 하거나 반대로 하라고 말했다.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은 더 나아가 연령에 맞춰 비율을 나눌 것을 제안했다. 가령, 26세라면 100%에서 자신의 나이만큼을 안전 자산으로, 나머지를 위험 자산으로 구성한다. 60세라면 안전 자산 60%, 위험 자산 40%처럼 말이다. 물론 개인마다 위험 감수 수준이 다르므로 비율에는 정답이 없다.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면 나이가 많든 적든 위험 자산 몰빵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했다간 고점에 물리고, 저점에 손절할지 모른다. 저자는 이런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의 대가 중 하나인 레이 달리오에게 개략적인 포트폴리오를 요청했다. 그는 올웨더 포트폴리오로 거대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영하면서 폭락장에서는 최소한의 손실을, 상승장에서는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저자의 요청에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의 축약형을 제시했다. 모든 날씨에 대응하진 못해도 모든 투자 계절에는 대응 가능한 올시즌스 포트폴리오였다.

비율은 변동성 위험에 따랐으며 저자의 팀이 백테스팅한 결과로는 손실은 최저였고 수익은 S&P 500 지수를 초과했다. 1938~2013년까지 S&P의 평균 손실은 11.40%였던 반면, 올시즌스는 1.63%였다. 최악의 폭락장에서도 올시즌스는 선방하거나 오히려 수익을 냈다. 닷컴 버블 이후부터 2013년까지는 수익만 났고 손실은 없었다.

이쯤 되니 코로나 이후에도 이게 먹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폭락장은 과거에는 없었던 경험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검색해본 결과 기사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20202월까지는 SPY가 올시즌스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3월에 폭락하면서 21%가량 빠졌다. 반면, 올시즌스는 2.8% 수익을 냈다고 한다. 상승폭이 주식만큼 가파르진 않지만 하방이 단단하며 수익률이 고른 것이 올시즌스 포트폴리오의 장점이다.

 

사계절 포트폴리오 참고 기사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0040165911

 

우리나라 주식에도 먹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못 찾은 건지, 없는 건지. 이머징 마켓으로 들어가는 코스피 시장은 아마도 안정성이 떨어져 저 포트폴리오가 안 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해보더라도 미국 시장에서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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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의 인터뷰와 물질적 부를 넘어 정신적 부까지 챙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뒷내용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개인이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앞뒤 자르고 내가 정리한 부분만 봐도 책값은 뽑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출간된 지 꽤 된 책이라 중고로 구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엄청나다. 이 책 한 권으로 투자에 대한 개념뿐 아니라 실생활에서의 소비나 저축, 심리 상태까지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에 대한 내용이 내가 다루지 않은 모든 부분이다.

 

저자의 열정이 대단한 만큼 책도 두껍다. 굉장히 좋은 책임에도 큰 단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내용이 자산 관리 초보자들을 향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과연 벽돌 책을 견딜 만큼 독서력이 상당할까? 보통 절실한 사람이 아니고야 두께 보고 도망갈 것 같다. 그래도 이 한 권으로 소비, 저축, 투자 개념이 잡힌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나처럼 11챕터로 접근하면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올시즌스 포트폴리오의 위력이 놀라워서 하찮은 필력과 이해력에도 불구하고 장황한 감상문을 적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내 미국 주식 계좌에 올시즌스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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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리커버 특별판)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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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이라 작년에 사놓고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다. 원래는 모모를 읽으려고 했는데, 어디 갔는지 없어져서 끝없는 이야기로 손을 옮겼다. 아무래도 청소년 소설이니 유치할 것으로 여겼다. 후딱 읽어 치워버리자는 마음이 독서 동기의 90퍼센트는 차지했으리라. 그러나 내 생각은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도대체 무슨 책들을 읽었던 것일까. 왜 도서관을 뒤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상상을 몽상과 망상으로 구분해야 하는 지금의 나이에 이 책을 만난 것일까!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었다. 왠지 어린 시절을 날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으로만 맛보던 내용이 이렇게 소설로 존재했었다니. 예전 나니아 연대기이후 다시 느끼는 안타까움이었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환상 세계의 아이 아트레유가 어린 여왕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 이야기이고, 2부는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에 들어가 자아를 찾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주인공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는 책과 이야기 짓기를 좋아했다. 현실이 싫기 때문이었다. 학교 아이들과 교사는 통통한 외모와 소심한 성격인 그를 괴롭혔고, 아빠는 엄마를 잃은 후 자신에게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비 오는 어느 날, 그는 학교를 가다 말고 고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훔쳐 도망쳤다. 제목은 끝없는 이야기, 두 마리의 흰 뱀과 검은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문양이 그려진 책이었다. 바스티안이 선택했다기보다 책에 선택받은 느낌이었다. 서점으로부터 도망친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지각한 김에 바스티안은 교실 대신 인적이 드문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바스티안은 학교 일과, 아빠를 잊은 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환상 세계의 여왕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그녀의 세계가 위협당하고 있었다. ‘()’가 퍼지면서 세계 곳곳을 존재하지 않았던 곳으로 만들었다. 온갖 종족의 의사들이 그녀를 치료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측근 카이론에게 명령했다, 풀의 바다에 사는 초록 피부 일족 아트레유가 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것이니 아우린(여왕의 권한)’을 건네주라고. 아트레유는 바스티안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년이었다. 카이론은 어린 아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염려했다. “() 여왕은 아무도 모르는 어떤 것을 찾아오라고 미지의 세계로 널 보내는 거다. 누구도 너를 도와줄 수 없고, 누구도 너에게 충고해 줄 수 없으며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넌 임무를 받아들일 건지 아닌지 당장 결정해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p.68)”

 

위대한 사냥꾼을 꿈꾸던 아트레유는 생각보다 큰 모험임을 깨닫고 용감하게 대탐험을 나섰다. 아끼는 말 아르탁스를 슬픔의 늪에서 잃었어도, 늙고도늙은 모를라를 마주했어도, 행운의 용 푸후르를 구하고 끔찍한 위그라물에게 물렸어도, ‘우유랄라를 만나는 과정이 험난했어도, 불량배의 마을에서 그를 죽이려는 그모르크가 다리를 물어 놓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푸후르와 함께 여정을 마쳤다. 여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여왕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인물이 필요했다. 구원자는 환상 세계 사람이 아닌 현실 세계 사람이었고, 그가 환상 세계로 넘어와야만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였다. 그가 여왕의 새 이름을 부르면 넘어올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왕은 방랑산의 노인의 도움을 받아 바스티안이 부름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바스티안은 어린 여왕에게 달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 이름을 외치자 바스티안은 환상 세계로 이동했다. 어린 여왕은 그에게 환상 세계 주인의 권한인 아우린을 넘겨주며 소원을 빌도록 했다. 그의 소원이 곧 환상 세계의 재탄생이었다. 달아이는 바스티안에게 환상 세계를 맡긴 후 종적을 감췄다. 그는 이제 혼자서 세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소원을 빌어 통통하던 외모는 매끈하고 잘생긴 모습으로 변했다. 용감하고 강한 힘을 원하자 그렇게 되었다. 대가로 현실 세계의 기억을 잃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바스티안은 밤의 숲 페를린과 다채로운 죽음 그라오그라만이 있는 일곱 빛깔의 사막을 시작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라오그라만의 존재 이유를 알려준 감사의 표시로 받은 마법의 검 지칸다를 받았다. 마법의 검은 스스로 뽑히면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그를 지켜주지만, 억지로 뽑으면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했다. 천 개의 문을 지나 아마르간트에 도착한 바스티안은 도시에서 아트레유를 만났다. 아트레유는 아마르간트에서 대회를 열어 구원자를 찾을 용사를 뽑는 중이었다. 신분을 숨긴 바스티안이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고, 아트레유는 본능적으로 그가 구원자임을 알았다. 둘은 실제로 처음 봤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훤칠한 외모와 강한 힘, 두려움 없는 용기를 가진 바스티안은 이제 환상 세계에 명예로운 자로 불리고 싶었다. 그는 소원을 사용하여 음유시인인 아마르간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가득 담긴 도서관을 만들어주었고, 대회에서 바스티안에게 당해 좌절한 휜레크를 위해 용을 만들어 공주를 구하게 해주었으며, 못생긴 외모로 항상 흐느끼는 아하라이 족을 항상 웃는 슐라무펜으로 바꿔주었다. 모든 결과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바스티안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현실 세계의 기억을 잃어갔다. 그것을 눈치챈 이들은 아트레유와 푸후르뿐이었다.

 

바스티안의 소원은 마녀 크사이데를 만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크사이데는 그에게 속삭여 환상 세계의 황제로 자리할 것을 유혹했다. 아트레유는 바스티안에게 진실된 말을 하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를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며 함부로 말했다. 결국 아트레유와 푸후르는 떠났고, 바스티안은 자신을 따르는 환상 세계 종족들을 이끌고 세계의 중심인 상아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황제가 되려는 대관식을 치르려는데, 아트레유가 여러 환상 세계 종족을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깊은 우정을 나눴던 둘은 서로에게 칼을 겨눴다. 억지로 빼든 지칸다는 아트레유를 찔러 부상을 입혔다. 푸후르가 재빨리 아트레유를 데리고 도망치자 분노에 휩싸인 바스티안은 그들을 추적했다.

 

추적하던 도중 맞닥뜨린 마을에서 바스티안은 진실을 깨달았다. 마을의 이름은 늙은 황제들의 도시, 과거 환상 세계에 왔으나 마구잡이로 소원을 빌다 자아를 잃어버린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멍청한 행동을 하며 살아갔다. 아트레유는 이런 미래로부터 바스티안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소원을 빌어 마을을 빠져나오긴 했으나 그는 또다시 기억을 대가로 지불했다.

 

바스티안은 여러 날을 걸었다. 조화롭긴 하지만 사랑이 없는 도시 위스칼을 지나 변화하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아이우올라 부인이 살았다. 그녀는 바스티안을 기쁘게 맞이하면서 조급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기억을 잊어버려 걱정하는 바스티안에게 아이우올라 부인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그저 변하는 거(p.628)”라며 위로했다.

 

바스티안은 마지막 소원을 사용해 (대가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었다.) 변화의 집을 벗어나 그림들의 광산에 도착했다. ‘요르라는 광부가 지키는 광산에서 바스티안은 생명의 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생명의 물은 현실 세계로 향하는 길이며 스스로 찾지 않는 이상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곳이다. 바스티안은 다양한 기억들이 묻혀 있는 광산에서 요르를 도와 자신이 찾는 그림을 캐냈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음에 갇혀 있었다. 남자는 바스티안의 꿈속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바스티안은 그 그림이 자신을 생명의 물로 이끌어줄 열쇠임을 깨닫고 광산을 떠났다.

 

소중한 그림을 조심히 들고 이동했다. 그러나 자신이 존재를 바꿔주었던 슐라무펜이 등장해 장난치는 바람에 바스티안의 희망은 산산조각나버렸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때, 아트레유가 행운의 용 푸후르를 타고 나타났다. 바스티안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우린을 풀어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우린의 빛이 너무 눈부셔 그들 모두 눈을 감았다. 다시 떴더니 그들은 이미 거대한 공간에 서 있었다. 서로의 꼬리를 문 흰 뱀과 검은 뱀이 지키는 생명의 물이었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와 푸후르의 도움으로 무사히 생명의 물을 통과했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바스티안은 사실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아빠를 사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코레안더 씨에게 훔친 책을 사과하러 갔을 때 그 책은 서점의 소유물이 아닌 바스티안에게만 주어진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바스티안이라면 많은 사람들을 환상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거라는 사실까지도.

 

줄이고 줄인 줄거리지만, 거의 700쪽에 달하는 소설이어서 굉장히 길어졌다. 긴 이야기인 만큼 미하엘 엔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무수히 많다. 가령, 환상 세계 여행자가 등장해 어린 여왕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환상 세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현실 세계가 상상력을 거부한 채 정해진 답을 강요했기에 여행자는 나타나질 않았다. 동시에 환상 세계가 파괴의 제물이 되면 될수록 인간 세상으로 퍼지는 거짓의 물결은 점점 커지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람이 환상 세계로 올 가능성은 매 순간 점점 희박해졌다(p.232).’ 상상력이 죽은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을 지루하게 여기며 절망에 휩싸인 채 우울하게 살아간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인간들에게 자유로운 상상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환상 세계는 모든 것이 말이 안 되며 모든 것이 타당하다. 상상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내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더 즐거웠을까. 지금의 나이에도 즐거운 독서였지만, 나도 모르게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려고 들었다. 상상력에 늦은 나이는 없어도 이미 판단하는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더 늦기 전에 좋은 소설을 접했으니 아직 어린 시절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추천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육적인 상징성에서도 빛을 발한다. 바스티안은 평범한 것보다는 한 계단 아래에 있는 소년이다. 자기 앞가림에 의욕이 없고, 행동에 책임도 없다. 그가 환상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교훈을 얻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몇몇 인물의 상징을 따져볼 수 있다. ‘아트레유책임감’, ‘푸후르행운’, ‘크사이데욕망’, ‘아이우올라 부인시간’, ‘요르무의식으로 볼 수 있다. 바스티안이 책임감과 행운을 만났을 때는 승승장구했으나 함부로 대했을 때는 쇠락했다. 쇠락의 길에는 한없이 커진 욕망이 자리했다. 다친 아트레유와 푸후르를 쫓으면서 욕망과 멀어지자 곧 바스티안은 공허해졌다. 공허한 마음은 변화의 집에서 시간이 치유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바스티안의 소중한 기억은 무의식의 광산에 묻혀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무의식을 건들자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곁들이면 소설은 재미를 잃는다. 학교 다닐 때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어디까지나 감상문을 쓰는 입장에서 책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해석일 따름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위의 요소 함양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완독한다면 독서에 대한 자신감도 뿜뿜 샘솟을 것이 분명하다. 일단 내 사촌 동생에게 추천해봐야겠다.

 

읽을 책이 넘쳐도 다음 읽을 책은 기약해야 한다. 언젠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도 읽어볼 예정이다. 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서 중고로 구매했다. 과연 이 책만큼 임팩트가 있을지 궁금하다. 추천은 여기저기서 많이 받기는 했었는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끝없는 이야기의 구성은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하다. 하나를 재밌게 읽었다면 다른 하나도 취향에 맞으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후자는 1000쪽이 넘으니 독서 자신감을 위해서라면 도전해보자.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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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생각 - 문화에서 꿈을 찾다, 7가지 창조적 여정 creative journey
고성연 지음 / 열림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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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책은 읽지 않는 편이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성연의 CJ의 생각은 두 가지 이유에서 구매해 읽었다. 첫째, 나는 서점에서 그냥 나오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중고서점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몇 권 구매하려는 심리 때문에 책장 곳곳을 여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둘째, 구매 시점이 CJ ENM에 이력서를 넣은 지 얼마 안 됐던 때였다. 대기업이라 얼추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 보니 나는 CJ란 기업을 거의 몰랐다. 이력서를 안 넣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궁금증 해소 겸 참고 도서로 구매했다.

 

CJ는 설탕 제조 사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르신들에게 제일제당으로 친숙한 이 기업은 영화 제작·배급사 ‘CGV’, 케이블 채널의 강자 ‘tvN’, 홈쇼핑 채널 ‘CJ오쇼핑’, 한류를 이끈 시상식 ‘MAMA’, 냉동식품의 판도를 뒤집은 비비고등으로 전 연령층에 사랑받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전환하는 길은 대기업이라도 쉽지 않았다. CJ는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대응했는가. 그 험난한 과정 중 나는 책에서 가장 지분을 많이 차지한 영화산업에서 배울 점 3가지를 꼽아봤다.

 

1. 배우는 자세

 

스필버그에게 손을 내민 결단에는 최고의 시스템을 배워 우리 것으로 체화하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 p.27

 

90년대 우리나라 영화 산업은 열악했다. 시스템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할리우드와 비교해 한국 영화는 경쟁력이 없었다. ‘배급과 극장 사업은 돈이 되지만 한국영화로는 이익을 낼 수 없다(p.32)’는 결론이 지배적이었다. CJ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힘겨우리라는 점을 시작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배급사인 드림웍스에게 영화산업 시스템의 A to Z를 배우는 데 집중했다.

 

한국영화계에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배급 과정에서 극장주에게 뒷돈을 주거나 영화사로 갈 수익을 가로채는 일이 잦았다. ‘확실한 전산 시스템을 갖춘 배급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러한 비리가 근절됐다(p.35).’ 유통이 투명해지니 투자와 마케팅의 효율도 덩달아 상승했다. 관람객 취향에 맞는 영화를 제작·배급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산업 이익은 극대화되었다.

 

여기에 한몫 더한 시스템은 멀티플렉스라는 플랫폼이었다. CJ가 뛰어든 초기 영화산업 시기에 미국은 이미 멀티플렉스 체제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스크린의 개수가 많으니 흥행하는 영화는 더욱 추진력을 얻었다. CJ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다양한 투자처와 협업해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강변11’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와 달리(IMF 직후였다.) 사람들은 줄줄이 ‘CGV강변11’을 찾았다. CJ가 멀티플렉스 사업에 성공하자 다른 대기업 영화관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영화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2. 포기하지 않는 자세

 

사실, 20년의 세월 동안 CJ는 고전을 면치 못한 적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처음의 목표를 놓지 않았다. - p.36

 

영화산업에 뛰어든 제조기업을 세상은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분야는 시스템마저 미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가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단기적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급 시스템과 영화관 플랫폼을 넘어 CJ는 블록버스터에도 힘을 쏟았다. 영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블록버스터 영화는 꼭 필요했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 초기와 마찬가지로 아직 우리나라에는 블록버스터 내공이 부족했다. 내실을 다지는 데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엄청난 출혈이 예상됐지만 끊임없이 실전을 통한 실험에 나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p.56).’

 

먼저 좋은 영화를 고르는 안목부터 키우기 위해 배급 업무와 단순 투자 업무 위주로 역량을 쌓았다. 1999년에 쉬리500만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열자 가능성을 확인하고 CJ는 투자의 범위를 늘렸다. 좋은 영화도 발굴했지만 미끄러진 경우도 허다했다. ‘이처럼 옥석을 가리는 눈이 부족해 애먼 데 투자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p.57).’

 

노력하는 과정이 누적되자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730만의 화려한 휴가(2007), 668만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개봉한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1000만을 넘어섰다. 2013년부터는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가 등장했다. 설국열차, 베테랑, 도둑들, 명량등등. CJ는 명실공히 한국영화계를 선도했다.

 

3. 실패를 인정하는 자세

 

실험도 좋지만 대작을 표방한 작품들의 잇단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체질 개선을 요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 p.60

 

블록버스터가 터지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은 CJ 영화산업의 흑역사라고 불린 시기다. 투자 목록의 대부분이 할리우드 흥행작을 답습한 SF물들이었다. 당시 초딩이었던 나조차 개똥망 영화들의 이름을 대며 친구들과 하하호호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많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었다. 놀릴 만하면 뭐든 ○○팔이를 붙였다.

 

흥행작의 아류를 만드는 이런 매너리즘이 비단 CJ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산업계가 커지면서 투자가 과도하게 들어오자 아무 영화에나 투자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셈이었다. 관객들은 신작이 나오면 일단 의심부터 했다. 영화산업계는 하강 곡선을 그렸다. 그런 와중에도 왕의 남자(2005), 괴물(2006)등 신기록을 세우는 영화가 등장했다. 의심하는 만큼 보는 관객들의 눈이 높아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법 복제물까지 판을 쳐 영화 산업은 오랜 기간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CJ 내부에서 잘못된 판단과 투자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흑역사를 탈출하기 위해 체계를 바로 잡았다. ‘인하우스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작투자 회의도 활성화했다. 보다 안정적인 영화 선구안 시스템이 마련되자 위에서 언급한 노력의 결실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울 점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면, 중천(2006)에서 쌓은 경험은 전우치(2009)에서 빛을 발했다. 개똥망 중의 개똥망 영화인 7광구(2011)에서는 CG의 가능성을 찾았다. 이런 실패 경험의 사용처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어떤 부분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기업마저 최고가 되는 과정은 개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3가지 배울 점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갈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다. 기본자세가 튼튼하기에 CJ는 영화산업뿐 아니라 TV와 한류 문화까지 꽉 잡은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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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책을 자기계발서처럼 읽어서 이 감상문도 자기계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경영서이며 기업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는 CJ에 대한 궁금증에 이 책을 읽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번이면 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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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쓰기의 모든 것 - 소통과 글쓰기 11 아로리총서 26
김나정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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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서평 작성을 멈춘 후, 몇 달이 지나 읽은 책을 다시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도대체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서평쓰기의 모든 것을 구매했다. 그리고 읽지 않았다. 올해 초에 마음을 다잡고 쓰다 보니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럭저럭 내가 읽은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노선 또한 확실히 정했다. 나는 어떤 책도 평가할 깜냥이 되지 못했다. 분수에 맞게 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게 맞았다. 서평과 다르게 감상문은 특정한 제약이 없다. ‘감상(感想)’이라는 단어에서 나타내듯 내 느낌과 생각이 주되므로 자유분방하게 쓰면 된다. 노선이 정해지니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내 독서 루틴 때문이었다. 나는 오전에 작법서를 조금씩 읽는데, 이전에 꽤 두꺼운 작법서를 읽은 터라 쉬어가는 차원에서 서평쓰기의 모든 것을 선택했다. 역시나 서평과 내가 쓰는 감상문은 갭이 큰 글쓰기 형식이었다.

 

서평이란?

 

독서 감상문은 의 느낌이나 생각이 중심이고, 서평은 에게 그 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 p.13

 

일단 나는 단 한 번도 남에게 책을 소개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이 없다. 나를 위한 기록이 전부였다. 상대가 어떤 의견이든 그건 상대방 느낌이고, 내 글은 내 감상일 따름이다. 논리와 맥락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나의 글은 근본적으로 서평이 될 수 없었다. 반면, 서평의 주요 내용은 책과 관련된 모든 내용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책의 정보를 얻도록 하기 위해 쓰는 글(p.14)’이며 책에 대한 사유를 담은 논리적인 글이며, 서평을 통해 책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전달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글이자 관계적인 글(p.15)’을 지향한다. 객관적인 근거와 논리가 중요하다. 그만큼 형식 또한 강하게 제약을 받는다. 서론, 본론, 결론의 맥락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감상문보다 덜 자유롭지만 더 전문적인 글인 셈이다.

 

서평의 좋은 점은?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생각을 요약하며’, ‘전달하는과정을 통해 지식은 태어나며, 그런 의미에서 서평쓰기 자체가 하나의 지적 생산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 p.20

 

감상문은 주관성이 강해 대개 체계적이기보다 즉흥적이다. 학습이나 습득보다는 감정의 배출구 역할이 더 크다. 그에 반해 객관적 성격이 강한 서평은 논리적인 만큼 정보를 지식화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그 외에도 여러 도움을 주는데, 책에서는 7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단편적 정보의 지식화다. 정보는 이 시대에 널리고 널렸다. 궁금한 단어를 검색하면 관련된 정보가 주르륵 넘쳐흐른다. 흔히 지식인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정보의 해석이라고들 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정보를 아무리 많아도 지식으로 소화해야 우리 것이 된다. 그 능력을 키워주는 요소가 서평이다.

 

둘째,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학습 이후 20분내에 거의 절반을 잊는다고 한다. 서평은 글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다시 펼쳐 봐야 하기에 내용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셋째, 공부 능력 향상이다. 앞서 서평은 객관적 근거에 의한 논리적인 글이라고 했다. 그런 글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깊이 읽고 생각하여 써야 한다. 독서와 서평 능력이 길러지면 자연스럽게 문해력도 성장한다. 문해력은 세상 모든 맥락을 이해하는 근간이기에 공무 머리가 길러지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창의력이 길러진다. 서평에는 논리적인 자기주장이 들어간다. 자기주장은 사전에 존재하는 의견이 아니다. 저자의 생각과 본인의 생각을 연결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평을 쓰면 쓸수록 생각 정리 방법이 길러지고 중구난방으로 떠도는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자아정체성을 확립한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자신의 성격, 취향, 관심사 등을 발견하게 된다. 쓰기는 결국 내 안에 무엇인가를 모으는 행위(p.31)’여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굳건히 견디는 자아를 만들 수 있다.

 

여섯째, 살아가는 힘이 된다. 책에 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길이다. 서평은 각 길에 이정표를 심는 일이다. 이정표가 있다면 우리는 헤매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일곱째, 새로운 가치관을 더해준다.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마지막을 위한 빌드업이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지()의 범위를 넓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데 나는 왜 서평을 안 쓰고 감상문을 쓸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경계가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서평의 ()’은 말씀 언()에 평평할 평()자가 결합한 한자로 말을 고르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해석하기에 고르다누구나 알아들 수 있게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은 감상문도 포용할 수 있다. , 자의적인 해석이다.

 

서평쓰기 주의할 점

 

이 책의 주요 골자는 서평 쓰는 방법이다. ‘읽기 전’, ‘읽는 중’, ‘읽은 후로 나누어 서평 실력을 늘리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평 쓸 역량이 안 되니 내 감상문에서 주의할 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자는 8가지 주의점을 제시한다. 왼쪽은 저자의 주장이고, 오른쪽은 나의 덧붙임이다.

 

읽고 바로 쓰지 말자 최소 반나절 정도 묵히면서 생각 정리 필요.

앵무새가 되지 말자 단순 줄거리 요약 피할 것.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

그냥 재미있었다라고 쓰지 말자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었는지 확실히 언급할 것.

다짜고짜 재미없었다라고 쓰지 말자 근거 없으면 그냥 비난일 뿐.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지 말자 서평에 해당. 감상문에 해당 ×.

자기 지식을 과시하지 말자 세상에는 나보다 전문가가 훨씬 많음.

막무가내로 다짜고짜 쓰지 말자 엉망진창인 글이 됨. 뼈대 정도는 생각해둘 것.

뻔한 말로 끝내지 말자 결심은 지양할 것. 책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자.

 

이것만 조심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글은 나올 듯하다. 글 점검의 지표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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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도 얇고 저자가 쉽게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글쓰기 초보자가 접근하기에는 다소 벽이 느껴지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글쓰기가 무르익어 더 좋은 서평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나처럼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 들린 사람에게 약간 버거울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글은 감상문보다 서평의 성향이 더 짙은 듯하다. 내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부담이 줄어들었나? 그래도 나는 감상문을 고집할 것이다. 내 마음대로 쓰는 글이 훨씬 재밌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자기주장은 훗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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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츠파 - 창조와 혁신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인발 아리엘리 지음, 김한슬기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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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인 듯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집안에 여유가 없어지고 도망치듯 지방으로 이사했다. 재기불능 상태가 가져온 충격은 나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무난한 인생이 최고의 가치였고 열심히 사나 대충 사나 결과는 매한가지로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논리까지 세웠다. ‘열심히 살아서 실패하면 뼈아프지만, 대충해서 실패하면 그저 그렇다. 그러니 대충 살자.’ 지금까지의 내 삶을 요약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나마 요새 차츰차츰 바뀌려는 의지가 꿈틀거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 중이다. 궁극적으로 폴리매스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실패가 자연스러워져야 할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해도 숱한 실패를 겪어야 할진대,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너럴리스트려면 실패는 당연한 과정 아니겠는가. 인발 아리엘리의 후츠파는 실패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에 좋은 책이다. ‘후츠파(chutzpah)’란 부정적인 의미로는 무례하고 공격적인 사람 또는 행동을 뜻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사람 또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유아 시기부터 청년 시기까지의 활동에 걸쳐 보여준다.

 

나는 크게 어린이 시기, 청소년 시기, 청년 시기로 나누어 내 지나온 과거와 비교해 보았다. 비슷한 부분에서는 공감이 되었고, 아닌 부분에서는 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이 시기1

 

쓰레기장 놀이터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직접 마주하고 피하는 경험은 아이들이 독립심을 기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38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유치원 앞마당에는 쓰레기를 모아 놓은 놀이터가 존재한다. 녹슨 의자, 부서진 판자, 벽돌 등이 뒤섞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몇 가지 기본적인 규칙만 인지한 채 자유롭게 논다. 놀이터에서의 질서는 아이들끼리 만들어 간다.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는 서로 협력하고, 의견 충돌이나 곤란한 상황 등의 갈등은 타협과 창의적인 해결책을 떠올린다. 미리 정해진 질서가 없는 이런 상태를 발라간(Balagan)’이라고 한다.

 

발라간을 통해 아이들은 이 세상에 처음부터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p.45).’ 사회적, 개인적 규제의 뚜렷한 경계가 줄어들고 표현의 자유가 늘어난 아이들은 무질서의 모호함을 자주 대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호함의 불안이 줄어든다. ‘모호함에 느끼는 불안이 줄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의외의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p.45)’

 

더 나아가 이스라엘 아이들은 유대교 명절인 제33일절에 스스로 모닥불을 피우고 지킨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불장난하면 자다가 오줌싼다고 했는데, 이 나라는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숲이 있다면 쉽겠지만, 도시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도심 곳곳에서 땔감을 모아 온다. 나무 덤불, 분리수거장, 쓰레기 배출 장소 등등. 그중 목재를 많이 얻는 곳은 공사 현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장 근처만 가도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하는 판국인데 참 대단한 나라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목재는 슈퍼마켓 카트를 빌려 옮긴다(빌려주는 것도 신기하다).

 

여기서 어른들은 지켜보는 역할만 한다. 불을 지필 때 땔감으로 뭐를 써야 하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체험하면서 익힌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닥불을 다루면서 부모가 함께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내 어린이 시절은 이와 비슷하다. 우리집 교육 방침이 정해진 울타리 내에서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괜찮다여서 나는 굉장히 자유롭게 자랐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방바닥에 폭삭 쏟아놓고 놀았다(다 놀면 말끔히 치웠다.). 비 올 때는 우산도 없이 사방팔방 돌아다녔고, 주택 옥상 배수관에서 나오는 물을 폭포라며 맞기도 했다. 역사를 배운지 얼마 안 되어서는 간석기를 만든다며 일주일 내내 돌을 갈았던 적도 있다. 결국 날카로워지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불장난도 해봤다. 폐가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큰불을 낼 뻔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까지 출동했고, 그때 놀란 기억에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말 실패가 뭔지, 걱정이 뭔지도 모를 만큼 자유분방과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도 큰 문제는 (미수에 그친 게 있긴 해도) 일으키지 않았다. 반장, 회장, 우주소년단, 지금은 극혐하는 축구까지 다 손을 뻗치고 다녔으니 내 어린 시절을 요약하는 단어도 발라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 시기2

 

실험을 마친 하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은 혼자 신호등을 건너거나 중심가에 외출하는 등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성장했다고 느꼈으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길을 익히거나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지름길을 찾을 때 특히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 p.88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보호자 없이 스스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 맞벌이라 저녁이나 되어야 부모는 귀가한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녀를 걱정하기는커녕 무계획으로 돌아다니기를 장려한다. 이런 즉흥적인 행동을 리즈롬(leezrom)’이라고 하는데, ‘리즈롬은 단순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즐길 힘을 뜻한다(p.89).’

 

리즈롬이 적용된 이스라엘의 교육 프로그램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하다. ‘기본적인 지식만 가르친 후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도록 유도(p.98)’한다. 평가 역시 교사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학습의 지표로 삼는다(p.98)’. 이는 교육의 목적이 지식 수입보다 경험에 무게를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란 발리에 교수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며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이해하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 위주 학습으로 다수의 실패를 경험하며 대응하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 하이디 그랜트 할보르손은 실패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까지 함께 제거된다고 이야기했다(p.111).’

 

이래서 내가 학교 수업에 관심이 없었나? 나는 과학 실험이나 책 읽기를 원했으나, 학교에서는 매번 시험을 위한, 성적을 위한 공부를 강요했다. 설득이나 이해는 없었다. 틀리면 혼나고 잘하면 당연하고 아주 잘해야 칭찬을 받았다. 틀려서 혼날 때마다 나는 우울해졌다. 나의 해결책은 노력하고 혼나느니 그냥 안 하고 혼나련다였다. 그리고 공부를 완전히 놔버렸다. 실패 원인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 지금에서야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요새 코딩 공부가 그렇게 즐겁다. 취업해야 하는데 공부라니! 어쩌면 이것도 취업 실패를 피하려는 개수작일지도 모르지만, 코딩 공부로 실패에 대응하는 법을 차차 익히는 중이니 조만간 취업 도전도 막막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 착각일 수도 있고.

 

청소년 시기

 

아이들은 조핌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운동에 참여하며 스스로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능력을 더 키워야 하는지 확인한다. - p.145

 

조핌은 보이스카우트나 우주소년단 같은 이스라엘의 청소년 활동 단체다. 지도자인 마드리크와 학습하는 사람인 하니크로 나뉘어 활동한다. 이들은 만남부터 색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당 책임자가 누구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등을 세세하게 알아야 안심하고 단체에 아이를 보낸다. 조핌은 마드리크와 하니크가 서로 얼굴도,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 채 안내문 하나로 만남을 정한다. 또 어른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이 있다. 조핌의 역사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에 청소년이 스스로 정립하고 활동한 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조핌에서 하나의 부족으로 활동하는 마드리크는 고등학생이 주로 맡고, 하니크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들의 활동 전부가 학생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조핌 멤버들은 리더십과 창의력, 즉흥성, 자발성 등을 기른다. 더블유라이프를 창업한 기업가 나르키스 알론은 조핌 활동을 자랑스러워 하며 조핌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p.146)”이라고 했다. , 메타인지를 높여주는 조직 활동인 셈이다.

 

내가 참여한 청소년 단체는 초5 때의 우주소년단이었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선택한 단체였다. 그러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 글라이더, 고무동력기, 물로켓 등을 만들어 교내 과학 대회나 전국 대회 참여가 단체의 목표였다. 나는 성격이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만드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애들 날개 붙이고 있을 때 나는 아직도 몸통을 붙잡고 있는 식이었다. 담당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그는 도와주지 않았다. 나 같은 애들은 진즉에 버리고 가능성 있는 애들만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나는 곧 흥미가 떨어져서 한 학기만에 관뒀다.

 

이런 비극적인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는 신경 써서 조직에 들어갈 일이다. 리더가 과연 조직원의 역할과 역량을 제대로 판단했는지, 창의력, 즉흥성, 자발성을 해치지 않는지 말이다. 내가 리더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 메타인지를 높이면 훨씬 좋겠지만, 성장에는 때가 없으니 성인이어도 팀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리라.

 

청년 시기

 

이스라엘 방위군은 이와 반대로 입대 대상자가 어떤 기술을 익혔는지 확인하고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다. - p.182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군 복무가 의무이다. 차이점은 남녀 구분이 없다. 남자는 32개월, 여자는 24개월 동안 의무복무를 한다. 또 우리나라처럼 만 20세 이상일 때 영장이 날아오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즉시 입대한다는 점이다. 입대 절차를 거치면 국방부는 개인의 검사 결과에 따라 부대에 배치한다. 이들이 병력 확보에 주목하는 부분은 지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임무와 감당할 수 없는 임무가 무엇인지,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배울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p.185)’

 

장교를 뽑은 방법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사관학교 졸업생이나 ROTC에서 장교를 뽑는다. 능력이나마 있으면 모르겠지만, 나랑 비슷한 나이인데 무능한 호구 가 소위랍시고 나대는 꼴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병사로 입대해 훌륭한 장교가 될 잠재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아 훈련 과정을 밟아야만 장교로 진급할 수 있다(p.187).’ 함께 훈련하던 동료가 장교로 복귀하니 수평적 관계에 무거운 분위기도 아니라 문제점이나 불만 등의 토론이 수월하다.

 

다방면에 걸친 풍부한 지식과 자료, 유연한 사고, 순발력 등 여러 자질을 고루 갖추지 않고는 임기응변이 불가능하다. - p.236

 

또 다른 희한한 문화가 있다. 입대하여 받는 물건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개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성 있게 꾸미는 것뿐 아니라 편의에 맞게 헬멧, 조끼, 무기를 개조한다고 한다. 이를 쉬프주르(shiftzur)’라고 하는데, 최고의 쉬프주르는 선망을 사고 동료 병사는 물론 지휘관까지도 따라서 장비를 손본다. 이런 열린 사고방식은 문제 해결 능력 키우기에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 공군 문화 중 두그리(dugri)’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을 이야기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두그리를 갖춘 사람은 부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고 명료하게 이야기한다(p.232).’ 감정을 미뤄두고 개선점 찾기에 집중한다. 실수와 개선점을 분명히 인지한다면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청년기에 군대에서 습득한 능력과 인맥은 사회에 나가서도 선순환으로 작용한다. 전우회를 통해 자신의 기업에 맞는 인재상을 찾을 수도 있고, 어떤 기술을 가졌다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또 이들은 언제 어디서 인연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과 만남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가게에 줄을 서다가도 대화를 걸어 토론을 하고, 회사에 가는 동안 지인을 여럿 만나기 때문에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인구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라던데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방식 유연해, 실패에 대응할 줄 알아, 인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국가도 스타트업이 성행할 수 있도록 법적 체제도 조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유대인이야,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린이 시기부터 청년 시기까지 모든 과정이 실패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이를 관통하는 한줄기 맥락은 메타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다. 우리의 지식과 무지를 객관화하여 판단할 수 있을 때 실패는 경험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된다. 단순히 실패를 많이 거듭한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감정과 원인을 분리하지 못한 실패는 역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인지를 높여 긍정적인 후츠파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메타인지를 높이면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사실 나는 일상이 실패의 연속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백수 경력만 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폴리매스이고 하루하루 나에게 부족한 역량을 깨달으면서 실패에 대응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기록 혹은 기억이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패한 감상문을 마무리하련다. 자연스럽게 실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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