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크래프트 : 좀비 섬의 비밀 마인크래프트 공식 스토리북
맥스 브룩스 지음, 손영인 옮김 / 제제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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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사촌 남동생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마인크래프트(이하 ‘마크’》를 엄청 좋아한다. 산문 독서 촉진 겸 선물로 사줬는데, 그만 제목을 잊고 중고로 같은 책을 또 선물했다. 졸지에 두 권을 갖게 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 시리즈 새 책을 선물하고 중고는 내가 받아왔다. 받아온 김에 읽었다.


나는 ‘마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3D 멀미가 심해 조금만 플레이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유치한 게임이라는 편견과 내 취향이 아닌 그래픽도 한 몫 했다. 최장 플레이 시간이 한 5분이나 될까? 흙 깨고 나무 깨다 좀비한테 맞고 크리퍼 터져 죽은 후 멀미에 시달리며 종료한 것이 나의 ‘마크’ 경험 전부다. 그러니 그 세계관이며 조합이며 등등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른다. 나의 남동생들이 ‘마크, 마크’ 노래를 부른 전적이 있어, 그나마 용어 정도만 얼추 알고는 있었다.


이런 사전 경험 덕분에 독서 기대치는 엄청 낮았다. 아무리 『월드 워 Z』의 저자가 썼다고 하더라도 애들을 겨냥한 소설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쉽게 말해서 억지로 읽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나 대반전. 생각보다 재밌었다! ‘마크’를 전혀 모르지만, 한 소년의 모험이자 마크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생각하니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소설로 읽혔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정육면체로 가득한 세상에서 눈을 뜬다. 아무런 지식도, 기억도, 물건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이름 모를 섬에서 생존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실수투성이에 겁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낯선 세상도 모자라 돌아가는 방식이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좀비’나 ‘크리퍼’ 같은 괴물들이 나타나니까. 그러나 주인공은 차근차근 세계의 법칙을 익히며 성장해 나간다. 물론 자신의 업적에 취해 우쭐대다가 다시 모든 걸 망쳐 버리기도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종국에는 더 이상 현재의 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각오까지 다지게 된다.


주인공은 실수로부터 ‘마크’ 세계의 블록과도 같은 법칙을 깨닫는다. 스스로 ‘정육면체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행동으로, ‘계획한다, 준비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연습한다, 기다린다, 인내한다’의 6가지 과정을 하나의 블록처럼 대하면 어떤 두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깨달았다고 해서 실천까지 쉬운 건 절대 아니다. 두려움에 짓눌리거나 생존 본능이 앞서면 깨달음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실천을 위해서는 늘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새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어린 시절에 꼭 필요하다.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하다. 실수와 실패를 구분하는 일, 그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이는 일, 늘 용기를 지니는 일 등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익히기는 쉽지 않는데,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고 쉬운 스토리로 필수 요소를 안내하는 이 소설은 자기계발의 한 장르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 ‘마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으며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좀비 섬을 모험하는 동안 쌓아 둔 교훈 모음집도 있다. 총 36가지로 정리되어 있으니 틈틈이 참고하기에도 좋다.




나처럼 자기계발 요소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독서해도 썩 괜찮은 소설이다. ‘마크’의 기본적인 조합법도 서술되어 있어서 게임 지식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요즘에는 공략도, 모드도 많아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니, 순정의 맛을 음미할 수도 있겠다.


서점을 가 보니 시리즈도 많았다. 한 10권 내외 되는 듯하다. ‘마크’에 흥미가 있다면 수집의 즐거움도 느끼……려나? 아무튼 주변에 ‘마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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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 세트 - 전4권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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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두고 올해 드디어 다 읽었다.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내용도 없는 SF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소홀해진다고 할까.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밀려 완독의 날짜가 오늘이 되었다.


총 4권으로 구성된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는 전투용으로 제작된 보안유닛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라는 식의 정체성 찾기는 아니다. 주인공 살인봇(본인이 그렇게 칭한다.)은 과거 어느 행성에서 폭주해 인간을 대량 학살한 전적이 있다. 보안유닛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그의 기억을 재설정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빈틈이 생겨 그는 지배 모듈을 해킹할 수 있었다.


1권 「시스템 통제불능」에서는 살인봇이 불법 채굴 중인 기업 ‘그레이크리스’로부터 ‘보존 연합’ 연구팀을 구하면서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다.


2권 「인공 상태」는 과거의 폭주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행성 ‘라이하이랄’로 향하는 여정이다.


3권 「로그 프로토콜」에서는 ‘그레이크리스’의 실체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하게 된다.


마지막 4권인 「탈출 전략」에서는 ‘그레이크리스’의 협박으로 인질이 된 ‘보존 연합’의 대표 ‘멘사 박사’를 구하면서 살인봇은 봇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활동하는 정체성을 획득한다.


SF 가방끈이 짮은 나지만, 개인적으로 꽤 괜찮았다. 주인공 살인봇의 성장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는데, 머신러닝으로 지속적인 학습이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고개도 끄덕여진다. 또 자체적으로 쓸모없는 웨이트를 제거할 수도 있고, 자체적으로 판단까지 가능하니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어쩌면 살인기계가 ‘불쾌한 골짜기’ 영역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스타워즈〉나 〈아이로봇〉 같은 감동은 별로 없지만, 킬링타임용으로 그냥 저냥 읽을 만하다. 단, 가격은 좀 비싸다고 생각되니 굳이 소장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 난 무지성으로 구매한 까닭에 고려하지 못했다. 다른 소설 살 때는 여러 고민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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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늘부터 개발자 -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입문 개론
김병욱 지음 / 천그루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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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교육을 수료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빅데이터 과정을 배우면서 딥 러닝을 공부했고, 인공지능 개발자를 꿈꿨지만, 구글링을 해보니 학위라는 벽이 꽤 높았다. 나는 만년 문과생에 이제 막 배웠으니 비빌 깜냥이 못 되어 포기했다. 어차피 내 노트북으로는 제대로 된 학습도 못 시키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여겼다.


한 동안 현타를 느끼며 다른 길을 고민해봤지만, 여전히 코딩이 재밌었다.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만들 줄 아는 것은 없어도 참고서의 코드를 입력하며 돌아가는 로직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코딩 테스트 공부 역시 퀴즈 같은 느낌이라 매일 고민하는 맛도 좋았다. 그러나 이런 취미로는 개발자가 될 수 없으니 각 잡고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친 심신에 위로도 좀 필요했고.


그러다 우연히 『오늘부터 개발자』의 저자 인터뷰 기사를 봤다. 포트폴리오 고민으로 검색하던 도중이었다. 저자는 오프라인으로 쌀을 팔다가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고, 부트캠프를 통해 백엔드 기술을 배워 6개월 만에 취업했다고 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이 정도는 해야 취업이 되는 구나, 라는 현실도 자각했다.


아무튼, 한탄을 섞느라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길어졌는데,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책이었다. 개발 직무의 현실과 각 분야에 대한 세세한 설명, 비전공자에 대한 응원까지.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개발 공부에 임할 수 있었다.


※ 방향을 확실히 하자


개발자의 종류는 엄청 다양하겠지만, 책에서는 웹 서비스로 한정해서 설명한다. 클라이언트(사용자)의 화면을 만드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서버(운영자)를 개발하는 ‘백엔드 개발’, 서비스의 안정을 위해 개발과 운영을 함께 관리하는 ‘데브옵스 개발자’, 수집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저자는 이중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직무를 확실히 정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배워야 할 프로그래밍 언어가 명확해지고 방향이 확실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되기 위해 방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직무를 정했다 해도 현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ICT 교육에 관심을 가졌을 때, 언론에서는 ‘개발 직군이 취업 잘 된다’, ‘개발자는 연봉이 세다’ 등의 기사를 남발했다. 그러나 멘토 역시 이러한 내용에 부정적이었고,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실제로 취업 사이트의 개발 직군 연봉을 찾아봐도 평범하다. 하지만 일의 양도 그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쓰는 앱이나 접속하는 홈페이지 등에 문제가 생기면 곧장 해결해야 하는 게 개발자다. 버그는 어디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니 항시 대기 상태여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개발자는 자신의 역량만큼 연봉 협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실력이 좋으면 처음에는 낮아도 곧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내가 코딩에 재미를 느낀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프로젝트 당시 몇 날 며칠 에러만 나던 코드가 정상 작동할 때의 쾌감! 그 몇 줄을 위해 밤을 지새며 구글링하고 함수와 라이브러리를 연구했다. 지금도 전에는 내가 몰랐던 언어의 기능을 공부하면서 재미를 이어가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개발자가 천직일 수도 있다.


※개발자가 되는 방법


개발 공부는 당장 시작하되, 작은 규모 꾸준히 지속해라. 저자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격하게 동의하는 발언이다. 개발 공부는 시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 자격증 공부하듯이 하는 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 내 경험에 의하면, 에러에만 구글링으로 몇 시간을 쏟을 수도 있고, 매일 10시간씩 코드를 보고 있으면 화면을 때려 부수고 싶을 때도 잦았다. 시간 여유가 많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니라면 꾸준히 배우면서 익숙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배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책에서는 개발자 부트캠프, 국비지원 학원, 온라인 강의 등을 소개한다. 구글링이나 해당 언어의 도큐먼트, 유튜브, 혹은 시중에 판매하는 책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이중 국비지원 학원에서 진행한 ICT 교육을 받았는데, 사실 멋모르고 들어간 거라 좋은지 나쁜지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커리큘럼은 개떡 같았지만 내가 코딩에 재미 붙였고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익혔으니 독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정도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면 온라인 강의나 독학으로 배우면 될 것이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부트캠프나 국비지원 학원 등을 노려보면 좋을 것 같다. 버티는 거야 개인의 몫이고.


개발자를 준비하면서부터 코딩 테스트 공부와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하면 좋다고 한다. 또 그날그날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는 블로그를 하나 만드는 것도 추천한다. 전자는 취업을 위한 대비이고, 후자는 취업이든 개인 공부든 도움이 엄청 된다. 보통 문과생 비전공자는 프로그래밍 로직을 어려워한다는데 나는 그다지 어려움을 못 느꼈다. 프로그래밍 로직이 글쓰기 로직과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처음 배우는 당시에 나는 그날 배운 내용을 블로그에 매일 기록했었다. 아마 코드 이해력은 그때 확 상승한 것 같다.


추가로 깃허브를 이용해 매일 공부 파일을 업로드하면서 잔디밭을 가꾸는 것도 추천한다. 대부분 현직자들도 이야기하는데, 개발에 대한 개인 열정을 엿보는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나도 듬성듬성한 잔디를 빽빽이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면접 준비나 기업 선택 고려 사항 등을 안내한다. 개발자가 되고 싶은 비전공자라면, 혹은 그쪽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세상 모든 개발자 지망생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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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스트 커리어
스즈키 유 지음, 이수형 옮김 / 올댓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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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도움될까 싶어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으나 안 읽으나 내게는 똑같았다. 좋아하는 일, 많은 급여, 업계나 직종, 일의 즐거움, 성격 테스트, 직감, 적성에 맞는 직업 등의 선택 기준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일을 하는 이유는 행복한 미래 때문이어서, 7가지 덕목을 기준 삼아야 한다. 자유, 성취, 초점, 명확성, 다양성, 동료, 공헌이 그것이다. 뭐 이런 기준으로 직업과 기업 리스트를 정리하고, 직장 내 악을 점검한 후 편향을 고쳐 가면서 직업 만족도를 올리면 최고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행복한 미래를 꾸릴 수 있다.


음, 저자도 이런 기준으로 직업을 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인정한다. 때문에 각 항목별 점수를 매겨 판단할 것을 권한다. 실제로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복잡해서 관뒀다. 우울해지기만 하고. 직종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이고, 비교 대상이 몇 개 생겼을 때나 시도하면 의미 있을 듯하다. 맨땅에는 헤딩하고 대가리 깨질 뿐.


하, 일본 갬성 묻은 자기계발서는 걸러야 했는데. 맨날 당하고 또 당했다. 다음부터는 일본 작가의 자기계발서는 무지성으로 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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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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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 출신답지 않게 요즘의 나는 문학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했다. 실용적이지 않고 시간 아깝다고 여기며 읽기를 거부했다. 취업이 급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였다. 문학 독서는 뭔가 한가로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억지로 멀리했다. 그렇게 안 읽다 보니 이제는 읽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반향만 울릴 뿐,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래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을 사랑했기에 언제나 갈증은 남아 있었다. 취업하거든 마음 편히 읽으려고 쟁여 둔 소설이 독서 목록 한 쪽에 즐비했다. 이런 마음 가닥에 딱 알맞은 제목의 책이 등장했으니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구원의 광명 같은 책은 앵거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였다.


부제는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으로, 현실 세계의 도구로써 발명품이 아닌 뇌 과학과 심리적인 발명품을 지칭한다. 어떠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반응이 발현된다. 그러한 장치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작동법을 25장에 걸쳐 안내한다. 각 장의 마무리에는 해당 발명품을 더 느낄 수 있도록 관련한 문학 작품을 수록했다.


※문학 발명품과 뇌 과학


잠깐 대학 시절을 회상해 보면, 문학의 구성 요소를 배울 때 뇌 과학은 전혀 없었다. 좋은 문학의 구조가 어떻고, 이렇게 쓰면 안 되고, 저렇게 쓰면 안 되고, 이런 게 좋은 글이고, 저런 게 나쁜 글이고…….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필요한 지식이겠으나, 어디까지나 글쓰기 방법론 한정이었다. 내 글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개인의 감각 역량일 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고딩 때의 문학 시간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심했지. 문학을 분석해서 외우고 문제 풀어야 했으니까. 한 사람의 독자 입장에서는 개 쓰레기 같은 교육 방식이었다. 독서의 재미는 저런 것들이 앗아갔다. 좀 화가 나는데.


아무튼, 저자는 진부한 방식으로부터 문학을 건져 올렸다. 문학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유용한 장르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감정적 테크놀로지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p.26).”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고 진정시켜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으며 용기를 끌어올렸다. 이 용기는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먼저 용기의 뇌 과학적 출처는 편도체다.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 재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두려움을 자극해 아드레날린과 천연 오피오이드 진통제 혼합물을 방출하게 해, 어떠한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이 힘의 본래 생물학적 목적은,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신경성분을 한 가지 더하면 용기로 전환될 수 있는데, 그 성분이 바로 옥시토신이다(p.65).”


피를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의 열기, 고통을 덜어주는 천연 오피오이드의 열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옥시토신의 열기. 이 신경화학적 묘약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하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 한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heart flame)이 바로 용기이다. – p.67


호머는 두려움에 더할 옥시토신을 ‘찬가’라고 칭했다. 전쟁에 나선 이들이 ‘함께’ 신을 향해 ‘찬가’를 노래하니 용기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리아드》 속 인물들과 찬가를 부르며 자신에게 내재된 용기를 북돋았다.


혹은 요정이 나타나 행운의 반전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유치하게 들린다면, 그 안에 숨겨진 발명품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뇌가 (투쟁-도피 반응을 촉발시키는) 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좌뇌가 (우리를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달리 말하면, 우뇌는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쉬운 반면, 좌뇌는 잘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다(p.201).’ 즉, 치킨만 반반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도 희망 반, 절망 반의 세트 메뉴인 셈이다.


관점에 따라 절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고 희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는데, 동화(fairy tale, 요정 이야기)가 전하는 행운의 반전은 좌뇌를 자극해 우리를 낙관적이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존재한다. ‘첫째, 좌뇌에게 스토리는 절대적 규칙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좌뇌는 동화의 반전이 그저 우리가 운이 좋을 수 있다고,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상기해줄 뿐이다. 이러한 암시는 우리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기존에 가진 좋은 것들에 감사하도록 한다(p.211).’ 반면, 우뇌는 비관론을 펼치는데, 이는 우리의 사망률을 높이는 것과 상관있다. 자살, 심장병, 뇌졸중 같은.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이 낫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어느 쪽이 되었든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낙관론이 우세일 때는 아마 균형잡기가 쉬울 것이다. 현실은 행운보다 불운이 더 가깝고 빈번하니까. 반대인 경우라면 동화의 반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가 무려 23가지나 더 존재한다. 로맨스, 분노, 호기심, 슬픔, 창의성 등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발명품들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속한 대학 팀인 ‘프로젝트 내러티브’에서 찾아낸 발명품은 무려 수백 가지. 이런 문학 이론서라면 100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으니 추가로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나 스스로 발명품을 찾아내는 공부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익숙한 문학 작품을 마주하고, 또 낯선 작품도 만나면서 다시금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샘솟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 몇 권을 구매했다. 이제는 마음 편히 먹고 찬찬히 읽어볼 요량이다. 그간 삶이 퍽퍽하다고 여겼는데, 되돌아보니 문학을 소홀히 대했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반성하면서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는 문학을 좀더 가까이 대해야겠다.


※문학에 대한 태도


중세 성직자들은 고대 서사시에 주석을 달며 교리에 대한 설교로 바꿨다. 이교도의 알레고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수정했다. 가만 보니 이 꼬라지는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작품을 분해하고 단어를 해석하며 ‘A=B’로 매칭하는 작태.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힘이 없는 문학은 수술대에 묶인 실험체일 뿐이었다. 교과서나 지문에 수록되길 거부한 작가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나도 배우는 내내 더럽게 재미없어서 판타지 소설로 관심을 돌렸다.


그 교육 방식은 나의 한국 문학 경시 사상의 뿌리이기도 하다. 왠지 한국 문학을 읽으면 해석해서 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그 불쾌감이 독서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한참 문학에 빠져 있던 시기에 나의 지론은 이것이었다. ‘문학은 읽는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 분석과 해석은 비평가의 몫이며, 독자는 그저 독서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지금 보니 나 한정으로 알맞은 논리였다. 재미없는 독서는 죽은 독서다. 앞으로 내가 가질 문학에 대한 태도다. 분석하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정답 찾지 말고, 억지로 느끼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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