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한 밥상 -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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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독이 심한 나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초중고 국어 교육의 폐해로, 한국 소설만 접하면 그때의 버릇이 기어 나와 읽는 재미를 해친다. 최근 소설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90년대 이전 소설이라면? 오우, 치즈 크러스트! 읽기도 전에 머릿속에 노잼노잼노잼노잼…….’이 도배된다.

 

박완서 작가님의 대범한 밥상역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접했다. 처음에는 필사할 목적으로 구매했다. 필사 도중 귀찮기도 하거니와 어김없이 재미를 느끼지 못해 접어둔 채 책장에 오래 꽂혀 있었다. 그러나 한 번 펼치면 재미없어도 마지막 장을 덮어야 한이 풀리는 버릇 때문에 얼마 전에 다시 펼쳐 들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련다. 역시 노잼이었다. 다만 내가 노잼이라고 느끼는 한국 소설 종류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았다.

 

대범한 밥상의 작품들은 전쟁의 흔적을 지우며 발전에 열 올리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돈의 위상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를 점했다.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가 전흔을 안고 살아가지만, 다음 세대의 관심에 전쟁의 고난은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큰돈을 만질지 고민하고, 누군가의 선행은 속물적 계산이 담긴 행동으로 매도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진정성은 숨겨지지 않는 법이다. 독자인 우리는 물욕의 범람 속에서 버텨내는 인간성을 목도하고야 만다.

 

10편의 소설은 각각 다른 인생을 이야기하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면서 하나의 큰 줄기를 만들었다. 부각 되던 전쟁은 점점 희미해지고 스쳐 지나가던 현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전흔이 사라질수록 상실되거나 꾸며진 인간성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만큼 꿋꿋이 지켜낸 인간성은 더 크게 빛났다. 이런 메시지는 현재에도 적용이 되며, 앞으로도 안 변하지 않을까.

 

내가 노잼이라고 생각한 한국 소설의 공통점은 읽고 나면 불편하다는 점이다. 모를 때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알게 되니 씁쓸해지는 사실 같은. 전쟁의 아픔에 대해 모를 때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푸념이나 한탄으로 취급했지만, 이런 작품을 읽고 나면 그런 행동들이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가족한테 그랬다면 강도가 심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느낌이 싫어 재미없다는 편견을 내세워 읽기를 거부한 것이다. , 원인을 알았으니 고쳐지려나. 아무래도 단박에 나의 편견이 깨질 것 같지는 않다.

 

문학의 기능은 다양하다. 그중 나의 독서 편력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성공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상문에 소설의 내용이 별로 없으니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렴 어때. 다음에 이와 같은 한국 소설을 읽을 때는 거부감이 덜하지 않겠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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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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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 심판은 사후 영혼의 행방을 결정하는 재판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총 네 명으로, 피고인인 아나톨 피숑, 변호인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 재판장 가브리엘이다.

 

아나톨 피숑은 폐암 말기 수술을 받다가 사망해 천국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수술 전보다 몸이 가볍다고 좋아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카롤린은 측은한 마음에 사실을 알리는 것을 미룬다. 베르트랑, 가브리엘과 함께 재판을 받을 때가 돼서야 아나톨은 자신이 죽었음을 안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으나 천국의 기술(?)로 죽는 상황부터 장례 절차까지의 영상을 본 후 체념하며 재판에 임한다.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 피숑의 부정적인 현생의 결과를 언급하고, 반대로 변호인인 카롤린은 그의 장점을 이야기한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가브리엘은 아나톨에게 환생하여 다시 한번 삶을 사는 삶의 형을 내린다. 그러나 예정과는 다르게 아나톨은 천국에 남아 현생에 이어 재판장이 되기를 원하고, 그가 겪어야 했던 환생은 가브리엘이 대신 하면서 막이 내린다.

 

사후세계나 종교를 믿지 않지만, 상상의 영역에서는 자주 떠올리곤 하는 까닭에 읽는 내내 재밌었다. 곳곳에 있는 유머도 한몫했다. 이승에서는 재판하던 판사가 저승에서는 피고가 되는 아이러니, 2000년 전 로마 사람인 가브리엘이 현대화한 천국의 최신 기술을 어려워하는 일, 아나톨 피숑의 죽음이 알고 보니 천국의 실수였던 것, 환생 후의 삶을 계획하는 시나리오 작성 등등.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환생 장면이다. 분명 가브리엘은 아나톨에게 삶의 형을 내렸다. 보통 환생을 축복으로 여기는데 이 작품에서는 형벌이다. 그럼에도 아나톨이 환생을 주저하며 가브리엘에게 대신 가기를 요청하자 그녀는 받아들인다. 자신에게는 육와(肉化)의 그리움이 있어서 다시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형벌이었던 환생의 개념이 다시 축복으로 바뀐 셈이다. 지금의 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삶을 다시 사는 계기는 형벌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을 지겹게 살아냈던 아나톨에게는 다시금 사는 게 형벌이었고, 2000년 동안 밤낮없이 사자를 재판했던 가브리엘에게는 축복이자 기회였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그러니 나에게 환생이란 축복이 되기 위해 현생을 열심히 살자따위의 각오는 들지 않았다. 하도 거짓 갬성으로 자신을 속여온 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박하게 지금 넘치는 의욕에 부채질 정도 되었다 정도. 뭐 책을 재밌게 읽었으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니겠는가. 순조롭게 독서를 계속하고 있고, 간간이 기록도 하는 중이니, 유지만 한다면 각오 없이도 환생은 축복이 되리라. 물론 천국이든 환생이든 믿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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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완전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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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추리소설은 대부분 전개가 이렇다.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나 탐정이 도착한다. 증거를 찾는다. 증거를 토대로 범인을 찾는다. 범인을 응징한다. 그래서 대개 추리소설을 볼 때면 누가 범인인지, 혹은 추리가 타당한지 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 읽고서 10분 동안 , 지린다……. , …….” 하고 감탄사만 내뱉었다.

 

병정 섬이라는 곳에 10명의 사람이 초대된다. 그들은 각자 기록되지 않은 범죄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심증은 확실하나 물증이 부족해 법의 처벌을 피해간 것이다. 살인자는 그들을 섬에 가둬두고 옛 동요에 맞춰 한 명씩 죽여나간다. 그렇게 모두가 죽었으나 살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추리소설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장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다르다. 옛 동요인 병정 노래에는 10명의 병정이 하나씩 사라지는 과정이 적혀 있다. 그리고 살해는 가사대로 진행된다. 누가 어느 대목으로 죽을지 예상하면서 보는 맛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범인이 있음을 암시하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처럼 보여 누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한다. 인원이 줄어들수록, 의심이 깊어질수록 죄의식도 깊어져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에서 벗어난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책 후반부에 나오는 윌리엄 블로어의 생각으로 함축될 것이다.

 

보이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막연하고 불가사의한 위험뿐이었다. - p.237

 

살인극이 끝난 후 에필로그에서 부국장에게 사건을 보고하는 런던 경찰이 나오는데, 아마 그들의 심정이 내 심정이었으리라. 나는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경찰의 의견에 내 생각을 보탰다. 그들 중 범인이 없는 게 아닐까, 있다면 오페라의 유령처럼 집 구조를 개조해 비밀 공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베라 클레이슨이 마지막에 지각한 것처럼 제 3의 인물이 범인일까 등등.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요?” 라는 부하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죽인 건데!”를 연신 외쳐댔다.

 

다행히도 작가의 배려로 궁금증 병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되었다. 대미 장식으로 환상적인 릭트쇼를 풀어준 덕분에 어떤 광고처럼 속이 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여운이 남을 정도니 사람들이 자주 추천한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진작에 읽을 걸……하는 아쉬움도 함께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재밌을까. 입덕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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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세종 더 그레이트 킹 세종 더 그레이트
조 메노스키 지음, 정윤희, 정다솜, Stella Cho 외 옮김 / 핏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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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개는 필요 없다. 이미 제목에서 이 책의 소개는 끝났다. Sㅔ종. 영문자 ‘S’와 섞어도 잘 어우러지는 멋진 제목이다.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이 주제인 역사판타지 소설이다. 작가가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낸 이야기이기에 판타지라는 부연 장르를 덧붙인 듯하다. 어쨌든 기반은 실제 역사이고 보는 데 전혀 지장 없으니 즐기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두말할 필요 없이 한국사의 근본 중의 근본, 세종대왕이 주인공이라는 점. 둘째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유용하고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문자, 한글의 탄생을 다뤘다는 점. 마지막은 이 책을 쓴 분이 외국인 작가라는 점이다. 게다가 스타 트렉시리즈의 저자라고. 스타 트렉시리즈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꽤 많은 매니아층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덕분에 세종대왕과 한글의 위대함이 세계 곳곳에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물론 뼛속까지 고증을 원하는 역사학도나 그런 부류라면 불편한 부분도 있겠지마는, 소설이니까 봐줄 수 있지 않으려나. 개인적으로는 세종대왕과 한글에 누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려거든 국뽕 한 사발 거하게 들이켜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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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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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읽었다. 문학을 하도 안 읽어 버릇했더니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위기절정부터는 깊이 몰입해 읽어 7월의 독서 시간을 아꼈다. 역시 소설의 꽃은 위기와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면 등장인물 성격과 그에 따른 행동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주로 다루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한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읽었는가. 그녀의 세 번째 작품 맨스필드 파크도 묘사가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위기부터 시작해 발단으로 돌아가는 요즘 소설과 달리 옛 소설 특유의 느릿한 발단,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고 변명한다. 거기다 집중력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니, 이게 제일 컸구나. 아무튼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분이시지만, 제인 오스틴 선생께 나의 소홀한 태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맨스필드 파크는 워드 가의 세 자매 결혼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둘째(레이디 버트럼)가 결혼을 제일 잘했고, 첫째(노리스 부인)는 보통이며 막내(프라이스 부인)가 가장 가난하다. 막내의 질투로 세 자매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가 사는 것에 비해 자식이 늘어난 프라이스 부인이 화해를 청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세 자매는 친교를 회복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노리스 부인이 막내에 대한 배려인 척하며 버트럼 경에게 막내의 딸을 집안에 들여 후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 그 결과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포츠머스의 가난한 집을 벗어나 맨스필드 파크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이 벌이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며 종국에는 각자에게 걸맞은 결론으로 끝맺는다.

 

굵직한 등장인물을 나열하자면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와 버트럼 가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 버트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럼 경과 부인인 레이디 버트럼’, 첫째 아들 톰 버트럼’,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줄리아’, 패니의 첫째 이모인 노리스 부인’, 노리스 부인의 남편이 죽고 목사관의 새 주인으로 온 그랜트 부부’, 그랜트 부인의 남동생 헨리 크로포드’, 여동생 메리 크로포드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이야기를 이끈다. ‘패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되듯 온 탓에 눈치도 보이고 무시당해 굉장히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버트럼 일가 중 누구도 패니를 사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둘째 사촌오빠인 에드먼드가 패니를 배려하여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산책도 함께 했다. 그는 패니를 위해 자신의 세 마리 말 중 하나를 패니가 탈 수 있는 얌전한 암말로 교환까지 해 올 정도로 사촌 동생을 위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패니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남자는 에드먼드뿐이었다.

 

에드먼드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망나니 같은 형을 두었으니 아버지 버트럼 경이 사업으로 안티과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 대행으로 집안을 돌보았다. 집안의 평판에 위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예의 없는 언행을 극도로 경멸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곧은 심성이라도 사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눈앞이 흐려지는 법이다. 맨스필드에 크로포드 남매가 오자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의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활달한 성격에 매료되고 만다. 패니는 옆에서 그런 에드먼드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니, 이유인즉슨 에드먼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로포드 양 역시 에드먼드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는 재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남에게 주어지는 목사 서품을 받아 영지의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크로포드 양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외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의 예의 없는 언행은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지방 목사는 재산도 얼마 없으며 사회의 시선에서도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드먼드 앞에서 목사직을 비꼬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에드먼드는 완강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에드먼드에게서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품이나 외모가 너무 훌륭한 그였다. 크로포드 양이 관심을 완전히 접지 않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설득하면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고 욕심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전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톰이 중병을 앓고, 그녀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와 에드먼드의 첫째 여동생이자 러시워스 부인인 마리아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에드먼드가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톰의 병환을 에드먼드가 목사직을 포기하고 재산 상속받는 기회로 삼기를 바랐고, 또 눈만 감으면 야반도주도 아무 일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손한 태도에 에드먼드는 절망했다. 그는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이 그녀의 성정은 원래 착하나 가정교육과 주변 사람이 망쳤다고 되풀이했다. 그것도 잠시, 대부분 시간이 약인지라 에드먼드는 크로포드 양을 잊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목사직에 전념했다.

 

가장 악독한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인 크로포드 양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이다. 이 자식은 극에서도 그렇지만 읽고 있는 나도 기만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랜트 부인의 동생으로 찾아온 헨리는 누나의 소개로 버트럼 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트 부인은 마리아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동생인 줄리아와 잘해보기를 바랐다. 헨리의 바람기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등장하자 마리아와 줄리아 모두 그에게 반했다. 잘생기진 않았으나 다부진 몸매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과 행동이 숙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었다. 한번에 눈치챈 이 자식은 대놓고는 줄리아에게, 은밀히는 마리아에게 관심을 줬다. ‘대놓고은밀히가 나란히 있으면 십중팔구 진심은 후자에 통한다.

 

크로포드 양은 헨리에게 장난치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경고하지만 진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기남의 특권 정도로 여겼다. 헨리는 결국 마리아와 줄리아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맨스필드 파크를 떠난 것이다.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사랑하진 않지만 예정되어 있었던 러시워스 씨와 결혼했고, 줄리아는 원래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간 언니에게 고소함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했다. 헨리가 사라지면서 맨스필드 파크에 평화가 깃들었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부인이 되어 신혼여행을 떠났고, 마음이 풀어진 줄리아도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에드먼드와 패니, 이모부와 두 이모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헨리가 돌아왔다. 그는 마리아와 줄리아가 없자 패니가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패니는 자신의 매력에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패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나기로. 패니를 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진심이 되어갔다. 유혹되지 않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패니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차차 그녀를 배려하며 행동했다. 그녀가 대화를 거부하면 즉각 멈췄다.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오빠 윌리엄이 진급에 거듭 실패하자 자신의 숙부이자 제독인 크로포드 경을 설득해 윌리엄의 진급을 도왔다. 윌리엄이 복귀할 때 그는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함께 가기를 청했다. 패니가 포츠머스의 본가에서 지낼 때 (그녀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 친부모 집이었지만 힘들어했다.)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주고 맨스필드 파크로 돌아갈 때는 자기 남매와 함께 돌아가기를 청했다. 패니는 그의 지속된 호의에 점차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감정이 차차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도 이 자식에서 어쩌면으로 변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자식은 개자식이 분명했다. 결국 마리아와 야반도주하며 버트럼 가에 먹칠한 것이다. 결국, 패니의 안목이 옳았다. 한순간 패니와 헨리의 이어짐을 응원한 나 자신에게도 쌍욕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헨리의 자폭으로 맨스필드 파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번외로 가장 싫었던 인물은 패니의 첫째 이모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며 잘되면 자기 덕분, 안 되면 남 탓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또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뭐 하나 하면 생색이란 생색을 그렇게 낸다. 패니가 쉬는 꼴은 한순간도 참지 못하며 패니가 말을 하면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긴다. 사실 패니를 들였던 것도 자신의 남편 노리스 씨가 중환에 시달리기에 그가 죽으면 적적할 테니 일단 버트럼 가에 들여 키우다, 노리스 씨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 살면 된다는 이유로 버트럼 경을 설득했었다. 그러나 정작 노리스 씨가 죽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패니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뭐 덕분에 패니의 결말이 아름다웠지만, 그 행태가 괘씸했다. 노리스 부인의 결말은 그에 걸맞았다. 마리아와 러시워스 씨가 맺어진 것은 노리스 부인의 노력이었다. 가장 아낀 조카도 마리아였다.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노리스 부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 책임으로 이혼하고 온 마리아와 함께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 생활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오냐오냐 키워진 터라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데, 둘의 케미는 기대할 만한 정도이리라.

 

소설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므로 여성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의 여성상이나 생활상을 중심으로 봐도 재밌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표면적으로 즐긴 까닭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인물과 사건뿐이다. 이렇게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것으로 됐다고 여긴다.

 

이성과 감성은 읽고 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자매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하나는 감성적이어서 둘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다가 각자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감정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정말 즐겁게 읽어 두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도 올곧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헨리 같은 한량 위컴이 나온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답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해하면서 시작되어 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맨스필드 파크보다 오만과 편견이 더 재밌었다. 묘사에 있어서는 이 책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어쨌든 오스틴 선생의 책은 읽는 재미가 확실하니, 구비해둔 다른 소설 몇 권도 차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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