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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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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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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의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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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다윈과 동급이라 할 수 있다. - p.22
 
대학생 시절, 과제가 너무 하기 싫었다. ‘문예창작과’의 특성상 레포트의 대부분은 창작이었다. 단편 소설, 시, 비평, 동화, 시나리오, 희곡……. 과제마다 기한은 널널했다. 보통 2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문제는 항상 레포트 어셈블로 도래했다는 점이다. 여력이 없던 나는 선택과 집중으로 관심 분야 외 과제를 포기했다. 관심 분야는 구상하는데 기한을 다 쓰고, 제출 하루 이틀 전에 핫식스의 힘으로 밤새우며 과제를 마쳤다. 미루고 미루어 데드라인에 걸쳐 끝낸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는 시공을 초월한 금언(金言)도 미루기의 고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이유 없이 미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이 볼 때는 게으름으로 보이겠지만, 당사자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치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합리화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제대로 봤다. 미루기는 대체로 정신승리를 위한 합리화에 불과하다.
 
저자도 자신의 글쓰기를 미루는 행위를 합리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합리화가 왜 타당한지 풀어낸다. 미루기를 연구하는 교수 조 페라리의 대화를 통해, 로마의 위대한 왕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 귀의를 미루지 않아 성인이 된 가상의 인물 ‘엑스페디투스’를 통해,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통해, 희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통해, 메모가 아포리즘으로 유명해진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를 통해, 펜실베이니아의 ‘폴링워터’라는 별장을 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통해 미루기가 얼마나 위대한 행동인지 설명한다. 아니, 위대하진 않더라도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고 있다.
 
주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미루다’를 검색하면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정한 시간이나 기일을 나중으로 넘기거나 늘이다. by 네이버 사전
 
그러니까 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 말고 나중에 하겠다는 뉘앙스이다. 여기서 나는 미루는 행위와 하지 않는 행위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일이 지나더라도 어떻게든 해냈다면 그것은 미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결과물이 없다면 그것은 하지 않은 것이다. 위에 저자가 예로든 인물들은 전부 당장 무엇을 하진 않았지만 결과물들이 있는 존재들이다. 다빈치가 주조하려고 했던 대형 청동상 <그린 카발로>가 구상에서 그쳤어도 미뤄졌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다양한 결과물 덕분이다. 다빈치 사후 500년이 지나 그의 구상은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 찰스 텐드가 고용한 조각가 니나 아카무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니 이 역시 미뤄진 결과물이다.
 
그 중 ‘엑스페디투스’만 예외다. 기독교에 귀의하려고 하자 까마귀로 변장한 악마가 조금만 더 미루라고 종용한다. 그는 까마귀를 짓밟아 죽이고 곧장 기독교인이 되었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쳤기에 성인이 되었을까? 이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된다. 무엇이 되었든 미루지 않고 모든 일을 곧장 실행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 인물은 가상이고 성인인 것이다.
 
누군가는 주변에 미루지 않고 곧장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저자가 다윈이 걸었던 산책로에서 했던 고민을 보면 다시 없다는 확신이 든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해야 하는 일을 미뤄야 한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길 위의 모험을 미뤄야 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무언가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 p.231
 
현실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일은 미뤄지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서평을 쓰면 독서를 미룬다. 설거지를 하면 청소를 미룬다. 선택은 포기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미루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미루기와 포기의 차이는 나중에라도 그 행동을 한 결과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즉, 미루기의 합리화 조건은 현재의 평가가 아니라 미래의 평가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자타공인 합리화의 전문가지만, 결과 없이는 미룬 게 아니라 ‘하지 않음’이다.
 
미루기에 미덕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또는 우리가 안 하고 있는 일을 왜 안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미루는 건 세상이 내게 바라는 일이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p.39
 
그러나 이런 합리화가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더 나은 결과가 생길 것도 같고, 다른 길이 있을 것도 같아 당장 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이 일로 인정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내면이 방어기제로 미루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벽주의라며 포장한다. 설득력은 있지만, 하지 않음을 설득할 수는 없다. 이런 미루기는 다윈이나 다빈치처럼 나은 방향이 아닌 자멸적 결과로 향한다. 실천은 하나도 없이 생각에서만 그친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감정을 통한 지연은 수정해야 할 문제이다.
 
이 책이 왜 인문교양으로 분류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니까 인문교양인 건가? 유우머라면 납득이 가지만, 나는 그냥 참고문헌 많은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 나온 것처럼 전략적 지연, 미루기의 과학적 근거를 기대했으나…… 하기 싫음에 대한 자기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다. 하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오리지널스』의 4장만 따로 보는 게 낫다. 그나마 마무리를 잘해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수준이다.
 
오늘 구매하고 교보문고 내 카페 자우에 앉아 1일 1독 하는 마음으로 완독했다. 불행은 내가 이 책을 구매했으며 밑줄을 그었다는 점이고, 다행은 재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오늘 다른 책 독서를 미뤘다고 생각하련다. 이 또한 자기합리화 마무리인가? ㅋㅋㅋz

이 길을 따라가면 해야 하는 일을 미뤄야 한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길 위의 모험을 미뤄야 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무언가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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